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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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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13시 54분 등록

▣4-1 리뷰: 신화의 힘(조셉 캠벨)

1. 저자에 대하여

처음 캠벨에 대한 신화와 인생을 읽었을 때는 그냥 말 잘하는 작가인가 보다 했으나 두번째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의 탁월함에 탄복한다. 특히 해박한 그의 지식과 입체적이고 균형있는 감각이다. 역사의 모든 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대단하다.

저자는 전방향적 사고를 한다. 그 정도가 매우 심오하다. 아마도 이런 것들은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보고 판단할 때,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그것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판단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관찰하는 능력이 있다.

저자는 신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를 들어 설명한다.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부서진 질그릇 부스러기 등을 예로 든다. 그러나 좀 더 설득력 있는 뭔가가 있어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 책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말하기 능력이 많이 부족하기에 책 읽는 순간 순간, 말하기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또한 글의 내용 전개에 대해서도 그 흐름이 매우 논리적이다. 나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다.

‘희열을 좇으라.’ 이것이 저자의 인생철학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희열을 좇으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각 개인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희열을 좇으며 사는 것인지를 찾아 내기가 쉽지 않다. 그 희열이란 것이 무엇인지 찾는다면 그 보다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는 ‘인생의 부정적인 면까지 포용하고 인정하라.’고 한다. 매우 긍정적이고 객관적이다. 과거의 모든 것을 거울 삼아 현재에 적용하고 미래지향적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9  참지혜는 사람들에게서 아득히 떨어진 채 절대고독 속에 은거하는데,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다.

28 "작가는 진실에 진실해야 한다."고 씁니다. 그러나 토니오가 진실에 진실하면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왜냐,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움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세상을 떠날 즈음의 석가가 어떠했습니까? 석가의 모습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완전한 모습이었습니다.

29 캠: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사랑스럽지요.
모: 그건 무슨 뜻입니까?
캠: 고통이라는거지요. 고통은 불완전한 존재만 체험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모: 인간적인 고통, 인간적인 분투, 인간적인 삶......

캠: ......거기에 그런 삶에 관한 지혜를 터득하는 젊은이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됩니다.

29 캠: ...... 삶의 의미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모: 그러니까 신화가 그 실마리라는 것이지요?

캠: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

30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31 모: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자기'를 알아보실 수 있습니까?

캠: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다, 하고 오는 게 있어요. 그러면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존재가, 이게 바로 그것이로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32 제대로 된 관계를 지닌 사람들이라면 자게네의 관계를 상호간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요. ~ 결혼이라는 관계르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중국에서 도를 나타내느 이미지를 보면,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이 서로 꼬리르 물고 상호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음양의 관계, 남성의 원리와 여성의 원리가 지닌 관계를 의미합니다. ~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34 젊은이들은 의례를 통하여 한 겨레 혹 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데,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의례를 베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이군요. 사실입니다. 모든 아이는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아이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38 전문화에는 전문가가 관심을 두는 문제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속성이 있어요.하지만 나같이 전문가가 아니 잡학가는 여기에서는 이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우고, 저기에서는 저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우기 때문에 문제를 일단 위에서 내려다 볼 줄 알지요. 그러나 내가 말한 그 전문가들은 어떤 현상이 왜 이 분야에서도 나타나도 저 분야에서도 나타나느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잡학가는 전문화한 문화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문제의 영역으로 뛰어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41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4 모:페요테 문화를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버팔로와 고유한 모습의 삶을 잃은 인디언들에게 두드러지게 보이는 현상 말씀입니다.

캠: ~ 임무야 말로 신비여행처럼 보입니다. 이 임무에는 신비여행인 전형적인 요소가 모두 고루 들어 있어요. 첫째, 거기에는 세속적인 삶과 유리되는 단계가 있어요. 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기가 실제 생활에서 저지른 과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백해야 한답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신비여행은 영험이 없어지지요.

이윽고 이들은 이 모험 여행의 문턱에 이릅니다. 이 여행의 도정에는, 일정한 구간마다. 정신적 변용의 단계를 나타내느 특별한 신당이 있어요. 이 신당을 모두 지나고 나면 이윽고 페오테를 모아 죽입니다.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과정은 내면여행과 관련된 체험의 복사판입니다. 이들은 이 의례의 각 단계를 영적인 변모와 정확하게 동일시합니다. 이들이 어디에 있든지, 이들이 있는 곳은 옛날과 다름없이 여전히 성지인 것이지요.

