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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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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0일 01시 42분 등록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숩다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옹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 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 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 번씩 잡아주는 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어디에 상량을 얹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 떼 왔다 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복효근 시집,『따뜻한 외면』, 복효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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