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앨리스
  • 조회 수 4546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4년 2월 10일 11시 30분 등록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고미숙, 김진숙, 김풍기 엮고 옮김 북드라망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연암 박지원 (1737~1805)

 

연암 박지원은 1737(영조 13) 서울에서 부친 박사유의 2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연암 박지원은 요즘 시쳇말로 엄친아중의 엄친아였다. 반남 박씨 노른 측의 일원인 명문 거족 출신에, 그의 조부는 영조 즉위 후 30년간 고위직 벼슬을 역임했다. 열여섯에 전주 이씨 부인과 결혼하는데 장인 이보천과 그 아우인 처숙 이양천은 그의 스승이 되어 이보천은 <맹자>를 가르쳐 유학자의 기본 교양을 익히게 하고, 이양천은 사마천의 글을 통해 문장 짓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손아래 처남은 그의 평생지기이자 든든한 지원자였으니,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엄친아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다른 속사정이 있었으니, 천재로서 고독이 원인인지, 타고난 뜨거운 인간애가 원인인지 모르겠으나, 연암은 20대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33세 되던 1770년 연암은 생원 진사를 뽑는 시험인 감시에서 1등으로 뽑힌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해 본 시험인 문과를 포기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이후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의 한 셋집에서 혼자 기거하면서 많은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심화해 나간다. 특히 당시 중국을 다녀온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등 실학자들과 교제하며 조선의 낙후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청나라의 발전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778년 연암은 돌연 서울 셍활을 청산하고 황해도 금천의 연암동에 은둔한다. 자신의 호 연암도 이 연암동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정조 즉위 이후 홍국영이 정계의 실력자로 부상하자, 홍국영 일파에 대한 비판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연암을 걱정한 그의 친구들이 연암을 피신시킨 것이다. 1780년 홍국영이 실각하자,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팔촌 형이자 영조의 사위인 금성위 박명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하기 위한 특별사행의 정사로 임명된다, 연암은 박명원의 권유에 따라 정사의 개인 수행원인 자제군관 자격으로 동참하게 된다. 사절단 일행은 6월 하순 압록강을 건너 8월 초 북경에 도착하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으나, 축하 행사가 열하에서 열리게 되어 조선 사신이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열하 여행을 하게 된다. 축하 행사를 마치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 하순 서울에 도착한 연암은 중국 여행 중에 써 두었던 원고를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하여 약 3년 동안 <열하일기>라는 제목의 연행록을 집필한다. 그의 자유로운 문체는 당시 문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정조의 문체반정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1786년 쉰 살의 연암은 음보(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는 일)로 선공감 감역에 임명되면서 벼슬을 시작한다. 그 후로 연암은 경상남도 안의 현감, 충청도 면천 군수, 강원도 양양 부사 등의 지방 수령을 역임한다. 1805년 향년 69세로 서거하였다. 장손 박규수가 출세한 덕분에 후일 좌천성에 추증 되었으며 문도라는 시호를 받았다.

 

연암의 생애에서, 20대에 운동가였다가 50대에 기성 세대가 되는 지금의 대한민국 성인의 행태가 그대로 보인다. 실제로 연암은 양반 사회의 비리를 몸소 체험하면서 관직 진출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꿀꿀한’ 20대를 보냈고, 40대에 세기의 역작 <열하일기>를 내놓았지만, 50대에는 벼슬길에 올랐다. 사후 그의 장손 박규수의 출세로 연암은 1864(고종 1) 1월 증직으로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1865(고종 2)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吏曹參判)에 가증되었고 1873(고종 12) 12월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1884(고종 21) 관직을 추탈당했다가 1910년 다시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는 등 더불어 출세하기도 했다.

 

연암의 역작 <열하일기>의 직접 동기는 1780년 박지원이 그의 삼종형인 박명원의 건륭 추수사절을 비공식 수행한 일기체 연행록이다. 그러나 한낱 연행기록에 그치지 않고, 일기체의 기행문 속에 세상사의 온갖 이야기의 백과사전식 내용과 지식, 사상들이 종횡 무진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범의 꾸중(호질)에서는 해학과 풍자를, ‘기상새설넉자에 얽힌 포복절도할 정도의 유머를, ‘큰 울음터에서는 칠정의 감성을 맛 볼 수 있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 정치, 사상, 문학, 제도 등 제 반에 걸친 자유의 추구했다 중국에서 만난 벽돌 굽기, 구들 놓기, 가마 세우기, 말 치기, 말 몰기, 목축, 수레, 도로 내기 등 구체적인 이용후생을 주장한다. 연암의 이용후생은 우리나라 근현대 물신주의와는 다르고, 인간을 기계 취급했다는 한계를 가진 테일러리즘과는 다르다. 연암은 조선의 이용후생의 낙후성을 비판하면서도 끝내 정신적인 가치를 버리지 않았다.

 

3 700리 연암의 행장은 붓 두 자루에, 벼루 하나, 먹 하나, 공책 네 권에 이정표가 전부였다고 한다. <열하일기> 전편에 걸쳐 그의 노복, 창대와 장복에 대한 자상한 배려와 만리타국인 중국에서 만난 친구에게 베푼 우정, 고국의 친구를 그리는 정으로 연암의 뜨거운 인간애를 엿볼 수 있다. 여행 중 견문했던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이해는 세밀하며, 새로움에 대한 탐구욕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결국 연암은 조선 시대의 유교적 인습을 논하기는 했지만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해 투쟁과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허례허식에 물들고 권위적인 양반사회를 질타하긴 했지만 신분과 계급의 해방까지 주장하지는 않았다. 문필가, 사상가인 연암의 모습에서 운동가의 면모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열하일기>를 읽는 내내 포복절도할 정도의 유머와, 해학과 풍자, 배움과 성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행동주의자인 나는 백범 김구나 안중근과 같은 열사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실천가가 주는 뜨거운 감동을 느끼지는 못 하였다. 연암 박지원 사후, 삼대가 지나도 연암의 자손들이 연암의 저서를 출간하지 못할 정도의 조선의 폐쇄성을 고려해 볼 때,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실천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연암이었다면, 내가 타고난 엄친아, 건강한 체력, 천재적인 혜안과 문장력을 겸비한 연암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망명을 해서라도 나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겼을 것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연암 박지원 약전

 

P30 젊은 날의 특이한 사건이라면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 연암처럼 양기충만한 인물이, 그것도 한참 팔팔할 나이에 웬 우울증이냐고? 그게 참 모를 일이다. 좌우지간 어느 날 우울증이 그의 청춘을 덮쳤고, 그때부터 그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꿀꿀한시간을 보내야 했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 연암은 거리로 나섰다. 거기서 분뇨 장수, 이야기꾼, 도사, 건달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그들의 기이한 인생역전에 귀를 기울였고, 그러면서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 <방경각외전>이다. 그는 당시 선비들의 무능과 부패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오죽하면 <양반전>같은 과격한 작품을 썼겠는가. 그런 썩어빠진 양반들에 비하면, 비록 신분이 미천하고 험궂은 일에 종사하긴 하지만, ‘거리의 친구들은 훨씬 기상이 드높았다. 그때 이후 연암은 뜻만 맞으면 이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질병이 가져다 준 멋진 선물!

더 결정적으로 그 때 이후 연암은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탈주해 버렸다. 물론 그가 과거를 포기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개입했을 터이다. 당쟁으로 얼룩진 정국, 아수라장으로 변한 시험장, 절친한 친구들의 정치적 희생 등등.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결정적인 원이라 하기는 뭣하다. 굳이 따지자면, 체질적으로 격식에 갇히는 삶을 지독히도 싫어한 탓이라고 할 밖엔. 남들은 수천 수를 짓는 한시를 그는 고작 50여 수밖에 남기지 않을 걸 봐도 알만하지 않은가.

 

나는 2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연암과 함께 열하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면서 먼저 든 생각은 나도 나의 이사 여정을 글로 남겨 놓았더라면 참 볼 만했겠다 싶었다. 어릴 적부터 짐 싸고 푸는 것이 익숙하리만치 이사를 자주 다니곤 했다. 엄마가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 마다 민망해했을 정도로. 덕분에 전학도 자주 다니고, 오랜 친구도 많이 잃었지만 어느 고장의 어느 풍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탁월한 적응력을 얻었다. 이는 역마살이 가져다 준 귀한 선물! 올해로 결혼 10년 차 역마살은 여전히 유효한지 결혼을 하고도 이사를 일곱 번이나 했다. 주소지 포함 주민등록등본을 뗄라치면 두 장이 된다.     

 

P31 북학파의 핵심 멤버인 박제가와 이덕무, 천재 과학자이자 음악가인 홍대용, 괴짜 발명꾼 정철조, 조선 최고의 창검술을 자랑한 백동수 등이 그의 자랑스러운 친구들이었다.

삼십대 중반 즈음, 연암은 식구들을 처가로 보낸 뒤 전의감동에 혼자 기거하면서 이 모임을 이끌었다. 연암과 그의 친구들은 매일 밤 모여 한곳에서 풍류를, 다른 한 면에선 명상을, 또 한쪽에선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모임을 이어갔다. 북벌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북학의 기치를 내건 것도, 고문의 매너리즘을 벗어나 지금 여기의 살아 숨쉬는 글쓰기를 실험한 것도 다 이 향연들의 산물이었다. 벗이 있었기에 진정 행복했고, 벗이 있었기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들을 사로잡은 윤리적 강령은 오직 하나, “벗이란 또 다른 .”

 

도강록

 

P62 나는 우리 서울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 때문인가. 금강산은 그 골짜기가 1 2천 봉이나 된다.

기이하면서도 험준하고 웅장하면서도 깊지 않은 곳이 없다. 그 모습이 마치 짐승이 끄는 듯 날아오르는 듯 신선은 솟구쳐 오르고 부처는 가부좌를 튼 듯하다. 어둑하면서도 빽빽하여 아득하면서도 아스라한 것이 귀신의 굴로 들어가는 듯하다. 나는 예전에 신원발과 함께 단발령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깊고 푸른 가을, 하늘에 석양이 비낄 무렵이었다. 하지만, 하늘에 닿을 듯한 빼어난 빛과 몸에서 솟아나는 윤기 나는 자태는 없었다.

