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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10시 3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러셀의 경력과 자취는 경이롭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이렇듯 열정적이고 다이내믹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나 생각될 정도이다. 그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논리학자, 역사가이며, 사회운동가이고 반전 평화주의자였다. 84 살에 펴낸 자서전에서 그는, 3 가지의 열정이 그의 인생을 주도했다고 한다. -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의 탐구,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그가 1872년에 태어난 이태 뒤에 어머니와 둘째 형이 디프테리아로 사망한다. 그리고 , 다시 2년 뒤에는 그의 아버지마저 사망하고 , 이어서 할아버지가 사망하여, 결국 할머니의 손아래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외로운 사춘기를 보냈으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가 4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것도 이런 그의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15 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수학에 심취하였으며 , 기독교 도그마의 정당성에 회의를 품고 18 살에 기독교를 버린다. <서양 철학사> 속에서 보여주는 기독교에 대한 그의 냉철한 분석적 고찰과 비판은 매우 흥미로워, 1927년에 쓴 <나는 왜 크리스찬이 아닌가?>를 통해서  그의 종교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처음 수학과 철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나 이후, 1896 년 <German Social Democracy>를 펴내면서 정치 및 사회이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10년 Whitehead와 함께 저술한 <Pricipia Mathematica>와 함께 그의 1903년 저서< The Principle of Mathematics >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러셀이 활동하던 시대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 '전쟁'과 '평화'는 시대를 대표하는 두 주제였을 것이다. 이미 동 시대의 대표적 지성이었던 그는, 1916년 개인적 신념에 따라 반전 평화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재직 중이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해고되고 6 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이후로도, 그는 핵무기 해체를 주장하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New Left 운동에도 관여하였다.  솔레니친을 작가 협회로 추방한 것에 대해 소련에 항의하였으며,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과 팔레스타인 침략 등에 대해 비판하는 등 평생에 걸친 신념- 부당하게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따라 정치적인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수많은 역작을 펴냈으며, 1950 년 <서양철학사><인간지식><결혼과 도덕>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러셀은 1970 년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어 재는 아무런 ‘종교적 세레모니’없이  산에 흩뿌려졌다.  20 세기 위대한 지성인이며 철학자 러셀은, 평생에 걸쳐 그가 탐구해 온 수학, 철학, 신, 종교의 본질인 우주 속으로 귀환하여 그 자신 또한 역사가 되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 17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중략)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이다.


p 18

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p 19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말해주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 따름이다. 또, 만약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망각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많은 일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다른 한편 신학은 사실상 무지의 영역까지도 안다는 독단적인 믿음을 이끌어냄으로써, 우주를 향한 일종의 주제넘고 오만한 태도를 양산한다.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에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지금도 철학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중략 )

신학과 구별되는 철학은 기원 전 6세기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p 29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전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p 34

모든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 문명의 돌연한 발생만큼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

(중략)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례적인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처음 만들어냈고,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 또, 그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본성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나갔다.


p 41

그리스의 정치체제는 일반적인 경로로 발전하는데, 우선 군주정치에서 귀족 정치로 나아간 다음 참주정치와 민주정치가 교대로 나타난다. (중략) 민주 정치는 모든 시민에 의한 정치를 의미했지만 노예와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p 57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헤르도투스는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는 역사가이며, 초기의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들도 후자의 경향을 따랐고, 어는 선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후자의 경향에 포함된다.


p 63

탈레스는 그리스 일곱 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하며, 일곱 현자는 저마다 현명한 격언 한마디로 유명하다. 탈레스는 “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격언으로 유명하지만, 이 가정은 오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물이 근본 물질이며 물에서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땅이 물 위에 물 위에 떠있다고 주장했다. 또 탈레스는 자석이 철을 움직이기 때문에 자석 안에 영혼이 있으며, 만물에 신들이 깃들여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p 76

기하학이 철학이나 과학의 방법에 미친 영향은 뿌리 깊고 의미심장했다. 그리스인이 체계를 세운 기하학은 자명한 공리들에서 시작하여, 연역추리들을 통해 조금도 자명하지 않은 정리들로 나아간다. 공리와 정리들은 경험 속에 주어진 현실 공간에 들어맞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먼저 공리를 인지한 다음, 연역을 사용하여 현실세계에 관한 정리들을 발견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견해는 플라톤과 칸트,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었던 철학자들 대부분에게 영향을 주었다.


