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2010년 5월 11일 11시 06분 등록
 

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 고운기

1961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운기를 조사하니 신인으로 나온다. 약력을 보니 1983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는 경력이 있다. 해서 그에게는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의 세권 시집이 있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고운기는 삼국의 역사에 대해를 오랫동안 연구한 듯하다. 그가 출판한 <일연을 묻는다>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2001)> 그리고 이책 <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2002)>가 삼국유사에 대한 저서라면  <삼국사기 열전>은 삼국사기에 대해 분석한 저서인 것 같다. 저자는 삼국유사를 20년정도 연구했다고 하는데  이 책 <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철저히 비교하여 삼국의 역사에 대해 누락된 것과 왜곡된 것을 바로잡으려한 흔적이 보인다. 역사학자가 아닌 국문학을 한 시인이라는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한 것으로 볼 때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번역서로는 시모무라 고진의 <논어>, <한국, 1930년대의 눈동자>, <그늘에 대하여>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1999년부터 일본 게이오 대학 문학부 방문 연구원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 연구하였고, 2006년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 : 양진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양진은 저자 고운기와 선후배 지간이라 한다. 고운기의 제안으로 <삼국유사>사진 찍기가 1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둘이 함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지역을 돌며 사진 작업을 한 것 같다. 그의 사진은 그가 희망한대로 ‘솥안의 한점 고기’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이 책 외에도 <일연을 묻는다> <길위의  삼국유사>를 출판할 때 사진 작업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6년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 ‘사진이 담긴 그곳, 거기 묻어둔 그리움’이라는 주제로 삼국유사 사진 개인전을 열었다.   


삼국유사 원저자 : 일연
(一然, 1206년 ~ 1289년)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승려로,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속성은 김씨, 속명은 견명(見明)이며,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 이렇듯 일연은 처음 이름이 견명(見明)이었고, 불교의 이름을 회연(晦然),이라 지어 밝음(明))과 어둠 회(晦)를 대조시켰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 숨어있다고 한다.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는 보각(普覺)이며,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경상북도 경산(慶山)에서 출생하여 1214년(고종 1) 9세 때 해양(海陽)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1219년 대웅에 의하여 중이 되었다고 한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46년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에 올랐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일연이 자신의 직무에 상당히 충실했던 것으로 볼수있다. 1261년(원종 2) 왕의 부름으로 상경하여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었고 목우화상(牧牛和尙)의 법통을 계승, 1268년(원종 9) 조지(朝旨)를 받고 운해사(雲海寺)에서 선교의 대덕(大德) 1백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개최, 그 맹주가 되었다고 한다.

 1277년 충렬왕의 명으로 운문사(雲門寺) 주지에 취임하였다. 1281년 왕에게 법설을 강조했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다. 일연의 모친은 19세에 일연을 낳고 90세정도에 돌아가실 때까지 혼자살았다고 하는데 일연은 효심이 남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 1283년 노모의 봉양을 위해서 고향에 돌아갔다. 다음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백경(百頃)을 받아 경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했고 궁궐에 들어가서 구산 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했다.

<삼국사기>가 정사인데 비해, 일연의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의 신화와 민간설화를 수록하였다. 특히 향가를 비롯한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한것은 일연이 승려였으므로 당연했다고 여겨진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고대문학과 역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된다. 일연은 <삼국유사〉 찬술을 위해 1278년에 이미 〈역대연표〉를 작성하고, 이후 그의 나이 73~76세에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찬술했다. 저서로는 〈어록 語錄〉 2권, 〈게송잡저 偈頌雜著〉 3권, 〈삼국유사〉 5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祖派圖〉 2권, 〈조정사원 祖庭事苑〉 30권, 〈선문염송사원 〉 30권, 〈대장수지록 大藏須知錄〉 3권, 〈제승법수 諸乘法數〉 7권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2.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편안함이나 위험이 어떤 날에는 서로 기대는 친구가 되고

즐거움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두루 맛보아야 하는 것


나는 <삼국유사>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다 비유해 본적이 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틴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혁명가는, 그 스스로 안위와 감고의 거친 세월 속에서, 도리어 피와 살이 되는 어떤 기제를 찾아 뒷사람에게 남겨주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틀에 기대어 ‘삼국유사일기’의 한 방법을 여기 내놓은 것인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들어가며

[p. 2] 고대사의 여러면에 두로 걸쳐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운 책이 바로 <삼국유사>가 아닌가 한다.

[P. 2] 언제부터인가 한쪽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곧 얻는 덕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책이 <삼국사기>라고 말한 선학의 명쾌한 자리 매김을 지나치게 해석하여, 무게 중심이 <삼국유사>쪽으로 치우친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P. 3] <삼국사기>의 ‘사’는 史이고 <삼국유사>의 ‘사’는 事라는 사실은 중학교에 올라와서 틀리는 문제였다. ............이렇게 틀렸던 까닭은 한번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세계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제도적 구조적인 결함에 원인이 있다는 데서 문제는 심각하다.

[P. 3]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史와 事 에 있다는 점

[P. 5]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 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P. 5] <삼국유사>는 전체가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이렇게 9개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P. 6] 연대기로서 <왕력>, 준 역사서로소 <기이>,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흥법> 이하의 여러 편으로 삼대분(三大分)해 볼 수 있다.

