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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7일 10시 26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

 

출생: 1954년1월 15, 충청남도 공주

학력: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경력: 1980~2000년 한국IBM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떠남과 만남,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코리아니티 등 다수

 

 깊은 인생의 작가 구 본형은 4남매(22)중 막내. 어머니는 일찍(중학교1)돌아가시고, 아버지도 ‘87년 작고.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도 치렀고, 공무원도 하시고 그러다가 사업을 하셨는데 잘 되지 않으셨다고, 생활력이 좋으신 분은 아니 셨었던 듯. 술을 좋아하셨고 부드러운 분이셨다고 한다. 중학교 때 등록금을 내지 못하여 집으로 쫓겨온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것이 저자에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꽤 낭만적이다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반면 저자는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구나,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학과를 전공하고 존경하는 스승을 따라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수가 꿈이었던 남자다. 암울했던 시대에 스승이 교단을 떠나고 저자는 취직을 한다. 당시만 해도 국내기업은 전공 제한을 두면서 직원을 뽑던 시절이라 역사학과를 졸업한 저자가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이 외국계기업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IBM이라는 다국적기업. 당시의 국내기업보다 근무환경도 좋았고 나름 보람도 느끼며 근무하던 저자는 1991년 한국IBM 경영혁신팀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IBM은 변신과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던 시기였다. 회사 자체적으로 혁신 전문가를 양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차에 본사로부터 심사관(아시아 태평양 조직의 경영진단과 평가를 수행하는 자리) 제의를 받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제안을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사전교육 없이 옵저버자격으로 현장학습에 참석한다. 심사기간 내내 현장에 앉아 있으면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참석자중 제일 영어를 못하는 사람으로 어두운 그늘 속에서 며칠을 보낸다. 처음으로 본인이 세계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자리였지만 정작 본인은 어두운 그늘 속에서 지내야 했다. 그 며칠의 체험이 그를변화경영전문가”라는 비전을 갖게 만들었다. 끝이 있는 직장을 넘어 평생의 업 業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저자는 더 이상 직장인으로서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본인의 비전을 위한 일을 한다. 어떤 직장인보다 애정을 가지고 정렬적으로 본인의 일을 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최고의변화경영전문가라는 비전을 가지고……

 

1997년 여름 한달 동안 단식을 한다. 밥이라는 절체절명 앞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단식을 하며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글을 써라! 글을 써보고 싶지 않았느냐! 라고 하는 그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그때 저자의 나이 43세이다.

6개월 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란 첫 책이 탄생한다. 단식을 하던 어느 날 그의 내면에서의 외침을 알아듣던 그날이 저자에게는 분기점이 된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분기점……

 

2000년 드디어, 20년간 직장인 이었던 저자는 마흔 여섯에 변화경영전문가라는 1인 기업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벽4에 일어나 매일 두 세 시간씩 글쓰기를 한다고 한다.

 

2012년 현재 17권의 책을 썼고, 매년 책을 출간하는 인기 작가가 되었으며 변화경영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명 강사의 자리에 있고 함께 꿈을 꾸며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며 따르는 다수의 연구원이 있으며, 이제 새롭게 자신의 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도우미역할을 하면서 지낸다. 변화경영전문가에서 변화경영 사상가로…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또 요즘은 시처럼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출처 : 저서 깊은 인생

http://trendacademy.tistory.com/262/ http://cafe.daum.net/kcash/GKP6/208

http://we.humanistbooks.com/magazine/interView.aspx?sercode=AM0004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7311

http://www.wefinews.co.kr/uprint/68285

 

 

개인적 평가

 

내가 읽은 저자의 책은익숙한 것과의 결별’ ‘떠남과 만남이 후 깊은 인생이 세 번째 책이다.

어떤 책을 먼저 보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8년 나는 26년 다닌 직장을 그만 두었다. 다른 직장을 가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자발적인 퇴직이었다고 하기에는 좀 아닌 부분이 있었다. 당시의 나의 많은 고민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저자에 대하여는 기억이 없었다. 아마 습관적으로 저자를 잘 살피지 않는 나의 독서습관 때문이었으리라. 저자의 많은 책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과 궤를 함께하는 내용들이어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그 동안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도 방랑과 침묵의 시간, 그리고 일만시간이라고 하는 연습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저자와 함께한 꿈벗프로그램에서 조금은 가까운 곳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짦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인생에서 이야기하는 비전에 대한 공감이 온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고 유명해지면 조직이나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인 듯 한데, 지금 내가 도전하고 있는연구원제도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나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수직적보다는 수평적인 관계에 의미를 두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부분은 다 이해가 잘 가는데시처럼 살고 싶다라는 부분은 아직 나에게는 공감이 좀 덜하다. 공감이 덜하다기보다 딱 잡히는 뭔가가 아직 내게는 없다. 기회가 되면 좀 자세히 여쭙고 싶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깨우침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

 

마리츠버그 역. 기적의 정자-간디

 

한 백인 승객이 열차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나를 보자 당황하는 듯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두 명의 역무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또 한 역무원이 들어왔다. 그가 내게 말했다. “너, 이쪽으로 와. 너는 화차로 가.” 나는 그를 쳐다 보았다. 가지고 있던 일등실 차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나는 일등실 차표를 가지고 있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다시 말한다. 화차로 가!” “잘 들어요. 나는 더반에서 일등실을 탔고, 앞으로도 일등실로 갈 생각이오.” 역무원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완강해져서는 좀더 거칠게 말했다.

“안 돼. 내려. 당장 내리지 않으면 경찰이 끌어내리게 하겠다.

“경찰이 끌어내리게 하시오. 내 발로는 내리지 않을 테니까.

 결국 경찰이 왔다. 그는 내 팔을 잡고 떠밀었다. 나는 끌려 내려왔다. 내 짐도 내려졌다. 나는 화차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 기차는 나를 남겨두고 떠났다. 대합실에 앉았다. 손가방은 내 옆에 있었지만 다른 짐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역무원이 어딘가에 보관했을 것이다. 마리츠버그는 해발이 좋은 곳이었다. 남아프리카의 고원 지역은 겨울이라 혹독하게 추웠다. 외투는 짐 안에 있었지만 가져다 달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또 나를 모욕할 것이다. 모욕이 두려웠다. 대합실에는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나는 추워서 몹시 떨었다. 필사적으로 나의 의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늘 나와의 대화가 필요했다.

 난 번호사야. 내 권리도 보호할 수 없다면 누구의 권리도 보호할 수 없어. 그러면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되돌아가야 할까? 그래, 굴욕을 당해도 견디자. 프리토리아에 도착해서 재판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가자. 중도에 돌아가는 것은 사내가 할 행동이 아니아. 이 고난은 표면적인 거야. 깊게 뿌리내린 인종 편견이라는 업병業病의 징후일 뿐이야. 내게는 힘이 있어.

이 뿌리 깊은 병을 제거할 힘 말이야. 나는 이 힘을 써야 해. 이 힘을 쓸 때의 고난은 스스로 견뎌내야 해. 고난에 항거해야 해.

 나는 그 밤의 추위를 견뎌냈다. 그리고 다음 열차로 어떻게든 프리토리아로 가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총지배인 앞으로 장문의 항의 전보를 쳤다. 나를 남아프리카로 부른 부유한 상인 다다 압둘라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그의 파트너인 압둘라 세드가 총지배인을 만났다. 총지배인은 부하들이 한 짓을 변호하면서도 역장에게 지시하여 나를 무사히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밤이 되자 열차가 도착했다. 그것에는 나를 위한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 열차를 타고 찰스 타운에 도착했다.

 

 찰스 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마차로 가야 했다. 나는 역마차 표를 가지고 있었다. 마리츠버그에서 하룻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역마차 표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러나 역마차 측에서는 내 표가 무효가 되었다고 우겼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차마 찬에 탑승하게 되어 있지만 나는 승객이 아닌쿨리”로 여겨졌다. 그들은 마부 석 옆자리에 나를 앉히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이었다. 그것은 원래 백인 차장의 자리였다. 하지만 그 차장은 내 자리인 마차 안 승객 석에 자신이 앉고, 승객인 나는 차장 석에 앉히려 했다. 또 싸워야 할까? 내 마음은 다시 갈등에 휩싸였다. ‘여기서 싸우면 역마차는 떠날 거고 나는 하루를 또 허비하게 될 거야. 그 다음 날 어떻게 될 건지도 신만이 알아.” 나는 모욕을 참기로 했다. 마부 석 옆자리에 가 앉았다.

 세 시간이 지났을 즈음, 그 백인 차장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지 밖으로 나와 내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는 더러운 마대 하나를 발판에 던지며 내게 말했다.