하여, 금강산을 위하여 긴 탄식을 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상류에서 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두미강 어귀에 이르러 서쪽으로 한양의 삼각산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어루만지며 솟아난 푸른 빛은 희미한 남기와 옅은 노을에 밝고 아리따운 모습이 환히 드러났다. 또 남한 산성 남문에 앉아서 북으로 한양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물 위에 꽃이 핀 듯 거울 속에 달이 비친 듯 하였다. 어떤 사람은 빛과 바람이 허공에 떠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왕기이다. 왕기는 왕기이다. 우리 서울은 억만 년토록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형세를 갖추고 있다. 그 신령스러우면서도 밝은 기운이 여타의 산과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P67 그러나 이들이 직접 연경에 들어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 포의 권리를 다시 의주 장사꾼들에게 넘겨주어 물건으로 바꾸어 오게 한다. 한이나 임 같은 장사꾼들은 해마다 연경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저쪽 장사꾼들과 협잡하여 물건값을 손아귀에 넣고 마구 주무른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물건의 값이 날로 오르는 것은 실로 이 무리들 때문이다. 그런데도 온 나라가 도무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역관만 나무란다. 역관들도 이들 장사꾼에게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P69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 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벌써 이런 그릇된 마음이 일다니. 대체 왜? 아마도 내 견문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부처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게를 두루 살핀다면 무엇이든 다 평등해 보일 테지. 모든 게 평등하면 시기와 부러움이란 절로 없어질 테고.’

 

P71 만일 그가 풋내기라든가 중국말이 시원찮다 든지 하면, 그자들과 다투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달라는 대로 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올해에 이렇게 하면 내년에는 벌써 전례가 된다. 그러니 반드시 다투어야만 한다. 사신들은 이러한 사리를 모르고 그저 책문에 들어가기에만 급급해서 늘상 역관을 재촉한다. 그러면 역관은 마두를 재촉하게 되어 그 폐단의 유래가 오래되었다.

 

중국에 출장 갔을 때, 중국말을 못해서 말 한마디 못하고 바가지를 뒤집어 썼던 경험이 떠올랐다. 미국 출장에서는 바가지를 써 본적이 없었는데 중국은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불러서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P77 주변의 진열상태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 가지도 구차스럽게 대충 해놓은 법이 없고, 물건 하나도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것이 없다. 심지어 소 외양간이나 돼지 우리까지 모두 법도 있게 깔끔하다. 땔감 쌓아놓은 것이나 두엄더미까지도 그림처럼 곱다. !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도리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중국에서 이용’, ‘후생’, ‘정덕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가.

 

P83 중국인들에게는 이른바 외기강의두 가지가 있다. 처음 공부를 할 때 음과 뜻을 함께 배우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그저 사서의 문장을 입으로 외기만 한다. 외는 것이 능숙해 지면 그 다음에 스승에게 뜻을 배우는데 이를 강의라 한다. 설령 죽을 때까지 스승에게 강의를 듣지 못한다 해도 입으로 된 문장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그러고 보면, 세계 여러 나라 말 중에서도 중국말이 가장 쉽다는 건 나름 일리 있는 말이다.

 

외기강의는 어린이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으로 유용하다. 어린 아이들이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이 노출함으로써 새로운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연스러운 잦은 노출로 인한 외기없이 강의를 먼저 한다면 아이들은 도망갈 것이다.

 

P88 벽돌을 쌓는 방법은 한 개는 세로, 한 개는 가로로 놓아서 저절로 감 이와 같은 괘 모양이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틈서리에는 석회를 종잇장처럼 얇게 발라 붙인다. 벽돌이 겨우 붙을 정도라서 그 흔적이 실밥처럼 가늘다.

 

P90 우리나라의 기와 이는 법은 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붕에는 진흙을 두툼하게 펴놓기 때문에 위가 무거워진다. 담벽은 벽돌로 쌓지 않기 때문에 네 기둥은 의지할 때가 없어서 아래는 텅 비게 된다. 기왓장은 너무 커서 지나치게 휘어지고, 휘어지기 때문에 빈 공간이 저절로 많아진다. 그러니 진흙으로 메우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진흙이 무겁게 내리누르니 기둥이 휘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지붕의 기와가 무거워서 기둥이 휘어진다면 기둥과 벽을 튼튼히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태풍 때문에 시골 부모님 댁 지붕이 날아갔던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지붕이 가볍다면 태풍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P94 그런데 우리나라 선비들은 단지 지금의 평양만 안다. 기자가 평양에 도읍했다 하면 이를 믿고 평양에 정전이 있다 하면 이를 믿으며, 평양에 기자묘가 있다 하면 이를 믿는다. 그러나 만일 봉황성이 바로 평양이라고 하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요동에도 또 하나의 평양이 있었다고 하면 이는 해괴한 말이라고 꾸짖을 것이다. 그들은 본시 요동은 조선의 옛 땅이며 숙신 에, 맥 등 동이의 여러 나라가 모두 위만의 조선에 예속되었던 것을 알지 못한다. 또 오라, 영고탑, 후춘 등지가 고구려의 옛 땅이라는 것을 모른다. ! 후세 사람들이 땅의 경계를 자세히 밝히지 않고 제멋대로 한사군을 죄다 압록강 안쪽에 몰아넣어 견강부회하면서 구차하게 배치해 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 안에서 패수를 찾으니, 어떤 사람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대동강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옛 땅은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P113 우리나라의 기와 가마는 옆으로 길게 눕혀 놓은 모양이라서 가마라고 할 수 도 없다. 애당초 가마를 만드는 벽돌이 없기 때문에 나무를 세워 흙으로 바르고 나서 큰 소나무 장작으로 이를 말리는데, 그 비용이 벌써 수월찮다. 아궁이가 길기만 하고 높지 않기 때문에 불꽃이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불꽃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므로 불기운은 힘이 없다. 불기운이 힘이 없으니 반드시 소나무 장작을 떼서 불꽃을 세게 하기 때문에 불길이 고르지 못하다. 불꽃이 고르지 못하기 대문에 불꽃과 가까운 곳에 놓인 기와는 언제나 이지러지기 쉽고 먼 데 놓인 것은 잘 구워지지 않는다.

도자기를 굽든 옹기를 굽든 간에 모든 가마의 모양새가 다 이 모양이다. 소나무를 떼는 방법도 같으니, 송진의 불길이 다른 나무보다 훨씬 세다. 소나무는 한번 베면 새 움이 돋아나지 않는 나무이므로, 한 번 옹기장이를 만나면 사방의 산이 모두 민둥산이 된다. 백 년 동안 기른 것을 하루 아침에 다 없애버리고는 이내 다시 새처럼 흩어져서 소나무를 찾아서 가 버린다. 기와 굽는 방법 한 가지가 잘못된 탓에 한 나라의 좋은 제목이 날로 줄어들고, 질그릇 가게 역시 날로 곤궁해지는 것이다.

 

P116 요업은 금할 수 없는 일이고 소나무는 한정된 물건인 게 현실이라면, 먼저 가마 만드는 방식을 고치는 게 제일 좋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모두에게 이롭다.

 

P138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사람들은 다만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의 감정이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야.

 

성경잡지

 

P163 대개 그림을 모르면서 시를 아는 이가 없는 법이다. 그림에는 농담의 구별이 있으며, 또 원근의 차이가 있다. 이제 이 탑을 바라보니 더욱 분명하게 알겠다. 옛사람이 시를 지을 때 반드시 그림 그리는 법을 터득했으리라는 것을. 대개 성의 멀고 가까움을 탑의 길고 짧음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연암의 그림과 시의 연결성에 대한 해석은 그림책의 그림과 글의 관계에서도 유효하다. 미국의 그림책 작가 버버러 쿠니는 그림책 속 글과 그림의 관계를 목걸이에 비유하였다. ‘그림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보석이 될 수 있으나, 이들을 엮는 실의 역할을 하는 글이 없다면 서로 전혀 연결되지 못할 것이다.’

 

P184 전사가 제가 비록 몸은 시장 터에 있더라도 마음만은 늘 배움터에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이렇게 선생을 뵈오니, 마치 백 명의 벗을 얻은 듯합니다. 어찌 눈곱만큼이라도 선생을 속여서 일평생 마음을 무겁게 하겠습니까.”

 

전사의 이와 같은 고백으로 나의 마음이 짠해 온다. 나도 오랜 기간 몸은 월급 받는 노예로 살았지만 마음만은 늘 배움터에 있었다.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을 만나고 마치 백 명의 스승을 얻은 듯 기뻤다.

 

P190 연암 지난밤에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은 터라, 오늘밤까지 폐를 끼치고 싶진 않은데요.”

비치 저 산에 좋은 제목이 있다면 목수가 자로 잴 것이요, 멀리서 훨훨 나는 백로가 찾아왔다면 서로 싫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부터 예정된 약속이 있어서 열두 행와를 지은 게 아니요, 하물며 사해가 모두 형제인데 무슨 폐가 된단 말입니까?”

 

미국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그 당시 냉장고가 있었던 그에게 소주 댓 병 두 병을 맡겨두었다. 소주병을 처음 열었던 날, 밤을 새워 토론했다. 박노해와 장정일에 대해서! 하룻밤으로 모자라 사흘 밤 내리 토론했던 그 날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P196 다른 사람들도 크게 감탄해 마지 않는다. 한 잔 기울일 때마다 한 장씩 써 내매 필치가 한껏 호방해진다. 아래 놓인 몇 장에는 먹으로 고송과 괴석을 그리자, 사람들이 더욱 환호하며 서로 다투어 종이와 붓을 내놓고 빙 둘러서서 써 달라고 조른다.

