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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5일 00시 58분 등록

신화와 인생

1.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은 1904 년에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교수, 작가이며 비교 신화와 비교 종교 분야에서 최고의 연사로 알려져 있다. 캠벨은 뉴욕시에서 상위 중산층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렸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 빠져들게 되었고, 미국 원주민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드러나는 신화에 매료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인간과 모든 문화, 그 안에 녹아있는 신화들에 대한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캠벨은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대신 뉴욕 북부에 있는 숲으로 들어가서, 5 년 동안 독서에 빠져들어 지냈다. 캠벨은 하루 9 시간의 체계적인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것을 통하여 삶에 대한 그의 독특한 관점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파리와 뮌헨의 대학에서 고대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 연구과정에 들어갔고 독일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도 배웠으며, 그 후 캠벨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융의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신화 작업 안에서 융과 프로이드의 중추적인 논쟁점인 집단 무의식에 대한 다리를 찾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조각가 안토니 , 피카소, 클레 등의 작품에 노출되며, 예술 분야로까지 자신의 관심분야를 확장하게 된다.

 그가 관심가지고 연구한 분야는 한마디로 방대함 그 자체이다. 어떤 한 분야 안에서 그 하위분야 하나만 연구하기에도 인생은 짧다고 느껴지는 나에게 그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화와 그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종교들 그리고 종교의 원초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신화에까지 분야를 확장하여 하나의 연결고리로 만들어 가는 그의 작업은 경이로움까지 들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깊게 연구하는 것이 과연 한 인간으로서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으면서(물론 그런 부분들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고 그것들을 인간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힘으로 귀결 짓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그는 과연 사람들 각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가능성을 어디까지 본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였다. 신화와 인생이라는 책이 직접 캠벨의 손으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제목 자체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관심분야를 두 단어로 응축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신화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을까?하고 감히 예상하여 보기도 합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도입의 단계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19) 여러분이 지금 모습 그대로,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평생 누릴 특권이다.

(20)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 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21)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계획해 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니까.
예전 것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22) 어떤 형상에 매달리게 되면 우리는 썩을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23)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
완벽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24) 모든 과정은 우선 뭔가를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25) 자신이 살 만한 가치를 지녔다면 그 가치를 기꺼이 취하라.

(26)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 다.
여러분 자신의 길을 따라 삶을 계속해 나아가는 동안에는 혹시 새똥이 떨어진다 해도 그걸 닦느라 신경 쓰진 마라.

(27)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의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 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29) 뱀이 그 허물을 벗어 버리듯, 여러분은 지난날을 내팽개쳐라.

(31) 만약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 이다.

(36) 여러분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은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 야 한다.

(37)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 큼 넓진 않으리라.

의식의 첫 번째 단계

-현세에서의 삶

(50) 어떤 여성이 자기 안에 있는 힘을 자각하면, 그때부터 그녀는 남성을 본인에게 결여되 었다고 생각했던 것의 한 예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 개체로서 보기 시작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성(異性)에게 자기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그 시작이다.

(55) 여러분에게 벌어지는 일 가운데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비록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재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재난은 여러분을 뒤로 물 러서게 하지만,[거꾸로 생각하자면] 여러분이 힘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런 재난이 생기는 것이다.

(68) 책임이 사람의 구성요소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책임감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는 뜻이다. 그건 단지 소유물을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과연 누군가를 소유하 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관계를 구축하려 하는 것인가?

(73) 자아가 무너져야만 두 사람은 합쳐질 수 있다.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영혼은 발효되고, 융합되고, 분해되고, 부패되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행동이 자신과 그 타인이 사실은 하나라는 진리를 본능적 으로 인식한 데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타인과 별개라는 이차적인 자아의 식 때문에 행동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토대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더 크고 더 참된 진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생존은 삶의 두 번째 법칙이다.

(77) 첫 번째 법칙은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79) 신화는 우리의 깨어나는 의식과 우주의 신비 사이를 연결시켜 준다. 신화는 우주의 지 도 또는 그림을 우리에게 선사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자연에 대한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83) 자신이 행복해하는 것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항상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돈이 있던 없건 간에.
돈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돈을 잃을뿐더러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85) 여러분에게는 에너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그 에너지를 흘려보낼] 경로의 모델을 제 공하는 사고력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삶은 진정으로 꽃을 피울 수 있다.