[P. 6] 여기서 <왕력>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는 양적으로도 역사자료의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기술 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 다른 질적인 면이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P. 6] <기이>편에서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한조를 한왕과 그 왕대의 특징적인 사건 하나를 묶어서 기술해 나간 점이다. 미추왕과 죽엽군 내물왕과 김제상, 이런 식이다.

[P. 6] <왕력>과 <기이>편의 여러 기사들은 <삼국사기>와 대조해 가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P. 8]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이 땅의 첫 나라

[P. 11] 단군신화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다. 애써 이 시기를 눈감아버린  <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P. 12] 유려한 한문으로 집필된 <삼국사기>의 첫머리에 단군은 실리지 못했고, 세월은 150년을 흘러야 했다. 그 사이 사회가 변했다. 정권 담당자도 바뀌고, 크나큰 나라 몽고와 20여 년에 걸친 전쟁도 겪었다, 곤고한 세월이었다.  그 쓰디쓴 경험이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꾼것일까? 그렇다면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귀중한 결과물을 얻은 셈이다,

[P. 17] 환웅이 먹는 것, 생활하는 것 들렝서 어떤 의식을 정해 놓고 그것의 준수를 요구했는데, 곰은 묵묵히 이행한 데 반해 호랑이는 그렇지 못했다. 여기서 곰과 호랑이가 단순한 동물이 아닌, 그것들로 상징되는 어느 부족이라는 인류학적 해석이 덧붙여진다.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자 각고민려한 곰 부족에게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그가 바로 곰은 뜻한 바 목적을 달성했다.

[P. 18] 재미있게도 곰이 세운 치밀한 계획에 환웅이 한발 한발 말려들더니, 드디어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곰은 여자가 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P. 20] 고구려는 본디 고죽국이다.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에 봉하고, 한나라는 현토 낙랑 대방이라 부르는 3군을 나누어 두었다.

[P. 21]우리는 먼저 단군 신화의 성격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곧 신화 중에서도 단군 신화는 창세 신화인가 아니면 건국 신화인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군신화는 건국신화다. 이 땅에서 첫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 주고 았을 뿐이다.

[P 2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유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도 가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이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P. 34]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중국 쪽 역사서에서 조선에 관한 기사를 모두 찾아보고, 그것을 일연 나름대로 정리해 크게 두 개의 제목을 써서 정리한 것인데, 일관성과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과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43] 주몽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는 다음에 살펴볼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 신화와 바슷하다, 다만 주몽은 하늘님으로 이어지는 부계와 신이한 존재로서 모계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이런 난생 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주몽은 왕이 되기까지 그다지 순탄한 길을 가지 못했다. 이점 또한 박혁거세와 비교된다,

[P. 44]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P. 52] 백제가 북방계의 흐름을 타고 건국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라의 구성원이 전부 북방계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어떤 형태로든 거기에 원주민이 있었고, 여러 역사서에  그 이름이 나타나듯이, 그들의 나라 곧 변한 등은 사실 원주민들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다만 이 시기에 부족간의 이동은 끊이지 않았고, 좀더 우세한 세력과 기을 가진 쪽으로 힘의 균형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신라와 남방계

[p. 53]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의 건국에 관한 일연의 기술은 <삼국사기>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대개 <삼국사기>보다 훨씬 자세하며, 적어나가는 태도 또한 매우 자신에 넘쳐있다.

[p. 59] 사내아이는 알에서 생겼는데 알이 표주박과 같아, 마을 사람들이 표주박을 박(朴) 이라고 한데 따라, 성을 박이라하였다. 계집아이는 태어난 곳 우물의 이름으로 이름을 붙였다. 두성인의 나이 열세살에 이르렀다. 오봉 원년은 갑자년(기원전 57년)인데, 사내아이를 세워 왕으로 삼고 이어 계집아이는 왕후로 삼았다.    

[P. 62] 일연은 혁거세왕의 최후를,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고, 7일 뒤 몸만 남아 땅으로 흩어 떨어졌다.”

[P. 69] 일연은 신라라는 나라이름에 대해, “서라벌(徐羅伐) 또 서벌(徐伐) 이라 하였고 어떤 이는 사라(斯羅) 또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고 하였따. 여기서 서럽ㄹ이 나중에 서울로 바뀌어 나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처음에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으므로 어떤이는 계림국(鷄林國)이라고도 하는데, 계룡이 나타나는 것을 상서롭게 여긴 까닭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가 태어나던밤, 닭이 숲속에서 울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고쳐 계림이라 했다고 한다. 뒷날 마침내 신라라는 이름을 정하였다. ”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P. 70] 용성국(龍城國)출신이라는 기이한 남자 석탈해(昔脫解)는, ....촌놈에서 출발해 왕의 사위에 이어 왕까지 된 ‘신라 드림’의 원조다.

[P. 72]탈해는 누구일까? 용성국은 어디일까? .......그에 관한 이야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신라 와일의 고민과, 한 인간이 가진 본년의 욕망의 그림자를 읽게 된다.온갖 신격화로 치장된 거추장 스러운 것들을 거둬내면 더욱 그렇다. 

[P. 76] 용성국은 어디일까? 일연은 주석에서 “또한 정명국(正明國) 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완하국이라고도 한다. 완하는 화하국이라고도 하는데, 용성은 일본 동북쪽 천리 정도에 있다”고 하였다. 일보 동북쪽 천리 정도라는 위치는 같지만 <삼국사기>에서는 나라 이름을 다파나국이라고 하였다. 어쨌건 일본이라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탈해는 일본 출신인가?

