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16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1년 1월 25일 01시 08분 등록



겨울 들판을 거닐며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_ 허영만 시집, 『비 잠시 그친 뒤』, 문학과지성사, 1999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4 [리멤버 구사부] 정면으로 살아내기 file 정야 2019.10.14 946
123 [시인은 말한다] 타이어에 못을 뽑고 / 복효근 file 정야 2019.10.14 902
122 [리멤버 구사부] 변화의 기술 file 정야 2019.10.14 790
121 [시인은 말한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file 정야 2019.09.23 1432
120 [리멤버 구사부] 아름다운 일생길 file 정야 2019.09.23 882
119 [시인은 말한다] 별 / 이상국 file 정야 2019.09.23 1036
118 [리멤버 구사부] 한 달의 단식 file 정야 2019.09.02 972
117 [시인은 말한다] 푸픈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 배한봉 file 정야 2019.08.26 1102
116 [리멤버 구사부] 양파장수처럼 file 정야 2019.08.20 1001
115 [시인은 말한다] 자유 / 김남주 file 정야 2019.08.20 1055
114 [리멤버 구사부] 품질 기준 file 정야 2019.08.05 844
113 [시인은 말한다] 현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file 정야 2019.07.29 1032
112 [리멤버 구사부] 바라건대 file 정야 2019.07.22 977
111 [시인은 말한다] 잃는 것과 얻은 것 /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file 정야 2019.07.15 1097
110 [리멤버 구사부] 지금이 적당한 때 file 정야 2019.07.08 861
109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file 정야 2019.07.05 1765
108 [리멤버 구사부] 비범함 file 정야 2019.07.05 834
107 [시인은 말한다] 늙은 마르크스 / 김광규 정야 2019.06.17 1073
106 [리멤버 구사부] 우정 정야 2019.06.17 819
105 [시인은 말한다] 생활에게 / 이병률 정야 2019.06.17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