 

아름다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이 감탄해 마지 않았던 연암의 필치는 최고의 가치로 그들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P200 이귀몽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늘 끝, 땅 끝만큼 먼 곳에 와서 쪼잔 하게 이문이나 다루는 동안, 늙은 어머니께선 저물 녘 문지방에 기대어 하염없이 저를 기다리시고 젊은 아내는 홀로 방을 지키고 있지요. 편지마저 오랫동안 끊어지고 꾀꼬리 소리에 꿈조차 꾸지 않으니, 사람으로서 어찌 머리가 하얗게 세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달 밝고, 바람 맑을 때나 잎이 지고 꽃이 피는 때면 애끓는 정을 주체하기 어렵지요.”

 

사람들은 젊은 시절 유학을 했다고 하면,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 혹시 문란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나 깨나 공부할 때나 나를 걱정하고 있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에 스스로 자신을 단속하며 생활하게 된다.  

 

P202 이귀몽 또 우리들은 모두 벗을 사귀는 일에 지극한 정성을 다한답니다. 옛 글에도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 될 이가 있다 하였고, 또 두 사람의 마음이 합하면 굳은 쇠라도 끊을 수 있다 하였으니,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한평생 벗이 없다면 아무런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저 입고 먹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 사귀는 재미를 모른답니다. 세상에는 생김새가 밉살스럽고 말씨가 썰렁한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옷가지며 밥 사발에만 눈을 줄 뿐 벗을 사귀는 즐거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이귀몽 우리 나라에서는 벼슬아치들은 장사치들과 공장이들과는 혼인을 금합니다. 사환의 기풍을 말게 하기 위해서죠. 또한 도를 높이고 이를 낮게 보는데, 이는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누르기 위함이지요. 하여, 우리들은 대대로 장사꾼 집안일 까닭에 사대부 가문과는 혼인할 수 없답니다. 돈이나 쌀을 바치면 겨우 생원 정도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또한 항공을 거쳐 거인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기업이 대학을 사는 지금의 우리 현실과는 반대이다. 이에 도를 맞추는 대한민국의 지금!

 

P203 이귀몽 사류에도 세 등급이 있습니다. 상등은 벼슬아치가 되어 관록을 먹는 것이요. 중등은 학관을 열어 생도를 모집하는 것이요, 하등은 염치를 무릎 쓰고 남에게 빌붙는 축들입니다. 속담에 남에게 빌붙어 사니 면목이 서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당장 살 길이 막막하니 도리가 없지요.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면 주저주저하다가 마침내 볼썽사나운 꼴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한때 고담준론만 하던 선비가 천하의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거지요. 속담에 천하의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거지요. 속담에 남에게 구하는 것이 내 스스로 구함만 같지 못하다고 했듯이, 장사를 하면 적어도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벼슬아치가 되지 못하고, 학관을 열지 못한 선비들은 천하에 애물단지가 되어 장사라도 해야 된다는 말이 되는데 이도 저도 되지 못한 선비들이 그 좋은 두뇌로 고담준론은 그만 두고, 수레를 연구하고, 벽돌과 기와를 연구하고, 또 가마를 연구했다면 조선의 평민들이 가난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P206 “이 다음부터는 처음 보는 물건이 있거든 졸 때건 식사를 할 때건 무조건 알아야 한다. 알았느냐?”

 

연암의 호기심, 밥과 잠을 넘어서는 그의 지적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P211 이 땅에서 나는 벼는 기름지고 향기로워 밥을 지으면 윤기가 좔좔 흐른다. 그런데 백성들이 늘상 이런 밥을 먹어 버릇한다면, 힘줄이 풀리고 뼈가 연해져서 용맹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차라리 수수떡과 거친 밥을 먹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주림을 참고 혈기를 돋우어 구복의 사치를 잊어버리게 함만 못하리라. 천 리의 기름진 땅을 버릴지언정 백성들로 하여금 척박한 땅에서 정의롭게 살도록 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던 데에는 그런 깊은 뜻이 있으리라.

 

나는 이 말에는 반대한다. 백성 나름이다. 기름지고 향기로운 밥을 먹어 힘이 없어질 백성이라면 거친 밥을 먹게 한들 그가 무엇을 해낼 것인가. 거친 밥을 먹어 주림을 참고 혈기를 돋우게 될 백성이라면 기름지고 향기로운 밥을 먹는다면 그는 아름다운 문화를 이루어낼 것이다.

 

일신수필

 

P232 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학문에 대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평생토록 뜻을 다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학문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성인이 태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천하가 작게 보였다고 말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가 시방세계를 보았다고 하면 허황하다고 배척할 것이며 태서 사람이 큰 배를 타고 지구 밖을 돌았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버럭 화를 낼 것이다.

 

P237 일류 선비, 이류 선비, 삼류 선비

상사, 중사, 하사는 선비의 등급을 나누는 말로 <노자>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선비 중에서 덕망을 갖추고 세상의 모범이 되는 최고의 선비를 상사라고 하며, 그 아래로 중사와 하사가 위치한다. 그러나 박지원은 세상의 일반적인 등급을 거꾸로 뒤집어서 표현하고 있다.

박지원이 말하는 상사는 청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도 없이 그들의 머리 모양만을 보고 문화적 수준이 형편없는 오랑캐라고 치부하는 계층이다. 그들의 논법은 언뜻 명쾌해 보이지만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다. 머리를 깎으면 오랑캐요, 오랑캐는 짐승과 같은 수준이다. 따라서 머리를 깎은 청나라는 짐승과 같은 오랑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상사들의 말을 사람들은 깍듯이 떠받든다.

중사는 상사보다는 논리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성곽이나 궁실 같은 것들을 직접 보기도 했고, 청나라의 풍속을 살펴보기도 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중국의 모든 문화는 과거 한족들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이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청나라가 중국 땅을 점거한 이래 중국에는 과거의 화려한 문화가 사라졌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모습에서 당시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북벌론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박지원은 세상의 존경을 받는 최고 지식인인 상사와 중사를 통해서 당시 조선의 중국 인식을 비판하고 그들을 청나라의 표면적인 모습만을 보고 오랑캐라고 폄하한다. 청나라 문명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마음도, 그럴 능력도 없다. 이렇게 세상의 통념을 뒤집어서 자신의 주장을 명쾌하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대목에서 박지원의 역설의 빛을 발한다.

 

<노자>에서 선비의 등급을 세 종류로 구분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출신 대학으로 구분 짓는 것 같다. 이른바 서울대, 연대, 고대를 나오면 상사,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오면 중사, 지방의 4년제 대학을 나오면 하사가 되는 것이다. 이는 연암의 역설적인 논리도 적용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구분이다. 지난 수년간 나는 서울의 국립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현대 대한민국 화가 중 홍대 출신이 아닌 화가의 작품을 본 경우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P240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 한다. 더구나 삼대 이후의 성스럽고 현명한 제왕들과 한, , , 명 등 여러 왕조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원칙이야 더 할 나위도 없다.

 

P247 우리나라도 수레가 없지는 않으나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않고 바퀴 자국이 한 궤도를 그리지 못하니, 수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우리나라는 마을이 험준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았을 뿐이다. 수레가 다니면 길이야 저절로 닦일 터. 어찌하여 길거리의 좁음과 산길의 험준함만 걱정한단 말인가. <중용>에 나오는 바,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이란 말은, 수레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못 가는 데가 없다는 뜻이다.

 

P250 사방이 수 천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 나라안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양반들 잘못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끝내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운행하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조건글만 읽는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니, 이런 공부가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아아, 슬프다. 황제가 처음 수레를 만들어 헌원씨라고 불린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성인들이 힘써 생각하고 관찰하고 손수 만들어 다듬었고 또 황제 때의 유명한 공장인 수와 같은 장인이 몇 차례나 출현했으며, 상앙, 이사 같은 이들에 의해 그 제도가 통일되었다.

실로 학술에 뛰어난 관리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긴요하게 실행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이는 진실로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이롭게 하고, 나라 경영에 크게 보탬이 되는 도구이다.

 

P251 밭에 물을 대는 수레는 용미차, 용골차, 항승차, 옥형차 등으로 불리며, 불을 끄는 수레로는 홍홉과 학음 등의 제도가 있고, 싸움에 쓰는 수레로는 포차, 충차, 화차 등이 있다. 모두 서양의 <기기도>와 강희제가 지은 <경직도>에 실려 있다. 그 글은 <천공개물>, <농정전서>에 있다. 뜻있는 자가 이 책을 구해 연구한다면 가난에 찌들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우리나라 백성들을 얼마쯤은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P282 의주의 말몰이꾼들은 태반이 불량한 치들이다. 오로지 연경에 출입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아 해마다 연경 드나들기를 저희 집 뜰을 밟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데, 의주 관아에서 이들에게 주는 급료는 한 사람 당 백지 60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백여 명에 달하는 말몰이꾼들은 길에서 도적질을 하지 않고는 연경을 드나들 수가 없다.

 

P310 벼슬살이도 이와 같아서, 위로 올라갈 때엔 한 계단 반 계단이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더러는 남의 등을 떠밀어 앞을 다투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높은 자리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땐 외롭고 위태로워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 길 낭떠러지라 더위잡고 내려오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법이다. 이는 오랜 세월 두루 미치는 이치다.

 

관내정사

 

P46 소년들의 시의 의미

 

천 년의 역사 내내 주왕의 역적이 되었으니

강태공은 백이를 살려 보내고도

어찌하여 역적을 비호했단 소리 듣지 않았는지

오늘날 춘추의 의리 그대로라면

어찌 오랑캐놈 역적이라 하지 않는가

 

고사리 먹어본들 배부를 수 없어

백이도 결국에는 굶어 죽었지

꿀물은 술보다 훨씬 달콤해

꿀물 먹다 죽는다면 그 아니 원통하리

 

소년들의 시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려면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백이, 숙제에 관한 고사를 알아야 한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들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인 숙제에게 왕위를 잇게 할 생각이었지만,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좇아야 한다며 도망가 숨어버렸다. 그러자 백이 또한 숙제를 좇아 숨어버려 백성들은 하는 수 없이 둘째 아들을 왕으로 삼았다. 그 후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문왕이 늙은이를 잘 돌본다는 말을 듣고 주나라로 갔다. 당시 주나라는 문왕이 죽고 그 뒤를 이은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킨 상황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이 탄 말의 고삐를 붙잡고 이렇게 충고했다. “부왕이 돌아가신 후 아직 장례도 끝나기 전에 무기를 손에 잡으니 효라고 할 수 있으리요. 신하로써 임금을 죽이려 하니 인이라 할 수 있으리까?” 옆에 있던 신하들은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했으나 강태공이 이들은 의로운 사람이라며 풀어 주었다. 무왕은 마침내 은나라를 평정하여 멸망시켰고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

이 사건은 동아시아 유학사의 큰 딜레마였다. 백이, 숙제를 추앙하자니 무왕의 거사를 비난해야 하고, 무왕의 정당성을 인정하자니 백이 숙제의 행위를 깎아 내려야 했던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소년들의 시도 그 점을 염두 해 둔 것이다.

