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03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첫 꿈]
빌리 콜린스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까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 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으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슬며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단 말인가, 홀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인 뒤에만 만질 수 있었던
짐승의 목에 어떻게 팔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을 어찌하여 그리 생생하게
목덜미에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 한 여인에게도
첫 꿈은 찾아왔으리라.
그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홀로 있고 싶어
자리를 떠나 호숫가로 갔겠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젊은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만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도
외로워 보였을 것이라는 것 뿐, 만일 당신이
거기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녀를 보았더라면
당신도 그 사람처럼 호숫가로 내려갔으리라. 그리하여
타인의 슬픔과 사랑에 빠진 이 세상 첫 남자가 되었으리라.
『오늘의 미국 현대시』,임혜신 역, 바보새, 2005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4 | [리멤버 구사부] 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 정야 | 2021.04.26 | 848 |
203 | [시인은 말한다] 밀생 / 박정대 | 정야 | 2021.04.19 | 933 |
202 | [리멤버 구사부] 자연의 설득 방법 | 정야 | 2021.04.12 | 777 |
201 | [시인은 말한다]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 정야 | 2021.04.05 | 998 |
200 | [리멤버 구사부] 매력적인 미래풍광 | 정야 | 2021.03.29 | 780 |
199 | [시인은 말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 정야 | 2021.03.22 | 1005 |
198 | [리멤버 구사부] 불멸한 사랑 | 정야 | 2021.03.15 | 842 |
197 | [시인은 말한다] 간절 / 이재무 | 정야 | 2021.03.08 | 1076 |
196 | [리멤버 구사부] 실천의 재구성 | 정야 | 2021.03.02 | 922 |
195 | [시인은 말한다] 동질(同質) / 조은 | 정야 | 2021.02.22 | 892 |
194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몇 가지 충고 | 정야 | 2021.02.15 | 850 |
193 | [시인은 말한다] 나는 새록새록 / 박순원 | 정야 | 2021.02.08 | 922 |
192 | [리멤버 구사부] 일이 삶이 될때 | 정야 | 2021.02.01 | 843 |
191 | [시인은 말한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 정야 | 2021.01.25 | 1065 |
190 | [리멤버 구사부]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정야 | 2021.01.18 | 806 |
189 | [시인은 말한다] 눈 오는 지도 / 윤동주 | 정야 | 2021.01.11 | 835 |
188 | [리멤버 구사부] 나를 혁명하자 | 정야 | 2021.01.04 | 1023 |
187 | [시인은 말한다] 픔 / 김은지 | 정야 | 2020.12.28 | 1230 |
186 | [리멤버 구사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 정야 | 2020.12.21 | 1045 |
185 | [시인은 말한다] 잎 . 눈[雪] . 바람 속에서 / 기형도 | 정야 | 2020.12.14 | 9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