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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11시 45분 등록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10기 김정은

 

 

1.     저자에 대하여

 

빅터 프랭클 (1905 ~ 1997)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제 1, 2 차 세계 대전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다. 2차 대전 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3년을 보낸 그는 매 순간 맞닥뜨리는 죽음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남았다. 이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의학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로고테라피를 창시했다.

 

1997년 그의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그의 말은 그의 삶 자체였다. 31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그의 책들은 24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20세기 유럽사의 대량학살의 시대에 유럽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시련의 의미를 살려내어 고유한 학파를 완성한 위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일생을 시련이 오기 전에, 시련 속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시련이 오기 전에

 

빅터 프랭클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사이가 좋았다. 어머니는 명문 가문의 딸로 부드럽고 자애로운 성격의 여성이었고, 어머니와 정반대로 아버지는 가난한 제본 기술자의 아들로 스파르타적인 인생관과 의무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빅터 프랭클은 로르샤흐 테스트(단순한 그림을 통해 사람의 내적 심상을 알아보는 일종의 심리테스틈) 결과 그는 극단적 합리주의에서 예민한 감정주의에 이르는 폭넓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받았었다고 그의 회고록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이는 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향을 고루 물려 받은 결과일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다 재정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관직에 몸을 담아 사회복지국의 국장이 된 그의 아버지는 프랭클의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지원하였다. 빅터 프랭클은 고등학교 시절,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의사의 꿈은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 시절 그의 친구로부터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문장을 듣게 되었고, 그 말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때부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로서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그 결심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시련 속에서

 

하지만 의학 박사를 받은 프랭클에게 의사로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병원을 개업하고 몇 달 뒤 19383월에 히틀러의 군대가 오스트리아로 진격해 들어온 것이었다. 1942, 나치가 그와 아내를 함께 체포했고 프랭클은 1944년에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그 후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그는 오직 그의 정신적 자식과도 같은 원고를 완성할 것을 생각하며 수용소 생활을 견뎌냈다.

 

빅터 프랭클의 베스트셀러 <죽음의 수용소에서> 1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의 목차를 보면 그의 체험이 전해오는 것 같다. 카포, 우리 안의 또 다른 지배자,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집행유예 망상, 삶과 죽음의 갈림길,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냉담한 궁금증,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지 말라, 혐오감, 무감각, 주검과 수프,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메마른 정서, 수용소 안에서의 정치와 종교,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강제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강제수용소에서의 유머,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상대적 행복을 느꼈던 환자 생활,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나 혼자만의 공간, 번호로만 취급되는 사람들, 운명의 장난, 테헤란에서의 죽음, 운명을 가르는 결정,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엇갈린 운명, 무감각의 원인, 인간의 정신적 자유, 시련의 의미,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살아야 할 이유,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집단 정신치료의 경험, 비통과 환멸….

수용소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에서 시련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프랭클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

 

빅터 프랭클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모든 가족, 친지, 친구들이 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자살할 것을 염려했으나 오히려 그는 그 고통스러운 현실에서도 시련의 의미를 찾는다. 이내 그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프랭클은 그의 정신적인 자식인 그의 원고를 집필하는 것에 몰두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의 책은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또한 그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는데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부른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시련이 없었다면, 그는 그저 많은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삶에서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친 사람들이여! 빅터 프랭클을 보라! 시련은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P8 “프랭클 박사님, 박사님의 책이 정말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런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우선 나는 우리 시대의 불행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목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인, 맛집, 멋집 등 아름다운 것만이 살아남는 우리 시대 불행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보자.

 

P10 처음에 나는 익명으로 쓰는 이 책이 나에게 문학적인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 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내가 썼던 여러 권의 책 중에서 처음으로 익명으로 출판하려고 했고, 그래서 저자의 명성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이 책이 이렇게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참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평소에 나는 유럽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에게 거듭해서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저자가 고민한 것에 공감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기가 두려운 것,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보며 다시 고통 받을 것, 나를 사랑하는 이가 본다면 고통 받을 것…. 등 남아있는 다른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익명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름을 남겨둔 것에 감사 드린다.