[P. 82] 탈해는 수로보다 15년뒤에 왕위에 오른다. 이기간 탈해가 신라의 대보로 있으면서 가랄국을 정벌하러 갔을 수 있다. 그런데 실패했거나 고전 끝에 약간의 성공을 거둔 채 물러 나온 일이 있어다면 가락국의 지역에서 탈해를 깎아 내리려는 이야기가 전설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P. 82] 어쨌건 탈해는 왕위에 오른다...........신라가 여섯 부족의 합의 아래 혁거세를  왕위에 올리고, 그 뒤를 아들과 손자가 차례로 올랐다. 이런 과정은 분명 여섯 부족의 입김 아래 이루어졌으리라 보인다. ............탈해는 여섯 부족의 신임을 얻기에 그 근본이 너무 약했다. 

[P. 83]그런 어려움을 물리치는데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나마 그가 타고난 재주에다 출중한 지략을 잦추었기에 가능했다.

[P. 86] 머난먼 이역, 아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올라와 입신 양명한 탈해, 우리는 여기서 탈해가 비록 왕위에 오르고 그 후손들이 석(昔)씨 성으로 몇차례 더 왕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지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 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P. 87]일연은 속탈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경위를 성과 이름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먼저 성에 대해서는 “‘석(昔) 곡 옛날 이곳이 내집’ 이라 하여 남의 집을 제것으로 만들었기에 성을 석씨로 하였다.”고 말한다. 성과 이름에 대한 또 다른 견해로는 “작(鵲) 곧 까치가 울어 궤짝을 열었으므로 조(鳥)자를 떼어내고 성을 석씨로 하고, 궤짝을 해(解) 곧 열어 알을 탈(脫) 곧 꺼내어 태어났으므로 이름을 탈해라 하였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P. 95]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에 와서 처음으로 일연은<삼국사기>를 떠나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는데, 매우 자신 만만한 태도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P. 96] 일연은 승려다. 승려 생활은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여러군데 옮겨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승려라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미 앞서 단군 신화의 경우와, 앞으로 소개할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의 관심은 광범하게 퍼져있다. 오늘날의 민속학자가 따로 없다.  

[P. 97]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신은 해와 달과 별 곧 일월성신(日月星辰)이다.

[P. 98]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P. 100] 정령을 잃은 사람은 운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P. 103] 말소리까지 들어도 잘 구분되지 않는 사람은 한국인과 일본인이다. ...............한두가지 특징이 같아서 들어간 알타이어지만, 세계적으로 같은 알타이어에 속하는 다른 말 예컨대 헝가리 같은 나라의 말과 직접 비교해 보면, 이론을 떠나 감각적으로도 도저히 한 집안 식구라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헝가리어와 한국어를 같은 어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최근 세계 언어학계에서는 한국어를, 어족을 알숭벗는 특이한 말로 제쳐둔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 지도에서 어족을 알수없기로는 일본어 또한 마찬가지로 그렸다.

[P. 106] 두 이야기를 합쳐보자. 어쩌면 한국어와 일본어가 또 다른 어족을 궝하는 한 식구가 아닐까 생각된다.

[P. 109]왜의 잦은 침략을 받은 신라로서는 더 이상 그들을 가까이 하기 힘든 존재로 굳혀 갔으리라 보인다.

왜의 침략을 방어하는 신라의 방법은 대체적으로 지공(遲攻)이었다. 간단히 쳐부술 정도면 모르되, 알천까지 깊숙이 쳐들어오는 적에 대해서는, 성문을 굳게 닫고 나가지 않으면서 스스로 지치기를 기다렸다, .......

그러나 참는데도 한도가 있다. 더욱이 고대 왕권 국가를 구축해낸 왜가 백제와 겨린 관계를 맺게 되자 신라는 협공의 위기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박제상 사건이 터진다. 거기서 둘 사이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P. 111]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항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밤에만 찾아오는 손님

[P. 134]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 의미를 알게된다. 세상에는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다.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떠면 귀신의 세계를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P. 137]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 구물 살아가는 이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P. 141-142] 연못 가운데에서 나와 편지를 바치는데 겉면에 “뜯어서 보면 두사람이 죽을것이요, 뜯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라고 쓰여있었다. 병사는 돌아와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두사람이 죽는 것 보다야. 뜯지 않아 한사람이 죽는게 낫겠지.” 앙이 그렇게 말하자 일관이 아뢰었다. “두사람이란 일반 백성이요. 한사람이란 왕입니다.” 왕도 그럴것 같아 뜯어보게 하였다. 거기에는 “거문고와 갑을 쏘라”라고 쓰여져 있었다. 왕이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의 갑을 쏘게 하였다. 그랬더니 내전의 분수숭과 궁주가 몰래 정을 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사람은 참형을 당하였다..

[P. 142] 노인이 편지를 들고 K와 바쳤다고 해서 서출지(書出池)라고 부르는 연못은 지금도 경주 남산 밑 피리촌에 있다.

