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98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상처적 체질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상처적 체질』,류근, 문학과지성사, 2010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 정야 | 2020.07.20 | 1169 |
223 |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 정야 | 2020.06.15 | 1165 |
222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정야 | 2020.01.13 | 1164 |
221 | [리멤버 구사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천천히 흘러야 한다 | 정야 | 2017.10.04 | 1160 |
220 | [리멤버 구사부] 체리향기 [4] | 정야 | 2017.01.16 | 1148 |
219 |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 정야 | 2020.11.09 | 1147 |
218 |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 정야 | 2020.11.30 | 1132 |
217 |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 정야 | 2019.02.25 | 1131 |
216 | [리멥버 구사부]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라 [1] | 정야 | 2017.07.14 | 1130 |
215 |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 정야 | 2021.08.02 | 1125 |
214 |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 정야 | 2021.05.03 | 1116 |
213 |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 정야 | 2020.08.10 | 1101 |
212 |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 정야 | 2020.06.01 | 1098 |
211 |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 정야 | 2021.12.20 | 1095 |
210 |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정야 | 2019.01.28 | 1093 |
209 |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 정야 | 2021.11.15 | 1091 |
208 |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 정야 | 2020.10.26 | 1090 |
207 |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 정야 | 2021.09.27 | 1089 |
206 |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 정야 | 2019.05.20 | 1088 |
205 |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 정야 | 2020.07.13 | 10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