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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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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1일 08시 29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20세기 대표적 지성이란 평가를 듣는 버트란드 러셀(영국, 1872~1970)은, 98세로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학문과 현실 분야에 참여한 활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수학과 철학분야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나 그 외에도 과학, 윤리학, 사회학, 교육, 역사, 정치학, 논쟁술 등 많은 분야에서 7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고 대안학교를 직접 수립하기도 했으며 수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작 <수학의 원리>(1903), 상업적 성공을 거둔 <서양철학사>(1945), 가장 훌륭한 저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자서전>(1967~1969)까지 60년 이상 고른 저술활동을 했으며, 일반대중을 위한 개론서와 에세이부터 전문서적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을 펴냈다.   

  엄청난 저술활동을 하는 동시에 현실 문제에도 직접 뛰어들어 활동했으며, 자유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벌금형을 받고 모교인 캠브리지 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되기도 했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미국에서도 보수파들의 반대에 부딪쳐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는 등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지식과 실천 양쪽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어려움은 영국에 돌아와 교수가 되고(1944) <서양철학사>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사회적 명성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부터 평화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수소폭탄 실험을 반대하여 아인슈타인과 공동성명을 내고 핵무장에 반대하는 과학자모임의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90세가 넘는 나이에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사르트르와 함께 국제전범재판소를 소집하는 등 평생에 걸친 평화운동, 핵무장 반대운동을 했다. 

  35세에 여성의 참정권과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낙선이 예상되는 하원의원에 입후보했을 정도로 진보적이었으며(물론 낙선함) 88세에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적 불평등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서 경제혁명을 통해 경제 정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미국의 패권주의와 ‘힘에 대한 도취’를 경고하며 약자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러셀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나, 3살 때 어머니가 병사하고 2년 후 아버지도 죽어 형과 함께 청교도였던 할머니 밑에서 양육되었다. 가정교사를 통한 교육으로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없었으나 일찍부터 자신의 내면세계에 눈을 뜨고 확실한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이런 성장 과정의 영향 탓인지 러셀은 ‘행복’과 ‘사랑’에 대해서 평생 관심을 가졌다. 4번의 결혼과 많은 연애 속에서 어느 정도 행복과 사랑을 성취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러셀의 자서전을 통해서 꼭 확인해 볼 생각이다- 평생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불같은 열정을 쏟은 것만은 확실하다.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행복의 정복>서문), ‘보편적인 사랑이야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사>)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인류에 대한 행복과 사랑에 대한 확신이 러셀을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또한 자서전에서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 대한 추구, 인류의 아픔에 대한 연민’이 자신의 인생을 이끈 화두였다고 스스로 밝혔듯이, 또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는 감옥에서 썼듯이 진실을 추구하고 그것을 평생 행동으로 옮긴 러셀은, 자신의 신념과 불같은 열정을 이성과 분석이라는 논리적 방법으로 세상에 마음껏 표출한 20세기 영웅이었다.


(러셀은 영웅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웅주의와 자기희생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행복을 경시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본문 823p. 그러나 나는 기꺼이 러셀에게 ‘영웅’의 칭호를 붙이고자 한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자, 우리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영웅이었다.) 



* 내가 저자라면


  <서양철학사>는 러셀이 미국에서 반즈 재단에서 2년 정도 하던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고 러셀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러셀은 시종일관 자신의 현실 참여적이고 자유주의적 관점을 통해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철학과 역사를 논한다. 이러한 러셀의 관점은 비평가들의 편견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이 책의 성공 비결이기도 했다. 나 또한 명확하고 일관된 관점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술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이란 표현은 극히 드물게 사용되어야 하며(저술활동 자체가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특히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하고 평가하는데 있어서 저자의 가치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대로 행동한 저자의 작품은 그 신뢰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대학교 교양철학교재로 사용되기도 한다는데 내가 대학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고민의 깊이가 얕아서 지금처럼 감동받지는 않았을까?

  책 자체에 대한 감동보다 더 큰 것은 버트런드 러셀에 대한 감동이었다.

  작년에 <행복의 정복>을 읽고, 세상이야말로 나의 생존을 지탱하는 토대이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회이므로 외부세계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찾으라는 그 명료한 주장에 깊이 공감했고 세상 속에서 나의 의미와 역할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이번에 <서양철학사>를 읽고 또 저자의 삶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면서 세상에 대한 러셀의 치열한 관심과 사랑이 자신과 역사에 대한 깊은 탐색으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새삼 확신할 수 있었다.  


