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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5일 01시 18분 등록
 

한시미학산책

          정민지음/ 휴머니스트출판

 

1. 저자에 대해서

  <한시 미학 산책>에 시마(詩魔), 시귀(詩鬼)라는 말이 나온다.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는 정민교수는 아마도 ‘글마’가 붙어있다고 생각한다. 출간하는 책마다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정민교수를 두고 우리시대 최고의 ‘인문교양 글쟁이’로 꼽는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고전을 가장 모던한 감각으로 재편집하고 포장하여 내놓는 한문학자이자, 국문학자이다.  

  처음으로 정민교수의 저서 <죽비소리>를 읽으면서 화들짝 놀랐다. 고전을 현대의 문장으로 쉽게 풀이해 놓은 것에 놀랐고, 지겹지 않고 재미있음에 또 한 번 감동했다. 고전은 무조건 어렵고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놓았다. 정민교수의 문장은 간결하고도 명쾌하다. 그만큼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읽는 이로 하여금 문장을 베끼고 싶게 만드는 마력도 있다.

  오늘 한양대 인문대학 정민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그 유명한 둥그런 원기둥 모양으로 된 2단 파일 정리대가 보였다. 정리대에 수백 개의 파일이 꼽혀있었다. 파일마다 정민교수가  직접 쓴 제목들이 하나한 붙어 있다. 이것은 정민교수의 재산 목록 1호로 알려져 있다.

-교수님, 반갑습니다. 다섯 해 전인가 고암선생님의 작업실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신 것 같습니다. 풍경소리 원고 때문에 몇 번 메일을 주고받은 것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먼저 저 정리 파일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민교수; 저는 이 파일정리대를 ‘씨앗 창고’라고 부릅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아이디어와 1차 자료를 정리해서 파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가편집 상태인 것도 있고요.

-파일 정리방법을 조금만 공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정민교수; 궁금해지면 곧 글 쓰는 아이디어로 발전하게 됩니다. 몇 개 챕터로 쓸 것인지,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인지, 정리한 메모와 추가한 자료들을 어떻게 편집할 것인지를 다 기록해놓죠. 외국의 책을 보고도 벤치마킹하는 경우도 많아요. 물음이 생기면 곧바로 메모를 시작하여 제목을 정하고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지 목록을 잡니다. 그리고 관련된 스크랩 자료나 복사물도 파일에 다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책으로 발전합니다.

-이제까지 한시와 한문학을 전공으로 하면서 스타가 된 필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는지요?

정민교수; 과찬의 말씀입니다. 1996년에 <한시미학산책>을 썼어요.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시전문지 <현대시학>에 연재한 것인데, 예상 외로 일반대중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죠. 그때부터 인문학적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어요. 관점을 조금만 달리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가까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우리 고전은 무궁무진한 보고(寶庫)입니다.

-교수님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은 널리 알려져 있어요. 교수님의 글을 읽다보면 리듬감이 느껴져서 책 읽는 것이 힘들지 않아요.

정민교수; 저는 학생들에게 형용사와 부사를 최대한으로 줄일 것, 그리고 접속사를 쓰지 않고 문장을 나누라고 합니다. 저는 글의 리듬과 언어의 경제성을 중시합니다. 자신이 쓴 글은 낭독을 하라고 합니다. 소리 내어 세 번을 읽어보는 것이 제 퇴고의 방법 중 한 가지입니다. 읽다가 막히면 그 부분은 문장이 잘못 된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을 글쓰기의 스승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민교수; 연암의 글은 한 군데 못질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없는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느껴져요. 그의 글은 문학이야기, 예술론과 인생론, 시대를 향한 신랄한 풍자와 우언, 우정에 얽힌 담론 등 다양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연암을 만나 생각하는 방식, 글쓰기 습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배웠어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은 제목으로도 우리 사회를 한 번 뒤집어 놓았어요.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을 남발할 정도였어요. 책에 미친 이덕무이야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린 책, <미쳐야 미친다>에 관해서 좀 들려주세요.

정민교수; 그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한 글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허균,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김영 등 이런 사람들은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라 중심에서 비껴간 마이너 혹은 안티들이었어요. 처참한 가난과 절망, 신분의 차별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미친 듯이 살았던 그들 내면의 삶을 복원해주고 싶었지요. 예술이 곧 삶이 되고 삶이 곧 예술이 되는 그들의 삶은 나를 홀리게 만든 마력이 있었고, 나에게 화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무척 바쁘실 것 같아요. 이 많은 책들을 언제 집필하시는지요?

정민교수; 저는 자투리 시간을 잘 이용합니다. 지하철 속에서도 작업이 이루어지지요.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있기도 하고요.

-교수님과 인터뷰하기 위해 개정판으로 나온 <한시미학산책>을 읽고 왔어요. 그곳에 시인들의 시마(詩魔)와 시벽(詩癖), 시귀(詩鬼) 등 낯선 단어들이 등장했고, 굉장히 매혹적인 단어들이었어요. 저는 교수님은 ‘글마’에 들려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민교수; 사람들이 저보고 타고난 글쟁이라고 합니다. 기분 좋은 말이죠. ‘글마’라는 말도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힘든 작업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하지만, 전 글쓰는 일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교수님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 가득이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정민교수; 앞으로도 전 고전의 숲속에서 거닐 것이고 그것에서 길어 올린 글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대중들과의 소통의 문제,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는 계속 고민해야 할 저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옛것과 새것의 단절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단절을 잇고 소통시키는 것이 이 시대 학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소개해 주세요. 승승장구를 기원합니다.

   정민교수 프로필; 1960년 충북영동출생. 한양대 국문과 졸업. 지금은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저서로는 <비슷한 것은 가짜다>,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죽비소리>, <다산어록청상>,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꽃들의 웃음판>등을 출간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1.첫 번째 이야기 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미학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빛깔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崖)>- 저 까마귀를 보라. 깃털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하지만 홀연 유금(乳金)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를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까마귀는 본디 정해진 색깔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버린다. 어찌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겠는가.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버린다.(17페이지)

***까마귀의 색깔 속에 감춰진 많은 빛깔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연암은 이렇게 시인에게 죽은 지식이나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17페이지)

***생취(生趣)나 생의(生意)가 없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사물의 심장부에 곧장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 몽롱한  시선으로는 안된다. 시인은 천지현황의 나태한 습관을 거부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선입견에 붙박여 간과하고 마는 까마귀의 날개빛깔을 살피는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동하는 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비의(秘儀)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의 미학이다. (18페이지)


영양이 뿔을 걸듯


***시인은 천기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스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고 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는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다. 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다. 이치와도 관계가 없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다.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시라는 것은 성정을 읊조리는 것이다. 성당(盛唐)의 여러 시인들은 오직 흥취에 주안을 두어, 영양이 뿔을 거는 것과 같아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 묘한 곳은 투철하고 영롱하여 꼬집어 말할 수가 없다. 마치 공중의 소리와 형상 속의 빛깔, 물속의 달, 거울속의 형상과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

***시에는 별재(別才)와 별취(別趣)가 있다. 사변적 지식이나 논리적 이치만으로는 결코 시의 비밀에 접근할 수가 없다. 사변적 지식이나 논리적 이치만으로는 결코 시의 비밀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만 있으면 되는가? 엄우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언어에 끌려다니지 말고 언어를 주재하라는 주문이다. 시인이 한번 사변의 늪에 빠져들면 생취는 간데없고 진부한 관념의 시체들만 뒹굴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구호다. 표현의 기교에 지나치게 빠져도 안된다.(19~20페이지)

***언어를 매만지며 단어들의 질량을 느끼는 일은 시인의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에 지나친 집착은 시인의 정신을 본질 아닌 말단으로 쏠리게 된다. 그 결과, 시인의 정신은 간데없고 가공된 언어만 판치게 된다.(20페이지)

***영양이 뿔을 건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는 본래  선가(禪家)의 비유로 <전등록>에서 설봉존자의 말로 전해진다. 영양은 뿔이 둥글게 굽은 양이다. 잠을 잘 때 외적의 해를 피하기 위해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잔다고 한다. 그래서 영양의 발자취만 보고 따라가다가는 어느 순간 발자취는 끊어져버리고 영양은 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시인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양의 발자취일 뿐이다. (20페이지)

***발자취가 끝난 곳에서도 영양은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정작 시인이 전달하려는 의미는 문면에 있지 않고 글자와 글자의 사이, 행과 행의 사이, 혹은 아예 그것을 벗어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영양의 발자취에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통발에 걸려들어서는 안된다.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안된다.(20페이지)

***흥취(興趣)를 지닌 시는 어떤 시인가. 그것은 투철하고도 영롱하여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나 형상 속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색채, 물속에 찍힌 달, 거울 속의 형상은 모두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물속의 달은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흔들려 사라지고 만다.  달의 실체는 하늘에 떠있고 물은 그 실체를 투영할 뿐이다. 공중으로 퍼져가는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물속에 녹아있는 소금은 어떤가. 다만 짠맛으로 소금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을 뿐,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다. 흥취 또한 이와 같다. 시인의 정신은 저만치 허공에 떠있고 언어를 통해 수면 위에 그 정신이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다. 한편의 훌륭한 시는 독자에게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들지 않는다. (21~22페이지)

***종을 치면 종소리는 긴 파장을 내면서 허공으로 퍼져 나간다. 이렇듯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듯 해서는 안된다. 범종의 소리와 같은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22페이지)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假託)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단전 위를 맴돌다가 끊임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시인의 입과 손을 빌려 언어로 형상화될 분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 일뿐이다. 따라서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작접 다 말해서는 안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표면적 진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엄우의 말대로 영양의 발자취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실ㄹ 읽을 자격이 벖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단어와 단어가 만나 부딪치는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취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23페이지)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한시는 이미지의 구성이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유장하다. 그로 인해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누구나 알 수도 없다.

***홍양호는 <질뢰(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렛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못 듣는다.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못 본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고 속인은 왕도와 패도, 의(義)와 이(利)를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 사람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마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靈覺)에 있다.


두 번째 이야기-그림과 시  사의전신론(寫意傳神論)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전통적으로 서로 연관이 깊다.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란 말도 있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한다.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37페이지)

***유성의 <형설총설(螢雪叢說)>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한번은 그림대회에서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라는 화제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희한한 요구였다.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로 나비 떼가 뒤쫓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서 향기가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39페이지)

***동양화의 화법에는 ‘홍운탁월법’이란 것이 있다. 수묵으로 달ㅇㄹ 그릴 때 달은 희므로 색칠할 수 없다. 달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달만 남겨둔 채 그 나머지 부분을 채색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그리는 방법이다.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법도 이와 같다. 성동격서(聲東擊西)란 말처럼 소리는 이쪽에서 지르면서 정작은 저편을 친ㄴ 수법이다. 나타내려는 본질을 감춰두거나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42페이지)


말하지 않고 말하기


***화가가 그리지 않고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 공통의 정신이 있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와 꼬리만 보일 뿐 몸통은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 글자도 덧붙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는 말이 있다.

“단지 경물을 묘사했는데도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고도 말한다.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건네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전달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는 말이 나왔다. (43페이지)

***시인은 할 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을 통해 말한다는 것이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한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로움에 젖어들게 해야 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한 자신의 감정을 죽 늘어놓는다면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44페이지)

###시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요점을 콕 집어서 말해 놓았다. 모든 예술이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절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있으면서 독자들을 흥분시키고 선동하고 감동케 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것이 내 글쓰기의 한계임을 한다. 쓰지 않고 보여주는 글을 연습해야 한다.

 

***두보의 유명한 <춘망(春望)>이란 시이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

봄 성엔 초목만 우거졌구나.

시절 느껴 꽃 보아도 눈물이 나고

이별 한해 새소리에 마음 놀라네.


<춘망>을 지은 당시 두보는 안녹산의 난리 중에 반군의 손에 사로잡혀 경성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만신창이가 된 종묘사직과 도탄에 바진 백성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에 젖어들게 했다. 그는 이러한 감개를 흐드러진 봄날의 경물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45페이지)


***서거정의 <홀로 앉아 獨坐>란 작품이다.

홀로 앉아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1구

빈 뜰엔 비 기운만 어둑하구나.-2구

물고기 흔드는지 연잎이 건듯-3구

까치가 밟았는가, 가지 뒤채네.-4구

거문고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5구

화로는 식었건만 불씨 남았네.-6구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막으니-7구

온종일 문을 닫아걸고 있으리-8구


일견 속세를 떠나 칩거하고 있는 은사의 유유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인 듯하다. 하지만 속사정을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5, 6구를 보자.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한 거문고와 싸늘하게 식은 화로가 등장한다. 거문고는 비 기운에 잔뜩 머금어 소리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퉁겨보니 듯밖에 소리가 난다. 화로는 손을 대어버니 싸늘하여 불씨가 모두 꺼진 줄로만 알았다. 막상 헤집어보니 불시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는 왜 갑자기 거문고와 화로로 화제를 돌렸을까. 소리가 안 나는 거문고와 불씨가 꺼진 화로는 제 기능을 상실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소리가 안 날줄 알았는데 나고, 불씨가 없을 줄 알았으나 남아있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여도 그 안에는 아직 쓸모를 간직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이 거문고와 화로의 원관념이 바로 시인 자신인 것을 알게 해준다. (48~49페이지)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형호(荊浩)의 화론(畵論)을 보면 “장수는 목이 없고, 여인은 어깨가 없다.”란 말이 나온다. 이것은 그림을 그릴 때 장수의 기상은 목이 없는 듯 짧게 그리는데서 드러나고, 미인의 가녀린 모습은 어깨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린 곡선을 통해 강조된다는 말이다. (50페이지)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어서는 안된다. 그 대신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식견을 길러야 한다.(53페이지)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실린 시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가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났다. 선녀가 적강한 듯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그만 발길이 얼어붙었다. ‘넋은 이미 그대에게 빼앗겨버리고 나는 빈 몸뚱이만 남아 문에 기대섰노라’는 시를 즉석에서 서서 그녀에게 보냈다.


