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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4일 02시 34분 등록

 

 

 

 

 

어느 초보 독서가의 4주 간의 지적여행

    (부제 : D, K를 만나다. 그리고 책을 만나다.) 

 

 

 

 

 

 

 

 

 

 

 

 

김 대 수

 

 

 

=        =

 

프롤로그 - 2013 2월 말 아침, 커피전문점의 나

 

200810 - K를 만나다.

2012 12 - K의 초대장을 받다

 

2013 2 - D, 4주간의 지적여행을 떠나다

[지적여행 1주차] 신화 그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대하여(‘그리스인 이야기를 읽고)

[지적여행 2주차] 가깝고도 먼 법 (‘법의 정신을 읽고)

[지적여행 3주차] 영웅 노먼 베쑨을 만나다 (‘닥터 노먼 베쑨을 읽고)

[지적여행 4주차] 세상을 지배하는 유대인, 그들의 교육에 대하여(‘솔로몬 탈무드를 읽고)

 

[귀환 - 5주차] 독서, 그 낯설지만 매력적인 세계

2013 3 3일 저녁

1.     독서는 습관이다

2.     독서는 수 많은 삶으로의 여행이다 

3.     독서는 변화다

 

2013 3 3 11: 32, 깨달음

에필로그 - 2013 34 0:17, 책상 앞의 나

 

 

프롤로그 - 2013 2월 말 아침, 커피숍의 나

나는 노란색 불빛 아래에서 노트북을 응시하며 멍하니 앉아 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써야 할까 무엇을 써야 하나목이 뻐근해 온다. 집에 와서도 노트북을 보고, 새벽에 일어나서도 노트북을 보거나 책을 보고…… 회사에서는 당연히 업무의 90%이상이 컴퓨터로 이루어지다 보니 노트북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지난 약 2개월의 시간 동안 그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얼마이던가…… 35~40시간 가량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타이핑 했으며, 그러기를 대략 8주 이니, 그 시간이 320시간이요, 이 중 절반의 시간을 타이핑 했다고 하면 160시간이다. 하루가 24시간인걸 감안하면 이는 잠 안자고 타이핑만해도 6.7일이나 되는 시간이고, 대학시절 듣던 3학점짜리 수업 예를 들면 단순하지만 지겨운 관리회계, 재미있지만 잘 해봐야 공장장 될 것 같던 생산관리, 멋진 제목이지만 알고 보면 case study (그것도 영어로 된)인 다국적 기업론, 첫 수강 때도 재수강 때도 한결같지 지겨운 기초 물리학 등 그 수많은 3학점짜리 과목들 3.6과목이나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4주만에 말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경직된 자세로, 마감시간이 맞춰가며, ‘나는 이렇게 부족한데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을까?! 나는 과연 그들과 함께 또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런 불안한 생각을 하며 그 시간을 앉아 있었으니 목에 무리가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3주차를 넘어 4주차에 그 불편함과 뻐근함은 절정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는 어제 큰 마음 먹고 인터넷쇼핑으로 블루투스 키보드는 구매했다. 펜타그래프 방식으로 타이핑이 편안하고 타이핑 소리도 작다고 하니, 도서관이나 커피전문점 같은 공공장소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소리가 전보다 덜 할 것이며, 이 신기한 블루투스 키보드 덕에 원고대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작업을 할 수 있으니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 꼬치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도 나를 보고, 나도 노트북을 볼 수 있는 아주 평등한 지점, 즉 서로의 시각이 평행선을 이루게 되어 휘어진 각도로부터 받는 목의 부담이 확실히 덜해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것만 있으면 주 40시간이 조금 덜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 블루투스 키보드가 배달 되었다. 일단 스마트폰에 연결해보았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잘 되는 것 같다. 타이핑 감도, 타이핑 소리도 나쁘지 않다. 괜찮은 것 같다. 좋다. ‘그래 그럼 노트북에 연결해보자.’ 키보드를 노트북에 연결한다. 노트북이 감지를 하지 못한다. 블루투스 버튼을 한 번 누른다. 노트북이 곧 요 녀석을 감지한다. 좋다. 추가만 하면 된다. 장치를 설치하고 서로를 인식하도록 암호를 친다. 인식한다. 이제 타이핑을 해본다. 이상하다 타이핑이 되지 않는다. 왜 이러지? 또 해본다. 또 한된다. 뭐가 잘못됐나. 다시 해본다. 그래도 안 된다. 그러기는 수 차례 시간은 벌써 내가 정해놓은 시간, 7 20분을 훌쩍 뛰어넘어 8시를 넘어서고 있다. ‘으악……. 시간 없는데…… 빨리 구상하고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 ....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고, 나의 불안함은 흘러가는 시간만큼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지? 도대체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는거야????’ 나는 그렇게 반문해봤지만, 시간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고, 어느덧 내 머리 속은 글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08 10- K를 만나다

