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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12시 00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연암의 삶>

173735일 한양에서 2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명문가였으나 아버지 박사유는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포의로 살다가 늦게 음서로 출사하여 통덕량에 오르지만 곧 사망한다.

그래서 연암은 할아버지 박필균에게 양육된다.

그는 성장하면서 신체가 건강하고 매우 영민하여 암기에 능하였다.

175216세에 처사 이보천의 딸과 결혼하며 본격적인 학문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연암은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등과 어울리며 서양의 신문학을 배웠고 북학의 이용후생의 방법을 토론하였다.

1760년 할아버지가 죽자 연암의 생활은 더욱 곤궁해졌으며 과거에도 응시를 하였지만 계속 떨어졌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30대는 친구들과 백탑파를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사색하였다. 이것이 북학파의 시초가 된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고 홍국영이 세를 잡으면서 신변의 위험을 느낀 연암은 황해도 김천 연암협으로 은거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짜기의 이름에서 따왔다.

 

연암은 뒤 늦게 작은 벼슬길에 들었고,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 배우고 수용하고 장사는 천한 것이 아니라는 북학파의 영수가 되어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다.

1803년부터는 중풍이 들어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18051020일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을 남긴채 사망하였다.

 

<연암의 학문과 사상>

장인에게는 <맹자>, 처삼촌 이양천에게는 <사기>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과는 평생의 문우관계를 이어갔다.

1754(영조 30) 18세에 우울증과 불면증을 알았으며 이때 만난 말동무 민유신은 그의 오랜 지기가 되었고 소설 민옹전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사회를 풍자한 단편소설 광문자전도 이때 썼다.

 

또한 영조의 부마이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8촌 형 박명원의 영향을 받아 외부의 문물에도 관심을 두었다. 1780년에는 부도 명예도 없이 40대 중반이 된 연암은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 사절로 가게 되면서 <열하일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연암의 작품에서는 아무 실속 없이 양반이라는 자존심에 사로잡혀 허세부리는 자들을 조롱하고, 힘써 일하지 않는 게으른 풍조가 양반, 중인, 평민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을 지적했다. 또한 당시의 양반계층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자신의 작품에 실음으로서 논란거리가 되고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는 노론임에도 불구하고 열하와 북경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청나라와 서구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다. 성곽 축조, 제련 기술 등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주장하였고, 상행위를 천시할 것이 아니라 적극 장려하고 무역항을 개설해야 한다는 것과 화폐를 이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수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고 문하생을 길러내 노론당 내에서도 북학파라는 학파를 형성하였다.

문하생에도 양반, 중인, 서자를 차별하지 않고 학문을 배우려는 자를 모두 받아들였다. 그는 서얼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며 능력과 실력에 따른 균등한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작품으로는 <양반전>, <허생전>, <역학대도전> 이외 다수가 존재한다.

 

연암이 북경으로 갈 때의 나이와 지금의 나의 나이는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같은 40대라도 의미가 달랐으리라.

명문가에서 태어나 그때까지 입신양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많은 번뇌와 고난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그래서 그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연암의 문장은 퇴계와 율곡의 도학(道學), 충무공 이순신의 용병술과 더불어 조선의 세 가지 최고에 속한다고 평가받지만 말이다.

 

연암은 익살스럽고 유머러스하며 타고난 호기심이 왕성하였다.

옆의 그림은 <천산적설도>인데 이 그림에서 나는 연암이 느껴진다.

새로운 문물과 더 큰 세상에 대한 동경이 보이기 때문이다.

 

연암은 어린아이와 같은 수용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좋은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칭찬하고 나쁜 것은 비판한다.

그래서 <열하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논란거리를 안겨주었다.

수레, 기와, 불교 등에 대한 생각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봐서는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을 텐데 연암은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연암의 용기를 존경한다.

처음에는 너무 사대주의에 치우친 표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바로 연암이다.

연암은 목소리는 우렁찼다고 한다. 안과 밖의 목소리가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사람...바로 연암인 것이다.

 

이 시대에도 자신의 뜻을 소신껏 펼칠 수 있는 연암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아울러 그런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말이다.

뒤늦게 연암을 만났지만 그의 용기와 자유로움과 유머가 부럽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열하일기 >

 

32 벗이란 또 다른 .

 

37 당시는 청나라 만주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회복하자는 북벌론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43 붉은 단청 높은 다락에서 막수 아씨 여의고는

갈바람 스산한데 몇 마리 말로 변방을 나선다.

그림배에서 들려오던 풍악소리 끊어지니

애끊는 듯 그립구나 청남 첫째 고을이여.

 

47~49 “자네, 길을 아는가

수역 홍명복에게 물었다.

? 무슨 말씀이시온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씀을 이르시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의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의 한 획을 변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

그러므로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옛날 정자산 같은 사람이라야 될걸.”

-->길을 아는 사람은 그 경계를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언덕과의 경계를 알아야 도를 알고 거기에 맞는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52 “아니, 저런 놈들이 그렇게 문자속이 깊단 말이오?”

하하, 그럴리가요.

목불식정은 바로 저런 놈을 두고 하는 말입지요.

그렇지만 패관기서를 노상 입에 달고 일상어로 쓰거든요. 그게 바로 관화랍니다.“

 

62 나는 우리 서울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때문인가. 금강산은 그 골짜기가 이른 바 12천봉이나 된다.

기이하면서도 험준하고 웅장하면서도 깊지 않은 곳이 없다.

그 모습이 마치 짐승이 끄는 듯 날짐승들이 날아오르는 듯 신선은 솟구쳐 오르고 부처는 가부좌를 튼 듯하다.

어둑하면서도 빽빽하며 아득하면서도 아스라한 것이 귀신의 굴로 들어가는 듯하다.

 

63 물 위에 꽃이 핀 듯 거울 속에 달이 비친 듯 하였다.

어떤 사람은 빛과 바람이 허공에 떠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왕기이다.

왕기는 왕의 기운이다.

 

69 예전에 나의 벗 홍대용에게 중국 문물의 거대한 규모와 세밀한 수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중국의 동쪽 끝 촌구석도 이 정돈데 되회지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니 기가 팍 죽는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등줄기가 후끈거린다.

순간 나는 통렬히 반성한다.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난 본래 천성이 담박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다른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이 나라의 만분의 일도 못 보았는데 벌써 이런 그릇된 마음이 일다니, 대체 왜? 아마도 내 견문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부처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살핀다면 무엇이든 다 평등해 보일 테지.