무왕의 거사는 분명 효와 인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만약 무왕이 폭군 주왕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무왕이 오히려 역적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즉 정당하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이겼기 때문에 정당성을 얻었을 뿐이라는 것. 또 무왕의 거사가 정당하다면 그 진군을 만류한 백이와 숙제는 왕의 뜻을 거스른 역적이 된다. 그런데도 강태공은 그들을 살려 보냈다. 만약 춘추의 의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강태공 역시 역적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뒤집어 봄으로써 춘추의 의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P56 고려보에 도달해 보니 지붕을 어엉으로 엮은 초가집들이라 무척이나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묻지 않고도 이곳이 고려보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병자호란 발발 이듬해인 정축년에 포로로 끌려온 이들이 마을을 이룬 것이다.

이전에는 사신 일행이 당도했을 때 하인배들이 술이나 음식을 사먹으면 값을 받지 않는 일도 더러 있었으며, 아낙네들도 내외를 하지 않았고 고국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짓는 이도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점차 잇속을 챙기려는 하인배들이 생겨나 술과 음식을 먹고도 값을 치르지 않으며, 그릇이며 의복까지 토색하기도 하였다. 주인이 고국의 옛정을 생각하여 까다롭게 굴지 않으면 틈을 노려 도둑질을 일삼곤 하였다. 이런 탓에 고려보 주민들은 차츰 고국 사람들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사신 일행을 만나면 술과 음식을 감추어 두고 잘 팔려고 하지 않았고 사정사정해야만 겨우 팔되 바가지를 씌우거나 선불을 요구했다.

그럴수록 하인들은 온갖 속임수를 동원해 사기를 침으로써 분풀이를 하고 그러다 마침내 서로 원수를 대하듯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면 일제히 소리 높여, “이놈들아, 네놈들 할애비가 오셨거늘 어찌 나와서 절을 하지 않느냐고 욕하면 고려보 사람들 역시 우리들을 향해 맞받아친다. 이런 지경에 우리 사신 일행은 이곳 고려보 풍속이 도리어 틀려먹었다고 욕을 해대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오히려 속고 속이고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알고 지낸 재미동포 분들 중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 사람들을 피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P59 “후의는 고맙습니다만 그건 좀 곤란합니다. 나로 말하면 외국 사람인데다 한번 가면 올 기약이 없습니다. 하여, 오늘 맺은 인연이 훗날 고통스러운 그리움이 될 뿐이니 이는 또 업보가 될 뿐입니다.”

주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양아비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끝내 사양했다. 만일 수양딸을 삼으면 정표로 귀국하는 길에 연경에서 좋은 물건을 사다 주어야 하는데, 이는 마두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한다. 참으로 괴이하고도 우스운 행태라 하겠다.

 

범의 꾸중(호질)

 

P68 대개 남의 것을 취하는 것을 도라 하고 생명을 헤치고 남에게 못된 짓 하는 것을 적이라 한다. 너희들은 불철주야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라리며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심지어는 돈을 형이라 부르질 않나 장수가 되려고 제 아내를 죽이질 않나 이러고도 인륜을 논할 자격이 있느냐.

 

P70 이제는 부드러운 털을 빨아 아교를 붙여 날까지 만들었다. 형체는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 치도 되지 않는데 오징어 거품에다 적셨다가 이리저리 치고 찌른다. 굽기는 세모 창 같고, 날카롭기는 작은 창 같고 갈라지기는 가지 창 같고 곧기는 화살 같고 팽팽하기는 활 같다. 이 병기가 한번 움직이면 온갖 귀신들이 울부짖는다 하니 이처럼 잔혹하게 서로를 잡아먹는 것이 네놈들보다 더할 수가 있겠느냐.”

 

P71 지금 청나라가 세상을 다스린 지 겨우 4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통치자들은 모두 문무를 겸비하고 장수를 누렸다. 지난 백 년은 태평스런 시대보다 천하가 두루 편안하고 조용했다. 이런 상황은 한, 당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이렇듯 평화를 유지하면서 치적을 이루어가는 뜻을 살펴보니 이 또한 하늘이 내린 제왕이 아닌가 싶다. 옛날 누군가가 일찍이 하늘이 순순히 명령한다는 말씀에 의문을 느껴 맹자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맹자께서는 분명히 하늘의 뜻을 체득하셔서 말씀하셨다.

하늘은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과 일로써 보여 주신다.”

나는 언젠가 이 대목을 읽다가 강한 의혹이 들어, 감히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행동과 말로써 보여 주신다면 오랑캐가 중화의 문물을 변개시키는 것은 엄청난 치욕이다. 그러니 저 백성들의 원통함이 어떠하겠는가. 또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 덕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 그렇다면 귀신들은 대체 어떤 냄새를 찾아 오겠는가.

그런 탓에 사람이 처한 위치를 따라 본다면, 중화의 오랑캐는 명확히 다르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은나라의 우관이든 주나라의 면류관이든 다 나름의 때를 따라 마련된 것일 뿐이다. 유독 청나라 사람의 홍모에 대해서만 꼭 의심을 던질 이유가 없다. 이에 그동안 하늘이 정한다는 입장과 사람들의 뜻이 우선이라는 견해가 유행하였고 하늘과 사람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원리는 도리어 후퇴해서 기수의 형세에 따르게 되었다. 현실 세계를 엣 성현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부합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곧장 천지의 기수가 이렇구나 한다. 슬프다! 이것이 정말 기수의 문제란 말인가.

 

P75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다. 더 정확히는 범의 말이다. 범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야말로 이 작품을 천고의 기이한 문장으로 만들어 준다. 잘 음미해 보면, 범의 말은 단지 북곽선생의 위선이나 하위의식을 꾸짖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문명의 훨씬 근원적인 것을 향하고 있다. 핵심을 간추리면, 인성과 물성은 하나라는 것. , 인간과 동물 사이의 근본적 위계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물들을 착취함과 동시에 그 더럽고 비겁한 짓거리를 온갖 도덕적 명분을 동원하여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범은 인간문명의 온갖 잔혹하고 이기적인 속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호질>이 이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문명이야말로 동물의 무자비한 착취와 자연에 대한 약탈에 근거하고 있는 까닭이다.

 

P106 나는 한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댄 채 탄식하였다. “이 세상에 진실로 한 사람의 지기만 만나도 아쉬움이 없으리라.” 아아, 사람들은 늘 스스로를 보고자 하나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즉 바보나 미치광이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을 돌아볼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른 존재와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워진다. 성인은 이 도를 운용하셨기에 세상을 버리고도 번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움이 없었다.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하였고, 노자도 역시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면 나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로다하였다.

 

P108 “아마 우물과 창고와 평상과 거문고가 벌여 있고, 바라볼 때는 앞에 계시더니 별안간 뒤에 계실 것이며, 또 물고기 가죽이나 표범 무늬처럼 변신이 잦았을 터이니, 누가 그 참된 모습을 알 수 있었으리오.”

그렇기에 선생님이 계신데 회가 감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안회야말로 공자의 유일한 지기였을 것이다.

 

P119 이 사람들은 역서를 잘 꾸미고 좀 색다른 방식으로 집을 짓고 산다. 그들은 하느님을 밝게 섬기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사람이 죽고 사는 큰일에 대비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저들로써는 배움의 근본이치를 찾아냈다고 떠들어 대고 있으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뜻이 너무 고원하고 이론이 교묘한 데로 쏠리어, 하늘을 빙자해 사람을 속이는 죄를 범했으니 윤리 질서를 헤치는 구렁에 빠지고 만 것이다.

 

P124 축대 위의 황금은 없어졌건만 기다리던 국사는 오지 않는구나. 세상에는 원수가 없는데도 원수를 갚으려는 일은 그칠 때가 없으니 축대 위에 놓인 황금도 세상에서 사라질 수가 없구나. 나는 원수를 갚은 역사적 사건 가운데 가장 큼직한 사건을 끄집어내어 천하에 황금을 많이 쌓아 놓은 자들에게 외쳐 고하련다.

진나라 때에 황금으로 제나라 장수를 속여 적국인 제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원수를 갚은 공로는 몽염 장군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런데 당세의 가장 뛰어난 지력가 이사는 제후를 위하여 몽염에게 다시 복수를 하였으니 천하에 복수하는 자들은 이에 이르러 좀 멈칫하였다. 얼마 뒤 조고는 이사를 죽였고 자영은 고조를 죽였으며 항우는 자영을 죽였고 패공은 항우를 죽였는데 패공이 항우를 죽일 때 황금 4만 냥이 들었다. 그러나 서로 원수를 갚으면서 황금이 돌고 돌았을 테니 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금덩이가 어디에고 그대로 있으리라. 그걸 어찌 알 수 있는가.

 

P125 옛날에 도적 세 명이 힘을 합쳐 한 무덤을 도굴하여 금을 훔쳤다. 저희들끼리 오늘은 피곤한데다 돈도 많이 벌었으니 술 한잔 해야 하지 않겠어?” 하였다. 그 중 한 명이 선뜻 일어나 술을 사러 가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다! 금을 셋이 나누지 않고 내가 독차지 할 수 있겠지.’ 이윽고 그 자가 술에 독약을 타 가지고 들어오자 남아있던 도적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때려죽였다. 그들은 먼저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고 금을 둘이 나누려고 했지만 둘 다 무덤 옆에서 죽고 말았다. , 슬프도다. 이 금은 반드시 길가를 굴러다니다가 또 다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연히 그 금을 얻은 자는 가만히 하늘에 감사를 드렸으리라. 그렇지만 이 금이 남의 무덤에서 훔친 물건인지, 독약을 먹은 자의 유물인지, 또 이 금 때문에 몇 천 몇 백 명이 독살되었는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어인 까닭인가?

