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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1일 07시 08분 등록

안녕하세요, 저는 5기 연구원 장성우 라고 합니다.

 

예전에 저희 3기 연구원 박승오군이 4기 연구원에 도전하는 분들께 올린 글(2008년 3월)이 지금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옮겨 봅니다(제가 도전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전 과정에 참고가 되길 빌어 봅니다. 홧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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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달려나가고 계신 4기 연구원 후보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3기 연구원 박승오라고 합니다.

몇몇 분들의 북리뷰와 칼럼을 읽다가 제 첫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저 또한 작년 이맘때에 여러분과 같은 레이스를 했었고, 1년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들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나름대로 그 동안 얻은 북리뷰와 컬럼을 쓰는 노하우(?)를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 저는 연구원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원 커뮤니티가 진정한 학습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이 되려면 과거의 경험을 통해 지식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비록 모든 사람에게 보편성을 갖지는 못해도 말입니다. 제가 앞으로 쓸 내용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과 암묵지에서 나온 것이라 모두에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제게 도움이 되었다면 저와 닮은 성향의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겠군요.

사족이 길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잘 말씀 드리려면 세 단계 - 책을 읽을 때와, 리뷰를 쓸 때, 컬럼을 쓸 때 - 로 나누어서 설명 드리는 것이 편할 것 같군요.


* 책을 읽을 때

- 책을 읽을 때 큰 노트 한 권을 준비해서 펼치세요. 맨 위에 책 제목과 저자를 적고, 왼쪽 페이지에는 <감상 & 컬럼 아이디어> 라고 적으시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내가 저자라면>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모든 아이디어들(그게 일단 말이 되든 안되든) 다 적습니다. 떠오르는 즉시 적습니다. 사소한 작은 하나의 생각이라도 놓치지 마세요.

- <감상 & 컬럼 아이디어>에는 자유롭게 떠오르는 ‘느낌’들을 페이지 수와 함께 적으세요. 예컨대 노트에 “P. 174. 아,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어톤먼트’가 생각나는구나” 라는 식입니다. 이 란은 북리뷰의 중간중간 삽입되거나 컬럼을 쓰기 위한 소재들을 모으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 칸을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번뜩’하고 하나로 꿰어지는 듯한 통찰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 첫 느낌이 죽기 전에 얼른 컬럼의 초고를 후다닥 씁니다. 컬럼의 질은 결코 공들인 시간에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오셨을 때’ 재빨리 붙잡아 두세요.

- <내가 저자라면> 은 제 생각에는 ‘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건설적인 비평’을 하는 공간입니다. 작가의 눈으로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독자의 눈으로 책을 읽다가 살짝살짝 전문적인 저자의 렌즈로 바꿔 끼면서 책을 훑어보세요. 특히 목차의 구성이나, 서문, 각 장간의 연결, 사례 등을 꼼꼼하게 봅니다. 뭔가 하나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느낀 페이지수와 배울만하다(+)/개선여지가있다(-) 여부를 표시합니다. 예컨대 노트에 “P. 147. (+) 이 부분은 3장과 4장 사이의 버퍼(buffer) 역할로, 구체적 사례를 삽입하여 장 간의 연결을 해 두었구나!”라고 간단히 메모해둡니다. 이 때 반드시 페이지수를 메모해두세요. 정리할 때 느낌을 살리려면 그 부분을 필히 다시 읽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저는 책은 지저분하게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연구원 생활이 진행되면서 읽는 책들이 쌓여가면 글을 쓸 때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구절, 그때 했던 생각들이 떠오를 듯 안 떠오르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들이 얽히고 꼬여서 읽었던 책을 찾아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 때에 지저분한 낙서와 포스트 잇, 인덱스 표시, 그 때 떠오른 생각들의 메모 등등이 적혀있으면 인용에 큰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 책은 가능하면 매일 같은 시간에 읽어 습관이 되게 하세요. 저는 이것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부님이 늘 강조하듯 어떤 일이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 때문에 여의치 않을 경우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읽으세요. 출퇴근 지하철에서, 점심 빨리 먹고 남은 30분 등등 자투리 시간을 모으면 꽤 됩니다. 이 시간들을 놓치면 주말에 고생합니다. 주말에 너무 고생하면 다음주에 지치고, 그러면 주말이 또 힘겹습니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 주말에는 되도록이면 도서관 등의 근처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주말에 책과 과제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토, 일요일 중 하루의 반나절은 반드시 휴식을 취하세요. 저는 주로 토요일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토요일 저녁은 꼭 약속을 만들어서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연구원 과정은 롱텀 레이스입니다. 지치지 않으려면 페이스 조절이 필요합니다. 방안에만 죽치고 있다 보면 저처럼 6개월에 15키로 살찌고, 우울증 초기 증세(?)에 시달립니다. 햇볕에 광합성을 충분히 하시고, 사람과 진하게 어울리는 시간을 꼭 가지세요.