            마음은 미인 따라가고 있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소.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



 늙은 나귀는 등에 태운 미인도 무겁다고 연신 가쁜 숨을  씩씩 몰아쉰다. 그런데 여기에 한 사람의 넋을 더 얹었으니 나귀만 죽어나게 생겼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녀의 대답은 기실 ‘나를 향한 그대의 마음을 접수했노라’는 의미다. 그대의 눈길에 내 마음도 철렁 내려앉았고 그 내려앉은 무게만큼 노새만 더 무거워 괴롭겠다는 멋들어진 응수다. 일상적인 예상을 벗겨가는 이러한 비약에는 참으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예술적 매력이 넘쳐흐른다. 글자는 스무 자에 지나지 않는데,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감정과 씩씩대는 나귀의 숨소리, 그와 함께 커져가는 두 사람의 맥박 소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지 않은가. (53~54페이지)


정오의 고양이 눈


***호리(毫釐)의 차이가 천리의 현격한 거리를 낳는다.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속에 예리한 관찰과 예술가의 정신이 없다면 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56페이지)

*** 화가가 형상을 핍진하게 묘사하거나 시인이 대상을 방불하게 묘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거기에 정신을 담는 일이다. (59페이지)

***송나라 진욱은 <설부(雪膚)>에서 이렇게 말했다.(59페이지)

  “대개 형상을 그릴 때는 반드시 정신을 전해야 하고, 정신을 전하려면 마음을 그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군자와 소인이 모습은 같지만 마음은 다른데, 귀하고 천하며 충성스럽고 사악한 것을 어찌 스스로 구별하겠는가? 겉모습이 비록 닮았다 하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을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청나라 원매가 <속시품(續詩品)>에서 이렇게 말했다. (60페이지)

  “용모에 부족함이 있는지라 분을 바르고 연지를 칠한다. 재주가 부족하므로 전고를 끌어다 쓰고 책에서 찾는다. 옛사람의 문장이라고 해서 다 잘 된 것은 아니다. 꾸며서 웃고 거짓으로 슬퍼하는 것이라면 나는 광대일 뿐이다. 이에 미인을 그려도 사랑스럽지 않고, 난초를 그려도 향기가 없게 된다. 그 연유를 헤아려보면 진정 나타내려고 한 것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대교약졸(大巧若拙)-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런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던지는 한 마디가 예리한 비수처럼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린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잇지 않은 그림은 이발소 그림, 목욕탕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과 똑같이 그려진 영화관의 간판은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가끔 그 기교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과 기술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66페이지)


세 번째 이야기-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像盡意論) 


   왜 사냐건 웃지요


***예전 중국의 곽휘원 이란 사람이 먼 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보니 달랑 백지 한 장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71~72페이지)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편지지엔 아무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아하! 우리 임이 이별의 한 품으시고

      말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73페이지)

  

   어이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고 대답 아니 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가거니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 백아의 절현(絶絃)은 지음(知音)이던 종자기(鐘子期)의 죽음때문이었다. 백아가 물 흐르는 것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곁에서 “강물이 넘실대는 것 같군.”이라고 했다. 산을 오르는 것을 생각하면 종자기는 또한 그 마음을 그대로 읽었다. 그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평생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수선조>란 시의 서문에는 백아가 처음 성련에게서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련에게서 3년을 배운 백아는 연주의 대체를 터득하였다. 하지만 정신을 텅비게 하고 감정을 전일하게 하는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성련은 “내가 더 이상은 가르칠 수 없다. 내 스승 방자춘이 동해에 계시다”하고는 그를 따라오게 하였다. 봉래산에 이르러 백아를 남겨두고 “내 장차 내 스승을 모셔오마.” 하고는 배를 타고 떠나가 열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백아는 너무도 슬퍼, 목을 빼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단지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 숲은 어둡고 새소리는 구슬펐다. 그때 백아는 문득 스승의 큰 듯을 깨달았다. 그는 하늘을 우르러 탄식하며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장차 내게 정을 옮겨주신게로구나.” 그러고는 거문고를 당겨 노래를 불렀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깨달음은 말로는 가르쳐줄 수가 없다. 마음으로 깨달아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이른바 심수상응(心手相應)이다. 성련은 마지막 단계에서 나아가 백아가 강렬한 바람을 가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말로는 도저히 전해줄 수 없었던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최후의 심법을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76~77페이지)

*** “지붕에 올라간 다음에는 누가 좇아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치워야 한다. 유용한 진리는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움베르토 에코가 한 말이다.(77페이지)


내 혀가 있느냐?

***서진(西晉)의 구양건은 <언진의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금에 이름을 바로잡으려 힘쓰고 성현이 말을 능히 떠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진실로 이치를 마음에서 얻어도 말이 아니면 펼 수가 없고 사물을 말에 고정시켜도 이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가 제 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가 없다.

***큰 가르침은 사람마다 일깨워 가르칠 수 없다. 본래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알아듣고 모를 사람에게는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준댔자 더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81페이지)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소문쇄록>에서 한적시(閑寂詩)의 대표적 예로 들고 있는 목은 이색의 작품이다.


               차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갠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남은 해 문을 깊이 닫아걸고서

               맑은 새벽 나 홀로 뜰을 걸으리.


서늘해진 가을 밤, 추위를 못 이긴 고양이는 자꾸 사람 곁을 찾아들고 하늘 높이 제비는 강남 가는 길을 서두른다. 시인은 고양이와 제비를 끌어와 가을이 깊어감을 말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고양이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외롭고 춥기야 고양이나 나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뭇잎이 지듯 모든 것들은 훌훌 떠나버리고 남은 생에도 하잘 것없어 사라비문을 닫아걸었다. 닫아건 사립 안에서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거니는 시인의 심사는 안으로 잔잔한 서글픔과 허탈함을 담았으면서도 새벽 공기처럼 맑고 깨끗하다. 그러나 세상과 어그러져 닫은 사립문은 밖에서 열기 전에는 스스로도 열 수가 없다. 사립문 속에서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고, 치열한 갱신이 있다. (86페이지)


***임억령의 <자방에게>의 셋째 수이다.


     해묵은 절 문 앞에서 또 한 봄을 보내니

     남은 꽃 비를 따라 내 옷 위에 점을 찍네.

     돌아올 제 맑은 향내 소매에 가득하여

     무수한 산벌들이 먼 데까지 따라오네.


봄이 떠나는 옛 절 문 앞에서 시인은 봄비에 젖어 숲을 걷는다. 간ㄴ 봄과 지는 꽃잎, 거기에 어우러진 이끼 긴 옛 절의 모습. 비는 내리고 걷는 옷깃 위로 자꾸 묻어나는 꽃잎. 이러한 몇 개의 겹쳐진 장면 속에 봄을 보내는 울적한 심사는 어디에도 없다. 꽃잎이 묻은 소매라서 맑은 향기가 가득하고 벌은 꽃으로 오인하여 잉잉대며 쫓아온다. 가는 봄에 져버린 꽃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어 벌을 몰고 돌아오는 것이다.....꽃잎이 묻은 소매로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는 인식의 갱신에서 시인은 몰아의 희열 속으로 빠져든다.(88~89페이지)

### 봄이 되면 읊어보고 싶은 시이다. 소매에 가득한 향기에 취하여 따라오는 산벌들의 묘사가 마음에 든다.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송나라 때 관사복은 스스로 와운선생이라 부르며 전원에 묻혀 살았던 사람이다. 인종이 그를 불러 물었다. “경이 전원에 살며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가 시로 대답했다.


           둔덕 가득 흰 구름 갈아도 끝이 없고

           못 속의 밝은 달은 낚아도 자취 없네.


           섬돌 쓰는 대 그림자, 먼지는 그대로요

           못을 뚫는 달빛에도 물에는 흔적 없네.


           푸른 바다 배 간 자취 찾기가 어렵고

           청산에는 학 난 흔적 보이지 않는구나.


시란 이와 같은 ‘진공묘유’의 세계와 닿아있다. 무언가 꼬집어 말하면 사라져버리는 느낌,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노래한다. 효용가치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저편에서 울려오는 떨림, 그 떨림의 미묘함을 소중히 여긴다. (90페이지)

###시인은 효용가치가 없는 것에 목을 매고 사물을 관찰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시인은 이 세상을 맑게 하는 정화 역할을 한다. 


***명나라의 사진은 그의 <사명시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를 지을 때 실제와 똑같은 것은 마땅치 않다. 아침에 나가 멀리 바라보면 청산의 아름다운 빛이 은은하여 사랑스럽고, 안개와 노을은 변화무쌍하여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보면 별반 기이한 경치가 아니고, 오직 바위 덩어리와 몇 그루 나무뿐이다. 멀고 가까움에 본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묘는 어렴풋함에 있으니 그 속에서 비로소 솜씨가 드러난다.” (91페이지)


네 번째 이야기-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당시와 송시


작약의 화려함과 국화의 은은함

***송대의 유명한 화가 곽희는 그의 <임천고치>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산수의 안개와 이내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 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워 마치 웃는 듯하고 여름 산은 자욱이 푸르러 물방울이 듣는 듯하다. 가을 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하고 겨울 산은 어두침침하고 희미하여 잠자는 듯하다.”(97페이지)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날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봄 산이 좋아도 여름 산의 짙푸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 산의 조촐함과 겨울 산의 담박함은 또 그것대로의 매력이 잇다.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므로 꼬집어 어느 산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97페이지)

***시인이 독자에게 무언인가를 말하는 시는 이해가 쉬운 반면 보여주기만 하는 시는 무슨 말인지 갈피잡기가 쉽지 않고 자칫 추상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보여주기만 하는 시는 시인의 의도는 단지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므로 독자의 적극적인 독시(讀詩)가 요청된다. 말하는 시가 좋은지 보여주는 시가 좋은지는 순전히 읽는 이의 기호에 달린 것이다.(98페이지)


당음, 가슴으로 쓴 시

***당시는 가슴으로 쓴 시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웃음과 눈물이 있어, 마음으로 전해오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하다. 이에 반해 송시는 머리로 쓴 시이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관조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망이 잇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고원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에서 서정 함축을 중시하고 의흥(意興)이 뛰어난 실ㄹ 당음(唐音)이라 하고 생각에 잠기고 이치를 따지며 유현한 맛을 풍기는 시를 송조(宋調)라고 일컬어왔다. (103페이지)


***조선 중기에 당시풍의 대가로 손꼽힌 이달의 <양양곡>이다.


             평호 긴 둑 서편으로 하루해가 기울고

             꽃 아래 놀던 이들 취해서 비틀대네.

             다시금 교방의 남쪽 길로 나서려니

            집집 골목마다 백동제 가락일세.


평호는 중국 남방에 잇는 아득히 넓은 호수다. 호숫가로 끝도 없이 긴 방북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장엄한 봄날의 하루해가 저문다. 꽃놀이 나온 벗님들은 거나하게 술에 취해 걸음을 가누질 못한다. 그들은 다시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교방 남쪽 길로 비틀대는 걸음을 옮긴다. 거리거리마다에선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넘친다. 백동제는 중국 남조 때 민가의 가락이다.

장엄하리 만큼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 속에 그려지는 젊음의 낭만은 관념 속에 남아있는 태평성대에 대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낭만적 상상은 일그러지고 부조리한 현실의 모슴에서 자아를 멀찌감치 떼어넣아 정서적 정화와 일탈을 경험하게 한다. 이달의 시는 언어로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은 서구 낭만주의 시들이 그려 보이고 있는 이국정서의 표출과 다를 것이 없다. 상상의 화면으로 그려낸 평호의 긴 둑은 곧 윌리엄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104~106페이지)



송조, 머리로 쓴 시

***대체로 송시(宋詩)는 이 시기 발달한 선종(禪宗)과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음미를 내용으로 하는 경향이 짙다. 또 쓸데없는 수식을 배제하고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제재상 일상생활에의 관심과 밀착이 두드러진다. 이에 따라 시의 공용성은 더욱 강조되었고, 표현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서술적이 되었다.


***송나라의 어느 비구니가 지은 <오도시>이다.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아직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머리 구름 위로 가보았지.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어느새 와 있었네.


그녀는 하루종일 봄을 찾아 온 산을 헤맸다. 산꼭대기 구름 위에까지 가 보았지만 봄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친 그녀는 생각을 접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코끝에 매화의 향기가 스쳐오는 것이 아닌가. 정작 봄은 자기 집 뜰 매화가지 위에 와 있엇더 것이다.

봄을 찾으려고 온 산을 헤매는 것은 도를 깨닫고자 구도의 행각에 나섬을 뜻한다. 그녀는 온갖 고행을 무릅쓰고 일념으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온 산 어디에도 없는 봄처럼 도의 실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집착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위의 시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떠올리게 한다. (112페이지)


다섯 번째 이야기-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의 정운미


버들을 꺾는 마음

***당나라 때는 벗과 헤어지며 버들가지를 꺾어 이별의 정표로 주는 풍습이 있엇다. 그래서 절류(折柳) 즉 버들가지를 꺾는다는 말에는 앞서 본 남포와 마찬가지로 이별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버드나무는 꺾꽂이가 가능하기에 이별의 신표가 되었다. 신들은 버들가지를 가져다 심어주면 뿌리를 내려 새 잎을 돋운다.9125페이지)

***고려 때 시인 김극기의 <통달역>이라는 시다.

             내 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이별의 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숲 아래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 매미가 소리 끌며 오른다는 구절이 마음에 꽃혔다.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당나라 두목의 <가을 저녁> 이라는 시다.

               은촉불 가을빛에 그림 병풍 차가운데

               작은 비단 부체로 반딧불을 치누나.

               하늘가 밤빛이 물처럼 싸늘해도

               견우와 직녀성을 오도카니 바라보네.


가을밤의 애상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방 안에는 은촉불이 타고 화사한 그림 병풍이 둘려 잇다. 그녀는 손에 가벼운 비단 부채를 들었다. 한 눈에도 매우 넉넉한 귀족풍의 규방이 떠오른다.

가을부채는 한시에서 으레 ‘버림받은 여인’을 상징한다. 부채는 더운 여름날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다. 하지만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이 오면 여름내 애지중지하던 부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힌다. 마찬가지로 한 때 내내 그토록 다정하던 임은 어느덧 나를 까맣게 잊고 돌아보지 않으신다. (130~131페이지)


난간에 기대어

***한시에서 ‘무제’를 표재로 내거는 것은 마땅히 붙일만한 제목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목을 붙이지 않은 채 오히려 독자의 적극적인 독시를 요구하기도 한다. (137페이지)


이해 못할 <국화 옆에서>

***어떤 시인이 부른 노래가 사람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깊은 공감ㅇ르 일으키면 이것이 자주 여러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특정 단어 위에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정운이 얹힌다. 지금까지 살펴본 남포, 절류(折柳), 추선(秋扇), 의루(倚樓), 문적(聞笛) 등이 다 그런 예들이다. 한시에는 이런 정운이 풍부한 어휘들이 많다. 한시의 언어 특정상 이러한 어휘들은 시가 언어의 함축을 더욱 유장하고 깊이 있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시 감상에서는 이러한 어휘를 바로 알지 못하면 시를 전혀 엉뚱하게 곡해할 염려가 크다.(140페이지)


여섯 번째 이야기-즐거운 오독 모호성에 대하여


개가 짖는 이유

***시인은 결코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다. 여운을 즐기려는 까닭이다.(156페이지)


****박지원의  시 <지독한 추위 極寒>이다.

               북악의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게 변했다.