[P. 144]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데서 더욱 커진다.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 종교라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 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P. 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P. 150-152]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듯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TRNL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

[P. 169] 주지하다시피 김유신은 가야 출신이다. 가야가 구형왕을 마지막으로 신라에 복속된것은 법흥왕 19년(532년)의 일이다. 김유신이 태어나기 60여년 전, 유신의 증조부 구해는 수로왕의 후손이었는데,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자 가족들을 데리고 경주로 와서 살았다.

[P. 170 그러나 춘추는 여자인 선덕과 진덕으로 명맥을 이어나가는 당시 성골 왕실에서 다시 남자 왕을 추대하고자 할 때, 가장 유력시되는 후보였다. 그런 그가 본래 신라사람도 아닌 가야 출신 지방 관리의 딸과 결혼란다면 스스로 왕위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유신의 생각은 달랐다. 춘추의 왕위를 포기하자는 것도 문희의 결혼을 말리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두 가지를 모두 이루고 싶었다. 왕이 될만한 이로 춘추 밖에 없었고, 문희와의 결혼이 이뤄졌을 때라야 만 신라와 가야는 진정한 한 나라가 된다는 생각이 그밑에 깔려있었다. 그것이 최재서가 말하는 ‘민족의 결혼’ 이었다. 

[P. 172] 유신은 신이(神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P. 173] 사실 김유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은 누구에게도 견줄바 아니다 힘으로 안되면 지략으로, 지략으로 모자라면 신술을 써서라도 주어진 일울 해내고야 마는 그였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P. 178] 문무왕 법민은 김춘추와 문희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가야국 출신의 어머니에게 뿌리를 두고 태어난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법민은 줄곧 당나라에 머물며 외교적인 업무에 종사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당할 정치적 견제를 피하고, 당마라 조정과의 친분을 쌓아 왕으로 등극하는데 도움을 받고자하는, 김춘추나 김유신의 뜻도 들어있지 않았을까 한다.  

[P. 183]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꾀어 신라를 괴롭히게 하고, 문무왕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당나라 군사를 쳐부순다. 당나라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반란군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싸움을 일으키되, 실제로 주적은 당나라 군사로 삼았던 것이다.


권력의 끝 

[P. 196] <삼국유사>에서 토사구팽의 첫 비극적 주인공은 뜻밖에도 김유신이다.

[P. 197] 죽어서도 100년동안 김유신의 자손들은 그 영화를 누렸으되 언제나 가시방석이었다. 물론 김유신은 문무왕과 외사촌간이고, 신문왕에게 외할아버지가 되며, 이후 효소왕, 성독왕,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이 그 자손으로 이어지니 김유신과 그 후손들로서야 처음만 같지 못해도 섭섭한 대우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마지막 혜공왕대에서 일어났다, 혜공왕이 재임한 16년 동안 다석번의 반역 사건이 일어나고 결국 그것으로 왕도 죽임을 당할 분만 아니라, 왕위 계승이 태종 무열왕 후손에서 떨어져 나간다, 왕실의 비극은 그 외척의 비극을 수반했을 것이다,

[P. 204] 김유신가의 몰락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서서히 진행되지만 토사구팽의 비정함은 여기 저기서 목격된다. 전쟁이 끝나 안정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다른데로 흘러갔다. 그가운데 가장 걸리는 존재가 전쟁 영웅들이었다.

[P. 211]육두품과 성공 진골이라는 귀족 계급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강이 놓인,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육두품은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더 이상 진급이 불가능하다. 성골 진골의 피를 타고나지 않으면 말이다.

[P. 223]수로부인은 삼국유사 나오는 여느 여인과는 다른 특이한 매력을 풍긴다. 그것은 약간 ‘공주병’에 걸린 듯한 푼수끼가 보이면서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강한 개성 때문이다.

[P. 224] “꽃을 꺾어 바칠 사람 누구 없니? ” “사람의 발로는 다가갈 수 없는 곳입니다요”

[P. 226] 자주빛 바위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라

[P. 228]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슬러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끌어내 구어서 먹을테다

첫 성전환증 환자

[P. 242] 다만 삶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운명적 환경이 만들어 준것, 도 닦는 사람이라고 거기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P. 247]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맏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왕이 되는자

[P. 267] 그 자신이 아무리 덕을 갖추었다 한들, 이미 시대가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 빠졌는데, 늘 행운만 따르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갈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받쳐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으로 향해간다.


나라가 망하는 징조

지는 해 뜨는 해

[P. 287]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들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부족해졌을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

수도인 경주가 통일된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던 것도 한 원인으로 들수 있겠다.

[P. 289]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박에 하늘이라도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간절해도, 끝내 가슴에 묻어야 할 답답한 현실이 엄연하지 않던가? 사필귀정이요 새옹지마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쪽이다.


서동은 정말 공주를 꾀었을까?

[P. 330]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짝지어놓고

         서동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간다


[P. 330]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범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낸다 서동은 이웃나라 선회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고 있다.

[P. 342]미륵보살은 누구인가? 부처남 당시에 생존했던 미륵보살은 부처임에 의해 미륵불로 지정 받았다.

[P. 343]미륵은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의 음역으로 자씨라고 의역하기도 한다.....미륵은 곧 자비라는 뜻이다.

견훤, 비운의 영웅

[P. 353]견훤은 제 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는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데 능했다.

