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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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이 되면 긴 팔 옷을 입고 차례를 지낸다. 가을은 과실이 빛나는 계절이다. 온갖 종류의 과실을 차례상에 올리는 이유도 잎의 시절은 가고 과실의 시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무의 울창함은 사라지고 남겨야 할 씨앗이 중요해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간혹 마흔이 저물 때쯤이면 사람들은 ‘우리의 시대’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이 커지고, 우리는 작아진다.
형님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동안 큰아이가 운전을 했다. 큰아이가 운전을 하면 작은아이는 앞자리에 탄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뒷자리로 옮겨 앉는다.
우린 점잖게 뒷자리에 앉아 젊은 아이의 운전 솜씨에 몸을 맡긴다. 아슬아슬한 자동차의 물결 속을 신이 나서 달려간다. 아이 엄마는 간혹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나는 속으로만 지른다.
자동차의 뒷자리에 앉으면 나는 몇 살을 더 먹곤 한다. 점잖게 앉아 젊은이들이 세상을 이끄는 것을 가슴 졸이며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늘 앞자리를 선호한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휴머니스트, 1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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