(86) 여러분이 단순히 열등감을 상쇄하기 위해 학위과정을 밟고 있다면, 그런 열등감은 벗 어 던져라. 왜냐하면 열등감이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87)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강요할 갖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90)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 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 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97) 그 무엇도 고정적인 것은 없으며, 그 무엇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모든 것 을 자연스레 눈에 띄게 되는데, 왜냐하면 모든 것이 가능성이며, 모든 것이 단서이며,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99) 여러분도 방랑을 하게 되면, 당장 ‘그날 하루’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하되, ‘내일은 뭘 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해 둔 것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아무런 책임질 일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여러분은 다음 두 가지를 결코 걱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굶는 것이며,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방랑 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 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 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다른 사 람들의 생각이야 그저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니까.

(100)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을 치워 버려야 희열이 온다.

(101)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던 대로 행했기 때문에 일을 오히려 망치고 말았다는 사실 을

(103) 각자의 삶에는 여러 가지 높은 성취들이 있으며, 그 각자의 삶은 성배로부터 은총을 부여받는다. 어떻게 하면 거기 도달할지, 그리고 거기가 어디일지에 관한 단서를 어 느 정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감이라 테마다.

(105)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 느냐는 것이다.

(107) “결국 모든 삶은 전체의 실현, 즉 자아의 실현이다. 때문에 그 현실을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그것을 실현하는 각각의 운반자에 매여 있으며, 운반자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운반자는 개별적인 운명과 목적에 대한 책 임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108) 천국이란 여러분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그것은 영원히 여러분 자신의 근본적인 측면이다.

(110) 이 세상은 여러분이 뭔가를 하도록 원하고 있는 반면, 여러분은 이세상이 원하는 바 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러분에게 내적 만족을 제공함으로써 여 러분을[성에서] 내쫓기지 않게 만들어 주는 행동의 분야를 발견하는 것이다.

(111) 부름은 곧 어떤 사회적 지위를 떠나라는, 즉 여러분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보 석을 찾으라는, 즉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속박되어 있을 때에는 찾기가 불가능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영웅이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걸 찾으러 갈 때, 그게 바로 출발인 것이다.

(113) 여러분의 모험은 여러분 자신의 내부에서 곧바로 솟아나야만 한다. 여러분이 그럴 준 비가 되어 있다면, 이전까지는 문이라고 없었던 곳에서, 그리고 다른 누구도 겪어 보 지 못했던 곳에서 여러분을 위한 문이 열릴 것이다.

(131)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과 결부시켜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깨달음 속에서 서로를 돕 기 위해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정말로 아름다운 의례이다.

(137) 일찍이 나 자신을 구속하던 것이 사라져 버림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포기한 보물 을 향한 우리의 감정을 실제로 바꿔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집착 없이도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욱 증대시킨 것이었다.

(139) 종말이란 불타는 아마겟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와 자기만족이 끝난 다는 뜻이다.

(143) 우리의 삶이란 햇빛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 불과 하느니라.

(149) 모든 순간들은 그야말로 유일하며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 때문에 삶은 특유의 통렬함을 지니는 것이며, 여러분은 지금 경험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집중해야 만하는 것이다.

의식의 두 번째 단계

-깨달음을 향한 길

(170) 신화는 여러분이 호랑이로서의 자기 얼굴을 인식하게끔 인도해 줄 것이다.

(176) 여러분의 꿈을 글로 적어보라.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화다.

(185) 만물을 ‘너’로 파악하며, 그것들의 삶을 깨닫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종교적인 명상 에 함축되어 있는 최고의 진술이다.

(193) 예술의 목표는 그 대상에 있어서의 완벽성이다. 예를 들어 타지마할은 웅장한 예술적 성취다. 그것은 완벽하다. “이것이 바로 로빈슨 제퍼스가 ‘성스럽게 넘쳐나는 아름다 움’ 이라고 부르는 것이로구나.” 그것은 내 삶에 있어 아무런 실용적인 가치를 지 니지 못했지만 그 순간은 그 자체로 뭔가 대단한 것이었다.

(199) 우리가 필연적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저곳, 바로 저 우주에서도 타당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곳, 바로 이 우주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201) 은유적인 여정에 의해 암시되는 바는 영혼에 있어서의 마음의 귀환이다. 즉 여전히 육체를 지닌 채로, 그 초월적 근원-그 안에서 특정한 삶의 신비가 이 시간의 장중에 떠올랐다가 머지않아 그 근원 속으로 돌아가 용해되는-의 완전한 지식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206) 불교에서는 우리가 두려움과 욕망의 세계 속에서 다시 말해 마야, 즉 환영 속에서 길 을 잃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도상학에서는 이것이 바로 ‘타락’이다. 구원은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고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시간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단 한 번의 삶을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 안에서 에덴 동산의 비밀을 찾아내야 한다.”

