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30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은는이가
정끝별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
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
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
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
강‘이’ 하면서 강을 따라 출렁출렁 달려가고
강‘은’ 하면서 달려가는 강을 불러세우듯
구름이나 바람에게도 그러하고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놓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히듯
꽃과 나무와 꿈과 마음에게도 그러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정끝별 시집, 『은는이가』, 문학동네, 2014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4 | [시인은 말한다] 첫 꿈 / 빌리 콜린스 | 정야 | 2019.10.21 | 1035 |
183 | [리멤버 구사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 정야 | 2021.05.24 | 1030 |
182 | [리멤버 구사부] 가장 전문가다운 전문가란 | 정야 | 2017.11.16 | 1029 |
181 | [리멤버 구사부]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서 | 정야 | 2020.12.07 | 1028 |
180 |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의 역사가 [3] | 정야 | 2020.08.31 | 1028 |
179 | [시인은 말한다] 푸픈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 배한봉 | 정야 | 2019.08.26 | 1027 |
178 | [리멤버 구사부] 나를 혁명하자 | 정야 | 2021.01.04 | 1024 |
177 |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 안으로부터 문을 열고 | 정야 | 2021.05.10 | 1023 |
176 | [시인은 말한다]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허수경 | 정야 | 2019.12.30 | 1022 |
175 | [시인은 말한다] 잃는 것과 얻은 것 /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 정야 | 2019.07.15 | 1022 |
174 | [리멤버 구사부] 인생은 불공평하다 | 정야 | 2019.04.01 | 1015 |
173 |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 정야 | 2022.01.03 | 1010 |
172 |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 정야 | 2021.12.13 | 1008 |
171 | [시인은 말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 정야 | 2021.03.22 | 1005 |
170 | [리멤버 구사부] 머리카락에 별을 잔뜩 달고 | 정야 | 2020.05.25 | 1005 |
169 | [시인은 말한다] 늙은 마르크스 / 김광규 | 정야 | 2019.06.17 | 1005 |
168 | [시인은 말한다]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 정야 | 2021.04.05 | 999 |
167 | [시인은 말한다] 수면 / 권혁웅 | 정야 | 2020.06.29 | 998 |
166 | [리멤버 구사부] 언제나 시작 | 정야 | 2020.07.06 | 997 |
165 | [리멤버 구사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 정야 | 2017.11.21 | 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