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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4일 16시 08분 등록
 김찬호, 생애의 발견, 인물과 사상사 2009


“저와 잠깐 결혼해 주시겠어요?”


결혼 지속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프랑스에서 청혼할 때 그렇게 능청을 떠는 이들이 있단다. 이 짧은 말에 결혼제도의 변화에 대한 만감이 스쳐 간다. 이런 조크도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 번째 남편은 고고학자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고고학자 남편을 둔 것에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 왈,

“물론 있지요.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나에 대해 점점 관심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조크 하나 더. 날마다 투닥투닥 싸우며 사는 부부가 있었다. 어느날 부인이 남편의 수첩 속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고는 적잖이 놀라서 조용히 물어 보았다. 왜 자기 사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하자 남편은  힘들 때마다 살짝 꺼내서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아내는 가슴이 뭉클했다. 원수처럼 지내지만 그 사람 참 속 깊은 데가 있구나. 그리곤 ‘그래 힘들 때마다 내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남편의 대답인즉,

“당신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에 이 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에서 뽑아본 것들이다. 이 책에는 마치 ‘허무개그’ 같은 이런 조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더불어 산다는 것의 소중함에 마음이 짠해진다. 부부가 어떤 심정으로 살아야 할 지 울림이 크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어느 부부가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하여 싸움을 예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군인인 남편은 퇴근할 때 모자를 비뚤게 쓰는 정도로, 그를 맞이하는 아내는 머리를 꼭 동여매는 정도로 기분의 저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괜찮은 쪽이 좋지 않은 쪽을 배려해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싸움이 줄어들었다. 서로의 기분을 섬세하게 살피게 될 뿐 아니라 배우자를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기분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 기분이 그렇게 나쁜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확실하게 표현하면서 기쁨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모자를 아주 비뚤게 쓰고 퇴근했다. 공교롭게도 아내 역시 어떤 일로 기분이 몹시 나빴던지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마주친 부부는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여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곧 와락 달려들어 포옹했다고 한다.


이 책은 ‘유년부터 노년까지 한국인의 사회적 초상’에 대한 책이다. 학자의 시각과 자원을 가지고 대중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면 이렇게 멋진 책이 탄생하는 거구나 싶다. 그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한 꼭지만 읽어도 저자의 방대한 레퍼런스가 짐작된다. 가령 위에 인용한 사례들은 ‘부부, 사소한 것들의 중요함을 배운다’라는 꼭지에 나오는 것들인데, 이 꼭지는 불과 17쪽 밖에 되지 않는다.


길지 않은 분량에 ‘결혼’이라는 그 중요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제도에 대한 모든 것을 짚고 넘어간다. 그런데도 하나도 어렵지 않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데다가, 그 명쾌한 분석력에 기분이 통쾌해질 정도이다.


저자는 결혼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전 연령대에 대해 이처럼 재미있으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이 빛나는 스케치를 해 냈다. 거기에 동원된 인용이 얼마나 다양하고 촌철살인격인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저자는 하자센터와 대안교육부문의 활동가로 알고 있다- 실천적 철학이 얼마나 탄탄한지 실로 감탄스럽다.


가령 아이들이 얼마나 허약해졌는지 남자아이들의 정자 수가 이전 세대에 비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든지, 청소년기 말의 뇌에는 천 억개의 뉴런과 천억 개의 지지세포가 존재하는데, 이는 천억조에 달하는 연결을 만들어내며, 이 숫자는 전 세계의 인터넷 연결 수보다 더 많다는 부분에서 입이 쩍 벌어진다. 잠재력을 키워나갈 최고의 시기를 우리 청소년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20대에게는 우리네 사회의 고비용 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하며, 청년실업을 자신의 무능 탓으로 돌리고 자학하지 않도록  공부가 필요하다고 직언한다. 글로벌한 경제상황을 파악하고 토건국가의 구조를 꿰뚫어 보면서 부조리한 사회적인 맥락을 포착, 구조적인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한 정치적인 모색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는 거시적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견고해 보이는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틈새들을 찾아내, 발랄한 상상과 과감한 실행이 가능한 거점을 확보하여 유쾌한 놀이 감각으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자고 역설한다.


30대에 대한 분석도 명쾌하기 그지없다. 저자에 의하면 30대는 생애의 속살을 엿보기 시작하는 때인 동시에 삶의 모습이 천차만별로 분화되는 때이다. 이제 더 이상 응석을 받아주는 곳은 없다. 더 이상 연습게임도 없다.  인생의 승부를 어디에 걸 것인지 선택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진검승부를 하면서  냉혹한 실전을 치러야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섭렵한 자료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이 간다. 저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극진한 애정으로 그 자료들에 빛을 더한다. 독자에게 주는 조언이 마치 나 한 사람에게 주는 것처럼 간곡하다. 30대에게 주는 말을 들어보라.


때로 역주행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실타래가 엉키고 꼬일지라도, 조급해 하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주시하면서 침착하게 전진해야 한다. 자기만의 속도를 깨달을 것, 느림과 빠름의 역설을 실현할 것, ‘서 있으면 문이지만 밀면 문이다’라는 말처럼 미지의 시공간을 두들기면서 존재의 심층을 탐사할 것.


이 책을 읽으면 인생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일시적인 어려움에 함몰되지 않을 것 같다. 각 연령대가 가진 의미와 과업이 한 눈에 잡히므로,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도 있다. 삶과 공부에 대한 저자의 탐구와 열정에서 배우는 것도 크다. 그런데  '한국인의 사회적 초상'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국인의 인생에 삶이 없다고 통탄하는 내용의 서문을 다음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최소한 지금은 살아 있고 싶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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