p 77

나는 수학이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정확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킨 주요 원천이라 생각한다.


p 80

근대 철학을 지배한 가설들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인들이 처음 생각해냈는데,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성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그리스 인들을 다양한 이론의 창시자로 생각한다.(중략) 특히,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p 88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교는 두 가지 형태, 즉 신과 영혼불멸을 통해 영원성을 추구한다. 신에게는 변화 가능성도 변전의 기미도 없으며, 사후 생명 역시 영원하고 변화지 않는다.


p 108,109

기원전 430 년경 아테네의 규모가 가장 컷을 때, 노예를 포함한 인구가 약 23 만 명으로 추산되며,( 중략) 알렉산드리아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아테네를 능가했지만, 아테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활약으로 철학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p 125

데모크리스트 이후 가장 우수한 철학에서조차 우주보다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소피스트들과 더불어 회의주의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다음에는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윤리를 강조하고, 플라톤은 스스로 창조된 순수한 사유의 세계를 지지하기 위해 감각의 세계를 거부한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과학에 필요한 기본개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성을 가졌지만 그들의 사상체계는 후대에 큰 해약을 끼친 결점을 드러냈다. 그들의 시대 이후 철학의 활력은 사라지고, 점차 미신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상황이 재연되었다. 가톨릭 정통신앙이 승리를 거두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이 출현했으나, 찰학은 르네상스기에 이를 때까지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특징이던 활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p 127

문화의 혁신을 추구한 사상가들은 정치적으로는 반동세력으로 취급받기 쉬웠다.(중략) 그런데, 개혁 사상가들이 아테네보다 미국 내에서 정치적 힘이 더 미약한 까닭은 부유층과 제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부유층을 변호하려는 관심과 더불어 대단한 지성을 갖춘 중요한 계층이 바로 법인 변호사 계층이다. 그들이 맡은 몇몇 직무는 아테네에서 소피스트들이 수행하던 역할과 비슷하다.


p 153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와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 스파르타 국가는 나치가 승리했더라면 이룩했을법한 국가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p 166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나 중세, 근대에 속한 모든 철학자에게 영향을 가장 크게 끼쳤다. 두 철학자 가운데 후세에 영향을 더 많이 준 인물은 플라톤이다. 이렇게 말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플라톤의 영향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이 적어도 13세기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p 170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서 도출된 한 가지 결론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고대 동양 철학과 동일한 주장이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 정신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 국가는 살아나 빛을 볼 수 있다네.”


p 189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다른 내용들 하나하나에 익숙해 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으면 각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 갈 따름이다.


p 202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 말하자면 실재와 현상, 이상과 감각 대상, 이성과 감각 지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철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p 207

플라톤은 인간이 욕구를 최소로 줄이면 아주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가 육체노동을 면제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부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주 가난한 나라에서는 철학자들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법하다.


p 210

진정한 철학자만이 죽어서 천국을 가게 된다. “철학을 배우지 않아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완전히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신들의 회합에 참여하지 못하고, 애지자만이 신들과 합류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육욕을 멀리한다. 그들은 가난과 불명예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환이란 단지 육체에 붙잡혔거나 달라붙었다고 의식하기 때문에, 영혼은 철학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실재하는 존재를 감옥의 창살을 통해서 바라 볼 뿐 자신 안에서 자신을 통해서 보지는 못하며...


p 233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사상을 꽃피운 가장 창조적인 시기에 성장 했다, 그가 죽은 다음에는 필적할 만한 철학가가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2000년이 걸렸다, 이 긴 시기가 끝날 무렵,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만큼이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무소불위의 지위를 누렸기 때문에, 철학 뿐 만아니라 과학에 있어서도 진보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 요소였다.


p 263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고,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p 265

“노예제도는 편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제도로서, 노예는 자연적으로 주인보다 열등하게 태어난 존재였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복종 할 운명을 타고나고, 어떤 사람은 지배 할 운명을 타고 난다. 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소유물인 사람은 본성에 따라 노예가 된다. 그리스인들은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정신 능력이 낮은 열등한 인종은 당연히 노예가 되어야 한다. 길들인 동물들은 인간의 지배를 받을 때 훨씬 행복하며, 자연적으로 열등한 사람은 우월한 사람의 지배를 받을 때 훨씬 행복하다.”