나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했다. 난 해운 회사에 다니고 있다.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중견회사로 창사한지 수십 년이 된 나름 탄탄한 회사였다. 난 그 회사의 수출영업팀 소속이다. 13명이 속해 있는 수출영업팀에서 밑에서 2번째 나. 아침엔 언제나 바쁘다. 고객으로부터 걸려오는 수 많은 전화와 그 벨소리, 내 전화도 모자라 남의 전화까지 대신 받아야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 오늘도 바쁘네…… 그래, 조금만 참자.’ 영업사원들은 보통 10~10시 반이면 으레 사무실을 나간다. 명목상으로는 영업을 위해서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거래처와 약속을 잡으려 해도 상대방이 원치 않으면 갈 수 없는 게 영업이었다. 때로는 자의에 의해 영업을 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 외근 나가면 움직이는게 귀찮긴 해도 조금 여유가 있을 꺼야.’ 난 생각했다.

얼마 뒤, 친한 동료선배와 점심 약속을 잡고, 영업을 나갔다. 오늘의 장소는 홍대, 홍대에는 거래처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일단 홍대에 가면 적어도 두 세 군데는 만날 수 있으니, 미리 약속을 정하지 못하면 홍대로 간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거래처와 약속을 잡고 미팅을 갖는다. 그 날도 동료 선배 J와 식사를 하고 각자 흩어져 거래처를 방문했다. 한 두 곳을 방문에 마켓 동향을 물어보고 현재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에 문제는 없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요청사항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미팅을 마쳤다. 회사에 돌아가기 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 여유를 갖자고 생각하는 찰라, S 선배 과장에게 전화가 온다.

“D, 너 어디냐?!” 과장이 말한다.

, 저 여기 홍대인데요. 왜요 과장님?” 내가 말한다.

, 빨리 무교동으로 와. 팀장님 호출이야.” 과장이 말한다.

?! 또여?! …… , 그냥 거래처 방문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면 안돼요?” 한숨을 쉬며 내가 답한다.

안돼. 팀장님이 무조건 다 모이라고 그랬어. 호출이야 호출. 빨리 와라.. “ , 과장이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보나마나다. 안 봐도 비디오다. 이번에도 똑 같은 것이리라. 친한 과장 J에게 전화해 봤더니, 역시나 그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J과장과 만나 무교동으로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무교동 어딘가의 지하 노래방. 지금 시간 오후 3 40. 전해들은 그곳으로 들어가니 선배들은 벌써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탁자에는 캔 맥주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저 구석 어두컴컴한 곳에 C팀장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거래처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다. 이내 몇몇 다른 동료들이 들어온다. 팀원들이 다 모였다 싶으니 팀장이 얘기를 시작했다.

김사장 봤쥐~?! 우리 회사가 이래~~ 팀장이 말하면 영업하다가도 다들 이렇게 달려온다니까~~~ 대단하지?! 얘들아, 이 김사장님 거래건 잘 해드려라~ , 다들 모였으니 한잔해~건배! “ 뿌듯한 미소를 짓는 C팀장, 그는 영업적으로 이렇게 하는 거라지만 사실 우리를 불러모으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술을 워낙 좋아하는 그였으니, 영업하고 술 마시고 자기 지위 과시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또 먹는 격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가 직접 가지 않은 것까지 하면 몇 개월에 수 차례다. 아마도 한 달에 한 두 번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C팀장은 그날 저녁에도 우리를 데리고 2, 3차를 갔으며, 노래방에 갈 때마다 내게 분위기를 띄우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불편함을 겪어야만 했다. 회사, 요즘 그에게 회사는 악몽이었다. 내가 바라던 조직은, 내가 바라던 팀장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으로 있어서는 안되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오늘도 서점에 들렀다. 자기계발서나 처세서를 훑어보는게 취미였던 나의 눈에 띄는 책이 하나 보였다. 첫 페이지를 넘긴다.