“이봐, 세미, 너는 여기 앉아. 마부 옆 네 자리에는 내가 앉을 테니.” 나는 이 모욕은 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려웠지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승객인 나를 이곳에 앉혔지만, 나는 그 굴욕을 견뎠소. 내 좌석은 마차 안에 있는데도 말이오. 이제 당신은 담배를 피우려고 밖으로 나와서는 여기 앉으려 하오. 나를 발 밑 더러운 마대 위에 앉히면서, 하지만 난 당신 발 밑에 앉지 않을 것이오. 안으로 들어가 원래 내 자리에 앉겠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먹이 날라왔다. 그 백인 차장은 내 필을 잡고 끌어내리려 했다. 나는 망령이라도 된 듯 마차의 놋쇠 손잡이를 잡고서 손이 부러지더라도 놓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백인은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그러나 나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보다 못한 승객 몇 사람이 나를 안으로 들어와 앉게 하라고 말했다. 그 백인 차장은 “절대로 안 되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창피했는지 내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서 마차의 다른 쪽 의자에 나를 앉히고는 계속 노려보며 험한 말을 지껄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살아서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밤이 되자 마차는 스탠더턴의 경유 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나를 고용한 점포에서 인도인 몇 사람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날 나는 역마차 대리점에 내가 받은 부당한 처사에 대해 긴 편지를 썼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차 안에 내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리점에서는 그렇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를 때린 그 백인 차장은 다음 날 탑승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해주었다. 나를 때린 그 사내를 고소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게 합당한 자리가 주어졌기에 그것으로 마무리했다. 내가 두렵지만 싸움을 계속한 것은 나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인도인 전체가 당하는 부당한 대우에 맞서고 있다는 신성한 사명감에 점점 빠져드는 듯했다. 드디어 내가 탄 마차가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프리토리아로 가는 열차를 다시 타야 했다. 나는 다시 일등실을 요구했다. 압둘라 세드는 난감해했다. 그는 내가 일등석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나라는 당신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프리토리아는 일등실에 타서 갈 수 없어요. 여기는 나탈보다 더 차별이 심하단 말입니다.

 “걱정 마시오. 내가 한번 직접 구해보겠소.

나는 먼저 역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 나는 법정 변호사이며 언제나 일등실 차편으로 여행하고 있다고 알렸다. 그리고 일등실 발권을 기대한다고 썼다. 그들이 그저 나를 쿨리 변호사라고 생각하고 조롱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프록코트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한 다음 역장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역장 앞에 금화를 꺼내놓고 일등실 표를 요구했다. 내 생각에 정장은 말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돈은 모든 것의 대변자이며 좋은 옷과 금화는 힘이 셌다. 역장이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군요.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고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당신 입장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가 일등실 차표를 끊어주겠소. 그러나 차장이 당신을 끌어내리거나 삼등실 자리에 앉게 하더라도 나를 끌어들이지는 마시오. 즉 철도 회사를 고소하지는 말아달라는 겁니다. 여행을 잘 끝내기 바랍니다. 당신은 신사입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역장은 일등실 차표를 내 주었다. 나는 그의 호의에 감사했다. 열차가 오자 나는 일등실에 앉았다. 차장이 검표를 하러 올라왔다. 나를 보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말했다.

“삼등실로 가.” 나는 일등실 승차권을 보여주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삼등실로 가

그 일등실에는 영국인 승객 한 사람만이 타고 있었다. 그때 그 승객이 차장을 꾸짖었다.

“왜 그 신사를 괴롭히는 거요. 일등실 표를 가지고 있지 않소? 그 신사와 같이 있어도 나는 아무렇지 않소.” 그러더니 그 승객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심하고 그대로 계시오

차장이 투덜거렸다.  “손님이 쿨리와 함께 앉아 가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차장은 갔고, 8에 기차는 프리토리아에 도착했다. 나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23~29P

 

-나는 아직도 사내가, 남자가, 여자가 이런 단어에 민감해진다.

 

프로토리아에 도착한 나는 동족들을 모았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에 대처하기 위해 그들을 규합했다. 그 규합은 성공적이었다.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인도인도 “옷차림이 적절하다면일등실이나 이등실에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날의 회합이 바로 일개변호사였던 내가 정치적 지도자로 전환한 첫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내가 걷게 된 정치운동의 사명이 바로 마리츠버그의 기차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술회하곤 했다. 29~30P

 

처음에는

마리츠버그의 추운 하룻밤이 그저 우연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니 다른 사람에게는 우연이고, 당하면 얼른 잊어야 하는 불쾌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우연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일등실 표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나는 일등실에 앉아 여행할 수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법은 그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라는 것을 지지해주었다. 따라서 나는 이것을 세상에 주장할 수 있으며 결국 내가 이기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자신의 미래에만 민감한 한 젊고 어설픈 변호사에서 인도인의 권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이 한 차원 도약한 것이다. 이제 일등실에서 여행하기 위한 투쟁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모험이 되고 싸움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 일등실 차표와 일등실 마차 표를 가지고서 나는 주장하고 편지를 써대고 항의하고 끝내 내 권리를 얻어내는 것이 나탈에서 프리토리아까지 가는 여행의 목적이 된 것이다.

만일 내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이 우연은 내 운명의 서곡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30~31P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우연은 비로소 필연적 운명이 될 수 있었다. 장전된 대포에 불이 붙듯, 준비된 바탕 위에 우연이라는 불길이 나를 터지게 했다. 나는 정치가의 세계로 쏘아 올려졌다. 변호사 간디에서 정치가 간디로, 그리하여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내 운명이 된 것이다.  31P

 

 

모든 우연이 다 필연이 되지는 못한다. 우연은 우연으로 흘러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직 특별한 우연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주와 공명하고 있다는 일대 각성에 이르게 한다.  33P

 

마리츠버그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강한 일개 사건이었다. 그런 일이 간디에게만 일어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그곳에서는 유색인종이라면 누구나 일등실을 타게 되면 겪어야 할 수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간디만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했던 것일까? 33p

 

그 우연한 사건은 영혼의 각성을 촉구하는전령관이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는 모험에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 마리츠버그의 우연은 그에게 역사적 사명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었고, 간디는 정신적 통과의례를 거쳐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삼의 지평은 너무 좁아 더는 그의 영혼의 크기에 적합하지 않게되었다. 그는 바야흐로 또 하나의 삶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34p

 

조지프 캠벨은 일반적으로 이런 역사적 소명을 받는 장소나 사건은 대개 깊은 숲속이나 큰 나무 아래, 으로 상징되는 어둡고 험하고 추한 곳일 때가 많다고 말한다. 34p

 

어떤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얽혀 있다는 점을 말이다. 간디가 마리츠버그의 모욕을 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사건이 그의 존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건 이전에 이미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미 그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중재력을 가진 도덕적 정치가간디가 도사리고 있었고, 영혼 속에그것이 그의 운명이라는 각인이 깊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마리츠버그의 사건은 다만 미래를 암시하는 전령관이고 도화선이었다. 34p

 

악기를 다루는 능력이나 수학적 천재성 혹은 남다른 운동신경은 어려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중재자로서의 자질은 어려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도덕적 중재력이라는 간디의 선천적 특성은 어린 시절을 거쳐 오는 동안 잘 훈련된 기회를 가졌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부모도 그의 남다른 재능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도덕적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기꺼이 허용해주었다. 35p

 

성 아우구스티누스, 에이브리햄 링컨, 마틴 루서 킹 같은 우대한 지도자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서 애쓴다. 36p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우연도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자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37p

결국 그는 학교에서 제적되었으며, 4개월 동안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4개월이 그를 바꾸어놓았다. 거기서 그는 처음에는 험악하고 무서워 보였던 사람들이 오히려 착하고 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다. 출옥한 후 그는 고시에 합격하여 검사 생활도 하고, 변호사 생활도 했다. 그러나 그는 법조계의 인물로 남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교도소의 경험이 없는 내 인생은 상사하기 어렵다.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쯤 검사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교도소를 경험하여 갇힌 자가 되었으며, 약자와 함께 보낸 추억이 있었기에 인생에서 늘 약자의 편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역사의 중심에서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게 되었다.

 약한 사람에 대한 공감 탐욕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 역시 그 우연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운명적 사건 이후 과거의 그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39p

 

그는 이 여행에 대해 기록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여행에서 돌아와)아르헨티나 땅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그 깊이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39p

 

그는 여행길에서 우연히 칠레의 한 노동자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 추운 밤 담요 한 장 없이 부둥켜안고 자는 노동자 부부에게 그는 하나뿐인 이불을 건네주었다. 그는 당시 경험에 대해 “그것은 가장 추웠던 경험 가운데 하나지만 낯선 이 인류에게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여행에서 이런 장면들과 무수히 마주치면서 의사도 성직자도 아닌 혁명가로서의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40p

 

우연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만남이 된다. 성감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우연에 민감하게 반응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우연은 그저 우연으로 지나가고 말 것이다. 오직 그것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만이 자신에게 다가온 우연을 인생의 변곡점으로 잡아둘 힘을 가지게 된다.

 누구의 길이 옳은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어떤 계기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들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알고 싶은 것이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마다 그 사람만의 다르마(Dharma), 즉 운명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되는 것이다. 44P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끈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일이 없었다면 그저 막연하고 피상적 지식에 그치고 말았을 지식을내가 연루된 직 집적인 사건에 적용하게 함으로써 위대한 지적 도약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깨달음의 실험장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일을 겪는 수간 우레와 천둥처럼 우주적 공명을 겪게 된다. 큰 길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길은 인간이 계획한다. 우리가 준비되면 우주는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사건을 만들어준다. 우연의 이름을 가진 필연으로 말이다. 42p

 

그늘 체험, 단명한 직장인이 평생의 소명을 찾다.

