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00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0년 9월 7일 03시 11분 등록

[무인도]

                                      김형술

 

  수심 깊이 물휘돌이 거느린 깎아지른 벼랑으로 서서 쪽배 한 잎 허락지 않는 네 무언의 거부는 두려움이다. 두려워 소름 돋는 아름다움이다. 몸속 한 모금의 물, 한 포기의 풀마저 버리기 위해 만난 안개와 태양을 어느 가슴이 헤아릴 수 있을까. 헤아려 어느 물너울에 새길까.

  수평선은 절대권력이다. 산 것들의 노래와 울음, 노회한 시간들의 기호와 상징, 그 어느 것도 가로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달려가는 저 완강한 직선을 너는 꺾어놓는다. 무심히, 문득 멈춰 세운다. 방점, 깃발, 음표, 표지판... 누구도 규정짓지 못하는 너는 아무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니므로 자유, 누구도 침범도 규정도 불가능한 완벽한

  언어를 버려서 너는 언어다. 사방 드넓게 열린 언어만이 사나운 바람을 길들이지 않는다. 수면과 구름 사이 제멋대로 오가며 바람은 함부로 발자국을 남기지만 너는 여전히 요지부동, 점점 꽃씨 같은 별들이 흩뿌리는 생생한 날것의 눈빛에도 흔들리지 않는, 세상의 중심 깊숙이 내린 너의 뿌리는 어둡고 차고 향기로울 터.

  어떤 뭍의 비유도 범접하지 못하는 묵언의 자존 하나가 거기 있다. 떠나고 또 떠나서 아주 멀리.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 강건한 빈 마음으로 서 있는 듯 떠다니는 듯.

 

김형술 시집 『무기와 악기』, 문학동네, 2011


KakaoTalk_20200907_031948557.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892
243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정야 2022.02.03 850
242 [리멤버 구사부] 내 삶의 아름다운 10대 풍광 정야 2022.01.24 831
241 [시인은 말한다] 길 / 신경림 정야 2022.01.17 834
240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정야 2022.01.10 871
239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정야 2022.01.03 1040
238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938
237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1125
236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정야 2021.12.13 1112
235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정야 2021.12.13 1046
234 [리멤버 구사부] 나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정야 2021.12.13 825
233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정야 2021.11.22 1477
232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928
231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1115
230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917
229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1005
228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정야 2021.10.18 932
227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1021
226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912
225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