모든 게 평등하면 시기와 부러움이란 절로 없어질 테고.’

 

74 사신이 그 앞에 이르면 마두가 갑자기 하인에게 호통을 친다.

그러면 가마를 멈추고 말의 멍에를 벗기는 척하다가, 재빨리 달려서 후다닥 지나간다.

예를 갖추는 시늉만 하는 것이다.

부사. 정사관도 똑같은 방식으로 지나간다.

 

77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77 이용이 주로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라면, 후생은 구체적인 의식주에 해당한다.

이 명제는 고대 이후 동아시아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강령이었다.

하지만 연암이 보기에 통치자들은 이용과 후생은 망각한 채 정덕만을 부르짖음으로써 정덕조차도 공허한 명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연암이 정덕을 맨 뒤에 놓고 이용후생을 강조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가 하면, 20세기에는 오직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이용후생만을 강조하느라 정덕이라는 큰 비전을 놓치고 마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었다.

 

81 우리나라 사람은 이곳을 책문이라 하고, 이 지역 사람은 기자문이라 하며, 중국 본토 사람은

변문이라고 한다.

 

83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그저 사서의 문장을 입으로 외기만 한다. 외는 것이 능숙해지면 그 다음에 스승에게 뜻을 배우는데 이를 강의라 한다.

설령 죽을 때까지 강의를 듣지 못한다 해도 입으로 왼 문장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85 좌우로 늘어선 점방들은 휘황찬란하다.

아로새긴 창문, 붉게 칠한 난간, 푸른빛 주련, 황금빛 현판 등.

그 안에 펼쳐 놓은 것은 모두 중국에서 나오는 진기한 물건들이다.

국경 지방 시골 오지에도 이처럼 정밀하고 우아한 감식안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90 우리 나라의 기와는 법은 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붕에는 진흙을 두툼하게 펴놓기 때문에 위가 무거워진다.

담벽은 벽돌로 쌓지 않기 때문에 네 기둥은 의지할 데가 없어서 아래는 텅 비게 된다.

기왓장은 너무 커서 지나치게 휘어지고, 휘어지기 때문에 빈 공간이 저절로 많아진다.

그러니 진흙으로 메우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진흙이 무겁게 내리누르니 기둥이 휘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진흙이 마르면 기와 밑이 저절로 떠서 기와 비늘의 층이 뒤로 물러나면서 틈새가 생긴다.

결국 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샌다.

참새가 구멍을 뚫고 쥐가 숨어 살게 되며, 뱀이 똬리를 틀고 고양이가 해집고 다니는 근심을 어쩌지 못하게 된다.

 

92 고구려 방언에 큰 새를 안시라고 한다.

지금도 우리말에 봉황을 황새라 하고 사를 배암이라 한다.

그러니 수.당때에 이 지역 말을 좇아 봉황성을 안시성으로, 사성을 백암성 이라고 했다는 말이 상당히 그럴 듯히다.

 

93 주머니 속 물건이라 여겼더니만

어찌 알았으랴, 검은 꽃이 흰 날개에 떨어질 줄을.

 

여기서 검은 꽃은 눈을, ‘흰 날개는 화살을 말한다.

 

102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째서 잠만 자고 듣질 않는 건가!”

정진사가 웃으며 말한다.

벌써 다 들었지요.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다는 거 아닙니까?”

 

105 ‘덕이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다.’

재물을 모으면 백성들이 흩어지고, 재물을 흩으면 백성들이 모여든다.

 

111 “자식은 몇이나 되오?”

도둑놈 하나만 있는데, 아직 사위를 못 봤습니다.”

도둑놈 하나라는 게 무슨 말이오?”

딸이 다섯이면 도둑도 들지 않는다잖아요. 그러니 딸년이 집안의 좀도둑이 아니겠습니까?”

 

117 “뜻을 얻은 곳에는 두 번 가지 않는 법, 만족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네!”

-->당연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127 벽돌 두께는 원래 같기 때문에 그걸 깨서 굄돌도 받쳐도 기우뚱거리지 않고, 벽돌의 몸이 본디 가지런하므로 나한히 깔아 놓으면 틈이 생기지 않는다.

방고래 높이는 겨우 손이 드나들 정도이고, 굄돌은 번갈아가면서 서로 불목이 된다.

불이 불목에 이르면 안쪽에서 불꽃을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넘어가기 때문에, 불꽃이 재를 휘몰아서 방고래 안으로 미어지듯 한꺼번에 들어간다.

여러 불목이 서로 잡아당기는 형국이 되어, 도로 나올 새가 없이 쏜살같이 굴뚝으로 빠져 나간다.

굴뚝의 기피이는 한 길이 넘는다.

이게 바로 조선말에서의 개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128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한 집안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 수많은 형제들이 오뉴월에도 코 끝에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지.

이 방식을 배워 가서 한겨울 그 고생을 덜면 어떨까?

 

129 이곳 구들이 우리나라보다 못하다는 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중국의 구들 놓는 방법을 그대로 본떠서 우리나라 온돌에 쓰고, 그 위에 기름 먹인 장판지를 깐다고 하면 그걸 누가 막겠나?

 

138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 연암의 비애가 느껴졌다.

그리고 연암에게서 많은 사람의 비애도 느껴졌다.

마음 놓고 울만한 곳, 울만한 사람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12시쯤 되면 하나 같이 무채색의 정장을 한 사람들이 건물마다 쏟아져 나온다.

어깨에 커다란 짐보따리가 올려져 있다.

사람마다 크기는 다르지만 대체로 무겁다. 표정처럼...

 

139 사람들은 다만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이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도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슬플 때, 기쁠 때, 노여울 때, 즐거울 때, 사랑할 때, 욕심이 많을 때....이 눈물을 다 흘려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웃음 이상으로 눈물이 사람을 정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40 “이제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하넌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디에 해당할까요?”

그건 갓난아이에게 물어봐야 될 것이네. 그 애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지.

그 애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으로는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 같은 기쁨이 늙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이치가 전혀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나.

그런데 도리어 분노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삶이란 근심 걱정을 두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 울음을 터뜨려서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

 

149 아아, 슬프다.

마지막 운명에 처한 명나라는 인재를 등용하고 버리는 것이 거꾸로 되고 공과 죄를 밝히지 못했다.

웅정필과 원숭환의 죽음을 보면 명나라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어뜨렸다 하겠다. 어찌 후세의 비웃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

 

184 밤이건 낮이건 게으름을 피질 않습니다.