* 북리뷰를 쓸 때

- 저자 조사는 과제를 낸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간략하게라도 빨리 해두길 바랍니다. 물론 정리는 나중에 해도 되지만 저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책 읽기에 큰 영향을 미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이름을 치고 죽 훑어봅니다. 좀 유명한 사람의 경우 이름만 쳐서 검색하기 보다는 이름+”인물” 로 검색하거나 이름+”인터뷰”로 검색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인터뷰 자료는 저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 줍니다.

- 인용부분을 틈날 때마다 컴퓨터에 쳐두세요. 저는 보통 책 읽다 지치거나, 즐거운 노래가 듣고 싶을 때, 명상을 하고 싶거나 손이 근질근질할 때 쳤습니다. 인용문을 옮겨 적으면서 다시 뇌에 각인될 것을 기대했었는데, 사실 저는 별로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설거지나 청소, 빨래 갤 때처럼 음악 감상을 하면서, 혹은 간단히 명상하듯이 후딱 쳐 넣는 편이었습니다. 글을 치면서 음미할 수 있다면, 제 방법은 별로 좋지 못하겠군요.

- 떠오르는 모든 느낌을 노트에 충실히 적어두었다면 <감상 & 컬럼 아이디어>는 크고 작은 감상들로 한 페이지가 가득 찰 겁니다. 그 중 ‘작은 느낌’들은 전체 북리뷰의 오프닝이나, <내가 저자라면>을 시작하기 전에 오프닝 멘트로 쓸 만한 조그마한 아이디어들로 넘칠 것입니다. 단락과 단락 사이의 기름칠 역할로 ‘작은 느낌’들을 활용하세요

- ‘큰 느낌’들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저자라면’에 들어갈 만한 내용들이 있을 겁니다. ‘이순신이 장군이라더니 왜 이렇게 눈물이 이렇게 많아?’하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면, 영웅 이순신과 그 이면의 울보 이순신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파고 들어가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문단이나 구조에 대한 것만이 ‘내가 저자라면’에 들어가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삶에서 수용할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소재가 됩니다.

- <내가 저자라면>은 북리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책을 기획하고, 창의적으로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책을 출판한 경험이 있는 1기 연구원 선배들도 이 부분을 잘 쓸 것을 몇 번 강조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부터 세부적인 내용까지 ‘작가의 눈’으로 보는 연습을 하세요. 특히 중요하게, 글을 쓰는 목적이 ‘수용’하기 위함임을 잊지 마세요.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옥의 티 찾기’ 가 되어서는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저도 연구원 초기에 이것 때문에 실수를 많이 했지요.)

- 노트의 <내가 저자라면> 부분에 적어둔 것들을 살펴보세요. 아주 사소한 것들도 다 표시해 두었다면 보통 한 페이지를 훌쩍 넘을 것입니다. 기억 나지 않는 것들은 페이지수를 참조해서 다시 읽어보고, (+)로 표시된 것들과 (-)로 표시된 것들을 묶어서 보다보면, 몇 개의 중요한 논점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것들을 소제목으로 묶어서 풀어쓰세요. 필요하다면 본문의 내용을 인용하여 증거를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부적인 것은 그렇게 묶고 나서 다시 한번 목차를 훑어봅니다.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에 목차를 보는 느낌은 확연히 다릅니다.) 그 책의 구성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들도 얻을 수 있을것입니다.