               송골매 지나가자 숲은 겁먹고

               학 울음에 저 하늘이 새파래지네.


어지간히 추운 날씨였던 모양이다. 멀리 북악산은 매운 날씨에 창끝을 세운 듯 삐죽 솟았고, 맞은 편 남산의 소나무는 질리다 못해 숫제 검은빛을 띠었다. 안 그래도 추워 움츠림 판에 송골매 한 마리가 숲 위를 선회하자 숲은 병아리 떼처럼 겁을 먹고 목을 움츠린다. 팽팽하다. 그 팽팽한 긴장을 깨뜨리며 학은 청아한 목을 배어 허공을 운다. 그 소리에 하늘은 얼음장에 쨍하고 금이 가듯 더 푸르러진다. 턱이 덜덜 떨리는 추위이다.

스무 글자 어디에도 춥다는 말은 없다. 그저 경물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제목마저 없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해질 법하다. (161~162페이지)

###나는 엄청나게 추위를 타면서도 겨울을 좋아한다. 추운 기운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어 좋고,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마음을 한껏 움츠려 있어도 괜찮다. 추위를 “북악의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이렇게 표현한 것이 놀랍다. 박지원답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코드를 독자가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진진한 지적, 감성적 여정이어서 때로는 오독도 즐겁다. 시인은 부러 말꼬리를 흐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독자는 잠시 멍해 있다가 닷 코드를 찾아 나선다. 설사 길을 가다가 길을 잠시 잃은 들 어떠랴. 아니 애초부터 길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9172페이지)


일곱 번째 이야기-사물과 자아의 접속 정경론(情景論)


묘합무은, 가장자리가 없다


***명나라 때, 사진은 <시명시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景)은 시의 매개이고 정(情)은 시의 바아다. 이 둘이 합하여 시가 된다. 몇 마디 말로 만 가지 형상을 부려서 원기가 혼성하니 그 넓음이 가없다.”

무심히 경물과 마주하여 마음 속에 정이 일어난다. 경이 저의 매개가 되는 까닭이다. 가슴에 자욱한 정을 품고 경을 바라보면 무심한 경물이 내 마음의 빛깔로 물든다. 정은 경에 의미를 불어놓는 배아인 셈이다.


***조선 중기 송한필의 <우연히 읊다 偶昑> 이다.

      

      간밤 비 맞아 꽃을 피우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슬프다 한바탕 봄날의 일이

      비바람 가운데서 오고 가노매.


꽃을 피운 것은 간밤의 비인데, 꽃을 떨어뜨린 것은 오늘 아침 바람이다. 참 얄궂다. 겨우내 씨눈을 아끼고 망울을 부풀려 어렵사리 꽃 피운 보람이 무색하다. 시인은 이를 가련(可憐)으로 압축했다.

한 봄의 일이 비바람 가운데 오간다. 우리네 인생도 풍파 속에 덧없다. 아름다운 자태를 봄낼 겨를도 없이 허망하게 진 꽃잎이 세사에 어디 한 둘이겠는가? 바람은 언제나 단 데서 불어온다. 그 심술을 탓하기엔 꽃잎의 힘이 너무 여리다. 떨어진 꽃잎을 보고 정이 촉발되어 ‘일춘사’가 일생사로 확장되었다. 뭔가 행간이 있는 시다. (183페이지)

### 폭풍우 속에 있는 인생사를 봄날의 꽃에게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든다. 이런 시들은 많다. 하지만 정민교수의 맛깔 나는 해석이 더 마음에 들어서 한 번 써보았다.

*** 팔백 곡 후추를 쌓아두다니

    어리석음 천 년 두고 비웃는도다.

    어이하여 벽옥으로 됫박을 삼아

    종일토록 명주 구슬 되고 또 되나.

.....벽옥 됫박은 다름 아닌 푸른 연잎이다. 무수한 빗방울이 맑은 구슬로 넓고 푸른 연잎 위를 덱데굴 구른다. 옥구슬이 꽤 모여 묵직해지면 그제야 흡족해서 기우뚱 연못 위로 말구슬을 쏟아붓는다. 구슬을 되는 됫박은 하나 둘이 아니다. 수면 위로 나온 연잎마다 뒤질세라 됫박질이 한창이다. 종일 비는 내리고 이제 연못은 그렇게 주워 담은 구슬로 가득하다. (186~188페이지)

***육시옹은 <시경총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을 잘 말하는 자는 말이 깊은 듯 얕고 드러날 듯 감추어져서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한다. 경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생략한 채 약간만 보태도 참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넘쳐난다.” 시시콜콜한 묘사를 버리자 경이 한층 살아난다. 사실 녹아든 정과 경의 경계를 갈라 구분해내기는 쉽지가 않다. (189페이지)

###시에만 해당되는 글이 아니다. 산문도 이렇게 드러날 듯 감추어지게 써야 감칠맛이 나고, 독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다.

***시인이 아무리 경만 말해도 그 속에 어느새 정이 녹아든다. 시인은 눈앞의 여러 대상 중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춘다. 렌즈야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초점을 맞추는 시인의 선택에 감정이 스민다. 시 속에서는 어떤 경물도 포착과 동시에 주관의 색채로 물들고 만다.(197페이지)


여덟 번째 이야기-일자사(一字師)이야기 시안론(詩眼論)


뼈대와 힘줄


***시안(詩眼)은 글자 그대로 시의 눈알이다. 시안은 시에서 가장 정채롭고 시인의 정신이 집약된 지점, 하나만 건드려도 나머지가 따라 움직이는 일동만수(一動萬隨)의 경락이다. 시안은 단순히 수사적으로 지구를 단련하는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시가 예술의 의경미(義境美)를 형성하는 핵심처인 것이다. (210페이지)

***  고려 때 승려 시인 충지의 <한가한 중에 짓다 閑中雜詠>란 작품이다.


       발 걷어 산 빛을 끌어들이고

       대통 이어 냇물 소리 나누는 도다.

       아침내 오는 사람 아무도 없어

       두견새 혼자서 이름 부른다.


산사의 고즈넉한 봄날을 노래했다. 아침에 일어나 주렴을 걷자 호나한 산빛이 끌리듯 내게로 온다. 대나무 통을 이어온 시냇물은 맑고 청정한 소리를 내며, , 내 들에 좌르륵 쏟아진다.

아무도 찾지 않는 봄날, 두견새가 아침부터 불여귀(不如歸)! 불여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212페이지)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대통을 흐르는 물소리와 두견새 울음소리가 화들짝 놀라게 한다. 읊어보고 싶은 시이다.


한 글자의 스승


***당나라 때 시승(詩僧) 제기가 <일찍 핀 매화 早梅>라는 시이다.(214페이지)

   

   나무들 모두 얼어 꺾이려 해도

   외론 뿌리 따뜻함을 홀로 품었네.

   앞마을 답쌓인 깊은 눈 속에

   간밤에 몇 가지나 꽃을 피웠나.

   바람도 그윽한 향기를 품고

   새들은 흰 꽃송이 엿보는 구나.

   먼저 피어 봄 누대를 환히 비추렴.

###한시는 모르지만,  매화를 좋아하기에 한 번 베껴보았다. 바람과 새도 매화가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여 독자도 모르게 매화 피기를 기다리게 된다.

시안과 티눈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말했다.

“글을 일러 조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서는 틀림없이 예술적인데, 막상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 체험에서 나온 까닭이 있는 말이다. (229페이지)

###마치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마음이 그리고 있는 글은 멋진데 밖으로 표현되어진 것은 형편없음에 참으로 실망하고 낙담하였던 그 밤들이 생각난다.

***최자(1188~1260)는 <보한집>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시 조탁을 두보처럼 한다면 묘하기는 하다. 다만 솜씨가 거친 자는 애만 태우다 만다. 각기 타고난 재주에 따라 있는 그대로를 토해내어 조탁의 흔적이 없는 것만 못하다.”(229페이지)

***시인은 시안(詩眼)을 연마할 때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시안은 시안을 감추는 장안(藏眼)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통찰력이 없이 그저 남의 눈이나 놀라게 만드는  수사적 기교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231페이지)


아홉 번째 이야기-작시, 즐거운 괴로움 고음론(苦吟論)


예술과 광기

*** 대상을 향한 미친 듯 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쳐야 미친다. 비록 하찮은 기예라 해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 비로소 성취를 말할 수 있다. 예술의 천재들에게는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광기가 있다. 그들 안에서는 열정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느껴진다.(235페이지)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춤을 추든 자신의 기예를 대중 앞에 선보이려는 사람은 이 글귀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미치지?

***이징은 조선 중기의 이름난 화가다. 천대받는 화공이 되는 것을 싫어해 집안에서 그림을 못 그리게 했다. 그는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없어지자 집에서 난리가 났다. 사흘 만에 다락에서 내려왔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볼기를 쳤다. 이징은 매를 맞으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찍어 새를 그렷다. 이를 본 아버지가 그에게 그림공부를 정식으로 허락했다. (235페이지)

***사광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악사였다. 그는 소리를 듣는데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눈을 찔러 소경이 되었다. 예술도 이쯤 되면 이르러 간 경지를 측량할 길이 없게 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면 잗다란 기교쯤은 가맣게 잊어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영욕도 득실도 생사까지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된다. (237페이지)

###미치지 않으면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가 어렵다. 무엇을 해도 미친 듯이 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 공부도 미친 듯이 해야 하고, 사랑도 미친 듯이 해야 하고, 사업도 미친 듯이 해야 한다. 예술이야 말할 것도 없다. 내 혼을 바치지 않으면 세상 역시 나에게 보내는 눈빛이 심드렁하다.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한유는 <정요선생묘지명>에서 맹교의 시를 두고 “시를 지을 때는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하였다.”고 했다. 실제 맹교는 한 편의 좋은 시를 지을 수만 있다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달게 여겼을 시인이다. (243페이지)

  

   밤새 읊어 새벽까지 쉬지 않으니

   괴로이 읊음 귀신조차 근심하리라.

   어이해 한가로이 잇지 못하나

   마음이 몸과는 원수 되었네.  -맹교-


맹교는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시를 위해 살았던 시인이다. 시를 빼면 그의 삶에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목숨을 걸고 시를 썼다.(244페이지)


가슴속에 서리가 든 듯

***두목은 시작의 괴로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시 읊는 괴로움을 알고 싶은가

          가슴속에 가을 서리 서린 듯하네.


시로 태운 가슴이 얼마나 뜨거울까마는, 그간의 고초를 생각하면 차라리 가슴 속에 차디찬 가을 서리를 품은 듯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전혀 엄살이나 과장으로 비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냉혹하리만치 준엄했던 옛 시인의 시정신 때문이다.(250페이지)


***황중칙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강개(慷慨)한 기운 부족함이 스스로 안타까워

            얼어붙은 하늘 향해 일부러 말 달렸네.


자신의 시에 비분강개하는 기상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시에 그러한 기상이 스미게 하려고 꽁꽁 언 추운 하늘을 향해 말을 타고 내달리는 자학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듯 미친 듯한 몰두 끝에 얻어진 시이고 보니 시에 대한 애착이 유난스러울 것은 당연하다.

###<미쳐야 미친다>고 했듯이, 열정과 광기를 바치면 글에도 그대로 드러나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감탄하게 된다. 모든 일에는 열정이 필요하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

***송자경이 매요신에게 말했다. “나는 예전 지은 글을 볼 때마다 보기 싫어 불태워버리고 싶어진다네.” 매요신이 기뻐하며 말했다. “자네의 글이 진보하는 것일세. 나의 시도 그렇다네.” 매요신은 아예 <시벽詩癖>을 제목으로 한 시를 남겼다. (252페이지)

   

    인간의 시벽이 돈  욕심보다 더하니

    애 졸이며 시구 찾다 몇 봄을 보냈던고.

    주머니 빔 상관 않아 가난은 변함없고

    시 읊어 새 시구 많은 것만 기뻐했네.

    괴롭게 층층 하늘 만져보려 했을 뿐

    곤궁 속에 저승 갈일 따지지도 않았다.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짓자, 사람들은 그가 고치지 않고 단숨에 지은 줄 알았다. 막상 이를 짓느라 버린 초고가 수레 석 대에 가득하였다. 그 사이의 고심참담이야 따져 무엇 하겠는가. <사문유취>에 나오는 말이다.(252페이지)

###‘수레 석 대 분의 초고’라는 말에 놀랐다. 명작으로 인정받으려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의 글이 별로 인정받지 못함은 노력이 부족함을 알아야 한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말했다.

“대체로 사람의 정신을 피폐케하고 진기를 소모하게 만드는 것은 시라는 마물(魔物)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간혹 감흥이 일어날 때 짓는 것은 괜찮겠지만 어찌 남을 따라 내 심신의 알맹이를 손상시키겠는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 시인이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표현 욕구를 옛사람들은 기양(技癢)이란 말로 표현했다. 양은 가려움증을 말한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이 잇다. 이런 가려움은 어떤 연고나 내복약으로도 못 고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표현욕’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기양이다.(253페이지)


개미와 이

***정약용은 <오학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장학은 우리 도(道)의 커다란 해독이다. 문장이란 무엇인가? 문장이란 허공에 걸려 있고, 땅에 퍼져 있으니, 어지 바람을 보고 달려가 붙잡기를 바라겠는가?”

 또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는 글은 한평생 읽ㄱ고 외워본들 슬프고 우울하기만 하지, 천하와 국가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문학의 해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정약용은 실학자이다. 실용이 없으면 무용으로 치부하는 정약용의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학을 두고 무용하다고 하는 것에 실망했다. 문학, 음악, 시, 미술 이런 것들이 팍팍한 우리의 삶에 여유와 향기를 주는  숨구멍 같은 것들인데.

***이이는 <이물세고서>에서 “말이란 것은 소리의 정채로운 것이고, 문사란 것은 말의 정채로운 것이며, 시란 것은 문사의 배어난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시는 또 인간의 언어 중 가장 빛나는 금강석이다. 사실 세상에는 쓸모만으로 따지면 맥 빠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른바 예술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지도 못한다.(258페이지)

***당나라 때 시의 융성은 약간은 미친 듯한 열기와 목숨을 건 집착속에서 이룩되었다.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두 눈을 바늘로 찌르며, 심장을 다 토해낼 듯, 가슴속에 찬 서리가 든 듯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들은 오직 시를 위해 살았고, 시를 위해 일생의 심력을 쏟아 부었다. 