나는 나를 혁명할 수 있다.”

신은 우리를 가르칠 때는 채찍을 쓰지 않는다. 신은 우리를 시간으로 가르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인상적이네…… 작가가 누구지? K?  빌려봐야겠다. 이런 책은 돈 아까워.’

며칠 뒤 도서관에 간 그는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조금씩 읽기 시작한 책은 이내 절반이 되었고, 이틀 뒤 그 책을 모두 읽어 버렸다.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이고 이론적이면서도 실용적이었다. ‘K, 도대체 이 사람 누구지?!’

 

K를 만났다. 아주 우연히.

그렇게, 그토록 답답한 현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원했던 나였다. 회사에서 나를 이끌어줄, 나의 열정에 불을 당겨 줄 그런 사람을 원했지만 찾기 어려웠고 한줄기 빛은 고사하고, 있는 구멍마저도 꼭꼭 틀어막는 팀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욕망이 없는 삶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욕망과 화해하고 대항해 싸우는 수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욕망을 사랑한다. 욕망만큼 강력한 모티베이션은 없다.”

삶이 어려운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다. 욕망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개혁은 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 방법이다. 그것은 변화를 창조함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법은 바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창조의 힘은 욕망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욕망은 관리되어서는 안 된다. 관리된 욕망은 이미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K의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서문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내 가슴팍에 하나 둘 꽃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십함마(군대용어다)로 그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리는 듯 했다.

내 삶은 지금까지 딱 정해진 곳 안에서만 움직이는 그런, 자로 잰 듯한 인생이었다. 어릴 적에는 집안 환경에 맞게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적인 직업(공무원)이 가장 바람직한 직업으로 생각했고, 그 이외의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뜻에 거역한 적 별로 없는 착한 아이였으며, 그래서 내가 움직이는 반경은 언제나 부모님이 원하는 반경, 부모님의 눈과 마음에 보이는 반경, 딱 그만큼이었다. 내 인생은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았다. 내게 욕망이란 녀석은 조절해야 하는 녀석이었고 조절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크기에 맞게 늘려지거나, 침대보다도 클 땐 사정없이 싹뚝잘라내야 하는 불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K는 그런 욕망을 억제하지 말고, 더욱 더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게 이는 혁신적인 메시지였다.

책의 시작은 나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 1988 7,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유전에서 석유 시추선이 폭발하여 168명이 희생된 사고가 발생했다. 앤디모칸은 지옥 같은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그가 한참 잠이 들었을 때의 일이다. 잠결에 들리는 폭발음 소리에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앞에는 거대한 불기둥이 곳곳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치솟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피할 곳이라고는 없었다. 순간 그는 배의 난간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바다 역시 유출된 기름으로 불길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바다로 뛰어내린다 하여도 길어야 30분 정도 여유가 있을 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구조되지 않으면 살기를 포기해야 했다. 더욱이 배의 갑판에서 바다의 수면까지는 거의 50미터 높이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그는 두려웠다. 그러나 머뭇거림도 잠시 그는 불꽃이 일렁이는 차가운 북해의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무엇이 앤디 모칸을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그가 운이 좋았던 것인가? 배에 남아 목숨을 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용기가 없거나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앤디 모칸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순간 불타는 갑판에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은 곧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구조될지 모른다는 실낲 같은 희망을 안고 바다로 뛰어드는 목숨을 건 선택을 감행했다. 그의 행동은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으로의 선택이었다. “ (‘익숙한 것과의 결별프롤로그)

내 삶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지금의 직장은 불타는 갑판이었다. 뛰어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난 지금 뛰어내릴 수 없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지금 뛰어내린들 산다는 보장도 없었다.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내게 현실을 직시하게 했고, 지금 당장 뛰어내리지 않더라도 뛰어내릴 마음가짐과 오랜 시간 잠수 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만 같았다. 아니 바꾸어 놓았다. 그 전까지 우유부단 하던 난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인생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실행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적어도 마음 속 깊이 변화희망이라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발아할 수 있는 조건은 만들어준 것은 확실했다.

