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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0일 08시 38분 등록

역사의 발명가, 헤로도토스

 

만약, 현대의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역사학자가 창세기의 시간 근처로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현대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신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봤습니다.” 라거나, “아직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낼만큼 진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문자를 발명한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기술하는 것이 곧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사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이게 다 신들 때문이다.” 라는 기술은 신의 이야기, 즉 신화이다. 인간의 이야기인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훗날의 일이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달걀을 책상 위에 세우는 것보다 힘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였다. 감히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B.C.484~425)는 최초의 역사서를 저술한 인물이다. 그는 B.C.484년 그리스에서 태어났고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적어도 서양의 역사는) 창세기가 아닌 B.C.484년 언저리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역사의 어원(historiae, 원래 탐구라는 뜻)의 창시자이기도 하니, 키케로가 말한대로 소위 “역사의 아버지”라는 호칭의 유일무이한 적격자이다. 모든 분야가 세분화된 현세대의 취향 때문에 우리는 헤로도토스를 단순히 역사라는 학문의 범주 안에서만 생각한다. 즉, “과거를 기술하는 일”의 발전 과정 위에서 헤로도토스를 시발 위치 의 한 점으로 표시하곤 평가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헤로도토스가 이룬 인식의 전환은 ‘호메로스에서 헤로도토스의 전환’ 정도로만 평가된다. 가령, “그는 호메로스와 달리 과거를 기술함에 있어서 신의 개입을 최대한 걷어내고 인간의 인과관계로 이해하였으며, 객관성을 확립한 것에 의의를 두었다. 또한, 기존의 운문에서 탈피하여 역사를 기술하기 쉬운 산문으로 전환하였다.” 정도의 평가가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일차원적인 판단이다.

 

헤로도토스의 의의는 이보다 더 다차원상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는 애초부터 역사가로 태어날 운명이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을 연구하거나, 피타고라스처럼 수학을 연구하거나, 혹은 히포크라테스처럼 의학을 연구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 사상의 특징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변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가치의 역발상을 이루어내었다. 그는 수를 다룰 때 쓰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방식을 과거를 기술하는 데 사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일생을 그 가치를 위해 살았으며, 이것이 바로 역사라는 장르의 시발점이 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패러다임의 전환은 항상 번영하는 중앙이 아니라 소외받는 변방에서 시작한다. 그가 태어난 할리카르나소스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으며, 많은 민족이 융화되어 살았기에 민족적 편견에서 자유로웠다. 청년이 된 헤로도토스는 아버지와 함께 지역 참주였던 리그다미스 2세의 독재에 항거하다가 가족이 모두 사모스섬으로 망명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후에 리그다미스 2세 정권의 몰락 후 본거지로 돌아올 기회를 얻었으나 모함과 모략 때문에 그는 다시 밖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많은 지역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역사>를 기술하는 바탕이 되었다. 즉,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유배문학이라 불릴 만하다. 헤로도토스의 청장년 시기는 고단하였으나 덕분에 그는 중앙의 가치체계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독보적으로 견문을 확장시킬 천운을 잡았던 것이다.

 

그리스 본토의 지식인들이 중요시한 수학과 과학은 불변하는 듯이 보였지만, 순수과학은 뉴튼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양자역학과 초끈으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였고,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여겨졌던 수학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이후 완벽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으니, 이런 인생의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헤로도토스는 왜 역사를 썼을까?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아야 한다. 위치 상, 여러 문화가 겹치는 지리적 조건, 시기 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헤로도토스는 혼혈적 태생을 안고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한 참전용사들로부터 전쟁 무용담을 들으며, 경이로움에 눈을 반짝이는 헤로도토스를 상상할 수 있다. 그는 호메로스를 좋아하여 즐겨 읽었고 막연히 자신도 앞으로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청년이 되었을 때, 독재에 항거하여 혁명을 꿈꾸었으나 실패하여 쓸쓸히 망명길에 오르는 그의 뒷모습도 보인다. 명문가의 자제로서 품었던 정치적 야망이 한풀 꺾이는 순간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의 반, 타의 반 세계를 유랑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종전된 상태이고 이제 더 이상 전쟁을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승전국인 그리스의 철학적 번영과 자유는 고무적이었으며, 이상을 꿈꾸던 헤로도토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B.C. 447-443년에 아테네에 머물면서 광장에서 자신의 작품 - 즉, 후에 <역사> 지필의 초석이 된 여행 기록들 - 을 사람들에게 낭독해주고 댓가로 10 탈렌트를 받았다. 헤로도토스를 잇는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헤로도토스가 올림피아에서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한다. 어린 투키디데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이 틀림없는 그 모습을 우리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가 무심한 듯, 자신의 저술을 읽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진귀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품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변방의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스가 전투의 기세를 잡을 때면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오고, 낭독 중간에는 사람들 간에 날개 달린 뱀의 존재 유무에 대한 토론도 벌어진다. 그렇게 광장은 사람들의 지적 희열로 물들어 갔다.

