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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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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00시 28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의 목사 아들로 1875년 태어났다. 영적인 기운이 있던 어머니쪽 핏줄과 신학을 공부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독특한 기운에 사로잡히곤 했다.

한창 자라던 청소년기에 어머니 쪽 친척이었던 영매 소녀 헤리와의 정기적인 영향으로 영적인 영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로 혼자 있으며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의과대학을 전공했으나 졸업과 동시에 심리분석을 통한 자신만의 고유영역을 개척했으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감명받아 한창 연계작업을 진행했으나 결국은 바라보는 시야의 차이로 결별했다.

그 이후,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도 등을 여행하며 원시적인 종교등에 연계된 무의식을 원형이론으로 체계
적으로 정리하였으며, 만다라, 불교, 힌두교 등에도 정통했다.

주로 여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분석을 진행하였으며, 부인 외에도 비서로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켜준 토니와 몇몇 매력적인 여성 환자들과도 교류하며 남성속의 무의식적 여인인 아니마, 여성속의 아니무스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나는 융의 심리학을 설명하는 책은 이전에 몇 권 읽었었고, 무의식과 페르소나로 대변되는 그의 사상에 마음의 위로를 느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라는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는 무엇인가 설명하기 어려운 안개 같은 모호함이 저자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왜 영매이야기와 귀신과 유령이야기 등이 융과 함께 할까? 왜 그런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그는 혹했던 것일까? 하는 것이 전반적인 나의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이 자서전을 읽고 나서 많이 해소되었다. 그의 탄생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는 기운들과 어린 시절에 그가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느낀 의문과 궁금함, 그의 숙명에 대한 그의 여러 저항들이 충분히 인간적으로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년이 되어 이 자서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다는데,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기억이 어찌 그리도 상세하고 정확한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솔직히 만년의 그의 사상까지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무의식을 원형이론으로 끌어내기까지의 고독과 치열한 사투는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효율적으로 강조하는 현대사회를 보고 경고한 말들 역시 나의 관점과 많이 일치하기에 그를 든든한 나의 정신적 배경으로 삼고 나의 틀을 좀 더 견고하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러머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잇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13)

 

나는 나무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날, 하늘은 푸르다.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다. 유모차 덮개는 젖혀 있다. 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막 눈을 뜨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와 꽃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온통 경이롭고, 다채롭고, 그리고 찬란하다. (23-24)

 

그 우유는 맛이 좋고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우유냄새를 의식하는 순간이었다. 이 기억 역시 아주 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4)

 

나는 하녀가 어떻게 나를 안아올렸으며 어떻게 내가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댔는지 지금도 생각난다. 나는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하는 그녀의 이마 주변과 심하게 그을린 피부의 목덜미, 그리고 그녀의 귀를 기억하고 있다. 이런 것이 나에게는 무척 생소하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하게 느껴졌다.(24-25)

 

나에게 주 예수는 어쩐지 일종의 죽음의 신처럼 여겨졌는데, 예수가 밤의 유령을 물리쳐주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었으나, 그 자신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투성이 시체가 되었기 때문에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늘 찬양을 받는 그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나는 남몰래 의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례식을 항상 연상케 하는 검은 프록코트와 광택나는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주로 사랑하는 주 예수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35)

 

그때 비로소, 그 두가지 체험에서 의식화되려고 고투하기 시작한 생각이 얼마나 지나치게 어린아이답지 못했는지, 얼마나 성숙했는지, 심지어 얼마나 노숙했는지 분명해졌다. 누가 나의 내부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의 정신이 이런 체험을 고안해냈을까? 얼마나 빼어난 통찰이 여기에 작용한 것일까? (37)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37)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51)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52)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59)

 

물론 나는 그 재능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기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상만을 그릴 수 있었다. (63)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66)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0)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저것이다! 저 마차는 분명히 나의 시대에서 온 것이다. 그 마차는 마치 내가 직접 타고 다녔던 것과 똑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다시 알아보는 것 같았다! (71)

 

하지만 이런 이상야릇한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어찌하여 내가 18세기에 속하는가? 그 무렵 나는 종종 1886년을 1786년이라고 쓰곤 했다. 그런 일은 항상 설명하기 힘든 향수가 동반되면서 일어났다. (72)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81)

 

남근상 꿈에 관해서는 내가 예순다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83-84)

 

그런 때는 저 돌 위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복된 평온함이 찾아왔다. 돌이 온갖 의혹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내가 돌이라고 생각하자 갈등은 멈췄다.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 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85)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91)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 (101)

