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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일 15시 50분 등록

먼나라 거쳐 이웃나라로 돌아왔다

  『먼나라 이웃나라13-중국1』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0

  최근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제적 위상과 자신감이 몰라보게 달라졌는지 중국 중심의 사고와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한국은 스스로를 동북아 국가로 본다. 일본은 스스로 동아시아 국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아시아 국가라고 하겠다.” 또 중국 전체 수출액 중 한국 비중은 4.5%에 불과하며 중국 31개 성시 중 하나인 광동성의 소득이 조만간 한국 전체를 제칠 수도 있다고 큰소리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한국이 보는 중국과 중국이 보는 한국은 이처럼 다르다. 한때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재미난 글이 떠돈적이 있다. ‘1949년(중국 성립)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개혁개방 시작)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텐안먼 사태)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금융위기)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신(新)중국을 탄생시킨 사회주의 혁명서부터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60년을 돌아보며 나름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말 세계 수도의 지위가 뉴욕에서 베이징・상하이로 이동하며, 국제 무역 시장에서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거래하는 날이 조만간 올지 모른다. 우리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라는 덩치 큰 4대 열강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세계패권을 위해 부활하는 중국의 눈에 이웃나라인 한국의 존재가 자칫 작아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럴때일수록 중국을 제대로 보고 공존의 길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고,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한 공부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던 참에 맞춤한 책이 눈에 띄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만화였다.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전국의 집집마다 적어도 한 권씩, 학교 도서관마다 한 질씩은 가지고 있을 만큼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민 교양 만화다. 지난 1981년부터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유럽 6개국 편이 사실상 시작이라고 보면 작업에만 29년이 걸린 셈이다. 당시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국내 독자들을 전세계 역사・문화에 눈 뜨게 만든 최초의 대중 교양서 역할을 했으며, 1987년 첫 출간 후 세계 시민의 마인드를 제시하며 글로벌 시대를 열어준 국민 교양 만화로 평가받고 있다. 당초 저자는 '미국 편'을 끝으로 이 시리즈를 접으려고 마음먹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중국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늘 허전함으로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감히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거대하고 뿌리 깊은 나무였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중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역학 변화 속에서 끊이지 않는 독자들의 '중국 편' 출간 요구를 받아 고심끝에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화려하고 장대한 역사 뒤에 감춰진 중국의 재탄생 과정을 쉽고 자세하게 그려낸 <먼나라 이웃나라> 13권『중국1-근대편』이다.

  ‘중국’의 역사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부터 시작된다. 이집트, 로마, 몽골, 오스만트루크 제국 등 지구상 모든 제국이 사라졌어도 현재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그러나 청나라 초기 130여 년의 태평성대를 보내며 지속된 안정과 평화는 중국이 몰락하는 큰 원인이 되었으며, 정치・경제 혁명을 통해 발전을 거듭한 유럽에게 추월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화사상으로 천하의 중심이 되고자 했던 동양의 제국이 서구 열강의 강탈과 수모를 겪으며 약체 국가로 추락하면서 중국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중국은 어떻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1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으로 부활을 이뤄냈을까? 중국편 첫 권은 17~18세기 태평성대를 누리며 세계 최강 제국이었던 청나라가 19세기 유럽 제국들의 침략을 받고, 오랑캐로 여기던 일본의 지배와 남북 군벌의 대립을 겪으며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다. 이후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학생·노동자들의 봉기로 공화국의 싹이 트는 과정도 보여준다. 이렇듯 중국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내부의 분열에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기나긴 수난과 침탈에 안팎으로 맞서 싸우며 변화해 왔다.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청일 전쟁, 신해혁명, 5・4운동 등 세계사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 사건들이 글과 그림으로 어우러져 단번에 꿰어진다. 그런데 두 번에 걸친 아편 전쟁에서 패배하고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중국과, 중국의 몰락을 지켜보며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기 개혁을 시작한다. ‘중체서용’ 사상으로 중심을 잃지 않고 서양의 앞선 기술만 받아들여 국력을 키우려던 중국의 양무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데 비해, 탈아입구・화혼양재 이념으로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스스로 부정하고 근본부터 서양식으로 바꾼 일본은 급속한 발전을 거쳐 서구 열강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이는 중국이 과거 오랑캐로 여기던 일본에게 지배를 받는 결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외세의 침략 앞에서 스스로를 바꾸려는 자기 개혁의 몸부림이 어찌하여 일본은 성공하고 중국은 실패하였는가?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을 꿈꾸며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왜 이제 비틀거리며, 폄하되고 멸시받던 중국은 세계 최강국을 향한 웅비를 거듭하는가? 저자는 특유의 탁월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이 질문의 해답을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찾아 풀어낸다. “중국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혼란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으며 서구열강과 일본에 침략과 멸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끝내 중화사상을 버리지 않았고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왔으며 동양인・아시아인의 정체성을 지켰고 문화 정체성을 확고히 유지해왔기에 역설적으로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뚜렷한 문화 정체성이 성장의 정신적 동력이 되어 세계 제일의 대국을 향한 무서운 비상을 거듭하고 있다.(89쪽)” 책은 그밖에도 아편 전쟁이 중화사상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청・일, 러・일 전쟁은 청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의화단 운동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군벌 정부의 몰락과 중화민국의 성립과정 등을 한눈에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특히 중국 국내상황 뿐만 아니라 중국의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와 일본의 시대상황까지 곁들인 설명 덕분에, 역사책 몇 권 을 함께 펼쳐놓고 각 나라끼리 비교하며 읽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중국 문명을 평가하는데 인색한 서양 학자들조차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중국의 경제력과 문화수준은 유럽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고 인정한다. 우리에게도 중국은 경외의 눈을 가지고 쳐다보던 문화대국이었다. 청나라 시대 수도 베이징은 세계의 지식에서부터 서양의 과학기술까지 모든 학문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문명의 백화점이었다.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베이징으로 가는 사신단에 합류하길 가슴 설레며 소원했다. 최근 몇 년동안 출장이나 여행으로 북경・상해・서안・돈황 등 중국 곳곳을 다녀본 개인적 경험이나, 한 독서모임에서 ‘중국 전통사회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중국 최고의 명작소설 <홍루몽>을 윤독하면서 받은 느낌도 비슷했다.

중국의 본질과 중국인의 내면을 정교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중국의 근・현대사를 모르고 중국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현실을 읽고 내일을 유추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문자 텍스트 뿐만 아니고 그림 한 컷 한 컷을 통해 보고 넘기는 만화책이 아닌 읽고 곱씹는 역사책으로서의 역할을 독특히 해내고 있다. 유익함은 물론이고 덤으로 흥미와 재미까지 안겨 주기에 자녀들에게 주는 선물로도 적당하다. 뿐만 아니라 국민 교양 만화라는 명성에 걸맞게 성인들의 서재에 꽂혀 있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책이다. 먼나라를 거쳐 이제야 이웃 나라로 돌아온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 편>, 근대편에 이어서 나올 현대편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끝-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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