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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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게
이병률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 만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기억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시집『찬란』,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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