(중략)

그러면 이제까지 살았던 모든 정복자의 행위는 정당화 된다.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옳고, 패한 자는 그르게 된다. 만족스런 결과가 아니가 !


p 266

“장사로 얻은 부는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돈에 상응하는 물건이 아니라 돈 자체에서 이득을 얻는 고리 대금은 혐오스럽기 짝이 없으며 혐오할 만한 근거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돈이란 교환을 위한 수단이지 이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 부를 얻는 모든 방법 가운데 고리대금업이 제일 부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증세 철학자들은 성직자들이고 교회의 재산은 주로 토지였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을 수정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고리대금에 반대하는 중세 철학자들의 입장은 반유대주의로 강화되는데, 유동성 자금은 대부분 유대인이 소유했던 탓이었다.


p 276-285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은 형이상학 분야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최고 권위를 부여한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 논법 학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삼단논법 형식 이론을 제외하면 전부 거짓이라고 결론짓는다. 오늘날 논리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가 아리스토텔레스나 그의 제자들의 저술을 읽게 되면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다.

논리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가 부활될 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2000년 동안 군림하게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졌다. 사실 근대 전반에 걸쳐 과학, 논리학, 철학 분야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는 과정을 거쳐서 진보했다.


p 291

발사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운동한다는 갈릴레오의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 속한 그의 동료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루에 한 번 자전하고 한 해에 한 번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견해를 확립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성서와도 맞서 싸워야만했다.


p 292,296.302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뛰어난 재능은 다른 분야보다 수학과 천문학 분야에서 분명하게 발휘된다. 수학적 증명 방법의 기원은 거의 다 그리스인에게서 시작되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은 지금까지 저술된 위대한 저술 가운데 그리스인의 지성이 보여 준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리스인들은 ‘현상을 구해내는’ 가설을 찾는 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정확하게 천체의 운동 문제를 다루었다. 이전 천문학자들이나 코페르니쿠스까지 이르는 후대 천문학자들을 비교해 보면, 어느 연구자이든 그리스 천문학자들의 참으로 놀라운 천재성에 압도당 할 것이다.


p 349

스토아 철학, ‘신은 세계와 분리되어있지 않다. 신은 세계영혼이기에 우리 각자가 신성한 불의 일부를 품고 있다. 만물은 자연이라 부르는 단 한 계체를 이루는 부분들이다. 개인의 삶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선한 삶이 된다. (중략)

개인의 삶 속에서 유일한 선은 덕이다. 건강, 행복, 재산 같은 것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덕은 의지 속에 존재하므로, 어떤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선하거나 악한 일은 무엇이든 그 사람 자신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p 368

스토아 철학자들이 자연법과 만민법을 구분했다. 자연법은 일반적인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는 데 일 원리들에서 도출 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라 만인이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중략) 그리스도교는 이 부분에 해당하는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많은 점들과 함께 물려받았다. 그리고 , 마침내 17세기의 전제정치에 효과적으로 맞서 전투를 벌일 기회가 왔을 때, 스토아학파의 자연법 학설과 자연권 학설은 그리스도교의 옷으로 갈아입고, 고대의 어떤 황제도 결코 부여하지 못한 실천적 힘을 획득했다.


p 378

로마의 철학자들은 그리스의 철학 이론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국 로마는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에 기생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로마인들은 고유한 예술 형식을 고안해내지 못했으며,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내지도 못했다. 그들은 최상의 도로를 닦고, 체계적인 법전을 편찬하고, 유능한 군대를 육성했으나, 나머지는 그리스에 의지했다.


p 413

유대인들은 구세주가 현세의 번영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여기 지상의 적들에 맞서 승리를 거들 것이라 믿었다. 게다가 구세주는 장차 나타날 분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구세주란 역사 속에서 등장한 예수로서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또 구세주를 따르는 자들이 승리를 거둘 곳도 지상이 아니라 천국이었다.


