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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4일 05시 00분 등록

저자소개

김용규 님.jpg

김용규

철학자, 신학자, 자유기고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철학과 인문학을 보기 좋게 버무려내어, 인문학과 우리의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닿아 있는지 보여준다. 철학, 사회사상, 과학지식, 인류학 등 다양한 지식을 이해하기 쉽도록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인문학적 교양이 현실생활에 실제적인 유익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다양한 대중적 철학서와 인문교양서, 지식소설을 집필,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필명인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그 전달자로서의 임무를 의미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시리즈 1~4권>, <영화관 옆 철학카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데칼로그>, <알도와 떠도는 사원>(공저), <다니>(공저) 등이 있다.

그는 철학자이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머리 아픈 철학자가 아니다. 흔히 철학이라 함은 아리송한 말들을 늘어놓고 아는 자들은 그것을 진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해하기 힘든 개념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용규의 철학은 그렇지 않다. 그는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읽는 이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지만 친근하게 다가오는 철학이다. 저자는 철학은 잘 받아들이면 우리 삶과 사회를 크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철학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철학을 일상용어로 풀이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를 들어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추상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운데서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들이나 지혜들을 동원하여 마치 담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어렵다하며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은 철학을 우리 옆으로 데리고 와 그들이 지식와 더불어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는 예술, 문학, 미술, 음악 등을 철학과 함께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가 펴낸 책 중에는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영화관 옆 철학카페』등이 있는데, 이 책들을 통해서는 그는 우리가 흔히 접한 것들에서 철학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쥐어준다. 우리에게 철학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듣고 보는 책, 영화, 광고 등에서 예를 빌려와서 철학의 개념이나 논지를 마치 옆집 아저씨가 이야기하듯 풀어주는 그에게는 철학자의 딱딱함 보다는 이야기꾼의 유연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따뜻한 언어로 책을 구성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늦게 얻는 딸에게 선물을 남겨주고 싶다는 의미로 책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책을 부드럽게 쓸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독자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충분한 이해를 도와주는 부분들이 많다. 독자들이 그의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런 따뜻함 때문일 것이다.

책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단국인의 소통공간 디보이스 단대신문

인터넷 서점 알라딘 저자소개




<글귀>

ㆍ신은 언제나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신은 언제나 종교 밖으로 나가 종교 아닌 것들 속으로 스며들어 가지요. -8

궁극적으로 신이란 이렇다고 생각한다. 신이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 또한 재미없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어디든지 있는 것. 이것이 신이라 생각한다.

ㆍ심층적 이해 없이는 해결도 없습니다! -9

진정한 이해가 따른 뒤에 나온 해결책이 가장 옳다는 말. 어떤 문제이던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한 후에 나온 해결책이라야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간 내가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반성하게 한다.

ㆍ 그것을 비속하지만 생동하는 일상용어로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독자나 청중을 대화의 상대로 끌어들이고, 그들과 함께 담화를 나누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이지요. -10

책을 쓴다면 이런 글법으로 책을 쓰고 싶다. 편안한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

ㆍ인간이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는 없어도 심성과 육체를 단련하여 신처럼 위대해질 수는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37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한 노력을 그리 가벼이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라하더라도 그 노력하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꿈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의미도 되니까.

ㆍ이데아의 미란 가시적(可視的)자연이 아니라 가지적(可知的) 인간정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 이지요. -41

ㆍ회화는 정신의 노동(cosa mentale)이다.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손재주와 눈가늠에 기대어 그리는 화가는, 앞에 놓인 모든 물체를 고스란히 재현하지만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울과 같다. -43

아무리 많은 모작들이 존재하더라도 결국은 그 누구도 모나리자가 되지는 않는다. 다빈치의 마음, 정신까지 같은 형태로 재현할 수는 없으니까.

ㆍ에로스는 우리 영혼을 본향인 ‘이데아 세계’로 귀환시키기 위한 ‘혼의 날갯짓’이고 ‘상승적 창조자’입니다. 또한 참되고 선하며 이름다운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연셜시키는 열정이자 신에게 인도하는 안내자예요. -45

나의 무지를 알게 되는 부분

ㆍ즉 모든 존재물은 신이라는 존재 안에서 존재를 부여받아 존재하지요. -56

신이 어디든지 함께 한다는 것의 근거. 내 주변에 나를 둘러싼 이가 혹은 자연이 사물이 나와 똑같다는 근거.