  러셀 책의 특징인 서론의 논리적 구성과 탁월함은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10쪽이 조금 넘는 서론을 통해 1000쪽이 넘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 주고 있으며 또한 저자가 어떤 관점을 통해서 집필했는지, 또한 논리적 구성과 일관성을 맛보여 줌으로서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서론은 요약인 동시에 결론으로서 책을 읽기 전 개론의 형태로 읽으면서 본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책을 다 읽은 후 (정말) 긴 내용을 마무리하고 독자의 의견과 감상을 정리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서문의 힘이 바로 러셀의 저술의 힘이자 러셀이 추구한 논리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독자를 매혹시키는 서문의 힘에 대한 실례를 본 것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스 문명의 발흥에서 시작한 고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부터 존 듀이를 거쳐 논리 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빠지지 않는-물론 러셀의 주관적 관점에서-기원전 6세기에서 1940년대까지 인류 역사의 개관, 이 자체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내용을 거시적인 접근과 동시에 한 철학자의 논리를 자세히 분석하는 미시적인 접근까지 종횡무진 펼쳐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저자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고 알고 있으며 치열한 성찰과 탐색을 통해 자신의 논리와 주관을 확실히 세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단편적이었던 세계사적 지식들이 배경지식과 철학이라는 깊이를 가지고 새롭게 내 속에 재정리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또한 그동안 왕조와 정치 위주의 역사 교육이 사회와 철학, 과학, 문화사를 연결한 교육으로 확장되어야만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배울 수 있다는 평소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탁월한 인물이 등장한 후 한동안 그 분야에 침묵기가 찾아오고 오히려 발전과 다양한 논의를 봉쇄하기 때문에 꼭 열린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은 현대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역사속의 교훈이며, 내가 철학자로만 알고 있던 많은 탁월한 인물들이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사실은 수학의 논리성으로 우리의 사고를 훈련할 수 있으며 수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통해 학문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또한 ‘글로벌 시대’, ‘국제화’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하는 것은 도구로서의 단순한 영어가 아니라, 우리 밖의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식, 그리고 열린 마음이라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철학이 과거의 죽은 지식을 이야기하고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학문으로 나와 동떨어진 이론이 아니라, 나와 내가 사는 세계를 설명하고 암묵적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통합한다는 것이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며, 특히 타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철학의 정립은 필수요건이다. 당연히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 우리 개인의 철학의 역할이다.


  쓰고 싶은 주제에 관련된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수집하다보면 내용들 사이에 연결과 윤곽이 드러나 전체를 파악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적어 내려갈 뿐이며, 그 후 맑은 정신으로 검토한다는 글쓰기에 대한 부분(189p)은 이 책에서 덤으로 얻어가는 즐거움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작은 아쉬움은 있었다.

  ‘역사’를 다룬 책이기 때문에 고대, 중세, 근현대 별로, 다루어진 인물과 중요 사건이 표시된 연대표가 있었다면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좀 더 쉽게 정리되어 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러셀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하여 뺀 듯도 하지만 주석으로라도 등장인물에 대해 출신국가(현재의 국가 명까지) 명을 넣어 주었다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고대 편의 경우 그 시대의 영토 및 영역이 표시된 간단하게 지도를 넣어주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 부분은 <로마인 이야기>에서 만족도가 컸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가장 아쉬움이 컸던 부분은 책 자체에 대한 부분이라기보다 각 시대의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의 정도에 따라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가 달랐다는 점이다. 물론 러셀이 본문 중에서 중간 중간 관련된 문화와 정치에 대한 개략을 넣고 있으나 나의 경우에 통합적인 이해에 부족함과 아쉬움이 있었고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다른 세계사 책과 함께 보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물론 이 점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셀의 <서양철학사>처럼 깊이 있는 <동양철학사>를 읽고 싶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긴 희망이며, 지나온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아주 솔직하게 진술했다는 러셀의 <자서전>을 꼭 읽겠다고 다짐했다.   

IP *.10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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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23:41:35 *.106.7.10
두꺼웠던 책을 다 읽고 리뷰를 마치고 나니 정말 많은 것이 정리된 느낌입니다.
이런 기회가 제게 왔음에 깊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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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
2010.02.22 12:39:54 *.53.82.120
저도요~!!  ^^

2주차 과제를 마치고 나니
함께 달리는 분들이 새로보입니다.

오버인줄 알면서도 박수를 참을 수가 없네요.  ^^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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