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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일 08시 49분 등록

청년 에커만이 괴테를 만났던 이야기를 담은 『괴테와의 대화』. 책은 첫 장부터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마도 머잖아 그 얘기를 할 것이다.) 한 달 동안의 독일 여행으로 괴테 가도와 로맨틱 가도를 택했다. 특히 괴테 가도를 따라 가며, 또한 이 책의 페이지를 넘겨 가며 괴테를 만나고 싶었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국립오페라하우스 뒤편에, 그리고 베를린 티어가르텐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괴테 동상.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괴테. 그의 사상에 조금이나마 닿아 보는 것이 이번 독일 여행의 목적 중 하나다.


책과 여행을 벗 삼은 나의 괴테 추구가 소극적이라면, 에커만의 괴테 추구는 적극적이고 정열적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에커만은 어쩌다가 하늘의 별을 따게 된 행운의 사나이라고. 이 생각은 에커만을 향한 괴테의 호감을 보며 사라졌다. 책장을 넘길수록 괴테의 애정은 점점 커졌다. 인용이 긴 것은 괴테의 깊어지는 애정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방금 자네 원고(에커만이 보낸 <시학 논고>를 말함)를 읽고 있었던 참이었네. 오전 내내 자네 글을 읽었는데, 따로 추천할 것까지도 없겠어. 자네의 글 자체가 훌륭한 추천서니까 말일세."

-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p.55


"베를린에는 좋은 친구가 많이 있는데, 최근에는 자네도 그 축에 낀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스쳐 지나가듯이 훌쩍 떠나버린다면 서운할 것 같네. 우리가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아. 좀 더 자주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군. 하지만 일반적인 화젯거리는 너무 범위가 넓다네. 그래서 뭔가 특수한 문제를 공통의 연결고리로 삼아 논의할 대상이 없을까 하고 서둘러 생각해 봤네. 여기 이 두 권은 <프랑크푸르트 학보>의 1772년분과 1773년분인데, 그 당시 내가 쓴 짧은 평론들이 거의 모두 실려 있네.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자네는 나의 문체나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으니까,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글과 구별해낼 수 있을 걸세. 내가 바라는 것은, 자네가 나의 이 젊은 시절의 글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해 보고 자네의 생각을 말해 달라는 것이네. 이것이 과연 앞으로 출판될 내 전집에 수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그러네."

- 같은 책. p.58


"자네가 겨우 며칠이나 몇 주일 정도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네. 여름 내내 눌러앉아 살면서, 가을 무렵에 내가 마리엔바트에서 돌아올 때까지 있어주면 좋겠네. 이미 어제 편지를 띄워서, 자네가 모든 면에서 편안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숙소나 기타 문제들을 해결해놓도록 했네."

- 같은 책. p.60


"솔직히 말해서 나와 함께 이번 겨울을 바이마르에서 지냈으면 좋겠네."

- 같은 책. p.62


"거듭 말하지만 바이마르에 머물도록 하게. 이번 겨울뿐만 아니라, 그곳을 아예 자네의 정착지로 삼게. 그곳에는 세계의 어느 곳과도 통하는 문이 열려 있고 길이 나 있네. 여름에는 여행을 하며, 보고 싶은 곳을 하나 둘씩 찾아갈 수 있지. 나는 50년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는데, 어딘들 가보지 못한 곳이 있겠나! 하지만 어딜 가도 항상 바이마르로 되돌아오고만 싶었지."

- 같은 책. p.64


괴테는 에커만을 가까이 두고 싶어했다. 여름을 함께 보내자고 했던 괴테가, 시간이 지나서는 겨울도 함께 보내자는 장면이 재밌다. 후에는 아예 자신의 거주지인 바이마르에 눌러살라고 권한다. 에커만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에커만은 괴테의 이런 호감과 제안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설명했다. "다시 괴테 곁에 함께 있고, 그가 얘기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니 나는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 내 온 마음을 그에게 다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지 그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이토록 즐거워하니 그의 행복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게 못 된다. 나는 에커만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는 정열적이고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괴테 연구에 있어서 아주 치열했다. 책임감이 아니라 전율에 이끌려 괴테를 연구했다. 행운은 준비된 자가 기회를 만날 때 탄생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못한 자가 기회를 만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회를 만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저 살아간다.


이제,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들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버렸다.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것들은 대개는 욕심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욕으로 서너 계단을 뛰어 오르려다 넘어지기보다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는 게 낫겠다. 허나, 나는 기회를 분별할 수 있도록 공부하며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련다. 행운이 찾아들지 않아도, 나는 내 길을 간다. 그건 행복한 일이니까.


대가를 만난 청년에 대한 부러움은 사라졌다. 대신, 대문호의 애정을 듬뿍 받은 자의 치열함과 성실함이 묻어난 구절에 자꾸만 눈이 간다. 『괴테와의 대화』를 읽는 또 하나의 유익이 생긴 게다. 행운을 창조하는 사람, 그들은 성실히 준비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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