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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3일 05시 34분 등록
 

괴테와의 대화 Gesprache mit geothe


요한 페터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8.


1. 저자에 대하여


■ 요한 페터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 ■

 12.jpg

 

•출생/사망

1792.9.21 독일 빈젠 / 1854.12.3(62세)

 

•활동분야

독일 문필가, 만년의 괴테의 비서이자 동료

 

•발 자 취

1808. 빈젠 법원 서기 취업

 

 

1813~1814. 해방전쟁 자원병 입대. 네델란드 회회 접함

 

 

1814. 빈젠 귀향

 

 

1815~1821. 하노버에서 김나지움 다님. 문학공부 전념하며 첫 번째 시집 발간

 

 

1819. 요한나 베르트람(17세)과 노르트하임에서 약혼

 

 

1821. 괴팅켄에서 법학 공부

 

 

1822~1823. 자유문필가로 활동. 『시학논고』발간

 

 

1823. 괴테에게 면담 요청하여 다음날 괴테와 첫 대면함

 

 

1825.5.24 괴테가 『괴테와의 대화』를 정독함

 

 

1825. 괴테의 협조로 예나 대학 명예학사박위 받음

1825. 엘베 강, 함부르크, 하노버 등지 여행함

요한 페터 에커만

 

 

1826~1831. 젊은 여배우 아우구스테 클라치히 깊이 연모함

……

가난하다고 해서 꿈조차 없겠는가

……

 

 

1829. 황태자 카를 알렉산더 가정교사가 됨

 

 

1830.4~11 괴테 아들 아우구스트와 이탈리아 여행(여행 중 괴테 아들 사망)

 

 

1831.11.9 약혼녀 요한나와 약혼 후 12년 만에 결혼식 올림

 

 

1832. 바이마르 시민권 획득

 

 

1832.3.22. 괴테 사망

 

 

1834.4.30. 요한나 사망

 

 

1834. 대공비 마리아 파블로브나 후원으로 북독일(함부르크, 헬골란트) 지방 여행

 

 

1836. 『괴테와의 대화』1부, 2부 라이프치히의 출판사에서 출간

 

 

1843. 궁정고문관 임명됨

 

 

1846. 에커만의 부채를 바이마르 궁이 재정지원 보장하여 바이마르로 되돌아옴

 

 

•저    서

1823. 시학논고

 

1836. 괴테와의 대화 1,2부

1848. 괴테와의 대화 3부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저자에 대한 기록이라면『괴테와의 대화』의 머리말과 시작 전 자신이 기록한 이야기, 책 속에 부분 부분 들어 있는 그의 생각들이 전부다. 니체라는 대작가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 칭한 책의 작가임에도 에커만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내가 독일인이 아니다 보니 그에 관한 자료를 찾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고라도 수백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는 책의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위치가 그에게 없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가 아니라 사회가 그에게 부여해준 위치 말이다. 그의 책은 에커만의 책이 아니라, 괴테의 책이고 괴테에 관한 책이었다. 괴테를 빼고서는 에커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기록한 그를 보면서, 연보를 보면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것이겠지만 나는 참으로 안쓰럽고 아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에커만이 괴테를 만나 성장하고 변화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에커만이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다고 느껴진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그만큼의 위치를 점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가난했기에 길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생애를 곱씹는 동안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이 계속 맴돌았는지 모른다. 이 시의 부제가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이다. 1800년대 가난한 독일 젊은이의 쓸쓸한 생애가 내 이웃의 이야기인 것 마냥 책을 덮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괴테와의 대화』를 출간하였음에도 부채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혹여 사치스러운 젊은이인가 오해하였더랬다. 오랜 세월 자신의 의지와 꿈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괴테의 전집과 자서전을 도우며 생계를 이어가던 에커만. 자신의 작품으로서 『괴테와의 대화』의 저자가 되어 이 책을 보다 일찍 출간하고자 했으나 결국 괴테의 뜻으로 인해 출간하지 못했다. 그리고 괴테의 전집을 도우며 유고작을 정리하는 편집자의 역할을 한 에커만은 그렇게 많은 보수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가 따랐던 괴테도 죽고 그의 아내도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여 그를 떠났다. 그는 그들보다 20여년을 더 세상에 머물렀지만 『괴테와의 대화』이후 괴테와 관련된 서적 이외에 그의 이름으로 된 다른 책은 출간되지 않았다. 

 

 

1) 가난하다고 해서 꿈조차 없겠는가


 에커만은 1792년 독일 빈젠에서 태어났다. 너무나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어린 시절 일이 곧 놀이였으며 이삭줍기, 도토리 열매 모으기 등을 통해 집안의 생계를 도우며 자란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학교를 다니며 읽기와 쓰기를 익혔다.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의 그림이 지방 유지들에게 전해지면서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겐 그림이 무엇인지, 화가가 무엇인지, 그것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세계이기에 그림에 대한 그의 꿈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배움에 매료된 에커만은 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곧 경제적인 문제로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지자 법원의 서기로서 기록과 잡무를 맡으면서 일을 했고, 이후 감독청과 군청 등 관공서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며 공부를 하다 의용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때 네델란드 그림을 접하며 그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제대 후 홀로 그림을 그리다 스승에게서 배우기로 결심하며 눈쌓인 길을 40여 시간 동안 걸어 람베르크에게 배움을 청한다. 그러나 6개월도 되지 않아 전장에서 얻은 병으로 치료가 필요하고 생계가 어렵게 되자 다시 회사에 취직한다. 즉 상황에 의해 예술가로의 길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여건에 따른 예술가의 삶에 대한 포기는 괴테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에겐 자주 나타나는 일이기도 했다. 병으로 휴식을 취하며 많은 책들을 접하다가 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시를 지어 자비로 시집을 내게 된다. 이 시가 잡지에 실리고 여러 지방에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괴테의 책을 접하고는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더 많은 배움을 위해 일하는 틈틈이 라틴어, 그리스어 교습을 받았고 더욱 더 배우기 위해 스물다섯의 나이에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순수한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일을 병행하며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보니 다시 병을 얻게 되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결국 학교를 그만둔다. 생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에겐 후원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돈이 되는 학문을 하는 경우에만 협력을 약속하였다. 배우고 싶은 열정, 학교를 가고 싶은 열정으로 시집을 내고 수입을 얻게 되자 약혼녀를 두고 괴팅겐으로 떠나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후원자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법학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줄곧 그가 원하는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고 종국에는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 『시학논고』가 탄생되었다. 에커만에게는 이를 통해 충분한 원고를 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이 그에겐 어느 정도 생계를 보장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괴테에게로 보냈고 이후 직접 괴테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골짜기를 걷고 걸어서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가게 된다. 극심한 더위로 힘든 고비를 수없이 넘긴 열흘 간의 기간을 지나서였다. 그 길로 괴테의 문학 조수가 되어 1823년부터 1832년까지 10여년 동안 괴테와 교류한다.

 에커만은 그 자신도 생계로 인해 꿈을 포기한 일들을 얘기하며 아무도 자신을 탓하지 못하리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가난으로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가난하여 그것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을 뿐, 늘 그는 꿈을 위해 내달리며 배우고 또 배워갔던 것이다. 그림을 배우고자 할 때도 스스로 스승을 찾았고, 문학에의 열정이 가득찼을 때에도 배우고 공부하며 시를 썼다. 그리고 또한 힘든 여정들을 거치며 괴테를 찾아 나섰다. 그가 진정 가난으로 예술가의 길을 포기한 자라면 여전히 그는 법학이나 군청에서 일을 하는 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후세에 전하고 있고 그가 남긴 『괴테와의 대화』는 니체를 통해 칭송받는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2) 가난하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음을


 문학에의 열정으로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며 스스로 스승을 찾는 여정을 떠난 청년은 시간이 지나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까.

 에커만은 지금으로 봐선 아직 청춘인 시절인 62세에 사망하였다. 그의 삶에 많은 시간을 괴테와 함께 했고, 괴테의 작품과 함께 했고, 괴테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 그가 괴테의 작품을 읽고 괴테를 만나 그와 함께 삶과 예술과 다양한 학문들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동안 에커만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했으며,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에커만에게 있어 괴테는 지적 동반자이자 절대자였던 것이다.

 괴테 역시 그의 유고작을 에커만이 편집해 주기를 바랐고 괴테가 세상을 뜰 때까지 에커만은 괴테의 원고를 정리하며 <예술과 고대>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았고, 괴테 사후에는 <유고 전집>을 펴냈다.

 그의 삶에서 괴테의 자리가 크기에, 그리고 떨쳐버릴 수 없는 가난으로 더디게 도달한 자리였기에 애정이 남달랐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또 한편 외롭게 외면받았을 존재가 있다면 그의 약혼녀이다. 에커만은 괴테를 만나기 전 요한나 베르트람과 약혼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은 하지 못했고 에커만의 공부를 위해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괴테의 아들과 여행을 떠난 에커만은 여행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인생에 대해 고뇌하던 중 약혼녀와 함께 하며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마침 대공의 자제를 교육하는 일을 제의받아 기쁨으로 여행에서 돌아오지만 그와 같이 여행하던 괴테의 아들이 여행에서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일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여전히 에커만은 결혼하지 못하고 괴테의 건강을 걱정하며 괴테의 일을 돕게 된다. 이후 1년이 지나 약혼 12년 만에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3) 그는 벽 속에 갇혔다


 어쩌면 에커만에게 괴테는 끊임없는 벽이었다. 오직 괴테의 작품에 대한 감탄과 괴테에 대한 존경으로 가득찬 한 사나이의 순수한 열정들을 가두는 벽 말이다. 그 자신 어려움 속에서 남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적당한 거짓을 배웠다고 얘기했지만 괴테와의 만남 속에서 그것은 발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사람처럼 에커만은 괴테 앞에서 너무 작아진 듯하다. 게다가 주눅든 아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청년 시절까지만 해도 당당했고 열의가 넘쳤던 그였는데 말이다. 괴테를 만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학구열에 불타올랐고 그 자신 또한 창작열에 불타는 문학도로서 그는 시를 짓기도 하고 『시학논고』를 펴내기도 했던 그였는데 말이다. 반면 ‘장인님, 이제 장가보내줘유‘를 외치는 ’나‘에게 자꾸 점순이의 자라지 않은 키를 얘기하며 외면해 버리는 김유정 소설 <봄봄>의 장인처럼 괴테는 심술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에커만의 생애마다 괴테라는 존재로 막혀 있었던 듯도 하다.

 에커만은 괴테의 작품을 정리해주는 조수이자 동료로 만년의 괴테에게는 동반자였다고 얘기된다. 물론 에커만에게도 괴테는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자신의 의지로 괴테와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진정 그들이 동반자였다면 같이 성장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괴테는 성장하기에는 이미 다 자란, 그리고 원숙하게 성장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에커만은 스스로 성숙하였다고 말하고 있고 그러한 면이 책 속에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가 행한 만큼의 강렬함이나 열정이 덜하게 보인다.

 자신의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자신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한 젊은 청춘의 재능을 보았다면 그의 재능을 더욱 이끌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에커만이 좀더 자신의 순수한 창작물을 생산해 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괴테의 그러한 점이 아쉽고 애석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가 재능을 더욱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참 스승의 역할이 아닐까. 그러나 괴테는 오히려 그를 가두었다. 그의 재능을 확실히 인지하고서야 그를 동료가 아니라 정말, 조수로 부린 듯한 인상이다.

 어쩌면 에커만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이끌어주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커만의 재능을 평가한 시점, 중요한 지점은 여기다. 그가 이러한 말을 한 시점이다. 그것은 괴테가 아픈 동안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기간이었다. 그때 괴테는 에커만에게 일을 맡겼고 에커만은 충실히 그 일을 해내었다. 괴테는 에커만의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며 진심으로 기뻐한다. 물론 처음 에커만이 논문을 보냈을 때도 호의적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긴 하지만 말이다. 일단 그가 아픈 기간 동안 에커만이 대신한 일을 두고 괴테는 재능이 있다며 환호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자네에게 말해 두겠네만 만일 다른 곳에서 문학과 관련된 청탁을 받는다면 거부하게. 아니면 최소한 나에게 미리 말해 주게나. 자네는 일단 나와 연을 맺었으니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진다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아.”(괴테와의 대화 1권, p102)


 이뿐만 아니다. 오랜 시간 괴테와 함께 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문학은 창작하지 못했던 에커만은 드디어, 자신에 대한 각성에 이른다. 진정 익숙한 곳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는 자아를 만나게 되는 것인지, 여행을 떠난 에커만은 여행길에서 어느 길을 가야 할 지 모르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그의 욕구와 마주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식을 늘리고, 그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하고팠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괴테와의 대화』를 출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욕구가 강하여서인지 그는 여행에 대한 감흥은 사라지고 오직 원고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찼다. 바이마르로 되돌아가면 자질구레한 일들에 시달리며 시간만 뺏기고 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약혼녀 곁에 머무르며 원고를 마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문학적인 영역에서 영향력을 얻고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바람도 가지며 글을 쓸 때에애 스스로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편지에서 밝혔듯이 오랫동안 자신의 삶이 정체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그는 스스로의 변화를 필요로 하였기도 했다.

 그러나 괴테에게 전한 이 강렬한 열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떠나 있었기에 진실한 그의 마음을 말할 수 있었을 그 고백들은 괴테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괴테는 대화록을 빠른 시일 내에 발간하려는 나의 생각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순수한 문학적 이력을 성공적으로 개시하려던 나의 구상은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괴테와의 대화 1권, p623)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약혼 후 10여년을 떨어져 지낸 이유도 있지만 에커만의 책을 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좌절이 아마도 약혼녀를 만나고 싶은 갈망으로 그녀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으로 대체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무렵 여건도 그에게 좋게 진행이 되기도 했다. 만약 그때 괴테의 아들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는 약혼녀와 함께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의 생에서 조금은 괴테라는 인물이 중점이 되어 돌아가던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갈망을 품고 되돌아 온 에커만은 아들의 사망이라는 슬픈 격랑 속의 괴테를 걱정하며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괴테의 일을 돕는다.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괴테를 만나, 스스로를 너무 낮추었던 에커만의 청춘이 아스라이 느껴진다. 그토록 경외하던 괴테가 사라지고 난 후 그의 남은 생애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괴테와의 대화를 출간하고 난 이후에도 그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음울하게 있지는 않았을지 궁금하다. 그의 생에서 괴테로부터 많은 교양을 얻고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그의 생을 돌아보며 흔들릴 때, 그는 괴테에게서 독립을 꿈꾸었다. 물론 괴테의 허락을 구하고 그의 격려 없이는 무엇도 시작하기 어려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좀더 괴테라는 벽 속에서 튀어 나왔어야 했다. 그 벽 속에 그가 열 수 있는 문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의 생에, 괴테라는 벽 속에서 문을 만들지 못하였다는 점, 그 자신이 문을 여는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참고 자료

요한 페터 에커만/ 장희창 옮김, 『괴테와의 대화 1, 2』, 민음사, 2008.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괴테와의 대화 Gesprache mit geothe 1권


머리말 


p8 책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의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 모든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 운명을 가지게 된다. 그 운명을 알지 못하기에 늘 전전긍긍하고 있다.

p10~11 사람들이 ‘진리’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다만 하나의 대상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에라도 결코 작거나 협소하거나 제한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아무리 단순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시에 포괄적인 그 무엇으로서 넓고 깊은 자연법칙의 다양한 계시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쉽게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는 주장한다고 해서, 아니 주장에 주장을 거듭한다고 해서, 혹은 주장과 반론을 거듭한다고 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총합해야만 비로소 근사치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목표 자체에 도달한다는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 진리(眞理). 이 말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 있을까. 무언가 뿌듯하게 만들어 주는 단어이다.

p11 문학에 대한 괴테의 발언은 종종 일면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명백한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금방 이 세계가 제공하는 소재에다가 모든 중점을 두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인의 내면에 전적으로 중점을 둔다. 그리고 어떤 때는 대상이 전부라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그 처리방식이 전부라고 말한다. 또한 완성된 형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모든 형식을 무시하고 정신이 으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과 모순들이 진리의 개별적인 측면이며, 그 모두가 합쳐져서 본질을 드러내고 진리 자체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저러한 경우에 있어서 언뜻 보면 모순되어 보이는 말들도, 그것들이 다양한 계기들과 변화무쌍한 시기들의 산물인 점을 고려하여 이 책에서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아울러서 나는 개별적인 부분에 의해서 혼란에 빠지지 않고 전체를 고려하며 모든 것을 적절하게 정리하고 결합시키는 독자 여러분의 통찰력과 형안(炯眼)에 기대를 거는 바이다.

⇒ 나의 통찰력과 형안으로는 이 글을 봐도 아! 감탄사 연발, 저 글을 봐도 감탄사 연발할지 모른다. 알고보니 같은 것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견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아직 내 주장이 온전히 잡히지 않은 경우라면 내 자신의 언어로 반박이 서기까지는 이 견해도 저 견해도 일단은 아, 그런가?하게 될 뿐이다.


1부 


들어가는 말

p17 이제 내가 어린 시절에 무엇을 하고 지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또한 계절마다 달랐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이 와서 엘베 강의 범람한 물이 빠져나가면, 나는 매일 집에서 나와 둑의 안쪽이나 그 밖의 높다란 곳에 떠밀려 와 있는 갈대를 모아다가 우리 집 암소가 좋아하는 푹신한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드넓은 목장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하루 종일 소를 돌보며 놀았다. 여름이면 나는 주로 밭일을 하였으며, 또한 사시사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데 필요한 장작을 마련하기 위해,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가까운 숲으로 가서 마른나무들을 끌고 왔다. 수확의 계절이면 나는 몇 주일 동안 들판에 나가 이삭줍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이윽고 가을바람이 나무들을 뒤흔들 무렵이 되면 나는 도토리를 주워 모아 시내의 부잣집에 거위 사료용으로 근수를 달아 팔았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들자 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서서 마을에서 마을로 돌아다니며 보따리 짐을 나르게 되었다. 이 시기야말로 나의 소년 시절의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며 그냥 아련하다.

p18 나는 이 세상에 문학이나 미술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따라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한 막연한 욕구나 동경이 생겨날 리도 없었다.

⇒ 모든 욕구는 그것을 경험함에서 비롯된다. 한모금의 물이 더욱 큰 갈증을 일으키는 것처럼.

p22 그러는 동안 그곳에서 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위대한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교회나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이지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그림들이었다. 나는 여기서 비로소 화가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화가의 제자들이 영광스러운 발전을 하는 것을 보고는, 그러한 길을 가는 것이 이제 내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울고 싶었다.

⇒ 그때의 그 아득함과 막막함이 낯설지가 않아 나도 울고 싶어진다.

p23 화가가 되려면 좀 다르게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 식대로만 한다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스승 밑으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하리라는 계획을 세웠다.

p24 예술도 빵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인 것을 숙달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예술을 하면서 생계까지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인생의 서글픔. 예술을 하면서 생계 해결하기....

p25 이렇게 안팎으로 시달리는 동안 마침 병무청과 제휴하여 하노버 군의 피복을 취급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처럼 나는 상황에 굴복하여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았고, 그러다가 생기자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결정을 탓하지는 못하리라.