ㆍ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같지 않기도 하고, 게다가 그 관계도 분명치는 않으니까요. -65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같지 않지. “나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잖아.

ㆍ‘있는 자’는 그 자체 안에 전체를 내포하며 무한하고 무규정적인 실체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이 존재자체를 갖고 있다. -75

ㆍ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곧 새로운 신분이나 새로운 삶의 목적을 얻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80

이름을 하사하거나 이름을 부여받거나 하는 경우가 있잖아. 새로운 삶의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얻었다는 의미

ㆍ고대인들에게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자체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은 사실상 일종의 또 다른 자기(alter ego)가 될 수 있었다. -81

ㆍ세상 만물은 모두 ‘무엇’이라는 본질을 가짐으로써 비로서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그 ‘무엇’이 우리가 부르는 그것의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름이란 어떤 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본질이 이미 규정되고 한정된 ‘존재물’에만 붙일 수 있지요. -84

신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

ㆍ‘어떤 것’이 예컨대 우주처럼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것을 우주라고 규정하고 이름 붙이면 우주는 동시에 우주 아닌 것과 구분되어 최소한 둘 중의 하나일 뿐, 만물의 궁극적 근원은 될 수 없습니다. -85

읽다보면 쉽게 이해 가는데 한 번도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ㆍ존재는 생성되고 소멸되지 않으며,

온전한 일자(oulon mounoqenes)이고 흔들림이 없으며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래에 있게 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있으며,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87

ㆍ출발에서 벌어진 미세한 틈새가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간격이 되는 법입니다. -93

오역이 낳은 엄청난 불찰. 어떤 일이든지 작은 차이는 큰 차이를 낳게 되는 법이기 않은가? 어렸을 때는 정말 사소한 차이로 보였는데 성장하고 난 후에는 그것이 가져오는 큰 차이가 보이는 거지.

ㆍ우리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보다는 볼 수도 있고 만질수도 있는 존재물을, 다시 말해 신보다는 세상을 더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자신의 가려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요. 기독교에서는 이 같은 우리의 성향을 죄성(罪性)이라고 부르지만, 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간절히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고 싶은가요! -98

우리가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원인인가. 예전에 성상을 사용하여 게르만족에게 포교를 하였다는데, 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신이다.”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 것. 나도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라는 말에서 가까운 듯 하다.

ㆍ신이 그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존재다”라고 한 대답에는 '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었다는 말이지요. 즉 “너는 흙이나 흙으로 돌아갈(청세기 3:19)” 존재물이라는 것입니다. -99

ㆍ한미다로 인간과는 저혀 달라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신은 세상의 모든 존재물이 조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존재하지도 않지요. 신은 ‘무엇’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합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신에게는 우리가 사용하는 ‘.....는 존재한다.’는 술어도 사용할 수 없지요. -101

신의 거대함이 느껴진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

ㆍ모든 것이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며, 그렇기에 참되다는 것이지요. 반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렇기에 헛되다는 것입니다. -109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을 온전히 느껴본적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는 한다.

ㆍ개개의 사물 안에는 이데아가 들어있습니다. 이 ‘들어 있음’을 통해 개개의 사물들은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그것의 ‘본질’은 물론, 있음이라는 ‘존재’를 부여받게 되지요.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 얻게 됩니다. -111

나에게도 본질이 있고 그로 인해 존재를 부여받고 나라는 이름이 있다. 그럼 그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철학인가......

ㆍ신이 계층적 질서를 통해 자연의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맞춰 우리의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단계적으로 설정했으니까 그것을 따르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120

그것을 따르면 신에게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사다리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ㆍ그대의 존재를 그대 안에 한정시켜라. 그리하면 결코 더는 비참해지지 않으리라. 존재의 대연쇄에서 자연이 당신에게 할당한 자리에 머물러있으라. 그리하면 아무도 당신에게 그곳에서 떠나라고 강요하지 않으리라. -129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였을 것이라 생각이 되면서도 분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쯤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 나의 내공이 얕은 것인가?

ㆍ문명에도 이렇듯 유행이 있기 마련입니다. -138

우리가 세계사를 배워도 그렇다. 그 시대의 주류 사상이 있기 마련이고 철학, 미술, 음악 모든 것들이 그 당시의 사조를 따라서 흘러간다. 지금 우리도 무엇인가의 유행에 따라 가고 있을 테고, 나의 생각도 그 유행에 따른 것일테다. 후세에 보면 “말도 안돼”라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겠지.