--> 연암에게 부러운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아직도 들쭉날쭉 이다.

새벽잠이 많다는 것은 낮에 게으른 것일까? 밤에 게으른 것일까?

 

184 제가 비록 몸은 시장터에 있더라도 마음만은 늘 배움터에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이렇게 선생을 뵈오니, 마치 백 명의 벗을 얻은 듯합니다.

어찌 눈곱만큼이라도 속여서 일평생 마음을 무겁게 하겠습니까.

--> 몇 년 전에 <씨크릿>이라는 책과 영화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인생을 성공할 수 있도록 비밀의 열쇠를 알려주는 내용의 <씨크릿>은 한 참 힘들 때 각인하는 마음으로 10번 이상은 보았을 것이다.

어디서든지 들고 다녔고 힘들 때마다 펼쳐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었는데, 그 동안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과 부를 나누고 싶지 않아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의무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고 그런 발상 자체가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여러 책을 보면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그 사실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 글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글을 배울 수 없었던 사람들의 순수한 열망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연암은 청나라 말을 잘 하지는 못했지만 글로써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글의 위력과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을 수 있었다. 현대에 태어난 것에 대해서.

나의 배움을 내 능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어서.

 

196 하늘 아래 한 사람의 지기를 얻는다면 여한이 없다 했습니다.

 

200 우리나라 속담에 강철이 지나간 곳엔 가을도 봄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이는 가뭄이 심하게 들어 흉년이 됨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도모하다 잘 되지 않으면 강철의 가을이라고 합니다.

 

201 우리들은 학문이 미미하니 벼슬살이 할 가망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피땀 흘리며 공장이 노릇으로 일생을 보낼만한 기술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쌀 한 톨 얻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농민으로 한 평생을 보내자면, 좁은 고장을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한 채 마치 여름 벌레가 겨울엔 나오지 못하듯 이 세상을 마쳐야 합니다.

이는 하루 빨리 죽느니만 못한 셈이지요. 가게를 내고 물건을 사고팔아서 생계를 잇는 것을 두고 남들은 비록 하류로 치지만,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202 우리들은 모든 벗을 사귀는 일에 지극한 정성을 다한답니다.

옛날에도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이가 있다 하였고, 또 두 사람이 마음이 합하면 굳은 쇠라도 끊을 수 있다 하였으니,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한평생에 벗이 없다면 아무런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저 입고 먹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친한 친구 사귀는 재미를 모른답니다.

세상에는 옷가지며 밥사발에만 눈을 줄뿐 벗을 사귀는 즐거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203 ‘남에게 구하는 것이 내 스스로 구함만 같지 못하다고 했듯이, 장사를 하면 적어도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206 “아까는 몽고인이 낙타 두 마리를 끌고 지나가던데요.”

뭣이라. 그런데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느냐?”

창대가 대꾸했다.

아 천둥치듯 큰 소리로 코를 골며 불러도 아니 깨시는 걸 저흰들 어쩝니까요.

쇤네들도 생전 처음 보는 거라 뭔지는 똑똑히 모르겠으나 낙타가 아닌가 싶던걸요.“

그 꼴이 어떻게 생겼더냐?”

참말로 형언하기 어렵습니다요.

말인가 하면 굽이 두 쪽이고, 꼬리는 소처럼 생겼고, 소인가 하면 머리에 뿔이 없는 데다 얼굴은 양같이 생겼고, 양인가 하면 털이 꼬불꼬불하지 않은 데다 등엔 두 봉우리가 솟았으며,

게다가 머리를 쳐들면 거위 같기도 하고, 눈은 꼭 청맹과니 같더군요.“

, 과연 낙타로구나. 크기는 얼마만 하더냐?”

창대가 한 길이나 되는 허물어진 담을 가리킨다.

높이가 저만 하더이다.”

이 다음부터는 처음 보는 물건이 있거든 졸 때건 식사할 때건 무조건 알려야 한다. 알았느냐?”

-->연암의 왕성한 호기심이 엿보인다.

 

209 목욕하는 원앙 한쌍, 날아다니는 비단이요.

갓 피온 연꽃은 말 없는 신선일세.

 

210 ‘희기가 서리를 능가하여, 백설을 걸고 내기할 수 있다는 뜻의 기상설재

216 요동 천 리는 흙이 떡가루처럼 보드라워 비를 맞으면 반죽이 되어 마치 흐물흐물한 엿가락이 되고 만다.

 

226 나는 곧바로 기상설재네 글자를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그런데 여럿이 서로 쳐다보는 품이 어제 전당포 주인과 마찬가지로 적이 수상쩍다.

속으로, ‘이것 참 괴이한 이리구나여기며 물었다.

이 말은 이 가게와 별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가게는 부인네들 장식품을 취급하지 국숫집은 아니거든요.”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전날의 일을 돌이켜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저 시험 삼아 한번 써 본 것이오.”

-->연암의 임기응변이 돋보인다.

 

227 ‘기상설재이란 넉 자를 볼 때마다 , 필시 국숫집이로군했다.

이는 그 주인장의 심지가 밝고 깨끗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면발이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232 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학문에 대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중략)

그러면, 누구와 더불어 이 천지 사이의 큰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 공자가 240년간의 역사를 간추려서 <춘추>라 하였으나, 240년 동안 일어난 군사, 외교 등의 사적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과 같은 잠깐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는 말 위에서 휙휙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기록하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먹을 한 점 찍는 사이는 눈 한 번 깜박이고 숨 한번 쉬는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눈 한 번 깜박이고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벌써 작은 옛날, 작은 오늘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하나의 옛날이나 오늘은 또한 크게 눈 한 번 깜박하고 크게 숨 한 번 쉬는 사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찰나에 불과한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공을 세우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

-->‘멀리보기프레임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선택과 기회와 위험의 연속이다.

기회와 위험 속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하려면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와 판단력 이지만 더 필요한 것은 멀리보기 프레임이다.

정면으로만 바라보면 그 늪에 빠지기 쉽다.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지만 때로는 전체를 보는 시야가 많은 도움을 준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지금 위험의 의미, 지금 기회의 의미를 100년이라는 인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문제들이 생각보다 싱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작은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일깨워진다.

 

239 우리 나라 사대부들 중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려는 <춘추>의 절의를 간직한 이들이 우뚝 서서 100년을 하루같이 그 뜻을 이어왔으니 실로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240 오랑캐라고 하는 청나라는 중국의 제도에서 이익이 될 만하고 오래 향유할 만한 것들을 가로채 가지고는 마치 본래부터 자기 것이었던 양한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 한다.