 

하느님은 인간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될 수 있는 인격으로서, 그리고 또한 세계를 포괄하면서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하는 고유의 자아로서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2)

 

나 자신은 하느님이 인간이나 짐승이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잔인한 만족감을 느낀다고는 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자연법칙의 놀라운 조화라는 것은 가까스로 통제된 혼돈과 거리가 먼 듯이 보였고, 미리 예정된 궤도를 따라 별들이 빛나는 영원한 하늘은 단지 질서와 의미도 없는 우연성의 집합처럼 여겨졌다. (115)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왜 학식있는 책들 가운데 여기에 관한 것은 없단 말인가? 내가 그런 경험을 한 유일한 인간이란 말인가? 왜 내가 그 유일한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가? (124)

 

너는 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며 소박하고 한눈에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128)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 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 있는 영원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129-130)

 

동물들도 우리처럼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굶주림과 갈증, 그리고 불안과 신뢰를 경험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언어, 예리한 의식, 과학 들을 제외한 존재의 온갖 본질적인 요소들을 인습대로 경탄해 마지 않았지만, 인간들을 신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벗어나게 하여 동물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타락으로 이끌 가능성이 그 요소들에 있음을 발견했다. 동물들은 사랑스럽고 충직하며 변덕스럽지 않고 믿을 만하였으나, 인간들은 나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130)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어쩐지 가장 좋은 것만을 기초로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나왔다. 그는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의 섭리나 피조물의 조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류역사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자연의 잔인성에는 일종의 결함, 즉 세계창조의지의 맹목성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133-134)

 

그러는 동안에 자연과학과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나의 취향이 제2의 인격의 희생으로 강화되었다. 누구나 공상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158)

 

식물은 분명히 순진무구한 신성한 상태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식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159)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이 꿈은 나에게 심오한 계시와도 같았다. 그때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과제는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170)

 

아담이 일찍이 이런 방식으로 낙원을 떠난 것으로 여겨졌다. 낙원은 아담에게 유령이 되어버렸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돌밭을 경작해야만 하는 그곳에 빛이 있었다. (171)

 

지극히 이성적인 논의가 어떻게 그와 같은 정서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180)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 (182)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에게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낡은 시대의 한 조각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을 느꼈다. (185)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193)

 

그것은 인간영혼의 객관적인 형태와 관련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 즉 영혼의 객관적인 성질에 관해서 나는 철학자들이 말한 것 외에는 전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194)

 

그것은 거짓이라고 확신있게 주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한 성격을 띤 것 같은 그들의 방어에 대해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194)

 

아무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관계의 한정된 범주를 넘어서는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전대미문의 일도 아니요 세상을 뒤흔들 만한 것도 아니었다. (195)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싶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197)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

니체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아르헤톤에 대해, 마치 만사가 순조로운 것처럼 순진하게 조심성 없이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좋지 않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199-200)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0)

 

정상적인 것의 병적인 변형 (217)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226)

 

그녀는 사람과 동물들이 자기를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고는 이 소리없는 판결에 그토록 충격을 받고 더 이상 저주의 징벌을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235)

 

정신병 환자의 고통,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 (247)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대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248)

 

결정적인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잇는 것이다. (249)

 

의사는 모든 이론적인 전제에 매이지 않고, 환자를 실제로 충동질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불필요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론의 증명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자신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의 지평은 의사 상담실의 시야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150)

 

그런데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의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환자도 이를 배우지 못한다. 의사가 배워 알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환자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을 잃고 말 것이다. (250-251)

 

의사가 자기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의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251)

 

우리는 의식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252)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53)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264)

 

일상적인 저항에 지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진부한 가정에 동의할 용의는 없다. 저항은 특히 완강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개 그런 저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경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266)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270)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일종의 구획 심리학은 계발한다.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경증을 앓고 있다. (271)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다만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사회적응, 비극적인 삶의 정황으로 인한 억암, 체면차리기 등의 문제들이었다. (277)

내가 그러한 점들을 여러 번 표명했지만, 그럴 적마다 그는 나의 경험부족을 내세웠다.