- 때론 과제 중에 선배 연구원들이 이미 읽은 책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배 연구원들의 북리뷰를 참고하는 것은 좋으나, 자칫 그 구조나 주장에 갇혀버릴 수 있으니 읽으려면 한 사람 것이 아닌 여러 사람 것을 다양하게 참조하세요.


* 컬럼을 쓸 때

- 말씀 드렸듯이, 컬럼의 질은 결코 공들인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일주일 내내 사색하고, 고민하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써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낌이 올 때 ‘첫 느낌’을 놓치지 않고 계속 쓰는 것입니다. 고민이 깊어지면 글이 깊어집니다. 저는 그것 이외의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 하나로 꿰어지는 듯한 통찰이 없을 때에는 노트의 <감상 & 컬럼 아이디어>란에 적어둔 느낌들을 하나하나씩 훑으며 각각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해보세요. 가끔은 그 느낌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일렬로 정렬할 때가 있으니까요.

- 시간이 허락한다면 틈틈이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보세요. 추천해드리는 책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입니다. 단편단편 에세이 식으로 쓰여 있고 얇아서 틈틈이 끊어 읽기도 편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감정에 충실하여 쓰는 방법에 대해 큰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여러 글쓰기 책들도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되도록 틈틈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교에 갇히지 마세요. ‘마음은 없고 기교만 있는 글’은 읽으나마나 입니다.

- ‘연구원 컬럼’ 게시판의 3기 연구원들이 중간중간 올려둔 ‘글쓰기 컬럼’도 참조하세요. 3기 연구원들은 1개월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글쓰기’와 관련한 컬럼을 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 지키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서른 꼭지 남짓의 글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원을 하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글쓰기 고민들의 대부분은 아마 이미 선배 연구원들이 한번쯤은 해 보지 않았을까요?

- ‘초고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는 머리로 써라’는 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윌리엄 포레스터(숀 코넬리)가 제자인 ‘자말’에게 글쓰기에 대해 조언해준 말입니다.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포레스터: 네가 이 자판을 치기 시작하면! 너도 글을 쓰는 거야..
* 자말: ......
* 포레스터: 왜 문제가 있나?
* 자말: 아니요, 생각하고 있어요..
* 포레스터: 안돼! 생각하지 말라고. 생각은 나중에 하렴. 넌 가슴으로 초안을 써야 해. 그리고 머리로 수정을 해야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글을 쓰는 거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 초고를 쓰고 나서 고쳐 쓸 때에는 연구원 컬럼 게시판의 379번 홍승완 1기 연구원의 “편집이 글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글을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사이트 개편 때문에 밑에 덧붙여 두었습니다.

일단,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급히 쓴 글이라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어요. 레이스 시작하기 전에 미리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조교인 탓에 지난 토요일의 북페어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이것은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 성실한 연구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의견으로서 참고할 뿐, 제 조언에 너무 갇히시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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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홍승완 연구원의 '편집이 글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입니다)

 

대학 다닐 때의 일이다. 그날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레포트를 쓰고 있었다. 중간고사 대신에 제출하는 레포트였기 때문에 중요한 레포트였다.. 나는 가장 먼저 레포트를 완성하고 몇 번을 다듬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레포트를 쓰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렵사리 레포트 초안을 완성한 후, 내게 보여주었다.

“승완아, 이것 좀 봐줘. 야, 나는 글 쓰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 이것도 겨우 쓴 거야.”

나는 친구의 레포트를 빠르게 살펴봤다. 내용은 나쁘지 않았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고 거칠었다. 나는 친구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다.

첫째, 주어와 술어를 맞춰라.
둘째, 짧게 써라.
셋째, 문단을 나눠라.
넷째, 3번만 더 고쳐라.