47 모: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변모시킬 수 있습니까?
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명상이라는 게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삶이라느 것은 곧 명상입니다. 그 명상의 대부분이 비의도적인 명상이기는 하지만요. 많은 사람이 명상이라는 것을 하기느 하되, 돈이 들어올 데, 돈이 나갈 데에 관해서만 명상을 합니다..

47 영적인 의식이라고 하는 걸 어디에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48 캠: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인간의 어마어마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현몽하고 이르렀다는 것을 압니다.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를 가르쳐 줍니다. 신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50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그 영화배우 자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극장에 나타난 겁니다. 복수현현의 마력을 통해 수많은 형상 중의 한 형상으로 거기에 나타난 겁니다. 한 형상이 수많은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 이거야말로 신비가 아닙니까?

57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쇄신하는 길뿐입니다.

61 신은 인간의 삶과 우주에 기능하는(개인의 육신과 자연에 기능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 혹은 가치 세계의 화신(化身)입니다. 신화는 인류 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운을 북돋우는 힘은 이 세계의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지요.

62 그런데 성서적 전승은 사회 지향적 신화학입니다. 여기에서 자연은 쫓겨납니다. 19세기 학자들은 신화나 의례를 자연을 통제하려는 기도(企圖)라고 생각했지요.

64 모이어스: 우리에게는 어떤 신화가 필요할는지요?

캠벨: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가 속한 지역적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64 먼저 왼쪽의 피라미드를 보세요. 피라미드에는 네 개의 측면이 있습니다. 네 개의 측면은 네 개의 꼭지점을 구성합니다. 이 꼭지점에는 누가 있고, 저 꼭지점에는 또 누가 있고, 다른 꼭지점에는 다른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는 너와 내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면 네 개의 꼭지점은 하나가 되어 만나고, 이 만나는 자리에는 활짝 열린 하느님의 눈이 있습니다.

70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 마음이 진리를 떠나 있지 않다면 진실을 말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진리를 떠나있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가다듬기만 하면 곧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71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우리는 서로 입씨름을 벌이는 두 패거리 중 한 패거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정점에 있는 눈의 원리를 상징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정치나 경제에 쏠려 있지, 더 이상 이성의 소리에는 쏠리지 않습니다.

71 캠벨: 인도(人道)가 열린 것이지요. 그런데 이성을 파괴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정치에서 열정은 곧 탐욕입니다. 탐욕은 인간을 타락케 합니다. 우리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지 않고 측면에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73 캠벨: 아니에요. ‘이성’이라는 말과 ‘생각’이라는 말부터 구분해볼 필요가 있겠어요.

모이어스: 이성과 생각이 다른 겁니까? 생각하는 사람이 곧 이성적인 사람 아닙니까?

캠벨: 그렇기는 하지요. 이성은 생각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사물에 관해서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성이 작용한다고 볼 수는 없어요.

73 존재의 바탕, 우주의 근본적인 구조를 고려에 넣고 무엇을 생각해야 비로소 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76 하지만 신화에는 네 번째 기능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어요.

78 나 내가 앞에서 말한 사회 역시 이 지구라는 사회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신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이어스: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거군요?

캠벨: 그렇지요. 그것이 바로 미래 신화의 바탕입니다. 그 바탕은 벌써부터 여기에 있어요. 내 나라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내가 속하는 종교 사회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내가 속하는 언어 집단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 아시겠지요? 이렇게 태동한 신화는 이 집단, 저 집단, 그 집단의 철학이 아닌 이 땅의 철학이 될 것입니다.

78 그 부족의 땅을 팔 것을 요구했을 때 시애틀 추장은 명문(名文)의 해답을 보냈지요. 이 서한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도덕의 문제, 진짜 도덕의 문제를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번 인용해보지요.

85~86 캠벨: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

모이어스: “어둠의 순간에 눈이 보기 시작한다”는 레트커의 시구처럼 말씀이지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신화가 바로 이 같은 의식을 선생님께 전해준 것 같은데요?

