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03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10월 21일 01시 38분 등록



[첫 꿈]



빌리 콜린스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까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 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으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슬며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단 말인가, 홀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인 뒤에만 만질 수 있었던

짐승의 목에 어떻게 팔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을 어찌하여 그리 생생하게

목덜미에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 한 여인에게도

첫 꿈은 찾아왔으리라.

그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홀로 있고 싶어

자리를 떠나 호숫가로 갔겠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젊은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만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도

외로워 보였을 것이라는 것 뿐, 만일 당신이

거기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녀를 보았더라면

 

당신도 그 사람처럼 호숫가로 내려갔으리라. 그리하여

타인의 슬픔과 사랑에 빠진 이 세상 첫 남자가 되었으리라.

 


『오늘의 미국 현대시』,임혜신 역, 바보새, 2005

 

 

 20180728_094614.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4 [리멤버 구사부]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서 file 정야 2020.12.07 1029
183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file 정야 2020.11.30 1132
182 [리멤버 구사부] 우연한 운명 file 정야 2020.11.23 943
181 [시인은 말한다] 그대에게 물 한잔 / 박철 file 정야 2020.11.16 1253
180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file 정야 2020.11.09 1147
179 [시인은 말한다] 친밀감의 이해 / 허준 file 정야 2020.11.02 1221
178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file 정야 2020.10.26 1090
177 [시인은 말한다] 눈풀꽃 / 루이스 글릭 file 정야 2020.10.19 1081
176 [리멤버 구사부] 가치관에 부합하게 file 정야 2020.10.11 984
175 [시인은 말한다]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file 정야 2020.10.05 1400
174 [리멤버 구사부] 마흔이 저물 때쯤의 추석이면 file 정야 2020.09.28 1228
173 [시인은 말한다] 너에게 보낸다 / 나태주 file 정야 2020.09.21 1744
172 [리멤버 구사부] 워라밸 file 정야 2020.09.14 973
171 [시인은 말한다] 무인도 / 김형술 file 정야 2020.09.07 985
170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의 역사가 file [3] 정야 2020.08.31 1028
169 [시인은 말한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file 정야 2020.08.24 1047
168 [리멤버 구사부] 고독의 인연 file 정야 2020.08.18 1055
167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file 정야 2020.08.10 1101
166 [리멤버 구사부] 사랑하는 법 file 정야 2020.08.03 928
165 [시인은 말한다]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들 혹은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 / 박정대 file 정야 2020.07.27 1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