 

P137 답안 교열한 것을 보니 옛 사람의 글을 비평하라는 논제가 있고 밑에는 본방이라 하여 직함과 성명을 갖춘 몇 줄의 비평문이 있다. 또 그 아래 여러 고시관의 성명이 쭉 기록되어 있다. 평점란은 모두 붉은 글자로 썼는데, 칸 하나당 한 글자씩 적었으며 상, , 하 혹은 차, , 경 등의 차례를 매기지 않았다. 비록 낙제한 시험지라도 품평이 친절하고 상세하여 응시자가 낙제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 정성스러운 품평에는 스승이 제자를 일깨우고 가르치는 뜻이 담겨 있었다. 과거를 치르는 자가 유감이 없도록 간명하고 엄격하여 고시하는 절차는 자세하고도 주의 깊었다. 과연 큰 나라의 시험 제도답다.

 

막북행정록

 

P153 인간사 중에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서 생이별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하나는 살고 다른 하나는 죽는 그 순간의 이별은 굳이 괴로움이라 할 것도 못 된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애로운 아버지와 효성스러운 아들, 신의 있는 남편과 올곧은 아내, 의로운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 피로 맺은 벗과 마음을 주고받은 친구들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유언을 받들거나 또는 궤석에 기대어 명을 받을 때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뒷일을 당부하는 것은 천하의 부자, 부부, 군신, 붕우가 똑같이 겪는 바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자애로움과 효성, 올곧음과 믿음, 의로움과 충성, 피로 맺은 우정과 진실한 마음 등은 한결같다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한가지로 겪는 바요, 사람마다 한결같이 솟아나는 정이라면 이것은 천하의 순리일 것이다.

 

P177 대저 우리나라의 말 다루는 방법은 한마디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 옷소매는 넓고 한삼 역시 긴 탓에 두 손이 휘감겨 채찍을 휘두를라치면 몹시 거추장스럽다는 것이 첫 번째 위태로움이다. 형편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견마를 잡게 하니, 온 나라의 말이 졸지에 병신이 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고삐를 잡은 자가 항상 말의 왼쪽 눈을 가려서 말이 자유롭게 달릴 수 없음이 두 번째 위태로움이다.

 

P179 <징비록>을 지을 때 이 일을 기록하면서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런 난리를 겪고도 이 황당한 습속을 고치지 못하다니, 심하구나! 습속의 고치기 어려움이여!

 

P180 내가 이렇게 깊은 밤에 물을 건너는 것은 지극히 위태로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말을 믿고 말은 제 발을 믿고 발은 땅을 믿으니 견마 잡히지 않은 효과가 이와 같구나.

수역이 주부에게 말했다.

옛 사람이 위태로운 것을 말할 때 소경이 에꾸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물가에 선 것이라 했지요. 오늘날 우리가 실로 그 같은 꼴이 되었구려.”

내가 이렇게 대꾸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나, 위태로움을 제대로 아는 거라고 하긴 어렵소.”

어째서 그렇단 말씀이오?”

소경을 보는 자는 눈 있는 사람이라 소경을 보고 스스로 그 마음에 위태로이 여기는 것이지. 결코 소경 자신이 위태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오. 소경의 눈에는 위태로운 바가 보이지 않는데, 대체 뭐가 위태롭단 말이오?”

 

P185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제갈을 풀어 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거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 땐 물을 딸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 자재한 경지였다.

 

옛날 우임금이 강을 건너는데 황룡이 배를 등에 짊어져서 몹시 위험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뚜렷해지자 용이든 지렁이든 눈앞의 크고 작은 것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이다. 외물은 언제나 귀와 눈에 누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 듣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도록 한다.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험난하고 위험하기가 갈물보다 더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병통이 됨에 있어서랴. 이에, 내가 사는 산속으로 들어가 문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금 곱씹어 볼 작정이다. 이로써 몸가짐에 재빠르고 자신의 총명함만을 믿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바이다.

 

P188 바야흐로 가을 매미 소리가 가느다란 실오라기처럼 울려 퍼지고, 공중에선 꽃들이 어지럽게 떨어진다. 깊고 그윽하기는 도교에서 묵상할 때 같고, 놀라서 깨어날 때는 선종에서 말하는 돈오와 다름이 없었다.

 

P189 창대는 여러 날 동안 주린 데다 추위에 시달린 탓에 학질에 걸린 듯 인사불성이었다. 밤은 이미 이경 즈음. 마침 수역과 동행하려는데 그의 마부 역시 오한에다 크게 앓고 있기에 우리는 둘 다 말에서 내렸다. 다행히 역참이 불과 5리밖에 남지 않았다기에 병든 두 마부를 각기 말에 태웠다. 그런 다음, 흰 담요를 꺼내 창대의 온 몸을 둘러싸고는 띠로 꽁꽁 묶은 뒤 수역의 마두더러 부축하여 앞장서게 하고 나와 수역은 걸어서 역참에 이르렀다.

 

P199 우리나라 서적으로 중국에서 출판된 것은 극히 드문데, 오직 <동의보감> 25권이 성행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옛 명나라 때 조선의 양평군 허준의 저작이다. 조선 사람들은 본래 문자를 알며,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책명에 동의라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 나라가 동쪽에 있으므로 의자 앞에 동자를 붙인 것이다. 또 보감이란 무슨 의미일까. 햇빛이 뚫고 비치는 곳에는 오래 묵은 음기가 풀리듯이 살이 나뉘고 살갗을 가르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책장을 펼치면 분명하고 명백하게 거울처럼 환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깊은 도를 깨친 사람은 병이 나기 전에 다스리고 이미 병든 뒤에 약을 쓰지 않는 법이니, 병이 난 뒤에 다스림은 가장 하핵임에도 다시금 용의에게 맡긴다면 어찌 병이 낫겠는가. 심지어 사사로운 이익을 품은 자는 애초에 병 없는 사람을 다스려 공적을 남기려 하고 처음 의원에 종사하는 자는 병자를 이용하여 공부하려 한다. <주역>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으리라는 점괘나 <논어>남쪽 사람들 말에 사람이 항심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원도 될 수 없다는 경계는 이런 무리들 때문에 있는 듯하다.

 

태학유관록

 

P226 “우리나라가 비록 바다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래도 네 가지 좋은 풍습이 있답니다. 유교를 숭상하는 것이 첫째 미덕이요, 황하처럼 큰 강이 없으니 대홍수가 일어날 걱정이 없는 것이 둘째 미덕이요, 고기와 소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는 것이 셋째 미덕이요, 여자들이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풍속이 넷째 미덕이랍니다.”

 

P234 이 풀을 얻어 백성들의 입병을 낫게 했다는 군요. 인간의 비장은 토에 속하므로 허하고 냉하여 습기가 차면 벌레가 생기고 그것이 입에까지 번지면 바로 죽습니다. 이에 불로써 벌레를 쳐 목을 이기고 토를 도와 해로운 기운을 이겨 내고 습기를 제거하여 신통한 효과를 거두었으므로 영초라 일컫는 것이지요.

저는 담배를 즐기기 않는데 나이 예순에 아직 입병이라곤 없습니다. 학성 역시 즐기지 않지요. 서양 인종들은 대체로 허황하여 이익을 낚는 재주가 교묘하니, 어찌 그 말을 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P246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들을 겁주기 위해 부러 대담한 척한 것일 뿐이다. 솔직히 이건 겁쟁이가 호기를 부린 짓이지 용기 있는 행동은 아니다. 내가 찬술을 따라오라고 했을 때 여러 오랑캐들이 눈이 휘둥그레졌고 단숨에 주욱 들이키는 걸 보고는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겁먹은 기색은 역력했다. 기선 제압에 성공한 셈이었다.

 

P253 금을 캐는 것이 농사짓는 것보다 이익이 낫다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얻는 금이 적어도 예닐곱 푼쭝은 되기 때문이다. 그걸 돈으로 바꾸면 두세 냥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농장을 떠나 여기로 모여드는 농사꾼들뿐 아니라 사방의 진달래와 놈팽이들까지 가세하여 절로 부락을 이뤄 무려 십여만 명이 들끓게 되었다. 아울러 쌀이며 술과 밥 떡과 엿 같은 것을 파는 장사치들이 산골에 그득하다 하는데, 도무지 알지 못하겠노라. 그 많은 금들이 대체 어디로 가는지, 또 금을 그렇게 많이 캐내는데도 금값이 더욱 오르는 건 어인 연유인지. 이링 그러하니, 내 어찌 이 기와에 물들인 것이 우리나라 금인지 아닌지 까지 알 수 있으랴.

 

P269 남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 가운데 간혹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적국을 염탐하는 건 잘하지혹은 내가 남의 나라 풍속을 살피는 덴 도가 텄지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남의 나라에 들어갈 때는 도리상 그 나라가 크게 금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 연후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그 나라 장수나 재상들의 어짊과 부당함, 풍속의 맑음과 혼탁함, 만주족과 한족이 등용되고 배제되는 상황과 명나라의 옛 실정은 절대 물어서는 안 될 것이다.

 

P270 내가 열하에 이르러 천하의 형세를 헤아려 본 것은 다섯 가지였다. 황제는 해마다 열하에 거둥하는데 열하는 장성밖의 궁벽한 땅이다. 천자는 무엇이 아쉬워서 이 변방의 거칠고 황폐한 땅에 와서 거하는 것일까? 명목은 피서라 하지만 사실은 천자가 직접 변방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몽고의 강성함을 가히 알 수 있다. 황제는 서반의 승왕을 맞아 스승으로 떠받들고 황금 전각을 지어바쳤다. 천자는 또 무엇이 아쉬워서 이처럼 도리에 어긋나는 황당한 예를 행한 것일까? 명목은 스승을 대접하는 것이라 하지만 실상인즉, 전각 속에 가두어 놓고 하루라도 세상이 태평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서반이 몽고보다 더 강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 일은 황제의 마음이 몹시 괴롭다는 걸 말해 주는 셈이다.