86 이러한 개념이야말로 확장된 인류의 꿈이고, 꿈은 서로 갈등하는 우리 몸속의 에너지가 이미지 형태로 현현한 것이지요. 신화는 우리 몸의 서로 갈등하는 각 기관의 에너지가 상징적인 이미지, 은유적인 이미지로 현현한 것이지요. 우리 몸의 각 기관이 갈등한다고 한 까닭은, 이 기관은 이것을 원하고 저 기관은 저것을 원하는 식으로 바람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두뇌도 이러한 기관의 하나입니다.

86~87 모이어스: 그렇다면, 꿈을 꾼다는 것은 신화라고 하는 대양에서 낚시질을 하는 것이겠군요?

87 우리는 고래 등에 서 있습니다. 만물의 바탕자리는 바로 우리존재의 바탕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세상 여기저기에 널린 온갖 잡사를 다 보고는 하지요.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세상 잡사의 근원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89 모이어스: 신화는 왜 꿈과 다릅니까?

캠벨: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89~90 범용한 사람도 자기의 길을 찾아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는 하나 기왕에 해석된 길을 반드시 벗어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영웅은 그렇지 않아요.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96 뱀이 무엇을 잡아먹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원형질적인 삶의 모습에 원초적인 의미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동물을 놓고 시비할 것은 없지요.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입니다. 이 상징적이고 역설적인 이미지들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신비입니다.

101~102 하느님은 이름과 형상 너머에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궁극적인 떠남, 최고의 떠남은, 하느님을 위한 하느님으로부터의 떠남, 모든 관념을 초월하는 경험을 위해 하느님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102 하지만 신화는 우리에게 이 이원성의 이면에는 일원성의 세계가 있어서, 대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음을 암시하지요. 시인 블레이크는 “영원이란, 시간의 산물에 대한 애정 속에 존재한다”고 했지요.

104 초월성이라는 것은 초월하는 것, 이원성을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105 캠벨: 바로 그겁니다. 신에 관한 참 놀라운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날 ‘자기’라고 하는 신이 “내가 있다”고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자기’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두려움을 느꼈더랍니다.

106 하느님은, 아담이라는 친구가 필경은 그 금단의 과실을 먹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금제를 깨뜨림으로써 아담은 자기 삶에 입문하게 됩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지요.

107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원형과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의식의 원형은 우리 몸의 각 기관과 그 기관이 지닌 힘의 드러남입니다. 원형은 생물학적인 바탕에 섭니다만,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의 삶의 과정에서 억압된 트라우마(정신적 상흔傷痕) 경험의 덩어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적인 무의식으로서 생리적인 것입니다만,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원형은 생물학적입니다. 생리적 원리는 생물학적 원리에 견주면 2차적인 것입니다.

114 캠벨: 중요한 지적이군요.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는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시 중에 자주 인용되는 시가 있는데, 이게 중국의 <도덕경>에도 나옵니다. 이렇습니다.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안다는 것은 실은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다.”

117 중요한 것은 우리 역시 내면을 향함으로써 그의 승천을 좇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알파요 오메가인 우리의 바탕자리로의 되돌아옴, 육신의 껍질을 버리고 육신 자체의 역동적인 바탕자리로 되돌아옴을 뜻하는 은유인 것입니다.

117 캠벨: 상징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독법(讀法)은 산문의 독법이지 운문의 독법은 아닙니다. 은유는 암시적 의미로 읽어야지, 명시적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117~118 내면의 세계는,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와 구조와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 외계는 우리가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자리가 바로 이 외면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 외면의 세계와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 노발리스가 말했듯 ‘영혼의 자리는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124 모이어스: 왜 미국 사회에서는 사제(司祭)가 샤먼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까?

캠벨: 사제와 샤먼의 차이는, 사제는 기능적이지만 샤먼은 경험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 전통에 따르면 이 경험을 추구하는 것은 수도사입니다. 사제는 사회를 섬기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고요.

124 캠벨: 정말 잃어버렸지요. 우리의 생각은 막연합니다. 언어적이고 단선적(單線的)입니다. 언어의 현실보다는 이미지의 현실이 훨씬 풍부한데 말이지요.

126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의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는 틀에 갇힙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촉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이것은 사물이 아닙니다)는 갇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을 하려고 함으로써 이것을 가둘 뿐입니다.

135 의례를 통해서, 사람들은 가장 은밀한 행위에 무리를 지어 참가하지요. 은밀한 행위가 무엇일까요? 삶에 필요한 행위, 즉 다른 생명을 죽여서 먹는 행위지요. 우리는 이런 짓을 무리지어 합니다. 그게 삶인 것이죠. 영웅이 이러한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절망이나 복수로서가 아닌, 자연의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삶에 참가한다는 점입니다.