⇒ 누구도 탓하지 못하리라. 이런 결정을. 그리고 언젠가는 나 스스로가 그 결정을 탓하는 날이 올 것이리라. 회한으로 내 생애를 되돌아 볼 어느 날에.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안고서.

p27 사람들은 시의 예술적인 효과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해왔고 또 그 효과를 매우 높게 평가해 왔다. 하지만 나는 소재가 주는 효과야말로 본래적인 힘을 가졌으며,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이 작은 시집 『하프와 칼』에서 그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말하자면 나는 쾨르너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우리를 억압해 왔던 것에 대한 증오를 가슴속에 품고 있었고, 그와 함께 해방전쟁을 치렀으며, 고난에 찬 행군과 야영과 전초 근무와 전투를 체험했고 게다가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시집에서 그토록 깊고 강력한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p29 이제 스물네 살이 된 나의 내면에서는 감정과 욕구와 선한 의지의 세계가 생생하게 살아 넘쳤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신적 교양이나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우리나라의 위대한 작가들을 연구해 보라고 권했으며, 특히 실러와 클롭슈토크를 추천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읽고 난 뒤에도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 위대한 작가들이 걸어간 길은 나의 성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 감흥이란 것, 코드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듯하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끌리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 끌림이 덜하게 되는 것이. 

⇒ 클롭슈토크는 독일의 시인이다. 조국애의 정신을 시로 지어 주입시킴으로써 새로운 장을 개척한 근대 독일 국민문학의 선구자로 <취리히 호수>와 <봄의 제전>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p29~30 이 무렵 나는 처음으로 괴테라는 이름을 듣고는 그의 시집 한 권을 샀다. 나는 그의 시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비로소 눈이 뜨이기 시작하고 참다운 자각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이 시들 속에는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의 내면이 비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나처럼 단순하기만 한 인간의 생각이나 느낌으로는 미치지 못할 낯설고 현학적인 요소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이국의 오래된 신들의 이름과 맞닥뜨리는 일도 결코 없었다. 오히려 내가 발견한 것은 모든 욕망과 행복과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었으며, 눈앞에 환하게 펼쳐진 대낮과도 같은 독일의 자연이었으며, 부드럽게 정화된 빛에 싸여 있는 순수한 현실이었다.

⇒ 내 인생을 흩뜨려 놓을 작품을 만난다는 것, 스승을 만난다는 것, 그 환희를 경험하는 기쁨. 생의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p30 우리가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실로 다양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의 당양한 세계를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게 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바로 괴테의 작품이 나에게 그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구체적 대상과 인간의 특성을 더욱 더 잘 관찰하고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통일성의 개념, 즉 한 개인이 자기 자신과 가장 내밀한 조화를 이룬다는 통일성의 개념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이든 예술 현상이든 간에 그 어마어마한 다양성이라는 수수께끼를 더욱더 잘 풀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p31 그 밖에도 여러 측면에서 주목하게 된 바로는 제아무리 애를 써봤자 헛수고일 뿐이며, 고전적 교양 없이는 그 어떤 시인도 자신의 말을 능숙하고 힘차게 운용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내용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 어느 책을 읽더라고 교양이라는 것, 사전지식이라는 것이 책을 읽는데 길잡이가 되어 준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더 깨달아간다.

p33 이렇게 허둥지둥 애를 쓰며 몇 달을 보내자 나의 체력은 그러한 긴장된 생활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옛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공기와 운동의 부족,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과 휴식의 결핍으로 나는 차츰 병약해졌다. 몸과 마음이 무디어지고, 마침내 학교나 직장 둘 중 하나를 그만두어야 할 절박한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1817년 이른 봄 나는 다시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잠시나마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아보았다는 사실이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p34 나는 이 도시의 상류층 중에서 많은 후원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소위 돈이 되는 학문을 하겠다고 결심한다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본성에 맞지 않을뿐더러, 또한 인간은 내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충동이 지향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고 굳게 믿었으므로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내가 바라는 도움을 거절했고, 고작해야 식사 정도만 제공했다.

p35 운명이란 성격에 의해 좌우되는 것임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말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것들에 맞서려고 했다. 인간이 현재에 씨를 뿌리면 미래에 그것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뿌린 씨앗에 따라 좋은 열매를 맺거나 혹은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표현하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p38 나의 현실적인 출세만 염두에 둘 뿐, 나의 정신적인 욕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 리 없는 유력한 후원자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정말 분별 있는 결정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모든 반대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꼬리를 감췄다. 나는 가는 곳마다 우호적인 대접을 받았으며, 목적이 달성되도록 기꺼이 후원하겠다는 격려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런 훌륭한 의도를 확고하게 심어주고자 법률 공부란 것이 정신에 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며 애써 나를 설득했다. 이를테면 법률 공부를 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시민적, 세속적 사정에 능통할 수 있게 되며, 또 법률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도 광범위하여 다른 많은 고상한 일들에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고상한 일들에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대면서 모두 법학을 공부했지만 동시에 다른 많은 고상한 일들에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대면서 모두 법학을 공부했지만 동시에 다른 분야에서도 최상의 지식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사람들은 실리적인 것에 보다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타인에게 도움을 제공할 때 그 도움이 내게로 돌아올 이익을 보장하는가에 관심을 쏟는다. 예로부터 이어진 드라마를 떠올리자면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능력을 가진 가난한 이를 도울 때 그들은 늘 법을 공부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재력가의 도움을 받은 법학도들은 어느 때고 곧 재력가의 충실한 도움을 제공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러한 드라마를 생각하다 보면 에커만의 성정이 얼마나 달랐던가를 느낄 수 있다.

p39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던 것을 이루겠다는 망상과 함께 대학에 들어간 후 나는 바로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게다가 이 학문이 나의 적성에 아예 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학문이 나의 적성에 아예 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 머릿속이 다른 계획이나 시도로 가득 차 있지만 않았더라면 기꺼이 그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나는 불행하게도 마음속으로 다른 애인을 남몰래 품고 있기 때문에 결혼을 청한 상대방에게 이것저것 온갖 트집을 잡는 처녀와도 같은 처지였다.

  

1823년 


p46 “자네 생각이 옳아. 한 가지 일을 분명히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많은 일에도 쓸모가 있는 법이네.” 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세상사가 어떻게 변할지는 헤아리기 어려운 거야. 나는 베를린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이제는 자네도 그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 에커만이 괴테로부터 친구로 등극하다. 괴테 자신에게는 아무렇지 않을지라도 에커만 자신에게는 매우 가슴 깊게 와 닿을 말.

p48~49 거기에 가면 자네는 앞으로의 연구에 도움이 될 극히 다양한 자료들과 편의를 얻을 수 있을 걸세. 또한 아주 교양있는 사교의 기회도 가지게 되었지. 게다가 그 지방은 참으로 변화가 풍부한 곳이라 오십여 개의 서로 다른 산책길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 모두가 정말 안락해서 방해받지 않고 사색에 잠기기에 적합하다네. 자네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서 많은 걸 쓸 수 있을 테고 아울러서 나의 목표를 진행시켜 줄 여가와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걸세.

⇒ 이 곳이 파라다이스처럼 느껴지는군.

p51~52 그리하여 이제 최소한 일 년간의 생계는 확보된 셈이므로, 나는 이 기간 동안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생산함으로써 작가로서 앞으로의 나의 운명에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힘찬 욕구를 느꼈다. 나는 『시학논고』의 논문들을 통하여 이론과 비평에 있어서 일단 나름대로의 방향을 정립하고, 주요한 원리들을 해명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또한 나의 내면의 욕구는 이제 실제적인 응용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나는 길고 짧은 시들을 무수히 구상했으며 다양한 주제의 희곡 작품들도 초안을 잡아 보았다. 나의 느낌에 따르면 이제 나에게는 다소간 무리 없이 작품 하나하나를 생산하기 위해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가 문제일 따름이었다.

p52 나는 그러한 도시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게 살면서 언제나 조금도 방해받지 않고 창작에 필요한 독립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 사람의 생각은 비슷한 것일까. 나 역시 이와 같이 살기를 희망하고 있다.

p55 이 세상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이르는 대문들이 여기 열려 있고 여기서부터 길들이 시작되네. 여름이면 여행을 하게. 그러면 차차 자네가 보고 싶어 하는 걸 다 보게 되겠지. 나는 오십여 년 동안 여기에 살았지만 안 가본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언제나 바이마르로 기꺼이 돌아오곤 했어.

⇒ 여행을 돌아올 곳을 알고 떠나는 것이니까. 결국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까.

p56~57 현재는 언제나 현재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네. 시인의 마음속에 날마다 솟아오르는 사상이나 느낌은 그 모두가 표현되기를 원하고 또 표현되어야만 하네. 그러나 보다 큰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모든 사랑을 등지고 생활 자체의 안락함까지 잃어버리는 걸세. 단 하나의 커다란 전체를 정리하고 완성하는 데 필요한 긴장과 정신력의 소모를 생각해 보게. 게다가 그것을 막힘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또 얼마만한 정력과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생활환경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일단 전체를 잘못 파악하면 모든 노고는 허사가 되고 말지. 더 나아가서 그처럼 규모가 큰 대상의 경우에는 개별적인 부분에서 그 소재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결함투성이가 되고 마네. 그러면 비난을 받게 되겠지. 그리하여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많은 오력과 희생에 대한 보상과 기쁨이 아니라 불쾌함과 정력의 쇠퇴일 뿐이네. 반면에 시인이 날마다 현재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한결같이 신선한 기분으로 다룬다면 무언가 좋은 걸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네.

⇒ 부분에 집착하지 않기. 전체적인 조망 속에서 개별적으로 접근할 것.

p58 사람들이 우리 노인들의 말을 잘 듣고 행동에 옮기기라도 하던가? 모두들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었고 또 그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방황할 시간이 없네. 그건 우리들 노인들의 몫이었지. 젊은 사람들이 다시 같은 길을 가고자 한다면 우리의 노력과 방황이 무슨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지! 우리 앞에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노인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네. 그러나 우리의 뒤를 이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가 있다네. 그는 다시 방황하거나 모색할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충고를 유용하게 받아들이면서 즉시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 하지. 그러나 언젠가 목표로 데려갈 발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네. 모든 발걸음이 바로 목표가 되고 또 발걸음 그 자체로 간주되어야 하는 걸세.

p59 세상은 너무나 넓고 풍부하며 인생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시를 쓸 계기가 모자라는 일은 결코 없어. 하지만 모든 시는 어떤 계기에서 쓰여야 하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거지. 그 때마다의 특수한 경우가 보편적이고 시적이 되는 것은 시인의 손길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네. 이런 의미에서 나의 모든 시는 그 어떤 일을 계기로 쓰였으며, 그 모두가 현실에서 자극을 받고 현실에 그 뿌리와 기반을 두고 있어. 그러므로 나는 허공에서 지어낸 시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네.

⇒ 현실에 기반한 시와 관념적인 시에 대한 논쟁은 지속적인 듯하다. 물론 현실에 기반한 시에도 그저 풍경을 묘사한 시도 포함된다. 어떤 시가 우월하느냐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저 그 작품이 어떠한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p71 사람들은 고대 독일 건축술의 작품들을 대하면 그것들이 특별한 상태에서 갑자기 꽃피어난 것을 생각한다네. 그러니 그러한 꽃을 눈앞에서 마주치게 되면 망연자실할 수밖에. 하지만 식물의 비밀스런 내면의 삶이라든지 미묘한 힘들의 움직임과 함께 꽃이 점차 피어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게 되지. 자신이 보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니 말일세.

⇒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p74 근래의 비극 작가들에게서 심혼(心魂)과 어느 정도의 문학성마저 부정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경쾌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런데도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아닌가.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나는 그들을 ‘주제 모르는’ 작가라 부르고 싶네.

⇒ 주제 모르는 작가가 될 지라도 능력을 넘어선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사람들, 아니 작가들 아닐까.

p80 시와 관련하여 자네에게 두 가지만 말하지. 자네는 지금 개별적인 것을 포착하기 위해 예술 본연의 높이와 무거움으로 돌진해야 하는 그런 지점에 서 있네. 이념으로부터 벗어나자면 반드시 그래야만 해. 자네는 재능도 있고 상당히 발전된 단계에 있으니 이제는 의무적으로 반드시 그래야 하네. ……나는 중요한 점들을 속속들이 체험해서 알고 있고 또 거기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것들이 나에게 너무나 많이 밀려드네. 그러나 자네는 이방인이니 관리인으로부터 그 과거를 처음 듣고는, 곧 바로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의미심장한 현재의 모습만 보게 될 테니 말일세.

p81 하지만 특수한 것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예술 본연의 생명이라네. 보편적인 것에 머무른다면 누구나 우리를 따라할 수가 있어. 하지만 특수한 것은 그 누구도 모방하지 못한다네. 왜냐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특수한 것이 공감을 얻지 못할까 염려할 필요는 없어. 모든 특징은 그것이 아무리 고유한 것이라 할지라도 보편성을 가지며, 돌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표현 대상도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가진다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반복되며, 이 세상에 단 한번만 존재하는 건 없기 때문일세.

⇒ 보편적인 것을 특수하게 표현해 내는 방법. 그것이 창의성이겠지.

p82~83 한 작가에 의하여 그저 평범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실제 공연에서는 오히려 그 특징이 더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인간인 배우들이 그 인물들을 생동하는 존재로 만들고 그들에게 개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위대한 작가에 의해 뛰어나게 표현된 인물들은 이미 뚜렷한 개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실제 공연에서는 그 특성을 어느 정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꼭 들어맞는 연기란 불가능하며, 게다가 자기 자신의 개성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배우들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러한 것들이 모든 배우들의 경우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완전하게 벗어버릴 수 있는 재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공연에서 혼합형태가 나타나게 되며, 인물들의 성격은 그 순수성을 상실하고 만다. 그러므로 정말 위대한 작가가 쓴 작품을 공연할 경우에 작가의 본래 의도가 살아나는 것은 극소수의 인물에 한정되어 있다.

p86 이제 자네가 매우 유쾌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저 뛰어난 사람들의 존재 그 모두를 나는 고향이라고 부른다네. 사람들이 언제나 기꺼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 말일세.

p95 실러의 철학적인 경향 때문에 실러는 그 모든 자연보다도 이념을 더 높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럼으로써 자연을 파괴해 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어나야 한다는 식이지요. 그것이 자연에 적합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p102 자네는 일단 나와 연을 맺었으니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진다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아.

⇒ 흠. 괴테가 에커만을 아끼며 질투한다고 생각하면 좀 누그러지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괴테의 독선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하긴 이때는 그들이 만난 초기이니 아낀다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후자 쪽에 느낌이 더해진다.

p106 나는 시에다 곡을 붙일 때 우선 의미를 파고들면서 상황을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려본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 시를 다 외울 때까지 커다란 소리로 읽어봅니다. 그리고 다시 계속 반복하고 있노라면 멜로디가 저절로 떠오르지요.-첼터


1824년


p112 나는 모든 게 갖춰진 이 시대에 젊지 않다는 것을 하늘에 감사하고 있어. 젊었더라면 가만 있지 못했을 테지. 정말 미국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야. 하지만 이미 늦은 거라네. 이젠 그곳도 이미 너무 밝을 테니 말일세.

⇒ 하, 이 말이 공감이 된다. 모든 것이 갖춰진 시대에 젊음만을 갖지 못하여 지켜만 보는 심정을.

p114 나는 평지에서 자라서 이런 어슴푸레하고 거대한 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면 불안한 마음일 일기 때문에 그런 협곡에서 산책을 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한 감정은 당연한 것이네. 실제로 인간은 자기가 그 속에서 태어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상태에만 적응하니까 말이야. 위대한 목적을 위해 낯선 곳으로 옮겨간 사람이 아니라면 집에 머물러 있는 편이 훨씬 행복한 거라네. 나도 처음에는 스위스가 주는 영향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었지. 그러나 몇 번이나 거듭해서 머물게 되고 비로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네.”

⇒ 이제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나에게는 달리 보이는 말. 언제고 머물러 있는 것이 나았으리라 생각하게 될까. 아주 중요한 시간,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 지가 이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p118 우리 현대인들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참으로 소박한 그런 모티프가 지닌 위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또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지식과 개념도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것을 만들지는 못한다네. 오성(悟性)이 너무 앞서기 때문일세. 그러니 이러한 매혹적인 우아함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하겠지.

⇒ 오성이란 지성이나 사고의 능력. 감성 및 이성과 구별되는 지력(知力). 칸트 철학에서는 대상을 구성하는 개념 작용의 능력~.

p119 마이어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하곤 했네. ‘생각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일세.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생각은 생각 그 자체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괴테가 명랑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다만 천성적으로 정직하다는 것이 중요하네. 그래야만 훌륭한 착상들이 마치 신의 아들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우리 여기 있네! 하고 소리쳐 부를 걸세.

⇒ 가끔은 생각하는 것마냥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만. 실천과는 상관없이.

p120 정신과 드높은 교양이 공통의 재산이 된다면 시인은 마음놓고 창작을 할 수 있을 테지. 그러면 언제라도 정말 진실하게 말할 수 있으며 가장 훌륭한 것을 말함에 있어서 거리낄 필요가 없어지겠지.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일정한 수준을 지켜야 한다네. 자신의 작품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지. 그러니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불쾌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는 걸세.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시간이란 놀라운 것이야. 말하자면 시간은 독재자와 같네. 마음대로 변덕을 부리면서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에다가 그 때 그 때의 세기(世紀)마다 다른 얼굴을 부여하니까 말이야. 고대 그리스인들이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렇지가 않네. 또한 셰익스피어의 힘찬 동시대 사람들이 마음껏 누렸던 것을 1820년의 영국 사람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네. 그러나 현대에는 가정용 셰익스피어 선집이 아주 예민한 독자들의 구미나 맞추어주고 있는 꼴이네.

⇒ 시간의 흐름에도 굳건한 책. 그것이 바로 고전.

p123 세상에는 애초부터 분수에 만족하는 일이란 없는 것 같아. 높은 지위에 있는 양반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 안달이고, 대중은 점진적인 개선을 기대하며 적절한 정도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있네. 인류를 완전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야 완전한 상태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영원히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법이어서, 한쪽이 행복하게 사는 동안 다른 한쪽은 고통을 당하고 있고, 이기주의와 질투심은 사악한 악령처럼 언제까지나 희롱을 계속하며, 당파 간의 투쟁도 끝없이 지속되는 거라네.

      그러므로 가장 분별 있는 행동은 언제나 스스로 지니고 태어난 일, 자기가 배워서 익힌 일에 힘쓰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그들의 직분을 다하는 걸 방해하지 않는 것이네.

p124 나는 내 모든 행동에 있어서 언제나 왕당파로서의 입장을 견지해 왔네. 다른 사람이야 지껄이든 말든 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행해 온 것이지. 나는 나 자신의 일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면서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어. 그러므로 내가 한 개인으로서 과오를 범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올바른 길로 되돌릴 수가 있었던 거네. 그렇지만 내가 세 사람이나 혹은 더 이상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저질렀더라면 과오를 바로잡을 수는 없었겠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의견도 가지각색일 테니 말이야.

p125 나는 로렌초 드 메디치처럼 ‘저 세상에서의 삶을 희망하지 않는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도 죽어 있다.’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야. 하지만 그러한 불가해한 일들은 너무나 요원한 것이어서, 일상적인 명상이라든지 사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네. 더군다나 영생을 믿는 거라면 말없이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될 일이지, 공연히 우쭐거리며 과시할 이유는 없는 거네.

p126 불멸이라는 이념에 몰두하는 것은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이나 할 일이며, 특히 아무 할 일 없는 여자들의 일이라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에서 무언가 제대로 된 것을 이루려고 하면서 날마다 노력하고 투쟁하고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유능한 사람은 내세의 세계는 되는대로 내버려 둔 채 이 현세에서 유용한 일을 찾아 활동하는 법이지. 더군다나 불명성이라는 관념은 현세에서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네. 내 감히 말하지만 그 선량한 티트게의 운명이 보다 좋았더라면 그는 보다 나은 사상을 가졌을 걸세.

