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86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0년 2월 24일 01시 12분 등록

[통속]

 

정끝별

 

서두르다를 서투르다로 읽었다 잘못 읽는 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화두를 화투로, 가늠을 가름으로, 돌입을 몰입으로, 비박을 피박으로

읽어도 문맥이 통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네살배기 딸도 그랬다 번번이 두부와 부두의

사이에서, 시치미와 시금치 사이에서 망설이다 엄마 부두 부쳐준다더니

왜 시금치를 떼는 거야 그래도 통했다

중심이 없는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가로와 세로를,

성골과 진골을, 콩쥐외 팥쥐를, 덤과 더머를, 델마와 루이스를 헷갈려

한다 짝패들은 죄다 한통속이다

칠순을 넘긴 엄마는 디지털을 돼지털이라고 하고 코스닥이 뭐예요?라고

묻는 광고에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신다 웃는 육남매를 향해 그래 봐야

니들이 이 통속에서 나왔다 어쩔래 하시며 늘어진 배를 두드리곤 한다

칠순에 돌아가셨던 외할머니는 이모를 엄니라 부르고 밥상을 물리자마자

밥을 안 준다고 서럽게 우셨다 한밤중에 밭을 매러 가시고 몸통에서 나온

똥을 이 통 저 통에 숨기곤 하셨다

 

오독이 문맥에 이르러 정독과 통한다 통독이리라

 


정끝별 시집『와락』, 창비, 2008


20180908_134809.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file 정야 2020.07.20 1171
163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file 정야 2020.07.13 1087
162 [리멤버 구사부] 언제나 시작 file 정야 2020.07.06 998
161 [시인은 말한다] 수면 / 권혁웅 file 정야 2020.06.29 999
160 [리멤버 구사부] 오직 이런 사람 file 정야 2020.06.22 964
159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file 정야 2020.06.15 1165
158 [리멤버 구사부] 행복한 일상적 삶 file 정야 2020.06.08 990
157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file 정야 2020.06.01 1098
156 [리멤버 구사부] 머리카락에 별을 잔뜩 달고 file 정야 2020.05.25 1007
155 [시인은 말한다] 발작 / 황지우 file 정야 2020.05.18 1050
154 [리멤버 구사부] 변화의 이중성 file 정야 2020.05.11 893
153 [시인은 말한다] 의자 / 이정록 file 정야 2020.05.04 922
152 [리멤버 구사부] 노회한 사려 깊음 file 정야 2020.04.27 836
151 [시인은 말한다] 가는 길 / 김소월 file 정야 2020.04.20 940
150 [리멤버 구사부] 묘비명 file 정야 2020.04.13 885
149 [시인은 말한다] 내가 아는 그는 / 류시화 file 정야 2020.04.06 927
148 [리멤버 구사부] 창조적 휴식 file 정야 2020.03.30 779
147 [시인은 말한다] 심봤다 / 이홍섭 file 정야 2020.03.23 875
146 [리멤버구사부]봄은 이렇게 또 오고 file 정야 2020.03.16 798
145 [시인은 말한다]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file 정야 2020.03.09 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