ㆍ한 계단이 무너지면 결국 거대한 모든 계단이 무너질 것이다 .

자연의 사슬에서 그대가 빼 낸 하나의 고리는

열 번째건 만 번째건 사슬을 파괴할 것이다. -141

왠지 환경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꼭 신과 관련된 존재의 대연쇄에 비쳐서 보지 않더라도 많은 부분들이 설명되는 부분이다.

ㆍ세상 만물은 그 무엇이든 끊임없는 자기동일적 생성과 작용을 통해서만 불변할 수 있습니다. -148

가만히 있는 것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나다울 수 있으려면 나 다움을 계속 생성해내야 한다는 것.

ㆍ신은 성질이 없어 선하며, 양이 없어 크고, 결핍이 없어 창조적이며, 지위가 없어 통치자이며, 외관이 없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장소를 갖지 않아 어디든지 있고, 시간을 갖지 않아 영원하며, 변함이 없어 변화하게 하고, 아무 작용을 받지 않아 모든 작용을 한다. -155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아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ㆍ야훼는 세계에 항상 내재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언제나 초월합니다! -165

신의 존재

ㆍ원래 그게 신이고 본디 그게 인간이지요. 신은 무한하고, 인간은 무한한 어떤 것을 상상하거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166

인간으로써 신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들린다.

ㆍ신에 대한 모든 상상, 모든 형상화, 모든 규정과 언급은 사실상 부질없을 뿐만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166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노력을 하는데.

ㆍ어떤 식으로든 신을 인식하지 못하고야 어떻게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사랑과 은혜를 갈구할 수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가엾은 실존적 상황이지요.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이디 있을까 싶습니다만, 달리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167

나를 이해해주는 듯 한 말이랄까. 상처받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는 말투다. 그래 나만 그런게 아니야 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ㆍ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이 각각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질서를 지어주는 어떤 지적 통치자가 존재한다. 그 존재를 우리가 신이라 한다. -195

ㆍ‘신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가치가 덜 있을지는 몰라도 더 편안하고 즐겁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203

가치가 있는 삶만이 삶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삶이 나는 좋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즐거우면서 가치가 충만한 삶이겠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본능아닌가? 나만의 본능인가...? 신이 있음은 믿지만 신을 갈구하지는 않는데 나의 삶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은 사실같은데.....

ㆍ‘안에 있는 적이 더 위험한 법’입니다.-205

내부의 적이 가장 위험한 것처럼 비단 한 조직의 내부가 아니더라도 나의 내부에 있는 적이 가장 큰 적이다.

ㆍ바로 이것이 삶이라는 늪에서 매 순간 운명과 죽음, 허무성과 무의미성, 죄책과 정죄에 대한 불안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종교에 대해 진정 바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딱딱한 신학 이론이나 따분한 설교보다는 생생한 종교적 경험을 원합니다. 그러니 “어서 줄이나 던져라!”라고 외칠 수 밖에 없지요. -222

경험에 의한 것이 가장 잘 믿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사이비같은 종교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순간 체험하게 해주는 신비함 이것이 종교적인 것이라 한다면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신의 세상을 살아가는 신과의 괴리감이라 해야할까.

ㆍ‘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보이니 그렇게 생각한다’-227

ㆍ하나의 패러다임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경험은 서로 엉켜있어서 패러다임이 다르면 경험도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228

ㆍ우리가 ‘무엇을 보는(또는 경험하는)것’이 아니라 ‘무엇을 무엇으로 본다(또는 경험한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결국 우리의 인식은 일종의 해석(interpretation)인 것입니다.-228

같은 현상을 보는 사람도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일을 경험하는 생각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도 같은 행동의 양상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듯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지만 생각의 힘은 크다. 왜 ‘신’이라는 책을 보면서 내가 이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의 내용이 나의 생각과 많이 비슷해서....

ㆍ‘신의 현존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결국 당신이 어떤 패러다임을 가졌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30

이 문제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가 그렇겟지. 모두가 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ㆍ진정한 회심은 인간으로 인해 수없이 진노한 존재, 인간을 어느 때나 정당하게 멸할 수 있는 보편적 존재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무(無)로 만드는 데 있으며, 그 존재 없이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한 그에게 버림받았음 외에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데 있다. -233

ㆍ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우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보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린도 전서 13:1~2) -235

사랑. 기독교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 불교에서 부르짖는 자비와 유사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위가 훌륭하더라도 의도의 중요성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한다.