(209) 만약 여러분이 자신과 자신의 전통에 집착하여 여러분 혼자서 ‘그것’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인류의 나머지로부터 스스로를 제거한 셈이 된다.

(212)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 어떤 사소한 세부사항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한다면, 여러분 은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리는 셈이 된다. 여러분은 반드시 모든 것에 대해서, 심지어 그 소멸에 대해서도 “예”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216) 지옥의 문제는 불이 여러분을 소진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변화의 불만이 그럴 수 있다.

(219) 다른 사람이 하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악의? 무지? 오만? 사랑?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220)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은 장애로 경험되거나 또는 열린 문으로 경험되거나 둘 중 하 나다. 여러분이 그 심리적 의미와 효과를 정신적 변화로서 인식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 장애물을 열린 문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장애가 되는 듯 보였던 모든 것들은 변화될 수 있다.
비의이며 비밀인 탄트라 훈련은 심지어 가장 파괴적인 또는 유혹적인 행위조차도 향 상을 위한 사다리의 발판으로 제어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221) 아래도 뾰족한 삼각형이 여러분의 전진에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수단이 되면, 여러 분은 문턱을 드디어 통과한 것이다.
문턱에는 항상 위험이 있게 마련이다. 일시적인 몸이 떠나서 영이 들어오게 하라.

(223) 우리가 접하는 어려움 역시 닫힌 문이 아니라, 오히려 활짝 열린 대문으로서의 변화 가능성이라고 간주되어야 하리라.
여러분을 가로막는 상징을 발견하고 나면, 이번에는 그 상징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바의 중요성에 부합되는 사고와 경험의 양태를 찾아내도록 하라. 그 상징이 무엇을 지 칭하는지를 알아내지 못하는 한, 여러분은 그 상징을 제거할 수 없다.

(224) 여러분이 그것을 장애물로 여기는 대신에, 오히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 음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무언가로 여기게 될 것이다.

(230) 그 상징이 도대체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지 못하면, 그것 은 단지 명령으로서 거기 있을 뿐이며, 그런 일들은 계속해서 더 많이 지속될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

(231) 신을 선택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들은 무수히 많다. 여러분의 신을 선택하라.
여러분이 숭배하는 신이 여러분에게 어울리는 신이다.

(236) 여러분이 만약 세상 속에 거하는 하느님을 보고 싶다면, 바로 인간 속에서 찾으면 된 다. 하나님을 향해, 우주를 향해, 또는 이와 같은 종류의 어떤 것을 향해 비난을 돌리 지 말라는 것이다.

(237)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존재의 이미지 투사된 것은 사실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 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는 사실상 그때그때 인간이 처한 조건이 반 영된 거울 속 이미지라는 것이다.

(239) 그의 승천은 내부로 향한, 신화적 여정을 표상한다. 그리고 처녀수태는 인간에게 있 어서 영적 삶의 탄생을 지칭한다.
하나님은 존재로서, 활동으로서, 힘으로서 만물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영혼 속에서만 자식을 낳는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흔적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형 상이다.
당신 안에서 탄생을 촉진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선과 모든 위로와 모든 행복과 모 든 존재와 모든 진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당신에게 오는 것은 진정한 존재와 안정성을 줄 것이다. 탄생 없이 당신에게 오는 것은 진정한 존재와 안정성을 줄 것이다. 탄생 없이 당신이 무엇을 구하거나 파악하다면, 어떤 식으로 하든 그것은 소멸 해 버릴 것이다.

(240) “그 생명의 샘은 개인의 핵심이며, 그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 만약 그가 그 샘을 뒤덮어 가린 덮개를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신들이 ‘저 바깥’에서 활동한 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천국]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 로의 마음에 불러낸다. 아버지의 나라[천국]는 여기 있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고 그 광휘를 목도한다. 부활절의 계시가 바로 거기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241) 십자가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신들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이 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신들이 우리에게로 내려온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진정한 교통 [십자가를 놓음, 즉 가로지름]인 것이다.