 

나는 그 팀에서 평가 모델을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채 참석한 유일한 옵서버였으며, 가장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는 가장 어두운 그늘 속에 앉아 며칠을 보냈다. 마리츠버그에서 추위에 떨던 간디처럼 내게도 그 어두운 며칠이 새로운 전의를 불태우게 했다. 한국IBM의 경영혁신 팀장이라는 좁은 경력의 세계를 넘어 더 넓은 경영혁신 분야의 차별적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 자연스럽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너무나 좁은 내 명함 속의 직책과 직위에 갇혀 있었다. 이때를 계기로 나는 일에 대한 확장된 정의를 갖게 되었다. 45p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월급쟁이의 생각과 태도를 버렸다. 한국IBM의 경영혁신 팀장은 이제 내 직업의 정체가 아니었다. 그 대신 한국 최고의 변화경영전문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내 존재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이 분야에서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나는 단순한 직장인에서 진정한 직업인으로 도약했다.

며칠 동안 경험한그늘 체험을 통해 내 가슴에변화경영전문가라는 비전이 자리 잡게 되었고, 단명한 직장을 넘어 평생의 직업을 바라보게 되었다. 비로소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큰 경력의 그림을 섬광처럼 그리게 되었다.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 최고의 변화경영전문가라는 목표가 생기게 되자 IBM 경영혁신 팀장이라는 좁은 정의에 갇혔던 과거는 사라졌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정으로 일에 달려들었다. 더 많을 책을 읽고, 더 많은 실험을 하고, 더 많은 사례를 연구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변형하여 회사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내 머리는 실험 정신으로 가득했고, 내 가슴은 의욕으로 불타 올랐다. 진지하게 몰아붙이기도 했고, 더 많은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으며, 더 재미있는 변화를 현업으로 끌어들였다. 팀원들과 책을 번역하기도 하고, 경영혁신 팀의 새로운 비전을 창조하기도 했다. 새로운의 정의에 따라 목표가 분명해지자 현업에 대한 자율성의 강도도 그만큼 더 강해졌고, 애정도 깊어졌다. 당시 나는 자신의 일에 가장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직원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 초라한그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46P

 

인생 전체에 걸친 경력의 큰 그림이 그려지자 현업이 전체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것은 전체 경력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조망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현업은 시대를 앞서 꿈꾸는 내가 되기 위해서 지금의 나를 모두 바쳐야 하는 수련 과정으로 여겨졌다. 현장에서 관련 업무를 매일 연마할 때 잠지적 능력이 계발 되는 것을 실감했다. 운동선수나 연주자가 엄격한 수련계획에 따라 연습하고 콘테스트를 통해 그 동안 이룬 성과를 겨루어보듯이, 나도 스스로의 자율적인 수련 계획에 따라 현장에서 매일 나를 실험해보았다. 이것이야말로훈련을 실전처럼, 실전을 훈련처럼치러내는 힘을 키워냈다.  46p

 

나는 그 동안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라는 비전을 가지고 일해왔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 속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이 커나가 그 사람만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우주적 소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간디나 체 게바라처럼 크고 빛나는 별은 아니다. 나는 작은 별에 불과하다. 그러나그 자리에서 빛나야 할 운명을 가진 별이다. 사람은 모두 별이다. 자신의 내면에 커다란 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장막으로 빛이 가려진 별들. 이 평범한 별들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냄으로써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움 별, 그 별이 바로 나임에 틀림없다. 47p

 

 

춤추는 여신과의 마주침-마사그레이엄

 

그날은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 그날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내 몸이 그 찰나에 반응했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마치 신이 내 몸에 내린 듯했다. 54p

 

19114월의 어느 봄날 이었다. 나는 그때 열 일곱 살이었다. 로스엔젤레스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문제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공연 포스터에서 그녀는 금빛 팔찌를 끼고 여신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동양의 신비로 가득했다. 51p

 

포스터 속의 주인공인 루스 세인트 데니스는 무대를 휘어잡았다. 그녀는 인도의 여신으로 등장하여 홀로 춤추며 무대를 장악했다. 나는 그 매혹적인 모습에 넋을 잃었다. 그녀는 장엄했다. 오랫동안 엄격한 청교도 가법으로 훈련된 신앙심 깊은 내게 그 장엄함은 그대로 온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는 신의 이름으로, 신의 모습으로, 신의 섬광 같은 위용으로 나를 압도했다. 52p

 

나의 모든 세포가 일어서고, 나의 모든 기질이 도발하고, 나의 모든 재능이 솟구쳐 당장 벌떡 일어서서 여신처럼 춤추기를 원했다.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열 일곱의 나이에 나는 내가 평생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분명하고 명료한 순간이었는지 너무도 확연하게 알고 있다. 온 우주가 공명하듯 내게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번개처럼 분명한 섬광이고,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계시였다. 그 동안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 춤을 보는 순간 내 속에 감추어져 있던 가장 나다운 것들이 요동을 쳤다 53p

 

-17살의 나이에 영혼을 깨우며 다가온 춤. 행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인가가 강렬하게 꽂힐 나이로는 좀 이른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것도 준비된 영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춤꾼이었고, 춤추며 살게 운명 지어졌으며, 춤이야말로 내 기쁨과 즐거움이며 우주적 역할이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 확연한 깨달음, 너무도 분명한 내적 공명, 열 일곱의 내가 맛본 그 판타지는 내 영혼에 찍힌 각인이었다.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강렬하고 황홀하여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감격이었던 것이다. 바람과 매가 부딪히듯 아무 소리도 없이 나는 푸른 하늘을 솟구쳐 오르는가 하면, 지금껏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 번도 그렇게 쳐다본 적 없는 이 세상을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낚싯바늘에 단단히 입이 걸린 고기 같았다. 춤은 그렇게 그날 내게 찾아왔다. 내 재능과 내 기질의 모든 지원을 받으며 커다란 나팔을 불어 내 영혼을 깨우면서 말이다. 나는 그 순간 결정되었다. 여신처럼 춤추는 것을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53p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좋아한 나는 매우 슬펐지만 내 마음대로 인생을 펼쳐 나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아버지는 내게 자유를 주고 떠나신 것이다. 54p

 

-죽음,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자유, 때론 누군가의 부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공감하지만 어떤이의 죽음은 그것이 타자의 삶이 되는 것이 서글퍼지는 것은 왜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 몸놀림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었다. 더욱이 나는 정말로 열심히 연습했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를 가혹하게 채찍질했다. 아주 어려운 자세와 기술을 놀라울 만큼 빨리 익혔다. 점점 더 나는 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분야를 이렇게 빨리 터득할 수 있고, 이것을 하면 지칠 줄 모르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춤꾼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나는 빛났다. 그리고 기회가 내게 몰려왔다. 55P

 

피할 수 없는 나의 길을 걸어라

 

다른 사람들보다 무용을 늦게 시작한 마사는 신속하게 자기 분야를 숙달해 나갔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되었을 즈음 그녀는 마음을 정했다.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57p

 

그녀는 화려한 장식을 떼어내고 엄격한 검소함과 투박한 몸짓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었다. 57p

 

“그녀의 무용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그녀는 무용가로서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셈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레이엄은 거의 혼자 힘으로 현대 무용을 창조해낸 셈이다. 우연히 그녀가 푸른 물감에 붉은 물감을 피 튀기듯 칠한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는 순간 춤의 이미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응축된 점과 선이 일렁이며 하나의 화폭 안에서 내면이 긴장하여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는 이 그림처럼 춤을 추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녀의 꿈이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며 결국 아름답게 채색되기 시작한 것이다. 58p

 

천복에 이르는 업을 찾을 때는 재능을 나침반으로 삼아야 한다. 58p

 

마거릿 미드는 이렇게 사모아 섬을 탐사한 후 쓴 첫 번째 저서[사모아인의 성년]으로 20대에 이미 유명해졌다. 이 책은 학문적으로도 중요한 성과였지만, 일반인에게도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 책의 성공으로 1929년 이후 대공황 속에서도 그녀는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극소수에 속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책 한 권으로 인생의 일대 전환과 도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58p

 

하루의 일과는 새벽에 시작된다. 여명까지 달이 하늘에 떠 있을 때는 새벽이 다가오는 언덕 너머로 남자 아이들의 외침이 들려오기도 했다.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밤, 불안에 떨던 그들은 일터로 서둘러 나가면서 서로를 불렀다. 59p

 