ㆍ그를 찾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있고,

찾지 않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없는 표시를 주었다.

<오직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 충분한 빛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 -235

찾고자 해야 찾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신이 아닐 지라도 오직 원하는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이던지.

ㆍ어머니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며 오로지 아들을 축복하려고 애썼습니다. -240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이렇게 하은이를 축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ㆍ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을 397년, 그의 나이 마흔셋에 썼습니다. -264

공통점 찾기 놀이

ㆍ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훗날 그가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가 되는 데 필연적이 준비과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264

어떤 경험이라도 나에게 마이너스를 가져오는 것은 없다. 우리는 단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아픔을 주고 시련을 주는 경험이라도, 정말 쓸모 없어 보이는 경험이라도 나를 키우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의미만 제대로 파악할 힘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경험은 쓰레기와 같이 정말 없었으면 하는 그런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경험도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으면 하는 그런 일들도 나에게 자양분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할 수 있다.

ㆍ삶의 양식이 변하자 언어놀이가 변했고, 개념과 더불어 단어의 의미가 변한 것이지요.

ㆍ“하나의 언어를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삶의 양식을 떠올리는 것이다.”

ㆍ어떤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삶의 양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ㆍ같은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303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맥락에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 “공감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핵심과 비슷하다.

ㆍ과학과 종교의 대립에서도 이들이 전혀 다른 문법으로 서로 다른 언어놀이를 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과학과 종교 사이에 바람직한 소통이 비로소 가능해지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이해의 진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305

과학과 종교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경우는 많이 있다. 한글을 쓰지만 말이 안 통하는거.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듯 보이면서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ㆍ우리는 자신의 언어놀이에 속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언어놀이의 문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이해의 진보를 가져와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오히려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307

ㆍ만일 당신이 상대의 주장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같은 새로운 합의나 일치를 얻어 냈다면 당신은 비로소 ‘이해의 진보’를 이룬 것이고 그로써 상대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이지요. -309

ㆍ과학과 종교간에 이뤄져야 하는 대화와 소통의 조건이자 목표는 어떤 합의나 일치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 담론에 대한 ‘진정한 이해’입니다. 그러지 않은 채 성급히 어떤 일치나 합의를 끌어낼 목적으로 하는 소통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되거나, 획일화를 강제로 유방하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일치나 합의에는 -설사 그것이 옳은 자가 그른 자에게 베푸는 선의라는 겉옷을 입고 나타날 때조차-사실상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와 폭력이 들어 있게 마련입니다. -311

아이에게 말하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다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마”를 남발하고 있는 나는 그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아이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아이는 다치지 않겠지만 내가 하는 말이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ㆍ서로 다른 문법들을 가진 담론들을 어느 하나의 문법으로 획일화하려는 야망을 갖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진리라는 생각, 그리하여 그것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기인한 만행에 불과합니다. -313

반성하자....

ㆍ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조명하여, 단지 하나로 통합하거나 융합하는 게 아니라 나란히 겹쳐 놓음으로써 보다 진리에 가까운 입체적이고 생생한 지식이 제 스스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313

ㆍ누가 내게 묻지 아니하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나이다.

하지만 누가 내게 물어 그것을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하나이다. -324

때로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힘이 들 수 있다. 시간이라는 건 단어적인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닐 때가 있으니까.

ㆍ시간은 ‘마음 밖에서’ 파악할 수 없고 오직 ‘마음 안에서’ 드러나며, 마음과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변하면 삶이 변하고, 삶이 변하면 시간도 변하지요. -326

ㆍ‘이전’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이후’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뿐이지요. 그나마도 그 ‘지금’에는 시간적 연장, 곧 지속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분산되는 수많은 찰나들, 즉 지금, 지금, 지금, 지금이 무한히 반복될 뿐이지요. -333

지금 행복하십시오. 라는 말이 와닿는다.

ㆍ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입니다. -334

ㆍ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무한히 분산되지 않고 하나의 통일체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통일체 안에서는 과거도 사라져서 허무한 것이 아니며, 현재 역시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미래 또한 다가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불안한 것이 아니지요. -335

ㆍ우리의 마음은 다릅니다 .물리적 시간을 살 수도 있고, 심리적 시간을 살 수도 있어요. 존재물의 시간과 세속적 시간을 살 수고 있고, 존재의 시간과 신적 시간을 살 수도 있습니다.