친구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지금 보다 (레포트가) 얼마나 좋아지겠냐! 그냥 이대로 제출할래.”하고 말했다. 나는 “3번만 고쳐 쓰면 지금 것보다 훨씬 좋아질 거야. 내가 장담한다. 한 번 해봐. 중요한 레포트잖아.” 친구는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1시간 쯤 지나서 친구가 수정한 레포트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정본은 처음 것과는 아주 다른 글이 되어 있었다. 긴 문장을 짧은 문장으로 나눠 써서 그런지 잘 읽혔고 어색했던 문장도 많이 줄었다. 단락이 나눠지면서 전체적으로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정작 친구 자신은 초고에 비해 수정본이 얼마나 좋아진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하며 여전히 미심쩍어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우선 편집의 필요성을 알았다. 편집이 글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로 사람들이 의외로 편집의 힘을 쉽게 간과한다는 것을 배웠다. 편집 습관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글에 쉽게 갇힌다. 자신의 글에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책 한권을 출간하는 것을 애를 낳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이것은 아이가 생기고 출산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즐거움과 어려움이 책을 쓰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나온 비유일 것이다. 절묘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글 한 편을 완성하는 과정에 출산과 양육 과정이 모두 들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초고를 쓰는 것은 출산이다. 어렵고 힘들 게 초고가 나올 때도 있고 물 흐르듯이 쉽고 매끄럽게 완성될 때도 있다. 때로는 초고 하나를 완성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만, 운이 좋은 날은 몇 십 분만에 완성할 수도 있다.

초고를 쓰는 일이 아이를 낳는 출산이라면, 초고를 고치고 다듬는 편집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아이를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시키는 데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똑똑하고 좋은 자질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애정을 가지고 잘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교육시켜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초고를 썼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쳐 쓰고 다듬어야 비로소 좋은 글이 된다.

편집이 이렇게 중요한데도 어떤 사람들은 편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그것에 시간과 노력을 그다지 쏟지 않는다. 왜 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게으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정신적 작업이자 육체노동이다. 머리를 써야 하고 손을 움직여야 하며 시간을 들여야 한다. TV 시청보다 독서가 능동적이고, 글쓰기는 독서보다 더 강한 능동성을 요구한다. 편집 역시 정신적 작업이자 육체노동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보다는 단조롭기 쉽고 반복적인 작업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두 번째, ‘수정 할 글 = 잘못된 글’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정을 많이 해야 하는 글은 애초에 잘 못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글은 고치거나 다듬을 필요조차 없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글은 수정보다는 폐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한 번에 좋은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착각이고 실상은 그 반대이다. 글을 많이 쓰고, 여러 번 고치는 사람의 글이 좋다.

세 번째, 글에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편집은 글을 양육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가 아이를 잘 키울까?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편집도 마찬가지이다. 글에 애정이 없는 사람일수록 편집에도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네 번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말이지 시간이 부족하여 편집을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경험을 돌아보면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게으름과 애정의 부족이라는 이유가 시간 부족이라는 가면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편집은 무엇인가? 편집은 빠진 것을 새로 넣고 삭제하고, 더하고 줄이고, 재배열하고 대체하는 과정이다. 흐름과 논리에 빈 공간이 보이는 곳은 채워주고 불필요한 단어나 문장은 삭제한다. 메시지를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설명을 추가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은 덜어낸다. 글의 진행이 매끄럽도록 문장이나 문단을 재배열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이런 것이 편집이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편집의 중요성을 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사무라이가 되어 글을 쓰라.”고 말한다. 자신이 쓴 글에서 어느 부분이 살아 있고 죽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편집이다. 죽은 곳, 죽여야 할 것은 무사처럼 잘라내야 한다. 죽은 곳이 많은 글은 읽는 이를 죽이지는 않겠지만 아주 쉽게 잠들게 만들 수는 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스티븐 킹이 고등학교 3학년시절 어느 잡지사의 편집자로부터 “수정본 = 초고 - 10%. 행운을 빕니다.”라는 친필 메모를 받았다. 스티븐 킹은 이 간단한 메모가 자신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는 이 공식을 벽에 붙여 두었다. 그에 따르면 그 후부터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편집을 잘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러니 열심히 하자.