⇒ 참 나, 늘 동네북이 되는 여자들. 늘 여자들을 안주삼는 남자들이란!

p131 개개의 성격 속에는 그 어떤 필연성이라든지 그 어떤 일관성이 놓여 있다네. 그리고 그 때문에 한 성격이 지닌 이러저러한 기본적 특성에 다른 특성들이 부가되어 그 어떤 종류의 제2차적인 특징이 생겨나는 거지. 이것은 경험에 의해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타고날 수도 있는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지는 않아.

p132 시인에게 있어서 세계는 원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내부 세계만을 가리키는 것이지 현상이라든지 관습 같은 경험적인 세계는 의미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이 경험적 세계의 묘사에 성공하려면 또한 현실에 대한 탐구가 뒤따라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p133 이 세계를 예감에 의해서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눈 뜬 장님이었을 것이고 그 어떤 탐구나 경험도 전혀 쓸모없는 헛된 노력에 지나지 않았을 거야. 물론 빛은 존재하고 색채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네. 하지만 자신의 눈 속에 빛과 색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외부세계의 빛과 색채도 알아보지 못하겠지.

⇒ 탐구에 의해 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 물론 참 경이롭다. 하지만 어떤 예감에 의해 세상을 느끼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점.

p134 어떤 뛰어난 사람들은 즉석에서 무엇을 해내거나 금방 일을 처리하지 않고, 그들의 천성에 따라 그때마다의 대상들을 여유를 가지고서 깊게 통찰한다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은 이따금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지. 그들로부터는 순차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그 어떤 걸 거의 얻을 수가 없으니 말일세.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최상의 것을 실현시키는 거네.

⇒ 뛰어난 사람들일 수도 있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 여유가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고. 성격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일 수도 있고.

p135 매너리즘이란 언제나 완성만을 염두에 두면서 창작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태도야. 그러나 순수하고 진정으로 위대한 재능은 창작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행복을 누린다네. 로스는 염소와 양들의 모발과 털을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그렸는데, 그 끝없이 세세한 묘사에서 우리는 그가 작업을 하는 동안 너무도 순수한 행복감을 누렸을 뿐, 완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네.

      그러나 재능이 시원찮은 자들은 예술 그 자체에 만족하는 일이 없어. 그들은 창작을 하는 동안에도 완성된 작품이 가져다주리라고 예상되는 이득만을 눈앞에 그리고 있다네. 하지만 그러한 속물적인 목표와 방향으로부터는 아무런 위대한 것도 생겨날 수가 없겠지.

⇒ 어떤 글이거나 완성을 목표로 글을 써왔음을 부인하진 못하겠다. 그럼에도 딱히 완성된 것이 없다는 사실, 참 슬픈 일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서였던 걸까?

p136 여하간 나는 저 초기 작품들을 꾸짖고 싶지는 않네. 물론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른 채 무의식적 욕구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지. 하지만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리켜주는 마법의 지팡이, 즉 올바른 것에 대한 느낌은 있었네.

p149~150 독일인은 대개 철학적인 사변 때문에 장애를 겪는다네. 그로 인해서 문체 속에 추상적이고 불가해하고 장황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섞여드니 말일세. 그러니 그들이 철학상의 한 유파에 헌신하면 할수록 좋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건 당연해. 하지만 실무가라든가 향락가와 같이 실제적인 일에만 관계하는 독일인들은 가장 좋은 글을 쓴다네. 실러의 문체도 그가 철학적인 사변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아주 장려하고 효과적이야.

⇒ 추상적인 사변이란, 결국 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본다. 이러 저러 보다 많은 생각들을 해보는 것.

p150 대체적으로 보아 한 작가의 문체는 그 내면의 충실한 반영일세. 명석한 문장을 쓰려고 한다면 우선 그의 영혼이 명석해야 하며, 스케일이 큰 문장을 쓰려고 한다면 우선 스케일이 큰 성격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지.

⇒ 작가의 스타일. 그를 알려주는 문체가 그의 내면의 성향을 반영한다는 이 말 또한 공감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것을 벗어난 문체를 써 보기로 한다. 그러나 이내 타인의 얼굴인양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p155~156 자네의 그런 성향은 물론 사교적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타고난 자신의 경향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교양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을 우리에게 동조시키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네. 나는 결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네. 나는 인간을 언제나 자립적인 개인으로만 보면서, 그러한 개인을 탐구하고 그 독자성을 알려고 노력해 왔으나, 그 밖에 더 이상 그들로부터 동정을 얻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그리하여 나는 이제는 어떤 인간과도 사귈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만 비로소 각양각색의 성격들을 알게 되고 인생살이에 필요한 민첩함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일세. 성미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무난히 지내기 위해서는 자제해야만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내부에 있는 모든 다양한 측면들이 자극을 받고 발전하면서 완성되는 것이라네. 그리하여 마침내 누구와 부딪쳐도 당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자네도 그렇게 해보게. 자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질이 있어. 그런데 이번 일에는 틀렸군. 하여간 자네는 넓은 사회로 들어가야 해. 물론 자네가 바라는 대로 처신하면 되겠지만.

p157~158 종교도 예술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인생의 고귀한 영역과 마찬가지의 지위에 있을 뿐이라네. 말하자면 종교는 단순히 소재로서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 인생의 다른 모든 소재와 동등한 권리만을 가지는 것으로서 말일세. 신앙의 유무는 결코 예술 작품의 이해를 좌우하는 기관은 아니야. 오히려 그러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여러 힘이나 능력들이 필요하다네. 사실 예술을 이해하는 기관을 길러주는 것은 예술이라네. 그렇지 않게 되면 예술은 목적을 놓치고 본래의 작용도 하지 않은 채 우리들 곁을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만다네. 물론 종교적 소재도 마찬가지로 예술의 훌륭한 제재가 되기는 하지. 단 그것이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경우에 한해서 말일세. 이를테면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처녀는 정말 훌륭한 제재이기 때문에 이미 몇 백 번이나 다루어졌고 또 언제라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네.

⇒ 신앙의 유무는 예술 작품의 이해를 좌우하지 않는다. 다만 이해의 방향을 정해줄 뿐이다.

p158 가라앉긴 하지만 태양은 영원히 동일한 것.

     75세나 되면 이따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더없이 편안해진다네. 왜냐하면 우리들의 정신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 존재이며, 영원에서 영원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활동이라고 굳게 확신하기 때문이야. 그것은 지상에 있는 우리들의 눈에는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코 가라앉지 않고 언제나 계속 빛나고 있는 태양과 같은 것이네.

⇒ 75세나 되어서야 느낄 수 있는 삶에 대한 관조.

p168 “우리들은 아침에 가장 현명하다. 그러나 또한 근심도 가장 많다. 그러나 근심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명함과 같은 것이다. 비록 수동적인 현명함이긴 하지만. 여하간 어리석은 자에게는 근심이 없다.”

    “사람은 어릴 적의 잘못을 노년까지 가져가서는 안 된다. 노년에는 노년 자신의 결점이 있으니까.”

p177 자신의 힘을 유용한 것에 집중하게. 그리고 자네에게 아무런 결실을 가져다주지 않거나, 자네에게 맞지 않는 모든 일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게나.

⇒ 아직 미숙하다는 것은 그 유용한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늘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는 것.


1825년


p186 여성 시인 일반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추밀고문관 레바인은 여성의 시적 능력이란 그에게는 종종 일종의 정신적 성욕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괴테가 나를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정신적 성욕이라고! 의사다운 해석일세!”

     레바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보통 이러한 여성들은 사랑의 행복을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방향에서 그 보상을 받으려는 겁니다. 적절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라도 가졌더라면 시를 쓰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 어느 시대에나 여성에 대한 시각이란 참!!!!

p195~196 사람들은 중심점을 찾으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고 또 결코 좋은 방법도 아니야. 우리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풍성하고 다양한 삶은 비록 그 어떤 뚜렷한 경향이 없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경향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단지 개념을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지.

⇒ 경향이란 단지 개념을 위한 것이다. 음....아하~~.

p205 부정적인 것이란 무(無)와 다름없는 게 아닌가. 이를테면 나쁜 것을 나쁘다고 하게 되면 그건 더욱 나쁜 일이 되고 마네. 올바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비방을 해서는 안 되며, 불합리한 일이 있더라도 개의치 말고 오직 바른 일만 하면 되는 걸세. 요컨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그 무언가를 건설하는 게 중요하다네.

p207~208 영국의 시인으로서 높은 귀족 신분은 바이런에게 매우 불리했네. 왜냐하면 모든 재능은 세상으로부터 성가심을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지. 특히 그렇게 고귀한 태생에다가 그렇게 위대한 재능을 동시에 타고났으니 말할 것도 없겠지. 중류 계급 정도의 신분이 재능을 가진 자에게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네. 모든 위대한 예술가나 시인들이 중산층 출신인 것은 그 때문일세. 무제한적인 것을 향한 바이런의 성향은 만일 그의 신분이 좀더 낮거나 능력이 좀더 모자랐다면 훨씬 더 위험했을 걸세. 그러나 갑작스럽게 변덕을 부리며 행동에 옮기는 기질 때문에 그는 수많은 분규에 말려들었던 거네. 더군다나 자기 자신이 그렇게 고귀한 신분인 마당에 그 어떤 귀족을 존경하고 배려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발언했고, 그 때문에 세상과 끊임없는 갈등에 빠지게 되었던 걸세.

⇒ 세상과 갈등을 맺는 계층은 늘 귀족이거나 하층이다. 중간층이 세상과 갈등을 빚었다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p209~210 정신적 작품이란 우선 멋진 표현을 구사하는 주체에 전적으로 달려 있고, 그 소재는 몸소 체험한 위대한 삶에서 가져와야 하며, 그 구체적인 창작 방식에 있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숙달되어 달인의 경지에 오른 기예를 요구하는 게 아닌가?

p210 한 국가에 있어서 불행이란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살지 않고, 서로를 지배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네. 그리고 예술에 있어서의 불행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보며 기뻐하지 않고 모두들 각자 나름대로 새로이 만들려는 데 있는 것이지..................

p219 그렇게 한 방향에 전념했을 경우 그가 무엇을 이루고 어떤 영향을 미쳤겠는가 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전체적인 것을 고려할 때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창조주가 일단 자신의 뜻에 따라 괴테를 충동하여 만들어내게 한 그 모든 것은 정말 바람직한 것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p225 “정의를 내리려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황에 대한 생생한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이야말로 시인을 만드는 걸세.”

⇒ 하지만 무엇엔가 정의를 한 후에야 그에 대한 생생한 감정과 표현이 생기지 않는가. 대상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포착할 수 있을까.

p226 문학연구가들이나 작가들에게 개인의 독창적 개성이 없다는 점이 우리나라 최근 문학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네. 특히 비평에 있어서는 이러한 결점이 세상에 해롭게ㅔ 작용하고 있네. 진실한 것 대신에 거짓된 것을 퍼뜨리거나, 아니면 초라한 진실 때문에 우리들에게 더욱 이로운 위대한 것을 빼앗아버리기 때문일세.

p229 인간에게 자유를 인정하는 순간 신의 전지전능은 끝장나는 것이네. 왜냐하면 내가 하려는 것을 신이 아는 순간, 나는 신이 아시는 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지.

p231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는 그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현명하고 올바른 행동이라고 해서 언제나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정반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수가 종종 있으니까.

⇒ 그러니까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다. 현명하고 올바른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기대하나 요즘의 세상에는 그것의 결과는 늘 부정적이니까 말이다.

p236~237 그에게 어느 정도 뛰어난 자질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에게는 ‘사랑’이 결여되어 있어.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과 동료 시인들도 사랑하지 않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도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씀을 적용하고 싶어지는 것이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놋쇠와 울리는 꽹과리네 지나니 않습니다,’라고 말일세. 최근에도 플라텐의 시들을 읽어보았지만 그 넘치는 재능만은 부정할 수가 없더군.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그에게는 사랑이 없어. 그러므로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의 영향을 그는 결코 발휘할 수는 없게 될 거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할 테지. 그리고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기꺼이 부정적이고자 하는 자들의 우상이 되겠지. 그러나 그와 같은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들의 우상이 될 수는 없을 거네.


1826년


p240 자네에게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네. 자네도 앞으로 살다 보면 여러 모로 확인하게 되겠지만 말이야. 요컨대 후퇴와 해체의 과정에 있는 모든 시대는 언제나 주관적인 것이네. 반면에 전진해 가는 시대는 늘 객관적인 방향을 지향하고 있네. 우리 시대는 어떻게 보아도 후퇴의 시대이네. 왜냐하면 현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지. 이러한 사실은 문학만이 아니라 회화나 그 밖의 많은 분야에서도 볼 수 있네. 이와는 달리 모든 의의 있는 노력이란(모든 위대한 시기에서 볼 수 있듯이) 내면에서 출발하여 세계로 향하는 것이야. 그러한 시대는 실제로 노력과 전진을 계속하여 모두 객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네.

⇒ 아, 나의 세계는 늘 후회하고 있는가. 내 비록 전진을 꿈꾸고 있을 지라도.

p257 시인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말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시인은 진실을 말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점을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시인이 입을 다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지. 세상에는 시인이 밝혀내기보다는 오히려 덮어버려야 하는 그러한 일들이 있는 법일세. 하지만 이런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바로 바이런이 성격이어서, 만일 사람들이 그를 다른 식으로 바꾸려 든다면, 그를 망쳐놓게 되는 거네.

p262 요즈음의 젊은 화가들에게는 감수성도 정신도 결여되어 있어. 그들의 구상은 아무런 내용도 없고 전혀 감동도 주지 않아. 베어질 것 같지도 않은 칼을 그리고, 맞지도 않을 것 같은 화살을 그려대고 있는 꼴이니 말일세. 정신이란 정신은 모조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기도 한다네.

⇒ 그 때나 지금에나 늘 “요즈음 젊은이”들은 욕을 먹는다.

p263 고양되었다 하더라도 정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욕 쪽이겠지. 하지만 그 때문에 소박함이나 감수성은 모조리 상실되어버렸어. 그러니 화가가 이 두 가지 커다란 필요조건도 채우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작품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 의욕이라도 고양되어야 정신의 고양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p271 촛불이 너무 환합니다. 촛불이 뚜렷한 그림자를 던질 수 있으려면 약간 어스름한 때라야 합니다. 하지만 촛불에 이해 생긴 그림자를 비추어줄 수 있을 정도로는 바깥이 밝아야 합니다.

p274 나는 자연과학에 관련된 글을 작성함에 있어서 천천히 앞으로 전진해 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네. 그것은 어쨌든 학문을 상당한 정도로 진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서서히 나아감으로써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유쾌한 유대 관계를 위해서이지. 자연에 몰두한다는 것은 가장 순진무구한 일이야. 미학적 관점에서는 오늘날 그 어떠한 유대 관계나 서신왕래도 생각할 수가 없군. 미학에 관계하는 자들은 어이없게도 나의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배경이 라인 강의 어느 도시인가를 알려고 노심초사하는 꼴을 보이고 있네! 각자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식으로 말이야!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 하고, 사실을 밝히고자 하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을 망치고 있는 거네.

⇒ 하지만 나는 문학 작품 속의 배경이 사실이 아닌 곳이라도 어딘지 궁금하고 노심초사해 진다. 그리고 여전히 궁금할 것이다.


1827년


p280 예술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걸세. 위대한 거장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라파엘로와 같은 사람들도 땅에서 그냥 태어나는 건 아니네. 그들은 고대와 그들에 앞서서 이루어진 뛰어난 것들을 토대로 성장하는 것이네. 만일 그들이 자기 시대의 장점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거의 아무것도 없을 테지.

⇒ 아, 라파엘로. 37세로 사망하고 오랜 동안 숨겨둔 연인이 있었고 그녀를 위한 그림을 그렸고..그의 성격이 매우 온화하고 좋았다 얘기된다. 그리고 이른 나이의 사망은 그의 사랑 때문이라고. 정신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육체적인 측면에서의 사랑이 그의 사망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내용이 있더랬다.

p288 무엇을 쓸 것인가는 생각했어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네. 더욱이 그 미쳐 날뛰는 밤에는 온갖 말이 다 나오지! 헬레나를 데려오도록 포네를 설득하는 파우스트의 대사, 그리고 페르세포네 자신이 그 말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도대체 어떤 대사가 적합하겠나! 이 모든 것을 쉽게 해낼 수는 없어. 게다가 아주 많은 부분이 운에 좌우되고 거의 전적으로 그 순간의 기분과 에너지에 달려 있는 터에 말이야.

⇒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미쳐 날뛰는 밤 온갖 말이 다 나오던 때가 있었으나 그러한 시간이 지나버린 듯하다. 이제는 말이 나오기까지 내가 미쳐 날뛰게 된다.

p295 후작이 이렇게 말하더군. ‘내가 만일 신이 되어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순간, 그 세계 속에서 실러가 『군도』를 쓸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내다보았다면, 세계를 창조하는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을 게요.

p295~296 그것은 오십 년 전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어. 그리고 오십 년 후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걸세. 젊은 사람이 쓴 작품은 역시 젊은 사람에 의해서 가장 환영받는 법이지. 그러므로 현재의 세계가 그 문화나 좋은 취미에 있어서 진보했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그 옛날과 같은 거친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네! 세계가 전체적으로 보아 아무리 진보했다 하더라도 젊은이는 언제나 처음부터 출발하여 개인으로서 세계 문화의 진화 단계를 차례로 경험해 가는 수밖에 없는 걸세. 나는 그러한 일에는 이제 초조해하지 않게 되었네.

p303 나는 작품 창작에 있어서, 특정한 대상을 그릴 때 특정한 색을 피하고 반면에 다른 색을 주로 사용하는 화가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네. 예컨대 화가는 아침 풍경을 그릴 때 팔레트에다가 청색은 많게, 황색은 적게 옮겨다 놓지. 그러나 저녁 풍경을 그릴 때면 황색을 많이 사용하고 청색은 거의 사용하지 않겠지. 나는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창작함에 있어서 비슷한 방식으로 하고 있네. 그리고 작품들 간의 특성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걸세.

p303~304 나는 시를 쓸 목적으로 자연을 관찰한 적은 결코 없었네. 그러나 나는 젊었을 때는 풍경화를 그렸고, 나중에 가서는 자연과학을 연구한 덕분으로 끊임없이 자연의 대상들을 정확하게 보는 태도가 몸에 배게 되었고 따라서 자연의 극히 세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암기하게 되었지. 그리하여 내가 시인으로서 무엇이 필요할 때는 그곳을 마음대로 구사하여 좀처럼 사실에 반하는 것을 쓰는 일이 없어졌던 거네. 실러에게는 자연을 관찰하는 이러한 경향은 없었지. 그의 『빌헬름 텔』속에 나오는 스위스의 지방 풍경은 모두 내가 그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네. 그러나 그는 놀란 만큼 총명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현실성이 있는 그 무엇을 만들 수 있었던 거지.