 

 

옮긴이 서문

P14 그는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성자처럼 버티어 나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환해온 산 증인이다. 지난 1997, 92세의 삶을 마칠 때까지 그의 영혼은 호수처럼 맑았다고 후학들은 전하고 있다.

 

성찰에도 장인 정신이 있는 듯 하다. 자신의 내면을 닦으면 닦을수록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추천의 글

P15 이렇게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 낸 실존적 분석’,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각각 다가오는 몰살의 공포에 떨면서 그는 어떻게 삶이라는 것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 상황에 맞닥뜨리면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뉘어지리라. 짐승이 되어 남의 것을 빼앗고라도 먹어야 하는 부류, 굶주림의 극한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끝내 버리지 않는 부류. 나도 후자가 되고 싶다.

 

P17 반면에 프랭클은 신경질환을 여러 형태로 분류한 다음, 그 중에서 noogenic neuroses와 같은 몇 가지는 그 원인이 환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거부하지 않고, 그의 업적 위에 기꺼이 그 자신의 것을 쌓아 올리는 것. 자기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실존적 치료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그들과 유대를 맺으며 공동보조를 해나가는 것. 자기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실존적 치료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그들과 유대를 맺으며 공동보조를 해 나가는 것. 이런 관대함이 프랭클 이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이론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에 자신의 것을 쌓아 올리는 것! 유대와 공동 보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배움이다.

 

P18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는 인간이우스꽝스럽게 헐벗은 자신의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이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았다. 프랭클은 이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무감각의 복잡한 흐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제일 먼저 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냉정하고 초연한 궁금증을 갖는 것에서 구원을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곧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남아 있는 삶을 지키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가까이에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으로, 종교에 의지하거나, 농담을 하는 것으로, 나무나 황혼 같이 마음을 치유해 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단지 한번 바라보는 것으로, 그들은 굶주림과 수모, 공포 그리고 불의에 대한 깊은 분노의 감정들을 삭인다.

하지만 명백하게 몰상식한 이런 시련에서 더 큰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지 않는 한, 위에서 이야기한 순간적인 위안들은 그들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아 줄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우리는 실존주의의 중심적인 주제와 만나게 된다.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 낼 수 있다.”

 

강제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자유뿐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P20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환자들이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에게 상황이 아무리 참담해도 무언가를 위해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깨우쳐줄 수 있을까?

 

옆 교실에서 수업을 마친 교사가 울면서 나왔다. 우리는 아무 말없이 눈인사만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그 교사를 다시 만났다. 버스를 기다리며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청소년 전문 상담 교사였다.

제가 아이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정이 밀집해 있는 초등학교에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여 심리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검사 결과에 따라 특정 학생들을 추려내어 집단상담을 실시한다고 했다.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상담 결과에 따라 자살 고위험군으로 다시 추려져서 특별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교사는 현재 맡은 아이들이 자신의 상담을 받고, ‘자살 고위험군이 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이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심리 상태가 너무나 심각한 수준이어서 도무지 긍정적인 결과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 너무나 가혹한 대답일까? 나의 학생들이 그 해답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P26 저명인사의 시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탈리아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유서들만 모아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된 소식을 접했다. <이탈리아 저항운동의 유서>이다.

 

그 책에서 41세의 가구 장인 피에트로 베네데타가 그의 아이들에게 유서로 남긴 내용이다.

공부와 노동을 사랑해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거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은 인생의 훈장이다.

….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신조로 삼고,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의 소망과 고통에 항상 신경 써 다오. 자유를 사랑하고 이 보물을 위해서라면 끝없는 희생을, 때로는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노예의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어머니 조국을 사랑해라. 하지만 진정한 조국은 세계라는 것. 어디에나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너희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80년대 노동 운동을 하셨던 나의 아버지 말씀과 너무나 유사해서 보고 또 보았다.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와 80년 대의 대한민국이 유사한 역사적인 배경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위의 유서를 곱씹어보면 내가 내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P29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 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 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들 중에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과 다국적기업,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처음에 나는 일의 부가가치가 낮아서 급여가 낮은 수준이 되면 노동 시장 안의 경쟁 수준도 낮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반대였다. 부가 가치와 급여의 수준과 치열한 경쟁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경쟁은 어느 곳에나 있다.