-->진실로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240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불기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 한다. 다른 사림이 열을 배우면 우리는 백을 배워 백성을 더 이롭게 해야 한다.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눈에 보이는 장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의 실용적인 장관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246~247 무릇 수레는 하늘에서 나와 지상에서 운행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수레는 육지를 다니는 배요, 움직이는 집인 셈이다. 나라에 크게 쓰일 물건으론 이 수레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주례>에서 임금이 부유한지를 물었을 때, 수레의 대수로 대답했던 것이다.(중략)

다만 사람 타는 수레, 짐 싣는 수레가 백성들의 생활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힘써야 할 제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백성들의 생활의 편리를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들어왔어야 했을 수레가 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들어왔을까?

지금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무엇을 가장 불편해 하는지...굽어 살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247 그렇게 애쓰지 않고 똑같아지는 것을 일철이라하고, 뒷사람이 앞사잚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전철이라 한다.

 

247 우리 나라에도 수레가 없지는 않으나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않고 바퀴 자국이 한 궤도를 그리지 못하니 수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우리나라는 마음일 험준하여 수레가 쓸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았을 뿐이다.

수레가 다니게 되면 길이야 저절로 닦일 터, 어찌하여 길거리의 좁음과 험준함만 걱정한단 말인가. 중용에 나오는 바,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이란 말은, 수레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가지 못하는 데가 없다는 뜻이다.

 

250 이곳에서 흔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하디 귀해, 다만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실물은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건 무엇때문인가. 단지 실어 나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250 ‘무조건글만 읽는 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니, 이런 공부가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언제부턴가 나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시작이 되었다.

읽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읽은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이 생각난다.

지의 총체가 계속 확대.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발을 맞추어 통합의 과정이 동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가 안고 있는 지적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인류의 지를 통합하는 작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생겨나고 있다.

지식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 평생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처음에 스마트폰을 접하고 그 신세계가 주는 매력에 몇 개월을 홀린 기분으로 지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도 느껴졌었다.

속도는 계속 빨라질텐데...나는 과연 잘 따라 갈 수 있을까?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면서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을 마음 속에 끊임 자맥질 하지 않으면 안될 듯 하다.

 

255 우리나라에서는 고치를 켤 때 다만 손으로 훓어 당기는 것만 알지, 수레는 사용할 줄 모른다.

 

256 상여꾼은 수백 명 이상이고, 명정은 모두 붉은 비단에 금으로 글자를 새겼다.

명정의 깃대는 세 길이나 되는 데 검은 칠을 하고 금색으로 용을 그렸다.

깃대 밑에는 발을 달고, 여기에 멜대를 가로놓아서 아홉 사람이 메게 해뒀다. 붉은 일산 한 쌍, 푸른 일산 한 쌍, 검은 일산 한 쌍, 깃발 대여섯 대가 뒤따른다.

생황, 퉁소, 피리, 북 등 악대가 서고, 승려와 도사들이 각기 복색을 차리고 불경과 주문을 외면서 상여 뒤를 따른다.

중국은 모든 일이 간편하여 낭비가 전혀 없는데 상여가 이토록 화려하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258 봉성은 동쪽 변두리에 있는 궁벽한 곳이다.

그런데도 그곳의 의자, 탁자, 주렴, 휘장, 담요 등의 기물과 꽃, 풀까지도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문패며 간판들은 사치하고 화려함을 서로 다투어 그 외관을 꾸미느라 천금을 들여도 모자랄 지경이다.

 

258 관우는 유비를 도와서 촉나라를 세운 무장이다. 그는 수 많은 전투에서 늘 승리했으므로, 초기에는 전쟁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런 관우가 재물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인데,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이르면 그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중세에는 상인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았기 때문에 도적들에게 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는 이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관우를 모셨지만, 그 덕분에 장사를 무사히 마쳐 이득을 보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재물신으로 변환된 것이다.

 

260 , 그릇 굽는 법 하나가 좋지 못하여 온 나라의 모든 이로가 물건이 다 그와 비슷해져 마침내 한 나라의 풍속을 이뤘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262 새벽에 길을 떠나면서 보니 지는 달이 땅 위에서 몇 자 안되는 곳에 걸려 있다.

푸르고 맑은 기운이 감도는데. 모양은 아주 둥그렇다. 계수나무 그림자 짙게 드리웠고,

옥토끼와 은두꺼비가 가까이서 어루만져질 듯하다. 항아의 고운 비단 옷자락엔 살포시 흰 살결이 내비친다. 나는 정진사을 돌아보며 말했다.

참 이상도 하이.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네 그려.”

정진사는 처음엔 달인 줄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응수한다.

늘상 이른 새벽에 여관을 떠나다 보니 동서남북을 분간하기가 정말 어렵구만요.”

-->여정의 고단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263 붉은 빛이 들판 숲에 가로 뻗치더니, 별안간 천만가지 기이한 봉우리로 피어올라 온 천지를 물들인다. 용이 서린 듯, 봉황새가 춤추는 듯하며 천 리까지 길게 뻗친다.

 

264 “계문이 여기서 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 이것이 계문연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의 장인 이명찬이 설명해 준다.

계문이 비록 멀리 있지만 여기까지 통들어 계문연수라고 한답니다.

날씨가 청명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잔잔한 날엔 요동을 천 리 어디에서고 이 기운을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계문에 들어가더라도 바람이 불고 날씨가 궂으면 볼 수 없답니다.“

 

269 ‘이량우첸이란 중국말로 한냥 닷돈을 말한다.

한냥 닷돈은 곧 양반이다.

사점이란 서자이니 우리나라 서얼의 은어이다.

 

280 아아, 슬프다.

이것이 이른다 송행 저투다.

애식각라는 관외의 이자성이, 이자성은 역시 관내의 애신각라이다.

 

312 아아, 몽염이 장성을 쌓아 오랑캐를 막으려 하였건만 진나라를 망칠 오랑캐는 오히려 집안에서 자라났고, 서중산이 이 관을 쌓아 오랑캐를 막고자 하였으나 명의 장수 오삼계는 이 관문을 열어 적을 맞아들이기에 급급하였구나.

천하가 무사태평한 지금, 이곳을 지나는 장사치들과 나그네들에게 공연한 비웃음만 사게 되었으니, 실로 뭐라 할 말이 없다.