p 417

유대 민족과 다른 고대 민족을 구별하는 특징은 유대인들이 보여준 불굴의 민족적 긍지였다. 다른 민족들은 모두 정복을 당하면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도 복종하곤 했다. 그러나 , 유대인들은 유독 민족적 탁월성을 계속 믿으며, 자신들이 겪는 불행이 신앙과 종교의식의 순수성을 잃은 탓에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확신했다.


p 437

기번은 그리스도교 성장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1.사실 유대교에서 비롯되었으나 편협하고 비사회적인 정신을 씻어 낸 그리스도교의 불굴의 정신과  이단을 관용하지 않는 종교적 열의

2.강화하고 유효하게 만들 여건이 조성될 때마다 개선한 내세 교리

3.초기 교회의 특징인 기적의 영향력

4. 그리스도교의 순수하고 엄격한 도덕

5.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시작하여 점차 강한 독립 국가로 형성되어 나간 그리스도교 사회의 통합과 규율.


p 443

서방 교회의 박사로 불리는 네 사람은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다. (중략) 그들은 교회 형성의 기틀을 세우는데 다른 누구보다 더 크게 기여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한정하는, 교회 입장의 사상체계를 확립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을 라티어로 번역햇을 뿐만 아니라 서방 교회에 수도원 제도의 정착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대부분 제공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가지 동인된 교회 신학을 비롯하여, 종교 개혁 이후 루터와 칼뱅이 내세운 교리의 태반을 확립했다.


p 458

죄가 영혼과 신이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본질적인 요소가 되는 까닭은, 자비로운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일 수 있는지, 죄를 지은 영혼이 어떻게 창조된 세계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지 죄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종교개혁이 의존한 신학은 당연히 죄의식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p 467

세계는 왜 더 빨리 창조되지 않았을까 ? 그 까닭은 ‘더 빠른’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에 시간도 창조되었다. 신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영원하다. 신 안에서는 이전과 이후가 없기 때문에 현재만 영원히 존재할 따름이다. 신의 영원성은 시간 관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신에게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한다. 신이 자신의 시간 창조에 앞서 존재하지 못할 경우 신이 시간 속에 조재한다는 뜻일 텐데, 사실 신은 시간 흐름 밖에서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정말 감탄이 나올 만큼 상대적인 시간 이론으로 이끌었다. (중략)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이 그리스 철학에서 시간을 주제로 다룬 어떤 이론보다 훨씬 앞섰다는 말도 당연히 해야겠다. 그의 시간 이론은 칸트의 주관적인 시간 이론보다 더 우수 할뿐만 아니라 명료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칸트 이후 철학자들이 수용하게 되는 이론이다.


p 553

아랍인은 새로운 종교의 이름으로 세계의 대부분 지역을 정복했지만 종교심이 깊은 종족이 아니었다. 아랍인이 정복을 시작한 동기는 종교가 아니라 약탈과 재물이었다.


p 569

십자군 전쟁의 선동으로 자극받아 종교적 열의가 커짐에 따라 교황들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전쟁 선동의 또 다른 효과는 수많은 유대인의 학살이었다. (중략)

십자군 운동 이전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동방물품의 교역을 거의 독점했다. 십자군 운도 이후 유대인 박해의 결과로 동방 물품의 무역은 대부분 그리스도가 장악했다.


p 622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에게서 성서와 한 종교 이외에 모든 종교는 거짓이며 악하다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극단적인 배타성과 모세 율법의 불편은 피했다.


p 624

보니키우스 8세는 로마 교황의 교서<단 하나의 거룩한 교회>에서 이전의 어느 교황보다 극단적인 주장을 발표했다. 그는 1300 년을 희년으로 제정하고, 그해 로마를 방문하여 머물면서 일정한 종교 의식에 참가한 모든 카톨릭 교도는 완전한 대사를 받는다고 선포했다. 덕분에 교황청의 금고에 엄청난 돈이 쌓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들의 호주머니도 두둑해졌다. 100년 마다 희년이 돌아오게 되어있었으나, 50 년으로 단축하고 나서 이익이 커지자 다음에는 25년으로 단축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p 638