 

대기업 부장들이 가끔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소기업의 이사급으로 옮겨갈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이란 것에 대한 경쟁은 기업과 직급에 상관없이 치열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P30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털어 놓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었다. 이 책을 쓸 때 나는 원래 내 수감번호만 쓰고 이름은 익명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원고를 완성했을 때, 익명으로 책을 출판할 경우, 책이 지닌 가치의 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용기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장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P32 이 일로 나는 보수를 받았다. 1944년 성탄절 직전에 소위 말하는 상여배급표를 받은 것이다. 이 표는 우리가 사실상의 노예로 팔려간 건설회사에서 주는 것이었다. 건설회사는 수용소 측에 수감자 한 사람당 일정한 액수의 일당을 지불하고 있었다. 회사는 쿠폰 한 장당 50페니히를 지불했는데, 그 표로 대개는 몇 주 후에 담배 여섯 개비를 바꿀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유효기간이 지나 쿠폰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그때 나는 신나게도 무려 담배 열두 개비를 바꿀 수 있는 쿠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담배를 수프 열두 그릇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고, 수프 열두 그릇이면 한동안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1불 버스 요금을 아껴 1불짜리 햄버거를 사 먹었다. 그것이 하루에 한 끼였지만 한 시간 걷는 노동과 끼니를 해결하는 것 그 두 가지 일 중에서 선택하자면 끼니를 해결 하는 쪽이 항상 선택되었다. 담배의 유혹은 굶주림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수프의 유혹보다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삶의 의지가 남아 있는 이상!

 

P32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었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남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저 즐기려는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경우였다. 따라서 어느 날 동료가 자기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자신을 지탱해 나갈 힘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그 믿음을 잃고 나면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다시 생기기는 힘들었다.

 

그렇다! 삶의 의미를 알고, 삶의 의지가 있다면 굶주린 인생이라 해도 그저 즐기려는생각은 좀처럼 할 수 없다.

 

도살장 아우슈비치에 수용되다

P35 마침내 우리는 역 안으로 들어갔다. 최초의 정적이 고함치는 명령 소리에 의해 깨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모든 수용소에서 그 거칠고 날카로운 고함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또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마치 희생양의 마지막 비명 소리와 같았다. 하기야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그들의 목에서 컥컥거리며 나오는 그 쉰 목소리는 칼에 찔리고 또 찔려서 죽어가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애쓸 때 나오는 소리와 비슷했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 지지 않는 소리가 있다.

 

 

집행유예 망상

P36 정신의학에 보면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암흑의 수용소에서 눈을 뜨면 세상이 보일 거야 라며 얼마나 외쳐 보았던가! 그러한 집행 유예 망상으로는 시련의 의미와 삶이 주는 메시지를 바로 보기 어렵다.

 

P37 ‘즐거운 저녁 한때를 위해 필요한 슈냅스를 사는 데 몇 천 마르크의 돈이 필요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기수들에게 슈냅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술로 자기 자신을 마취시키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하지만 나와 함께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언젠가는 자기에게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이며,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노숙자들은 구걸한 돈을 카지노에 갖다 바친다. 처음에는 그것이 전혀 이해가 안되었다. 그것을 모아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모습이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비난할 것인가? 그들은 집행유예 환상을 시로 남긴 것이다.

