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16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12월 2일 03시 19분 등록



[시간들

 

안현미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

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안현미 시집『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

 


20181016_142417.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라 [1] 정야 2017.06.20 1179
163 [시인은 말한다] 밀생 / 박정대 정야 2021.04.19 1178
162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1175
161 [리멤버 구사부] 가치관에 부합하게 file 정야 2020.10.11 1173
160 [시인은 말한다] 무인도 / 김형술 file 정야 2020.09.07 1173
159 [리멤버 구사부] 우연한 운명 file 정야 2020.11.23 1172
158 [시인은 말한다] 오늘의 결심 / 김경미 file 정야 2019.12.16 1171
157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1169
» [시인은 말한다] 시간들 / 안현미 file 정야 2019.12.02 1168
155 [시인은 말한다] 동질(同質) / 조은 정야 2021.02.22 1168
154 [시인은 말한다] 나는 새록새록 / 박순원 정야 2021.02.08 1167
153 [시인은 말한다] 자유 / 김남주 file 정야 2019.08.20 1167
152 [시인은 말한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이진명 file 정야 2019.11.04 1165
151 [리멤버 구사부] 워라밸 file 정야 2020.09.14 1163
150 [시인은 말한다]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file 정야 2019.11.18 1163
149 [리멤버 구사부] 실천의 재구성 정야 2021.03.02 1160
148 [시인은 말하다] 꿈 / 염명순 정야 2021.05.17 1158
147 [리멤버 구사부] 사랑하는 법 file 정야 2020.08.03 1154
146 [시인은 말한다] 넥타이 / 나해철 file 정야 2020.01.28 1154
145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