사람들의 글을 보면, 그것이 심상한 두어 줄 편지라 해도 반드시 역대 형제들의 공덕을 늘어놓는 한 편, 당세의 은택에 감격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는 모두 한인들의 글이다. 스스로 명나라의 유민으로서 늘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서 혹시나 의심받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 때문에 입만 열면 칭송을 하고 붓만 들면 아첨을 해대는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한인들의 마음 또한 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과 필담을 할 때 그들은 별로 특별한 수작을 한 것이 아니라 해도 말을 마친 뒤에는 곧 불살라 버리고 쪽지 하나 남기지 않는다. 비단 한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만주인들은 더욱 심하다. 만주인들은 그 지위가 황제와 밀착해 있기에 법량이 엄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니 비단 한인들의 마음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천하를 법으로 금하고 있는 만주인들의 마음도 괴로운 것이다.

저자에서 파는 벼루 한 개의 값이 백 냥이 넘으니 참 슬픈 일이다. 천하에 일이 생기면 주옥이 굴러다녀도 거두어들이지 않지만 태평한 때는 기왓장이나 벽돌이 땅에 묻혀 있어도 반드시 캐내는 법이다. 부귀한 자들은 심심풀이로 취하고, 빈천한 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 깊이 간직한다. 취미로 감상하는 자는 우연히 한번씩 만져 볼 뿐이지만 우둔한 자는 발이 부르트도록 쏘다니며 기필코 찾아낸다.

천하의 보물을 감상하는 마음 또한 괴롭다 할 것이다. 이러고 보면 한 조각 돌로도 족히 천하의 대세를 점칠 수 있거늘, 하물며 천하의 괴로움이 돌보다 더 큼에 있어서랴.

 

P274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사족 중에 비록 현명한 이라 해도 불교를 공부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허나 우리나라는 나라가 선 지 400년에 이제는 가장 어리석은 선비들도 오로지 공자의 글을 외우고 익힐 뿐입니다. 국내의 명산에는 비록 전대에 세운 이름난 사찰들이 있으나 모두 퇴락해 버렸습니다. 또 절에 있는 중들이란 대개 천한 무뢰배로서 종이나 신발 만드는 걸 생업으로 삼고 있지요. 명색은 중이지만 불경을 읽을 줄도 모르는 처지인 셈이니 누가 배척하고 말고도 할 것 없이 불교도 저절로 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도교는 본디 없었기 때문에 도관 역시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소위 이단의 교는 금지하고 말 것도 없이 저절로 나라 안에 설 수 있게 되었지요.”

 

P282 황교 천지간에는 별난 세상, 별난 사람이 다 있어서 이 도는 무명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에 따르면 밝고 참되고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생이라면 때에 맞추어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랍니다. 산다고 해서 특별히 즐거울 것도 없고 죽는다고 해서 특별히 슬플 것도 없습니다. 계속 몸을 바꾸어 가며 환생하기 때문에 억만 겁을 겪어도 변함이 없지요. 벼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며, 아는 것도 모르는 듯이 하고 모르는 것도 다 깨달은 듯이 합니다. 전쟁과 살생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 세상은 한낱 꿈으로 사물은 헛되고 망령된 것으로 언어는 거짓된 것으로 고정된 것들은 허탄한 것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걸림돌로 간주합니다. 이야말로 천지간의 별세계이자 별종의 학문인 셈입니다. 옛날의 지인이나 신인들의 도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자신을 위함도 없고 공적도 없는 학문입니다.

 

P299 우리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대체로 목축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장으로 가장 큰 곳은 탐라 한 곳뿐이다. 그곳의 말들은 모두 원 세조 때 방목한 종자로 사오백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종자를 한번도 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결국 용매나 악와에서 나는 준마들이 파하나 판단 같은 조랑말이 되고 말았다.

 

P301 이러고서야 말이 어디서 생길 것인가. 이는 다름이 아니라 말을 다루는 솜씨가 틀렸고 말을 먹이는 방법이 옳지 못하여 좋은 종자를 받을 줄 모르고 관원들이 말 기르는 방법에 무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채찍을 잡고 말을 타는 자마다 우리나라엔 좋은 말이 없다고 떠들어 댄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P302 말을 다루는 솜씨가 틀렸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릇 동물의 성질이란 것도 사람이나 다름없어 힘들면 쉬고 싶고, 답답하면 풀고 싶고 굽으면 펴고 싶고 가려우면 긁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비록 사람들이 여물을 줘야 먹는 처지이지만 때로는 제 마음대로 편하게 늘어지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따금 굴레와 고삐를 풀고 물가에 놓아 주어 답답한 기운을 풀어 줘야 한다. 이것이 곧 동물의 성질에 따라 그 뜻을 맞추어 주는 일이다.

 

양육자가 아이를 기르는 방식도 이러해야 한다. 성질, 기질에 따라 그 뜻을 맞추어 주는 일 말이다.

 

P304 관원들이 말 기르는 법에 무식하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나라의 사대부들은 보통의 허드렛일은 일체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옛날 어떤 이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에게 콩을 좀 더 주라고 했다가, 이조 전량의 자리에서 떨려난 적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근자엔 어떤 학사가 말을 아주 좋아하여 말을 보는 기술이 백락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칭찬을 해주기는커녕 도리어 옛적에는 양고기 잘 굽는 도위가 있다더니 지금 세상에는 말 잘 다루는 학사가 다 있네하며 비웃어 댔다. 그 습속의 치우침이 이런 지경이다. 그 결과, 말 기르는 일을 한 나라의 큰 정책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수치로 여겨 하인들의 손에만 맡겨두니 직책은 감목이지만 사람은 양반 벼슬아치인지라 말 기르는 법에 대해선 도통 알지 못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우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P314 대개 중국 선비들은 그 기질이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고 학문이 해박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들의 논리는 경전과 역사서를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고담준론을 일삼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씨가 아름답지 못한 데다 질문에 급급해서 대뜸 요즘 정세에 대해 말하거나 스스로 자기 의관을 자랑함으로써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는지 어떤지를 살핀다. 어떤 경우엔 단도직입적으로 명나라를 잊지 않았느냐고 물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이런 일들은 그들이 피하는 일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손해가 막심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환심을 사려면 반드시 대국의 명성과 교화를 찬양하여 먼저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또 중국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어 그들의 의구심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러는 한편, 예악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고상한 취향에 맞춰 주어야 하며 틈틈이 역대의 사적을 높이 띄워주되 최근의 일은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뜻을 공손히 하여 배우기를 청함으로써 그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가에는 진심과 거짓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웃고 대화하는 사이에 그들의 설정을 탐지할 수 있으리라. 이것이 내가 문자 밖에서 터득한 방편이다.

 

P316 “제왕이란 문자와 수레바퀴를 똑같이 하여 제도를 통일할 뿐이다. 청나라의 신하라면 마땅히 지금 제왕의 제도를 따라야 하고 청나라의 신하가 아니라면 따르지 않으면 그뿐이다.”

중국의 동남 지역은 문물이 발달한 곳이어서 분명 가장 먼저 난을 일으킬 염려가 있었다. 그들은 경박함을 좋아하고 의론 펼치기를 즐긴다. 이 때문에 강희제는 강소 절강 지역을 여섯 차례나 순행하여 은밀히 호걸의 마음을 막아 버렸다. 지금 황제는 그 뒤를 밟아서 다섯 차례나 그곳을 순행하였다. 천하의 우환거리는 늘 북쪽 오랑캐에게 있는 탓에 강희제 시절에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도 열하에 행궁을 세우고 거기에 머물렀다. 그러자 몽고의 강력한 군대도 중국을 ㅊ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이처럼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방어하게 되니 군비는 절약되고 국경 방어는 굳게 다져져서 지금의 황제는 친히 군대를 통솔하여 그들을 지키는 셈이 된다. 서번이 비록 강하고 억세긴 하지만 황교를 몹시 공경한다. 이에 황제는 그 풍속을 따라 몸소 번승을 모시고 사원을 찬란하게 꾸밈으로써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명목상 으로 봉하여 그의 세력을 포섭하였다. 이것이 바로 청나라가 천하를 제어하는 방법이다.

 

P317 만주족은 중국의 한인에 대해서만은 마치 무심한 척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천하의 백성들이야 세금만 적게 해준다면 절로 안정될 것인즉, 그렇게만 하면 자신들의 모자와 의복, 제도를 편히 여겨 결코 반대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다만 천하 사대부들을 안정시킬 방법이 없는지라 임시방편으로 주희의 학문을 높여서 선비들의 마음을 크게 위무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호걸은 감히 노여워할지언정 대놓고 비판은 못할 것이며 천박하고 위선적인 자들은 시속의 뜻을 따라 일신의 이익만을 꾀하리라. 한편으로는 남몰래 중국 선비들을 약하게 만들고 한편으로는 문화적 교화라는 명분을 취한 것이다. 진시황처럼 분서갱유를 하지 않고도 이들 선비는 글자나 교정하는 일에 골몰하느라 그 정신이 취진국에서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 천하를 어리석게 만드는 방법이 실로 교묘하고도 깊다고 하겠다.

 

P318 ! 주희의 도는 마치 해가 중천에 떠오른 것과 같이 세계 만방이 모두 우러러 보는 바이다. 황제가 개인적으로 존숭했다 한들 주희에게 무슨 누가 되겠는가. 그런데도 중국의 선비들이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대개 그들이 겉으로는 존숭하는 척하면서 안으로는 세상을 억누르는 밑천으로 삼는 것에 격분해서이다. 그러므로 가끔 한두 가지 잡주의 그릇된 곳을 핑계로 백 년 동안의 번뇌와 원한의 기운을 씻으려는 것인즉, 오늘날 주자를 반박하는 사람은 옛날 육구연의 학문을 따르던 이들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계 꽃 그늘 아래서 술을 마시면서 꽃잎에 맺힌 이슬에 붓을 적셔 이 글을 쓴다. 뒷날 중국을 유람하다가 마음껏 주희를 반박하는 이를 만나면 반드시 범상치 않은 선비로 여기고 이단이라면서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 그 속내를 알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를 통해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으리라.

