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07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 저, 창작과비평사, 2003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4 | [시인은 말한다] 삶은 계란 / 백우선 | 정야 | 2019.01.21 | 1086 |
123 | [리멤버 구사부] 도약, 그 시적 장면 | 정야 | 2019.03.04 | 1085 |
122 | [시인은 말한다] 내가 아는 그는 / 류시화 | 정야 | 2020.04.06 | 1082 |
121 | [시인은 말한다] 통속 / 정끝별 | 정야 | 2020.02.24 | 1082 |
120 | [리멤버 구사부] 묘비명 | 정야 | 2020.04.13 | 1080 |
119 | [리멤버 구사부] 나눈다는 것 | 정야 | 2020.01.20 | 1080 |
» | [시인은 말한다]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 정야 | 2019.04.22 | 1079 |
117 | [시인은 말한다] 심봤다 / 이홍섭 | 정야 | 2020.03.23 | 1077 |
116 | [리멤버 구사부] 변화의 이중성 | 정야 | 2020.05.11 | 1076 |
115 | [시인은 말한다] 의자 / 이정록 | 정야 | 2020.05.04 | 1075 |
114 | [시인은 말한다]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 정야 | 2020.02.10 | 1070 |
113 | [리멤버 구사부]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 정야 | 2017.12.26 | 1066 |
112 | [리멤버 구사부] 어울리는 사랑 | 정야 | 2019.02.07 | 1062 |
111 | [리멤버 구사부] 바라건대 | 정야 | 2019.07.22 | 1061 |
110 | [리멤버 구사부] 흐르는 강물처럼 | 정야 | 2017.10.30 | 1059 |
109 | [리멤버 구사부] 죽음 앞에서 | 정야 | 2019.04.15 | 1056 |
108 | [리멤버 구사부]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 정야 | 2017.10.04 | 1056 |
107 | [리멤버 구사부] 오늘을 실천하라, 내일 죽을 것처럼 | 정야 | 2019.05.27 | 1055 |
106 | [시인은 말한다] 꿈꾸는 사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정야 | 2019.03.11 | 1055 |
105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몇 가지 충고 | 정야 | 2021.02.15 | 10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