보통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시기의 전망은 여러 가지 점에서 중세에 속한 사고방식과 달랐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중략)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p 643,649

중세적 사고방식과 대립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략)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의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 덮개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은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p 688

갈릴레오는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날에 출생하여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음을 맞이한다.


p 692

뉴턴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가 닦아놓은 길 위로 걸어가서는 그들의 과학적 업적을 완성하고 최후에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힘’을 운동의 변화, 즉 가속도의 원인으로 규정함에 따라 자신의 만유인력 법칙을 다음과 같이 선포할 수 있었다. “각각의 물체는 다른 물체를 끌어당길 때,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정비례하고 둘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p 695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 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천문학적 거리는 너무나 광대해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핀 만큼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 듯 해보이지 않았다.


p 736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절대적이고 논리적인 필연에 따라 정해진다. 정신 영역의 자유 의지나 물질계의 우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헤아릴 수없는 신의 본성을 표현하며 사건들이 다르게 일어나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중략) 긍정적인 면은 선하고 부정적인 면은 악한데, 부정적인 면은 유한한 피조물의 관점에서만 악하게 보일 따름이다. 홀로 완전하게 실재하는 신 안에 부정적인 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 우리에게 죄로 보이는 행동의 악한 면은 전체의 일부로 생각될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p 746

당신은 불행한 사건들이 당신에게만 불행일 뿐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당신에게 닥친 불행이란 궁극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 부조화일 따름이다.


p 769

자유주의는 어느 나라보다 미국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당시 미국은 봉건제나 국교회의 훼방을 받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1776 년부터 오늘날까지, 다시 말하면 적어도 1933년까지 미국 사회를 지배했다.


p 868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족쇄는 바람직한 욕구의 대상이 될 만한 활동을 훼방하는 한낱 쓸모없는 방해물이었다. (중략)

그리스도교는 어느 정도 자기 본위의 자아를 길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 경제, 정치, 지성에서 비롯된 원인들이 제도권 교회에 맞서는 반항을 자극하면서 낭만주의 운동은 도덕 영역에 대한 반항으로 변모했다.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본위 의식은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들에게 부모의 부드러운 애정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타인들 역시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자 분개했으며, 부드러운 애정에 대한 좌절된 욕망은 증오와 폭력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한에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p 889

루소의 정치철학이 실제 정치에서 거둔 첫 결실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였다. 러시아와 독일의 독재 정치는 부분적으로 루소의 가르침의 성과로 볼 수 있다.


p 910

19세기 사상의 흐름은, (중략) 사상,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통적인 체계에 반하는, 철학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둘 다에 걸친 의미 있는 반항은 그 때까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러 종류의 신앙과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반항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낭만주의적 반항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적 반항이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를 거쳐 무솔리니와 히틀러까지 이어진다. 합리주의적 반항은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 더불어 시작되어, 얼마간 완화된 형태로 영국의 철학적 급진파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에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서 더욱 심화 되고 난 뒤 소련에 유포되었다.


p 920,921

기계 생산이 상상의 세계상에 미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인간이 지닌 힘의 느낌을 한없이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중략)

인간이 지닌 힘의 한계를 보여준 믿음을 대표하는 몇몇 개념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바로 신과 진리이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개념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설령 명백히 부정되지는 않을지라도, 중요한 가치를 상실하여 단지 표면상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망은 새로운 것이어서 인류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 적응해 나갈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사고방식은 이미 사회, 정치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대변동을 일으켰으며, 물론 앞으로 그 이상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거의 무한한 힘의 전망에 도취되어 약자에 대해서 냉담해진 사람들에게 대처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철학의 구성이 우리 시대가 부여받은 가장 절박한 과제이다.


p 923

헤겔은 칸트와 더불어 시작된 독일 철학 사조의 정점에 위치한 철학자이다. 헤겔은 자주 칸트를 비판했지만, 칸트가 없었던들 자신의 철학체계를 결코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권위를 잃기는 했어도, 헤겔의 영향력은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나 주로 독일 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19세기 말엽, 지도적인 위치에 오른 철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을 막론하고 대개 헤겔의 신봉자들 이었다.


p 924

그(헤겔)는 전체를 제외한 무엇도 궁극적으로 완벽하게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체 즉 복잡한 존재 전부를 총괄하여 ‘절대자’라고 부르는데, 절댜자는 정신적인 존재이다.

p 967

그리스도교든 다른 어떤 종교든 형이상학적 진리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사실상 종교는 모드 거짓이라 확신한 니체는 모든 종교를 전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효과에 의해 판단한다.