편집의 구체적인 과정을 글로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보면 그렇지 않은 데 말이다. 그보다는 편집에 유용한 팁 몇 가지를 기억하고 활용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첫째, 숙성의 시간을 가져라. 편집의 효과적인 테크닉 중 하나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에 키가 자라듯이 글도 재워야 한다. 초고를 재워두는 동안 우리의 의식은 숨어서 작업한다. 적당히 초고를 재운 뒤 깨워라. 깨워서 보면 채워야 할 빈 구멍이 보이고, 빼야할 것이 보인다. 재배열해야 하는 곳과 다른 내용으로 대체해야 할 부분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 역시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10분이라도 재워라.

둘째, 주어와 술어를 맞춰라. 의외로 주어와 술어가 따로 노는 문장이 많다. 이런 문장은 뇌에 부담을 주고 독서를 방해한다. 때로는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생각할 겨를 주거나 글의 흐름을 원활히 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장의 기본은 주어와 술어가 손잡고 함께 가는 것이다.

셋째, 문장을 짧게 써라. 하나의 긴 문장은 지루하다. 긴 문장을 쓸수록 문법상의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문장에서 주어와 술어를 잘 맞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짧게 쓰는 것이다. 짧은 문장의 큰 장점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짧은 문장은 속도감을 더한다. 특히, 핵심 메시지는 가급적 짧게 쓰는 것이 좋다. 짧은 문장이 크게 울린다.

넷째, 문단을 나눠라. 메시지와 부연 설명, 이것이 문단의 기본 구성이다. 한 문단에 여러 개의 메시지를 섞지 마라. 하나의 문단에 메시지가 섞이면 전달이 어렵고 기억하기는 더 어렵게 된다. 문단을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다. 초고를 쓰면서 호흡을 가다듬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문단을 나눠라. 어렵지 않다. 한 줄만 띄면 된다. 초고에서 문단을 나눠두면 편집하거나 다듬기도 쉽다.

다섯째, 3번은 고쳐라. 초고는 한 번에 써도 된다. 실제로 일필휘지(一筆揮之)한 초고가 생각보다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편집은 다르다. 편집은 창조라기보다는 정리정돈이다. 정리정돈은 한 번에 하기 어렵다. 초고를 마음으로 쓰거나 손 가는 대로 쓴 경우는 더욱 그렇다. 초고를 쓸 때는 창작가이자 예술가가 되어야 하고, 편집을 하는 동안은 비평가이자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반대가 되면 안 된다. 초고를 쓰면서 비평가나 편집자가 되면 글쓰기는 즐거움이 반감되면서 고된 노동이 된다. 편집을 하면서 창작가이자 예술가가 되면 혼자만 알 수 있는 독단적인 글이 되거나 함량 미달의 글이 된다.

내가 보기에 편집은 세 번은 해야 한다. 이 말은 초고를 세 번은 읽고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첫 편집에서는 전체적인 그림(주제와 뼈대)을 조망하고, 두 번째는 흐름(문단)을 살피고, 세 번째는 글의 기본단위(문장과 단어)를 정돈하라. 편집 과정은 대관(大觀)에서 세찰(細察)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정돈하라. 그대가 가장 최근에 본 영화를 떠올려 보라. 그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무엇인가? 대부분 처음과 끝장면은 기억한다. 영화감독들은 첫장면과 끝장면의 중요성을 안다. 그래서 다른 장면에 비해 이 두 장면에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강연도 마찬가지이고 글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좋은 첫 문장은 읽는 이가 그 글을 계속해서 읽고 싶도록 만들어준다. 최고의 마지막 문장은 핵심을 정리해주거나 ‘아하’하는 통찰을 전해주거나 여운을 준다.