[P. 356] “토끼와 사냥개가 둘다 지치면 마침내 놀림을 받게되고, 조개와 화애가 서로 바티다 보면 또한 웃음거리가 될것이오”


신비의 왕조, 가야

[P. 370]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원서 먹을 테다 

[P. 372] 상상의 동물로서 거북이는 왕왕 용의 다른 모습이거나 똑같은 역할을 한다. 분명 신성한 동물의 하나다. 그러나 존대보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심지어는 구어 먹겠다는 불경스런  표현을 서슴지 않는 데에서 우리 옛 노래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


불교로 보는 역사

[P. 398] 금교에 눈 덮여 아니 녹으니

         계림의 봄빛은 아직도 먼데

         영리한 봄의 신 재주도 많아‘

         모례네 집 매화꽃에 먼저 피었네

[P. 399] 봄빛이 ]아직 두루 돌지 못했으 때 매화는 핀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곧 인간 세계의 그것으로 원용되고 있다. 눈 덮인 땅에 봄빛은 돌지 않았지만, 매화꽃과 같은 존재로 모례는 등장한다. 신불이 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스런 상황에서 꿋꿋한 믿음을 지킨 그녀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에서 볼수 없는 신라 불교의 독특산 면이면서, 완고한 신라 사회에 뿌린 불교의 첫 씨앗이었다.


순교의 흰꽃 이차돈

[P. 406] 시비왕이 고행을 할때였다. 메추라기가 매에게 쫓겨 시비왕의 품으로 들어왔다. 왕은 메추라기도 살려야겠고 매도 굶길수 없으므로, 자기 살을 메추라기의 몸만큼 베어서 저울에 달아 매에게 먹였다. 

[P. 414] 열반의 무릇 평등한 가르침이

         우리 스님에게서 전해 받았네

         애달프다. 방이 날아온 다음

         동명왕의 옛나라 위탱로워졌네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P. 423] 태자는 왕에게 “힘만으로 공덕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니, 일찍이 뇌지 않으리라 알았습니다”

[P. 424] 인도의 아육왕도 이루지 못했던 일, 그것은 힘만으로 공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태자의 말에 함축된 의미에다, 오직 인연 있는 땅에서만 가능하다면 신라는 바로 그런 인연을 갖춘 곳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배어 있다. 

[P. 430] “철로 된 받침대부터 높이가 42척이고, 기 아래로 183척이다”고 적었을뿐이다. 전체 높이 225척이라는 것인데, 학계에서는 요즈음의 단위로 70m 정도라고 추정한다.


문수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P. 440]문수보살을 흔히 출가(出家)의 보살이라 한다. .......문수 스스로 남쪽을 두루 돌며 깨닫고 동쪽으로 오는데, 가기서 선재동자에게 남쪽으로 갈것을 권하는 대목이 있다. 곧 선재의 출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누구든 수행의 척 실은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문수도 성불의 그 같은 절대적 조력자라는 뜻이다, 나아가 문수 신앙은 대체로 이런 문수 보살의 성격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 448]문수보살은 매일 아침 서른 여섯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일이 나열한다.

 어떤때는 부처의 얼굴로 나타나고, 어떤때는 보배스런 구술로, 부처의 눈 형태로, 부처의 손형태로, 보배스런 탑의 형태로, 부처의 머리 형태로, 온갖 등의 형태로, 금빛나는 다리 형태로, 금빛나는 북의 형채로, 금빛나는 종의 형태로, .........................푸른 뱀의 형태로 나타난다.

[P. 454]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것, 그렇게 되는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게 아닐까?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P. 456] “마음이 찾아갈 정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갇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로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는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P. 469] 일연에게서 평생의 화두를 하나 들자면 어머니다. 세속의 인연에 너무 연연해 한다고 탓하지 말라. 일연의 어머니는 열아홉 살 아직 꽃피지 않을 나이에 아들 하나를 낳고, 아흔살 넘어 세상을 마칠때까지 평생을 혼자 산 사람이다.  

[P. 470] 문득 한 사람이 매를 날려 꿩을 쫓게 하는 것을 보았다. 꿩은 금악향으로 날아 지나가더니 자취가 없었다. 매의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 굴정현의 고나청 북쪽에 있는 우물가에 이르자, 매가 나무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안에 있는데 온통 핏빛이었다. 꾸 jd은 두 날개를 펼쳐 두 마리 새끼를 감싸고 있었다. 매도 불쌍히 여기는니 집지 않는 모양이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P. 473] 낭자의 출산을 위해 준비해 준 목용물이 금빛으로 변한다. 낭자는 스스로 자기가 관음보살이라 밝히고, 스님의 대보리가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간밤 계를 더럽혔을리라 생각하고 비웃어 주려 부득의 처소를 찾아온 박박은 막상 도착해 부득을 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변통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보살이 된다.


낙산사의 힘

[P. 504]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 주국의 한다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끓는 솥단지 앞에서 따뜻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되어 있었다는데, 한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그에 못지 않은 것이 이 조신의 꿈이다.