어느 경우이든 겹쳐지지 않는 그림을 포개는 작업으로 시작해야 한다. 하루 두 시간 이상을 매일 쉬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투자하라. 욕망과 재능에 이제 시간을 더하라. 시간은 곧 삶이고 삶을 욕망과 재능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 다른 사람의 욕망과 재능에 돈과 시간을 걸지 말아라. 운이 좋으면 돈을 딸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잃을 확률이 더 높다. 더욱 비참한 것을 스스로의 욕망을 희생하고, 하늘이 준 재능을 버림으로써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팔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P.346)

‘K’, ‘’, ‘하루 2시간’, ‘변화’. 내 마음에 몇 가지 핵심 단어들이 새겨진 건 이 때부터 였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적어도 이 가치들- ‘K’ ’’ ’하루2시간’ ’변화’ ’독립’’ - 을 가슴에 새기고 살기 시작했다. 일단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지만, 책을 습관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조금씩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9 20여권, 2010 25여권 2011 30여권, 2012 45내가 읽은 책을 권수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미진하지만 조금씩 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책에 관심을 글쓰기로 이어졌다. 책을 읽는 것이 지식을 쌓게 해주고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면서 정신적 확장을 이루어지게 한다면, 글쓰기는 그 확장된 정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문을 찾게 해주는 듯 했다.

 

2012 12- K의 초대장을 받다

나는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발을 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K의 홈페이지에 들러 이런 저런 글을 읽고 있던 중 어떤 공고를 보았다.

“2년 여의 자아탐구여행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여행을 통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학위나 자격증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 여행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고, ‘나의 욕망과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근면하고 겁 많은 가축으로 살고 싶으면 지원하지 마십시요. 인생을 시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만 지원하십시요. 이 초대장 속에 열쇠를 동봉할 테니, 원하시는 분들만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

K의 공고였다.

언제나 이 맘 때면 봐왔던 공고였지만, 그 날 따라 그 공지가 달라 보였다. 마치 밝은 노란색 원피스에 한쪽엔 전공서적을 들고 찰랑찰랑 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봄 교정을 걷는 청순하고 수줍지만 당당한 여학생을 보고 남학생처럼, 내 머리가 반응하기 전에 내 심장이 먼저 반응했고, 내 눈이 보기 전에 내 마음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이런 주체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전공을 바꿀 때도 그랬고, 사랑하는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난 그 때마다 이 감정에 충실했다. 그런데 이 느낌, 실로 오랜만에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난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결국 그렇게 2년간의 여정을 위해 4주간의 지적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013 2– D, 4주간의 지적 여행을 떠나다

D, 동네 커피전문점에 연구실을 만들었다. 물론 임시였고, 하루 임대로는 5,000원 내외였다. 본격적으로 K씨의 4주간의 지적 군사훈련을 받기 위한 조치였다. D K 1차 관문에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합격소식과 동시에 드디어 4주간의 지적 여행의 주제를 건네 받았다. K가 제시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았다.

1. 신화란 무엇인가 : 그리스인  이야기

2. 법의 정신에 대하여 : 법의 정신

3. 현대의 영웅에 대하여 : 닥터 노먼 베쑨

4. 새로운 교육에 대하여 : 솔로몬 탈무드 

K의 최근 관심사를 봤을 때, 첫 번째와 세 번째 주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두 번째와 네 번째 주제는 잘 와 닿지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D의 관심사와 조금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과정 그 과정을 잘 체험하고 지나갈 지가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의 D의 삶에서, 신화, , 영웅과 같은 심상들은 그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는 못하는, 즉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난감해 하는 D. 하지만, 생의 갈림길에서 그는 수풀진 어두컴컴한 길로 들어서버렸고,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D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그를 만나고 K가 제시한 과정을 수행하며 느끼는 것, 그것 밖에 없었다.