일곱째, 리듬감을 살려라. 편집에 있어 글의 리듬감을 살리는 것은 옵션으로 볼 수 있다. 노래에 리듬이 있듯이 글에도 리듬이 있다. 물론 리듬감을 살린답시고 장황설을 늘어놓거나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부한 비유 역시 곤란하다. 진부한 비유는 쓰는 당사자나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지 않다. 리듬감을 살린다는 것은 독자에게 읽는 맛을 주는 것이다. 리듬감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문장의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단문과 장문을 섞어라. 긴 문장이 계속되면 지루해지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문장이 나열되면 산만해지며, 짧은 문장이 이어지면 단조로워진다. 전달력과 설득력 그리고 글의 명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길이가 다른 문장들을 섞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글을 많이 쓸수록 편집의 기술은 늘고, 편집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글쓰기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많이 쓰는 것이다. 글쓰기 경험이 쌓이면 편집 방법이 내면화되면서 이내 습관화된다. 습관이 되면 글을 쓰는 중에 무의적으로 편집이 이뤄진다. 편집이 자동적으로 프로그래밍화되는 것이다.

한 번 더 말한다. 초고는 출산이고, 편집은 양육이다. 편집이 글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편집에 공을 들이면 내 아이가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칭찬 받는 것처럼 다른 이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글을 스스로 칭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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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07:14:00 *.45.129.181

최소한 방법을 몰라 열정이 사그라지고 희망이 좌절되는 경우는 없기를 기원합니다. 모두 홧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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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09:21:30 *.123.71.120

감동입니다. 선배님...사실 열정만 앞섰지 뭘 어떻게 해야할지 해메고 있었던 듯 합니다. 또한 두렵기도 했구요.

미천한 리뷰에 답답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고마운 조언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2주차 리뷰는 선배님들의 경험을 잘 받들어 좀 더 성숙한 리뷰가 나올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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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09:26:57 *.154.223.199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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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2.21 12:05:51 *.85.249.182

좋은 글, 가르침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저도 연구원이 되어 선배님들과 함께 호흡하고 토론하고 싶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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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3:05:09 *.216.38.18

2기 연구원 정재엽입니다.

전에도 이 글을 읽었지만, 다시 읽으니 정말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연구원 수료 이후 책을 읽을 때 다시 안이한 방식의 예전 책읽기 습관으로 돌아갔는데,

저 또한 이글을 읽고 초심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예비 8기 여러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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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3:40:07 *.142.242.20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좋은 글을 써낼 수 없는 초보자에게 이렇게 유용한 방법들과 격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ㅠ.ㅠ)

북리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막연했었는데 읽어내려가는 것에 급급해 하지 말고 '느끼면서' 읽어야겠습니다. 제가 어떤 현상이나 글, 또는 영화들을 볼 때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에 서투른 편입니다. 레이스도 하나의 수련일텐데 이 과정을 통해 제 안에 잠재 되어 있는 감수성이 살아나고 양서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느낌' 이 되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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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3:43:41 *.247.141.181

아 정말 유용한 tip이네요,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감사합니다 ^^

좀 더 힘을 내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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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3:53:12 *.182.111.5

선배님의 아낌없는 조언 감사드립니다. 그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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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3:54:02 *.47.152.145

현재의 저에게 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결국은 게으름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메모를 해가면서 읽는 것이 좋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할 뿐 결국 읽는 것에 급급해하고 있었고 쓰는 것에 급급해하고 있었던 제 자신이 확실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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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7:26:15 *.187.211.82

희산님, 정말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

아직도 함께 오프닝 연습하던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듯해져 옵니다.

이렇게 8기 지적 레이스에 관심가져 주시고, 이 여정을 위한 고급정보! 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 정보를 바탕삼아 열심히...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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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2.21 21:11:40 *.85.249.182
 

<내가 저자라면> -'감동적이었던 장절 그리고 보완점을 평설할 것 ' 이 부분 이해가 잘 안됩니다.

