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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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시집『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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