그녀의 가장 돋보이는 재능은 일상생활의 예리한 관찰자로서 특정 문화권을 자세히 살핀 후 패턴을 파악하고 그것을 생생하고 암시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녀는 사례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미국 사회를 진단했다. 현지 탐사를 통해 미드는 사모아의 청소년들은 서구의 청소년들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모아의 청소년들은 휴식과 성적 유희를 즐기고, 서구의 소년들처럼 금욕에 대한 강요나 로맨스에 대한 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부담 없이 훨씬 자유롭고 느긋하고 단순한 시절을 보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미국인들에게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도 눈을 돌려봄으로써 미국인들의 삶과 교육 문제에 대한 개선책을 찾아보라고 촉구했다. 결국 그녀는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텍스트를 제공했다. 첫 번째 도약은 그녀의 첫 책이었다. 권위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에너지가 유려한 문장으로 피어날 때 그녀는 그 분야에서 무서운 잠재력을 가진 젊은 학자로 부상했다. 60p

 

미드의 또 다른 특징적 재능은 적극적으로 모험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동시에 사회 친화적인 기질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로는 몇 개월에 한 명씩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일단 친구가 되면 결코 결별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60p

 

그녀는 스스로 “나의 인생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조각은 특정한 다은 사람과 공유되어 있어 그 특별한 관계들이 모여 온전한 나를 느끼도록 한다.”고 말했다 60P

 

명실공히 미국인들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에 영향을 준 학문적 리더였다. 60P

 

리더쉽이란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사람을 통솔하거나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타고난 재능이 적절한 사회 문화적 조건 속에서 연습되고 다듬어진 훈련된 능력이다. 결국 그의 정의에 따르면, 리더로서의 성공은 명성과 돈 또는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비범하게 발전시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거릿 미드 역시 그녀가 가지고 있는 두드러진 지능들, 즉 뛰어난 관찰력을 통해 패턴을 파악하는 지능과 말과 글을 유려하게 다룰 수 있는 언어 지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는 사회 친화적인 지능을 고도로 강화시켜 인생을 도약시켰다. 가드너는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의 독특한 점을 의로운 축복이 되도록 만들어라. 많은 경험을 쌓아라, 그리고 그것을 가장 궁극적인 방법으로 계발하라.”고 조언한다. 인생의 목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빛나게 하는 것이다. 61p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늘 천재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재능은 천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예술가의 천재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술가의 천재성이란 의지로 되찾은 유년기, 이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의 육체적 능력을 갖춘 유년기,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총합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석적인 능력을 갖춘 유년기.  보들레르는 아이를 예술가로 본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을 가진 어른이 예술가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니 천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천재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박한 재능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켜온 사람들이 바로 평범함에서 위대함으로 도약한 사람들이다. 62~63p

 

“뒷산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여우는 사라졌다. 밭 종다리 같은 조그만 새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논밭에서 울던 섬 휘파람새는 어디로 갔을까? 민둥산으로 변해가는 처량한 산만큼이나 내 마음도 처량해졌다.

 조류학자 윤무부는 거제도 장승포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눈에는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새의 숫자로 이해되었다. 그는 바다와 산, 어디서나 새를 접할 수 있는 자연에서 자라났고, 그 환경적 조건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자연 친화력이라는 특별한 지능을 발현하도록 자극했다. 그는 평생 새를 연구하며 살았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새 사진과 새소리를 채집했다. 그의 노력은 한국의 조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63p

 

성공은 재능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태어났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카드 게임과 같다. 패는 주어지는 것이다. 좋은 패도 있고 나쁜 패도 있다.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카드 게임에 참가한 플레이어로 주어진 패를 가지고 이기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재능은 주어진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받은 재능을 다 쓰고 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리고 위대함이란 받은 탤런트의 크기가 얼마가 되었든 받은 만큼 다 쓰고 갈 때 찾아온다. 64p

 

루즈벨트는 “성공은 보통 사람은 천재가 아니다. 평범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을 비범하게 발전시킨 사람이다.” 평범함이라 없다. 그것은 아직 속에 있는 것이 개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칭하는 말이다. 그것이 터져 나올 때 누구나 비범함으로 도약할 수 있다. 64p

 

 

인생의 중반에서

나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었네. 67p

 

나는 새벽에 글을 쓴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새벽은 혼자 있기 좋은 시간이다. 새벽은 명징하지만 나는 새벽에 늘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는 훈련을 한다. 글은 그런 사고의 표현들이다. 글과 나 사이는 종이와 펜 같은 관계다. 종이는 펜이 흘러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글도 내가 흘러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게 글은 강과 같다. 나는 새벽에 작은 보트 하나로 그 강을 따라 내려간다. 아무도 없다. 혼자이기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나는 두려워진다. 동시에 세속에서 배웠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는 새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이때 나는 혼자이기에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꼭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이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의식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동안 온갖 것을 창조해 낸다. 새로운 것들이 강물 속에서나 강가의 나무와 풀숲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물고기가 한 마리 물 위로 튀어 오르기도 한다. 이때 나는 내 무의식과 만난다. 69p

 

나는 내 책의 주제에 마음을 빼앗긴 최초의 독자이기도 했다. 내 책의 최초의 독자가 나라는 사실을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즐거워했다. 70p

 

-최초의 독자가 본인이란 이야기는 관심사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이야기 일 게다. 타인이 원하는 글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한다는 뜻.

 

나는 내 비즈니스의 영역을 규정했다. 나는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수록 내 비즈니스는 번창하게 된다. 이것이 내 정체성이다.

그러나 나는 순수 이야기꾼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미 내가 직접 경험해본 일들에서 추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재배한 텃밭에서 따온 소채로 만든 음식인셈이니 재료가 제법 양질이다. 나는 상상한다. 실천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실천할 수 있도록 범용적인 성장 모델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것이 나의 직업이다.

나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 이 일이 나를 구해줄 것이다. 71P

 

견딤

 

깊은 인생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

 

 

깨달음이 제시하는 미래와 일상이 규제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는 우리를 주저앉게 한다. 그리하여 종종 정신은 이상을 향하나 우리의 육체는 현실을 따르려고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뱃심이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다. 76P

 

사라진 영웅, 다시 살아나다-윈스턴 처칠

 

나는 이때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였다.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영웅은 전쟁이 끝나면 언제나 사라지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영광의 자리에서 실각했다가 다시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다. 현대의 인물들 중에서 나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79P

 

-전쟁의 영웅은 사라지게 마련이다…이순신장군이 생각난다. 영웅의 여정을 따라 살다간 또 한 사람

 

내가 어떤 주장을 펼쳐갈 때 근거와 정보가 부족한 경우는 없었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정력적이었다. 나의 예지력은 바로 현장을 철저히 관찰하는 부지런함과 연역적 추론에서 나왔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현재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고 무엇이 결정적인 요소인지 알게 했기 때문에 나는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 예지력과 통찰의 비밀이었다. 81p

 

-근거와 정보…많은 시간과 노력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매일같이 상황을 체크하는 일. 어떨 때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판단에 역할을 하게 된다. 준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미래를 보는 예지력의 소유자들은 인습에 얽메이지 않는다. 오래된 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동료의 압력이나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대담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미리 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지력 하나만 가지고는 힘을 쓸 수 없다. 진실이되 누구도 듣지 않는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비극적인 것이 또 있겠는가! 81p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인 카산드라는 아폴론이 구애하자,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예언 능력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카산드라가 예언 능력만 받고서 약속을 지키지 않자 성난 아폴론은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형벌을 내린다. 종국에는 카산드라의 예언을 불길한 일의 시초로 여기게 된다. 81p

 

-신들의 세계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받게 된 형벌. 절묘한 조화 예지력과 믿음. 그리스로마신화 깊은 통찰이 전해진다.

 

예지력이 제대로 된 힘으로 작동하려면 마음이 미리 본 것을 지켜갈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기하는 순간 예지력은 무력해진다. 나의 경우에도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갖춘 함대를 건설해내겠다는 해군의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대로 굴복할까 봐 두려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15인치 대포의 성능을 시험하는 날이 다가오자 나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다. 만일 실패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재앙이자 폭로이며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있게 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전임자가 세운 모든 계획을 변경하고 지독한 패배를 초래한 무분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얼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82p

 

만일 내가 냉소적인 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리석은 과거에 묶인 넋 빠진 굴복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83p

 

처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었다. 전쟁 영웅은 전쟁이 끝난 후 총선에서 패배했다. 영국인들은 그를 평화 시의 인물, 실무형의 지도자로 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전쟁 영웅인 그는 버려진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정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불굴의 인물은 1951년 두 번째 총리에 올랐다. 그리고 1995년 사임했다. 1965년 처칠은 아흔 한 살의 나이로 죽었다. 드골은 그의 죽음을 듣고 “이제 영국은 더는 대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 이후 대영제국의 해는 졌다. 85p

 

 처칠은 폭풍을 잘 견디는 사람이었다. 영국인들은 거친 기후를 잘 견디는 사과 품종에 윈스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두 그를 불굴의 인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인류는 처칠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히틀러 역시 자신과 전쟁이 없었다면 처칠은 유명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칠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잘 견디고,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졌다. 그는 끈질긴 사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끈질김을 “문 닫을 때까지 술집에 머무는 것이 나의 신조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생을 참으로 소란스럽게 산 사람이다.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삶에 붙어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불멸의 인간이것보다 그를 더 잘 묘사한 말은 없을 것이다. 처칠은 사망하는 그 순간 바로 역사로 편입되었다. 아니 그는 이미 살아서 역사가 되어있었다. 86p

 

앤디 그로브와 고든 무어는 메모리 칩의 시장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며 특히 일본 기업과의 싸움이 치열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텔의 이익과 역할이 하강 곡선에 직면하는 불안이 그들을 감쌌다. 그로브가 무어에게 물었다.