[지적여행 1주차] 신화 그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대하여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고)

첫 번째 주제 신화. K가 던져준 첫 주제이다. D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주제이다. 왜냐하면 최근 2~3년간 그의 관심은 신화였기 때문이다. 그는 왜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일단 K가 십 수년간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와 신화 사이의 연계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 어찌 보면 허무맹랑할 수 있는 신들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다니……

“3000년이 지나 우리는 가지가지의 문명들이 혼합된 글로벌 시대에 와 있다. 우리의 의식 세계는 문명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아직도 문명에 의해 순치되지 않은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 그것이 자기 경영의 본질이다. 그래서 신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내명이 어둠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며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인이야기’ P.18)

K는 변화경영전문가였다.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를 변화경영사상가가 부르며, 변화경영이론 그 이상의 것을 만들고자 했다.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경이 무의미해진 현시대는 말 그대로 글로벌시대이다. 국가간의 교류, 기업의 거래, 판매자와 구매자 등 많은 관계가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많은 나라와 인종과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우리의 내면 깊게 자리하고 있는 신화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그들뿐만 아니라,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즉 인간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 내면의 것을 알아야 하고 그 통로는 신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앙드레 보나르 같은 문학가는 진정한 원시는 문명 속에 있다.”고 말한다. ‘자유를 위한 숭고한 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살라미스 해전은 강력한 전제주의 국가인 페르시아에 대항한 그리스 민족의 독립 전쟁이었다. 이 해전이 벌어지던 역사적인 날 아테네의 총 사령관 테미스토클래스는 인간의 생살을 뜯어먹는 신 디오니소스에게 세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금빛 보석으로 치장한, 잘생긴 이들은 아테네 최고의 집정관의 친조카들 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랐다. 그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보내고 싸움길에 올랐던 것이다. 문명은 이렇게 원시와 몸을 섞으면서 자라왔다.”(‘그리스인이야기’ P.12)

우리가 사는 이 문명은 이처럼 원시를 품고 발전해왔다. 위에 언급된 테미스토클레스의 이 원시성은 그 수 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원시적인 행위가 현대문명에는 더 이상 없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불교인들은 부처에게 절을 한다. 이슬람교, 힌두교 등 수많은 종교가 보이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신(하느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계하고 우리의 인생과 삶이 더 평화롭고 윤택해지길 기도한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 우린 정월대보름을 맞았다. 우린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깬다. 각종 부스럼을 없애고 이를 튼튼하기 위해서이다. 또 달집놀이라는 것도 한다. 달집(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달맞이할 때에, 불을 질러 밝게 하려고 생소나무 가지나 무에 적신 짚따위를 묶어 올린 무더기)을 적당히 세우고, 달이 떠오르는 동쪽만 터놓고 불을 붙이는 전통이다. 이는 달집이 너무 빨리 타지 않게 하면서 연기를 내뿜게 하기 위함인데, 연기가 많이 나야만 풍년이 든다고 믿는 전통이기도 하다. 어떠한 검증도 없었고 검증 자체가 필요 없는 행위이다. 조금 더 영역을 넓히자면 문명화된 현대에도 여전히 원시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원주민들도 있다. 아프리카와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예전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조에족의 경우 입술아래에 구멍을 뚫고 뽀루뚜라는 나무 막대를 끼우고 지낸다. 뽀루뚜에 별다른 용도는 없지만 조에족 특유의 전통문화이다. 그들은 또한 복혼을 인정하고 있다. 일부 다처제이기도 하고 다처일부제 이기도 한, 다처다부제이다. 얼마 전, 브라질 아마존 채굴권을 둘러싼 불법 채굴업자들이 채굴권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아마존 원시부족인 야노마미족의 마을에 불을 지른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야노마미 족 80명일 살해되었으며, 원래 2만명이었던 야노마미족은 현재 1만여 명 정도 까지 줄어든 상태이다. 이처럼 우리의 문명은 우리의 삶에 원시를 품고 있고, 원시적인 행위를 통해 원시를 파괴하는 모순을 되풀이 하기도 한다. 우리는 원시적이라는 말을 경멸하는 편이지만, 우리 삶과 내면의 밑바닥에는 바로 그 원시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일단 D K가 신화에 심취해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신화라는 주제가 그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D가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를 보는 그의 시각을 달리 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에 D에게  신화하면 떠오르는 말은 성공신화밖에 없었다. ‘Y대 경영대학에 재학중인 복학생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빙수가게를 차렸고, 이 가게가 대박이 나서 하루 수백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는 곧 이 가게 프랜차이즈화 시키고, 승승장구하여 결국 젊은 나이에 돈방석에 앉는다.’ 그에게 신화는 이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보통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부를 쌓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러한 연상은 D의 가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으며,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D에게 신화는 이 정도였다. ‘성공신화’ ‘스포츠영웅’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많은 감독, 배우들이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신화란 주제를 눈앞에 두니 신들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D는 일단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큰 난관에 부딪혔다. D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책 읽는 속도가 상당히 늦다(늦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너무 많은 신들과 인물들, 그들과의 관계들이 얽히고 설킨 듯 했다. ‘도대체 이 많은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그녀의 아버지 미노스와 파시파에 그리고 포세이돈의 황소에게 반해 목우 안에 들어가 황소를 탐하게 된 파시파에와 그로 인해 태어나게 된 수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지게 된 미노타우르스