###두보는 오십이 넘어서 자신의 몸 어디 의탁할 때가 없어 떠돌면서 더부살이를 하였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전쟁으로 늙은 이 몸은 망가져, 버려진 물건 같은 백년인생,  가는 곳마다 길이 막혔구나...”라고 한탄하는 시를 남겼다. 지금은 시성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의 삶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곤궁하고 고통스러웠다.

  지금도 날마다 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잡지마다 시가 넘쳐난다. 하지만 낙루의 감격은 고사하고 수염을 꼬는 고심의 흔적조차 찾지 못할 시가 수두룩하다. 정신은 간데없이 껍데기만 남은 시가 너무도 많다..... 그 고심참담의 결과를 앞에 놓고 독자들은 마음의 위로를 얻고 삶의 깊은 의미를 읽는다. 시가 인간 언어의 정채로운 금강석이든, 아무 짝에 쓸모없는 해독이든 시는 시다. 금강석이 될지 독약이 될지는 오로지 시인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다.(258페이지)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바친 노력이야 그 누가 알겠는가? 독자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모두 다 시인의 고뇌와 고심(苦心)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재주 없음을 너무 탓하지 말자.


열 번째 이야기 - 미워할 수 없는 손님 시마론(詩魔論)


즐거운 손님, 시마


***시마는 시 귀신이다. 시마는 어느 순간 시인에게 들어와 살면서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를 생각하게 하고 시만 지게 하는 귀신이다. 시마가 한 번 붙으면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된다. 더욱이 짓는 시마다 절창 아닌 것이 없다. 시마는 시인에게 즐거운 괴로움을 선사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263페이지)

***시마는 시인에게 제멋대로 들어왔다가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리는 재미난 귀신이다. 일단 시마가 붙으면 잠시도 시를 떠나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시마가 훌쩍 떠나가면 시를 짓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 뿐 아니라 제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시를 지을 수 없게 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마(魔)가 많이 낀다는 말이다.....시마가 붙고 나면 그냥 하는 말도 모두 기가 막힌 시가 되지만 시마가 떠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말이다.(264페이지)


*** “........ 나를 아는 사람은 시선(詩仙)이라 여겼고, 나를 알지 못하는 자는 시마(詩魔)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왜냐고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괴로운 줄도 알지 못하니 시마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백낙천이 <원구에게 주는 편지>중 일부이다. (265페이지)


시마와의 논쟁과 시마 증후군


***한나라 대 양웅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었다. 평생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가난’으 축출을 시도한 글이다. 먼저 ‘가난’을 불러내어 인생을 이렇듯 고달프게 만드는 연유를 따져 묻고 계속해서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은 뒤, 지체 말고 ‘썩 물러갈고 호통을 친다. 기세가 자못 등등하다. 이에 ’가난‘이란 녀석이 나타나더니 물러가는 것은 좋으나 자신도 할 말이 있다며 반발한다.

  “추위를 견디고 더위를 참아내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주었고, 걸(桀)이나 도척(盜跖) 같은 탐학의 무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기상을 길러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겹겹이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나 그대는 홀로 툭 터진 곳에서 살게 했고, 남들은 근심에 싸여 지내나 그대만은 근심이 없게 하였다. 이것이 나의 공로가 아닌가.”(266페이지)

###가난이 할 말이 이렇게 많다니..... 듣고 보니 가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한 것도 아니다.

***이규보는 시마가 자신에게 들어온 뒤 나타난 이상 증세를 이렇게 적었다.

  “네가 오고부터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주림과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몸에 파고드는 줄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재산 많고 벼슬 높은 사람을 깔보며 방자하고 거만하게 언성을 높여 겸손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면박을 주면서 남의 비위를 맞추지도 못하고 여색에 쉬 혹하며 술을 만나면 행동이 더욱 거칠어진다. 이 모든 것이 다 네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길을 가면서도 시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시 생각, 심지어 꿈에서까지 시 생각뿐, 그 밖에 다른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지는 증세, 예의와 염치, 체모조차 우습게 보는 태도, 눈에 띄는 사물마다 허투루 보지 않고 거기에 담긴 비밀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드는 증상이 이른바 ‘시마 증후군’이다. (269페이지)

###명작을 남기고 싶다면 시마가  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정안수를 떠놓고 빌면 시마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시마의 죄상


***이규보는 <구시마문>에서 시마의 다섯 가지 죄상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첫째,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는데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다.

둘째, 천기를 누설하면서도 당돌하여 그칠 줄 모르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다.

셋째,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을 닥치는 대로 남김없이 옮겨내서 겸손할 줄 모르는 죄다.

넷째, 제멋대로 상주고 발주며, 정치를 평론하고 만물을 조롱하여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죄다. 비위에 거슬리면 공격부터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곤룡포 없이도 임금으로 꾸며주며, 미운 사람은 칼 없이도 찔러대니 무슨 권리로 상벌을 멋대로 하는가.

다섯째, 목욕을 싫어하고 머리 빗기를 게을리 하며 공연히 끙끙대고 인상을 써서 온갖 근심을 불러들이는 죄다. (270페이지)

###시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을 들고 앉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를 한 곳으로 몰입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나물에 밥 비벼 먹고, 허술하게 입고 다녀도 별로 부끄러운 줄 모른다. 남들 보기엔 재미없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 쓰는 속에 남모르는 재미가 있다.

***시인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시로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날카로운 예지로 드러나지 않은 사물의 깊이를 파헤쳐 사람들의 인식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준다. 사물을 관찰하여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고 세속의 질서나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시를 통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 겉모양의 꾸밈을 우습게보고 한 편의 훌륭한 시를 창작하기 위한 고초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결국 시마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272페이지)

###우리 모두는 시인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정지상의 시이다.(279페이지)

  밝은 해 중천에 환히 떴는데

  뜬구름 봉우리 모양을 짓네.

  스님 보면 절 있을까 의심하겠고

  학이 보곤 솔이 없음 아쉬워하리.

  번개는 나무꾼의 독 자루요

  우레는 숨은 절의 종소리일세.

  산이 안 움직인다 누가 말했나

  저물녘 바람 맞아 날려 가는데.


###바람에 날려 산이 먼 곳으로 둥실둥실 날려간다는 이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친다.






슬픈 일 좀 있어야 겠다

***배부르고 따뜻함 속으로 시마는 깃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함을 시마는 혐오한다. 무언가 결핍된 상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죽창처럼 곤두서 있는 지점에서 시마는 슬그머니 시인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시인은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283페이지)

###좋은 글, 불후의 명작을 남기려면 글마와 슬픈 일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슬픈 일없이는 명작을 쓸 수가 없고, 선뜻 슬픔을 선택하자니 그 슬픔의 깊이와 크기가 두렵기도 하다. 아 어쩌란 말인가? 나 정도의 곤궁함이라면 능히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젠 매진하는 것밖에 길이 없는 것 같다.


열한 번째 이야기-시인과 궁핍 시궁이후공론詩窮而後工論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한유가 <송맹동야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물건은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운다. 초목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운다. 물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움직이면 운다. 솟구치는 것은 부딪치기 때문이요, 달리는 것은 막는 까닭이며, 끓는 것은 불로 덥히기 때문이다. 금석은 소리가 없으나 이를 치면 소리가 난다. 사람의 말 또한 그러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은 뒤에야 말하게 되니, 노래에 생각이 담기고 울음에는 품은 뜻이 있다.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불평함이 있기 때문이다.”(287페이지)

###바람과 물도 마음을 닫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건드리면 곧 바로 반응을 한다. 마음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기에 말 대신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세상을 향한 불평을 마구 쏟아 내어라. 금강석처럼 정채롭고, 단단한 글들로. 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는지를 자신에게 절실하게 물어라. 무르익은 그 답을 바다에 그물을 던지듯 세상을 향해 던져라.


***한유는 <형담창화시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화평한 소리는 담박하고, 근심이 담긴 소리는 아름답다. 더들썩 즐거운 말은 공교하기 어렵고 곤궁한 말은 쉬이 좋다. 이런 까닭에 문장을 짓는 것은 늘 길 위의 나그네나 초야에 묻혀 사는 인사에게 있었다.

왕공이나 귀한 신분의 사람에 이르러서는 기운이 가득 차고 득의한지라, 타고난 성품이 원래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여기에 힘슬 겨를이 없다.”(287페이지)


***천지는 만물이 다 좋게만 하는 법이 없다.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뿐이다.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구름은 쉬 흩어진다. 사람에 이르러서도 그러하다. 기특한 재주와 화려한 기예가 뛰어나면 공명이 더나가서 함께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치가 그러하다. (288페이지)

###우리는 뿔이 있고 이빨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날개가 있고 다리가 네 개이기를 원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우주 천지의 기운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러했을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의 우주천지는 어쩐지 한 곳으로 몰아주는 느낌이다. 다 갖춘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구조라고 해야 할까.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박지원의 <답창애>라는 글이다.(289페이지)

  “그대가 태사공의 <사기>를 읽었다고는 하나, 글만 일고 그 마음은 제대로 읽지 못했구려.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사움 구경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진시황을 축으로 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을 주었다고 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발은 반쯤 꿇고 두발은 비스듬히 들어,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잡았다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리지요.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의 책을 저술할 때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마천의 글솜씨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글을 지을 때 품었던 마음자리를 얻는 것이다.

###사마천은 제후들과 전쟁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도 그 사람이 처해 있는 그 마음자리를 살피려 애썼다. 사마천 역시 그들을 만나본 일이 없기에 많이 상상하고 그리면서 글을 쓰는 동안 그들을 마음에 품어보려 많이 애썼을 것이다. 연암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은 <태사공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291페이지)

 “옛날 서백은 유리(유里)에 구금되어 <주역>을 풀이하였고, 공자는 진채에서 곤액을 당하여 <춘추>를 지었다. 굴원은 쫓겨나 <이소>를 지었고, 좌구는 실명한 뒤에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가 잘리고 나서 병법을 논하였고, 여불위가 촉땅으로  옮기고 나서 <여람呂覽>이 세상에 전한다. 한비자는 진나라에 갇힌 채 <세난>과 <고분>을 지었다. <시경> 삼백편은 대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바다. 이분들은 모두 듯에 맺힌 바가 있으나 이를 펼쳐 풀어버리지 못한 까닭에 지나간 옛일을 서술하여 장차 올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시화를 보면 유난히 시인과 곤궁(困窮)의 관계를 설명한 예화가 많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시가 궁해진 뒤에 더 좋아진다는 논의와 시능궁인(詩窮窮人),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한다는 관념으로 나뉜다. (294페이지)

***나는 세상 사람들이 시인은 영달함이 적고 궁함이 많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어재서 그런가? 세상에 전해지는 시는 옛날 곤궁한 사람의 말에서 나온 것이 많다. 선비가 식견을 쌓아두고도 세상에서 펼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산꼭대기나 물 밖에 놓아두고 즐기는 경우가 많다.......대개 궁하면 궁할수록 더욱 공교해진다. 그렇다면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궁해진 뒤에 공교해지는 것이다. (295페이지)

***허균은 <손곡산인전>에서 시인 이달의 시를 이렇게 평했다.

  “평생 몸 붙일 곳도 엇이 사방으로 유리걸식하여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궁색한 액운으로 늙은 것은 실로 시 때문이었다. 다만 몸은 곤궁했어도 썩지 않을 시가 남았으니, 어지 한때의 부귀로 이 이름과 바꾸겠는가?”(296페이지)

###이달도 이 말에 수긍할지 모르겠다. 한 편의 시 혹은 소설, 한 장의 그림과 부귀영화를 바꾼 예술가들은 너무나 많다. 그들은 과연 역사에 이름 하나 올린 것으로 행복해 할런지 궁금하다.

*** 이들은 궁했기 때문에 좋은 시를 남길 수 있었다. 한편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시를 씀으로 해서 곤궁을 더욱 가중시키거나 지속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시를 통해 곤궁을 수는 있었지만 털어버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곤궁을 털어낼 기회가 와도 스스로 이를 박차기까지 했다. 이때 시를 창작하는 행위는 삶에 대한 올곧음을 견지함과 같고 시를 포기함은 현실과 타협하거나 타성에 야합하는 것을 뜻한다.(296페이지)

###시인은 가난하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을 비롯한 문인들은 대개가 가난하다. 최근에 우연히 사주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장사하면 돈 좀 벌겠느냐’고 물었더니 사주에 ‘문기(文氣)’가 들어있어 장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글을 쓰면 이름도 나고 책으로 돈 좀 벌겠다”고  했다. 내 사주에 문기가 들어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명과 금을 얻겠다는 말 만큼 기분 좋은 예언이 어디 있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허공에 걸렸다. 

*** 명나라 왕세정은 <예원치언>에서 시능궁인의 합당함을 지적하고 아울러 ‘시인의 아홉 가지 곤고한 운명을 나열하였다.

 “옛사람이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 실정을 헤아려 보면 진실로 합당한 점이 있다. 무릇 가난하고 늙고 근심하고 병들고 떠돌거나 귀양살이 하며 타관에 머무는 것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 속에 들어오면 아름답게 변한다. 옛날의 뛰어난 시인을 두루 살펴보니 진실로 온전하게 마친 자가 적었으므로 이를 위해 구슬피 탄식하고 숙연히 두려워하였다. 지난 번 동인들과 함께 장난삼아 문장의 아홉 가지 운명을 만들어보았다. 첫 번째는 빈곤이고, 두 번째는 시기함이며 세 번째는 과실이며, 네 번째는 좌절당해  고생함이다. 다섯 번째는 쫓겨나 귀양감이고 여섯 번째는 형벌을 당함이다. 일곱 번째는 요절함이고 여덟 번째는 끝이 안 좋음이며, 아홉 번째는 후사가 없음이다.”(305페이지)

***시인은 탄탈로스와도 같은 존재다. 맛있는 음식과 샘물을 앞에 두고도 영원한 갈증과 갈망 속에서 헤맨다는 탄탈로스! 시인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308페이지)


열두 번째 이야기-시는 그 사람이다 기상론(氣象論)


시로 쓴 자기소개서


***문여기인(文如其人),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고 한다. 무심히 내뱉는 말 속에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난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314페이지)

***당나라 때 시인 이군옥의 시다.

         

         나그네는 긴 밤을 새우고

         외로운 절 빗소리 듣는 가을밤.

         동해 물의 깊이를 재어봅시다.

         내 근심과 어느 것이 깊고 얕은지. 