 “만일 우리가 해고되고 참신한 CEO가 새로 온다면 그는 무슨 일을 할까?

그러자 무어가 대답했다. “메모리칩 사업에서 손을 떼겠지.

그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로브가 이렇게 제안했다. “그래, 우리 문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새로운 CEO가 할 일을 우리가 해보면 어떨까?

그 깨달음과 행동의 순간을 거쳐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탄생시키고 새로운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본 미래의 모습에 빠져 들었고, 사자의 대가리에 머리를 밀어 넣듯 자신들이 본 미래의 모습을 따라 나섰다. 매리를 위한 아무런 지도도 없었지만, 그들은 마음이 본 통찰의 손을 잡고 미래로 뛰어든 것이다. 87p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보는 것. 카네기의 문제해결방법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아주 유용하다. 내 경험으로는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나는 하키 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이 움직일 것으로 미끄러져 간다. 87p

 

신의 선물처럼 육감과 예감 혹은 예지력이 그에게 특별히 주어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가 상대편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연습과정을 통해 동료들이 공을 어디로 패스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위대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래의 경영에 성공하는 것이다. 예지력은 현재나 미래를 마치 지나간 과거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자는 과거를 잘 아는 자다. 선견지명에 이르는 그 신비의 원천은 신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면과 노력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전에 과거를 연구했고,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들의 본질을 파악했다. 그들은 현재를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여기까지 이른 경로를 면밀히 탐구하여 알고 있었다. 88p

 

 마음이 미래를 보지 못하면 평범한 자리에서 위대한 자리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예지력은 현재에 대한 관찰과 부지런한 탐구의 결과다. 땀의 누적 속에 번개처럼 미래의 결정적 단초가 보이고 전체를 꿰뚫어보게 된다. 그러나 예지력만 가지고는 그저 비극적인 선지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미리 보고 믿은 것에 대한 집중과 불굴의 용기가 없다면 그것을 지켜낼 수가 없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확신을 가지기에는 탐구가 모자랐을 것이고 또 믿었다 하더라도 지켜낼 용기가 없어 다수의 의견을 따라 자신이 미리 본 미래를 포기한 것이다. 88~89p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발명의 아버지는 고집이다. 89p

 

적당히 단념하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불리한 역경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진보의 역설적 진리다. 혹독한 추위와 이변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89p

 

난관을 뚫고 인간이 된 것은 이미 그 밑에 앉을 나무조차 없어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던 무리들이며, 나무 열매가 익지 않자 짐승을 잡아 고기를 먹은 무리들이며, 햇볕을 쫓아 이동하는 대신 불과 의복을 만든 무리들이며, 거처의 방비 벽을 구촉하고 아이들을 훈련시켜 세계의 비합리성에 합리성을 입증한 무리들이었다. 88p

 

미래는 잠재적 운무 속에 깊이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다. 88p

 

언젠가 헨리 키시니저는 처칠이 죽은 다음 그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냉소적인 사람은 결코 대성당을 짓지 못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결코 위대한 건물을 짓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를 이곳까지 끌고 온 위대한 생각과 자세를 불굴의 투지로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90p

 

나는 죽을 때까지 책을 쓰고 강연을 할 것이다. 내게 퇴직은 없다. 죽음이 곧 퇴직이다. 나 또한 위대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삶에서 일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은 이미 내 인생이 되었고, 놀이가 되었으며,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일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이유는 1인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고용하기 때문이다. 91p

 

1인 기업이란 ‘I, the Company’ ,내가 곧 회사라는 개념이다. 나는나라는 회사이며,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지 않고 스스로를 고용한다. 하는 일도 하는 방법도 모두 내가 선택한다. 온전히 나의 경험과 잠재력에 의존하여 일을 한다. 수익 모델도 간단하다. 매출에서 세금을 제하고 나면 수익이 된다. 사무실도 내 집이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있는 곳. 그곳이 강연장이든 카페든 내가 잠시 머무는 그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부가가치가 창조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93P

 

나는 경제적 도구로서의 일과 살고 싶은 삶이 분리되지 않는 일을 갖게 되었다. 93P

 

서서히 직장 생활을 끝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이 회사를 그만둘 때가 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퇴직 이후를 미리부터 열심히 탐구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마치 언젠가 주구든 죽게 되지만 사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을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통찰과 지혜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94P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있는 나라이다. , 여름, 가을, 겨울 일년에 4개의 계절이 순환한다. 비록 그 주기에 변화가 조금씩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계절도 건너 띄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온다는 것도 안다. 가을이오면 겨울을 대비하여 먹거리를 준비하고 한여름에 겨울 옷을 사기도 한다. 제철보다 싼값으로 좋은 물건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생과 멸…태어남과 죽음. 분명하다 영원한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아는데도 매년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에는 대비하면서 인생이란 한번 경험하는 계절에는 대비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아이러니이다.

 

인생은 대략 네 개의 조각으로 이어진다. 인생의 첫 번째 1/4은 학생의 시절이다. 인간은 가장 긴 교육 기간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 두 번째 1/4은 직장의 시절이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그 다음 세 번째의 1/4은 불만의 시절이다. 육체는 아직 젊고 경험은 아직 쓸 만하지만, 자연이 우리를 버리기 전에 먼저 사회에서 버려진다. 스스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황하고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그 다음 1/4은 수용의 시절이다. 늙고 병들어 마음의 평화를 좇는다. 94P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불가능한 일을 믿는 법을 수련하리라. 매일 꾸는 꿈은 결국 이루어 지리라. 내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웃음을 나누게 되리라, 나는 스스로 창의적인 전문가가 되고, 차별성으로 유일해지리라. 그리하여 일을 통해 인류에 공헌하리라. 나는 기업이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용할 것이니, 나는 이제 의존하지 않으리라. 나는 끝내 자유가 되리라. 95P

 

나는 세 번째 1/4의 인생을불만의 시절에서영웅의 시절로 전환하는 변환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첫 수혜자가 되었다. 직장인이었던 나는 마흔 세 살에 작가가 되었다. 95P

 

나는 늘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내게 적용해보았고 내게 적용하여 성공한 프로그램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했다. 나는 내 생각의 실험장이었고, 내가 만든 백신의 최초 접종자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1인 기업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0년 후 하나의 대안이 될 이 실험적 과정에 더 많은 직장인들이 체계적으로 준비해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첫 번째 연구 성과가 바로 [구본형의 필살기]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이것은 현업의 기초 위에 미래를 축조하는 모델에 대한 심층 연구였다. 현업과 미래의 천직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심연을 건널 수 있는 다리 하나를 가설해두는 작업이었다. 96P

 

분노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나는 없애야 할 것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에 대한 열정이 필요했다. 나는 80퍼센트쯤 미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믿음은 잃어갔지만 새로운 믿음으로 채워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현업에 대한 열정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직장인들이 현업에 몰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업에서 비전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업에서 미래의 비젼으로 닿을 수 있는 다리를 하나 놓게 된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현업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일에 열정을 쏟아 넣으면 미래의 비전에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미래의 비전은 현업의 갈 길을 비추는 등대가 된다. 미래를 설계하면서 현업이 더 무의미해지고 당장 떠나야 할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현업과 미래의 비전 사이에 깊은 심연이 있어 서로 닿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97P

 

실제로 직장에서 11년 차가 되기까지 나는 현업에 만족하고 있었는데도 반복되는 일과의 지루함과 매너리즘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일상의 무기력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경영 컨설턴트가 되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회사와 경영의 구석구석을 알게 되면서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이윽고 정신적 확장이 이루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차별적 전문성에 대한 투자와 흥분이 내면에서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고 연구했다. 아이디어를 실험했고, 그 아이디어가 스스로 싸워 살아 나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깊이 알게 되면서, 일이 재미있고 기쁨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 일로 공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일에 대한 내 자부심이 되었다. 전문가의 확신을 가지게 되자 다른 사람들은 불안해하는 곳에서도 내 입장을 견지해 낼 수 있었다. 나는 단단해졌다.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98P

 

 

우드스턱의 작은 오두막집-조지프 켐벨

 

어찌하여 그리 되었을까? 다 된 일이 어찌하여 방향을 틀고, 나는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나는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후 장학금을 받아 파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중세의 프랑스어와 프로방스어, 그리고 음유시인들의 시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사실은 나중에 일이 풀리려고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유럽에서 현대 예술의 맛에 취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피카소, 몬드리안 등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1927년에서 1928년까지 내가 머문 파리는 세계를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세계인들을 만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독일로 가서는 산스크리스트어를 공부하며 힌두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카를 융도 바로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켈트로망스에 대한 내 관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다른 곳으로 가는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투명한 유리병 안으로 나를 밀어 넣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었다. 102P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 과목은 모두 수강한 상태였고, 이제 논문만 쓰면 끝이었다. 그러면 곧 교수가 되어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논문이라는 것이 정말 쓰기 싫었다. 나의 관심은 이미 그곳을 떠나 하늘 멀리 날아가 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102P