ㆍ우리 마음(영혼)이 심리적 시간을 살 때 우리의 삶은 현전하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인해 의미와 가치 그리고 희망으로 충만하고 풍요로워지지요, 그래서 존재물보다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우리 마음이 심리적 시간, 존재의 시간, 신적인 시간을 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337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도 있는데 많은 순간은 물리적 시간으로 살고 있는 나를 본다. 몸이 물리적 시간 안에 갇히더라도 마음이라도 훨훨 날아 심리적 시간으로 살 수 있도록 놓아 주어야지.

ㆍ당신의 마음이, 모든 과거가 기억으로 현전(現前)하고 모든 미래도 기대로서 현대 안에 있는 시간을 산다면, 당신을 결코 그런 짓들을 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결코 사라지지 않고 현전하는 수치스런 과거와 이미 다가와 함께하는 암울한 미래 때문에 평생 괴로울 테니까요. -338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하는 이유. 과거의 잘못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으니까. 나의 미래를 저당잡힐 수도 있으니까.

ㆍ우리는 여전히 일주일의 고통의 대가로 한순간의 환락을 사지 않나요? 달콤한 포도 한 알을 얻기 위하여 덩굴을 모두 망치지 않나요? 영원을 팔아 순간을 사지 않나요? -339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살다가 한번쯤 물어보는 순간이 있어야 겠다.

ㆍ인간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는 ‘무의지적 기억’은 단지 잊었던 옛 추억을 떠올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겹쳐 놓음으로써 시간에 의해 분산된 여러 가지 상들을 모아 이전까지는 감춰져 있던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 주는 일을 합니다. 그 결과 일어버린 자신의 정체성,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주는 일을 하지요. -342

ㆍ인간은 역사의 객관일 뿐 아니라 역사의 주관이요, 주체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창조할 뿐 아니라 의식하고, 과거를 기억 속에 축적할 뿐 아니라 미래를 기대 속에서 기획하지요. 그럼으로써 현재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의식은 사실 과거와 미래를 현전하게 하는 상기의 힘에 의해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지요. -344

ㆍ창조는 그 근거와 결과가 모두 선하고 아름답다 -367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사람이 존재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의 기독교적인 모습.

ㆍ자연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인간사회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도 그렇지요 -418

ㆍ자연 상태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 관계가 존재하고 그 결과 적자생존이라는 비정한 현상에 생겨난다는 것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424

비정한 형상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나더라고 사람은 그것을 수용하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ㆍ자연과는 달리 인간과 사회는 언제나 가치지향적이고, 또 항상 그래야만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진보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지요. -425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의식은 언제나 진보할 수 있다.

ㆍ그들은 인간이 짐승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했을 뿐이지 짐승과 ‘같다’라고 말한 건 아니었지요. 다윈은 오히려 인간이 저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데 자부심과 희망이 있다고 했고, 등산에 열광했던 토머스 헉슬리는 인간을 “살아있는 세계의 알프스 산맥”으로 비유하면서 한껏 드높였습니다. -430

ㆍ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은 먼 미래에 더 높은 운명을 항하여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431

말의 의미는 해석하는 것에 따라 여러 의미를 줄 수 있다. 다윈의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 본 적은 없다.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구나.

ㆍ신학은 특정 교리를 영구불변하는 진리로 주장하는 체계라기보다는 그것의 시대적 해석이 적절하니 또는 수용가능한지를 늘 질문하면서 성서와 전통적 사상들을 통해 부단히 재고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process)입니다. -460

ㆍ성서에 나타난 계시는 신이 오래전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춘 것으로 간주하고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맞게 성서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교훈했지요. -461

ㆍ기독교 신학은 항상 성서에 근거해야 하지만, 그것은 -마치 역사학이 그렇듯이-언제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창조적 상호작용 속에서 재해석, 재정립되기 때문이예요. 461

신학도 학문이라면 당시의 사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지. 결국 학문이라던가 해석이나 이해도 그것과 하는 대화이니, 항상 변화되는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거다. 신학이나 성서에 대해 나와 생각이 비슷한 저자라는 생각.

ㆍ신의 인격성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 대응이 곧 기도입니다. -559

신이 인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가치가 있다고 들린다.