⇒ 그렇다. 무엇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다. 세상을 들여다보니 무엇을 하고픈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또 세상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을 뿐이다.

p305 자유란 불가사의한 것일세.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분수를 지킬 줄만 알면 누구라도 쉽게 충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지. 그러나 자유가 넘칠 만큼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 그건, 자유가 아닌 것이지.

p320 산문을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 말할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네. 말할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의 말이 다른 말을 이끌어내면서 마침내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라든지 운문은 쓸 수 있을 테지. 여기서 그 무엇이라는 것도 사실 아무 내용도 없고 외견상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p324 민족문학이라는 것은 오늘날 별다른 의미가 없고, 이제 세계문학의 시대가 오고 있으므로, 모두들 이 시대를 촉진시키도록 노력해야 해. 그러나 이처럼 외국문학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 어떤 특수한 것에 매달려서 그것을 모범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 예컨대 중국의 작품이 모범적이라든가, 혹은 세르비아의 작품이, 혹은 칼데른이, 혹은 니벨룽겐이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고대 그리스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 그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단지 역사적으로만 검토를 하면서 그중 좋은 것을 가능한 한 받아들이면 되는 거네.

p337~338 나는 자연과학을 꽤 다방면으로 연구해 왔네. 그러나 나의 연구방향은 언제나 이 지상에서 나를 둘러싸고 존재하고 있고, 내가 감각으로 직접 지각할 수 있는 대상들에로만 향해 있었지. 그래서 나는 천문학에는 결코 관여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천문학 분야에서 감각은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지. 뿐만 아니라 기구나 계산이나 역학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이것들만 연구하는 데도 한 사람의 일생을 필요로 하므로 천문학은 도저히 나의 일이 될 수 없었던 걸세.

⇒ 별보는 게 좋아서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과학이란 불리는 것은 늘 멀게만 느껴지게 되어 그 감정이 어느새 멀리로 달아나고 있었다.

  p338~339 만약 인간들이 올바른 것이 발견된 뒤에 그것을 다시 뒤엎거나 흐려놓지만 않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이네. 왜냐하면 인류에게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질 의욕적인 것이 동시에 올바르고 진실한 것이라면 금상첨화겠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만일 자연과학 분야에서 순수한 실상이 밝혀지고 이어서 그것이 올바른 것으로 견지되며, 이해되는 범위 내에서의 모든 검증을 거친 후에 다시는 제멋대로 변경되는 일이 없다면 그것으로 나는 기쁠 것이네. 그러나 인간이란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여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다시 혼란을 일으키고 마는 거지.

⇒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여서 늘 무언가를 했는데 결국 해낸 것은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p346 자네에게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것을 말해 주고 싶군. 요컨대 자연에는 도달할 수 있는 것과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잘 분간하고 심사숙고해야 하네. 어떤 일을 끝내고 어떤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가를 통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절반은 이룬 셈이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평생 동안 도달 불가능한 것에 매달려 헛고생만 할 것이네. 진리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서 말이야.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 만큼 현명한 사람은 도달 가능한 것에만 정진을 하고, 그 영역에서부터 출발하여 모든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자기의 위치를 굳히는 것이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나아가다 보면 심지어는 도달 불가능한 것으로부터도 약간의 그 무엇을 얻어낼 수도 있을 테지. 물론 최종적으로야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말이네. 자연의 이런저런 일들에 접근하는 데는 그 어떤 한계가 있으며, 자연이란 그 배후에 언제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캐낼 수 없는 그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고 말이야.

p351~352 나는 괴테에게 근래의 철학자 중 누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단연코 칸트가 가장 뛰어나네. 그 학설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고, 현대의 독일 문화에 가장 깊이 침투한 사람이니까. 그는 자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네. 자네는 칸트를 읽지 않았음에도 말이야.”

p356 나는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종교 문제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이론이 예로부터 인간들 사이를 갈라놓고 서로 간에 적대시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인류 최초의 살인조차도 신에 대한 잘못된 경배로부터 생긴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어서 나는 최근에 바이런의 『카인』을 읽었는데, 특히 제3막과 살인 동기의 묘사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p361 시라는 건 아주 막연한 인상을 주고, 감각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듣는 이의 성질과 능력 여하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것이 되지.

⇒ 막연하고 모호하고. 그럼에도 느껴지는 이미지에 시에 끌리게 되는 것.

p363 그(바이런)가 그리는 여성들은 훌륭해. 여성만이 우리들의 이상적인 것을 쏟아 부어넣을 수 있도록 현대인에게 아직 남겨져 있는 유일한 그릇이네. 남성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손댈 여지가 없어. 호메로스가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라는 가장 용감한 자와 가장 현명한 자를 모든 것에 앞서 다 그려버렸기 때문이지.

⇒ 그러니까 여성이 미지의 세계라는 것이지. 알지 못함에도 늘 고정관념을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지.

p367 사람이 짐승이 되고프면

     짐승을 방에 끌어들이렴.

     그럼, 역겨운 기분도 가시겠지.

     어차피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예니까.

       - 에커만

⇒ 이런 간단한 방법이!

p370 무엇을 강요한다는 건 정신을 자극할 뿐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출판 자유의 제한이라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거네. 프랑스인은 지금까지 늘 기지에 넘치는 국민이라는 명성을 유지해 왔고 또 그럴만한 자격도 있네. 반면에 우리 독일인은 자기 견해를 곧이곧대로 말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완곡한 표현법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네.

⇒ 우리 한국인이란 늘 냄비라네. 금세 끓어오르고 금세 가라앉고. 아마 그것을 열정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네. 정도 넘친다고 하고.

p375 책을 읽은 느낌은 감동에서 경탄으로 빠져드는가 하면 다시 경탄에서 감동으로 빠져들기를 거듭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강렬한 느낌 중 어느 하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군. 정말이지 그보다 더 훌륭하게 쓸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야. 이 소설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만초니의 본령을 만나게 되는 거네. 여기에서 그의 정신적 내면이 완벽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은 그의 드라마 작품들에서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일세. 나는 이제 곧바로 이어서 월터 스콧의 가장 뛰어난 소설, 예컨대 『웨이벌리』를 읽어볼 참인데, 그러면 만초니가 이 위대한 영국의 소설가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되겠지. 만초니의 내적인 교양은 이 소설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에 도달해 있네. 그의 교양은 마치 농익은 과일인 양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야. 더욱이 세세한 것들을 다루고 묘사하는 방식은 얼마나 명료한지 마치 이탈리아의 하늘과도 같아.

p377 만초니는 이러한 공포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어. 공포를 감동으로 변화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느낌을 통하여 경탄에로 이끌어 가니까 말이야. 공포라는 느낌은 소재적인 성격의 것이어서 모든 독자들이 다 느끼는 것이지. 그러나 경탄은 작가가 개개의 사건을 뛰어나게 처리하는 통찰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거네. 그러므로 감식안이 있는 전문가들만이 그러한 느낌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야.

     공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공포이고 하나는 걱정이다. 이 걱정이라는 느낌은 우리가 등장인물에다 도덕적 해악을 부여하고 그들에게서 그 해악이 번져가는걸 볼 때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p380 만초니는 실러처럼 타고난 시인이라네. 하지만 우리 시대는 너무나 열악해서 시인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실제 삶의 영역으로부터 어떠한 유용한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 실러는 두 가지 위대한 수단, 즉 철학과 역사에 의지하게 되었고, 만초니는 다만 역사에 의존하게 되었던 것이네. 실러의 『발렌슈타인』은 너무나 위대해서 두 번 다시는 그것과 견줄 만한 작품이 나올 수가 없었을 테지. 그러나 자네도 보게 되겠지만, 바로 이 두 가지 강력한 조력, 즉 역사와 철학이 곳곳에서 작품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어서 그 결과 순수한 시적인 성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네. 마찬가지로 만초니는 역사의 과잉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거야.

p382 시인들은 모두 자기들이 병을 앓고 있으며, 세상 전체가 마치 병원이나 되는 듯이 글을 쓰고 있다네. 그들 모두는 이 지상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푸념하고 피안의 기쁨을 말하고 있어. 그리고 안 그래도 누구나 다 불만인 상태에다가 서로가 서로를 충동질해서 더 큰 불만족 속으로 빠져든다네. 이야말로 문학의 월권이며 남용일세. 시의 본분은 원래 인생살이의 자잘한 분쟁을 가라앉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이나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도록 만들려는 데 있는 것이지. 그런데 지금 세대는 어떤가. 모든 진정한 힘 앞에서는 두려워하면서 그 어떤 허약한 대상만을 상대로 해서 편안하고 시적인 감동을 품는 형편이 아닌가.

⇒ 시인들은 모두 병을 앓고 있다..아, 그런 시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모두 병들어 있는 게 아닐까.

p384 우리는 사람들이 즐거워할 태세가 되어 있을 때라야만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빌란트

⇒ 그렇다. 즐거움도 마음가짐이다. 내 태도가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


2부


1828년


p391 내가 그분보다 앞서 사라져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어. 하지만 신은 자기가 좋을 대로만 하시는군. 그러니 우리들 가련한 인간들로서는 언제까지나 꿋꿋하게 견디며 머리를 꼿꼿이 세우는 수밖에.

⇒ 내가 꿋꿋하게 머리를 세우고 있더라도 째려 보지 마시길.

p406~407 성서의 전설을 긍정하는 폰 마르티우스 씨는 자연과학자답게, 자연은 그 생산에 있어서 지극히 경제적으로 작용한다는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그 전설을 입증하고자 했다.

     괴테가 말했다. “그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해야겠군요. 나로서는 자연이란 언제나 풍성한 것이며 심지어는 낭비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말하자면 단 한 쌍의 가엾은 부부가 아니라 수십 아니 수백 명 이상을 이 세상으로 내보겠다는 게 훨씬 더 자연의 의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즉 지구가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여 물이 흘러가고, 마른땅에 식물이 자라나게 되었을 때 인류가 탄생했다는 거지요. 인간은 신의 전지전능한 힘에 의해, 살 수 있는 땅 그 어디에서, 아마도 처음에는 고지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일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애써 매달리면서 다른 더 나은 일은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나 맡겨두는 것이 좋겠지요.“

p409 무언가 이루려고 하면 로마로, 로마로 가야 합니다! 정말이지 위대한 도시! 삶! 세계 그 자체랍니다! 우리 본성에 미미하게 갖추어져 있는 모든 것이 독일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로마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완전한 변화를 체험하며, 주변 환경과 더불어 위대해짐을 느낍니다. - 괴틀링 교수

p419 나는 생각했다. 그와 같은 작가, 그러한 고귀한 정신, 그러한 광대무변한 천분(天分)을 대중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의 아주 작은 부분마저도 대중화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유쾌한 사내아이들과 사랑에 빠진 소녀들이 부르는 노래도 그 밖의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 끝이 없는 직분.

p420 그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와 인류의 심원한 깊이로 몰입해 들어가기를 원하면서 그의 길을 뒤따라가는 탐구하는 인간들을 위한 것이고, 좁게 보자면 영혼의 환희와 고통을 시인에게서 찾고자 하는 열정적인 도락자(道樂者)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또한 표현 방식과 대상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다룰 것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 시인들을 위한 것이야. 또한 판단의 원칙이라든지, 즐겁게 읽힐 수 있는 흥미로우면서도 품위 있는 평론은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그 모범을 찾는 예술가를 위한 것이기도 해. 그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예술가의 정신을 깨우쳐주고, 구체적으로 보자면 어떠한 대상이 예술적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표현하지 말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니까 말이야. 또한 그의 작품은 자연과학자에게도 유용한 것이지. 이미 발견된 위대한 법칙들을 거리서 전해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야. 선량한 정신이 자연으로 하여금 그 비밀을 드러내도록 하려면 그 자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방법 말이다.......

p425~426 사람이란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면 우선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네. 단테는 우리에게 위대해 보이지만, 사실 그의 배후에는 수백 년의 문화가 있네. 로트쉴트 은행은 화려하긴 하지만 그 많은 보물들을 얻기까지는 한 세대 이상이 걸렸어. 이러한 것들의 본질은 그 모두가 생각보다는 깊은 곳에 있네. 우리의 잘만 독일의 예술가들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개성의 허약함과 예술적 무능함으로써 자연을 모방하고는 그 무언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지. 말하자면 그들은 자연 ‘아래에’ 있었네. 무언가 위대한 것을 이루려면 그 전에 자신의 교양을 높이 쌓아야 하는 법이야. 그래야만 그리스 사람들과 같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적인 자연을 자신의 정신의 드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고, (내적인 허약함에서든 외적인 장애 때문이든 간에) 자연 현상을 다룸에 있어서 지향점으로만 남이 있는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이네.

⇒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무언가가 되어 이루는 것이 더욱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을 살며 배워간다.

p429 진리란 언제나 반복해서 말해져야만 해. 우리들을 둘러싸고 오류가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지. 그것도 개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에 말이야. 신문이나 백과사전, 학교와 대학, 도처에서 오류는 제 세상인 양 흐뭇해하고 있어. 자기편에 서 있는 것이 다수라고 느끼면서 말이야.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성경 구절이었던가. 진리라는 것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진리를 덮어버리는 것일 뿐.

p436 “난 자네 의견에 반대야.” 하고 괴테가 말했다. “바이런의 대담성, 당돌함과 웅대함, 이 모든 게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겠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순수함과 도덕성만을 인격 형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피해야 하네. 모든 위대함은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의 인격을 높여주는 걸세.”

⇒ 위대함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며 그저 그런 것이 된다. 세상 모든 것이 그것에 대해 알아보지 못하면 그저 그런 것이 될 뿐이다.


1829년


p437~438 철학은 그래 봤자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데 말이야. 기독교는 그 자체로 강력한 실제이며, 영락하거나 고뇌하는 인류는 때로는 그것에 의지하여 언제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 왔네. 종교의 이러한 작용은 인정하는 이상, 종교는 모든 철학을 초월하며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철학자도 어떤 종류의 이론, 이를테면 영혼불멸설과 같은 것을 입증하기 위해 종교의 명성에 의지할 필요는 없네. 인간은 불멸을 믿어야 하며, 그럴 권리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본성에도 들어맞는 것이므로 종교의 약속을 믿어도 좋아. 그러나 철학자가 우리들의 영혼 불멸을 전설로부터 이끌어내려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허약하기 짝이 없고 그다지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마네. 내가 볼 때 영혼 불멸에 대한 신념은 활동의 개념에서 생겨나는 것일세. 왜냐하면 내가 인생의 종말까지 쉬지 않고 활동하는 가운데, 현재의 생존 형식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게 된다면, 자연은 반드시 나에게 다른 생존의 형식을 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일세.

⇒ 철학이란 가치로운 것으로 칭송받기도 하며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받기도 한다.

p447 “모든 위대한 것과 총명한 것은 소수에게만 존재한다네. 국민과 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고독하게 수행한 장관들이 있었어. 이성(理性)이 대중화된다는 것은 바랄 수도 없는 일이야. 열정이라든지 감정은 대중의 것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성은 언제나 소수의 뛰어난 자들의 것일 뿐이네.”

p449~450 재능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아. 그보다는 오히려 총명할 필요가 있지. 또한 넓은 세계에 살면서 시대를 주도하는 인물들의 의도를 알아낼 기회를 가져야 하며 스스로도 이익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함께 참여해야 한다네.

     자연과학 연구에 정진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결코 알지 못했을 거야. 자연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순수 직관과 순수 사고, 감각의 오류와 오성의 오류, 성격의 허약함과 성격의 강력함에 좌우되고 말지. 모두가 다소간 유연성이 있고 가변적이며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어. 그러나 ‘자연’에게만은 농담이 통하지가 않아. 자연은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진지하며 언제나 엄격하고 언제나 옳다네. 그러니 결함과 오류는 언제나 인간의 것일 뿐이야. 자연은 어중간한 자를 경멸하며, 다만 전력을 다하는 자, 진실한 자, 순수한 자에게만 복종하면서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네.

p453 쿠쟁에 대하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는 인도 철학으로 넘어갔다. 그가 말했다. “그 영국인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이 철학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네. 오히려 그 철학 속에서는 아이 시절에는 감각주의자이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본래부터 거기에 들어 있지 않은 특성을 부여하는 동안은 이상주의자라네. 그러다가 사랑이 흔들리고, 충실함을 의심하게 되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회의주의자가 되어 있는 것이지. 남은 생애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가는 대로 내버려두다가 정관주의(靜觀主義)로 끝을 맺는다네. 인도의 철학자들처럼 말일세.

p454~455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는 경탄이라네. 그리고 근원현상을 보고 경탄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네. 더 높은 것은 허락되지도 않고, 더 이상의 것도 그 뒤에서 찾을 수도 없으니 말일세. 이것이 한계야. 하지만 근원현상을 목도한 인간은 보통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난 후 즉시 뒤집어서 그 뒷면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려는 아이들처럼 말이야.

⇒ 말문이 막혀 버리는 그 순간. 할말을 잊은 그 상태. 정녕 최상의 경지는 감탄이려니.

p462~463 정신의 빛에 보이는 빛은 완벽한 흰색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눈에 의해 감지되는 경험상의 빛이 그러한 순수한 흰색의 상태로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빛은 안개라든지 그 밖의 것에 의해 변형되어 양(陽)의 영역으로 기울거나 혹은 음(陰)의 영역으로 기운다. 다시 말해 황색이나 청색의 색조를 띠고 나타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직접적으로 비치는 햇빛은 그러한 경우에 분명하게 양의 영역, 즉 황색의 영역으로 기울며, 촛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달빛과 동틀녘 혹은 황혼 무렵의 일광은 둘 다 직사광이 아니고 간접광이며, 더욱이 어스름과 밤에 의해 변형되어 수동의 영역으로 음의 영역으로 기울면서, 우리 눈에는 푸르스름한 색조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p467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언제나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모든 설득력 있는 반대 견해를 받아들였던 괴테가 그의 색채 이론에 있어서는 반대 의견을 관대하게 잘 수용하지 못했던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수수께끼는 풀릴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그에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최상의 찬사가 주어졌지만, 그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방대하고 가장 난해한 『색채론』은 오직 비난만 들어야 했던 것이다. 반평생 동안 사방으로부터 도저치 납득할 수 없는 반론에 부딪쳐 왔으므로 그가 시종일관 일종의 도발적인 전투 상태를 견지하면서 열정적인 반대를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만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색채론과 관련지어 볼 때 그는 마치 선량한 어머니와도 같다. 자신의 뛰어난 아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 아이를 더욱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 말이다.

⇒ 사람은 찬사보다 비판에 더 민감하게 된다.

p471~472 인간은 높이 도달하면 할수록 점점 더 데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법일세. 그러니 자신의 주체적 의지가 샛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네.

