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33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첫 꿈]
빌리 콜린스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까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 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으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슬며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단 말인가, 홀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인 뒤에만 만질 수 있었던
짐승의 목에 어떻게 팔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을 어찌하여 그리 생생하게
목덜미에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 한 여인에게도
첫 꿈은 찾아왔으리라.
그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홀로 있고 싶어
자리를 떠나 호숫가로 갔겠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젊은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만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도
외로워 보였을 것이라는 것 뿐, 만일 당신이
거기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녀를 보았더라면
당신도 그 사람처럼 호숫가로 내려갔으리라. 그리하여
타인의 슬픔과 사랑에 빠진 이 세상 첫 남자가 되었으리라.
『오늘의 미국 현대시』,임혜신 역, 바보새, 2005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4 |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 정야 | 2021.10.11 | 1324 |
183 | [시인은 말한다] 다례茶禮를 올리는 밤의 높이 / 박산하 | 정야 | 2021.05.31 | 1323 |
182 | [시인은 말한다] 잃는 것과 얻은 것 /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 정야 | 2019.07.15 | 1321 |
181 |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 안으로부터 문을 열고 | 정야 | 2021.05.10 | 1317 |
180 |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정야 | 2019.01.28 | 1316 |
179 | [리멥버 구사부]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라 [1] | 정야 | 2017.07.14 | 1316 |
178 | [시인은 말한다] 늙은 마르크스 / 김광규 | 정야 | 2019.06.17 | 1312 |
177 |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 정야 | 2019.05.20 | 1303 |
176 | [시인은 말한다] 송산서원에서 묻다 / 문인수 | 정야 | 2021.07.12 | 1296 |
175 | [시인은 말한다] 발작 / 황지우 | 정야 | 2020.05.18 | 1291 |
174 | [시인은 말한다] 수면 / 권혁웅 | 정야 | 2020.06.29 | 1285 |
173 | [리멤버 구사부] 머리카락에 별을 잔뜩 달고 | 정야 | 2020.05.25 | 1279 |
172 | [리멤버 구사부] 인생은 불공평하다 | 정야 | 2019.04.01 | 1275 |
171 | [리멤버 구사부] 언제나 시작 | 정야 | 2020.07.06 | 1273 |
170 | [리멤버 구사부] 가장 전문가다운 전문가란 | 정야 | 2017.11.16 | 1273 |
169 | [시인은 말한다] 잎 . 눈[雪] . 바람 속에서 / 기형도 | 정야 | 2020.12.14 | 1272 |
168 | [리멤버 구사부] 내가 담아낼 인생 | 정야 | 2017.11.07 | 1272 |
167 | [리멤버 구사부]인생이라는 미로, 운명을 사랑하라 | 정야 | 2017.10.04 | 1258 |
166 | [리멤버 구사부] 체리향기 [4] | 정야 | 2017.01.16 | 1258 |
165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이중성을 인정하라 | 정야 | 2017.10.09 | 1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