 

이것은 헤로도토스에게 한낮 밥벌이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 해주는 것이 무척 즐거웠고, 탐구의 희열로 한껏 상기된 청중들의 얼굴을 본 후에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불현듯,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자신이 페르시아 전쟁 참정용사들의 무릎 언저리에서 청해들었던 전쟁 이야기의 기쁨, 그것을 제대로 연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후세대에게도 후의 후세대에게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아테네에서 사귄 친구 페리클레스와 소포클레스의 격려에 힘입어 페르시아 전쟁사를 제대로 탐구해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다시 <역사>를 쓰기 위한 여행길을 나섰다. 이 때부터 그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기를 위한 여행이 아니었으며, 오로지 역사서를 위한 탐구에 목적이 있었다. 그 후, 여행에서 돌아와 B.C. 443년 경 남부 이탈리아인 투리에 정착하여 이 곳에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그리하여 B.C. 427년 경 약 6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헤로도토스의 삶은 실로 역사서를 쓰기 위해 산 인생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단지 <역사>를 썼다는 것만으로는, 이 역사서가 2500년이라는 가공할만한 시간의 장벽을 뚫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 당시, 정말로 역사서를 쓴 것은 헤로도토스 단 한 사람뿐이었을까? 그의 작업이 실로 위대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들만 기억하기 때문에 헤로도토스 이외에 역사를 기술한 사료들이 또 있었으리라고 상식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다른 사료들과 달리 현시대까지 생존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버트런트 러셀에게서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러셀은 자신의 저서에서 역사의 가치는 교훈에 있는 것도, 교양에 있는 것도 아니며 즐거움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음악, 미술, 시와 같이 역사도 즐길 수 없다면 효용 가치 역시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다시 헤로도토스 시절을 상상해보자. 대량으로 찍어내는 출판문화가 없던 시절, 오로지 책은 필사해야만 전승되는 시절이다. 이 막대한 노동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책만 살아남는다. 가치를 인정받는 책은 필사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2500년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책이 재미있기까지 하다면, 그리하여 읽고자 하는 사람의 수요가 많다면 책은 훨씬 많이 필사된다. 이 경우, 책이 보관되어 있던 일부 도서관이 전쟁으로 불타거나 장마로 책이 손상되고 세월의 풍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도 일부는 보존될 가능성이 다른 책보다 월등히 높아진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어째서 재미있었을까?

 

헤로도토스가 음유시인들처럼 모든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독자의 즐거움을 배가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법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지에 따라 선택되는데, 헤로도토스는 어떤 도덕률이나 편견의 제한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는 전쟁의 발발 원인이 되었던 궁정의 야사라든지, 정쟁, 음모, 다툼, 그리고 정의와 사랑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수집하고 정리하여 그 어떤 소설보다도 기가 막히고 극적인 역사를 탄생시켰다. 사실 허구보다 재미있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 아니던가.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일부 후대 역사가들로부터, “재미를 위해 허구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책의 생존핵심전략이었던 “재미”는, 바로 그의 다음 세대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로부터 “재미만 추구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았고 이런 수모는 역사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끊이지 않았다. 즉, 오히려 너무 재미있어서 역사적 가치면에서 탈락될 위기를 겪기도 한 것이다. 또한 “허구”들을 다룬 역사책이라는 점을 한계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구전과 신화들까지 모두 기록한 것이 바로 사실에 입각해야만 인정되는 역사서의 기준에 미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결코 재미를 위해 허구로 점철된 역사서를 쓴 것이 아니다. 그는 과거 사실 그 자체가 흥미롭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구전되면서 과장된 이야기들 사이에서 그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관의 역할을 하였다. 재판관이 정의의 손을 들어주듯이, 그 역시 언제나 사실로 추정되는 쪽의 손을 들어주되, 열린 마음의 역사가답게 “거짓의 역사”도 말살시키지 않았다. 아예 지워버리는 대신, 기록하고 비판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짓된 구전 역시 그 당시 인간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역사의 범주를 보다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신화나 허구 그 자체는 역사가 아니지만, “이러한 신화가 그 당시 있었다.”라거나, “이런 말이 구전되어 내려오는데 믿기는 어렵다.”라는 기술은 역사가 된다. 헤로도토스는 바로 그런 역사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지만, 사실이라는 이데아를 역사라는 현실에 그대로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의 특징은 사실에 있다기보다 진실에 있다. 진실이 역사의 조건이라면, 열린 마음은 “위대한” 역사의 조건이다. 역사철학의 변화에 따라 비판의 초점은 달라질 수 있지만, 헤로도토스가 위대한 역사가로서 필요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근원이자 발명가로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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