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12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6월 17일 02시 40분 등록



생활에게

 

이병률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 만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기억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시집『찬란』,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10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라 [1] 정야 2017.06.20 1179
163 [시인은 말한다] 밀생 / 박정대 정야 2021.04.19 1178
162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1174
161 [시인은 말한다] 무인도 / 김형술 file 정야 2020.09.07 1173
160 [리멤버 구사부] 우연한 운명 file 정야 2020.11.23 1172
159 [리멤버 구사부] 가치관에 부합하게 file 정야 2020.10.11 1172
158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1168
157 [시인은 말한다] 동질(同質) / 조은 정야 2021.02.22 1168
156 [시인은 말한다] 오늘의 결심 / 김경미 file 정야 2019.12.16 1168
155 [시인은 말한다] 시간들 / 안현미 file 정야 2019.12.02 1168
154 [시인은 말한다] 나는 새록새록 / 박순원 정야 2021.02.08 1166
153 [시인은 말한다] 자유 / 김남주 file 정야 2019.08.20 1166
152 [시인은 말한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이진명 file 정야 2019.11.04 1165
151 [리멤버 구사부] 워라밸 file 정야 2020.09.14 1163
150 [시인은 말한다]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file 정야 2019.11.18 1162
149 [리멤버 구사부] 실천의 재구성 정야 2021.03.02 1159
148 [시인은 말하다] 꿈 / 염명순 정야 2021.05.17 1155
147 [리멤버 구사부] 사랑하는 법 file 정야 2020.08.03 1154
146 [시인은 말한다] 넥타이 / 나해철 file 정야 2020.01.28 1154
145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