 

학위는 내 열등감을 상쇄하기 위해 갖춰 입은 옷에 지나지 않고, 그 열등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므로 굳이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위로 했다. 그 대신 나는 숲으로 들어가 5년 동안 보고 싶은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 덕에 나는 박사 학위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책임질 아무 일이 없어 하늘의 새처럼 자유로웠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삶이었다. 그 기간은 1929년에서 1934년까지 5년 동안이었다. 102P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관문을 남겨놓은 상태라면 그것을 하고 다른 것을 선택할 것이다. 나 부터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 차이가 얼마나 나겠는가 싶어서 말이다. 학교에서 다른 영역의 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 했더라면 우드스턱의 5년이란 시간은 아마 없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된다. 길게 볼 일이다

 

나는 뉴욕 주에 있는 우드스턱의 작은 오두막집을 빌렸다. 거리서 나는 그저 책만 들이 팠다. 그저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노트 필기를 했다. 그 당시 사회는 대공황 상태였다.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래도 뉴욕에 있는 스테처트 해프너라는 큰 서점에 책을 주문했다. 책값을 바로 지불할 수 없었다. 다행히 서정에서는 내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일자리를 구한 다음에 책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나는 클럽 같은 데서 연주를 해 푼돈을 벌곤 했다. 가난한 시대였으나 그야말로 멋진 거래였다. 103P

 

-낭만이 있는 시대라는 느낌이 온다. 서점에서 책을 먼저 보내주고 나중에 대금을 치르는 일…책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어떤 연유에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켐벨과 스테처트 해프너라는 서점의 인연은 부럽다.

 

나는 제임스 조이스와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토마스 만의 글을 읽었다. 슈펭클러가 니체를 언급하면 나는 니체의 글도 읽었다. 니체의 글을 읽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글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으려면 칸트의 글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칸트의 글을 읽게 되었다. 칸트를 출발점으로 하자니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거기서 괴테로 거슬러 올라갔다. 거기서 나는 다시 융의 글을 읽었고, 그의 사고가 근원적으로 슈펭플러의 사고 체계와 똑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버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어 나간 방식이었다. 우드 스턱의 시절은 그야말로 희열을 찾아 나서는 시기였다. 모든 것이 가능성이고 모든 것이 단서이며, 모든 것이 내게 쏟아져 들어와 비밀을 털어놓고 있었다. 103P

 

-어떤 한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생기는 일이다. 그 사람의 관심권에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옮아가는 일. 많이는 읽지 못했지만 나의 독서도 이런 방식이다. 위의 부분을 읽는데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104P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우리를 생활고에서 구해준다. 고생은 앞으로 언젠가의 영광을 더 빛내주는 어두운 배경이고, 빈곤은 내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커져가도록 만들었다 104P

 

내 방랑은 코를 킁킁거리며 내가 정착하여 뿌리 내릴 곳을 냄새 맡으려는 시도였다. 105P

 

방랑과 침묵의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이와 비슷한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라고 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관심사여야 한다. 진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말로그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영웅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임무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계획해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105P

 

변화를 원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편함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끝과 화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다. 무덤을 두려워하면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승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패배도 나쁠 것이 없다. 모두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다가오듯 모든 끝은 끝에서 만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뚝 떨어져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을 체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106P

 

의미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체험, 그 떨림만이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러니 이 세상,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다. 단명한 삶의 비극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사는 자세인 것이다. 이 세상이야말로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106P

 

아버지는 내심 내 방랑을 한심해하셨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내가 세러 로렌스 대학에 일자리를 얻자 비로소 웃으시며, “조, 사실 난 네가 가방 끈만 긴 날건달이 될 줄 알았지 뭐냐.”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운 분이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아들이었던가! 107P

 

-부모의 마음에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다 이지만 그렇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좋은 부모를 둔 것은 확실한듯하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들은 방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대책 없는 기이한 삶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랑을 하는 동안 나는 신비할 만큼 유기적인 우연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가 어느 날 한 쪽에서 삐죽이 나오고, 다음에는 다른 쪽에서 나와 자라게 된다. 제멋대로 내버려두어도 나무는 훌륭하고 아름답게 자란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다 보면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빠져들어 지낼 일이다. 107P

 

-지난해 접했던 법문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이 말 잘 듣기를 바라지 마라. 부모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제일 잘 되었을 때 부모같이 되는 것이고 웬만하면 더 못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 있다는 것은 부모보다 더 잘 되려고 하는 징조이니 그냥 지켜봐 주어라. 하셨는데, 그때도 맞는 말씀이다 싶었다.

 

그의 인생은 우드스턱에서의 5년이라는 풍부한 저수지를 거치는 동안 결정 되었다. 그는 과거를 베끼고 모방하는 것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109p

 

이제 우리는 천재성과 통찰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천재들의 활동으로 알려진 위대한 성과의 비밀은 타고난 천재성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침묵의 10년이라는 땀의 계곡을 행진해온 결과인 것이다. 모짜르트나 타이거 우즈 모두 어려서부터 훈련을 받은 특별 수혜자들이었다. 그들은아버지라는 우연에 의해 특별한 분야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속되는 훈련을 견뎌냈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침묵의 10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이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땀의 시간을 보내야 그럴듯한 창조적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것은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111p

 

침묵의 10년이든, 1만 시간의 법칙이든 메시지는 분명하다. 긴 시간 정교한 훈련 계획을 따라 연습하고 연습하라는 뜻이다. 천재성과 통찰력은 이 긴 시간 동안 한 분야에 쌓인 방대한 지식이라는 토양 위해서만 작동한다. 112p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낭만적 이야기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 가깝다. 그는 평생 그 일만을 위해 애써온 과학자였다. 뉴턴의 방대한 지식 체계와 관심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홀연 모든 것을 꿰뚫는 통찰에 이른 것이다. 112p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다른 위대한 음악가들처럼 타고난 천재로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어디를 가나 환대 받고 주목 받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는 타고난 밑천만으로는 무한정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밑천도 바닥이 나는 것이고 끊임없는 충전을 통해서만 심화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방탕한 삶을 접고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더욱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레퍼토리를 연습했다. 대부분의 훌륭한 피아니스트들도 나이가 들면서 연주력이 떨어졌지만 그는 계속 대중에게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세상이 안다. 114p

 

훈련의 두 번째 요소는 창조성이다. 반복하되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훈련 역시 창의적 진화를 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불현듯 무엇을 어떻게 반복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가장 뛰어난 춤 꾼 가운데 하나인 마사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한다. 115p

 

300년 동안 발전해온 발레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다. 나는 발레 자체와 싸운 적이 없다. 그러나 고전 발레의 경우는 뭔가 충분히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특히 강렬한 극적 상황이나 열정을 다루는 점에서 부족하다. 바로 이 부족함 때문에 내가 하는 종류의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116p

 

과거와 싸우지 마라. 먼저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으라, 부끄러움 없이 훔쳐 모방하고 반복하여 먼저 과거의 정점에 서도록 해라. 미래의 풍경은 그 산 너머에 있다. 그러니 매일 걸어라. 매일의 힘만이 꿈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믿음직한 주술이다. 명심하라. 평범한 자가 비범한 자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분야를 정하고 들이 파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침묵의 10년을 보내라. 고독한 10, 궁핍한 10년을 보내라. 누구든 우드스턱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 121p

 

버려진 자의 평온- 바뤼흐 스피노자

 

고독하다는 것은 사회보다 앞서 간다는 뜻이다. 125p

 

1656년 당시 나는 스물네 살이었다. 겉으로는 평온하나 내적으로는 불안한 젊은이로 성장해가던 어느 날, 나는 유대교회당의 장로들에게 호출을 받았다. 그들은 내게 물었다.

“그대는 친구에게신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는가? 천사는 환상일지 모른다고 말했는가? 그리고영혼은 죽으면 사라지는 단순한 생명일지 모른다.’ 고 말했는가? 대답하라.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내게 제안했다. 겉으로라도 교회와 신앙에 충실할 것을 맹세한다면 500달러의 연금을 주겠다고, 나는 거절했다. 진리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해 727일 헤브라이 종교의식에 따라 나는 파문을 당했다. 126p

 

누구나 그와 입으로 말을 주고받지 말고, 글로 그와 의사를 주고받지 마라. 아무도 그를 돌보지 마라. 아무도 그와 한 지붕 밑에 살지 마라.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말고, 누구도 그가 입으로 전하거나 글로 쓴 문서를 읽지 마라. 127p

 

아들이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던 아버지는 나와의 인연을 끊었다. 누이동생은 나를 업신여기고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을 빼앗으려 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피했다. 이단 혐의를 숨겨주는 대가로 매년 일정한 돈을 내라는 제안을 거절하자, 어느 날 밤 한 흉한은 내게 단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몸을 피해 다행히 목에 작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모면할 수 있었지만, 위험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족 전체에게 버림 받고 가족과 떨어져서 나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고독처럼 무서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평온한 용기로 이 고독을 받아들였다.