그리스도교는 타락해서 부정부패로 가득하다. ‘신약성서는 비천한 인간들의 복음서이다.’ ’그리스도교는 이제까지 존재한 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거짓말이다.‘


p 976

내가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를 좋아하고, 기만을 의무로 내세우며, 그가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복자들로서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리함을 명예로 삼기 때문이다.


p 987,989

카를 마르크스는 보통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운동을 이끌어낸 사람이다. (중략)

“인간이 사고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느냐 못하느냐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문제이다.” “ 사유의 진리, 다시 말하면 사유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둘러싼, 실천과 유리된 논쟁은 단순히 현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p 1037

철학은 역사를 관통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혼합된 두 부분으로 수성되었다. 한 부분은 세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이고, 다른 한 부분은 최선의 삶의 방식에 대한 윤리 혹은 정치 학설이다. 두 부분을 명료하게 분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혼란에 빠진 사고방식이 많이 생겨났다. (중략)

도덕의 측면에서 보면, 사심 없는 진리 탐구 이이에 다른 일에 자신의 전문 능력을 사용한 철학자는 일종의 변절 행위를 한 셈이다.(중략)

진정한 철학자는 모든 선입견을 검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진리 추구에 제한을 둔 철학자는 이미 자신의 탐구 활동에 검열 장치를 마련해 둔 셈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고대 철학부터 근현대 철학까지의 광범위한 시기에 걸쳐 여러 학파와 철학자들 다룬다. 여태껏 시도되었던 적이 없는 저술이다. 깊은 통찰과 폭 넓은 지식이 없다면 감히 시도하기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와 학파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시대적 상황과 현재의 시각에서 각각 조망하여 비판하고 평가하였다.


서론에서는 전개될 방대한 내용에 대한 개요를 요약해 준 것은 독자들이 사전적 이해를 갖게 하는데 대단히 유용하다.


‘철학사’로서 우선 역사적 연대에 따라, 제 1권 고대 철학, 2권 카톨릭 철학, 3권 근현대 철학으로 나누었다. 한편, 단순한 역사적 사실들의 연대적 나열이 될 수없는 만큼 당시의 시대적 사상을 지배한 철학을 중심으로 나누게 된 것이 2권의 카톨릭 철학이다. 당시 지성계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성직자였으며, 이들이 철학을 독점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철학자와 시대적 상황이 어우러져 논의되는 만큼 , 서양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를 위해서 서양사의 역사적 주요 사건들을 배열해 놓은 연대기가 별도로 추가되었더라면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 크게 유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감동적이었던 장절.


p 19

-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말해주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 따름이다. 또, 만약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망각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많은 일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다른 한편 신학은 사실상 무지의 영역까지도 안다는 독단적인 믿음을 이끌어냄으로써, 우주를 향한 일종의 주제넘고 오만한 태도를 양산한다.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에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지금도 철학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p 34

- 모든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 문명의 돌연한 발생만큼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

(중략)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례적인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처음 만들어냈고,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 또, 그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본성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나갔다.


p 88

-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교는 두 가지 형태, 즉 신과 영혼불멸을 통해 영원성을 추구한다. 신에게는 변화 가능성도 변전의 기미도 없으며, 사후 생명 역시 영원하고 변화지 않는다.


p 458

- 죄가 영혼과 신이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본질적인 요소가 되는 까닭은, 자비로운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일 수 있는지, 죄를 지은 영혼이 어떻게 창조된 세계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지 죄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종교개혁이 의존한 신학은 당연히 죄의식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p 695

-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 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천문학적 거리는 너무나 광대해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핀 만큼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 듯 해보이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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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
2010.02.22 12:20:48 *.53.8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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