 

Casino

 

Heaven

Or

Hell under the sky

 

Here,

In the boundary of my life

 

Anyway,

Life is

Winning or not winning

Cheating or being cheated

 

Happy or unhappy

My life is my own life

 

Throw away my daily hell

Try to have my dream occur

My dream is to go heaven

 

Throw away my daily hell

Trust to chance for my dream

My dream is to be a millionaire

 

Here,

Heaven with cigarettes, drinks and fantasy

Anyway,

I am an already winner in my life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P41 그때 나는 한 고참 수감자에게 비밀을 털어 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에게 살며시 다가가 외투 안 주머니에 있는 원고 뭉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이건 과학서적의 원고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어요.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운명에게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말도요. 그렇지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원고를 지켜내야 하거든요. 제가 일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것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는 이해하는 듯했다. 희미한 미소가 그의 미소에서 번져나갔다. 표정이 처음에는 동정 어린 빛을 띠더니 점점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이 웃음이 경멸과 비웃음으로 바뀌는 듯 하더니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수용소 생활을 체험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말이다.

빌어먹을 놈!”

그 순간 나는 진실의 실체를 보았다. 그리고 심리적 반응의 제1단계를 특징짓는 감정, 즉 충격을 경험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박탈당했던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3년 간의 수용소 체험 중 이 경험이 가장 충격이 된 경험이었을 것 같다.

 

P43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우리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이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심지어는 털 한 오라기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그 동안의 삶과 한계를 연결시켜 주는 물건 중 과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안경과 벨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벨트는 나중에 빵 한 조각과 바꾸어 먹고 말았다.

 

P44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섬뜩한 농담기가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자신의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서로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다. 어쨌든 샤워기에서 정말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저소득층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 안에 개그 본능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대개의 경우 진지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학생들 앞에서는 배우처럼 돌변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재미있게 해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냉담한 궁금증

P45 이런 종류의 이상한 유머 외에 우리를 사로잡는 또 다른 감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궁금증이었다. 그 전에도 나는 어떤 낯선 상황에서 제일 먼저 궁금증이 고개를 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런 냉담한 궁금증이 심지어 아우슈비츠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꾸었다. 우리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한번은 쌀쌀한 늦가을에 샤워를 하고 아직 물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밖에 서 있었는데, 우리는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몹시 궁금해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그 궁금증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우리 모두 감기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

P46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것 말고도 이와 비슷하게 놀라운 일을 많이 경험했다.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도 병원 순례를 하면서 우리나라 의학은 모두 거짓! 이라 느낀 적이 있다.

 

P47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저에게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물어보지 말아 주세요.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고 싶으니까요^^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P49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지 말라

P50 “겁내지 말게! 선별을 두려워하지도 말게! 의사 M(친위대의 주치의)은 주치의에게는 약하다네!”

그렇지만 단 한가지만은 자네들에게 당부하겠네.”

그는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예를 들어 만약 자네들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고 해보자. 나치대원이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면 당장 그 사람을 따로 분류하고, 그 다음날 틀림없이 가스실로 보낼 거야. 자네들은 회교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불쌍하고, 비실비실 거리고, 병들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고된 육체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회교도라고 한다네. 조만간에, 아니 대개는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회교도들은 가스실로 보내지지. 그러니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걸어서 서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그러면 더 이상 가스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여기 있는 자네들, 이곳에 온 지 스물네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거야.”

 

혐오감

P51 레싱이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P52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감정들과는 별도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정도가 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무감각

P54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P57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P58 욕을 하는 대신 그는 장난하듯이 돌멩이 한 개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그 행동이 나에게는 맹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가축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와는 닮은 점이 전혀 없어서 벌을 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향해 하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내 오랜 친구 중에 엉덩이가 선천적으로 기형인 장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별과정에서 그와 같은 장애인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P60 “이 돼지 같은 새끼. 처음부터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일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지. 네 이빨로 더러운 쓰레기더미를 팔 때까지 한번 기다려봐! 그러면 너는 짐승처럼 죽을 거야. 아니 이틀 안에 아주 요절을 내주지. 일이라고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놈이야. 전에는 뭐했지? 이 돼지새끼야. 장사했나?”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조금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죽이겠다는 위협에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의사, 전문의였습니다.”