***고려 예종 때 정습명은 기이한 재주와 넓은 도량을 지녔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패랭이꽃>이란 작품을 지어 자신의 심정을 기탁하였다. (316~318페이지)


세상사람 보란을 사랑하여서

동산에 가득히 심어 기르네.

뉘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떨기  피어있음을

빛깔은 시골 방죽 달빛 스미듯

언덕 나무 바람결에 향기 풍기네.

땅이 후져 공자님네 오지를 않아

고운 자태 농부의 차지 된다네.


세상사람은 너나없이 모란을 사랑한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모란을 아끼는 것은 꽃이 아니라 부귀를 사랑함이다. 붉고 농염한 자태, 동산 가득 대접을 받으며 호사롭게 피어난 모란. 부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황량한 들판 가운데에도 못지 않게 어여쁜 꽃떨기가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른다. 패랭이꽃! 달빛이 밴 듯한 고운 빛깔, 언덕 너머 바람은 그 은은한 향기를 불어간다. 눈길 주는 이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바람에 혼자 하늘대는 패랭이꽃. 이 고운 자태를 보기만 하면 공자님네도 다투어 제동산 가운데 심어놓자 하련만, 이 황량한 벌판을 그들이 왜 찾겠는가.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길 가는 농부의 무심한 눈길에 답할 뿐이다.

이 글은 자기추천서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황량한 들판에 알아주는 이 없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나르는 패랭이꽃의 고결한 자태를 이야기할 뿐이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고려 때 시인 최해의 <현재의 눈 오는 밤>이다.(319페이지)

          세 해이 귀양살이 병마저 들고 보니

          한 칸 집의 살림이 도리어 스님 같다.

          눈 덮인 사방 산에 사람은 오지 않고

          파도 소리 속에서 앉아 등불 돋운다.


호방하여 얽매임 없는 기상과 재주를 지녀 오만했던 최해는 당시 장사감무라는 한직으로 쫓겨나 있었다. 궁벽한 산 속에서 지낸 세 해 동안의 삶은 평소의 자부와 기개 때문에 죽고 싶으리만치 괴로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완전히 잊힌 느낌, 아무 쓸모없이 버려진 듯한 생가에 그는 잠을 못 이룬다.....매서운 겨울바람은 집채만 한 파도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기세다. 시인은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애꿎은 등불 심지만 자꾸 돋운다. 돋우지 않으면 꺼지고 말 심지. 끝만 남은 심지는 마치 버틸 힘조차 없는 자신의 투영이다. 굳이 곧추앉아 그는 심지를 돋운다. 잠 멋 이루는 것은 온 산을 뒤덮을 만큼의 무게로 두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근심, 잊힘에서의 절망 때문이다. 가물거리는 등불을 꺼드리지 않으려 함은 혹 누군가 이 밤에라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해서였을까?

***<적벽부>에서 소동파는 이렇게 노래했다.(321페이지)

“하늘과 땅 사이에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나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도 취하지 말일이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이를 얻어 소리가 되고, 눈은 이를 보아 빛깔을 이루나니, 이를 취함이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주의 다함없는 곳집이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서산대사의 <임종게>이다.(329~330페이지)

         천만가지 하고 많은 생각이라야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로다.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더니

         대지가 허공에서 찢어지더라.


평생 끌고 다닌 천만가지 todr가들. 이 생각들이 번뇌가 되고, 번뇌는 긑이 없어 고해속을 헤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나 활연개오(豁然開悟)의 한 소식을 얻고 보니, 까짓 번뇌는 붉게 달아오른 화로 위로 떨어진 한 점 눈송이일 뿐이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니 대지가 갈라지고 허공이 짖어진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어찌 물속을 걸어가며 물속을 걸을 진대 그 소가 온전할까. 통쾌한 깨달음의 경계를 저벅저벅 물살을 가르고 돌진하는 서슬에 견주었다. 또 천지가 뒤집히고 허공이 갈라지는 경천동지로 전미개오의 무애경을 표현했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시는 곧 그 사람이다. 알려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언어가 제 스스로 말해주는 사실이다. 언어가 그 사람의 기상을 대변한다는 것은 그 연원이 깊다. 무심히 뱉은 말이 씨가 되고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시화에 자주 보이는 시참(詩讖)이 바로 이를 말한다. 시인은 모름지기 가슴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을 일이다. 떳떳함을 길러야 한다.(332페이지)


열세 번째 이야기- 씨가 되는 말 시참론(詩讖論)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지봉유설>에는 예전 중국의 유명한 기생 설도가 어렸을 때 지었다는 우물가 오동을 읊은 시를 소개했다. (336페이지)

      가지는 지나는 새 마중을 하고

      잎새는 오가는 바람 배웅하누나.


설도는 본래 양가의 달이었다. 우물가 오동을 읊었다는 것이 하필 오가는 새를 다 맞이하고 지나는 바람마다 잘 가라고 전송한다고 했을까?


형님! 그자 갔습니까?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든다. 한 구절의 시만 봐도 그 사람의 궁달을 점칠 수가 있다.(339페이지)

***정태화(1602~1673)가 평안도 관찰사가 되었다. 당시 지은 춘첩(春帖)의 끝 구절에 이런 것이 있다.


     관서 땅 늙은 수령 한가해 일 없는데

     봄바람에 취해 눕자 분홍 꽃잎 점을 찍네.


늙은 수령이 일이 없어 한가로우니 태평시절이 아니고 무엇인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취흥이 도도하다. 슬쩍 기대 눕자 꽃잎이 날려와 옷깃 위에 분홍 수를 놓는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이 시는 무한히 좋은 기상이 있으니, 정태화가 40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이 모두 이  한 연 가운데 있다고 했다. <수촌만록>에 보인다.  정태화는 당시 격랑의 조정에서 전후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이다.


***소년 시절 뛰어난 재주가 있었던 최전이 관동 땅을 유람하면서 시를 지었다. (342페이지)


    봉래도 한 번 든 지 삼천 년이 흘렀어도

    은빛바다 아득하고 물결은 맑고 얕다.

    난새의 피리 속에 오늘 홀로 돌아오니

    벽도나무 꽃 아래에 보이는 사람 없다.


홀로 돌아왔지만 보이는 사람 없단ㄴ 말이 시참이 되어 그는 나이 스물 남짓에 요절하고 말았다. 시어에 자못 귀기가 서려 있다.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이렇게 말했다.(354페이지)

“만물을 빚어내어 형체를 부여한다는 것은 하늘의 재주이다. 조화를 따라 만물의 형상을 잘 본뜨는 것은 시인의 재주이다. 하늘보다 더 공교로운 것은 없는데 시인이 어지 공교로움을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재능 있는 자는 운수 사납다. 이는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늘 또한 시기심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재주를 주고서는 어이하여 다시 궁하게 한단 말인가?”

###뛰어난 재주를 지닌 이는 많은데 벼슬길은 바늘 구멍만하여 출세를 하는 자가 드물다. 인재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니 하늘이 시기한다고 통탄한다. 재주가 뛰어난 자가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함은 사회구조의 모순 때문에 빚어진 일이 아닐까?

***유몽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355페이지)

“아! 시라는 것은 성정의 허령(虛靈)함에서 나오기 때문에 요(夭)와 천(賤)을 알아 생각이 솟아나서 그리 하지 않으려 해도 그리 되고 만다.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궁한 까닭에 시가 절로 이와 같이 같게 된다. 재주 있는 사람은 하늘도 시기하니 세상 사람을 또 어찌 허물하겠는가? 슬프다.”

***말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쓴 한 편의 시가 어느 날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말 한 마디, 시 한 구절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어이 붓을 함부로 놀리랴! (355페이지)


열네 번째 이야기-놀이하는 인간 잡체시의 세계1


글자로 쌓은 탑, 층시 또는 보탑시


회문시, 바로 읽고 돌려 읽고

***한시 가운데 회문시라는 것이 잇다. 내리읽으나 치읽으나 의미가 통하는 형식의 시체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평측이나 압운이 흐트러져서는 안 되므로 그 제한이 몹시 까다롭다.(368페이지)


***붉은 꽃술 서늘함 배여 있는데

  향기 품은 꽃봉우리 부드럽구나

  순초는 동쪽 물가 숨어 자라고

  먼 산은 비안개를 감추고 있네. (380페이지)

***층시와 회문시, 신지체 등으로 불리는 잡체시들을 몇 수 살펴보았다. 이 모두 한자가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려운 창작들이다. 언어로 유희하는 퍼즐놀이 인 것이다.(385페이지)


열다섯 번째 이야기-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잡체시의 세계2

***권벽의 <추일산재>란 작품이다.(396페이지)

       낙엽 위엔 쓸쓸히 서리가  내렸고

       상여는 병이 많아 빈집에  누워 있네.

       흙 계단 황량한 풀 가을인데 푸르고

       시냇가 국화꽃은 늦어 더욱 향기롭다.

       구름 사이 햇빛 비쳐 먼 하늘이 환한데

       바람은 기러길 불어 높은 뫼를 건넨다.

       산촌에서 사물보다 때늦음에 놀라니

       어이해야 벌레 소리 침상 멀리 쫓을고.

소소한 가을날의 감상을 잘 포착했다. 서리 묻은 낙엽, 병들어 빈집에 누운 고다나한 신세다. 황량한 듯 푸른 풀과 늦저녁에 향기로운 국화는 자신의 심상이다. 흐르는 세월이야  어쩌겠는가.

***오늘 날 잡체시가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언어의 부단한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직조가 보여주는 즐거움 외에도 잡체시는 오늘의 시단에 의미 있는 시사를 준다. 젊은 시인들이 실험하고 있는 각종의 형태시들은 기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수없는 상호 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409페이지)


열여섯 번째 이야기-말장난의 행간 한시의 쌍관의(雙關義)


선덕여왕의 자격지심

***<삼국유사> 기이편에 보면 ‘선덕왕지기삼사’란 항복이 있다. 그녀가 재위 16년 동안 미리 알아맞힌 세 가지 일을 적은 내용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다. 당 태종이 붉은 빛과 자줏빛 그리고  흰빛 등 세 가지 빛깔의 그 꽃씨 서 되를 신라로 보내왔다. 여왕이 그림을 보고 말했다.

“이 꽃은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

꽃이 피자 과연 향기가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여왕이 대답했다.

“꽃만 그리고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 이는 당나라 황제가 내가 혼자 사는 것을 놀린 것이다.”

신하들은 모두 탄복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모란꽃을 그릴 때에는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았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나비는 여든 살 늙은이를 나타낸다. 모란에 나비를 함께 그리면 여든 살이 되도록 부귈ㄹ 누린다는 것으로 의미가 제한되어 버린다.

욱일충천하던 대제국의 제왕이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 신라의 여왕이 시집가고 안가고에 무슨 관심이 있었겠는가? 그저 모란꽃 그림으로 귀국의 부귀영화를 바란다는 의례적 인사를 보내온 것이었는데, 재지가 넘쳤던 여왕은 자격지심에 그만 오버센스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모란꽃 그림에 굳이 나비를 그려 넣어 여든 살 먹도록 시집도 안가고 잘 먹고 잘 살기 바란다는 식의 격조 없는 농담을 할 당 태종은 아니었을 줄로 안다. 단지 쌍관의 원리로 전개되는 독화의 원리를 몰랐던 것이다. (438페이지)

###이제까지 선덕여왕에 대한 이 뒷이야기는 없었다. 오늘에야 모란꽃에 나비가 없는 원리를 듣게 되었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해체의 시학 파격시의 세계


슬픈 웃음, 해체의 시학


***김삿갓의 시다. (465페이지)

           네 다리 소반 위에 죽 한 그릇 놓였는데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누나.

           주인아 면목없다 말하지 마시게나

           물 위에 비쳐오는 청산을 아끼노니.

가난한 주인이 지나는 과객에게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얼 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세서 보면 되잖케 보이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김삿갓은 뒷날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34구의 <난고평생시>를 남겼다. 그중 끝 네 구절만 보이면 이렇다.

     궁한 신세 속인들의 백안시를 받았고

     세월 가며 터럭 시듦 마음만 상하누나.

     돌아가기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몇 날이나 길가에서 방황하며 헤맸던고.

김삿갓 시의 해학의 뒤안에는 이렇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비감이 감돈다. 김삿갓은 특히 과체시에 능하여 200여수를 남겼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시체이다.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길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재담가’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악취미다.

***의식의 변화는 내용의 변모를 부른다. 내용만으로 의식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할 때 형식이 변한다. 기존 한시의 굳건한 문법은 개화기의 발랄한 실험정신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체의 양식들을 선보였다. 다만 그것이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되지 못한 결과 새로운 형식들은 일과성의 장난기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에서 시사하는 의미는 대단히 심장하다. 오늘의 시단에서도 새로운 담론과 말하기 방식에 대한 모색은 활발히 계속된다.(472페이지)







열여덟 번째 이야기-바라봄의 시학 관물론(觀物論)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 “옹이 연못을 파서 물고기를 길렀다. 밤낮으로 살펴보니 편안하면 기뻐하고, 다투면 성을 내며, 죽으려 할 때는 슬퍼하고, 좆기면 두려워했다. 서로 함게하면 아끼고, 등지면 미워하며, 구하는 것이 있으면 욕심을 부려 형기로 드러나는 칠정(七情)의 모습을 모두 지녓다. 하지만 사단(四端)같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이에 비로소 사단과 칠정이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짐을 깨달았다.”


물고기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희로애락의 감정은 물고기도 잇다. 편안함을 기뻐하고, 눈앞의 이익을 탐하며, 강한 적을 두려워한다. 물고기에게 인의예지가 있는가? 염치와 부끄러움,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가? 없다. 이것이 인간과 물고기를 갈라놓는 기준이다. 반대로 인간에게 이런 마음이 없다면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476페이지)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문인 이덕흥이 쓴 <퇴계선생고종기退溪先生考終記>이다.

“12월 8일. 매화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날씨는 맑았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갑자기 흰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가량 내렸다. 조금 뒤 선생께서 누울 자리를 정돈하라 하시므로 부축해 일으키자 앉으신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걷혔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제자의 기록으로는 투명하리만치 담담하다. 슬픔이 묻어날 빈틈이 없다. 스승의 용태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창밖의 날씨로 쏠려 있다. 그는 과연 무슨 마음으로 스승이 서거하던 날의 기후 변화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임종하던 아침, 의식이 오락가락하던 스승은 방 안 매화에 물 줄 것을 명했다. 제자는 그것을 무슨 조짐으로 알았다.

*** 12월 3일. 설사를 하셨다. 매화분이 그 곁에 있었는데, 다른 데로 옮기라 하시며 말씀하셨다. “매형(梅兄)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다.”