     괴테는 ‘데몬’을 알려지지 않은 신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개성’내지는 ‘성격’으로 파악하였다. 즉 데몬은 한 인물에 주어진 필연적이고 제한적인 개성이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구분하여 존재할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타고난 힘과 특성이 그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데몬적인 개성은 그 타고난 힘과 실행력에 있어서 특별하게 강력하며, 이성적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영향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데몬적인 인간유형으로 나폴레옹,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 표트르 1세, 프리드리히 대왕을 꼽았다. 반면 초개성적인 데몬은 오성과 이성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운명적인 힘으로 자연의 사건과 세계의 사건을 결정한다. 물론 그 법칙은 모순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파악할 수가 없다. 때로는 도덕적인 세계 질서에 역행하면서 선이든 악이든 불가능한 것을 이루며 또 파괴하기도 한다. (역자)

p474 고전적인 것은 건강한 것, 낭만적인 것은 병적인 것이라고 부르겠네. 예컨대 니벨룽겐의 노래와 호메로스의 작품은 고전적인 것이네. 왜냐하면 이 둘은 건강하고 힘차기 때문이지. 대부분의 현대 작품은 그것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허약하고 병든 것이기 때문에 낭만적인 걸세. 그리고 고대의 작품은 그것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강력하고 힘차며 신선하고 건강하기 때문에 고전적인 것이네. 그러한 특성에 따라 고전적인 거소가 낭만적인 것을 구분한다면 우리는 곧 그 진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일세.

⇒ 어느 순간 허약하고 병적인 것이 낭만인 양 호도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언젠가 우리나라 드라마 여주인공이 백혈병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백혈병이라는 이름이 가진 느낌과 거기에서 연유된 이미지가 깨끗하고 낭만적으로 여겨지기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백혈병 환자들의 고통은 이루말할 수가 없으며 병의 진전으로 인한 피폐한 모습과 병의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전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p480~481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위대한 통치자는 그의 위대함 말고는 어떠한 수단도 필요치 않다. 그토록 노력하고 활동하여 나라 안으로 번영을 이루고 나라 바깥으로 존경을 받게 된다면, 훈장이란 훈장은 죄다 매달고 호사스런 마차에 앉아 있든 말든, 입에 궐련을 물고 곰 가죽을 걸친 채 허름한 마차를 타고 달리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네. 일단 국민의 사랑을 받고 나면 변함없는 존경을 받는 건 당연하니까 말이야. 그러나 군주에게 개인적인 위대함이 결여되어 있거나 선정을 베풀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모른다면 다른 통합 수단을 강구해야겠지. 그러는 데에는 종교와 그 의식을 함께 즐기고 함께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호과적인 수단은 없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타나서 군중을 내려다보고, 잠깐이나마 자신의 모습을 군중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한 가장 적절한 수단이지. 나는 모든 젊은 통치자들에게 이것을 권하고 싶네. 그 위대한 나폴레옹조차도 경시하지 않았던 방법이니까.

⇒ 위대해서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쥐고 있기에 인기를 얻는 것이다. 그렇게 대중은 살아야 하니까.

p491 박자라는 것은 시적인 정취로부터 나오는 거네. 마치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야. 시를 쓰면서 그러한 것에 대해 이모저모로 생각하려 든다면 터무니없는 짓일뿐더러 아무런 소득도 없을 테지.

p497 정신력이란 온몸으로 스며들어, 온갖 해로운 영향들을 물리치는 적극적인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게지. 그와 반면에 공포심이란 나태하고 쇠약하며 예민한 상태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적에게도 맥없이 굴복하도록 만든다네. 이러한 점을 나폴레옹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자신의 군대에 대해서 장엄한 모범을 보여주어도 별다른 위험이 따르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네.

⇒ 실체없는 공포심으로 자멸해 간 많은 사건들을 기억한다.

p507 어떤 색이든 우리 눈에 분명하게 띄는 순간에 그 색은 똑같은 강도를 가진 피유도색(被誘導色)을 불러일으키는 걸세.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눈이 적합한 환경 아래 있어야 하고, 지나치게 밝은 빛이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유도된 영상을 받아들이기에 땅이 부적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네. 어느 경우든 우리는 색채를 지나치게 미세하고 구분하고 규정짓지 않도록 해야 하네. 본질적인 것에서 비본질적인 것에로, 참된 것에서 잘못된 것에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에로 너무 쉽게 빠져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말일세.

p510 내가 말했다.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는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대상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클로드 로랭과 같이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수중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자라면 아무리 머릿속으로 훌륭한 이념을 갖고 있더라도 좋은 시를 쓴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테지요.”

⇒ 그러니 에커만이 계속 공부를 하려고 했구나.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니 즐겁지 아니한가.

p521 애석한 것은 인간이 일생을 통해 그릇된 경향에 의해 방해를 받으면서도, 마침내 거기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그릇된 경향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네.

⇒ 그러니까. 애석하게도 늘 한박자 뒤에 깨닫는다.

p522 그릇된 경향은 생산적이지 못해. 설혹 생산적이라 해도 거기서 생산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네. 그리고 타인에게서 그런 사실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으나, 자기 자신에게서 그것을 깨닫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세. 그러기 위해서는 커다란 정신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깨달았다고 해서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네. 망설이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면서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네. 부정의 증거를 이미 여러 차례 보았으면서도 사랑하는 처녀와 쉽사리 헤어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여하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조형미술을 지향했던 게 잘못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으며, 그것을 알고 나서도 완전히 뿌리치기까지는 또 여러 해가 걸렸던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네.

p523~524 인간이란 젊은 시절의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말이야. 그 시기에 늘 익숙해 있는 데다가 그 가운데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설사 결점이 있어도, 세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눈이 멀어 결점초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말일세.

p531~532 우리는 특별한 재능도 없으면서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쓰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유혹적이네. 우리는 실로 많은 문화가 보급되어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어. 문화는 말하자면 젊은 사람이 그 안에서 호흡하는 대기(大氣)에까지 만연해 있네. 문학이라든가 철학의 사상이 젊은 사람의 내부에서 살아 활동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주위의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 것일세.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독자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 이름을 발표하는 거네. 그러나 시대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다시 시대로 돌려버리고 나면, 그들은 가난뱅이가 되고 마네. 그들은 마치 분수와도 같아. 끌어올린 물을 잠시 뿜어대고 있으나, 그 인공적으로 모은 물이 다 소비되고 나면 그 즉시 흐르기를 멈추는 분수 말일세.

p531 회의(懷疑)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어. 이제 신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네. 게다가 신의 본성이나 영혼의 불멸, 영혼의 본질 그리고 그것과 육체와의 관계라는 것은 영원한 문제여서 철학자들도 이와 관련해서 우리들의 이해를 더 이상 진척시켜주지는 못하네.

⇒ 회의의 시대가 지나, 나의 회의들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회의가 사라진 시대에 회의하고 있는 것은 뒤처지게 만드는 것.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나 또한 병든 짐처럼 나부낄 때...

p536 나이가 들면 세상사에 대해서 젊었을 때와는 달리 생각하게 되는 것이네. 그래서 나는 데몬이 인간들을 놀리거나 조롱하기 위해, 그 누구나 자신의 목표로 삼을 만큼 매력적이며, 또한 누구도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인물들을 이따금씩 이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네. 그리하여 데몬은 사상에 있어서도 행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완벽한 라파엘로를 만들었던 게지. 몇몇 뛰어난 후계자들이 그에게 접근했지만 그의 경지에 도달한 자는 아무도 없었어. 마찬가지로 데몬은 음악에 있어서의 도달불가능한 사람으로서 모차르트를 만들었네. 그리고 문학에서는 셰익스피어가 그렇다네. 자네는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반대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다만 천분에 관해서, 타고난 위대한 천성과 관련하여 말하는 걸세. 나폴레옹도 도달 불가능한 존재야. 러시아인들이 분수를 지켜 콘스탄티노플까지 침공하지 않았던 건 사실 매우 위대한 일이네. 하지만 그러한 특성은 나폴레옹에게도 있는 것이네. 왜냐하면 그도 자제심을 발휘하여 로마까지 가지는 않았으니 말이야.


1830년


p542 예술가의 자유로운 기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반면에 예술가의 불안한 기분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네. 예술가의 이러한 자유란 보통 그가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며, 네델란드 화가들의 그람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그들이 생활과 아주 밀접한 소재를 아주 자신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네. 그리고 배우를 통해서 이러한 정신의 자유를 느끼게 하려면 그 배우는 연구와 상상력과 타고난 자질로써 자기의 역을 완벽하게 구사해야만 하고, 어떤 육체적인 수단도 마음껏 발휘해야 하며, 거기에다가 그 어떤 생기발랄한 에너지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걸세. 상상력이 없는 연구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자질이 없다면 연구와 상상력만으로도 그 역시 충분하지가 않아. 여성들은 대개는 상상력과 기질로써 해냈는데, 볼프 부인의 그토록 뛰어난 연기는 그 때문이었네.

⇒ 예술가에게 씌워진 굴레. 늘 자유롭고 혹은 불안한 신경증을 가지고 있는 듯이 여긴다는 것.

p552~553 어머니들은 이러한 영원한 어스름과 고독 속에서 창조하는 존재이며, ‘창조하고 보존하는 원리’로서, 지구의 표면에서 형태와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호흡을 중지한 것은 영적 존재가 되어 어머니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면 어머니들은 이것이 다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기회를 얻을 때까지 보호해 준다. 과거에 존재했거나 미래에 존재하게 될 모든 영혼과 형상은 그녀들의 거처인 무한 공간 속에서 구름처럼 이리저리 떠돌면서 어머니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러므로 마술사라 할지라도 그녀들이 사는 나라로 가야만 한다. 마술의 힘으로 어떤 존재의 형상을 마음대로 다루고, 이전에 살았던 것을 다시 불러내어 잠시라도 생명을 부여하려면 말이다.

p555 경험이란 경험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경험했던가를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 법이다. -베리쉬

⇒ 한편으로 삶에의 모든 경험을 실제로 겪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것이 삶을 어떻게 이끌어 주던 고통스런 경험은 피하고 싶은 법.

p570 나중에 산책을 하는 동안 기생식물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내 생각으로 생명체란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지만, 나중에는 자기와 동일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을 수축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법칙은 나로 하여금 저 전설, 즉 우리 인간들이 만물의 시초에 있어서 신(神)만을 생각해 냈지만, 그 이후에는 신과 동등한 아들을 만들어 낸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뛰어난 거장들이 자신의 기본적인 원칙과 활동을 이어갈 훌륭한 제자들의 양성을 절실한 과제로 삼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에서이다. 또한 예술가나 시인의 작품은 그 예술가나 시인에 못지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어떤 작품의 뛰어난 정도는 모두 그것을 만든 예술가나 시인의 뛰어난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뛰어난 작품은 나에게 어떠한 질투심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만들 만한 자격이 있는 뛰어난 사람에 대해 추측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p583 고전문학과 낭만문학이라는 개념은 지금은 온 세계에 널리 퍼져서 여러 가지 논쟁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지만, 원래는 나와 실러로부터 비롯한 것이네. 나는 문학에 있어서 객관적인 창작방식을 원칙으로 삼아 그것만 인정하려고 했네. 그러나 실러는 완전히 주관적인 방식을 원칙으로 삼았고, 자신의 원칙이 옳다고 여기면서 나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려고 소박문학과 성찰문학에 관한 논문을 썼던 걸세. 그의 논증에 따르면 실은 나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낭만적이며, 나의 『이피게네이아』도 감정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믿는 만큼 결코 고전적이지 않고 고대적인 정신에 따른 것도 아니라는 것일세. 그리고 슐레겔 형제가 이 이념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으므로 지금은 이것이 전 세계에 널리 퍼져서 누구나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에 관해서 토론하고 있는 거네. 오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지.

⇒ 논쟁은 보다 사물을 진보적이게 한다.

p597 신은 행복의 모든 원천과 능력을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 놓았으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장소, 환경에 따라 마음가짐은 달라지는 것을.

p604 도착하는 즉시 이전 그대로의 산만한 생활 속으로 빠져들게 될 테니까요. 사람들이 서로 간에 할 일 없이 폐만 끼치고 사는 그 작은 도시에 들어서기만 하면, 즉시에 자질구레한 일들에 시달리면서 저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별다른 소득도 없이 시간만 뺏기고 말 테지요.

p611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 시인을 필요로 합니다. 그 어떤 현상이나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재고품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시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면 시인이 그를 만족시켜주고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 그러나 종국엔 시인의 입을 빌리지 않고 제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p612 단순한 것을 포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현상들의 극히 다양한 개별성 속에서 근본 법칙을 발견하려면 커다란 숙련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정신이 아무리 노련하다 할지라도, 자연은 아주 섬세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자연에 폭력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 자연만큼 정신도 섬세하다오. 내 정신에 폭력을 가하지 말아 주오. 쉽게 흔들리며 쉽게 좌절한다오.

p615 ‘그대는 이제 나에게 말하라. 만일 진리를 발견하였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만 하는가? 만일 그대가 진리를 널리 알린다면, 그대는 정반대의 오류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자들은 바로 그 오류를 진리라고 여기며, 그 오류를 파괴하려는 모든 것을 가장 커다란 오류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p621 오류는 도서관 측의 것이고, 진실은 인간 정신의 편일세. 책은 책을 통해 그 세력을 늘리게 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생동하는 근원법칙에 전념하다 보면 정신은 만족을 얻게 되는 법이네. 단순한 것을 파악하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며, 애매한 것을 명확하게 밝혀줌으로써 말이야.

p621~622 인간 존재라면 겪고 넘겨야만 할 참담한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나는 인생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게 나의 생각이 나의 위에 있는 보다 높은 존재와 교감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달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몇 초 동안 달이 두터운 구름 사이에서 빠져나와 환하게 비쳤다가 다시 전과 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우연이었든 그 이상의 것이었든 간에 그것을 천상으로부터의 은혜로운 조짐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솟아올랐다.

⇒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그 참담한 순간들에 꼭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어떤 무언가의 현상에 의미를 붙이려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위안을 삼는다.


1831~1832년


p630 나는 편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전체를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적인 구절들은 선행하고 있는 구절들이나 나중에 나오는 구절들에 의해서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고 확연하게 이해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이 연도별로, 날짜별로 기록된 이유가 이것이었군.

p632~633 내가 편지들을 연도별로 묶어서 분류하자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연도별로 묶은 편지는 같은 시간대에 살며 활동했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해 그 연도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편지를 쓴 사람이 처한 상황과 일을 온갖 측면과 방향에서 조명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연도별로 묶은 그러한 편지들은 이미 인쇄되어 나온 총괄적인 전기 『일지와 연감』에다가 순간순간의 참신한 면모를 보충하는 데 꼭 안성맞춤인 것이다.

p640 그러한 작품 구성에 있어서도 개별적인 부분들을 의미 있고 명료한 모습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네. 그러나 작품은 그 전체로서는 언제나 불가해한 것으로 남아 있고, 또 바로 그 때문에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사람들을 거듭 유혹하면서 고찰토록 만드는 걸세.

p649 증오는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지만, 경멸이야말로 인간을 몰락시키게 만드는 것이네. 사실 코체부는 오랫동안 증오의 대상이 있어. 하지만 대학생의 단도가 감히 그를 찌를 수 있게 된 것은 일부 저널들이 그를 경멸스러운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네.

⇒ 코체부(Kotzebue, August Friedrich Ferdinand von)는 독일의 극작가이다(1761~1819). 청년층의 자유주의적인 풍조와 대립하여 러시아의 스파이로 몰려 암살당하였다. 작품에 <소도시의 독일인> 등이 있다.

p653 과도한 자유방임주의는 개인의 여러 가지 욕구들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에는 그 중에서 어느 것을 충족시켜주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 정치권력은 지나치게 부드럽고 온건한 정책이나 도덕적인 섬세함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는데, 그것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영역들을 다루어야 하고 때로는 무법천지의 흉악한 세계도 통제하면서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아주 거대한 사업이어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아야 하기 때문에 통치권자가 지나치게 부차적인 방향, 예컨대 예술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게 되면 군주의 관심뿐 아니라 온 나라의 힘까지도 보다 시급한 일들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며, 따라서 전적으로 예술에 몰두하는 것은 부유한 개인들의 사적인 선택에 맡길 문제라는 것이다.

⇒ 나라를 다스리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과연 예술이 부차적인 것일까. 먹고 사는 것의 관점에서 예술이 부차적인 것이라면 예술을 생으로 하는 이들은...예술이 부유한 개인들의 사적인 일로 전락한다면 미술품 거래와 같은 그러한 형태로만 전락하겠지. 참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거래가 되는 상품으로. 은닉을 위한 수단으로.

p666 나는 이 지고(至高)의 존재가 오성과 이성을 가졌는지를 묻지 않고, 다만 그것은 오성 자체이고 이성 자체라고 느낄 뿐이라네. 모든 피조물들은 이성으로 관통되어 있고, 또 인간은 그 오성과 이성을 많이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지고의 존재를 부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일세.

p667~668 자연관찰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는 곳에서도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며, 우리의 감각과 모순되는 현상에 의해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것일세. 왜냐하면 자연에 있어서는 감각과는 모순되지만 진실한 일이 종종 있으니까 말이야. 태양은 정지하고 있으며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는다는 사실, 또 지구는 날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감각과는 아주 심하게 모순되지만 그 어떤 교사도 그 진실을 의심하지 않네. 물론 식물의 영역에서도 감각에 모순되는 현상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로 인하여 잘못된 길로 현혹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하네.

p670 나는 자연과의 소통을 드높이 평가한다. 자연은 우리의 약점을 조장하는 일이 결코 없다. 자연은 우리들로부터 그 어떤 것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우리에게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다.

⇒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관하도록 만들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그들의 무심함을 더욱 내세우고 있다. 파괴적인 형태로.

p671 괴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와 인생의 수수께끼를 ‘데몬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괴테가 그 본질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아! 그렇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그 어떤 배후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혀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다 넓게 그리고 보다 분명하게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곧 깨닫는다. 그 대상은 너무도 크고 다양하며, 우리의 눈은 그 어떤 한계까지밖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 아주 오래 전 출판된 달과 육펜스의 책은 이렇게 책을 소개하고 있다. ‘데몬에 홀린 듯한 사나이’. 그 때에 나는 이 ‘데몬’이란 단어에 매혹되었다.

p673 모든 종교는 신 자신에 의해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대중들의 요구와 이해가능성을 감안하여 뛰어난 인간들이 만든 작품의 형태로 생겨났다.

     만일 종교가 신의 작품이라면,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작품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도달 불가능한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이것 신에게 불충하다고 소리듣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작품이다..그리고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p674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이름 붙인 위대한 존재는 인간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풍성하고 힘찬 자연과 강력한 세계적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므로 인간적 특성에 따라 형성되었던 하느님의 관념은 이제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곧 그 불충분함과 모순에 부닥치게 된 사려 깊은 자들은 회의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절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억지 핑계를 갖다 대며 자신을 달랠 정도로 초라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보다 고귀한 관점에로 자신을 끌어올릴 정도로 위대하지도 않았다.

p675 적대자들은 그에게 신앙이 없음을 자주 비난했다. 그러나 괴테는 그들 식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을 표명하면, 그들은 놀라 마지않겠지만 그의 신앙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 누군가도 내 삶이 신앙이 없어서라고 얘기하기도 했고 그의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어이없어 했겠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신앙이 이미 있었을 뿐이다.

p675 어쨌든 자연과 우리 인간은 모두 신성(神聖)으로 차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상에 머무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살고 활동하고 존재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법칙에 따라 고통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법칙들을 이행하고 또 그 법칙들은 우리에게 적용된다. 우리가 그 법칙들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p676 데몬적인 것이란 오성이나 이성에 의해서는 해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네. 그것은 나의 천성 속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나는 그것에 지배되고 있지.