(243) 영웅의 죽음과 부활은 오래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위한 모델이다.
인간은 ‘나’로서가 아니라 ‘너’로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종족이나 인 종이나 대륙이나 사회계급이나 세기의 그 어떤 이상이나 일시적 제도조차도, 소진됨이 없고 다방면에 걸친 놀라운 신성한 존재, 즉 우리 모두의 속에 있는 삶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46) 오해는 다름이 아니라 영적이고 신화적인 상징을 마치 그것들이 역사적 사건을 가리 킨다고 독해함으로써 생긴다.

(247) 이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 즉 우리 모두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여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과거를 놓아 버려야만 한다. 이것은 구시대적인 종교에 대해 거 듭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의 질서에 대해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비스러운 미래 속으로 자유낙하를 한다. 여러분은 낙하산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만 알면 된다.

(258) 여러분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기쁨-의 샘이 있는 어떤 활동 공간, 즉 여러분이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의도와 자신의 소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됨으로써, 비록 작더라도 하늘나라가 거기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모든 사람은-본인이야 알건 모르건 간에- 그런 공간을 필요로 한다.

(259)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하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매사가 그 순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260) 여러분이 어렸을 때 하던 일,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고,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거기, 우리 삶에 깃든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어른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힘을 반드시 재발견해야 한다.

(261) 긴장, 정직의 결어, 그리고 비현실적 감각은 여러분 삶의 잘못된 힘을 따름으로써 나 타난다.

(262) 여러분의 삶이 놀이가 아니라면, 또는 여러분이 놀이를 하긴 하지만 아무런 재미가 없다면, 그때는 그만 두도록 하라!
의무를 벗어던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상 관이 없다. 휴식이 곧 놀이인 것이다.

(263) 천국이란 바로 ‘여러분 안에’있는 밀폐 봉인된 공간을 말한다. 여러분이 그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수록, 여러분은 무슨 일이 벌어지던 간에 더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

(264) 성스러운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징적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영적 삶 이 가능하고, 여러분 주위의 만사가 영의 고양을 이야기하는 곳 말이다.

(265) 성스러움이란 주위의 대상과의 은유적 관련성이다.

(271) 사회의 이상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신비주의자의 길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너머, 즉 여러분이 자신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을 초월하는 것을 일별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여러분의 모든 에너지가 비롯되는 원천의 장이다.

(272) 여러분의 눈을 저 높이에, 즉 대립자의 쌍들 사이에 고정시키고 이 세상 속에서 여러 분의 ‘놀이’를 바라보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파도와 함께 흔들리는 법을 배우라.
세상의 쓰레기 속에서도 ‘광휘를 발하는’ 채로 남아 있으라.

(274)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모든 고정관념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278)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283) 사람의 정신은 천천히 깨달음을 향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방법에만 집착하지는 마십시오. 명상을 하는 중에 여러분의 의식이 확정되고 변화되면, 그때 가 서 여러분은 모든 길들이 타당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88) 진정한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대립자의 쌍들의 너머까지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

(290)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 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292) 교리의 탈것은 너희를 저편 물가로 데려다주기 위한 방편이며, 일단 저편 물가에 도 달하고 나면, 너희는 뗏목을 버리고 모두 잊어버려야 마땅한 것 이니라
여러분이 일찍이 떠난 장소는 사실상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과 마찬가지다. 다만 여러 분의 시각이 변화한 것뿐이다.

(294) 여러분-삶에 염증을 느낀-이 단지 똑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기쁨에 사로잡혀 있다 는 것, 그것도 단지 여러분의 의식의 단계가 이동됨으로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296) 하늘나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깨달음 속에 있다. 우리 이웃 속에, 적들 속에. 자신 속에 편재하는 신들의 현존에 관한 깨달음 속에.

(297)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을 경험하고 또 영과 의사소통한다.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영을 완전히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가 곧 죽음임 을 안다.

(298) 줄곧 현실과는 다른 일을 생각함으로써 자네는 거기서 진을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 었던 다른 경험들을 망치고 있는 셈임을 말이야.
나는 상황이 내 계획대로 되기를 욕망하고, 그런 욕망은 나로 하여금 다른 경험을 하 지 못하도록 만든다.

(300) 모든 종교 훈련의 목표는 심리학적 변화다.
일시적으로나마 삶을 뒤로 함으로써, 여러분은 스스로를 삶에 바치는 것이다.
세속적 이득에 대한 욕망과 상실에 대한 공포로 인해 여러분은 스스로를 삶에 내어주 는 데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302) 여러분의 판단이 오는 곳에서부터, 여러분의 한계도 온다.