 

 

<열하일기 >

 

36 산은 인자를 닮아 고요하고

바람은 성인을 닮아 맑구나.

빼어난 산수의 고죽국에

난형난제의 옛 성인들이시다.

-->덕 중에 최고의 덕은 명예를 사양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는 서로에게 왕좌를 사양하고 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은 형제이다.

가히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40 “산수가 그림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네그려. 산수가 그림에서 나온 것인가, 그림이 산수에서 나온 것이지. ‘닮았지’ ‘같다’ ‘비슷하다따위의 말은 결국 비유를 통해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만드는 표현일 뿐이라네.

그리고 비슷하다 뿐이지 실제로 같은 것은 아니라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장강에서 나는 요주를 두고 여지와 같다 하고,

서호를 서시와 같다 하였지.

그러자 어떤 어리석은 작자가 조개인 담채는 용안수의 열매와 같고, 전당 호수는 조비연 같다고 대꾸했지 뭔가.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43 백이와 숙제는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하니 고사리는 사람 잡는 독초인가 봅니다.

 

44 춘추의 대의란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화양이를 뜻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우는 것을 의미한다.

 

46 고사리 먹어본들 배부를 수 없어

백이도 결국에는 굶어 죽었지

꿀물은 술보다 훨씬 달콤해

꿀물 먹다 죽는다면 그 아니 원통하리.

 

47 잇달아 상여를 만났는데 하나같이 닭을 관 위에 놓아 두었다.

닭이 혼백을 인도하기 때문이란다.

 

50 주유는 원망하며 탄식했도다.

하늘이 이미 나를 낳아놓고 제갈량은 왜 또 내었는가!’

 

51 달리듯 가는 세월은 티끌과 아지랑이

동으로 흐르는 강물은 그침이 없구나.

명리나 다투던 족속들

백 년 세월 소겡 몇이나 남았는가.

 

고기잡이 나무꾼의 하찮은 이야기도

시비를 가리자면 <춘추>에 뒤질소냐.

제가 부어 제 마시고 제 흥에 노래하니

알아줄 이 있든 없든 그 무슨 대수런가.

 

52 흐르는 세월 속에 쓰르라미 바삐 우니

산에서 물에서 모기떼가 어지럽다.

한바탕 폭풍우 밤사이 지난다음

눈을 돌려 둘러보니 흔적도 없구나.

 

술동이의 좋은 술을 모조리 다 비우고

달빛 아래 한가로이 노랫소리 들어본다.

부귀공명이 도대체 무엇인가.

닥쳐올 앞일일랑 무지를 마라.

 

57 “이놈들아, 네놈들 할애비가 오셨거늘 어찌 나와서 절을 하지 않느냐고 욕하면,

고려보 사람들 역시 우리들을 향해 맞받아친다.

이런 지경에 우리 사신 일행은 이곳 고려보 풍속이 도리어 틀려먹었다고 욕을 해대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62 “그럼, 이 글은 어디서 구했소?” 내가 물었다.

며칠 전에 계주 장에서 사들인 것입니다.”

그럼 내가 좀 베껴가도 되겠소?”

물론이죠. 상관없습니다.”

(중략)

선생은 이걸 배껴 무얼 하시려는 건가요?

내가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 모두 허리를 잡고 한바탕 크게 웃게 할 작정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고 입안에서 든 밥알이 벌처럼 튀어나오고,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줄처럼 툭 끊어질 겁니다.“

 

70 내 들으니, 하늘이 높다 하나 어찌 머리를 굽히지 않을 수 있으며, 땅이 두텁다해도

발걸음을 조심스레 디디지 않을 수 있으랴 했거든,

 

71 하늘은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과 일로써 보여 주신다.

행동과 일로써 보여 주신다면, 오랑캐가 중황의 문물을 변개시키는 것은 엄청난 치욕이다.

그러니 저 백성들의 원통함이 어떠하겠는가.

또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 덕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 그렇다면 귀신들은 대체 어떤 냄새를 찾아오시겠는가.“

 

75 이런 식으로 범은 인간문명의 온갖 잔혹하고 이기적인 속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호질>이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문명이야말로 동물의 무자비한 착취와 자연에 대한 약탈에 근거하고 있는 까닭이다.

 

78 저기 누워 있는 소상은 부처가 아니라 취해 잠들어 있는 이태백이랍니다.

81 광주리 가득 담긴 앵두

푸른 앵두 절반에 누런 앵두 절반

절반은 아들이 회왕에게 보내고

절반은 스승인 주지께 보내련다.

 

81 뜰에 푸른빛이 그득하고, 물결 치는 소리에 실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백간점이라는 이름도 줄기가 흰 이 소나무에서 여유한 듯 싶다.

 

94 결국 이렇게 보자면, 앞서 육국의 것을 본떠서 아방궁의 전전을 지은 것은 곧 미앙궁을 위하여 터를 닦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격이다.

 

106~107 “이 세상에 진실로 한 사람의 지기만 만나도 아쉬움이 없으리라.”

사람들은 늘 스스로를 보고자 하나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 즉 때로 바보나 미치광이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을 돌아볼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른 존재와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워진다.

성인은 이 도를 운용하셨기에 세상을 버리고도 번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움이 없었다.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냐하였고, 노자도 역시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면 나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로다하였다.

이렇듯이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치 않아서 자신의 옷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외모를 바꾸거나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곧 성인과 부처, 현자와 호걸 등이 세상을 하나의 노리개 정도로 간주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것과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 까닭이다.

-->어찌 군자가 아니면서 군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실천하기 힘든 부분 중에 하나가 군자의 마음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떤 사람한테는 이것이 삶의 목표이고 희망일텐데, 요즘 세상에도 이 군자의 도가 옳은 것일까?

한번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107 “내가 입고 있는 옷과 갓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고, 그 수염과 눈썹은 천하가 처음 보는 바이며, 반남의 박씨는 중국 천하가 들어보지 못한 성씨이다. 여기서 나는 성인도 되고 부처도 되고 현자도 되고 호걸도 되려니, 이러한 미치광이 짓은 기자나 접여와 같으나 장차 어느 지기와 이지극한 즐거움을 논할 수 있으리오.”

누군가 공자께서 송땅을 지나갈 때에 무슨 관을 쓰셨을까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리라.