145 의례의 중심적인 목적은 한 개인을, 그 개인의 육신보다 훨씬 큰 형태론적 구조에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145 사람은 죽임을 통하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이러한 행위와 관계 있는 죄의식이 있지요. 매장에도, 친구는 죽었지만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살 것이라는 의식이 반영됩니다.

145~146 자기 삶이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면, 회생 의례(回生儀禮)를 통해 흙으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어머니의 뱃속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내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회생 의례는 그 부족이 주식(主食)으로 하는 동물에 대해서만 치러집니다.

147 부시맨의 삶 및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과 들소의 관계로 보아 이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는 서로 숭배하는 관계, 서로 존중하는 관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부시맨은 아프리카의 사막에 사는 종족입니다. 이들의 삶은 대단히 고단합니다. 특히 사막의 환경 속에서 사냥은 대단히 힘에 겨운 일입니다. 사막에는 나무가 별로 없기 때문에 크고 강력한 활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시맨의 활과 화살은 아주 작습니다.

147 모이어스: 그렇다면 의례는 영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겠군요.

캠벨: 의례는, 나의 개인적인 충동 때문에 너를 죽인 것이 아니다, 이것도 다 자연의 법칙에 화합하는 행위다, 이런 뜻을 나타내고 있지요.

159 이 성당의 모든 이미저리는 신인동형동성의 형태를 취합니다. 하느님과 예수와 성자들이 모두 인간의 형상으로 그려지는 겁니다. 그런데 동굴에 그려진 이미지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은 같은 겁니다. 형상은 부차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형상이 전하는 메시지이지요.

모이어스: 그 암벽화의 메시지는 어떤 것입니까?

캠벨: 그 동굴에서 체험된 영원한 권능의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165 모든 사람이 의례적 삶에서 변모라는 주제는 상당히 근본적인 관심을 환기시킨 문제였던 것으로 보여요.

168 캠벨: 샤먼이겠지요. 샤먼은 남자든 여자든 소년기 후반, 혹은 청년기 초반에 심각한 심리적 격동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완전히 내면화해버린 사람입니다. 이 격동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적 해리 현상(解離現象)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샤먼의 무의식은 늘 열려 있습니다.

175 캠벨: 수많은 철학자에 의해 되풀이된 신에 관한 정의가 있습니다. 신은, 중심은 도처에 있으나 주변은 없는, 이해가 가능한(감각이 아닌, 마음으로만 이해가 가능한) 구체라고 하는 정의가 그것입니다.

177 캠벨: 사는 곳을 성화(聖化)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179 모이어스: 선생님께서는 저서 <신화 이미지>에서 변모의 중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지요. 변모의 중심은 현세의 벽이 무너지면서 우주의 경이가 드러나는 관념적인 성소(聖所)라고 하셨습니다만, 성소라는 말은 어떤 뜻으로 쓰셨습니까?

캠벨: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에게 절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179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抱卵室)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179~180 우리 천복(天福)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189 모이어스: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캠벨: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229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합니다. 보통, 영웅의 모험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 자기 동아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모험에 뛰어들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상실한 것, 혹은 생명의 불사약 같은 것을 찾아 헤맵니다. 영웅의 모험에는, 출발과 귀환 사이에 일종의 주기가 있지요.

223 유태 전승에 나오는 영웅은 무서운 시험을 겪어야 보상을 받지요.

캠벨: 여기에서 핵심은,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낼 수 있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없습니다.

234 캠벨: 있지요. 그런 보상 성격의 성취가 없으면 영웅 신화가 아니지요. 물론 실패하는 영웅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은 자기가 성취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는 광대 영웅인 셈이지요.

지도자는 성취가능한 어떤 선을 인식하고 그것을 성취시킨 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맥에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239 모이어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어쩌면 영웅의 기질이나 자격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캠벨: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우리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이하의 무엇으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305 캠벨: 모든 종교 이미지와 신화 이미지는 우리의식의 차원, 인간 정신에 잠재해 있는 경험의 장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미지가 존재의 바탕자리의 신비에 대한 명상 상태와 비슷한 자세와 경험을 촉발합니다. 어머니가 양친 중의 으뜸자리에 속하고, 삶의 근원인 종교 체계도 있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자식과 더 가까이 있는 분입니다.