의사였다고? 사람들로부터 돈푼께나 긁어 모았겠군.”

사실대로 말씀 드리자면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뒤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더니 나를 쓰러뜨렸다. 그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P64 두 번째 단계의 주된 징후인 무감각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불확실하면 오로지 한 가지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지게 된다. 즉 내 자신의 생명과 친구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과제이다.

 

P65 그와 같은 긴장상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할 필요성과 결합되어 수감자들의 정신세계를 원시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밖에서 정신분석을 배운 적이 있는 동료 수감자들은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퇴행현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정신세계가 원시적인 수준으로 퇴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그들의 소원과 욕망은 꿈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P67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과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그러자 저항력이 없어졌다. 같은 막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모두 다음에는 누가 죽을 것인지, 그리고 자기 자신은 언제 죽을 것인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징후가 보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P69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경험했던 영혼을 파괴시키는 정신적 갈등과 의지력의 충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 사람들은 모른다. 참호 속에서 땅을 파고, 빵이 배급되는(만약 배급이 된다면) 오전 9시 반이나 10– 30분 동안의 점심시간 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손꼽아 기다리고, 감독에게 그가 마음씨 좋은 사람일 경우 지금이 몇 시냐고 계속 물어보고, 외투 주머니 안에 있는 빵을 장갑도 끼지 않은 언 손으로 살살 만지다가 손톱만큼 떼어서 먹어 보고, 그러다가는 마지막 남은 의지력으로 빵을 도로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오후까지 참겠다고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런 상황을 말이다.

 

수용소 안에서의 정치와 종교

P75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아마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말이 우리가 석방되기 전, 전쟁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인 바로 그 시점에 그의 영혼에 작용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실현된다.

P75 수용소에서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 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P77 그때 한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P79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P80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P81 어쩌면 나는 내 고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곧 닥쳐올 절망적인 죽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 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으며,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소리를 들었다.

 

P83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강제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P84 우리가 게걸스럽게 수프를 먹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이 술통위로 올라가 이탈리아의 아리아를 한 곡 불러 제켰다. 우리는 그 노래를 정말로 좋아했으며, 그에게는 곧 바닥을 긁어서 퍼주는’ – 이것은 콩알 몇 개가 더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프 두 국자가 상으로 돌아갔다.

 

P85 일반적으로 말해서 수용소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는 어떤 종류의 예술 행위든 어느 정도 기괴한 측면을 띠고 있었다. 수용소에서 예술과 관련된 행위에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음울한 현실과 예술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유머

P87 때로는 다른 동료들이 미래와 관련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풀려난 후 어느 날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자기가 풀려났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는 그 집 안주인에게 이렇게 부탁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밑바닥에서 퍼주세요.”

유머 감각을 갖추고 사물을 유머러스 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번 유추를 해보자.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방에 들여 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P90 그런가 하면 또 우리는 공장에 들어가 안전한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을 얼마나 부러워했는가!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는 그런 한 조각의 행운을 얻는 것이 당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P91 그런가 하면 감독이 그곳의 전통이라면서 수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작업반에 배치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작업반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아니면 가더라도 잠시 동안만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P92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 - 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 - 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상대적 행복을 느꼈던 환자 생활

P95 병동에 누워있은 지 사흘 째 되는 날 나는 야근 당번에 편성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주치의가 달려와서 발진티푸스 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다른 수용소에서 의료 자원봉사자로 일하지 않겠냐고 물어 봤다. 친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작업반에 들어갈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내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 전처럼 비 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P96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의 대상으로 전락 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P97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글자 그대로 군중 속에 자기 자신을 파묻으려고 애를 썼다.

절박한 자기 보존의 법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법칙은 될 수 있는 대로 눈에 띄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치대원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항상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운명의 장난

P105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 같이 매시간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세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 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오토.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있나? 우리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네 아내를 다시 만났나? 그리고 기억하나? 자네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자네에게 내 유언을 한마디 한마디 외우게 했던 것을.