 

아마 우물과 창고와 평상과 거문고가 벌여 있고, 바라볼 때는 앞에 계시더니 별안간 뒤에 계실 것이며, 또 물고기 가죽이나 표범 무늬처럼 변신이 잦았을 터이니, 구가 그 참된 모습을

알 수 있었으리오.“

그렇기에 선생님이 계신데 회가 감히 죽을 서 있겠습니까라고 한 안회야말로

공자의 유일한 지기였을 것이다.

 

124 아아, 슬프다. 축대 위의 황금은 없어졌건만 기다리던 국사는 오지 않는구나. 세상에는 원수가 없는데도 원수를 갚으려는 일은 그칠 때가 없으니, 축대 위에 놓인 황금도 세상에서 사라질 수가 없구나!

 

125 이 금이 남의 무덤에서 훔친 물건인지,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인지, 또 이 금 때문에 몇 천 몇 백 명이 독살되었는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어인 까닭인가?

원컨대, 천하의 인사들은 돈이 있다 하여 꼭 기뻐할 일도 아니요, 없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굴러올 때는 천둥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처럼 무서워하며, 풀섭에서 뱀을 만난 듯 오싹하며 뒤로 물러서야 할 터이다.

-->물질만능주의는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50년 전에도, 그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문제로 갖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언제쯤이면 자본주의에 살면서 돈에 대해 의연해 질 수 있을까?

얼만큼 가져야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쯤 돈의 위력과 두려움을 알 수 있을까?

요즘 tv를 보면 돈과 관련되지 않은 뉴스가 거의 없다.

아주 적은 돈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씁쓸하다. 돈에 대한 가치와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하는 하지 않을까?

 

144 북쪽 변방 깊숙이 자리 잡아, 명목은 피서지만 사실은 황제 자신이 북쪽 오랑캐를 막고

있는 셈이다.

 

151 수레바퀴는 서로 부딪히고 사람 어깨는 서로 스치니, 땀은 비 오듯 하고, 소매는 장막을

이루었도다.

 

154 살아 남은 자의 괴로움으로는 부모의 상에 너무 슬퍼하다 목숨을 잃는 이,

아들을 잃고 눈이 먼 이, 질동이를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이, 거문고 시위를 끊은 이,

숯을 머금고 벙어리가 된 이, 통곡을 하다 성을 무너뜨린 이,

나랏일을 위하여 몸을 송두리째 바친 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죽은 이에겐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그들에게 괴로움이란 없을 것이다.

 

155 또 사람들이 흘히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즈음에서 서로 위한하는 말이라고는 고작

이치를 받들라는 것이 전부이다.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 그 순간의 이별이야 굳이 괴로움이라 할 것이 못 된다.”라고

그러고 보면, 이별의 괴로움 중에 하나는 가고 하나는 남겨지는 때보다 더한 것은 없다.

 

184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 주어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거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지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옛날 우임금이 강을 건너는데 황룡이 배를 등에 짊어져서 몹시 위험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뚜렷해지자 용이든 지렁이든 눈앞의 크고 작은 것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이다.

외물은 언제나 귀와 눈에 누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 듣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도록 한다.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험난하고 위험하기가 강물보다 더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병통에 됨에 있어서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많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각오하면 무서울 것이 별로 없다.

최악에서는 좋아지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188 몸은 안장에서 스르르 옆으로 기울어지곤 한다. 솔솔 잠이 쏟아져서 곤한 잠을 자게 되니 천상의 즐거움이 그 사이에 스며 있는 듯 달콤하기 그지없다.

이야말로 취한 가운데 하늘과 땅이요, 꿈속의 산과 강이었다. 바야흐로 가을 매미 소리가 가느다란 실오리처럼 울려 퍼지고, 공중에선 꽃들이 떨어진다.

깊고 그윽하기는 도교에서 묵상할 때 같고, 놀라서 깨어날 때는 선종에서 말하는 돈오와 다름이 없었다.

--><열하일기>가 여러 곳에서 무릎을 치게 만들지만 이 부분도 섬세하고 적합한 표현력에 또 한 번 무릎이 쳐지는 곳이다.

연암의 외모만 본다면 이런 글을 썼을 것이라고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직접 말 위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에 취한 상태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과 느낌을

고스란히 잘 표현했다.

 

212 게다가 우리나라 양반들은 나면서부터 존귀한 체하는 태도가 심해, 중국 사람을 보면 만주족이건 한족이건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되놈이라 부르며 깔본다.

-->239 ‘우리나라가 명나라를 섬긴 지 200년 동안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여 속국으로 일컬어지곤 했으나 실상 명과 조선은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었다.’라는 부분과 대조적인 표현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명을 사대하고 동경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생각과 행동을 했다는 건가?

 

281 마치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둥글기도 하고 모나기도 한 것과 같은 셈이죠.

따라서 고금 천하에 윤회 또한 없다 할 수 없고, 환생 또한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화식을 끊는 사람도 없지 않고, 장생불사하는 사람 또한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미혹에 빠진 것이요, 이런 이치를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 역시 미혹에 빠진 것입니다. 간혹 이 같은 이치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간혹 있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만 가지 이치를 다 꿰어 맞추려 하거나 천하를 온통 바꾸려 한다면, 그건 더욱 미혹에 빠진 것입니다.

 

283 기풍액이 즉시 운율 틀린 곳을 세 군데다 지적하더니, 다시 접어 탁자 위에 놓았다.

이어 윤가전의 율시 하나를 보여 주면서 붓으로 몇 군데에 점을 찍었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개똥이로군. 일하는 꼬락서니도 이 수준일 테지.”

어찌 그리 야박하십니까?”

그러자 기풍액은 즉시 개똥두 자를 찢어서 입에 넣고 씹어 버린다.

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른을 조롱하더니 개똥 씹는 벌을 자청하는군요.”

-->연암의 재치와 유머가 돗보인다.

 

293 지구는 둥글어 본래 음양이 없는데, 마치 살림꾼이 동쪽 이웃에서 불을 빌리고 서쪽 집에서 물을 얻듯 붉은 해로부터 불을 받고 맑은 달로부터 물을 얻으니, 한쪽은 불이요 또 한쪽은 물인지라 이를 소위 음양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를 억지로 오행이라 이름을 붙여 상생이니 상극이니 하는데, 그렇다면 큰 바다에 풍랑이 일 때에 불꽃이 너울너을 타오르는 건 어인 연유일까요.

 

294 사람의 일도 모르는 터에 하늘의 일을 어찌 알겠소.

 

299 하하, 모르겠나?