문사 이야기

[P. 523] 육재일이란 한달에 여섯 번 있는재일로 8, 14, 15, 23, 29, 30일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치 유대인들이 지키는 유월절 같은 느낌이 든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P. 534]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려나 내가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를 터인데

[P. 541]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 ”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의상, 화엄의 마루

[P. 551]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다로 구하리요”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P. 572] 용문엔 폭포조차 끊기고 말았으며 정구엔 뱀이 서린듯 얼음이 얼었다. 불을 들고 땅 끝에 올라 노래부르리 어떻게 저 파밀고원 넘어 가리오

[P. 580]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용기도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 맥없이 스러진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P. 581] 미륵 신앙의 경우, 신라보다는 백제가 먼저 받아 들인 듯하다. 백제가 불교의 역사도 깊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남방 불교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일찌감치 미륵 신앙이 바다 건너 들어오고 있었던 것은, 저 충남 태안과 홍성의 마애미륵불상 등을 통해 증명된다. 

[P. 586]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태, 곧 떵속에 묻어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 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이보살에게 빌어야 한다. 지금도 절에가면 명부전이라는 불당이 있는데 거기서 바로 이 지장보살을 주불로 삼는다.

[P. 590]삼베를 붙들고 황금을 버린다

[P. 596] 무릇 미륵 신앙이란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되는 법이다. 그들의 어려운 삶속에 동참하는 데서 이 신앙의 진수가 드러난다.


밀교의 한 자락

[P. 605]밀교는 같은 불교이면서도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본 경전인 <대일경>에 따르면, 수행의 10단계가 있는데 거기서 9단계까지는 현교의 세계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단계를 밀교의 세계로 규정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P. 623]여분의 옷한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였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P. 632]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은 약속한 바가 있었다. 광덕이 그 약속을 지키는 사이 엄장은 한눈을 팔았다. 아미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기야 하지만, 이를 적그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삶에 고단하게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말다,

[P. 633]실수와 무지 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P. 658]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바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선으로 불상을 새긴 것은 초기 또는 초보적인 형태고, 약가 s도드라지게 파내서 입체감을 살린것은 좀더 새련된 형태다. 

[P. 658] 많은 종류의 불상이 공존하고 있는 만큼, 그 불상을 만든 사람도 가지 가지이리라 보고 있다. 

[P. 659]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성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숨어사는 이의 멋

[P. 671] <삼국유사>의 여덟 번째 편은 피은(避隱)이다. ‘피은’은 피세은거, 즉 세상을 떠나 숨어사는 것이라는 말로 풀어볼 수 있다. 대체로 승려들의 삶이란 피세은거 자체다.

[P. 672]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써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P. 672] 숨어사는 일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이 다르고, 같은 동양에서도 철학에따라 다르다.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드러나고, 없으면 숨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숨음과 드러남의 매개체는 ‘도(道)’다. ............ 불교에서의 숨음은 이와 다른 면이 있는듯. 세상에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고만 해서 은거가 아니다.

[P. 674] 헛된 명성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것이 세상인심이다.

[P. 686] 장바닥에는 어진 이가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불교가 보는 효도
[P. 690] 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향념(向念)은 신앙 그 자체다.

[P. 699] 복을 빌어 받되 받은  다음에는 제복이라 생각한느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영특한 대성으로서야 자기가 잘 판단해 큰 복을 박았으니, 모든 복이 제 한일의 결과라고 생각했을것이고, 의기 양양하게 들판에 나가 사냥을 즐기며, 들어온 복을 한껏 누리자고 기꺼워하기도 했겠다. ................살아온 날을 다시 돌아보니 마음에 느끼는 것이 생겼다는데,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런 마음의 돌이킴으로 탄생했다. 석불사가 지금의 석굴암이다.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P. 709]한마디로 말하면 향가는 서정시다. 개인의 일상이 개인의 정서 속에서 부딫혀 형상화되어 있다. 여러 가지 소재나 주제가 얽혀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기슬 향가는 일상사의 개인이 부르는 곡진한 노래다.

[P. 711] 향가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P. 720] 가을 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잣나무 같을 줄로만 알았던 왕과의 약속은 부질없는 것이되고, 연못에 비추는 달빛이 흘러 자취 없어질 허망함이다. ............이 소식은 곧 바로 왕에게 전해지고, 왕은 곧 자신의 무심한을 반성하며 시충을 불러들였다. 충성심과 이기심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일연, 혼미 속의 출구 

[P. 723] 한때 일연에 대한 평가는 너무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과장되기로는 그가 민족의 명운을 개척이라도 한 사람처럼 떠 받들린 부분인데, 가뜩이나 존경할만한 임물도 적은 판에 그것은 차라리 위로 삼아 해보는 일이라 해도, 뒤틀린 생각을 가지고 까닭없이 폄하하는 일은 못마땅하기 그지 없다.

[P. 724]그가 제기한 문제점은 세 가지다. 일연이 시대의 사조에 빠졌다는 것, 사상과 신앙 모두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가지 산문의 현풍을 떨치기에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P. 726] 삼중대사, 선사, 대선사 등의 직급에 차례 차례 올랐다. 세속의 지위에 큰 의미를 부여할 바 아니나, 그가 얼마나 자기 생활에 충실했던가를 알게 해주는 증거로 볼수 있다.

[P. 726] 일연은 처음 이름이 견명이었고, 불교의 이름을 희연이라 지어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켰다.

[P. 728]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 숨어있다.

[P. 728] 일연은 1281년 그의 나이 78세에 국사로 책봉되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한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가 된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1) 책의 개요

원 <삼국유사>는 전체가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이렇게 9개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 <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는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의 8편에 대한 저자 고운기의 해설로 삼국유사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연대기인 [왕력]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라는데 이 책에서는 제외 되어 있다.  준역사서라는 기이편에서는 고조선과 위만조선, 신라와 가야 백제등의 고대시대를 삼국사기와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흥법은 처음 불교가 어떻게 들어왔는가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편에서도 불교와 불교문화에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삼국의 숭불사상과 일연이 승려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고대사는 불교와 뗄 수없는 관계이지만 그래도 불교가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듯하다.