이 고독과 불행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철학과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미움이란 어떻게든 사랑해보려고 애쓰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려고 할 때 나는 더욱더 증오로 차 올랐다. 바르지 못한 보복적 증오로 복수하려 할 때 나는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대신 사랑으로 갚는 것이 미움을 더 쉽게 극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적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단점과 두려움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미움을 사랑으로 쫓아버리려고 애썼다. 그러자 기쁨과 확신이 찾아왔다. 정신은 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너그러움에 의해 정복된다. 나는 언덕 위의 빛 속에 서 있는 듯 했다. 또한 나는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 했다. 신에게 시간이란 실재하지 않는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란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미래에 일어나도록 예정되어 있는 일은 결국 일어나게 마련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128p

 

고독과 시련을 겪으면 사람들은 매우 표독해지거나 반대로 매우 온순해진다. 나는 다행히 매우 다정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었다. 하숙집 주인 부부도 나의 온화함을 좋아했다. 나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렌즈를 연마했다. 이것은 내가 유별나게 가난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유대인 학자들은 학문에만 힘써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학자라면 누구에게나 생계를 유지할 기능을 익히게 해야 한다는 유대율법이 몸에 배어 있기도 했다. 유대인들에게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을 가지지 않는 학자는 결국 부랑인이 되어 사회에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130p

 

나는 변하기 쉬운 대상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결하게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 바로 나의 관심사였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내게 닥친 불행이란 궁극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 부조화일 뿐이기 때문에 화를 낼 이유도 거부할 이유도 없다. 결국 만물은 모두 신의 일부이니 만물을 신의 한 부분으로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는 과정이다. 130p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을 막 집필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긍지와 행복을 느낀다. 134p

 

 차라투스트라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10년 동안 산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와 고독을 즐기느라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변화가 왔다. 붉게 물든 동녘 하늘을 보며 일어난 어느 날 아침, 그는 태양을 보며 말했다.

“위대한 태양이여,..매일 아침 당신을 기다렸고, 당신에게서 넘쳐나는 것을 받았고, 감사와 축복을 보냈다. 나는 나의 넘치는 지혜에 싫증이 났다. 너무 많은 꿀을 모은 꿀벌처럼, 이젠 도움을 달라는 손길이 필요하다. 나의 모든 지혜를 나누고 싶다. ..

그리하여 나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136p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아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이 시는 <언젠가 많은 것을….>이라는 니체의 시다. 그는 멋진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인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라고 표현했다. 그 다이너마이트는 아마 하늘을 빛내는 초인표 폭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책은 40부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나마 일곱 부는 기증본이었다. 시대는 그를 이해하지 않았고, 그처럼 고독한 사람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구름으로 살았다. 137p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다 보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질 위험을 피하려면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141p

 

외로움과 절망의 과정으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함은 없는지 모른다. 고독은 마치 영혼의 고통을 담은 용광로 같아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련 과정이다.

세상의 생각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로움이란 바로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상식적 삶에 질문을 퍼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은 철학을 가짐으로써 위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은 늘 투덜거린다. 철학자가 쓴 책처럼 어이없는 것은 없고, 쓸데없는 기우로 가득하고, 만족을 모르는 생각은 극단까지 가려 하고, 무지처럼 모호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과학은 늘 전진하는 것처럼 보이고, 철학은 언제나 쇠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의 탓이 아니다. 철학은 여전히 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는 것들, 즉 질서와 자유, 선과 악, 삶과 죽음, 사람과 미움, 같은 것들을 잔뜩 껴안고숭고한 불만과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않기때문이다. 143p

 

철학에서 멀어지면 삶은 먹고 과시하는 저잣거리의 인생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철학이 없으면 우리는 삶이라는 위대함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윌리엄 듀랜트는 [철학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존의 조잡한 필요에 의해 사상의 언덕에서 경제적 투쟁과 획득의 시장으로 질질 끌려 내려올 때까지철학은 얼마나 즐거운 매력이었는가!

철학이 없는 뛰어난 인물은 없다. 왜냐하면 철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143p

 

인생은 믿음이 자신을 구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완성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 자체가 삶의 목표다. 그러므로 멈추어 서는 순간 더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살아있음. 이것이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이다. 시는 황홀로 쓰는 것이니, 이때 마음속에서 신을 만나게 된다. 148p

 

나는 나의 골목길을 발견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 그 길이 아무리 좁아도 내 길이라는 것. 고독이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경쟁하지 않는다. 싸움이 내 장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은 없지만 수요는 많은 곳을 나의 촉수는 감지한다. 나는 늘 푸른 바다를 찾아 나섰고, 그래서 나의 항해는 늘 혼자였다.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그래도 내가 약간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거나 비장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151p

 

-베네치아의 골목길생각이 난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즈음. 화살표를 발견했다. 어지럽게 낙서가 되어있는 벽면에 자그마한 화살표가 보인다. 저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면 또 화살표가 있다. 다시 화살표를 따라서 간다. 그렇게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광장이 나온다. 산마르코 광장. 바다가 보인다. 시선이 확 트인다. 가슴도 확 트인다 절로 소리가 쳐진다. 지금 내가 찾고 있는 것이 골목길의 그 화살표이지 싶다. 광장으로 나아가는 이정표. 광장에 다다르기 전의 여정도 재미있다. 골목길을 누비며 누군가 써놓은 낙서를 보며 그렇게 한발한발 나아가는 골목길의 낭만…나는 지금 그 낭만을 즐기고 있다.

 

작가도, 1인 기업가도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 방식이다. 1인 기업가이며 작가가 되어 살기 시작할 때 나는 이 고독을 견딜 수 있도록 세 가지 행동철학을 세워두었다.

첫째는 이제 더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오직 나의 명령에 따라 산다. 나는 작더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제국을 원한다.

두 번째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자유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자유의 양이 많아질 때만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본업을 통해 세상의 맑음에 기여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응원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나의 기쁨이 되었다

결국 나의 철학은 자유를 옹호한다.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영역을 넓혀야겠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비위를 맞추고 사느니 차라리 내 마음대로 사는 고독을 택해도 좋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나 스스로 가족이 먹을 것을 벌고, 스스로 선택한 천직으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드는 일에 기쁘게 참여하는 것,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152p

 

넘어섬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세 번째 문

 

 

“도 라는 것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안다는 것은 그저 어리석은 생각에 지나지 않고, 모른다는 것은 그저 혼란일 뿐이다. 네가 아무 의심도 없이 도를 깨쳐 안다면 너의 눈은 높은 하늘과 같아 한계와 장애를 벗어나 일체를 보게 될 것이다. 160p

 

어느 날 나는 부엌문을 꼭꼭 닫고 연기가 가득하도록 불을 피웠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불이야, ! 사람 살려!” 이 고함에 절이 발칵 뒤집혀 다들 부엌문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부엌 안에서 소리쳤다. “그대들이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 문을 열지 않겠다.

대중은 놀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스승 남전이 다가와 말없이 문틈으로 열쇠를 건네주셨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문이란 마땅히 안에서 열어야 한다. 나는 열쇠가 없더라도 내 손으로 혼자서 열고 나오면 된다. 스승이 문틈으로 열쇠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실상 문을 열고 나오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스승의 행위는 마음의 소리에 대한 상징적 메아리였다. 문이 안에서 열리듯 모든 배움과 깨달음은 안에서 스스로 익어 터지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스스로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제자가 스스로 안에서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승은 내게 늘 이렇게 마음의 지지자와 응원자로 남아 계셨다. 163p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그 관계가 스승과 제자든, 선배와 후배든, 예술가와 후원자든,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든 사람은 사람을 통해 영향을 받게 된다. 때때로 누군가의 인생에 한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일 때가 있다. 이때 그 사람은 진정한 스승의 역할을 해주게 된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이탁오라는 학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171P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이 질문을 꼭 했고, 그래서 이나마 내 길을 즐기며 걷고 있는 것임을 안다. 지금도 이 질문은 계속된다. 173P

 

-나는 안다. 이런 질문.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 마음속의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되었건 생존해 계시건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살아있을 분이니까. 나에게도 있다. 참 좋은 일이다

 

이론이 그 자체로 모두 옳은 것 같아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우면 직접 겪어 체험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두 개의 대화편, [파이드로스] [크리톤]에서 가르친 것을 연상시켰다.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되지 못하는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다.”라는 가르침과 섞여 천둥같이 내 가슴을 울렸다. 178P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하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거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이다아마 그런 말씀이셨을 것이다. 178P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나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한없이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내게 이 열망을 품게 해주셨다. 나이가 들어 연구원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너무도 분명히 훌륭한 선생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185P

 

 