나로서는 그러한 성에 대한 단호한 평가가 그의 주관적 전제와 어느 정도로 연관되어 있는지, 그의 성이론이 입증 가능한 경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되어 있는지 분명치 않았다. (279)

 

그에게 성욕은 일종의 종교적으로 관찰된 것이었다. (282)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항상 비종교성을 강조해온 프로이트가 일종의 교리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또는 그가 잃어버린 질투하는 신 대신에 성욕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강압적인 형상을 슬쩍 바꿔넣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그것은 원래의 것에 못지 않게 성질이 급하고 요구가 많으며 강압적이고 위협적이며 도덕적으로도 양가성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더 강력한 공포의 대상에 신적이거나 악마적인 속성이 부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 프로이트에게는 성적 리비도(Libido)숨은 신의 역할을 맡게 된 셈이었다. (282-283)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284)

 

그는 한쪽 면에만 치우쳐 있어,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그에게서 비극적인 모습을 본다. (285)

 

신성함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287)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287)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관심이 프로이트의 신경을 건드렸다. 프로이트가 몇 번인가 나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그런 시체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거지요? 그는 그 모든 것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그만 갑자기 실신하고 말았다. 그후에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시체들이 대해 떠벌리는 나의 모든 말이 내가 그의 죽음을 바라고 잇음을 뜻하는 거라고 확신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해석을 듣고 무척 놀랐다. 나는 그의 환상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충격을 받았다. (292)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295)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게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300)

 

그와 같이 투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객관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 판단을 고집하게 된다. (303)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릴 수 없다. (308)

 

이제 프로이트 개인의 심리가 왜 나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는지 분명해졌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이성적인 해결의 실체를 알아내야만 했다. 그것은 나에게 인생문제였으므로,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 해답이 눈앞에 드러났다. 프로이트 자신이 신경증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그 신경증은 쉽게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미국 여행에서 내가 발견한 바와 같이 무척 고통스러운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308)

 

이 꿈과 비슷한 꿈들과 무의식의 실제 체험을 통해 나는 이 유물이 결코 죽은 형태가 아니라 살아 잇는 정신에 속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었다. (319)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320)

 

81일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제 나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 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만 했다. (324)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326)

 

영혼의 구루도 있습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338)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341)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의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345)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346)

 

영혼, 즉 아니마는 무의식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사자(使者) 집단과의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무의식은 신화적인 죽음의 나라, 즉 조상의 나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349)

 

나의 학문은 나를 혼돈상태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며 수단이었다. (351)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353)

 

나는 자아(Ego)가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357)

 

원초적 이미지와 원형의 본체가 내 연구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3)

 

유형에 관한 책은 한 인간의 모든 판단은 그의 유형에 의해 제약되며 모든 관점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375)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인간 예수 이외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메시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오늘날의 개인이나 문화 공동체도 비슷한 위협 즉 대중화의 위험에 처해 있다.그리하여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 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환상을 보았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382)

 

맹목적인 수용은 결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답보상태로 있게 할 뿐이며, 그로 인해 다음 세대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된다. (387-388)

 

나중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형태, 즉 정신적 전체성의 상징을 이루게 된 것을 알았다. 마치 오래전에 뿌린 씨가 싹이 트는 것처럼 그 일이 전개되었다.

볼링겐에서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나 자신만의 고유한 본체로 존재한다. 여기서 나는 이를 테면 어머니의 태초의 아들이다. (400)

 

때때로 나는 내가 풍경과 사물 속으로 퍼져 들어가 각각의 나무 속에, 출렁이는 파도 속에, 구름 속에, 오고가는 동물 속에, 그리고 그밖의 사물 속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탐에는 10년 세원이 지나는 동안 온갖 것이 생성되어 성장하였고 그것들은 모두 나와 연합되었다. 모든 것은 그의 역사와 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여기에 배후의 공간 없는 영역을 위한 공간이 있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볼링겐에서는 고요함이 나를 에워싸고 사람은 겸허하기 그지 없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산다. (405)

 

나는 조상들에게 숙명적으로 던져졌으나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하며, 지나간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것을 내가 완성하거나 계승해야만 할 것 같이 늘 여겨진다.