늦가을에 난 병아리에게 여러 차례 씨를 받으면 사오 년 뒤에는 베개 속에서 꼬끼오 하고 우는 고마 닭이 된다네. 이놈을 침계라고 부르는데, 말도 역시 종자가 작아지기 시작하면 나중에 더 작아셔저 침마가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301~302 이는 다름이 아니라, 말을 다루는 솜씨가 틀렸고 말을 먹이는 방법이 옳지 못하며 좋은 종자를 받을 줄 모르고 관원들이 말 기르는 방법에 무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채찍을 잡고 말을 타는 자마다 우리나라엔 좋은 말이 없다고 떠들어 댄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말을 다루는 솜씨가 틀렸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릇 동물의 성질이란 것도 사람이나 다름없이 힘들면 쉬고 싶고, 답답하면 풀고 싶고, 굽으면 펴고 싶고, 가려우면 긁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비록 사람들이 여물을 줘야 먹는 처지이지만, 때로는 제 마음대로 편하게 늘어지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따금 굴레와 고삐를 풀고 물가에 놓아 주어 답답한 기운을 풀어줘야 한다.

(중략)

사람과 말이 서로 뜻이 통하지 않아 사람은 툭하면 욕질이요,

말은 언제나 사납게 노기를 띤다. 이 때문에 말을 다루는 솜씨가 틀렸다고 말한 것이다.

-->250년 전에 씌여진 글이건만, 이런 생각 자체가 놀랍다.

연암은 진정으로 살아있고 깨어있는 자이다.

 

304 때에 맞춰 만물을 길러 내어 만물의 성정을 다 살린다.

 

304~305 관원들이 말 기르는 법에 무식하다고 말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나라의 사대부들은 보통의 허드렛일은 일체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옛날에 어떤이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에게 콩을 좀 더 주라고 했다가, 이조 전랑의 자리에서 떨려난 적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근자엔 어떤 학사가 말을 아주 좋아하여 말을 보는 기술일 백락이나 다름없는 정도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칭찬을 해주기는커녕 도리어 옛적에는 양고기 잘 굽는 도위가 있다더니, 지금 세상에는 말 잘 다루는 학사가 다 있네.” 하며 비웃어 댔다.

그 습속의 치우침이 이런 지경이다.

그 결과, 말 기르는 일을 한 나라의 큰 정책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수치로 여겨 하인들의 손에만 맡겨 두니, 직책은 감목이지만 사람은 양반 벼슬아치인지라 말 기르는 법에 대해선 도통 알지 못한다.

이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우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양반들의 실질적인 학습에 대한 게으름을 꼬집고 있다.

 

311 내 나이 늙어 아침저녁 풀잎에 이슬과 같은 신세라오. 선생은 한창 활동할 나이니 또 다시 연경에 오게 되면 응당 오늘 밤을 떠올려 주시오.

 

312 우리나라 사람은 한문을 안 뒤로는 모든 글을 중국에서 빌려 읽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역대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치고 꿈 속에서 꿈을 점치는 꼴 아닌 것이 없다.

상투적인 공령문이나 운치 없는 시문이나 짓는 처지에, ‘중국에는 볼 만한 문장이 없다고 말한다.

 

313 우리나라 사람은 중국 선비들이 황제의 은택을 칭송하는 걸 보기만 해도, 문득

“<춘추>의 의리를 읽기나 했겠어?”

하면서 말끝마다 연..의 저잣거리에 비분강개한 노래를 부르는 선비가 없다고 탄식을 한다.

-->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깍아내리기만 한다.

 

313 작거나 크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무엇이든 법을 두려워한다.

법을 두려워하므로 벼슬에 신중하고, 맡은 바 직무에 신중하므로 제도가 한결같다.

 

313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섯 가지 망녕됨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명나라 유민들의 자기 모멸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능멸하는 실제 내용 역시 중국의 자가 이니며, 그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세 가지 어려움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능멸하고 말고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314 이미 자공의 재주와 계찰의 지혜가 없으니 비록 여러 가지 악기와 춤추는 도구가 날마다 앞에 펼쳐져 있어도 정치와 도덕의 근원을 알아채지 못한다.

하물며 입만 열면 태고적 음률을 운운해 대고서야 어찌 그 시대의 쇠퇴함과 융성함을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갈피도 없거니와 짐짓 실정에 맞지도 않는 허랑한 질문을 해대니 이 무슨 꼬럭서니인지.

 

 

314 어떤 경우에는 단도직입적으로 명나라를 잊지 않았느냐고 물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이런 일들은 그들이 피하는 일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손해가 막심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환심을 사려면 반드시 대국의 명성과 교화를 찬양하여 먼저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또 중국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어 그들의 의구심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러는 한편, 예악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고상한 취향에 맞춰 주어야 하며 틈틈이 역대의 사적을 높여 띄워주되, 최근의 일은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대국을 여행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316 제왕이란 문자와 수레바퀴를 똑같이 하여 제도를 통일할 뿐이다.

청나라의 신하라면 마땅히 지금 제왕의 제도를 따라야 하고, 청나라의 신하가 아니라면 따르지 않으면 그뿐이다.

 

317 ! 천하를 어리석게 만드는 방법이 실로 교묘하고도 깊다고 하겠다.

이른바 책을 사서 모아들이는 재앙이 불살라 버리는 재앙에 비해서 심하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318 엄계 꽃그늘 아래서 술을 마시면서 꽃잎에 맺힌 이슬에 붓을 적셔 이 글을 쓴다.

-->연암의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320 만일 이 땅에 빛이 반사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햇빛을 받아서 생기는 걸까요,

아니면 이 땅이 스스로 빛을 내는 걸까요?

 

320 저 또한 저만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나 천하 사람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무언가 탯성이처럼 가슴속에 쌓여 통 내려가질 않는답니다.

특히 겨울과 여름철이 되면 더욱 괴롭기가 그지없지요.

선생의 기이한 이론도 그런 답답한 심사에서 나온 듯한테, 아닌가요?

-->답답함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321~322 만물은 그 자체로는 빛을 내지 못하니 본제는 어둡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예건대, 어두운 밤에 거울을 들여다보면 목석처럼 아무것도 비치지 않지요.

이는 비록 거울이 비추는 성질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햇빛을 빌린 연후에야 빛을 내기 때문에 그 반사하는 곳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물과 밝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땅 덩어리 밖으로 바다가 둘러 있는 건 비유하자만 커다란 유리거울과 같습니다.