  매화를 아끼는 퇴계의 마음은 마치 하나의 인격체를 대하는 듯하다. 임종하던 날 그는 매화분에 물 줄 것을 명했고, 불결한 냄새가 매화분에 닿는 것조차 미안해했다. 사물에 자아를 얹고, 관물을 통해 천기를 읽었던 선인들의 삶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남명 조식의 문인 정인홍도 스승의 임종 즈음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12월 15일 아침. 인홍과 우옹을 불러 말씀하셨다. “오늘은 정신이 전과 다르니 내가 죽을 모양이다. 다시는 약을 올리지 마라.” 손으로 두 눈을 비비고 눈을 떠보시더니 “자세하고 밝은 것이 평시와 다름이 없구나.” 하셨다. 또 창을 열게 하시더니 “하늘 해가 참 맑다.”고 하tut다. 이날부터 선생은 약을 끊으시고 미음조차 입에 대지 않으셨다. 종일 가만히 누워 계셨으니 조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480페이지)

***송대의 이학자 소옹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관물이라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지 않고 이치로서 보는 것이다. 천하사물은 이치를 담지 않은 것이 없고, 성(性)이나 명(命)이 없는 것이 없다.

***권호문은 <관물당기>에서 소옹의 뜻을 부연하여 이렇게 말했다.

 “하늘과 당 사이에 가득한 것은 사물일 뿐이다. 사물은 저 혼자 존재하지 않고 천지가 낳은 바이다. 천지도 저 혼자 생길 수는 없다. 사물은 이치가 낳은 것이다...... 관물은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 이치로 보는 것만 못하다. 만약 이치로 볼 수 있다면 만물에 환히 통하게 되어 내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진다.”

사물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이치로 살펴 사물의 본질에 깊이 다가서는 통찰의 경로를 설명한 내용이다. (486페이지)


생동하는 봄풀의 뜻


***이색의 <관물>이란 작품이다.

          

          크도다 사물을 바라보는 곳

          형세를 인하여 꼴 지워지네.

          흰 물도 깊으면 검게 변하고

          황산도 멀리 보면 푸르게 뵈지.

          지위가 높고 보니 위엄 무겁고

          누추해도 덕은 더욱 향기로워라.

          늙은 몸 말 잊은 지 이미 오래니

          이끼 자욱 작은 뜰에 기득하도다.


만물은 일정함 없이 형세에 다라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한다. 덩달아 마음마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사람이 못 쓰게 된다. 마음의 본바탕을 굳게 지켜 거죽으로 드러나는 형상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위엄으로 누르고 덕으로 향기를 뿜어 일체의 작위함을 벗어던진 날. 말을 잊고 이끼 가득한 작은 뜰을 관찰한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저절로 마당을 덮은 이끼,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도 다를 게 없다.(487페이지)

***권필의 <정중음 靜中吟>이 이를 잘 요약한다.

 

 뜻이 차니 삿됨은 사라져가고

  마음 비니 이치 뚜렷이 밝다.

  고요할 제 만물을 바라보자니

  봄기운 저절로 생동하누나.


만물 속에 답이 있다. 고요히 바라보라. 마음이 늘 문제다. 외물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 가만히 응시하면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 하나도 모를 것이 없다. 명징하고 투명하다. (490~491페이지)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것, 바깥에 있음이 아니다. 저자의 해석이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는다. 나의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에게서 그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유아지경과 무아지경


***청나라 말기의 왕국유의 글이다. (491페이지)

 유아지경이 있고 무아지경이 있다.

 “눈물 젖어 물어봐도 꽃은 아무 말이 없고, 흩어지는 꽃 그네 위로 날리며 지나가네.”

 “외로운 여관 문을 걸고 봄추위를 견디니, 두견새 소리 속에 기운 해가 저무네.”

 이 두 가지는 유아지경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캐다,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네.”

 “차가운 물결은 담담히 일고, 흰 새는 유유히 내려앉는다.”

  이 두 가지는 무아지경이다.

유아지경은 아(我)로서 사물을 보는 까닭에 사물과 내가 모두 나의 색채로 물들고, 무아지경은 물(物)로서 사물을 보므로 어느 것이 나이고 어느 것이 사물인지 알 수가 없다.


유아지경은 시인의 주관 감정이 객관 물태에 스며 강렬한 주관의 색채를 띠는 경우다. 무아지경은 시인의 주관 정서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물아가 하나가 되어 피아의 구별이 무너진 상태다.


***당나라 왕유의 <서사書事>라는 작품이다.(492페이지)

그늘진 누각에 보슬비 내려

깊은 뜰 한낮에야 문을 열었네.

앉아서 이끼 색깔 보고 있자니

내 옷 위로 스멀스멀 오르려 한다.

옅은 그늘이 지나가고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비가 그쳐 시인은 문을 열고 산책에 나섰다. 보슬비가 지나간 촉촉한 이끼 위에 가만히 앉는다. 시인의 옷깃 위로 이끼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대로 있으면 내가 곧 이기 덮인 바위가 될 것만 같다. 우연히 빈 뜰에 나와 앉았다가 물과 아(我)가 하나로 만나 나누는 흐뭇한 교감이다. 사물로 향하는 아의 삼투압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서로 팽팽한 표면장력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그 균형이 깨지면서 한꺼번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서서히 눈치 cowl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이제 시인은 없다.


***박목월의 <윤사월>이다.(496페이지)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외딴 봉우리에 송홧가루가 날린다. 나른한 윤사월의 긴 오후가 꾀꼬리 울음 속에 뉘엿해진다. 외딴 집의 눈먼 처녀는 문설주는 귀를 대고 엿듣고 있다. 그녀가 엿들은 것은 무슨 소리였을까. 긴 봄날이 덧없어 우는 꾀꼬리의 울음소리였을까. 시인은 끝내 아무런 설명도 보태지 않는다. 윤사월의 애절한 느낌이 문설주에 귀를 댄 그녀의 몸짓 속에 잊히지 않는 영상으로 다가온다. 무아지경이다.

###<윤사월>의 시를 읽으면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 생각난다. 과학 선생님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사월의 나른한 봄날, 선생님은 칠판에 <윤사월>전문을 다 적고 나서 음미하면서 천천히 읊었다. 왜 그렇게 슬픈 생각이 들든지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중학교에 갓 입학하여 아직 친구도 없고 적응을 잘 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편하지 못했던 나는 눈먼 처녀의 외로움과 슬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사월이 되면 그때의 슬픔이 생생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속인과 달사


***박지원의 <능양시집서>에 나오는 말이다.(498페이지)

 “통달한 사람은 괴이한 것이 없지만 속된 사람은 의심스런 바가 많다. 본 것이 적어 괴이함도 많은 것이다. 대저 어지 달사(達士)라 하여 물건마다 쫓아가서 직접 눈으로 본 것이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눈앞에 열 가지가 펼쳐지고, 열을 보면 마음에 백 가지가 베풀어져, 천 가지 괴이함과 만 가지 기이함을 도로 사물에 부칠 뿐 자기와느 간여함이 없다. 때문에 마음은 한가로워 여유가 있고 응수함은 다함이 없다. 본 바가 적은 자는 백로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가지고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은 제 스스로 괴이함이 없는데 자기가 공연히 성을 내며,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만물을 온통 의심한다.”


달사의 관물은 보지 않고도 보는 이물관물, 이리관물인데, 속인의 관물은 직접 눈으로 본 것만 전부로 아는 이아관물에 머문다. 달사와 속인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깨달음이다.

###식견 혹은 견문이 좁은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 여겨 의심이 많고, 남의 말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견문이 넓은 사람은 이해의 폭이 넓어 다름을 알고 차이를 인정한다. 

***김택영은 <수윤당기漱潤)當記>에서 깨달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498~499페이지)

“천하에 이른바 도술과 문장이라는 것은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정밀해지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진실로 능히 깨닫기만 한다면 예전에 하나를 듣고 하나도 알지 못하던 자가 열 가지 백 가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전에는 천만 리 밖에 있던 것을 바로 곁에서 만나 볼 수 있게 되고, 지난 날 어근버근하여 알기 어렵던 것이 매끄럽게 쉬 이해된다. 예전에 천만 권의 책에서 알기 어렵던 것을 한두 권이면 충분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를 깨닫는 법은 방향도 없고 형체도 없다. 손으로 질 수도 없고 무어라 규정할 수도 없다.......”

깨달음이 없이는 우리 모두는 ‘눈뜬장님’일 뿐이다. 눈을 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려 한다고 보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보려한다고 보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개달음은 결코 거져 얻어지지 않는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아무렇게나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순식간에 변해버린다. 차원이 달라진다. 속인과 달사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누구나 보고 있지만 못 보는 사실, 늘 마주치면서도 그저 지나치는 일상사물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한 사물과 낯설게 만나, 그 낯섦으로 그 사물을 새롭게 마나는 것. 이것이 관물론이 시학과 만나는 접점이다. 시인은 격물(格物) 또는 관물의 정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주변 사물이 끊임없이 발신하는 의미를 깨어 만날 수 있다. 히드라의 예민한 촉수와 같이 안테나를 세워 세계와 교신할 수 있어야 한다.......눈앞 사물과의 설레는 만남, 세계와 줄다리기하는 팽팽한 긴장이 없이 좋은 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반란자다. 그의 눈이 포착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다.(499페이지)


열아홉 번째 이야기-깨달음의 바다 선시(禪詩)


산은 산, 물은 물


***청원유신 선사의 공안이다. (503페이지)

  “노승이 30년 전 참선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선지식을 친견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뿐이다.”

***<남천축국보리달마선사관문>에 나오는 말이다.(504페이지)

“선(禪)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업슨ㄴ 것이 선정이다.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일러 선정이라 한다. 말을 비우고 생각을 깨끗이 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고요 속에 침잠하여, 갈 때나 머물 때나 앉았거나 누었거나 언제나 고요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에 선정이라 한다.”

선의 경지는 사변의 길로는 다다를 수가 없다.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긴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 세상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 1. 당나라 회양선사의 선시이다.(506페이지)

      회주 땅의 소가 풀을 뜯어먹는데

      익주 땅 말의 배가 불러 터졌네.

      천하에 의원을 찾아갔더니

      돼지 왼편 어깨 위에 뜸을 뜨누나.


    2. 근대의 선객 효봉선사의 오도송이다.(507페이지)

      바다 밑 제비 둥지 사슴이 알을 품고

      불 속의 거미집선 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 능히 알겠는가

      흰 구름 서편 날고 달은 동쪽으로 가네.


이렇듯 말 같지 않은 소리만 골라서 하는 까닭은 단 하나다.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로 따져 알려 들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라는 말이다. 의미는 여기저기에서 끊어지고, 따라 읽으려는 순간 벼랑 끝에 선 나를 본다. 선은 자기 자신과 맞대면해서 자신을 한칼에 베겟다는 것이다. 남을 다 속여도 자신을 속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만 사람이 다 인정해도 내 스스로 수긍하지 못하면 도로(徒勞)에 그치고 만다.(508페이지)

***영운 지근선사의 오도송이다.(511페이지)

  

  삼십 년 세월 동안 검객을 찾아다녀

  몇 번이나 낙엽지고 새 잎이 돋았던가.

  복사꽃을 단 한 번 보고 난 뒤로는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 의심 없다네.


최고의고수를 만나 상승의 검법을 익히려고 30년 세월을 방황했다. 낙엽 지는 가을 산과 꽃망울 부푸는 봄 산을 얼마나 헤맸던가. 정작 그 길에서 전신으로 만난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맨 검객이 아니라 산모롱이에 무심히 핀 복사꽃 한 송이였다. 단 한 번의 만남이 여태 지고 다닌 의심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검객은 어디 있는가. 마음이 흘러가는 곳. 사물과 내가 하나 되는 자리에 있다.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꽃잎 위에 칼끝 같은 깨달음이 있다. 


***고려 말의 선승 혜근의 <산거(山居)>란 작품이다.(513페이지)

  흰 구름 쌓인 곳에 초가집이 세 칸인데

  앉아 눕고 쏘다녀도 저절로 한가롭네.

  시냇물은 졸졸졸 반야를 속삭이고

 맑은 바람 달빛에 온몸이 서늘하다.


설선작시, 본무차별


***고려 때 선승 경한은 <조사선>에서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두고 이런 문답을 남겼다.(519페이지)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아득히 강남 땅 이삼월을 생각자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 향기롭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뉘엿한 해 강과 산은 곱기도 하고

  봄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구나,


이것을 묻는데 저것을 대답한다. 알듯 말듯 묘한 말씀이다. 따져서 알려들지 말라. 그냥 그대로 숨 쉬듯 느껴라. 무슨 말이냐고 묻지 말라.

***송나라 공성임의 시이다. (523페이지)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말이야 안배해도 뜻은 못 전한다네.

          깨우치면 그 즉시 성률 따윈 내던져서

          달군 돌로 하늘 구멍 막아서는 안 되지.


말을 매만져 표현을 가다듬는 것이 시가 아니다. 포단 위에 앉아 독경 소리 가다듬는 것이 참선이 아닌 것과 같다. 마음에 문득 와 닿는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토해내야 한다.

***깨달음 없는 참선은 공연히 제 몸을 들볶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는 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심장을 토해내고 폐부를 도려내는 고심참담도 좋지만, 개달음은 원해 없는 것을 쥐어짜는 조탁과는 관계가 없다. 옛사람의 길을 따르지 말라. 너는 너의 길로, 나는 나의 길로 선에 도달하고 시를 개달을 뿐이다. 남의 흉내로는 안된다. 안목 없는 세상은 자꾸만 옛길을 따라오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요한다. 좋은 시는 끊임없는 반란의 산물이어야 한다.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 익숙해진 접점에서 벗어나기를 쉼 없이 추구해야 한다. (523페이지)


거문고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소동파는 <금시琴詩>에서 이렇게 읊었다. (525페이지)


만약에 거문고에 소리가 있다 하면

갑 속에 두었을 젠 어이 해 안 우는가.

그 소리가 손가락에 있다고 한다면

그대의 손끝에선 어째서 안 들리나.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거문고와 손가락의 사이에서다. 거문고에 손가락이 닿아 소리로 울리는 이 미묘한 이치를 아는가? 소리가 숨은 곳이 도대체 어디인가?

###선가에는 <금시>와 같이 거문고에 얽힌 화두가 많다. 

거문고를 다 해체하고 나서 거문고 소리를 가져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 대략 난감이다.

***화정 선자화상의 게송이다.(526페이지)


천척의 낚싯줄을 곧장 아래 드리우니

한 물결 일렁이자 일만 물결 따라온다.