 

운명을 가르는 결정

P107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했다 게다가 심각한 무감각 현상이 팽배해 있었다. 무감각은 수감자들의 감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P109 소지품을 모두 챙기기 위해 나는 내 막사로 뛰어 들어왔다. 음식을 받아 먹는 그릇과, 죽은 발진티푸스 환자에게 상속 받은낡은 벙어리 장갑 한 켤레, 속기 부호가 쓰인 종이 몇 장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이 내 소지품이었다.

 

P110 선생님도 나갈 건가요? 나는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슬픈 눈초리를 피하기가 힘들었다. 회진이 끝나고 나서 나는 다시 그에게 갔다. 내가 친구에게 함께 탈출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를 엄습했던 그 불편했던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다. 난 갑자기 운명을 내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막사 밖으로 뛰어 나가 친구에게 그와 함께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엇갈린 운명

P114 그로부터 여러 주가 지난 후, 우리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운명의 신이 우리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는 더욱 그랬다.

 

무감각의 원인

P115 물질적인 요인 외에 정신적인 요인도 있었는데, 그것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

P119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지니고 있던 전형적인 심리적 특징에 관한 문제를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소개하고,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은 인간은 철저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P120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입증해 주는 예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있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P121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에 증언을 주고 있다. 그들이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시련의 의미

P122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 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P123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지고한 도덕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 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리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예 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강제 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처에서 인간의 운명과, 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P126 강제 수용소에서 내가 직접 그 죽음을 목격 했던 한 젊은 여자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가 마치 한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이 젊은 여자는 자기가 몇 일 안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아주 명랑했다.

나는 운명이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타격을 가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 전에 나는 제멋대로였고 정신적인 성취 같은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녀는 창 밖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이 나무가 내 외로움을 달래 주는 유일한 친구랍니다.”

저는 저 나무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나무가 이렇게 대답해요. 내가 여기 있단다. 내가 여기 있단다. 나는 생명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우리는 앞에서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수감자들은 심리학적으로 관찰해 보면 내면 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둔 사람이 결국 수용소의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내적 소유를 이룰 수 있으며 또 이루어야만 하는 것일까?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P131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 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들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P133 매일 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의 푹신한 의자의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 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미래 그 자신의 미래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P135 인간의 정신 상태 - 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 - 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 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는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마비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꿈속의 목소리가 했던 말이 맞기는 맞았던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

P137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P13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 하는 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P139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완수해야 할 시련이 얼마인고!

P140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란 삶과 죽음, 고통 받는 것과 죽어 가는 것까지를 폭넓게 감싸 안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의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 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 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부종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 봤다. 그랬더니 그가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자살방지를 위한 노력

P141 수용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금하는 엄한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목을 매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에 달려 있는 줄을 끊는 것도 금했다. 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P142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창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집단 정신치료의 경험

P145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 이것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P146 “그대의 경험, 이세상 어떤 권력 자도 빼앗지 못하리!”

경험뿐이 아니다. 훌륭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겪은 고통 이모든 것은 비록 과거로 흘러 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져 왔다.

 

P147 그리고 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에 대해 얘기했다.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에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견디어 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P148 한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 달라는 기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 있는 것이다. 그의 희생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닌 희생이다. 그는 헛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수용소의 여러 가지 인간 군상

P152 우리는 세상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 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해방의 체험

P153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 이나 이 단어의 되뇌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 서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 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말해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솔직하게 얘기 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 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얼마나 많이 꿈에서 사기를 당해 왔던가!

 

해방 이후에 나타난 현상들

 

 

 

 

 

 

 

3. 내가 저자라면

 

 

먼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지적 레이스의 주제로 잡아주신 변경연 교육팀 관련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셀 수 없이 여러 번 탄성을 질렀다. “이건 내 이야기야!” 심지어 꿈에 아우슈비츠가 나오기도 했다. 책이 두껍지 않고, 활자가 큰 편이고, 글의 묘사가 어렵지 않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한 권의 책만 읽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 이유는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 체험은 내게 실마리가 되어 기억나지 않았던 나의 수용소 체험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내 것으로 바꾸고, 화자가 내가 된다면 이 책의 1 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내 이야기가 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에게 닥쳐온 시련에 대한 생생한 체험 수기인 1 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과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자산의 독특한 정신 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안하게 되는데 이를 설명하는 2 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삶의 의미 발견을 위한 노력을 역설하는 3 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다.

