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98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3월 25일 03시 09분 등록



상처적 체질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 저 찬란한 채찍



 

­『상처적 체질』,류근, 문학과지성사, 2010

 

KakaoTalk_20190322_175536964.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4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file 정야 2020.07.20 1169
223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file 정야 2020.06.15 1165
222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file 정야 2020.01.13 1164
221 [리멤버 구사부] 사람 사이의 관계는 천천히 흘러야 한다 정야 2017.10.04 1160
220 [리멤버 구사부] 체리향기 [4] 정야 2017.01.16 1148
219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file 정야 2020.11.09 1147
218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file 정야 2020.11.30 1132
217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file 정야 2019.02.25 1131
216 [리멥버 구사부]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라 [1] 정야 2017.07.14 1130
215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정야 2021.08.02 1125
214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정야 2021.05.03 1116
213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file 정야 2020.08.10 1101
212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file 정야 2020.06.01 1098
211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1095
210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file 정야 2019.01.28 1093
209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1091
208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file 정야 2020.10.26 1090
207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1089
206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정야 2019.05.20 1088
205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file 정야 2020.07.13 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