⇒ 데몬적인 것이란 나 역시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지. 나는 그것에 지배되고 있진 않지만 천성 속에 들어 있길 바랄 뿐이네.

p678 인간에게는 거쳐 지나가야 할 인생의 여러 단계가 있으며, 그 단계들은 각기 고유한 미덕과 결점을 가지고 있네. 그러한 미덕과 결점은 그것들이 나타나는 시기에 있어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걸세.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그 사람은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리게 되고, 이전의 미덕과 결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기질이나 나쁜 버릇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서 마침내는 궁극적인 변화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때 우리가 어떤 모습일는지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걸세.

p680 문학에는 전적으로 데몬적인 그 어떤 것이 있네. 무의식적인 작품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지. 그러한 작품은 어떠한 오성이나 이성으로도 미치지 못하며, 또 그런 만큼 상상을 뛰어넘어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네.

p685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서 멀리까지 여행할 필요는 없다. 시인의 마음속에 생생한 내용만 들어 있다면 아주 사소한 계기들로부터도 그 어떤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

⇒ 그러니까 생생한 내용을 포착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p690~691 사람들은 언제나 아이 이전에 듣고 보았던 것을 다시 듣고 보려는 경향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꽃을 순수하게 시적인 영토에서 만나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러므로 이번 경우에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적인 토양에서 자라나 있는 걸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시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되며 어떠한 기적도 믿기지 않을 만큼 전대미문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실제적인 대낮의 환한 빛 가운데서 가장 사소한 것조차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 가장 사소한 것은 사물들의 일상적인 진행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있을 뿐이지만, 우리가 익숙해 있는 수천의 기적들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일하게 낯선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이전 시대의 기적을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믿는다. 그러나 오늘 일어나고 있는 기적에다가 일종의 현실성을 부여하고, 그 기적을 가시적인 현실에 못지않은 보다 높은 현실로 소중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요즘 사람들로서는 더 이상 생각지 못할 일인 것처럼 보인다. 설혹 사람들에게 그런 경향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교육에 의해 그러한 감수성이 쇠퇴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므로 우리의 세기는 점점 더 산문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과 소통이 미약해짐에 따라 모든 문학들로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이다.

⇒ 보다 산문적이 되어 간다라...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좀더 수다스러워진다는 점이 그러하다면.

p693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뛰어난 장점들을 보고 그것에 아주 심하게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장점들을 별다른 고려도 없이 신들에게 부여받고 말지만, 짐승들에게도 그러한 장점을 공유케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는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695 인간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법이야.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이류 정도의 것으로 자신의 생계를 꾸리고 있는 터이므로, 어느 정도 장점을 가진 문학을 보게 되면 농간을 부려 실제로 비난할 만한 것을 기어이 찾아내고 그것을 철저하게 비난하고 혹독하게 깎아내리는 걸세. 그렇게 해야만 자기들이 칭찬하는 이류 정도의 것을 더욱 훌륭하게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

p696 하지만 인간은 또한 데몬적인 것에 대항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도록 노력해야 하네. 나로서도 현재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과 사정이 허락하는 한 열과 성을 다하여 일을 훌륭히 마무리 짓도록 애써야만 하겠지. 이러한 일은 프랑스인이 코디유라고 부르는 놀이와 같은 걸세. 던져진 주사위가 많은 걸 결정하지만, 그래도 놀이판 위에서 말을 잘 써나간다는 것은 그 놀이를 하는 사람의 현명함에 달려 있으니까 말이야.

p704 야만의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보았던 니부어의 견해가 옳았어. 그 시대는 이미 와 있고, 우리는 벌써 그 한가운데에 있네. 왜냐하면 뛰어난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야만의 증거니까 말일세.

⇒ 니부어는 미국인과 독일인 두 명이 있다. 그러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저자 라인홀트는 1892년생이므로 괴테가 말한 대상은 아니다. 그러면 니부어는 로마사를 저술한 독일인 사학자를 가리킨다. 그는 1831년에 사망했다.

p705 안락하고 우아한 가구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고, 그저 편안하고 수동적인 상태가 되어버린다네. 젊을 때부터 그런 데 익숙해 있다면 별문제겠지만, 여하간 화려한 방이나 우아한 가구란 생각도 없고, 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네.

⇒ 안락한 장소이든 불편한 장소이든 생각이란 제 맘대로 마구 흐르는지라 나에겐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창의적인 생각이든 아니든, 잡다한 생각의 세계로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p708~709 꽃을 그리는 위대한 화가란 이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었네. 자연과학상의 세밀한 사실들이 점차 드러나고 있어서 식물학자가 화가들에게 꽃실의 숫자를 일일이 헤아려 보여주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지. 사실 식물학자들에게는 화가의 특기인 분류하고 명암을 구분하는 안목이 없는데도 말이야.

p713 어제와 오늘 아침 나는 그의 전기 제3권을 읽었는데, 마치 외국어로 된 책을 읽은 기분이었다. 외국어도 된 책은 어느 정도의 지적 성장이 있은 후 다시 읽게 되면, 이전에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의 의미가 그때서야 비로소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선명하게 이해되는 것이 아닌가.

p714 나는 거기에다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약간의 상징을 넣으려고 했네. 나의 책에다가 『시와 진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그것이 보다 고귀한 것을 지향함으로써 저급한 현실 속의 종교로부터 벗어나자는 의도 때문일세. ........

⇒ 괴테의 자서전인 『시와진실』은 부제이며 표제는《나의 생애로부터:Aus meinem Leben, Dichtung und Wahrheit》이다. 이 책은 괴테 출생부터 1775년 바이마르에 부임할 때까지를 서술한 것이다. 1811년에 제1부, 1812년에 제2부, 1814년에 제3부를 각각 발표하였는데, 제4부는 옛 약혼녀 릴리에 대한 배려로 출간하지 않다가 괴테 사후 1833년에 출판되었다.

p721 나처럼 여든 살을 넘긴 사람은 이제 살 자격이 거의 없네. 매일 저세상으로 불려갈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고 또 집안 정리도 생각해야만 하니까 말이야. 지난번에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유언장에서 자네를 나의 유고(遺稿) 문학 작품의 편집자로 지정해 놓았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종의 계약서로서 간단하게 문서를 작성해 두었으니 나와 함께 서명해 주었으면 하네.

⇒ 에커만은 이렇게 괴테의 만년에 여러 일들을 도왔다. 계약서도 작성했다하는데 에커만의 생계에 크게 도움되는 액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p725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경구들은 예술에 관한 글을 모은 책에다가 자연과 관련된 글들은 모두 자연과학 편에, 그리고 윤리와 문학을 다룬 글들은 마찬가지로 또 그런 것들만을 모은 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p727 나는 그러한 것을 보는 경우 별로 기분이 좋지 않네.

     자신의 도적적인 자아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여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예민한 양심을 말해주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러한 양심은, 만일 부지런한 활동을 통해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는 우울증 환자를 만들어내고 만다네.

p729~730  영계(靈界)의 고귀한 인간이

           악에서 구원되었도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원하리라.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하늘로부터도

           사랑이 주어졌으니,

           하늘의 성스러운 무리들이

           진심으로 이자를 맞이할 것이다.

    이 시구에 파우스트의 구원에 대한 열쇠가 들어 있네. 즉 파우스트 자신 속에 최후까지 더욱더 고귀해지고 더욱더 순수해지려는 활동이 들어 있는 데다가, 하늘로부터도 그를 구원하려는 영원한 사랑의 손길이 뻗친다는 것이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의 힘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우리의 종교관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걸세.

p734 이 무렵에는 괴테가 여러 분야에 걸쳐 재미있는 이야기와 재치 있는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나는 기력이 왕성한 그의 모습을 날마다 보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만 생각하여 그의 말을 이해하고 기록해 두는 것을 등한시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시일을 놓치고 말았는데, 나는 1832년 3월 22일 수천의 고귀한 독일인들과 함께 메울 수 없는 손실을 슬퍼해야만 했던 것이다.

⇒ 아, 하는 순간 늘 늦다. 후회는 늘 한발짝 뒤에서 따라온다.

p735 우리는 그리스인의 비극적인 운명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한 것은 우리들의 지금 사고방식과는 더 이상 맞지가 않네. 낡은 데다가 애당초 우리들의 종교적 관념과는 모순되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인이 그러한 옛날의 관념을 희곡 작품에 도입한다면 일종의 모방 작품으로 여겨질 테지. 그것은 이를테면 오래전에 유행에 뒤처진 의복과 같아서, 고대 로마인의 기다란 상의처럼 이제 우리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네.


괴테와의 대화 Gesprache mit geothe 2권


3부 


머리말


p11 우리네 삶에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해도 일상의 소음에 시달리다 보면 이따금 여러 주일이나 여러 달 만에 그것도 다만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그를 생각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앞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고 믿게 되는 침잠의 고요한 순간이야말로 드물게 아름다운 시간인 것이다. 나와 괴테와의 만남도 이와 같았다.

⇒ 그렇게 여러 달 만에 스쳐 지나가며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억과 감정이 늘 현재로 여기게 한다.


1823년 


p22 명예는 노고와 고뇌의 원천이요, 무지는 행복의 원천이다. -모스하임

⇒ 무지를 인식하게 되면 행복하지 않답니다.

p31 그는 자신의 색채론의 개념을 나에게 설명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빛은 결코 다양한 색들의 합성물이 아니며, 빛 단독으로는 어떠한 색도 생겨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빛과 그림자의 그 어떤 혼합이나 변화에 의해서만 색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p34 그의 병은 단순히 물리적인 성격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번 여름 마리엔바트에서 만난 한 젊은 여성을 향한 격렬한 애정이(지금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지금 그가 앓고 있는 병의 주요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70세가 넘어서 10대 소녀 울리케에게 연정을 품은 괴테. 그의 연정이 어느 정도이기에 몸이 아플 정도가 되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리고 그가 대문호라는 점에서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칠십이 넘은 어느 노인이 자꾸 20대도 되지 않은 소녀에게 연정을 고백한다면, 그의 열정은 상관없이 정신나간 사람으로 보거나 성적 이상자로 보이게 된다. 아후, 이렇게 대입하고 보니 갑자기 좀 이상하다. 

p37 하지만 그렇게 아무 소득도 올리지 못한다는 게 오히려 젊은이들에게는 무한히 많은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여하간 전체적으로 봐서 의미 없는 일은 아닐세! 이따금 정신 나간 짓도 해보아야지. 다시 정신 차리고 삶을 제대로 살게 되니까 말이야. 나도 젊은 시절에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그런 상태를 그럭저럭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네.

p38 내가 인간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과학 연구를 통해서였네. 물론 돈도 많이 들고 고통도 따랐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을 한 게 기쁘다네.

p39 과학의 경우에는 다루는 방법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성과는 오로지 독창성에 달려 있다네. 거기에는 보편성과 주관성이란 거의 없어, 다만 자연법칙의 개별적인 현상들만이 모두 스핑크스처럼 싸여 우리와는 상관없이 확고부동하게 말없이 누워 있을 뿐이지. 그리하여 새롭게 인지된 현상이라면 그것이 바로 발견이며, 발견은 곧 재산이 되는 걸세. 그러니 누군가가 그 재산에 손을 대기라도 한다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것일세.

⇒ 새롭게 인지된 현상이 발견..어느 교인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 말했다. 발명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이라며.

p43 사람들은 하느님을 함부로 입에 몰리고 있네.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고의 존재를, 마치 자기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로 여기면서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주 하느님’이라든지 ‘사랑하는 하느님’이라든지 ‘선하신 하느님’ 따위의 말을 하지 않을 테지. 하느님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날마다 하느님을 입에 올리는 성직자들에게는 그저 상투어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하느님의 위대함을 마음속 깊숙이 느끼는 자라면, 말문이 막히고 외경심 때문에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못할 테지.

⇒ 내 비록 교인은 아니나 하느님이란 이름을 떠올릴 때는 그래도 약간의 경외감을 가지며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느님은 기독교인이 아니니까.


1824년


p43 저런! 연애가 마치 지성과 관련이 있기라도 한 듯이 말하는군요! 우리가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지성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지요. 아름다움이나 젊음이라든지, 익살과 신뢰감이라든지, 성격, 결함, 변덕 그리고 그 밖의 것들 때문에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지 결코 여성의 지성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지요. 물론 여성의 지성이 빛난다면 우리의 눈에 그 가치를 무한히 높이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미 사랑하고 있는 사이라면 지성은 두 사람을 묶어주는 역할을 할 테지요. 하지만 지성 그 자체는 우리를 불타게 하거나 열정을 불러일으킬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겁니다.

⇒ 요즘의 세태에선 지성이 있는 여성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사람일 뿐이다. 아름다운 여자가 사랑받는 시대.

p47 진실할 수 있고 또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여간 시대의 분위기가 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네. 시인이란 모든 것을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존재이며,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인을 위태롭게 만드는데 말일세.

p54 시대라는 것은 영원한 발전의 도상에 있는 것이고, 인간의 일들이란 오십 년마다 새로운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네. 그러므로 1800년대에는 완벽했던 제도라 하더라도 1850년에는 이미 결함을 가지게 된다고 보아야겠지.

⇒ 제도라는 것은 인간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것이니 그 변화만큼이나 제도 역시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 그리고 완벽한 제도란 있을 수 없다.

p62 기존의 지식이 오류와 결합되어 있는 경우라면 물론 그렇겠지. 그 어떤 편협한 유파의 학문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라면, 편견없는 엄정한 관찰이란 어림도 없는 것이네. 단호한 화성론자는 오로지 화성론의 안경을 통해서만 보려고 하며, 수성론자의 최근의 지각 융기론의 신봉자들도 자신들의 안경을 고집하기는 마찬가지야. 배타적인 유일한 관점에 사로잡힌 그러한 모든 이론가의 세계관은 그 순진무구함을 상실하였으며 대상들은 더 이상 그 자연적인 순수함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네. 그래서 그러한 학자들이 나중에 깨달은 내용에 관해 보고하더라도(물론 그 학자들 개개인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할 테지) 우리는 대상들에 대한 진리를 결코 얻지 못하고, 오히려 매우 강력한 주관이 개입된 관점만을 가지고서 대상들을 받아들이게 될 뿐이라네.


1825년


p87 배우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언제나 타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 그러하기에 어느 날, 너무나 놀라울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면서 저 사람의 실체가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가면이 너무나 밀착되어 가면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후로 그 배우를 볼 때면 늘 거짓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진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곧잘 거짓된 행동을 일삼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늘 그 행동을 진실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쓴 가면 너머의 모습으로 그를 대하게 된 것이다.

p89~90 괴테는 자연의 근원을 탐구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만유(萬有)를 포괄하려 했기 때문에, 전 생애를 걸고 특수한 방향에 헌신한 비중 있는 자연과학자들 개개인에 비할 때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이들 자연과학자들은 한 영역의 무한히 세밀한 부분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반면에 괴테의 삶의 목표는 더욱 보편적인 거대한 법칙을 직관하는데 있었다. 괴테는 언제나 그 어떤 거대한 종합을 추구하기는 했지만 세부적인 사실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자신의 예감을 확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괴테가 그토록 노골적인 애정을 보이면서 저명한 자연과학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속하려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모자라는 것을 그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미비한 점을 그들로부터 보완하려고 했다. 그는 이제 몇 년 안에 여든 살이 된다. 하지만 그의 연구심과 체험에 대한 열정은 지치지 않을 것이다.

⇒ 괴테를 늘 문학가로 바라보았기에 그의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도 전문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문학을 위한 바탕으로만 여겼는데, 괴테가 자연과학도였다니.

p100 자연을 가까이 두고 온갖 향기를 맡으면서도 제대로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더 초조해질 뿐입니다. 마치 물가에까지 따라갔다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걸 방해받는 오리처럼 말입니다.

p109 짐작이 가겠지만 자네의 관찰은 반평생 동안 식물과 나무의 성장을 연구해 온 나의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네. 그러니 이야기를 더 계속하게! 자네는 아마도 ‘질긴’물푸레나무로 활을 하나 만들었을 테지.

p111 자네는 활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가 아주 훌륭한 지식을 얻게 되었군. 실제 체험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살아 잇는 지식 말이야. 그 어떤 열정을 가진다는 건 그래서 언제나 좋을 걸세.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핵심으로 이끌어주니까. 또한 탐구하면서 오류를 범하는 것도 좋아.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고, 사실 자체뿐만 아니라 그 전체 과정을 통할하게 되니까 말이야. 그러니 내가 식물과 색채에 대해 도대체 무얼 알 수 있었을까. 만일 내가 나의 이론을 완성된 상태로 물려받아 그 두 분야를 익히 알고 있었다면 말이네! 그러나 내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하고 또 때로는 오류를 범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그 두 분야에서 무언가 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는 거네. 종이 위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더 많이 말이야.

⇒ 시를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나아간다고 했던가.

p116 나는 예술이 어떤 한 사람 때문에 쇠퇴하게 되었다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가 없네. 이 문제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간단하게 단정할 수는 없는 걸세. 요컨대 그리스인의 비극 예술은 결코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쇠퇴했다고는 할 수가 없네. 그들의 조형 예술이 피디아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긴 하지만 그만큼은 되지 못했던 그 어떤 위대한 조각가에 의해 쇠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왜냐하면 위대한 시대에는 모든 것이 진보의 길로 나아가기 마련이며, 보잘것없는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네.

⇒ 예술이 한 사람 때문에 파괴되었다는 견해에 나는 동의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인간들이 있어 왔다.


1826년


p119 우리의 강점은 내버려두어도 어느 정도 저절로 형성되지만, 우리의 본성 속에 잠재도어 있는 싹이나 소질은 날마다 자기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의 강점으로 발전시키려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걸세.

⇒ 그러한 강점을 발견하는 일도, 발전시키는 일도 늘 어려운 것이 문제이다.

p120 자연을 관찰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대상을 그것만 따로 떼어내 보는 경우는 결코 없고, 모든 대상을 그 앞과 뒤, 그 옆 또는 아래나 위에 있는 다른 대상들과 함께 연관지어 보는 법일세. 또한 어떤 개별적인 대상 하나가 특히 아름답고 그림같이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대상 하나만에 의해서가 아니라네. 사실은 그 옆이나 뒤나 위에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 걸세. 주변의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해서 말이야.

⇒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다. 따로 떼어 보는 것이 아니라 온갖 상호작용속에서 파악한다. 세상은 유기적인 관계이므로.

p121 자연에 있어서는 그 어떤 대상도 만일 그것이 자연법칙에 따르는 ‘진실된 것’이 아니라면 결코 아름답지가 않네. 그리고 이 자연은 진실함을 그림 속에서도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 진실함은 함께 작용하고 있는 다른 사물들에 의해 입증되어야 하네.

p121~122 한 그루의 나무의 성장은 그 나무가 서 있는 위치와 그 나무 아래의 토양의 종류, 그리고 그 나무 뒤와 곁에 있는 이웃 나무들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네. 가령 바위가 많은 언덕의 바람이 센 서쪽 정상 부근에 있는 떡갈나무가 안온한 골짜기의 부드러운 흙에서 자라는 떡갈나무와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될 것임은 분명하네. 즉 두 나무는 제각기 아름답겠지만, 서로 다른 성격이 것일 테지. 그러므로 화가가 그린 풍경화에서도 그 두 나무는 각각 자연에서의 모습 그대로 그려져야 마땅한 거네. 즉 화가에게는 어떤 나무를 그리더라도 그것과 함께 그려지는 주변 환경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걸세.

⇒ 그러니 한 나무의 성장에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환경이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1827년 


p126 천편일률적인 것은 우리를 수동적이게 만들지만, 모순은 우리를 생산적으로 만들어준다네.