만일 달나라에서 이 땅을 바라본다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현이니 하현이니 보름이니,

그믐이니 초하루니 하는 현상이 있겠지요.

불교의 설에 의하면, 저 달 속에서 춤추는 듯한 것이 곧 땅에 있는 산과 강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이는 달이 둥글고 텅 비어 밝기만 한 것이어서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듯 대지를 그대로 복사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른바 철요형이란 것도 그림의 복사본처럼 산과 강의 높낮이가 달 가운데 그대로 비친 것이지요.

이는 모두 땅과 달의 본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달 속의 세계라고 말할 때,

거기에 정말로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땅의 빛을 설명하기 위해 달 속의 세계를 임시로 끌어왔을 뿐이지요.

달의 위치에서 이 땅을 바라본다면 이 땅 위에서 저 달의 밝음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연암의 사유의 세계의 방대함이 보인다.

 

323 인간은 일찍이 불과 물을 떠난 적이 없었으니, 다른 세계의 눈으로 본다면 물과 불 속에 인간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모든 벌레 중에서 물 속에 사고 있는 것은 고기와 자라만이 아닙니다.

비록 비늘과 껍질 있는 것들이 주로 물에 산다고는 하지만 날개나 털이 있는 족속 가운데서도 물에 곁붙어 지내는 놈들이 있지요.

물고기와 자라를 육지에 놓아두면 죽어 버립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진흙 속에 깊이 숨어 사는 놈도 있으니, 비늘과 껍질 있는 족속도 일찍이 흙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감히 여쭤보건대, 천하에는 진정 몇 개의 세계가 더 있을까요?

 

340 “눈이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고 진위를 살피지 못한다면, 눈이 없다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항상 요술을 부리는 이들에게 속는 것은 눈이 망령되기 때문인데, 이 경우 밝게 본다는 것이 도리어 탈이 된다고 할 수 있지요.”

비록 요술을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 소경은 눈속임하기가 어려울 테니, 눈이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요.”

 

341 제가 세 살에 소경이 되어 바야흐로 40년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걸음을 걸을 땐 발을 의지해서, 보고 물건을 집을 땐 손을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목소리를 들어 누구인지를 분별할 때는 귀를 의해서 보았고, 냄새를 맡아 무슨 물거인지 살필때에는 코를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만 나는 팔과 다리, 코와 귀 모두 눈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어디 다만 팔과 다리와 귀와 코뿐이었겠습니까.

날이 이르고 늦은 것은 낮의 피로함으로 보고, 물건의 형용과 빛깔은 밤에 꿈으로 보아서, 아무런 장애도 없고 의심과 혼란도 없었습니다.

한데, 아까 길을 거어오다가 홀연히 두 눈이 맑아지고 동자가 저절로 열로 눈을 뜨고 보니, 천지는 드넓고 산천은 마구 뒤섞이어 만물을 눈을 가리고 온갖 의심이 마음을 막게 되었습니다.

팔과 다리와 귀와 코는 뒤죽박죽 착각을 일으켜 온통 이전을 일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살전 집까지 잊어버려 돌아갈 방법이 없는 지라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중략)

이로써 보자면, 눈이란 그 밝음을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오늘 요술을 구경하는 데도 요술쟁이가 눈속임을 한 것이 아니라 실은 구경꾼들이 스스로 속은 것일 뿐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말로만 듣던 연암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처음으로 읽었다.

학교 교과시간 이외에 고전을 접해보지 않은 나에게 <열하일기>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려 항상 고민이었는데 그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적합했다.

연구원 1차를 준비하면서 이석증이라는 놈이 찾아 왔었다. 그 후유증 탓인지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아 많은 시간 애를 먹었다.

나의 비루한 지식은 한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몇 번씩 검색창을 이용하게 했다.

책에 있는 주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분명히 다 아는 한글이건만 눈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가관이었다.

 

1. 책의 내용

책의 내용은 총 7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도강록-성경잡지-일신수필-관내정사-막북행정록-태학유관록-환연도중록 으로 되어 있다.

한양에서 열하까지 6개월간 연암의 발자취를 뒤따라갔다.

집필 방식은 여정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하는 편년체방식이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거부감을 들지 않게 하였고, 여정과는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쓰여진 기사체방식의 글들이 공존하여 필요할 때마다 정리를 해주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2. 대중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 삽화와 사진

고전이라고 하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간간히 들어간 책 속의 삽화와 사진들이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처음 책을 받아 들고 한 번 대충 훑었을 때 그림과 사진이 많아 부담이 적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대중과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의 반 이상은 성공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3. 고미숙씨의 글은 퓨전음식과도 같다.

고전에서 노마드, 봉상스, 배가본드, 레퀴엠, 아포리즘 등의 단어를 접하니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역시 톡톡 튀는 것이 고미숙씨 다웠다.

이래서 고미숙체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자네 길을 아는가?”

(중략)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자칫 가벼워 보이는 표현도 있으나, 물과 언덕의 경계를 잘 걸어가면서 길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암처럼 말이다.

 

4. 유머코드

분명히 연암은 유머스러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가끔은 빵 터지게 했고,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행동이 연상되어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머무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연암이 웃을 때마다 같이 할 수는 없었다.

고전에서 주는 뉘앙스와 생소한 단어들이 마음까지 들어오는데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고, 이 부분에서 시대의 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5. 보완점: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고전

책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 중의 하나는 친절한 주석과 그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가며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동안 고전을 많이 접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지만 독자의 눈높이를 조금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김 문식씨의 <정조의 생각>처럼 조금 더 쉽게 다가간다면 세계 최고의 기행문을 조금 더 빨리,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고미숙체도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6. 좋았던 장절.

성경잡지 부분의 예속재에서 만난 친구들과 밤새 필담으로 대화를 나눈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어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서 언어를 아는 것을 힘으로 표현하는가보다.

 

예속재 상인들과의 필담으로 오고 간 대화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글을 알고 있는 박지원에 대한 경외와 이틀밤이나 남들의 눈을 피해 모이는 그들의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그리고 연암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틀밤을 새우고도 지새고도 예속재를 떠날 때 내밀던 책은 정성이 가득 담겨져 따뜻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IP *.213.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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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2 22:58:59 *.104.9.186

저도 군자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행분들의 흔적들을 봅니다.

함께하는 인연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2.17 11:47:07 *.94.164.18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1주일이라는 시간이 빠르네요.

피울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같이 여행할 수 있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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