고요한 밤 물이 차서 고기는 입질 않고

빈 배 가득 밝은 달만 싣고서 돌아오네.


포물선을 긋고 낚싯줄이 떨어진다. 바늘이 물 위에 한 점을 찍자 동심원을 그리며 일만 물결이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이 잔잔히 가라앉을 동안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깊은 밤 만뢰는 적막한데 고기는 입질이 없다. 애초부터 이편에서도 고기에는 마음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 빈 배엔 고기 대신 휘황한 달빛을 가득 실었다.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의 세계이다.(526페이지)

***시의 생각과 선의 사고는 무던히도 닮았다. 시인과 선객은 가깝게 왕래한다. 서로 말귀가 통하고 베짱이 맞기 때문이다. (527페이지)

***시와 선이 하나로 마난 선시가 된다. 절묘한 결합인 셈이다. 선시의 언어는 직관의 언어다. 의미를 해체하고 사물로 말한다. 풍경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직관의 언어는 무책임하다. 친절하기는 커녕 때로 소통 자체를 거부한다.(527페이지)

***선시는 깨달음 없는 삶, 생존의 나날을 혐오한다. 선의 화두가 그러하듯이 좋은 시는 타성에 젖은 뒤통수를 후려친다. (528페이지)


스무 번째 이야기-산과 물의 깊은 뜻 산수시(山水詩)


청산에 살으리랏다


***구양수가 <부사산수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537페이지)

“대저 천하의 온갖 물건을 다 끌어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것은 부귀한 사람의 즐거움이다. 장송 그늘에서 다복한 풀을 깔고 앉아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다가 돌샘의 물을 떠 마시는 것은 산림에 사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산림에 사는 선비는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간혹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따져보아 얻을 수 없어 그만 둔 자는 물러나 이곳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저 부귀한 사람은 능히 온갖 물건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오직 산수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


요산요수의 변


*** 공자가 <논어>에서 말했다.(538페이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주자는 공자의 이 말을 이렇게 풀었다.9538페이지)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해 막힘없는 것이 물과 같으므로 물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기에 산을 좋아한다.”


***한나라 유향의 <설원>에 나온다.-요산요수의 변 (538페이지)

 자공이 물었다.

 “선생님 군자는 어째서 큰 강물과 만나면 반드시 바라보곤 합니까?”

 공자께서 말하였다.

 “군자는 물을 덕에 비유한다. 두루 베풀어서 사사로움이 없으니 덕과 같고, 물이 닿으면 살아나니 인(仁)과 같다. 낮은 데로 흘러가고 굽이치는 것이 모두 순리에 따르니 의(義)와 같고, 얕은 것은 흘러가고 깊은 것은 헤아릴 수 없으니 지(智)와 같다. 백 길이나 되는 계곡에 다다라도 의심치 아니함은 용(勇)과 같고, 가늘게 흘러 보이지 않게 다다르니 살핌과 같으며, 더러운 것을 받아도 사양치 아니하니 포용함과 같다. 혼탁한 것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하여 내보내니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킴과 같다. 그릇에 부으면 반드시 평평하니 정(正)과 같고, 넘쳐도 깎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법도와 같고, 만 갈래로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꺾으니 의지와 같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큰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볼 뿐이다.”

***한나라 유향의 <설원>에 나온다. 인자요산의 변이다. (539페이지)

 “대저 산은 높으면서도 이어져 만민이 우러러보는 바이다. 초목이 그 위에서 생장하고, 온갖 생물이 그 위에 서 있으며 나는 새가 거기로 모여들고 들짐승이 그곳에 깃든다. 온갖 보배로운 것이 그곳에서 자라나고, 기이한 선비가 거기에 산다. 온갖 만물을 기르면서도 싫증내지 아니하고 사방에서 모두 취해가도 못하게 하는 법이 없다.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천지사이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라를 이룬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산이 낭고 물이 나온다고 다 산수시가 아니다. 산수와 인간이 마나 나누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 산수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산수 쪽으로 향해 가서 어느덧 몰아(沒我)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동화가 있어야 한다.

***고려 때 최항의 <절구絶句>다.(541페이지)


               뜰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이요

               둘러앉은 산빛은 청치 않은 손님일세.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을 연주하니

               소중히 지닐 뿐 나에겐 못 전하리.


뜰의 달빛이 대낮 같다. 자리를 갈자 청하지도 않은 청산이 슬그머니 들어와 앉는다. 손님이 왔으니 풍악이 없을쏘냐. 솔가지 사이로 바람이 겅중겅중 지나면서 악보로는 잡을 수 없는 가락을 들려준다. 맑고 상쾌한 경지다. 이 거나하고 해맑은 운치를 어찌 말로 다 하랴.


***서거정의 <추일秋日>이다.(543페이지)

띳집은 대숲 길ㄹ 이어져 있고

가을날 햇살은 곱기도 하다.

열매 익어 들린 가지 축 쳐졌는데

날시 차서 넝쿨에는 참외도 없다.

나는 벌 쉴 새 없이 잉잉거리고

오리는 한가로이 기대어 조네.

몸과 맘 무척이나 고요하구나

물러나 살자던 꿈 이루어졌네.


들늙은이의 말


***대나무 책상 창가에 놓고 부들자리 깔고 앉으니, 높은 뫼엔 구름 들고 그 아래론 맑은 시내. 울타리엔 국화 심고 집 뒤엘랑 원추리를. 언덕 가득 꽃이 피어 지나는 길을 막고 버들은 대문 앞을 버티고 서 있구나. 굽은 길엔 자옥한 안개 주막으로 이어지고 맑은 강에 해가 지니 어촌에는 고깃배라. (545페이지)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박제가의 <묘향산소기>의 한 토막이다. 실감나다 못해 황홀한 묘사다. (551페이지)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 이었다.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 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냇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 듯하였다.


***박제가의 <묘향산소기>의 한 토막이다.(552~553페이지)

  내가 물어보았다.

“중노릇이 즐겁소?”

“제 한 몸을 위해서는 편합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한 번 가 보았지요. 티끌만 자옥이 날려 도저히 못 살 곳 같습디다.”

내가 또 물었다.

“대사! 환속할 생각은 없소?”

“열둘에 중이 되어 혼자 빈산에 산 것이 사십 년이올시다. 예전에는 수모를 받으면 분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가엽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칠정이 다 발라버려, 비록 속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으려니와 혹 속인이 된다 해도 무슨 쓸모가 있답니까? 끝까지 부처님의 의지타가 적멸로 돌아갈 뿐입지요.”

“대사는 처음에 왜 중이 되시었소?”

“만약 자기가 원심(願心)이 없다면 비록 부모라 해도 억지로 중노릇은 시키지 못하지요.”

이날 밤 달빛은 마치도 흰 명주 같았다. 탑을 세 바퀴 돌고 술도 한 순배하였다. 먼데 바람 소리가 잎사귀를 쏴아 하고 쏟아내는 듯 쓸어내는 듯하였다. 


객수에 자을 못 이루던 서울 선비가 탑 둘레를 맴돌다가 초로의 스님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환속을 말하는 짓궂은 농담에는 칠정이 다 말라버렸다고 대답한다. 달빛 아래 담소의 광경이 꿈속같이 아련하다.


***어떤 이가 내게 와서 묻는다.

“산 속에서 풍악을 들으니 어떻습디까?”

“내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오.”


스물한 번째 이야기-실낙원의 비가悲歌 유선시(遊仙詩)


풀잎 끝에 맺힌 이슬


***인간에 낙원은 있는가? 낙원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절망과 비탄의 연속일 뿐이다.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반당하고 사랑하던 사람마저 하나 둘 떠나보낸 후 빈 들녘을 혼자 헤매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뒤돌아보면 뜻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다.


***고대 중국인들이 상여매고 나갈 때 덧없는 인생을 슬퍼하며 불렀다는 노래다.(557페이지)

        풀잎 위 이슬

        너무 쉽게 마르네.

        내일 아침 이슬은 다시 내리겠지만

        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르누나.


아카로스의 날개


***김시습의 <능허사>중 한 수다. (571페이지)

     아침엔 항해(沆瀣) 먹고 저녁엔 유하로세.

     허공 긷는 사람 있음 모름지기 믿을레라.

     굽어보니 땅덩어리 너무도 아득한데

     대붕은 잘 안 뵈고 하루살이 우글댄다.


     인간 세상 어디에도 풍파 없는 곳이 없어

     날개 달고 바람 타니 큰 집이 여기 있네.

     하계엔 하루살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만 길이나 쌓인 먼지 그댈 속임 어지하리.


하계에 대한 부정적이 인식은 그곳에서의 갈등을 떠올리고 하게의 존재 양태를 무의미하고 왜소한 것으로 비하시킴으로써 선계에서 노니는 기쁨을 극대화하려는 의식의 과정이다. 동시에 이는 현세의 갈등과 좌절에 대한 자기 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세에서 득의가 주어졌더라면 이들은 결코 선계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하계를 향한 혐오감의 표현은 반동형성에 의한 양가감정의 투영이다. 현실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선계는 미화되고 하계의 모습은 일그러져 나타난다.(572페이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행복하다면 굳이 유토피아를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유토피아를 꿈꾸고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마음에 그런 도피처라도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팍팍할까? 인간은 행복을 위하여 정신과 마음에도 온갖 장치를 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선계로의 비상은 아카로스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는 날개를 만들어 태양 가까이까지 날아올랐다가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다. 현계를 초월코자 하는 비상의 욕구는 결국 죽음의 징벌을 부르고 말았다.

초월의 소망을 담은 유선의 행위가 현실의 새로운 비전과 연결되지 못한다 해서 선계를 향한 꿈 자체를 배격할 필요는 없다. 실현될 수 없다 해서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이 배격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절망이요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유선의 과정에서 만끽한 인간 한계를 초월하는 해방감은 세속적 가치의 무의미함과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새삼 인식케 함으로써 현실의 불우와 모순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준다.(576페이지)

***유선시는 ‘중세적 꿈꾸기’의 산물이다. 이러한 꿈꾸기는 허망한 몽상이나 환상이 아니다.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꿈을 굴 수가 잇다. 문학이 다만 실천의 도구일 때, 사회는 꿈을 꿀 자리를 잃어버린다. 꿈이 없을 때 사회개조는 있을 수 없다.”김현의 이 말은 바로 유선시에서 중세적 꿈꾸기가 자는 의미를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의 혈관 속에 내재한 원초적 상징들을 가맣게 잊고 있던 그 기호들을 유선시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576페이지)


스물두 번 째 이야기-시와 역사 시사(詩史)와 사시(史詩)


변새의 풍광

***장적의 <출새出塞>란 작품이다. (591페이지)

가을 변방 첫눈이 하마 내리고

장군은 멀리 군대 출정시키네.

병영 나눔 햇불로 표시를 하고

말을 놓아 깃발도 거두질 않네.

찬 달 아래 장막은 습기에 젖고

어둔 사막 밤 정찰 더뎌만 진다.

군사는 모두 다 흰머리여서

오랑캐 멸할 날 볼이 누구랴.


***아아! 6국을 멸한 것은 6국이었지 진나라가 아니었다. 진나라를 멸한 것은 진이었지 천하가 아니었다. 슬프다. 6국이 저마다 제 백성을 이겼더라면 진나라를 충분히 막았으리라.

진나라가 다시 6국의 사람을 아꼈더라면 3세를 이어 만세에 이르도록 임금 노릇을 할 수 있었으리라. 누가 감히 진나라를 멸할 수 있었으랴. 진나라 사람은 스스로를 슬퍼할 겨를이 없었으므로 두시사람이 이를 슬퍼하였다. 뒷사람이 이를 슬퍼하고도 거울로 삼지는 못하여 또다시 뒷사람으로 하여금 뒷사람을 슬퍼하게 하는구나. -두목- (600페이지)


**역사란 무엇인가? 현재의 퇴적일 뿐이다. 지금 시대의 자취를 일러 후세는 옛날이라 한다. 그렇다면 굳이 지나간 옛날에 얽매일 필요가 없겠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것이 곧 옛날이다. 시사는 시인이 과거의 거울에 비춰 현재를 읽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그대로 든다. 지나가 역사가 오늘을 비추는 등불인 까닭이다. (603페이지)


스물세 번째 이야기- 사랑이 어떻더냐 정시(情詩)

담장 가의 발자국

***강세황의 <노상서견>이라는 시이다.(607페이지)


비단 버선 물결 걷듯 사뿐사뿐 거더니

중문 한번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

다정할 사 잔설이 그래도 남아 있어

그녀의 발자국이 담장 가에 찍혔구나.


굳게 닫힌 대문 앞에 갈 길도 잊은 채 그는 서 있다. 혹시 다시 나오지는 않을까. 두근대며 서성이다가 채 녹지 않은 담장 밑 그늘의 잔설 위로 도렷이 찍힌 그녀의 발자국을 보았다. 눈 위의 발자국, 그녀가 남기고 간 발자국. 그러나 그녀가 밟고 간 것은 아무래도 눈이 아니라 그의 가슴이었을 것이다. 잔설 위에 무심히 남은 사랑의 자국 앞에 연모의 불길만 조용히 타오른다.

***설요의 <반속요返俗謠>라는 시이다. <전당시>에 실려 전한다. (610페이지)


구름의 마음 되어 정숙함을 생각하나

산골짝 적막하다 사람조차 뵈지 않네.

고운 풀 꽃다워라 향기를 품었건만

이 푸른 청춘을 장차 어지할거나.


구름은 유유자적하다. 아무 데도 얽매인 데 없이 자유자재하다. 구름은 욕심이 없다. 집착도 없다. 처음 그녀는 구름과도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산 속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품은 생각을 맑고 곧게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자 하였다. 하지만 적막한 산중엔 사람의 그림자도 뵈지 않고, 그녀의 약동하는 청춘은 무엇보다 그 쓸쓸함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무엇을 이루자고 나는 이 산중에 있는가. 저 봄풀을 보아라.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사람끼리 어개를 비비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재서 나는 이를 모두 떠나와 깊은 산속에서 이 청춘의 시간을 태우고 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친 그녀는 6년간의 산중 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하고 말았다.

기록을 보면 그녀는 신라 사람으로 당나라에 와서 좌무위장군이 된 설승충의 딸이었다. 15세 때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6년 뒤에 이 노래를 부르며 환속하여 곽원진의 아내가 되었다.

***청춘의 감정은 출렁이는 물결 같다. 가둘수록 더 거세진다. 이를 굳이 가라앉히려는 노력은 부질없는 것이다. 감정을 누르려는 집착이 또 하나의 미망을 낳는다.(611페이지)

***성간의 <나홍곡>이다.(614페이지)


        제 마음 일편단심 대나무 같고

        임의 마음 둥그런 달과 같아요.