311 캠벨: 우리 삶의 근원이 무엇인지, 우리 몸, 우리 육체의 형상과 이 만물을 짓는 에너지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알아내어야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가 없는 몸은 살아 있을 수가 없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몸에서 나오는 삶이고, 무엇이 에너지와 의식에서 나오는 삶인가를 느끼고 있지 않아요?

320 캠벨: 석가도 같은 의미에서, 어머니의 가슴 챠크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모이어스: ‘챠크라’가 무슨 뜻이지요?
캠벨: 가슴 ‘챠크라’라고 하는 것은 가슴과 관련된 상징적 중심이지요. 챠크라는 ‘원’, 혹은 ‘영역’이라는 뜻이지요.

335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캠벨: 옛날에는 스승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그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즉 옛날의 스승들에게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삶의 단서를 줄 의무가 있었지요. 그래서 사제들이 있었고, 의례라는 게 있었던 겁니다. 의례의 집전은 곧 신화의 ‘연출’입니다. 우리는 의례를 통해서만 신화적인 삶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그런 체험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341 캠벨: 하지만 아모르적 사랑 역시 종교적 충동이 될 수 있어요. 결국 음유시인들은 아모르를 가장 고귀한 정신적 경험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아시겠지만 에로스의 체험은 일종의 사로잡히기예요. 인도의 사랑의 신은 활과 화살통을 든, 덩치가 우람하고 힘이 좋은 청년이랍니다. 이 화살은 ‘죽음의 고통이 따르는 고뇌’ ‘개안’ 등으로 불리지요. 이 사랑의 신이 쏜 화살에 맞으면 누구든 육체적·심리적 폭발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와 달리 아가페적인 사랑은 이웃을 내 몸처럼 대하듯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349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

캠벨: 바그너는 트리스탄에게 그런 말을 하게 하지요.
모이어스: “나의 사랑이 있어야겠다, 나의 인생이 있어야겠다”, 이런 뜻이겠지요.
캠벨: 그렇지요. “이거야말로 내 인생이다, 내 인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달게 견딜 수 있다”, 이런 거지요.

375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감탄하는 것은 신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참여하고 있는 순간에 이 사람은 이미 존재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377 모이어스: 우리의 인생은 어디에서 옵니까?
        캠벨: 우주의 생명인 궁극적인 에너지 에서 오지요.

392 중심을 찾아 자기 마음을  거기에더 두자는 것이다.

414 옴이라는 것은 우리귀가 들을 수 있는 만상이 체현하는 우주 에너지의 소리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뼈대는 잘 짜여진 듯하다.

목차 구성을 1.신화와 현대 세계 2. 내면으로의 여행 3.태초의 이야기꾼들 4.희생과 천복 5.영웅의 모험 6.조화여신의 은혜 7.사랑과 결혼이야기 8.영원의 가면으로 하고 있다. 그 흐름이 매끄럽고 좋다.

대담 형식으로 내용 전개하는 스킬이 대단하다.

감동적이었던 구절 몇 개를 기술한다.

“범용한 사람도 자기의 길을 찾아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는 하나 기왕에 해석된 길을 반드시 벗어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영웅은 그렇지 않아요.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이런 삶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현실에서 자기 자신이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그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것도 아니다. 약간은 알아주겠지만 말이다. 이런 것이 사회가 성숙되어야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것은 안 될 것이다. 성숙되기 이전에 누군가가 해야 성숙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참지혜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 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고 한다.

버리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것, 매우 어렵다. 또한 고통스러워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마음의 성장, 성숙시키는데.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지금보다 나중을 위해서 말이다.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 라고 한다.

고통의 깊이가 더할수록 그 빛은 더욱 발할 것이다. 다만 그 암흑을 어떻게 빛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것은 각 개인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달려있다.

특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아직은 이런 수준의 책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하고, 그저 읽기에도 급급하다. 좀 더 빨리 글쓰기에 대한 안목을 성숙시켜 날카롭게 지적해 내고 보완책을 내 놓으리라.

IP *.142.21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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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은주
2010.04.05 15:42:15 *.219.109.113
선생님 인희님은  제일 먼저 컬럼과 북리뷰를 올렸었으나
선생님 말씀하신 곳에 올리지 않아 다시 올리시느냐고 시간이 늦은 것입니다.
지각 아닙니다.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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