⇒ 모순은 생산을 이끈다?

p131 크레온은 한 사람의 남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군주이다. 그러므로 크레온은 국가의 비극적인 힘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군주인 크레온은 ‘국가 자체의 인격’일 수밖에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가장 도덕적인 국가 이성을 행사하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 이에 대한 괴테의 한마디. 그런 주장은 아무도 믿지 않을 거네! 크레온은 국가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p146~147 윤리성이란 것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언급되었다.

    다른 모든 선(善)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바로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네. 이것은 결코 인간 성찰의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아름다운 천성이지. 이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조금씩 부여되어 있지만, 천부의 자질을 타고난 아주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최고도로 주어져 있는 거네. 이러한 사람들은 위대한 행위나 가르침을 통해 그들의 성스러운 내면을 드러내며, 또 이러한 내면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과 존경을 보내고 힘닿는 한 그것을 본받으려 하는 걸세.

    그리고 윤리적 미의 가치와 선의 가치는 체험과 지혜를 통하여 깨달을 수가 있었던 거네. 왜냐하면 악이라는 것 그 자체는 결국 개인과 전체의 행복을 파괴한 것으로 드러났고, 반면에 숭고하고 정당한 것은 개인과 전체의 행복을 가져오고 확고하게 해준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윤리적 미는 가르쳐질 수 있었고, 또 명백한 형태로 온 민족에게 전파될 수 있었던 걸세.

⇒ 그렇다면 계속 배우고 배워야지. 윤리적 미를 가질 수 있도록. 개인과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p149 우리는 동시대인이나 동시대의 경쟁자보다는, 몇 세기 이래로 변함없는 가치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난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연구해야 하네. 진정으로 높은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그러한 욕구를 느끼게 마련이지. 왜냐하면 위대한 선배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이런 욕구야말로 보다 고귀한 재능을 드러내주는 표시이기 때문이네. 물론 몰리에르 연구도 해야 하고 셰익스피어도 연구해야겠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 작가와 그리스 사람들을 연구해야 하네.

⇒ 동시대의 경쟁자와도 경쟁하기 벅차기에 몇 세기 아래로 눈을 돌릴 틈이 없다. 지극히 비범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p151 자연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것은 예술가를 절망에 빠뜨린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자연이 아름다움에 완전히 다가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너무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면 벅찬 감격과 함께 정말로 절망스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p155 이성적인 것이 반드시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단다. 그 반대로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이성적이며, 최소한 이성적이어야 하는 거야. 그러므로 고대 부분이 네 마음에 드는 건 이해가 되기 때문이고, 네가 그 세부적인 부분들을 개관하고 또 나의 이성을 너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온갖 오성과 이성이 마음껏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워서 어느 정도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그 전체 문맥을 파악하고 자기 자신의 이성으로 작가의 이성을 다시 헤아려 내려면 말이야.

p158 예술가는 자연과 이중의 관계에 있네. 즉 예술가는 자연의 지배자이면서 또한 노예이기도 하다는 말이지. 예술가가 노예인 것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이 지상의 수단들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네. 그러나 예술가가 지배자인 것은 이 지상의 수단들을 자신의 보다 높은 의도에 부합되게 종속시키면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네.

p169 재능을 가진 어떤 사람이 신속하면서도 신나게 발전하려면 국민 사이에 지성과 교양이 널리 퍼져 있어야 하는 거야.

⇒ 그러기에 우리는 계속 배우는 것이겠지.

p172 괴테는 대개의 경우 순수한 시적인 소재가 정치적 소재보다 우월하며, 그것은 순수하고 영원한 자연의 진리가 파당적 견해보다 우월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지를 펼쳤다.

⇒ 대개의 경우라 단서를 달았으므로 논박을 하자고 덤비지는 않겠다만. 순수한 시적인 소재라는 것이 있을까. 시가 씌어진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목적 없는 순수한 소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p173 앙페르는 교양 수준이 아주 높아서 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적 편견이라든지, 혐오감 또는 편협함과는 아주 거리가 머네. 그리고 그 정신적인 태도로 보더라도 그는 파리 시민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세계 시민이라고 할 수 있네. 한마디 더 하자면 프랑스에 앙페르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수천이나 있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네.

⇒ 앙페르(Ampère, André Marie)는 프랑스의 물리학자(1775~1836)로  ‘앙페르의 법칙’을 발견하여 전자기학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이다.

p176~177 독일인은 정말 묘한 존재이지요! 어느 곳에서든 심오한 사상과 이념을 탐구하고 그것을 아무 데나 갖다 붙임으로써 인생을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어버리니까요. 자, 그러니 이제 용기를 내도록 합시다. 감명받은 것에 몰입하고, 스스로 기뻐할 줄도 알며, 감동받을 줄도 알고 자기를 고양시킬 줄도 알며, 기꺼이 배우고, 그 어떤 위대한 것을 향하여 열정을 불태우고 용기를 낼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추상적 사상이나 이념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만은 부디 없어야 합니다.

⇒ 독일인은 정말 묘한 존재이다. 히틀러는 독일인이었고 히틀러 시대 나치들도 독일인이었고. 전후에 대처하는 방식이 일본인과 틀리게 달랐던 것도 독일인이었고..

p178 문학작품이란 불가해하면 할수록 그리고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좋다.

p193 사람이란 좁은 집구석에만 있으면 쭈그러들기 마련이야. 이곳에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위대한 자연처럼 위대하고 자유롭다는 느낌이 드는 걸세. 아니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야.

p201 실러는 그의 숭고한 성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들이 빈말로 그에게 경의를 표하거나 그를 진부하게 신격화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극도로 싫어했네. 그래서 코체부가 실러의 명성을 기리며 공개적으로 의사 표명을 하려 했을 때 실러는 너무도 역겨운 나머지 거의 병에 걸릴 지경이었네. 마찬가지로 실러가 싫어했던 건 낯선 사람이 자기를 함부로 방문하는 것이었네.

⇒ 실러(Schiller,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1759~1805)로 <오를레앙의 처녀>, <빌헬름 텔> 과 같은 작품이 있다. 그리고, 괴테와 함께 고전주의 예술 이론을 확립하였다.

p201 우리는 지향점이 꼭 같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유형의 성격이었네. 정신적인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점에서도 그랬어.

⇒ 실러가 썪은 사과향기를 좋아했다. 그의 취향이지만 나는 웃었다.

p206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자력이 특히 강하게 작용하고, 심지어는 아주 멀리까지도 그 힘이 미친다네. 젊은 시절에 나는 이런 경험을 자주 했었네. 고독하게 산책을 하던 중에 사랑하던 소녀가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불현듯 일어나서 한동안 그녀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머지않아 실제로 그녀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 그때 그녀가 이렇게 말하더군. ‘방에 있는데 왠지 마음이 불안해지잖아요. 그래서 이리로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p214 뻐꾸기에 관해 들은 이야기 때문에 나는 이 유별난 새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 뻐꾸기는 정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새이고 명백한 비밀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비밀을 풀기가 어려운 거네. 게다가 그러한 명백한 비밀은 그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네. 그래서 우리는 기적에 의존하게 되며 결국 사물의 최고 최선의 비밀은 우리들에게 닫혀버리는 걸세.

⇒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품지 못하는 새라는 것, 자신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다른 새의 둥지로 날아가 알을 낳고 그 새의 알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고난 후 뻐꾸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뻐꾸기의 인생이 안쓰럽긴 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고 잔인해 보였다.

p221 하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지요. 벌레를 먹고사는 작은 새들이 둥지에서 나온 뻐꾸기에게 먹이를 구해 주고, 또 그 뻐꾸기를 부화시키지 않은 새들도 먹이를 가져다줌으로써, 뻐꾸기와 먹이를 주는 새들 사이에 일종의 친척 관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서로 간에 알아보고 또 서로를 단 하나의 커다란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게 되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한 쌍의 풀숲종다리 부부가 지난해에 부화시키고 길러주었던 바로 그 뻐꾸기가 올해에 다시 그 부부에게 자기 알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p226 화제는 변증법의 본질에 관한 문제로 넘어갔다. 헤겔이 말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모순의 정신을 법칙화하고 방법론적으로 형태를 부여한 것이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거짓으로부터 참을 구분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1828년


p228 그러나 우리 삶이란 다 그런 거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버리는 거지. 그러므로 날마다 데몬으로 하여금 우리를 끈으로 묶어 인도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지도받고 또 그대로 하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선한 영이 우리를 저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축 처져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가는 거라네.

⇒ 우리의 운명을 보다 좌우하는 것은 어느 쪽일까. 어두운 면? 밝은 면? 데몬이 우리를 인도하게 한다면 어두운 면으로 기우는 듯하다. 괴테의 말대로 축 처져서 어둠속을 더듬거리며.

p230 생산적이기 위해서 반드시 시나 희곡을 쓸 필요는 없네. ‘행동의 생산성’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말이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편이 훨씬 더 중대할 수도 있네. 예컨대 의사도 진정으로 의사다우려면 생산적이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성공하는 예는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는 서투른 의사가 되고 말 거네.

p230 천재란 다름 아니라 생산적인 힘이며, 그런 생산적인 힘을 통해 하느님과 자연 앞에 떳떳이 내보일 수 있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거네. 또 바로 그 때문에 그 행위는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걸세.

⇒ 생산성이란 말을 반복해서 들으니 공장이 생각난다. 공장의 기계를 돌리며 생산성을 올리라고 주장하는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창조성도 일종의 생산성이긴 한데 가끔 단어가 어느 곳에 쓰일 때 참 생경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생산성에서 지금 내가 그러하다.

p232 어떤 사람이 이루어낸 작품이나 행동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을 생산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네. 우리는 시집을 연달아 출판함으로써 생산적이라고 여겨졌던 시인을 알고 있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비생산적일 뿐이네. 왜냐하면 그들이 쓴 작품에는 생명력도 영속성도 없기 때문이지. 그와 반면에 골드스미스가 쓴 시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그래도 나는 그를 생산적 시인이라고 말하겠네. 그가 쓴 것은 소량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내재된 생명이 들어 있어서 영속될 수 있기 때문이지.

⇒ 생산성으로도 밀리고 생명력으로도 밀리고..영속적일 수 없는 이 운명이여.

p235~236 그 같은 인물들은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어서 독특한 데가 있네. 말하자면 그들은 ‘청춘의 반복’을 체험하는 걸세.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단 한 차례의 젊음이 주어질 뿐인데 말이야.

    즉 개개의 엔텔레히는 영원히 일부이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이 지상의 육체와 결합되어 있다 해도 늙어지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이 엔텔레히가 열등한 종류의 것이라면 육체의 욕구에 가려져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육체가 득세하게 되네. 그리고 육체가 늙게 되면 엔텔레히는 그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장만 초래하게 되는 걸세. 그러나 모든 천재적인 인물의 경우에 그렇듯이 엔텔레히가 아주 강력한 종류의 것이라면 그것은 육체에 생생하게 스며들어 그 조직을 활기차고 소중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정신의 우세를 유지하는 영원한 청춘이라는 특권을 계속 유지하게 해준다네. 그래서 탁원할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별한 생산성을 가진 발랄한 시기를 누리게 되는 걸세. 그들에게 있어서는 몇 번이고 일시적인 회춘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청춘이 반복’이라는 거네.

    하지만 젊음은 젊음일 뿐이며 엔텔레히가 아무리 강력하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육체적인 조건을 완전히 넘어설 수는 없네. 그러므로 엔텔레히가 육체와 동맹을 맺느냐 아니면 적대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걸세.

⇒ 엔텔레히(Entelechie)는 독일의 동물학자이며 철학자인 드리쉬(H. Driesch, 1867~1941)가 설정한 개념이다. 생물이 발생할 때의 형태의 조절 작용이나 생물행동의 합목적성은 기계적인 인과관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생체 내에서 행해지는 부분적 가정을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전체화하는 목적 원리를 상정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케이아의 개념에서 전용하여 엔텔레히(Entelechie)라 하였다.

p237~238 가장 높은 정도의 생산력, 중대한 착상, 온갖 창안, 열매를 맺고 결과를 가져오는 모든 위대한 사상과 같은 것은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세속의 모든 힘을 넘어선 것이네. 인간은 이러한 것을 하늘로부터 받은 예기치 않은 선물이라 생각해야 하네. 하느님이 순수한 아들로서 그 선물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소중히 여겨야 하네. 그것은 데몬과 같은 핏줄이어서 강력한 힘으로 인간을 마음대로 휘두른다네.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을 때에도,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데몬에 몸을 맡기고 있는 거네. 그러한 경우에 종종 인간은 보다 고귀한 세계 지배의 한 도구로 간주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당당한 그릇으로 여겨질 수 있는 걸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단 하나의 사상이 몇 세기를 변화시키는 일이 자주 있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한 몇몇 사람이 이루어낸 일이 그 시대의 특징이 되고, 그 후세에도 계속 유익한 영향을 주는 일이 있기 때문일세.

p239 아무것도 억지로 짜내지 않는다는 게 나의 방침이네. 생산적이 아닌 시간에는 빈둥거리면서 보내거나 잠이나 자면 될 일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날에 억지로 써봐야 나중에 기분만 상하게 되니까 말이야.

⇒ 그와 같지 않기에 생산적인 시간을 기다리려고 해도 기다릴 수 없고, 마냥 기다린다 해도 나오지 않고..이러 저러 기분만 상하게 되니까. 누군가는 어떤 식으로든 한자 한자 써내려 가는 것이 원고지를 채우는 힘이라 했다. 그리고 나는, 마냥 영감을 기다리다가 오늘날까지 왔다.

p239~240 그 어떤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경우에 포도주 몇 잔을 마시면, 금방 할 일이 분명해지고 곧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결심을 한다는 것도 일종의 생산성이므로 포도주 몇 잔으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면, 그런 수단도 완전히 배제해 버릴 수야 없는 것이겠지요.

⇒ 결심을 한다는 것도 생산성이지요.! 그럼, 얼마나 고된 정신적 작용인데!

p241 자네도 알겠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그 중년기에 전환점을 맞이한다네. 청년기에는 만사가 순조롭고 행복하게 돌아가던 사람도 어느 순간 그 운명이 돌변하여 재난과 불운을 잇달아 겪게 되는 법일세.

    내 말의 의도를 알겠나? 사람이란 결국 무로 돌아가는 거라네! 모든 비범한 인간은 그가 이루어야 할 그 어떤 소명을 타고나는 법이며, 그것을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사람의 모습으로 지상에 머물 필요가 없어지는 게지. 그리하여 하느님의 섭리는 그를 또다시 다른 용도로 돌려쓰게 되는 걸세. 이 지상에서는 모든 일이 순리에 따라 이루어지며 데몬은 차례차례 사람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리는 거네. 나폴레옹도 그랬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랬지. 모차르트는 서른여섯 살에 죽었고, 라파엘로도 거의 비슷한 나이에 죽었으며, 바이런은 그보다 겨우 몇 년 더 살았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신의 천명을 완벽하게 이루었지. 그들은 가야 할 나이에 갔네. 그리고 이 땅에 더 오래 살도록 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세.

p246 사람의 본성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어서 거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를 위해 무언가 좋은 걸 마련해 준다네. 나는 평생 동안 눈물을 흘리며 잠든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눈물 속에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 나타나 나를 위로하고 축복해 주었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원기를 얻어 씩씩하게 일어나곤 했지.

⇒ 눈물은 정화의 작용이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p252 물론 아름다운 시절이었지! 하지만 이제는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흐릿하게 안개 낀 오늘날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테니 말이야.

p252 예컨대 장차 국가에 봉사하는 정치가가 되려는 학생에게 이론적인 지식을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 되네. 젊은 사람들이 때가 되기도 전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망쳐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면 막상 실무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에, 제아무리 철학이나 학술상의 문제에 있어서 훌륭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직무상의 제한된 범위 안에서 그런 지식은 조금도 응용되지 못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잊혀져버리고 마는 걸세. 반면에 그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 즉 정신적 육체적 정열이 부족하네. 실제로 사회에 나가 유능한 활동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인데도 말이야.

    그리고 인간들을 다루는 정치가의 생활에 있어서도 사랑과 호의는 필요하지 않은가? 자기 자신이 이미 불쾌한 기분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호감을 베풀 수 있단 말인가?

⇒ 천부적인 노력으로 가능하다. 그들은 체질적으로 비위에 맞도록 행동할 줄 아는 족속이며 '표‘라는 것이 관계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p262 세상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만큼 그렇게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는 건 아니라는 걸 말이야. 진보를 가로막는 데몬들이 끊임없이 여기저기 도처에서 나타나, 전체적으로 보면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나 그 속도가 아주 느릴 수밖에 없는 걸세. 더 살아보게. 그러면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p270 나무가 타는 것은 그 안에 탈 수 있는 성분이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이름을 얻는다는 건 그 사람 안에 이미 그럴 만한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네. 명성은 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며 일부러 그것을 구한다는 건 모두 헛된 일이네. 현명한 처신과 온갖 교묘한 수단을 사용하여 일종의 명성을 얻을 수도 있을 테지. 하지만 거기에 내면의 보석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 명성은 헛될 뿐이며 다음날까지도 유지되지도 않을 것이네.

p272 말하자면 국가라는 건 많은 손발이 달린 살아 있는 몸뚱이와 비교할 수 있네. 그리고 이 심장으로부터 가까이 또는 흘러 들어오는 생명력과 건강이 흘러들어 가는 거지. 그러나 그 지체가 심장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흘러 들어오는 생명력도 약하며 또 점차로 약해진다는 걸 느끼게 될 테지.


1830~1832년 


p281 철부지 독자들은 독서하는 법을 배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가를 모르네. 나는 팔십 년간이나 거기에 몸을 바쳤지만 아직도 목표에 도달했노라고 말할 수 없는데 말이야.

p282~283 근본적으로 위대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참으로 위대한 자연과학자는 결코 생겨날 수 없네. 물론 내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공허한 데로 빠져들거나 있지도 않은 일들을 꾸며대는 따위는 아니네. 진정한 상상력이란 이 지상의 현실적 토대를 떠나지 않으며, 현실적이 것과 이미 알려진 사실을 척도로 삼아서 예감하고 추정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하네. 그러므로 이러한 상상력은 예감의 실현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며 또한 그러한 예감이 이미 아려진 다른 법칙과 모순되지 않는가를 검토한다네.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은 그 전제조건으로, 생동하는 세계를 조망하고 그 법칙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이면서도 냉정한 머리를 필요로 하네.

⇒ 위대한 자연과학자이든 위대한 작가이든 위대한 철학자이든 모든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현실적 바탕 위에서라면 상상력은 곧 머무르게만 되지 않을까.

p289 참다운 자유주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단을 사용하여 가능한 한 좋은 일을 많이 이루려고 노력한다네. 하지만 종종 피할 수 없는 결함에 직면한다 하더라도 즉각 총칼을 들고 달려들어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네. 현명하게 한 발짝씩 전진함으로써 사회의 결함을 차츰차츰 제거하려고 한다네. 그래야만 폭력적 수단으로 흔히 좋은 것까지 동시에 파멸시켜버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는 걸세. 언제나 불완전하기 마련인 이 세계에서는, 보다 좋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때와 상황이 주어질 때까지 현재의 좋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법이야.