        둥근 달은 찼다가도 기운다지만

        대뿌리는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


소상강의 반죽(斑竹)같은 일편단심으로 자신의 절개를 다짐했다. 임의 마음은 온 뉴리를 환히 비추는 환하고 둥근 달이다. 고결한 달빛 위에 대나무의 일편단심이 얹히니 서로 잘 어울린다. 그러나 말은 끝가지 들어봐야 한다. 환한 보름달로 임을 추켜세운 것은 딴 듯이 잇다. 저 달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보름달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믐달이 되고 또 초승달이 된다. 대나무의 뿌리는 그렇지 않다. 달의 차고 기움에 관계없이 땅 속 깊은 곳까지 얼키설키 서려 변할 줄을 모른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임의 마음을 잡아두려는 여인의 마음을 애교있게 펼쳤다. 이 시의 재미는 3구의 반전에 있다. 처음 추켜세우는 듯한 어조를 취하다가 돌연 뒤집어 미감이 발생한다. 이른바 달래고 어르는 억양법이다.


진 꽃잎 볼 적마다


***삼의당 김씨의 <깊은 밤의 노래 深夜詞>이다.(618페이지)


        밤빛은 아득하여 오경에 가까운데

        뜰 가득 가을 달이 참으로 또렷하다.

        이불 쓰지 않고 억지로 임 그려 잠 청해도

        임의 곁에 이르면 절로 놀라 깨었네.


그녀는 밤을 꼬박 새웠다. 환한 달빛 아래 모든 것이 또렷한데 임의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 달빛 비친 뜰로 임이 성큼 들어설 것만 같아 밖을 자꾸 내다본다. 안 올 줄 알면서 내다보는 마음이 슬프다.

달빛은 그림자를 누이며 서편으로 진다. 그녀는 지쳐 자리에 눕는다. 정신은 더욱더 또렷해진다. 깜박 잠이 들어 임을 만나면 한마디 건네기도 전에 깜짝 놀라 잠이 깬다. 임을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데, 정작 만나 한마디도 못한 것이 말할 수 없이 아쉽다. 만날 길 엇어 밤마다 꿈길로 찾아 나선다. 이것이 사랑이다. 어렵사리 임을 만나 놀랍고 두근거려 꿈을 깬다. 이것은 그리움이다.

###시도 좋지만, 저자가 해석한 문장이 더 아릿하고 가슴을 저미게 한다. 저자의 문장에 반해 자꾸만 옮겨 적게 된다.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김정희의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이라는 시이다.(622페이지)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처지 바꿔달라 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 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마음의 슬픔 알게 하리라.


추사가 만년에 제주도 유배 당시 지은 시다. 절해고도에서 실의의 귀양살이를 하던 늙고 병든 노정객에게 아내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부부의 인연으로 지난 세월. 자신의 귀양소식에 아내는 얼마나 낙담했던가. 돌아보면 예술도 명예도 덧없는 것이었다. 아내의 영전에 곡 한 번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기가 막히다 못해 참담했다.

월하노인은 중매의 신이다. 전생에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주어 현생에 부부가 되었다. 이제 백년해로의 언약을 저버리고 떠난 그녀가 야속하다. 월하노인에게 요청해서 내세에는 부부를 바꾸어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하겠다고 했다. 그래야 지금의 이 기막힌 심정을 그대가 알겠기에 하는 말이다. 즉은 이는 훌쩍 떠나면 그분이지만 산 사람의 하염없는 슬픔은 도 어찌한단 말인가?


스물네 번째 이야기-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상동구이론


동서양의 수법 차이

***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

여기에 동양의 수법이 있다.

서양의 시인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시도 잊을 수 없어요.”하고 발간 입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낫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표현 방법에서도 동양의 수법은 신비롭다.”


조지훈이 <또 하나의 시론>에서 한 말이다. 그가 말한 동양의 수법이란 한시의 수법이다.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지를 세워 대신 발한다. 현대시도 같다. 현대시와 한시는 여러모로 참 닮았다.(629페이지)


밤비와 아내 생각


***조운의 시조 <아내에게>라는 시이다. 일제 때 감옥에 갇혀 지은 작품이다.(643페이지)


새로 바른 창을 닫고 수수들을 까는 저녁

요 빗소리를 철창에서 도 듣나니

언제나 등잔불 돋우면서 이런 이약 할까요.


가을걷이가 끝나면 겨울 준비를 한다. 국화 곷잎과 단풍잎을 넣고 새로 창문을 바른다. 풀이 마르면서 해살 먹은 창이 장장하게 펴진다. 방안에 온 가죽이 둘러앉아 수숫단을 턴다. 그럴 때마다 좌르르 쏟아져 방바닥을 구르던 수수 알갱이 소리는 마치 오밤중에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같았다.

시인은 이제 철창에 갇혀 밤비소리를 듣는다. 처정처정 지붕을 대리는 빗소리가 눈만 감으면 추수를 끝낸 어느 날 방 안에서 좌르르 좌르르 수숫단 털던 그날의 따듯한 기억 속으로 나를 자구 끌고 간다. 못 견디게 울컥한 그리움을 ‘또’라는 한 글자에 농축했다.


에필로그-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通辯論)

거미가 줄을 치듯


***말거간꾼의 이야기를 적은 <마장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657페이지)

“내가 아침에 쪽박을 두드리며 동냥을 다니다가 포목전에 들어가지 않았겠나. 마치 a가게로 들어와 베를 사려는 자가 있더군. 베를 골라 혀로 핥아도 보고 허공에 비춰 살펴도 보더니 값은 말하지 않고 먼저 값을 불러보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게야. 그러더니 둘 다 베 팔 일은 까맣게 잊은 듯이, 주인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저기 구름이 피어나는 것 좀 보라고 하고, 살 사람은 뒷짐 지고 서성이면서 벽 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지 뭔가.”

물건 값을 흥정하는 장사치의 노회한 심리전을 묘사한 대목인데, 내 보기에 이것은 시를 쓰고 읽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미묘한 법문으로만 여겨진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전을 피우면서 장사를 생각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인가? 먼 산의 구름을 보고 는 있지만 장사치는 값을 얼마를 불러야 될까 고심 중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달을 보아야 한다.  시를 읽는 사람도 언어의 숨은 뜻,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


그때의 지금인 옛날


***<주역>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간다”고 했다. 천지만물은 변화 유동한다. 한 시대가 가면 또 한 시대가 온다. 이 도도한 변하 앞에 옛것만 좋다고 우겨서야 될 일이 아니다. 새것은 또 옛것과 별개의 무엇인가? 그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확인함에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숨을 통하게 하여 오래 가게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통변(通辯)’의 정신이 여기서 나온다.(659페이지)

***연암의 <영처고서>일절이다.(660페이지)

“옛것을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낫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지금 것으로 보았을 분이리라.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이다. 참 무서운 말이다.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었을 분이다. 지금은 훗날의 옛날이다. 현재에 충실하라. 그러면 그것이 훗날의 모범이 된다. 옛것을 맹종치 말라. 그 옛것도 그때에는 하나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세월은 흘러간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일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지금‘과 ’여기‘가 차곡차곡 쌓여 역사가 된다. 사람은 가도 문학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가 오늘 되게 하고, 오늘이 내일 되게 하는 원형질이 여기에 담겨 있다.

***창힐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어떤 옛날을 모방했던가?

예전 창힐은 천지만물의 형상을 살펴 글자를 만들었다. 그가 글자를 만들자 밤에 천둥번개가 치고 귀신이 울었다고 옛 기록은 적고 있다. 천기가 누설됨을 슬퍼한 것이다. 시인의 정신은 마땅히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661페이지)

###아류는 필요 없다. 창조하라!

사기의 불가사의


***어떤 지금도 옛것의 구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옛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것을 어떻게 배울까? 그 껍질을 배우지 말고 정신을 배워야 한다. (662페이지)

***“마땅히 옛 성현을 본받아야지.”

  “하나도 같지 않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 정신을 본받아야지. 그 말을 흉내 내면 안된다.”

   “옛사람의 정신을 본받되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662페이지)


도로 눈을 감아라


***연암의 <답창애2>이다.

“.....제가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말고 밝게 보이는 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연암이 던지는  이 새로운 화두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나의 주인이 못되고,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할진대 열린 눈은 망상이 될 뿐이다. 소화하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670페이지)

***내가 본래 있던 그  자리, 미분화된 원형질의 상태로 돌아가라. 눈에 현혹되지 말라. 네 튼튼한 발을, 네 듬직한 지팡이를 믿어라. 갑자기 눈이 열리기 전에 내 앞에 놓여 있던 세게, 익숙해져 있던 세계, 나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간극도 없던 세계로 돌아가거라. 그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래의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차차 새롭게 열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볼 일이다. 문학은 발전해왔는가. 아니다. 변화해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671페이지)

###문학은 변화해왔을 뿐이다. 그 변화의 흐름을 잘 타야 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3.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박지원의 글을 두고 “꽉 짜여져 빈틈없는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저자의 글 또한 어디 한 곳 허술한 곳이 없는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느껴진다.  <한시미학산책>은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하고 집대성한 우리 시대의 명저이다. 앞으로 한시에 관한 이만한 책이 또 나올 것 같지 않다. 불후의 명작으로 꼽고 싶다.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온 한시의 체계를 세우고 또 정밀하게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그리고  시와 현대시도 비교하여 현대시의 뿌리를 확인하게 한다. 옛것과 새것의 단절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단절을 잇고 소통시키는 것이 이 시대 학자의 몫이라 생각하는 저자는 책 곳곳에 현대시를 인용하여 한시와의 관계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시미학산책>에 동원된 방대한 자료에 놀라게 된다. 수레 3대분은 족히 될 것 같다. 저자는 한시를 논하면서 독자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였다. 예를 들면 동양화에 대한 기법을 소개하면서 한시의 구성과 짜임새를 설했다. 

   이 책은 한시와 시인에 대해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시작하여 외면의 겉껍질까지 낱낱이 해부하여 만 천하에 드러냈다. 시와 시인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정도로 샅샅이 드러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책 한 권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시간에 구속받지 말고 조사하고 연구하여 써보는 것이다.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명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리듬감이 느껴지고 끊어지거나 어색함이 없이 물 흐르듯 흐른다. <한시미학산책>을 읽으면서 문장공부를 새로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한 시보다 저자가 해석하고 풀어낸 글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문장을 내 몸에 익히고 싶어 어깨에 파스를 붙여가면서 베껴 써보았다. 독자들은 그의 ‘문체가 유려하다’고 느끼지만 저자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묘사하고 표현하는 장면 장면은 영화 스크린처럼 생생하고 실감난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리는 그의 문장을 보면 단문(短文)이다. 그리고 군더더기가 없다. 700페이지 분량의 책 속에서 ‘그리고, 그래서, 그리하여’ 라는 접속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에 놀랐다. 이 책이 ‘학술서’인데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쉽고도 간결한 문장에 있다.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전달의 방법에 따라 달라짐을 알았다고나 할까.

  -이 책의 목차에 대해-

<한시미학산책>은 학술서이다. 학술서이기에 여긴 담긴 내용들을 빼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교양인문책’으로 출간하여 좀더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챕터는 빼고 싶다. 여섯 번째 이야기-즐거운 오독, 여덟 번째 이야기-일자사의 이야기, 열네 번 째 이야기-놀이하는 인간, 열여섯 번째 이야기- 말장난의 행간 등은 빼고 싶다. 한자에 대해서 문외한이 많음을 감안할 때, 굳이 해독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겹게 만들지 않고 싶다.

 

-마음에 드는 장절-

***시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방법론을 요약(44페이지)

시인은 할 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않고 사물을 통해 말한다는 것이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한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로움에 젖어들게 해야 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한 자신의 감정을 죽 늘어놓는다면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예술과 기교의 차이점에 대해 쓴 부분(66페이지)

대교약졸(大巧若拙)-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런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던지는 한 마디가 예리한 비수처럼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린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림은 이발소 그림, 목욕탕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과 똑같이 그려진 영화관의 간판은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가끔 그 기교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과 기술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시를 쓰기 때문에 가난한가, 가난하기 때문에 시를 쓰는가에 대해 옛사람들이 논쟁거리로 삼았다는 것이 놀랍고도 재미있다. 평소 궁금했던 의문이 해소되는 듯 하다.

  시마는 시 귀신이다. 시마는 어느 순간 시인에게 들어와 살면서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를 생각하게 하고 시만 지게 하는 귀신이다. 시마가 한 번 붙으면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된다. 더욱이 짓는 시마다 절창 아닌 것이 없다. 시마는 시인에게 즐거운 괴로움을 선사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시마는 시인에게 제멋대로 들어왔다가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리는 재미난 귀신이다. 일단 시마가 붙으면 잠시도 시를 떠나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시마가 훌쩍 떠나가면 시를 짓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 뿐 아니라 제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시를 지을 수 없게 된다. (263~ 264페이지)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궁한 까닭에 시가 절로 이와 같이 같게 된다. (355페이지)

***시라는 것은 자기소개서이자 자기추천서의 성격을 띤다. 작품은 작가를 드러낸다는 말을 자기소개서, 자기 추천서라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든다.

문여기인(文如其人),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고 한다. 무심히 내뱉는 말 속에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난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314페이지)


-보완점을 평설할 것-

***‘스물네 번째 이야기-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이 부분은 저자에게도 조금 힘겨운 주제였다고 생각된다. <한시미학산책>중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고,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었다. 박목월, 조지훈, 박용래 시인을 내세워 한시와 현대시의 어떤 연결고리를 찾고 싶어 했지만, 변죽만 울린 격이 되어 버렸다.

*** 여류시인들을 정리하여 한 챕터로 삽입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한시 전체를 아우르는 책이라 여류시인들을 넣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앞에서 충분히 나왔던 시들인데 굳이 산수시, 유선시 이렇게 분류하여 한 챕터씩 차지하고 있다. 이 부분은 독자들에겐 신선미가 떨어졌다. 중국의 여류시인과 우리나라의 황진이를 비롯하여 이옥봉, 허난설헌, 매창 등 조선시대 여류시인들과 신라, 고려 때의 여류시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면 독자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을 것이다. 여류시인들의 시의 변천사랄까 그런 것을 조명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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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0 12:36:53 *.154.223.199

여류시인들만 조명하는 한 장이 있어도 정말로 재미있겠습니다.

문윤정님의 독후감은 공들여 바느질을 한 것, 또는 정성들여 쓴 편지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인터뷰 잘 보았어요. 이전에 정말 만난 적이 있으신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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