ㆍ선한 목적과 의도에서 나온 강제는 오히려 그 인격성을 강화해 줄 수도 있음을 보여 주지요. 신의 섭리와 인격성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 기독교의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 신의 섭리에 의한 강제는 선한 목적과 의도에 따른 것어서 신의 인격성을 더 잘 드러낸다는 말이지요. -561

ㆍ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어머니고 어머니의 눈길은 여전히 인자하고 부드럽다. -564

이런 어머니가 되고 싶다.

ㆍ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가르침을 기도란 ‘자신에게 합당한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합당한 것을 청원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지요. -567

ㆍ예수가 말한 신이 더해 줄 “모든 것”이란 ‘신이 보기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이지)마태복음 6:7, 32),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신은 오직 그의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좋은 모든 것’을 더해 준다는 뜻이지요. -571

ㆍ“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부분이지요. 이때 예수가 말하는 ‘좋은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이 아니라 신이 생각하는 좋은 것입니다. -571

간혹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이제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이번엔 되겠죠?” 라는 식의 말을 그냥 하는 거다. 내가 말로 구구절절히 읊지 않아도 신은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루어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신은 그렇다.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신을 비방하지는 않는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얻는 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ㆍ신의 강제적 섭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왜냐고요? 가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원하는 응답을 받으면 받는대로, 또 받지 못하면 받지 못한 대로 그 결과를, 자신을 향한 신의 섭리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75

실패의 원인을 자신이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자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자는 같은 실패를 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ㆍ신의 섭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로 신의 섭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576

결국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중요한 것.

ㆍ세네카는 네로 같은 향락주의자들을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죽을 줄도 모르는 인간”이라고 평했지요, 그래서 이들은 항상 삶에 대한 불안과 절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고도 주장했습니다. -582

무섭고도 불쌍한 인간. 그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 겠다고 수없이 생각한다.

ㆍ절망하라. 그러면 그대 정신은 결코 더 이상은 우울 속에서 신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가, 비록 그대는 그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것이지만, 다시금 그대에게는 아름다워질 것이고,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그리고 그대의 해방된 정신은 자유의 세계로 날개 치며 솟아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585

ㆍ주님이 기다리신다면,

그것은 우둔한 지체가 아니라 지혜입니다.

주님이 기다리시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고,

우리를 도와주셔야 할 때를 미리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다리신다면,

그것은 인색함 때문이 아니고

적절한 때에 자녀들에게 주시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안전한 곳에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경 륜이십니다. -607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리 생각하는 것은 정말 마음이 편한 행위다. 적절한 때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나에게 주시려 한다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좋은 것을 주어도 모르는 때가 있다. 내가 받이들일 때가 되지 않아서 주지 않으실 때도 있고 혹은 더 좋은 것을 위해 거두어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절망하지 않고 신을 믿는 것은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ㆍ진리는 말 뿐만 아니라 행위를 통해 구현된다는 것, 기독교를 통해 서양문명 안에 잠재되어 부단히 내려오는 바로 이 고귀한 사유를 감안할 때, 우리가 삼위일체의 내용을 단순히 사변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지침이 되느냐 하는 것이지요. -720

성서를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하느님의 계시를 한자한자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ㆍ진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면 우리의 사고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723

ㆍ아가페는-마치 여러 악기가 서로 다른 자신들의 역할을 오히려 굳기 지킴으로써 다상성을 가진 하나의 음악을 이루어 내는 교향악처럼-서로 다른 개체들이 모여 서로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어럿이면서 하나’인 공통체를 마침내 이루어 내는 사랑이지요. -726

ㆍ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신이 갖는 유일성은 포괄성이지 베타성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은 통일성이지 단일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ㆍ그 말은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상호내주적이고 상호침투적인 포용과 사랑을 베풀어 “나란히 그리고 더 불어”실존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엄중한 선언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만 하지요. -732

우리는 흔히 배타성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믿지 않는 자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종교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을 가진 종교인들은 싫어하게 된다.

ㆍ그렇다면 신의 대한 이해와 표현의 변천은 단지 ‘인간에 의해 경험된 신의 역사’일 뿐입니다. 시간 밖에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신이 역사 안에서 인간정신과 문화의 진보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고 표현되었다는 뜻이지요. -748

내가 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과 비슷한 느낌.

ㆍ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은 역사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시점에서 그 관념을 사용했던 각 집단에게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대에 한 집단에 의해 형성된 신 관념은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 무의미할 수 있다. -750

우리는 지금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을 믿고 있는 건 아니니까.

