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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7일 13시 15분 등록

"소를 사랑해선 소를 키울 수 없듯이

세상을 지나치게 사랑하거나 신뢰해선,

이 악한 세계에서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란,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쳐준다 하더라도,

먼 훗날엔 기필고 스스로에게 배신감을 느껴야할 만큼의 하한선인 셈이네."

 

"비관으로 탈출구를 삼으신 게 아닐까요?"

 "대신, 그 비관을 가짐으로 해서, 귀한 걸 하나 얻을 수 있지."

 "뭡니까? 그게"

 "용서지."

 "용서….."

 

"나는 그때 내가 패배자라고만 생각했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건가?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지.

분노와 번민으로 파랗게 물들어 가던 불면의 창을 가려주었던 커튼이,

바로 그 용서였네.

그 이후에야, 난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소에게 코뚜레를 끼울 수 있었어."

 

p. 201,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이응준

 

 

나는 소심한 고집쟁이다.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추구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양해를 구하는 데에는 어쩐지 미안하고 소심해져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거나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말로만 그려무나라고 허락해버리곤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고 나면, 도대체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나는 뭘 원하고 있는가. 좋은데 좋다고 왜 말을 못하니.와 같은 자기비하에 열세시간씩 빠져있곤 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고집쟁이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대로 고집 따위는 부리지 않는 무던한 사람이 되길로 바랐다. 고집으로 유명하다고 최고집, 황고집이란 말이 생기는 것도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결국 자기는 가장 좋은 것을 가져버리는 사람들을, 부러움반 타박반 섞어 부르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자칫, 아집이 되어 내 시야가 줄어드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분명히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합당한 논리가 있을 것이다. 고집부리는 대신 많이 들어보자. 라고 생각했던 것도 한몫 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고집이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를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 고집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융통성이 없다는 좀 부정적인 뜻이거나,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판단으로 현실을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좀 엉뚱하다는 뜻으로 비춰지게 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고집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보다 자기자신만의 외길 인생을 나가는 고독한 인물에 더 어울리는 단어이기에, 관계지향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달갑지 않은 평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도 그랬던 것이고.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에서 나온 저 대목은, 그러한 나에게 나를 좀더 돌아볼 수 있는기회를 주었다. 고집은 정말 부정적인가. 말잘듣고 착한 학생이 되는 것이 나이 스물여섯의 성인 여성에게 여전히 주효한 인생전략일까. 그렇게 실패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서 내가 떠나 보냈던 무수히 많았던 가능성들은 어떤 고집쟁이가 거머쥐어 내가 되고 싶었던 자리에 앉아있지는 않았던가.

 

독서노트를 쉬는 동안, 작년, 제작년 내가 후회하는 일들을 빼곡히 곱씹어보는 시간들을 가져보았다. 그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려고 마련해둔 시간들을 다른 일들을 처리하는데 참 많이 쏟았던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에 나는 알게 모르게 분노했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 세상은 그렇게 선한 곳이 아니라서, 내가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으면 누구도 나의 순수성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목도한 셈이다. 나는 그동안 선한 세상의 완벽한 시스템을 나의 순진한 고집이 해칠까봐 두려워 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선하지도 않으며, 세상의 시스템이란 완벽한 것도 아니었다. 하여, 두려움이 나를 밀고가게 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길에 관해서만은 고독한 고집쟁이가 되어 살아보는 것이, 올해 나와 한 첫 번째 약속이 되었다.

 

그래, 올해는 조금 더 고집쟁이가 되어보자. 마음 놓고 소에게 코뚜레를 끼우고, 그의 약함에 허무한 슬픔을 부어주지 말고, 나를 지키기 위한 세상과의 한판승, 독하게 한번 이겨보자. 이응준의 소설은 비관적이고 부서질 것 같은 감수성으로 이런 강한 마음을 먹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순수에 대한 고집스런 여행, 올해 같이 떠나실 분들에게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적극적으로 추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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