⇒ 현재의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요?

p297 죽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그 무엇이야. 매번 죽음을 치르면서도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죽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으니 말이야. 하지만 죽음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게 찾아오네. 말하자면 죽음이란 갑자기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그 어떤 불가사의한 영역인 것 같네. 익숙한 현실 세계로부터 조금도 짐작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게 너무나 강제적이어서, 뒤에 남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깊은 충격을 안겨주는 걸세.

p306~307 어떠한 혁명에서도 극단적인 상황은 불가피한 거네. 정치적 혁명에 있어서도 보통 처음에는 온갖 폐단을 제거하는 것 외에 더 이상은 바라지 않지. 그러나 예기치 않게 어느새 잔혹한 유혈 사태로 깊숙이 빠져 들어 가는 법이네. 마찬가지로 프랑스 사람들도 지금의 문학 혁명 과정에서 처음에는 좀더 자유로운 형식의 도입 정도만을 바랐겠지.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형식과 더불어 종래의 내용까지도 배척하고 있는 거네. 고귀한 심성이나 행동을 묘사하는 것을 지루한 노릇으로 선언해 버리기 시작하고 온갖 흉악무도한 것을 주제로 다루려고 하면서 말이야. 그리스 신화의 아름다운 내용 대신에 악마나 마녀나 흡혈귀가 등장하고, 고대의 숭고한 영웅들은 도적들이나 노예선의 노를 젓는 노예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네. 하긴 그러한 것들은 자극적이고 효과적이야! 대중은 그렇게 후추를 많이 친 음식을 한번 맛보고 거기에 익숙해지면 보다 더 많은 양을 원하고 보다 더 강렬한 걸 찾는 법이네.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젊은 작가가 독자적인 길을 걸어갈 만큼 위대하지 못하다면 시대의 취향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거지. 아니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선배들을 앞지르려고 노력해야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외형적 수단만 추구하다 보면 좀더 깊은 연구는 등한시되고, 재능이나 인간성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면으로부터 철저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네. 그렇게 찰나주의적인 태도로 문학 전반에서 어느 정도 얻는 게 있다 하더라도 재능 있는 사람 자신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거네.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 푸른 하늘을

p312 대체로 정치시라는 건 아무리 잘돼봤자 한 국민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 당파의 도구로만 간주될 수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 시가 훌륭하다면 그 국민이나 당파가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겠지. 또한 정치시란 언제나 그 어떤 시대 상황의 산물로만 간주될 수 있을 뿐이네. 하지만 그러한 시대 상황이 지나가고 나면 그 시의 주제에서 생겨났던 가치도 따라서 사라지게 되는 걸세.

p313 우리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조국에 봉사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각자는 하느님이 정해 주신 천분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네. 나는 반세기 동안이나 무척 고생해 왔네. 나의 몫으로 정해진 분야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하면서, 힘닿는 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실행해 왔으니까 말이야. 그러므로 누구든 나와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모두들 잘 되고도 남았을 테지.

⇒ 나고 조국에 봉사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능력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의 능력이 모자라기도 하고. 그리고 조국이 나의 능력을 필요치 않기도 하고.

p315 우매한 대중이야 보다 고귀한 인간을 박해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천분도 재능도 있는 자가 서로 상대를 비방한다는 건 말이 안 되네. 플라텐은 하이네를, 하이네는 플라텐을 화나게 했네. 이렇듯 서로가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하려고 안달이네. 하지만 잘 생각해보게. 세계는 참으로 크고 넓지 않은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유유하게 활동하기에 충분치 않은가. 그런데도 각자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는커녕 그 재능 때문에 오히려 적을 만드는 형편이니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 플라텐은 그의 정치시에서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편에 서서 러시아 전제 정치에 대한 폴란드의 투쟁을 노래했다. 그가 이렇게 폴란드 봉기(1830/31)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전에 그리스 독립 운동에 대하여 찬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국에서 억압받고 있는 독일인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진보적인 시의 출발점으로 싹텄다. 그 자신이 과대 평가한 바 있는 그의 문단을 풍자하는 코미디에 의해 플라텐은 악의에 찬 조소를 받았다. 그는 티크에 대한 관심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의 전형과 결합시켰다. 〈람프시니트의 보물〉(1824)은 독일 철학에 관한 작품이고〈저주받은 포크〉(1826)는 운명 비극에 관한 것이며, 〈낭만적인 오이디푸스〉(1828)는 이머만과 하이네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하이네는〈루카의 온천장〉에서 이것에 대하여 결정적인 화살을 퍼부었다. 노령의 괴테는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평하였다. "재능 있는 사람과 탤런트가 경주를 하고 있다. 플라텐은 하이네를 분격시키고 하이네는 플라텐을 분격시켰다. 각자는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영향을 끼치기에는 세계는 너무 크고 넓다. 그리고 각자는 그 자신의 재능으로 상대방을 충분히 혼내줄 수 있는 적을 갖고 있다"(1830년, 에커만에게).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p316 대체로 민족적 증오심이란 독특한 것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문화적으로 가장 낮은 단계에 있을 때 그것이 가장 격심하게 나타난다네. 그러나 민족적인 증오심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어느 정도 민족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이웃 나라의 행복이나 불행을 자기 나라의 것처럼 느끼는 그런 단계가 있는 법이지. 나의 천성에는 그러한 문화의 단계가 맞는다네. 더욱이 나는 내 나이 예순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러한 단계를 실천하려고 줄곧 애를 써왔네.

⇒ 우리가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민족적 증오심은 문화적인 단계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아니, 문화적인 면이 상관은 있으려나.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한 나라로부터의 침략과 종속은 아주, 철저히, 충격적이고 모멸적이었으므로.

p323 제가 생각하기에는 급진주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미래의 건설을 위해 미리 순수한 길을 닦으려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립니다. 반면에 또 다른 급진주의는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국가 행정의 허약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영국에서 태어나셨더라면 선생님께서도 이 후자의 길을 외면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p328~329 그 보잘것없는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단 한 번 펜대를 놀려 십만 명의 인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그중애서 8만 명이 스스로 죽거나 서로 죽이거나 방화를 하거나 약탈을 하도록 부추긴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그 잔혹무도한 일을 두고서 고작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미가나 부르실 테지요! 더 나아가서 소름끼치는 지옥의 형벌에 대해 설교를 하여 주교님의 교구에 속하는 신도들의 허약한 영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올바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마침내는 그들의 가련한 삶을 정신 병원에서 미치게 만드는 게지요! 혹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황당하기만 한 정통 교리를 설하시어 주교님의 신자들 마음속에 해롭기만 한 의심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면 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약한 것 같기도 한 영혼들은 죽음밖에는 달리 다른 탈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하실 거며, 또 어떤 처벌의 말씀을 내리실 건가요? 지금 주교님께서는 한 작가를 추궁하시고 그가 쓴 작품을 저주하시는군요. 그 책은 몇몇 고루한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이해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 사람들을 기껏해야 한 다스밖에 안 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쓸모 없는 인간들, 즉 초라하게 남은 한줌 이성의 빛마저 불어서 꺼버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인류에게 참다운 봉사를 했고, 따라서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주교님은 저의 그 알량한 전공(戰功)마저 범죄 행위로 만들어버리시는군요. 여러 성직자분들과 제후분들에게는 그처럼 강력하고 위대한 행위를 허락하시면서요!

⇒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작품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가 창조한 인물에 대한 애정을 품어야 하는 것. 문학작품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확고한 주제의식과 논리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작가란..

p330 그 어떤 책이 삶 그 자체보다도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건 있기 어려운 일이네. 우리의 삶은 날이면 날마다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귀로 들려오는 파렴치한 장면들로 이미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어린아이들의 경우라 할지라도, 어떤 책이나 연극 작품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할 필요는 조금도 없는 것이네. 방금 말했다시피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가장 영향력이 큰 책보다 더 교훈적이니까 말이야.

p341~342 이제부터는 자연 연구에 있어서 프랑스에서도 정신의 물질을 지배하는 주인이 될 것이네. 사람들은 위대한 창조의 원리, 하느님의 비밀에 찬 역사(役事)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될 테지! 자연과의 소통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만일 우리가 분석적인 방식으로 개개의 물질적인 부분들을 처리하면서 정신의 작용을 느끼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 정신이란 것은 결국 물질의 모든 부분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 주면서 조금도 탈선하지 않도록 내적인 법칙에 따라서 통제하고 제어하는 것일세.

    나는 지난 오십 년 동안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왔는데, 처음에는 고독했고 그러다가 후원자가 생겼으며 마침내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우뚝 서게 되었지.

p344~345 내 생각으로는 모든 개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마침내 전체의 행복이 틀림없이 생겨나는 거네. 게다가 그 교의는 내가 보기에 전적으로 비실제적이며 실천 불가능한 것이네. 모든 자연과 모든 경험에 반하는 것이며, 수천 년 이래의 모든 일들의 진행과정과 모순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모두가 자신이 맡은 일의 테두리 내에서 정직하고 유능하게 행동한다면 전체의 안녕은 저절로 이루어지네. 나는 작가로서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전체를 이롭게 할까?라고 물은 적은 결코 없었네. 오히려 언제나 자신의 통찰력을 키우고 자기 인격의 질을 높이면서, 내가 훌륭하고 진실하다고 깨달은 것만을 표현하고자 늘 애를 써왔을 뿐이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보다 커다란 범위에서 영향을 미치고 이로운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네. 다만 이것이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적으로 필연적인 일의 과정, 즉 자연적인 힘들의 작용에 있어서 언제나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네. 만일 내가 작가로서 거대한 대중이 원하는 바를 목표로 삼고 그것을 충족시키려 했다면,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서 그들을 조롱이나 했겠지.

p352~353 모든 언어는 명백한 인간적 욕구, 인간적인 일, 그리고 일상적인 인간의 느낌과 직관으로부터 생겨났지. 그러므로 보다 높은 뜻을 가진 인간이 자연의 비밀스런 작용과 힘에 대한 예감과 통찰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그가 물려받은 언어로써는 일상적인 인간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러한 것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한 거네. 그러므로 자신이 깨달은 걸 만족스럽게 표현하려면 그에게는 그야말로 신령스런 언어가 주어져야 하는 거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네. 그러므로 진기한 자연의 현상들을 직관했다고 하더라도 진부한 표현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궁색한 입장에 처하게 되어 자신의 깨달음을 깎아내리게 되거나 아니면 훼손하고 망쳐버리게 되는 걸세.

⇒ 언어의 힘. 그것은 창조적이고 또한 파괴적이다.

p357 자연에 대한 연구보다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네. 자연의 비밀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지만 우리 인간들은 점점 더 깊이 그것을 들여다볼 권리를 가지고 있는 거네.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불가해한 것으로 남게 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자연은 우리에게 영원한 매력을 가지는 걸세. 그리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에로 다가서서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발견을 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네.

p367 인간들의 뛰어난 점이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수단을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당겨서 우리들의 보다 높은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힘과 경향 그 자체가 아니라면 말일세.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을 겸손하게 말할 수 있네.

⇒ 어떤 면에서 인간의 뛰어난 점이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점 역시도 뛰어난 점이다. 무엇보다 목적과 도구를 확실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종족이다.

p370 성서의 일들을 바라보는 데는 두 가지 관점이 있네. 그 하나는 일종의 근원종교, 즉 신으로부터 직접 비롯하는 순수한 자연과 이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네. 이러한 관점은 신이 내린 천부적 자질을 가진 인간들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변함없이 지속되면서 인정을 받겠지.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것이며, 일반화되기에는 너무나 높고 고귀한 것이네. 다른 하나는 교회의 관점으로, 이는 보다 인간적인 성격의 것이네. 이 관점은 허약하고 불안정하며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허약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변화하며 지속될 것임은 분명하네. 완전무결한 신의 계시에서 나오는 빛은 너무나 순수하고 눈부신 것이어서 가련하고 허약한 인간들로서는 감당할 수도 없지. 그러나 교회가 선량한 중개자가 되어 그 빛의 세기를 온화하게 누그러뜨려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다수 사람들의 정서를 순화시켜 줄 수 있는 거지. 기독교 교회는 요컨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계승자로서 인간적인 죄악의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매우 거대한 권능을 가진 존재가 되었지. 그리고 이러한 권능과 이러한 명망을 유지함으로써 교회 체계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성직자들의 주된 관심사이네.

 

 

 

3. ‘내가 저자라면’


■ ‘괴테와의 대화’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머리말 

1부

 

들어가는 말

1823년

1824년

1825년

1826년

1827년

 

2부 

1828년

1829년

1830년

1831~1832년

 

3부 

머리말

1822년

1823년

1824년

1825년

1826년

1827년

1828년

1830~1832년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고 평한 『괴테와의 대화』는 민음사 판 전2권으로 되어 있다. 저자가 괴테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1권에는 1부와 2부, 2권에는 3부가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2권에 연도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괴테 사후 약 10년 동안 천 번의 만남을 통해 괴테와 대화한 내용을 메모하여 기록한 것으로 1836년 1부와 2부를 출간하였다. 이후 인기가 좋아 1848년 괴테와의 대화를 기억하여 출간한 것이 제3부이므로 연도가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3부는 저자 이외 오랜 동안 괴테와 교류한 제네바 출신의 자유로운 공화주의자 소레가 괴테와의 만남을 일기에 적은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소레가 그가 기록한 내용들을 연대순을 편입해 달라고 부탁했고 저자는 소레가 기록한 것을 보충하고 거기서 빠진 공백들을 채워 넣으며 3부를 완성하였다. 특히 소레의 내용을 상당히 활용한 부분은 구분하기 위하여 따로 표시하고 있는데 1824년에서 1829년에 이르는 부분, 1830년, 1831년, 1832년이 그러하다. 전체적인 내용이 괴테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3부의 초기 년도에서는 사건을 나열한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이 소레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괴테와 저자 사이의 대화 내용이 주가 된다. 그리고 괴테의 가족과 친구들, 괴테가 만난 예술가와 학자 등-나폴레옹, 헤겔, 실러, 베토벤 등-와 나눈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를 넘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괴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내용, 세계 문학대가들에 대한 괴테의 생각과 해석, 정치에 대한 관점, 당대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점, 종교에 관한 관점, 자연과학에 대한 관점, 삶의 지혜에 관한 생각 등 괴테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대화는 상호간에 주고받는 말이다. 대화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나뉘며 담화의 내용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게 된다.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와 저자의 10년 동안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상호간의 대화가 무색할 만큼 괴테의 일방적인 언행들이 주를 이룬다. 괴테의 말에 대해 저자는 호응하거나 혼자 감탄하거나 하면서 괴테가 전하는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연도가 지날수록, 그러니까 세월이 지날수록 이러한 형태의 대화는 조금의 변화양상을 보인다. 괴테의 일방적인 말씀 전하기가 아니라 저자 또한 일정 부분 대화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괴테의 논리에 반박하며 자기 주장을 펼치며 의견을 피력하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문학을 꿈꾸는 자로서 또한 시집을 낸 시인으로서 저자는 대문호 괴테에게 가려져 아무런 꽃을 피우지 못한 듯이 보였다. 니체가 최고의 작품이라 평했지만 저자에 대한 명성이나 문학적인 찬사가 아니라, 그저 ‘괴테’를 더욱 더 알 수 있는 연구로서 이 책이 세상에 기억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픈 감정이 지속되었는데, 저자 자신이 괴테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도 괴테의 영향 아래서 정신적으로도 더욱 성숙하고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게 된 듯하여 이것이 매우 뜻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괴테의 작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그 자신의 관점과 문학적인 열성으로 괴테의 작품을 정리하고 새롭게 조언하는 내용을 보게 되는 것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저자 또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에커만이 여행길에서 괴테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진실로 에커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갈망을 표출하며 자신과 마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과를 떠나 자신의 목소리를 괴테에게 전달했던 또 하나의 표현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 전반에 나타난 괴테의 지식과 혜안들에 놀라지만, 지극히 조심스럽고 경외감으로 표현된 에커만의 어조들을 보는 것이 은근히 기억에 머물게 된다. 이 책을 쓰게 된 내용, 그가 괴테와 만나기까지의 과정 등, 그 기록들 속에서 저자 에커만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괴테의 말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서도 알지 못하는 많은 공백들을 저자가 10년 동안 대신 물어 줌으로써 괴테를 통해 그 작품들이 창작되고 그에 대한 여러 감흥들을 엿볼 수 있던 것 또한 좋은 부분이었다. 결국, 아닌 듯해도 이 작품은 괴테라는 넘을 수 없는 바위를 조금씩 조금씩 두들겨 대는 저자를 통해 사람들 가까이로 바위가 이끌려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보완점


 이 책은 연도순으로 괴테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부터 일기 형태로 기록되었기도 하였고 괴테와의 만남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기에 어찌 보면 연도순의 일기 형태가 가장 무난한 구성인 듯 보인다. 그리고 이 형태로 구성된 것은 당시의 이야기의 맥락에 따른 내용이해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주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러한 연도별 기술에서 1부와 2부의 나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술 형태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괴테와의 만남에서 극적인 사건 변화로 구분지은 것도 아니다. 대화의 주제에 따른 구분도 아니다. 단순히 연도상이 절반 정도를 나눈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의 나뉨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3부는 1, 2부 후에 또한번 출간된 것이라 전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추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예외로 한다고 해도 역시, 거기에다가 3부로 덧붙이는 것은 좀 어색하다. 차라리 3부의 내용이 다른 서술 형태이라면, 주제를 달리한 묶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3부의 내용들은 1부와 2부 사이에 연도와 날짜에 맞추어 각각 삽입한다면 전체적인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3부에서 참고한 소레의 기록에 대한 표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인쇄되지 않은 괴테의 편지와 일기 등을 연도별로 검토하면서 편집과 출판에 관한 사항들을 정리하며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모든 편지들을 다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적인 구절들은 선행하고 있는 구절들이나 나중에 나오는 구절들에 의해서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고 확연하게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를 출판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면 부분 부분 베껴 해당 연도별로 묶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수신인과 연도별 정리 방법 중에서 연도별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같은 시간대에 활동했던 이들의 관계를 드러내고, 그 편지를 쓴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일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그가『괴테와의 대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도별 기록은 이러한 자기 의견을 적용한 책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연도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또 다른 형태의 구성을 제안해 본다. 바로 주제별로 대화의 내용을 분류하는 방안이다. 아마도 이것은 『괴테와의 대화』라는 제목에 부제를 달아야 할 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가 나온 맥락의 이해를 떠나,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될 만하다. 특히 『괴테와의 대화』가 담고 있는 괴테의 무수한 생각들을 총합적으로 정리하여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리라 본다. 여기에 에커만이 생각한 바 있는 정리 방식이 유용한 지지를 해준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경구들은 예술에 관한 글을 모은 책에다가 자연과 관련된 글들은 모두 자연과학 편에, 그리고 윤리와 문학을 다룬 글들은 마찬가지로 또 그런 것들만을 모은 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괴테와의 대화』1권, p725)

 

 이러한 형식을 고려한다면 다방면의 주제로 이야기가 이루어진 만큼 다양한 주제로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카테고리 나뉜다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학, 철학, 자연과학, 정치학, 종교학

둘째, 괴테의 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소고

셋째, 고전론, 희극론, 배우론, 작가론, 시론, 정치론, 괴테의 작품비평


 특정한 주제어를 발췌하여 그에 따라 서술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선별하여 논의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데몬적인 것과 오성

      작가의 생산성과 창조력

      이념과 소재

      정신과 자연과학

      인간 존재와 신


 이와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전개하면 핵심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보다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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