(2) 이 책의 장점


1. 일단 저자 고운기가 <삼국유사>를 20년 연구했다고 하는데 놀랍고, <삼국사기>와 비교하며 <삼국유사>의 의의를 사대주의가 배제된 우리나라 독창적인 문화 사상에 대한 전달을 하려고 한 점은 의미가 있다. 처음 ‘들어가며’ 부분에서 전체 <삼국유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삼국유사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되었다.


2. 또한 함께 어울어진 양진의 사진 228장(궁금해서 세어보니 228장이다)은 <삼국유사>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도 도움을 주었지만 감성적인 자극도 함께 주어 책을 읽는 흥미를 유발한 역할을 했다. 사진으로 인해 책이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직접적인 역사 현장뿐아니라 은유적인 사진(예 : 문수보살의 변화를 설명하며 '보배로운 구슬'에 비유한 담장의 빨간 주목 열매는 정말 아름다웠다.)을 실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한  사진 하단의 설명 역시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각 절마다 중간 중간 노란색 박스로 설명된 역사와 사건에 관련된 설명은 독자로 하여금 이해도를 높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3)이 책의 단점 및  내가 저자라면 보완할 사항들

1.  저자는 시인이라 그런지 부제를 아주 잘 정한 것 같다.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 처음에 소제목에 많이 끌렸다. 그런데 다시 보니 너무  자극적인것이 몇개 거슬린다. 제목에서 저자의 개인적 취향이 드러난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이런 말은 역사서에 어울리기 어렵고 게다가 유행어를 사용했으므로 지금은 통하겠으나 미시족이라는 단어가 유행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 의미가  떨어질것같다. 그때가 되면 아마 저자는 다른 제목으로 변경해야 할 것 같다. 역사에 대해 논하는 글에서 제거되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만약 저자가 그때 살아있지 않고 이 책을 아무도 고치지 않는다면 저자의 오랜 노고가 이런 단순한 흥미유발적인 구들로 인해 격감할 것같다.


2. 책의 서술이 너무 늘어지고 삼국유사의 본문과 자신의 이야기가 섞여있어서 주장하는바를 빨리 잡아내기 쉽지 않다.

따라서 <삼국유사> 본문을 먼저 쓰고 이에대한 저자의 생각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더라며 우리는 삼국유사와 자자의 생각을 대조할 수 있어서 더 의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때론 저자의 주장을 강요당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설득당하는것도 아니고 강요당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책은 별로 많이 읽고 싶지가 않다. 


3. 저자는 <~인것 같다>라는 추측을 많이 쓴다.
사료는 부족하고 일연의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려니 어쩔 수는 없겠으나 우리는 <사국유사>를 풀어 쓴 이해서를 읽는 것이지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므로 작가의 추측과 억측은 제거되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 철저히 자료를 기반으로 알려진 사실과 기록된 근거에 의거해서 기술해야만 책의 신로도가 높아진다고 생각 든다. 저자는 20년 이상 <삼국유사>를 연구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 연구함으로 인해 생긴 자신감이 오히려 억측과 추측을 난문하게 만들어 오히려 책을 더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오점이 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추측의 절제가 요구된다. 


4. 또한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가 김춘추와 정략적인 결혼을 한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별 무리가 없는데) 느닷없이 옛 여배우 문희가 등장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추억과 역사를 섞어버린다. 독자에게는 유신의 동생 문희와 여배우 문희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 저자는 개인적인 감상과 취향을 드러내는 미숙함을 보인다. 역사를 쓰는 사람은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가 그렇게 책을 쓰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그럴 의도를 밝혔어야 했고, 일관되게 그 태도를 유지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없이 갑자기 문희에서 현실과 역사를 섞어버렸다.


5. 게다가 수로부인 편에서 “꽃을 꺾어 바칠 사람 누구 없니? ”이 한문장만 으로 수로부인을 공주병과 푼수끼라고 운운하는 저자의 억측은 독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개인적 성향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섞어버려 독자에게 재미가 아닌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많이 저지르고 있다. 갑자기 ’강원도의 힘‘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오는가 하면, 인물에 대해서도 개인적 취향과 호불호를 쉽게 드러내 버린다.  아무래도 역사학자가 아니고 국문학자가 써서 그런가보다. 고증에 기반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일관되고 편중됨 없이 책을 꺼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아니면 적어도 독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숨겨두는 지혜를 발휘하는게 좋았을 듯 하다.  


6. 견훤에 대해서는 역사책들에서 포악한 것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가 견훤을 폄하한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논하지 않겠다. 하지만 왕건과 견훤을 비교하는 입장에서는 역사의 승자에 대한 기록의 관대함이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간과한 듯 보인다. 승자의 권위에 편승하여 쉽게 왕건을 추켜세우고 있다. 식상하다. 저자가 삼국유사를 20년 연구했다면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다른 자료의 인용으로 자신만의 논지를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7. 또한 370페이지에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을 테다” 라는 글을 논하면서  저자는 “상상의 동물로서 거북이는 왕왕 용의 다른 모습이거나 똑같은 역할을 한다. 분명 신성한 동물의 하나다. 그러나 존대보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심지어는 구어 먹겠다는 불경스런  표현을 서슴지 않는 데에서 우리 옛 노래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라고 논했다.