 

P324 하늘이 만든 것 치고 모가 난 것은 없습니다. 저 산하와 대지, 일월성신도 모두 하늘이 만든 것이지만 그 중에 모난 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제가 비록 서양 사람들의 저서를 본 적은 없지만 일찍이 지구가 둥근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대저 그 형태는 둥글지만 그 덕은 반듯하며, 그의 사공은 움직이지만 그 성정은 고요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땅덩어리가 둥글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구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둥근 것은 반드시 굴러간다는 이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개인적으로는 저 땅덩어리가 한 번 구르면 하루가 되고, 달이 땅덩어리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 되며, 해가 땅덩어리를 한 바퀴 돌면 한 해가 되고, 세성(목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일기가 되며, 항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일 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고서도 역시 딸이 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의 눈동자는 열두 시각의 변화를 가지니, 한 번 면하는 순간에 땅덩어리는 벌써 7천여 리나 달리는 꼴입니다.”

 

P329 ,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문장법이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말에서 출발하여 글자를 배우는 것으로 나아가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글자에서 시작하여 말을 배우는 데로 옮겨간다. 중국의 문장법이 왜 그런가 하니 글자로 인하여 말을 배우면 말은 말대로 글은 글대로 따로 따로 노는 까닭이다.

 

P340 세상의 몽환이 본래 이와 같으니 거울 속에서 보여 준 염량세태와 다를 것이 없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오만 가지 일들, 즉 아침에 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의 부자가 오늘은 가난해지고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따위의 일들이 마치 꿈속의 꿈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죽거나 살거나 있거나 없는 일들 중에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리오. 그러므로 나 세상에 착한 마음을 지닌 사내와 보살심을 가진 형제들에게 말한다. 환영인 세상에서 몽환 같은 몸으로 거품 같은 금과 번개 같은 비단으로 인연이 얽어져서 기운에 따라 잠시 머무를 뿐이니 원컨대 이 거울을 표준 삼아 덥다고 나아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며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흩어서 가난한 자를 구제할지어다.

 

P341 “우리나라에 서화담이란 분이 있는데, 그분이 길에서 주저앉아 엉엉 우는 자를 만났습니다. ‘네 어찌 우느냐?’묻자, 그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세 살에 소경이 되어 바야흐로 40년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걸음을 걸을 땐 발을 의지해서 보고, 물건을 잡을 땐 손을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목소리를 들어 누구인지를 분별할 때는 귀를 의지해서 보았고, 냄새를 맡아 무슨 물건인지 살필 때에는 코를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만 나는 팔과 다리, 코와 귀 모두 눈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어디 다만 팔과 다리와 귀 코뿐이었겠습니까, 날이 이르고 늦은 것은 낮의 피로함으로 보고, 물건의 형용과 빛깔은 밤에 꿈으로 보아서, 아무런 장애도 없고 의심과 혼란도 없었습니다. 한데 아까 길을 걸어오다가 홀연히 두 눈이 맑아지고 동자가 저절로 열려 눈을 뜨고 보니, 천지는 드넓고 산천은 마구 뒤섞이어 만물이 눈을 가리고 온갖 의심이 마음을 막게 되었습니다. 팔과 다리와 귀와 코는 뒤죽박죽 착각을 일으켜 온통 이전의 일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살던 집까지 일어버려 돌아갈 방법이 없는지라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그러자 선생이 말했지요. ‘도로 네 눈을 감아라. 바로 거기에 네 집이 있을 것이다.’ 이로써 보자면, 눈이란 그 밝음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내가 낮은 시력을 타고 났어도 글은 읽을 수 있었는데 작년에 여기 저기 몸이 말을 안 듣더니 급기야는 눈까지 불편해져 얼마간 책을 읽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책을 못 읽어 괴로워하자, 남편은 기도회에 다녀올 것을 추천했고, 때마침 가족이 다니는 성당에 유명한 치유의 은사를 받은 이가 오신다 했기에 기대를 하고 참석한 적이 있다.

치유의 은사가 내게 왔을 때 예상치 못한 두려움도 같이 왔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과연 밝은 시력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예쁜 꽃을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시력이면 되었다. 그 때 한 소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소녀가 스스로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엄마에게 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치유의 은사가 존재한다면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낳은 나보다는 그 아이를 먼저 도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내가 치유의 은사를 받아서 내 시력이 좋아졌다면 위 서화담과 소경의 이야기의 소경처럼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맹인의 꿈

 

꽃이 좋아진다

눈은 나빠진다

 

책이 좋아진다

눈은 나빠진다

 

하늘의 별을 본 적은 없다

 

어느 날 기도회에서

치유의 은사가 내게 왔을 때 옆 자리

앉은뱅이 소녀가 설 수 있기를 빌었다

 

햇살이 눈부시다

눈앞은 침침하다

 

눈을 비벼 보아도

눈에 힘을 주어도

눈앞은 침침하다

 

구원을 바란 적은 없다

 

그저

꽃을 보고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P343 요술의 술법은 비록 천변만화를 하더라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에 두려워할만한 요술이 있으니, 그것은 크게 간사한 개가 충성스러운 체하는 것과 향원이면서 덕행이 있는 체하는 것일 겁니다.

 

환연도중록

 

P369 옛 성인은 물건을 주고 받는 일에 있어서 매우 조심했다. 옳은 것이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주지 않고 옳은 것이 아니라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남에게 받지 않았다. 지푸라기와 같은 하찮은 물건까지도 조심하라는 성인의 말에서 청렴이 도가 너무 지나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오미자 사건을 겪고 나니 비로소 지푸라기에 대한 성인의 말씀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아, 성인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오미자 몇 알은 정말 지푸라기처럼 보잘것없는 물건인데 그걸 빌미로 저 미련한 중은 나에게 이토록 무례한 행위를 했으니 상식에 어긋난 짓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서 주먹다짐까지 이르렀고 바야흐로 그들이 싸우게 되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피차 간에 생사를 걸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오미자 몇 알일지라도 재앙은 산더미처럼 커졌으니 작고 하찮은 물건이라 해서 결코 얕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P373 ! 대저 시세란 이렇게 믿지 못할 것이로구나. 권세가 있을 적에는 모두들 미친 듯 달려오더니 눈 한번 돌리는 사이에 시세가 바뀌고 대접은 싸늘해진다. 어디에도 기댈 데 없이 마치 진흙 소가 바닷물에 풀어지듯 얼음 산이 햇빛에 녹아 버리듯, 천고의 모든 일이 이처럼 흘러가니 이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P384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배는 너무 커서, 반드시 이마를 찌푸리며 큰 사발의 술을 한 번에 들이켠다. 이는 들이붓는 것이지 마시는 게 아니며, 배 부르게 하기 위한 것이지 흥취로 마시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술을 한번 마셨다 하면 반드시 취하게 되고 취하면 바로 주정을 하게 되고 주정을 하면 즉시 싸움질을 하게 되어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은 남아나질 않는다. 풍류와 운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고선 오히려 중국식으로 술을 마시면 전혀 배가 부르지 않는다 비웃는다. 지금 이 호사스러운 술집을 압록강 동쪽으로 옮겨 놓는다면 아마 하룻밤도 지나지 않아 그릇과 골동품을 두들겨 깨고, 아름다운 화초를 꺾고 밟아 버릴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P392 “모르는 소리! 대개 남에게 뭔가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포부를 과장하여 신용을 얻으려 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얼굴빛은 점점 비굴해지고 말은 중언부언을 면치 못하게 되지. 그런데 봐라! 저 손님은 옷과 신은 비록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말은 간결하고 눈빛은 오만하여 얼굴엔 부끄러운 빛이 조금도 없질 않더냐, 일체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가 시험하고자 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은데다 나 또한 그에게 시험해 보고 싶은 바가 생겼다. 주지 않겠다면 그만이려니와 어차피 만금을 줄 바에야 성명 따위를 물어서 뭣하겠느냐?”

 

P395 “그거야 아주 쉬운 일이라네. 조선의 배는 외국과 통하지 못하고 수레는 국내에 두루 다니지를 못하지. 그러다 보니 온갖 물화가 이 안에서 만들어져 이 안에서 소비되고 말지. 무릇 천금이란 작은 재물에 불과하네. 모든 물건을 사기에는 부족하지만, 그것을 열로 쪼갠다면 백금 열 개가 되고, 그 정도면 열 가지 물건은 충분히 살 수 있지. 물건이 가벼우면 돌리기가 쉽기 때문에 설령 한 가지를 밑진다 해도 나머지 아홉 가지는 남는 법이야. 이것은 통상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방법이자 소소한 장사치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네. 또 물에서 나는 산물 만 가지 중에 한 종류만 모래 유통을 정지시켜 버린다든지 물에서 나는 물고기 중에 한 종류만 몰래 정지시킨다든지 의약품 재료 만가지 중에 하나만 슬그머니 멈추게 해보게나. 아마 모든 장사꾼들의 돈줄이 말라 버릴 거야. 그렇지만 이는 백성들을 헤치는 방식이지. 훗날 나라의 일을 맡은 자들이 만약 내 방식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하고 말 걸세.”

  

P396 “꼭 자네만이 아니라, 만금을 지닌 자라면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걸세. 나는 내 재주가 만금을 벌 수 있다고 여겼네. 그렇지만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라 어찌 그것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 재주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복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생각했지. 반드시 재물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고 그건 실로 하늘의 명인데 어찌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만금을 얻은 뒤에는 그 사람의 복에 기대서 시행하는 것이니 움직이는 즉시 성공하기 마련이지. 그렇지 않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뭔가를 취하려 했다면 그 성패는 알 수 없었을 거야.”