(304) 우리는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307)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이 시킨 일만 하게 되면, 여러분의 자아는 발전하지 않는 다.

(310) 지혜와 어리석음은 사실상 똑같다. 두 가지 모두 세상의 견해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 다.

(332) 목표는 여러분 자신의 모험에 나서는 것이어야지, 대체물을 지니는 것이어서는 안 된 다.

의식의 세 번째 단계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346) 무지(차단하는 힘)가 실재를 은폐한다면, 상상력(투사하는 힘)은 현상을 전개한다.

(362) 여러분이 이런 내적 깊이를 달성하면 온 세상이 열리고, 여러분이 삶에서 하던 놀이 는 이 광휘로 가득 차게 된다.

(368) 애인과 몰래 데이트를 잡아 놓은 어느 수녀가, 마침 그 시간에 성당 바닥을 청소하라 는 명령을 받게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윽고 그림 속의 성모가 살아서 내려오더 니, 청소용 솔과 양동이를 빼앗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가서 재미있게 놀다 오거라.” 성모는 결코 추기경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369) 솔직히 말해서 설교대는 무기나 다를 바 없었다. 거기에는 힘을 위한 예술이 있었다. 바로 그것의 배치 자체가 그 예술이었다. 그곳과 다른 모든 사람이 관계하는 방식이 그러했다. 여러분이 설교대 위에 서 보지 않는 한, 여러분은 자신에게 어떤 힘이 있는 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거기 서 있으면 어느 누구도 다치게 할 수 없다.

(372) “우선 모든 규칙을 배운 다음, 그 규칙을 모두 잊어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규칙 들이 순수한 행동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373) 어느 지점에 이르면 여러분은 아직 자신에게는 자발적이지 않은 몸을 움직이기 위해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 이 모든 것을 따져보게 되면 자발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다. 이 모든 것을 흡수하고 난 다음에야, 여러분은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강 력한 추진력을 얻게 되어, 그 모두를 깨뜨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어느 것에 근거하여 행동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단순히 자신의 지식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여러분은 그것을 움직임으로 변환시켜야 한다. 예술에서는 이것이 전부다. 학생은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기술과 법칙을 배우는 것이며, 이것 이 그가 반드시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그 모두를 통달한 다음에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374) 창의적 행동은 뭔가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산출하는 것 이다.
 
비록 분석이 유능한 행동을 촉진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규칙을 생각하고 있으면 여 러분의 행동의 자발성은 저해된다.

(375) ‘예술로서의 예술’ 은 그 사람을 인간성을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데려간다.
 
예술을 통한 치료요법의 실시는 그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놓는, 그를 조화로 운 인간으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조화로운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예 술은 자연과 평행한 조화다.”

(377) 예술은 우리를 스스로의 얽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한 쌍의 날개다.

(379) 신들의 힘은 자연 속에 있는, 그리고 여러분의 본성 속에 있는 힘이 의인화된 것이 다. 여러분이 그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 여러분은 놀이를 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 작품 이다.

(380) 만약 여러분이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거야”라고 말하고, 그 신념을 고 수한다면, 뭔가가 일어날 것이다.

(381) 예술가는 어떤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방식이 아니 라 내부의 동력을 발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385)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은 것은 그 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387)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일을 비판의 두려움 없이 계속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움 직일 것이다. 여러분은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여러분은 기쁨을 느끼기 위 해 1인치도 더 움직일 필요가 없다.

(392) 조이스는 이 모든 진통을 고스란히 감내했으니, 이는 완전함을 향한 그의 의도 때문 이었다. 완전함이야말로 예술에 함의된 성취이고, 그는 그것을 달성했다. 반면 불완전 함은 곧 삶이다. 삶의 모든 형태는 불완전하고, 예술의 기능은 광휘가 불완전함을 관 통해 나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398) 고통은 감상적인 예술가들이 분투해야 할 무엇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들의 모든 정력 을 성스럽게 넘쳐나는 활동에만 바치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 로써 도출되는 것이다.

(402) 여러분이 만약 선과 악을 구분할 경우, 여러분은 예술을 잃는 셈이다.
예술은 도덕 너머로 나아간다.
여러분의 공감의 범위가 곧 여러분의 예술의 범위이다.