 저자는 거북을 용의 다른 모습이라고 표현했는데 적어도 그런 표현을 쓰려면 그것을 증명하는 사례를 인용하거나 주석 처리를 하여 자신의 논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그러나 거북은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이다, 거북을 상상의 동물이라고 하는 저자의 설명은 저자가 독특한 세계관을 갖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상식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논평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9. “육재일이란 한달에 여섯 번 있는 재일로 8, 14, 15, 23, 29, 30일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치 유대인들이 지키는 유월절 같은 느낌이 든다, ”라는 말을 523페이지에서 하면서 저자는 육재일과 유대의 유월절(逾越節)을 비유한 대목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육재일은 여섯 번의 재(齋)일이라는 말이고 유월은 유대인이 애굽을 나오기 전 마지막 날 밤 장자가 모두 죽는 재앙이 있던 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그 재앙이 문을 넘어 갔다는데서 유래한 절기이다. 그래서 유월은 passover 라고 하는데,  어찌 같은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유월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육재일을 선악을 살피는 날로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과 연계했다면 이해는 조금되지만 그렇다면 독자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어야 오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자자의 이런 태도는 책 전체 내용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10. 586페이지에서 “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태, 곧 떵속에 묻어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 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이보살에게 빌어야 한다. 지금도 절에 가면 명부전이라는 불당이 있는데 거기서 바로 이 지장보살을 주불로 삼는다.” 라고 지장보살과 명부전을 설명했는데

 그러면 왜 지장보살이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지장이 어머니가 지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죽으면서 서원을 하는 이야기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다가 지옥에 오는 모든 사람을 극락으로 가게 해주겠다고 소원한 이야기, 그래서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이 모셔진 명부전에서 비는 이야기,... 그리고 지장의 어머니이야기가 추가되었다면 재미도 있었을 것이고 좀 더 깊은 불교지식을 전달했을 듯하다.  


이러한 저자의 서술 방식으로 인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책에 대한 신뢰를 깊이 갖지 못했다. 저자가 20년 세월을 <삼국유사>에 투자했다는데 삼국유사 자체만이 아닌 불교의 교리와 타 종교의 관계, 삼국의 역사와 중국 일본의 역사 인류학적 견지에서 분석한 인물들의 성향 분석 등을 가미하였다면 더 훌륭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에 걸 맞는 <삼국유사>로 만들어졌을듯하다.  

IP *.250.138.49

프로필 이미지
미옥
2010.05.13 03:15:53 *.53.82.120
아~!!
그렇구나..        ^^
프로필 이미지
청강 온니
2010.05.14 06:48:09 *.250.138.49
응~!!
그렇다구..    ^^
프로필 이미지
2010.05.14 10:01:32 *.106.7.10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들, 아주 잘 읽었습니다.
읽다보니 얼마나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지도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좋은 시각 많이 보여주세요 ^^
프로필 이미지
청강
2010.05.14 12:15:45 *.145.204.123
아이고~~ 별말씀을........
나이만 많아가지고.,
말이 많았습니다
자중~~
프로필 이미지
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22:36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84271
738 5-3리뷰 역사속의 영웅들 윌듀런트 [1] 윤인희 2010.05.16 4225
737 책을 찾고 있습니다. [2] 불광불급 2010.06.23 4225
736 <북리뷰>아파트 신화의 덫에 걸린 사람들 -『하우스푸어』 구름을벗어난달 2011.02.01 4225
735 어떤 물건을 구입하는 것보다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이 더 ... [2] 승완 2009.11.23 4226
734 10-2리뷰 블루오션(김위찬과 르네 마보안 지음) 인희 2010.10.11 4226
733 <10기 레이스 3주차 북리뷰>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 이동... file [3] 희동이 2014.02.24 4226
732 [8기 지적레이스 4주차/ 정나라] 선배님들! SOS칩니다. 조... [17] 터닝포인트 2012.03.06 4227
731 단순하고 실용적인 의사결정 도구, 10-10-10 승완 2009.09.21 4228
730 [북] 왜 일하는가? 대답할 수 있는가? 하모니리더십 2010.11.24 4228
729 선의 황금시대 심신애 2009.03.02 4229
728 리뷰3주차-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이은주 2010.02.28 4229
727 새로운 롤 모델, 마이클 더다 이희석 2010.10.26 4229
726 9기 레이스 2차 - 법의 정신 - 강종희 file [4] 종종걸음 2013.02.12 4229
725 The Boss-쿨한동행 심신애 2009.02.16 4230
724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 이만성 2010.01.21 4230
723 한명석님의 '늦지 않았다'를 읽고 [1] 정은실 2010.01.03 4231
722 현실과 허구, 환타지를 잘 버무려준 김려령의 "너를 봤어" 한 명석 2013.08.04 4231
721 생각의 탄생-2차 2회 [1] 정철 2009.02.23 4233
720 뛰어난 인물 사진의 모든 것 [1] 한정화 2011.11.25 4233
719 9기 북리뷰4주 <솔로몬 탈무드>-용경식 file 엘모99 2013.02.24 4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