 

P398 “무릇 천하에 대의를 외치고자 한다면 우선 천하의 호걸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고 다른 나라를 정벌하고자 한다면 먼저 첩자를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법이라네. 청나라가 갑자기 천하를 맡게 되었으니 우리는 마치 중국 사람들과는 서먹한 사이 아닌가. 조선은 다른 나라보다 먼저 청에 항복을 했으니 저들은 우리를 깊이 믿고 있지. 진실로 그들에게 요청하여 우리나라 자제들을 보내 학교에도 넣고 벼슬도 하도록 하게. 당나라 원나라 때처럼 말이야. 장사치들의 출입도 금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그러면 저들은 반드시 기뻐하면서 우리를 친근하게 여겨 그걸 허락할 테지. 그러면 나라안의 자제들을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히고, 선비들은 가서 빈공과에 응시하고 평민들은 멀리 강남 땅으로 장사를 하러 가서 그들의 모든 허실을 엿보면서 그곳 호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지. 그런 후에야 모쪼록 천하의 일을 도모할 만하고 나라의 치욕을 씻을 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네. 만약 주씨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다면 천하의 제후들은 이끌고 하늘에 적임자를 추천해야겠지. 일이 잘되면 우리나라는 대국의 스승이 될 것이요. 잘못되어도 백구의 나라 가운데 가장 큰 나라 정도는 될 것 아닌가.”

 

         

3. ‘내가 저자라면 

 

자신이 이 책의 저자가 되어 이 책의 목차와 전체적 뼈대를 논하고,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 절 그리고 보완점을 평설할 것

 

<열하일기> 1780 6 24일부터 8 20일까지, 56일간의 일기이다. 연행기록에 그치지 않고, 일기체의 기행문 속에 정치, 경제, 역사, 종교, 문학, 건설, 천문, 사회, 풍속, 예술 등 백과사전식 지식, 사상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기라는 어장 안에 그날 갓 잡아들인 펄펄 날 뛰는 물고기 같은 신문 기사들을 모아 놓은 듯한 구성이다. 종합적인 시사 정보와 함께 만평, 감상, 시화, 대담 등 산문의 다양한 종류가 각각의 색을 잃지 않고 종횡무진 헤엄쳐 다니는 형상이다.

 

그러다 보니 <열하일기>를 읽는 동안, 한 순간 생이별이 주는 절절한 감상에 젖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사상을 빠지고, 외국에서의 낯선 이들과 필담을 주고 받으며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지원지전설의 앞선 과학 지식을 엿보기도 했다. <열하일기>의 어느 날의 일기도 감동적이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산문 구성으로 접하다 보니, 머리 속이 뒤죽박죽 헷갈리기도 하고, 특별히 다시 보고 싶은 문장을 찾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열하일기>를 날짜 순, 이정표 순의 기존 일기 형식을 과감히 그 날의 일기를 신문 기사의 종류별로 나눈 뒤, 같은 종류의 기사끼리 묶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새로이 알게 된 신문 기사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그 아래에 <열하일기>의 주요 대목을 정리해 보았다.

 

1.     보도기사

새로운 사실, 변화, 정책, 현상, 통계 등 갖가지 뉴스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기사

6 28일자 회를 개는 방법이나 기와를 이는 방법

7 5일자 구들 만드는 법과 온돌 만드는 법

북경의 이모저모 (황도기략)

고북구 장성 밖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 (구외이문)

 

2.     해설기사

사실만을 전달하는 보도기사와 달리, 사실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이 덧붙여진 기사, 독자들의 이해를 돕게 하고, 나아가서는 견식과 안목을 동우어주는 기사, 주로 기사의 내용은 '', '어떻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

8 7일자 말 모는 방법

8 14일자 목축

8 13일자 지동지원설

 

3.     기획기사

사실 그 자체보다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나 화제거리 등 흥미제공이 주목적인 기사, 심층 보도할 사안에 대해 기자 스스로 기획하며 내보내는 기사, 미담이나 사례담, 가십성 기사 등이 주로 많음

8 6일자 밀운에서 중국인들의 시각을 빌려서 조선 사람의 행동거지와 그 인상을 쓴 것

7 18일자 고교보에서 우리 사절의 현금 도난 사건

천하의 형세를 논하다 (심세편)

 

4.     논설기사 (논평/사설/칼럼기사)

뉴스의 원인, 배경, 해결방안을 알기 쉽게 풀이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 '객관화된 주관'

논설과 칼럼의 차이가 있다면 논설은 '우리'로 시작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칼럼은 ''로 시작하여 집필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상례임

 

5.     인터뷰기사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인물을 직접 만나 대화한 내용을 작성한 기사

기자와 상대자가 대화하는 1 1답 형식과 상대자의 말을 이용하여 상황을 설명하는 중글 형식으로 나뉨

 

6.     르포기사

생동감을 주는 현장 기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음

8 17일자 고북구에서 중과 시비를 벌인 오미자 사건

8 11일자 열하 어느 술집에서 객기를 부린 사건

7 13일자 고가자에서 백기보로 가는 도중 참외장수 사이에 옥신각신했던 일을 담은 참외 사건

7 27일자 진자점에서의 청루견문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일야구도하기)

 

7.     스케치기사

사건현장과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 참석자의 반응과 분위기 등을 독자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기사 목격자의 보도라고도 함, 기사를 통해 마치 독자 자신이 목격하고 있듯이 사건 현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생생한 기사

7 10일자 요동벌을 묘사한 대목

7 13일자 고가자에서 백기보 가는 노상의 견문

7 20일자 청돈대에서의 해맞이 장면

7 26일자 난하에서 만난 소낙비 이야기

8 9일자 열하에서 태학관을 서성이며 잠 못 이루던 밤

 

8.     가십기사

흥미로운 단문 형식의 기사,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행사, 인사, 동정, 등을 알려주는 기사, 기자의 감각을 여지없이 보여줄 수 잇는 기사

7 8일자 백탑을 조망하면서 울부짖던 장면

8 4일 북경의 유리창에서 느낀 소리를 고독

8 5일 북경에서 장복을 떠날 때 울며 쓴 생이별

7 15일 북진묘에서 중국의 장관을 토론

 

9.     프로필기사

저명인사의 소개 기사

백이 숙제의 묘를 둘러보며 (이제묘기)

 

10.   평론

책이나 연극, 영화 등을 숙지한 다음에 쓰는 분석, 평가, 기사

범의 꾸중 (호질)

코끼리를 본 우주의 비의 (상기)

환타지아 (환희가)

옥갑에서 밤들이 주고 받은 이야기 (옥갑야화)

 

11.   좌담기사

두 명 이성의 취재원이 대담을 하고 기자가 이를 재구성하여 보도하는 기사

예속제에서 만난 친구들 (속재필담)

곡정 왕민호와 나눈 말들 (곡정필담)

 

12.   사진기사

한 컷의 뉴스 사진

 

 

IP *.65.153.233

프로필 이미지
2014.02.12 23:04:12 *.104.9.186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엄친아라 ... 금수저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이사다니는게 너무 싫어서 독립하고는 궁뎅이 붙이고 살고 있습니다.

이사도 여행일까요?^^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동행들의 자취를 봅니다.

안녕하세요.

함께하는 인연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2.18 18:25:43 *.65.153.233

이사와 출장이 여행인 줄 알고 여태껏 살아왔네요^^ 이제 진짜 여행을 떠나야겠지요?

함께하는 인연에 저도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2.16 17:40:30 *.160.136.197

행동주의자이지 못한 연암을 꾸짖는 자세. 당사자가 직접 있었다면 등에 땀이 후즐근.

섹션별로 묶는 방식 새롭네요.

프로필 이미지
2014.02.18 18:27:29 *.65.153.233

연암을 꾸짖는 거처럼 보였나요? 이런.....^^ 문체를 좀 바꾸어야겠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83510
778 10기 2차 레이스-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은심) file [2] 왕참치 2014.02.24 4218
777 10기 레이스 -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 강종희 file [2] 종종걸음 2014.02.23 4464
776 10기 레이스_3주차_구본형의마지막수업_정수일 file [4] 피울 2014.02.23 4541
775 10기 3주차레이스 <구본형의마지막수업> 김종호 북리뷰 file [2] 구름에달가듯이 2014.02.22 4239
774 10기 북리뷰 <죽음의 수용소에서> 김정은 file [4] 앨리스 2014.02.17 5354
773 10기 2차레이스 북리뷰-죽음의 수용소에서(이은심) file [2] 왕참치 2014.02.17 4291
772 [10기 2주차 북리뷰] 죽음의 수용소에서 file [3] 찰나 2014.02.17 4197
771 <10기 지적 레이스 북리뷰 2주차>죽음의 수용소에서-조현연 file [2] 에움길~ 2014.02.17 4913
770 <10기 레이스 2주차 북리뷰>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이동희 file [5] 희동이 2014.02.17 5232
769 지적 Race 2주차_죽음의 수용소에서 file [2] 류동일 2014.02.17 4296
768 10기 레이스 2주차 - 죽음의 수용소에서 강종희 file [4] 종종걸음 2014.02.17 4315
767 [10기 2주차 지적 레이스] 죽음의 수용소 에서_박윤영 file [2] 녕이~ 2014.02.17 4479
766 <10기 레이스 2주차 북리뷰>죽음의 수용소에서_한창훈 file [2] jieumjf 2014.02.16 4208
765 10기_2주차_죽음의수용소에서_정수일 file [8] 피울 2014.02.16 4250
764 연구원레이스2_죽음의 수용소에서_구해언 [6] 해언 2014.02.16 5080
763 10기연구원 2주차, 죽음의 수용소에서 - 김종호 file [6] 구름에달가듯이 2014.02.15 4581
762 연구원 레이스: 열하일기 file [1] 해언 2014.02.10 4200
761 10기 레이스-열하일기-이은심 file [2] 왕참치 2014.02.10 4312
760 10기 레이스 - 북리뷰: 열하일기 - 강종희 file [1] 종종걸음 2014.02.10 4182
» 10기 열하일기 북리뷰_김정은 file [4] 앨리스 2014.02.10 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