집단적인 문제가 집단적인 문제로서 인식되지 않을 때는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처럼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적 정신영역에서 뭔가 혼란이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는 개인적인 영역이 장애를 받고 잇지만, 당연히 일차적이라고 보이는 장애도 오히려 이차적일 수 있고 사회분위기의 참을 수 없는 변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례에서는 장애의 원인을 개인적인 환경에서 찾을 게 아니라 도리어 집단적 상황에서 찾아야 한다. 정신요법은 지금까지 이런 사정을 너무도 고려하지 않았다. (417-418)

 

그무렵 나는 무의식의 존재에 관해서 아무런 자각도 없었으므로 나의 그러한 반응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또한 나는 미래가 정기적인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419)

 

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433)

 

격정적이고 기분대로 살아가며 생 그 자체에 한층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찰을 모르는 이러한 인간존재가 우리 안에 있는 저 역사적 층에 강력한 암시효과를 주었다. (436)

그렇다. 발전에 대한 맹신은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멀리 떼어놓을수록 더욱더 유치한 미래의 꿈에 매달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437)

 

많은 부분에서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유럽인에게 인간적인 것을 무척 낯설다. 유럽인은 합리적이니 특성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 인격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438)

 

다른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441)

 

이 성숙하고 위엄에 찬 남자들이 태양에 관해 말할 때 숨길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나로서는 깊은 울림을 안겨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448)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51)

 

그것은 까마득한 태초의 정적이요, 언제나 비존재의 상태로 있어온 듯한 세계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세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동반자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혼자라는 느낌을 가져보았다. 그때의 나는, 이것이 그 세계다! 라고 인식하고 자신의 지식으로 그 세계를 방금 이 순간 실제로 만들어낸 최초의 사람이었다. (457)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 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496)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라고 말이다. 는 이를 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516)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로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527)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532)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535)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536)

 

그가 죽음에 관한 신화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은 그가 들어갈 어두운 구덩이 외에는 아무것도 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화는 그의 눈앞에 다른 이미지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어쨌든 부인하는 자는 ()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54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572)

 

우리 시대는 모든 강조점을 이생의 인간에 두어왔다. 이로써 인간과 그의 세계의 신들림이 초래되었다. 독재자들이 출현하고 그들이 온갖 재앙을 가져오게 된 원인은, 영리하기 그지없는 지성인들의 근시안으로 인해 인간에게서 내세적인 것이 박탈된 데 있다. (573)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624)

 

우리가 태어난 이 세게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쪽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도 없기도 하다. 또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630)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유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을 거쳐 심리분석으로 환자를 치유하면서 스스로를 더 고찰하게 된 시절, 프로이트와의 만남, 아니마/아니무스 이론의 정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디언, 인도 등의 여행을 통한 무의식의 고찰과 만년의 사상과 회고까지를 삶의 순서에 따라 나열하였다.

 

자서전으로 이 책은 훌륭하다. 초점이 있고 문장도 아름답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 책은 자신의 모든 것 이었던 내적 사건과의 만남에 충실한 기록이라고 한 만큼, 그의 내적 세계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유아기의 황금빛 햇살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되어 있다. 서너 살 때 꾸었다는 꿈의 장면장면 세세한 표현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 꿈이 만년에 그의 사상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토록 어린 시절에 그의 내부에 발현하기 시작한 무의식의 존재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그의 어린 시절을 읽으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비슷한 기억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리오? 그리고 융이 예수회 수도사의 검은 옷에 죽음의 이미지를 덧칠했던 것처럼, 누구나 어릴 땐 자의적 기준으로 혼자 즐거워하고 혼자 무서워하기도 한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나의 어린 시절 꿈을 불러 일으켜 한동안 잊어버렸던 공상 속에 빠지게 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겐 그가 어릴 적의 여러 외부적 사건들을 어떻게 내적 사건으로 인지하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무의식과의 연계에 이를 수 있었는지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관심의 초점이었다.

 

또한 그 동안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주지 않는 절대 고독을 지닌 채 성장하고,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체험이 나중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형태, 즉 정신적 전체성의 상징을 이루게 된 것을 알았다. 마치 오래 전에 뿌린 씨가 싹이 트는 것처럼 그 일이 전개되었다. 라고 표현한 것을 보며 내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런 그의 글귀가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와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내가 태어난 몫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동료의식을 그에게서 느꼈다. 나는 아직껏 그와 같이 무의식과 나를 연계해보는 작업은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도 한번 시도 해보고 싶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듯하다.

 

다만 한가지, 이 책에서 그의 가족에 대한 감정이나, 외부 인사와의 교류에 대한 좀 더 많은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쉽다. 물론 서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이 책은 전적으로 그의 내적 체험을 근간으로 한 것이고, 만년의 그가 그 외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잊어버렸다고는 하나, 인간 융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도 자서전의 한계에 대해서 밝히듯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쓴다고 하나, 자신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다.

 

그러나 훌륭하다. 내가 나이 들어서 이런 자서전을 쓸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을 구성해왔던 조각조각을 훌륭하게 다시 기억하고 만년의 통합된 사상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 그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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