ㆍ인간에게 계시되는 신은 역사 안에서 진보하는 인간정신과 문화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고 표현된다는 것이지요. -753

ㆍ인간은 어떤 문명에 살고 있던 간에 다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 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그 방안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런 노력들이 쌓이게 되면 문명의 충돌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단일 문명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782

ㆍ신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아낀다는 사실이지요, -790

이 쉬운 듯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많은 곳에서 발견한다. 예로부터 종교는 많은 충돌을 가져왔으니까. 지금도 끊이지 않는 종교 분쟁지역의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떤 종교의 신이든 다른 종교를 배척하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

ㆍ이것을 취하되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지요. 요컨대 작은 이야기들도 하되, 큰 이야기도 함께 하자는 말입니다. -808

ㆍ그가 말한 ‘온전한 사랑’ 안에서는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이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공허함을 해소하고,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의 맹목성을 바로잡아 줍니다. -809

ㆍ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야겠지요. 여기서부터 희망입니다. -810

나는 이런 희망적인 결론들이 좋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지은이의 말을 시작으로 총 5부 9장, 그리고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의 말에서 콘스탄티누스의 일화를 예로 들어 서구 문명과 신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하며, 서구 문명의 심층적 이해를 위해 우리가 그들의 생활에 흡수되어 있는 “신”에 대해서 알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시, 소설, 희곡, 조각, 음악, 역사, 과학, 철학, 신학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고대의 디아트리베라는 수사법을 쓸 것을 미리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한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문체일 것이다. 마치 옆자리에 앉은 이가 이야기하듯 적어내는 이 문체는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의 거부감을 덜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제목은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며, 두께는 배게로 쓰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이고, 무게도 제법 묵직하다. 그 만큼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가지고 다니며 부담없이 읽기에는 많은 제약점이 따라붙을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사용한 부드러운 문체는 이 책에 대한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어준다. 특히 글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나는 그런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요?”와 같은 물음들은 일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없던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1부, 2부 3부... 각 부는 일화를 시작으로 가지고 있다. 1부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처음 그려질 당시를 말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3부에는 네로... 우리가 들어봤음직한 일들, 들어보지는 않았더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만한 일들을 먼저 서술해 놓음으로써 우리가 책에 다가서기 쉽게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나 일화를 바탕으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그 호기심에 질문을 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글을 읽다가 보면 각 성인들이나 철학자들을 소개할 때에도 그들의 일대기를 통하여 시대적 상황을 풀어내는 그리고 그 안에서 의식의 변화를 소개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신학이라는 자칫 잘못하면 딱딱할 수 있는 소재를 적당한 이야기로 풀어나가면서 거부감이 들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작은 이야기로 시작한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전개되어 나가고 결국은 커다란 대양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마지막에 다시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 인해 우리가 읽은 글을 다시 한 번 알게 한다.

이 글은 매우 친절하다. 이 방대한 내용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중간 중간 보인다. 최대한 쉬운 글로 표현하는 저자는 우리가 흔히 들어봤음직한 시라던지, 유명인의 말이라던지, 문학작품을 군데군데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책의 내용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이해를 도운다. 우리가 쉽게 느낄 수 있는 예들을 첨부시켜 놓은 것들도 그러하다. 어려운 개념에서 우리가 책장을 덮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들을 들어 놓았다.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는 어려운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또한 앞부분에 읽은 내용을 잊어버린 독자를 위한 간단한 내용소개도 친절함의 한 부분이다. 저자는 글을 전개하다가 필요한 부분에 앞부분의 내용을 간단히 다시 소개하는 수고를 하는데, 이는 긴 내용을 읽으며 순간 잊어버린 부분을 위해 앞장을 팔락거리는 수고를 덜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나 방대하다. 『신』이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마치 철학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철학과 신학이 유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마치 플라톤을 알기 위한 여정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중간중간 나는 지금 철학서를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느낌 또한 든다. 또 하나는 “하나님”과 “하느님”이다.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신”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면서 달라진 단어들이다. “하느님”을 “신”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알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작은 단어 하나가 엄청난 차이를 몰고 올 수 있다면 이 단어들도 그런 의미에서 신경을 써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 단어를 선택하여 쓴 의미를 덧붙여 준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P *.23.18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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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13:27:48 *.124.233.1
루미님! 4주간 레이스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함께 더불어 달릴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랄께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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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6:53:37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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