(405) 때로는 상징조차도 우리의 눈을 열어주지 않고, 오히려 닫아 버린다.
우리가 상징을 구체화하면 우리는 거기 집착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아름다운 세상에서도 우리의 대중적 종교 상징이 그 권위를 잃고 시들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상징들이 한때 지지했던 삶의 방식 역시 사라져 버리게 되었 다.

(409) 여러분 자신의 중심에서 살아가라.

(410) 여러분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자신이 주의를 집중하려는 신들에 상응하는 의식의 층 위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 여러분 안에 살고 있다.

(413) 삶의 경이와 수수께끼의 지고하고도 신성한 상징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 은, 삶의 괴물 같은 성격과 그런 특징에 있어서의 영광을 인식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이 원래의 모습이며, 이는 지금이나 나중이나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 닫는데 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 세상을 돕고 싶다면, 여러분이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은 어떻 게 그 안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한 지식에서 비 롯되는 즐거운 슬픔과 서러운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체득하지 못한 사 람은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415) 아버지의 나라는 지상에 펼쳐져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느니라.
귀환은 어디에서나 광휘를 목격하는 것이다.

(421) 어떤 것도, 신(神)조차 우리의 자아보다 더 크지는 않다.
공감 없이 걷는 자는 수의를 입고 제 장례식에 가는 자와 같다.

(423) 신은 (나와) 다르고, 또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고, [이처럼] 자신과 신을 다르게 생각 하고 숭배하는 사람은 그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니, 그런 자라면 신들의 짐승과 다 를 바 없다.

(425) 거대한 풍파 속에서도 신과 같은 침착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마 치 디오니소스가 표범에 올라타고도 갈가리 찢기지 않는 것처럼.

(426) 모든 신화가 삶을 현대의 삶에 맞도록 가공하기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만 하는 첫 번 째 조건은 한때는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이었던 우리 자신과 우주-우리가 곧 그 귀와 눈과 정신으로 작용하는-의 경이를 향한 지각의 문을 정화하는 것이다.

(427) 새로운 신화란 현재의 견지에서 시적으로 갱신되는 신화이다.
개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지식을 각성할 수 있게 호소하는 신화인 것이다. 즉 개인이 스스로를 이 아름다운 행성 표현의 특정한 장소를 얻기 위해 싸우는 자아로서 뿐만 아 니라 거대한 정신-각자 자기 나름대로, 모두와 (경계 없이) 하나가 되어-의 중심으로 서 각성하도록 호소하는 신화인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구성은 도입의 단계, 의식의 첫 번째 단계, 의식의 두 번째 단계, 의식의 세 번째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도입 단계는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져있으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압축되어 담겨있고 새로운 신화에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벗어날 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문구 하나 하나에 함축하여 보여 주고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누구나 현세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열등감, 나의 원함과 상관없는 외부의 압력,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사건들 등)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의 길로 가게 하는-진정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능성이며 단서가 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깨달음을 향한 길이다.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은 장소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라도 자신의 의식의 단계가 변화함으로써,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그리고 자신을 찾고 그 안에서 탄생을 촉진해야만 그것을 통해 진정한 안정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이다.
처음부터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규칙을 배우고 흡수한 다음에 거기에서 자발성을 이끌어내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의 중요한 통로는 다름 아닌 예술임을 여러 예들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작가는 우리 각자가 왜 신화의 여정으로 떠나야만 하는지를 위와 같이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 전체의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 문장으로 보이고 나에게 두근거림으로 다가온 문장은 다음 문장이다.
여러분도 방랑을 하게 되면, 당장 ‘그날 하루’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하되, ‘내일은 뭘 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해 둔 것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 그저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니까.
( 이 부분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을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어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
여러분의 공감의 범위가 곧 여러분의 예술의 범위이다.

이 책의 주요 주제 단어를 뽑으라면 ‘상징’과 ‘공감’이라고 생각된다. 상징에 관한 설명들은 잘 나타나 있으나 공감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나 설명에 대한 부분이 상징에 비해서는 빈약하게 보여진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보완하고 상징과 공감에 대한 캠벨의 생각들을 따로 묶어 정리하여 결론 부분에 첨부하였으면 읽는 사람들이 보다 명확한 개념들을 가져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참 난해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몇 번씩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나타날 때면 저의 이해력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신화’와 ‘인생’이라는 두 단어로 구성된 제목도 저에게는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새로운 신화를 쓰기 위해 이렇게 한걸음 내딛고 있는 저에게 드러내놓고는 하지 못해도 소심하게라도 격려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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