누가 설명좀 자세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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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23:57:17 *.176.68.148

이 부분은 예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가 5기 레이스 시절에 에이미 추아 교수의 '제국의 미래'에 대한 북 리뷰 때 썼던 <내가 저자라면> 부분을 인용합니다. 절대 이것이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니구요(자랑질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책의 주요 특징/장점과 그로 인해 좋았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완되어졌으면 하는 부분을 미래 작가의 관점에서 냉철히 분석하고 그 내용을 적절히 기술하라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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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자라면

 

책의 주제와 내용

 

에이미 추아 교수는 본 저서에서 “초강대국이라는 조건에 부합되는 사회들을 고찰하고 각각의 나라들이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용이 어떻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밝히고자”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녀는 아주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가정에서 출발하는데 “한 사회가 전 세계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기술적, 군사적,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의 최첨단에 서 있어야 하며, 이는 전 세계 유수의 인적 자원을 끌어들이고 활용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전세계의 우수한 ‘사람에게서 구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한 민족이나 지역에서만 우수한 인재가 날 수 없으므로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그들을 포용하는 전략적 관용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아주 명쾌한 논지를 펴고 있다.

 

그녀는 역사적으로 제국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핵심 요소를 ‘전략적 관용’에서 찾았는데, 이러한 역사적 근거를 중심으로 대내적으로는 관용과는 먼 WASP 중심의 정체성으로의 회귀 시도와 대외적으로는 주변국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우월한 군사력을 강제적으로 동원하여 심으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중지하고, 기존의 미국이 200년 이상 유지해온 미국의 핵심 가치, 즉 이민자 중심의 민주주의 공화정을 내부적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조언 혹은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본 서의 핵심 메시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공감’의 심상이 동시에 떠올랐다. 중국계 이민자로서 어릴 때 느꼈던 이질감, 하지만 성장하면서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 내에서의 성공을 통해 새로이 찾은 자신의 가치관과 자긍심, 그것에서 출발된 자신의 새로운 조국에 대한 ‘사랑’과 ‘걱정’,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자신의 인종적 모국에 대한 ‘향수’와 ‘관심’. 이러한 복잡한 마음들이 어우러지면서 세계적인 안정과 발전을 위해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의 전략적 활용 방안’이 지극히 중요함을 이해하고 이에 ‘건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받은 긍정적 영향

 

제국의 변화를 예를 통해 적절히 보여준 것이 좋았다. 특히 네덜란드 사례는 알지도 못했고 제국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제국의 역사에 있어 정복에서 교역으로, 육군에서 해군으로의 제국의 힘의 본질적 변화를 촉발한 사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17세기 네덜란드의 힘은 ‘부’에 있었다. 그리고 부를 창조하는 가장 큰 동력은 정복과 약탈이 아니라 교역과 혁신임이 증명되었다. 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방법은 정복이 아니라 관용이었다. 억압은 사람을 떠나가게 하지만, 관용은 사람을 제국의 가치에 스스로 귀화하게 만드는 접착제 구실을 한다. (구본형, ‘The Boss-쿨한 동행’, 266p)”는 점을 다시금 명확히 알게 되었다.

 

또한,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존의 역사 서적들은 돈, 부존 자원 및 군사력을 중심으로 과거 국가의 힘을 서술하고는 했는데, 추아 교수는 더 나아가 그러한 자원을 누가 제공했는지(특히, 錢主로서 유대인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고 그 역할이 중요했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핵심적인 군사들은 어떤 인력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 인력(민족) 이동의 측면에서 과거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좋은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책의 특장점 및 시사점

 

이 책은 엄청난 참고 문헌을 참조하고 있다. 약 400여 개의 참고 문헌 목록을 첨부하고 있는데, 여기에 실리지 않은, 즉, 본 저서의 주장과 연관성은 있지만 인용되지 않은 또 다른 엄청난 양의 논문들을 역시 리뷰 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작업은 혼자의 힘으로 수행하기 힘들다. 뒤에 감사의 글에 보면 모두 22명의 연구 보조원들과 50여 명의 대학원 제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 책은 에이미 추아 교수의 승리이자 정확히는 에이미 추아 교수 연구팀의 승리이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외교 전략적 정책에 대해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이런 내용을 기획하고, 과거의 사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수집하고, 다수의 연구원을 리딩하여 저술하고, 양질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저력에 감탄한다.