 

매 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빅터 프랑클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체험이라는 저자의 시련에는 나의 시련과 다른 점이 있었다. 먼저, 그의 시련은 처절했지만 3년이라는 시간의 한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수용소에서는 그 시련의 끝이 언제인지 몰랐다) 두번째로 그는 수용소 체험을 그의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그는 의사로서 그의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네번째로 그는 그의 정신적 자식과도 같은 원고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지켜내야만 했다.

 

1 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서 발견한 위의 네 가지 시련의 특징은 그가 반드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시련이 아무리 처절하다 하더라도 언젠가 끝이 날 시련이라면,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있다면, 의사로서 죽어가는 동료들을 살려내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게다가 미완성의 정신적 자식인 원고가 있다면 살아 남아야 한다! 이것이 또한 저자가 실제로 장수한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 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을 읽으면서 수박 겉만 핥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겉도 제대로 핥지 못했다. 그 맛을 느끼기에 너무나 압축된 내용이었다. 방대한 연구결과를 적은 양의 지면에 정리한 것으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로고테라피의 개념을 맛본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애초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로고테라피의 개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는 2 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을 소개하면서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후에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성취한 한 가지 예로써 자신의 경우를 들었을 것 같다. 이 책의 제 2 부는 1부 이후의 연장선 상에 있다. 1부가 시련의 의미를 묘사하고 있다면, 2부는 시련을 극복한 후 삶의 의미를 찾은 예로써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다.

 

3 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제 2 부에서 소개한 그의 이론의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시련은 나치의 수용소에도 있었고, 현대인의 직장에도 있다. 빅터 프랭클은 실례를 통해 시련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깨달아 현대인의 신경 질환과 정신 질환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그의 목소리는 울림을 준다.

 

세 부분을 각각의 책으로 엮어도 좋을 것 같다. 1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문학 작품인 시나 소설로 재탄생해도 좋을 것 같다. 2부 로고테라피의 개념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의 전공 서적으로 분류될 것이다. 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따로 사례집으로 묵으면 학교나 직장 등 현대판 수용소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련이 있게 마련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처절한 체험 수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나도 책을 쓸 것이다. 그것이 체험 수기 형식일지, 사회과학 책의 형식을 따를지 아직 알 수 없다. 아니면 시나 소설이 될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나 문고판 사실주의 동화책이 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나는 끝도 없는 시련 속에서, 주위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도움만 받아야 하며, 살아갈 의미를 단 한가지도 떠올리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나의 책은 시련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깨달은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다. 죽기 전에는 시련의 끝을 맞이할 수 없는 불치병을 앓는 인물도 등장할 것이다.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외로운 인물도 등장할 것이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매 순간 도움을 받기만 해야 하는 인물도 등장할 것이다. 마치 미래가 없는 듯 살아가는 인물도 등장할 것이다. 그들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수히 많음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빅터 프랭클처럼!

 

IP *.65.15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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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1:51:07 *.94.164.18

잘 읽었습니다.

우리 모두 시련의 의미를 잘 찾아 떠나는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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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8:20:20 *.65.153.233

네~~ 시련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을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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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4:27:52 *.94.41.89

저도 책 한권을 꼬박 일주일 내내 읽었답니다. 왠지 모든 말에 공감이 되서 줄을 다 긋고 말았다는 ㅎㅎ

나중에 어떤 책을 쓰실지 많이 기대 됩니다 ^^* 카지노에 대한 시도 인상 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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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8:22:50 *.65.153.233

책 한권을 통째로 타이핑 치고 싶었지요^^ 제 시가 인상깊었나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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