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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4일 04시 54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신화학이라는 학문은 지금도 생소하다. 단군신화, 고구려건국 신화등, 신화는 알겠는데,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캠벨은 북미 원주민의 신화와 아서왕의 전설이 닮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감동한 부분은 이것이다. 흥미를 느낀 것만으로, 자신의 삶을 받친다. 그가 공부했던 시대는 대공황이었다. 금융위기인 요즘과 닮았으나,  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국가가 서로 잘 돕지만, 당시에는 협조 시스템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 요즘 말하는 88만원 세대보다 더 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대공황은 10년 가깝게 이어졌다. 주가가 폭락했고, 몇년간 상승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5년간 숲속에 들어가서 책만 읽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돈을 벌고자 아둥바둥하는 분위기에서, 초연하게 숲에 들어간다. 물론 그에게 부양할 가족이 없었다. 그렇다고 먹고살 걱정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숲은 신비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도 숲이 나온다. 현대에 2차세계대전 당시 군인이 등장하는등, 비현실적인 숲이다. 나침반이 없으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을 수도 있다. 주인공은 나침반을 버리고, 숲의 중심부로 깊이 깊이 들어간다. 나침반을 버렸다는 것은 용기를 가지고, 결심했다는 의미다. 주인공은 숲에 들어갔다가 깨닫고, 현실로 돌아온다. 숲은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같다. 숲에 들어갔다 나오면, 주인공도 변하고,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도 변한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숲보다, '터널'을 좋아했다. 그의 작품에는 터널이 간간이 나온다. 터널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상이 나온다. 10년 전에 그의 작품에 나온, 터널을 직접 찾아간 적이 있다. 산속에 있는 고급스러운 터널이었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출구 쪽에 빛이 들어오기는 하나 꽤 멀다. 얼른 빠져나오자, 연극의 장이 바뀌듯이 신선한 느낌이다.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터널은 퀴퀴하고 음습하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희망이 있다. 빛을 바라보며 한발 한발 내딛을 때, 터널안의 공포를 이길 수 있다. 숲은 다른다. 숲은 끝이 없다. 길을 잃고,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불확실하다.

캠벨도 숲에 들어간다. 불확실한 시대에 불확실한 곳으로 들어간다. 생각이 없어서일까? 치기어려서일까? 그가 들어간, 숲은 깊지도, 길을 헤맬 위험도 없겠지만, 대공황시대에 숲에 들어간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적이지 않은것을 행할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숲은 터널과 달라서, '통과'보다는 '상주'의 개념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기분전환은 할 수 있지만, 성장은 없다. 5년간 숲에서 책만 읽었다는 것은,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책만 읽은 것은,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크게 성장할려면, 불확실성을 소신껏 감수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견딘 5년 때문에, 캠벨은 충분히 보상받는다. 일가를 이룬 사람은 습작과 학습의 시기를 거친다. 비틀즈, 빌게이츠, 서태지등은 세상에 나오기전,  보통 이상의 연습시간이 있었다. 캠벨의 책은 이야기력이 강하다. 그의 서술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숲속에서의 5년은 이야기를 쟁여놓는 기간이었다. 21세기는 콘텐츠, 이야기의 시대다. 비단, 이야기하는 능력은 소설가나 영화감독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장사를 하지만, 장사 자체 보다는, 장사하는 방법을 파는 것이 더 사업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자가 더 부가가치가 높다. 캠벨의 이야기력, 서술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강력한 이야기력을 얻기 위해서 캠벨은 5년간 공부했다.

또 하나 상통하는 것이 있다. 다석 유영모는 함석헌의 스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안동 아무개 집에는 몇대째 내려오는 화롯불이 있다고 한다. 불씨를 몇개의 화로불로 나누어서 보존해왔기 때문이다. 불씨가 진리이고, 분산된 화롯불은 각각의 종교에 해당한다. 아마도 캠벨이 유영모를 만났다면, 프로이드와 융이 만났을 때처럼 반가워했으리라.