 

이러한 부분은 변경연의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좋은 참조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분야는 아니겠지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인문 사상적 서적을 변경연 팀의 힘으로 저술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변경연에서도 이와 비슷한 승리를 기원한다. 나는 다가오는 10년이 몹시 힘든 고난의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계의 경제 위기의 해결 과정에서 기존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가 새로이 정비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 우리가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정치 경제적 시스템이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세계적인 새로운 변곡의 시기에 인성의 본심으로 돌아가 인문학적인 기본이 경제학적 발전과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통찰과 지침을 우리의 힘으로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목민심서’, ‘경세유표’가 변경연의 힘으로 만들어져 이 땅의 민초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책의 보완점

 

먼저 앞서 언급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일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서 혹은 학술 논문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어 가독성을 위한 시각적 도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 교양 역사서가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 위한 목적의 저술임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를 위한 기본적인 시각적 도구들의 제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그 당시의 지도나 지정학적인 정보, 역사 기록물 등의 사진을 적절히 가미해 주었으면 훨씬 더 당시 상황이나 저자의 주장에 대한 이해가 수월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각 장의 말미에 해당 장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의 요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정리해 주고, 그 시대에서 중요했던 사건 혹은 인물의 연표를 제시했으면 보다 user-friendly한 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목적과 구성의 불균형 부분이다. 본 책에서 저자는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연스럽게 혹은 자연스럽게 전략적 관용이 제국의 성패를 좌우라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발견적 접근 보다는 사전에 전략적 중용의 중요성을 설정하고 그것의 근거를 찾기 위해 과거의 초강대국들에 대해 많은 연구원들과 팀을 이루어 연구하고 작업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랬다면 이는 전략적 관용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역사적 근거의 제시에만 치우치기 보다는 실제로 전략적 관용이 간과되는 현실적 상황의 문제점과 미래 예측, 더 나아가 대안 부분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해서 각각 별도의 장으로 구성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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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00:14:54 *.176.68.148

레이스 중에 선배들은 중립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선배들은 여러분 개개인의 글(혹은 댓글)에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다만 지켜봅니다. 그 지켜봄은 조회수로 가늠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는 댓글은 한명이 아닌 모두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읽어보시고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힘들어도 홧팅입니다^^.

 

"세상사 털어 버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밧줄 끝을 단단히 잡고 온 힘을 쏟아 덤벼라.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
어찌 매화 향기가 그대를 어지럽게 하리."

--- <선의 황금시대> 오경웅 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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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16:06:01 *.46.48.253

선배님의 글에서 저또한 크게 배웁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참 많네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가족들은 돌아와 오손도손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다가오는 봄기운을 느끼며 웃고 떠들 시간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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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3 08:22:32 *.45.129.181

저 글은 언제봐도 명문이야. 가끔 풀어질 때 다시 읽으면 죽비처럼 탁 내리치는 글이기도 하고.

 

나 일에 함몰되어 살고 있음ㅋ. 그래도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새로운 기술 배워서 발표하고 내부 교육하고 등등) 기쁘게 하고 있음^^.

 

가족은 7월말에 돌아와. 7월 중순에 가서 2주 정도 같이 여행하고 돌아올 예정인데.... 그래서 이번에도 변경연 여행은 같이 못갈듯 ㅠㅠ.

 

연구원 여행 때 얼굴 볼 수 있겠지. 그 때까지 경수도 홧팅하고 잘 지내삼^^.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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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06:25:13 *.71.47.132

선배님들의 조언에 감사합니다!! 애타게 찾던 부분을 꼭 찝어서 얘기해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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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2.22 08:46:12 *.85.249.182

선배님께서 참고로 올리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구하는 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경연의 연구원들의 높은 수준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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