교사 생활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방랑벽이 있어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한때 히피들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네바에 있는 UN사무실에 취직했다. 그때 나는 이렇다 할 자격증이 없었기 때문에 원서만 보냈다가는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인사 담당자에게 찾아가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 자신을 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담당자를 설득하여 일자리를 얻었다.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다행히 나는 UN을 매혹시키는데 성공했다. 191p

 

나는 자연식 피부 관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할머니들의 주방용 비법에 관한 책들을 빠짐없이 읽었다. 이제까지 나온 모든 자연 비법은 거의 빠짐없이 읽은 것 같았다. 쓸 만한 비법을 만날 때마다 나도 그렇게 해보았다. 줄리 크리스티는 삶은 양배추와 아보카도를 액체로 만들어 얼굴 화장 크림으로 썼다. 나도 그렇게 해 보았다. 마를렌 디트리히는 양촛불 그을음으로 아이새도를 만들어 썼다. 나도 그렇게 해 보았다. 책에 나와 있는 모든 비법을 시험해보았다. 그것은 비즈니스라기보다는 내가 나 자신의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고, 성공을 자유로서 정의해가는 작업이었다. 그때까지 나온 화장품들은 비싸고 고급스럽긴 했지만 자연 성분이 들어 있지 않았다. 이때 문가가 나를 자극했다. 그 자극이 좋았다. 193p

 

따지고 보면 모든 성공의 요인은 사실 내게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창의력이 생긴다.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으면 생각하지도 않고 추진력도 생기지 않는다. 다른 성공한 기업가들처럼 궁핍이 나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이민자의 노동 윤리를 가진 아웃사이더였기에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일을 할 때 화가나 작가와 같은 열정이 나를 휩싸고 지나갔다. 나는 궁핍으로 인해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믿었으면, 그것을 실현하고 그것으로 먹고 살고 그것으로 이익을 내기를 바랐다. 보디숍은 내 손으로 만든 내 자식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내가 되었다. 194p

 

미치광이와 기업가는 백지 한 장 차이일 뿐이다. 194p

 

낙관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깊은 상처를 받고, 신념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지만 결국좋은 일로 귀결되곤 했다. 왜냐하면 우리를 죽이지 않는 고난들은 결국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196p

 

비즈니스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탐욕이다. 욕심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처럼 암담한 것은 없다. 탐욕이 성공이 되고, 가장 욕심 많은 사람이 롤모델이 되면서 탐욕은 우리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을 전부 잡아먹기 시작했다. 보디숍이 나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돈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만큼 성공했지만, 나는 기업의 탐욕에 저항했다. 나는 이미 아이들에게 공언해두었다. 내가 죽으면 내가 번 돈은 모두 인권과 민권 운동가에게 기부될 것이라고 말이다.

비즈니스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업이 할 일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은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더 내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역시 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더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진정한 글로벌 비전을 가진 기업이라면 지리적 확장과 점령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확장에 더 기여해야 한다. 나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란 직원이 자신의 잠재력과 인간 정신을 훈련하고 계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기업은 그 자신과 구성원, 그리고 인류를 위한 완전함에 기여해야 한다. 인생에 영적 차원이 있듯이 비즈니스도 영적인 차원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세계를 다니면서 깨달았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통찰이었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존재는 전일성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경외심이 나를 가득 채웠다.

바꾸려 하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할 때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할 때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기업은 지난 100년간 가장 성공적인 조직이었다. 이제 기업가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기에 빠진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다. 심장과 영혼으로부터 비즈니스의 목표가 만들어질 때 기업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198P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짦은 여행을 하러 온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어쩌면 신의 섭리가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여기 온 이유 중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모두, 이미 죽었거나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 덕에 살아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내가 받은 만큼 되돌려주려고 그들을 위해 나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되었다.”

나누기 위해 꼭 부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돈이 있으면 돈을 나누고, 재능이 있으면 재능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나누면 된다.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픈 이들에게 관심과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이미 나눔에 나선 것이다. 아무것도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바로 리더들이다. 진정한 영향력은 줄 수 있는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큰 것에 헌신하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뜻을 이룬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을 위해 벌고, 자신을 위해 쓴다면 돈은 얻을지 모르나 존경은 얻을 수 없다. 203P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와 전체적 뼈대에 대하여

 

전체적인 구성이 좀 복잡하다. 장식이 많이 달린 드레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시작하며프롤로그사이에 목차를 두었다. 복잡한 구성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시작하며를 먼저 넣고 목차그리고 서문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시작하며전 페이지에 적어놓은 글은 저자의 심상인지도 모른다고 단서를 달았지만황금빛 사자 한 마리가 가지는 의미가 나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책을 한번 다 읽고 난 후 다시 목차를 보면서 저자가 어떤 형태를 원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전체적인 구성은시작하며프롤로그의 내용을 하나로 정리하여 서문으로 삼으면 좋겠다. 그리고 목차는 대 목차를 깨우침, 견딤, 넘어섬. 이렇게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아래 깨우침은 두 개의 이야기, 견딤은 세계의 이야기, 넘어섬은 두 개의 이야기 이렇게 구성하면 간결하지 싶다.

 

감동적이었던 장 절

 

방랑과 침묵의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이와 비슷한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라고 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관심사여야 한다. 진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말로그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영웅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임무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계획해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변화를 원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편함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끝과 화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다. 무덤을 두려워하면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승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패배도 나쁠 것이 없다. 모두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다가오듯 모든 끝은 끝에서 만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뚝 떨어져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을 체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의미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체험, 그 떨림만이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러니 이 세상,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다. 단명한 삶의 비극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사는 자세인 것이다. 이 세상이야말로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105~106p

 

-단순해 지는 것. 그렇게 행하는 것.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만 생각하는 것. 내가 논리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지 숲속에서의 5년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오래지 않아서 해보리라 생각 중이다.

 

아들이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던 아버지는 나와의 인연을 끊었다. 누이동생은 나를 업신여기고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을 빼앗으려 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피했다. 이단 혐의를 숨겨주는 대가로 매년 일정한 돈을 내라는 제안을 거절하자, 어느 날 밤 한 흉한은 내게 단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몸을 피해 다행히 목에 작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모면할 수 있었지만, 위험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족 전체에게 버림 받고 가족과 떨어져서 나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고독처럼 무서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평온한 용기로 이 고독을 받아들였다.

이 고독과 불행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철학과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미움이란 어떻게든 사랑해보려고 애쓰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려고 할 때 나는 더욱더 증오로 차 올랐다. 바르지 못한 보복적 증오로 복수하려 할 때 나는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대신 사랑으로 갚는 것이 미움을 더 쉽게 극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적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단점과 두려움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미움을 사랑으로 쫓아버리려고 애썼다. 그러자 기쁨과 확신이 찾아왔다. 정신은 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너그러움에 의해 정복된다. 나는 언덕 위의 빛 속에 서 있는 듯 했다. 또한 나는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 했다. 신에게 시간이란 실재하지 않는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란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미래에 일어나도록 예정되어 있는 일은 결국 일어나게 마련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128p

 

-미움을 사랑으로 갚아야 미움이 극복된다는 말. 어렵지만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면 가능할 지가 가늠이 가지 않을 뿐이다. 결국 모든 일은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에 자신이 힘들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해법은 의외의 방법으로 생긴다.

 

비즈니스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탐욕이다. 욕심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처럼 암담한 것은 없다. 탐욕이 성공이 되고, 가장 욕심 많은 사람이 롤모델이 되면서 탐욕은 우리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을 전부 잡아먹기 시작했다. 보디숍이 나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돈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만큼 성공했지만, 나는 기업의 탐욕에 저항했다. 나는 이미 아이들에게 공언해두었다. 내가 죽으면 내가 번 돈은 모두 인권과 민권 운동가에게 기부될 것이라고 말이다.

비즈니스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업이 할 일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은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더 내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역시 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더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진정한 글로벌 비전을 가진 기업이라면 지리적 확장과 점령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확장에 더 기여해야 한다. 나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란 직원이 자신의 잠재력과 인간 정신을 훈련하고 계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기업은 그 자신과 구성원, 그리고 인류를 위한 완전함에 기여해야 한다. 인생에 영적 차원이 있듯이 비즈니스도 영적인 차원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세계를 다니면서 깨달았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통찰이었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존재는 전일성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경외심이 나를 가득 채웠다.

바꾸려 하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할 때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할 때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기업은 지난 100년간 가장 성공적인 조직이었다. 이제 기업가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기에 빠진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다. 심장과 영혼으로부터 비즈니스의 목표가 만들어질 때 기업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198P  

 

보완점

 

윈스턴 처칠의 사례를 읽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깊은 인생에서 다루어지는 대부분의 사례들에서 우리나라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영웅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순신장군의 경우는 처칠 못지 않은 좋은 사례가 될듯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너무 잘 알려진 내용이 아닌 참신한 스토리의 주인공도 있을법하다. 그런 사례들이 좀 보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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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9 17:19:30 *.114.49.161

이길수님의 저자조사 덕분에서 자란 환경, 고향 이런 걸 알게되었습니다.

그게 궁금했는데 저의 조사에서는 빠져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아, 한국의 영웅, 저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맞다 그렇기도 하네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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