 

내가 저자라면
책을 엮는 것도, 책을 짓는 것과 같다. 편집도 저술이다. 해당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분량에 비해서, 큰 흐름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캠벨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잘 들어온다. 위대한 신화학자도, 백수시절이 있었고, 시시했을 때가 있었다.

'신화와 인생'의 주제는 '신화를 통해 본 성장'이다. 책의 레벨은 캠벨의 저술을 읽어본 독자에게 맞는다. 캠벨 선집으로서, 그의 인생 이야기도 있다. 둘을 나누어서 발행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방대한 저술에 대한, 에센셜은 캠벨 독자에게 유용하다. 같은 분량으로 에세이가 나온다면, 신화 입문서로도 괜찮고, 신화를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신화와 인생'에서는 신화와 그의 에세이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든다.

책 전체의 뼈대를 이야기할려고 하니, 막막하다. 뒤에 색인이 있는 것은 반가우나, 목차는 허술하다.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할려면, 내 스스로 목차를 만들어야할 정도다. '들어가는말, 도입의 단계(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의식의 첫 번째 단계(현세에서의 삶), 의식의 두 번째 단계(깨달음을 향한 길), 의식의 세번째 단계(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옮긴이의 말'로 구성된다.

'현세에서의 삶'에서는 에덴동산, 사랑, 결혼, 자녀, 돈, 학위, 캠벨 자신의 이야기, 일, 자아실현, 소명, 모험, 출가, 종말, 죽음을 이야기한다. '깨달음을 향한길'에서는 명상, 깨달음, 꿈, 의식, 상징, 환영, 은혜, 은유를.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에서는 예술, 환희, 직업, 훈련, 창조, 글쓰기, 작가, 영원, 신화를 말한다. 각각의 장에 어울리는 말을 하는 것은 맞다. 이야기들이 추상적인데, 구체적인 예가 부족하다. 신화를 예로 들지만, 신화 자체가 비현실적이어서 와닿지 않는다. 신화 만큼이나 작가 개인의 사례가 더 필요하다. 작가의 이야기는 전반부에만 구체적으로 나오고, 뒤에는 간간히 나와서 분량과 내용면에서 일관성이 없다.

독자는 책의 목차를 먼저 본다. 목차는 콘텐츠의 소개이자, 리모콘이다. 전체를 상징으로서 보여준다.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정작 목차가 허술한 것은 실망스럽다. 큰 그릇에 비슷한 내용을 쏟아 부은 것으로 끝이다. 콘텐츠는 먹기 좋은 조각케익 같아야 선택받는다. 정보가 범람하는 요즘에는 더 먹기 좋게,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 '도입의 단계'가 목차의 역활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처음 접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문제다.

빵집에 가면, 앙증맞은 케익들이 진열대에 올라있다. 케익이 콘텐츠라면, 진열대는 목차다. 케익의 크기와 색감에 따라서 진열이 달라진다. 분류를 세밀하게 할수록 알아보기 쉽고, 기억하기에도 좋다. 먹기 좋게 잘라서,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이 책쓰기다. 소설책도 아니고, 두루뭉실하게 목차를 나눈 것은 아쉽다. 나라면, 장을 세밀하게 나누고, 소제목까지 붙여서 최대한 독자를 배려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는 포장이 이쁘고, 분명해야 선택받는다.

신화 이야기와 캠벨의 인생이 유기적으로 얽혀야 이 책은 빛을 발할 것이다. 나라면, 대표적인 신화를 간추린다. 각 장마다 캠벨의 인생에 신화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하겠다. 이런 구조로만 끝나면, 심심하기에 중간 중간, 신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넣는다. 결론 부분에서는 신화가 캠벨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신화와 함께한 인생이 어떠했는 지 술한다. '신화와 인생'에서는 이 부분이 너무 적다. 추상을 받혀줄 구체적 예가 떨어지고, 작가의 인생과 신화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부족하다.

IP *.255.24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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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22:46:40 *.216.25.172
짧지만,  문장 사이 사이가 경쾌하고,  시원합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아무튼 캠벨은 자신의 삶을 신화처럼 살다 간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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