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89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2년 1월 17일 00시 08분 등록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시집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3



IP *.37.189.7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 [리멤버 구사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몇 가지 충고 정야 2021.02.15 946
103 [리멤버 구사부] 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정야 2021.04.26 938
102 [리멤버 구사부] 꿈이란 [1] 정야 2017.06.28 934
101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정야 2022.01.10 932
100 [리멤버 구사부] 일이 삶이 될때 정야 2021.02.01 931
99 [리멤버 구사부] 여든다섯 살 할머니의 쪽지 file 정야 2020.01.06 929
98 [리멤버 구사부] 불멸한 사랑 정야 2021.03.15 926
97 [시인은 말한다] 눈 오는 지도 / 윤동주 정야 2021.01.11 924
96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정야 2022.02.03 915
95 [시인은 말한다] 타이어에 못을 뽑고 / 복효근 file 정야 2019.10.14 914
94 [리멤버 구사부] 나는 나무다 [1] 정야 2017.11.29 909
93 [리멤버 구사부] 지금을 즐기게 file 정야 2020.03.02 908
92 [리멤버 구사부] 노회한 사려 깊음 file 정야 2020.04.27 905
91 [리멤버 구사부]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라 정야 2017.10.04 903
90 [리멤버 구사부] 카르페 디엠(Carpe diem) 정야 2021.01.18 901
» [시인은 말한다] 길 / 신경림 정야 2022.01.17 897
88 [리멤버 구사부] 내 삶의 아름다운 10대 풍광 정야 2022.01.24 895
87 [리멤버 구사부] 아름다운 일생길 file 정야 2019.09.23 893
86 [리멤버 구사부] 나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정야 2021.12.13 887
85 [시인은 말한다]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file 정야 2020.03.09 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