여기서 파시파에가 들어간 목우는 건축과 공예의 장인인 다이달로스가 만들어줬고, 훗나 다이달로스는 테세우스의 탈출에 대한 죄로 자신이 지은 라비린토스에 아들 이카루스와 같이 갇히게 된다. 훗날 어깨에 밀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이카루스와 함께 탈출하지만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다이달로스의 명을 잊어버린 이카루스는 태양과 너무 가까워져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게 되고,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로 도망가게 된다.

그런가 하면 다이달로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자손이다. 헤파이스토스는 누구인가?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신으로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이며, 미의 여신이자 바람기 다분한 아프로디테의 남편이자 인간에게 불을 줬다는 이유로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내보낸 흙으로 여신을 닮은 처녀를 신들의 장점들을 뽑아서 넣어 만들어진 판도라를 만든 신이었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이처럼 많은 신들, 등장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었다.  

결국 D는 인물관계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읽었다. ‘, 인물관계도, 신들과 인간들의 관계도를 정리해 줬으면 이해하기 더 좋았을텐데..’ D는 이런 아쉬움을 느끼면서 읽기를 계속했다. 얼마나 읽었을까. ‘그리스인 이야기를 모두 읽게 된 D는 신화에 대해서 정의해야 했다. ‘신화란 무엇 일까? ‘

신화란 신들의 이야기이다. 이를 조금 더 간단히 정의하면 신화란 이야기이다. 인간의 모든 문화와 행동과 생각의 원인일 수 있는 신들의 이야기. 인간의 욕망과 인간사에 얽혀 때로는 인간을 조정하기도 하고 그래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들의 이야기, 즉 이야기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를 이렇게 정의하자 D와 신화와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신화가 진정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정의될 수 있을까? D는 그런 부분이 있는지를 되돌아보았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여섯 번째 막내아들이다. 크로노스는 자식 중 하나가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레아가 낳은 아이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여섯 번째 아이만이라도 살리고 싶었던 레아는 강보에 돌을 싸서 크로노스에게 주었다. 크로노스는 그것이 아이인 줄 알고 삼켜버렸다. 제우스는 그렇게 해서 살아났다. (…..) 제우스의 권력 쟁취 과정은 크로노스와 티탄의 연합 세력과의 싸움에서 시작했다. 제우스는 먼저 크로노스가 지하 감옥인 타르타로스에 가두어둔 외눈박이 거인 키크롭스와 팔이 100개인 거인 헤가톤케이레스를 풀어주어 자신의 세력으로 규합했다. 키클롭스는 제우스에게는 천둥과 벼락을 무기로 주고, 하데스에게는 머리에 쓰면 모습이 사라지는 투구를 주고, 포세이돈에게는 땅과 바다를 뒤흔들 수 있는 삼지창을 만들어주었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신들의 으뜸인 올림포스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권위는 다시 도전받게 되었다. (……)” (‘그리스인 이야기’ P.64)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권력투쟁의 과정을 보면 인간세계 그것과 너무도 유사하다. 역사적으로도 힘없는 아비의 왕위에서 내리고 왕조에 오르는 왕자도 있으며, 현대사회를 보면 부모의 재산이 탐이나 그 재산만 취하고 부모를 버리는 패륜자식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빛과 창공의 신인 제우스의 아버지이자, 아들인 제우스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권력을 잃고 크로노스 또한 대지의 신인 어머니 가이아의 사주를 받아 하늘의 신인 아버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거세하고 권력을 쥐게 된다. K는 그의 전작 신화 읽는 시간에서 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가이아는 남편 몰래 크로노스의 손에 날카로운 낫을 쥐어주었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가 가이아 위로 몸을 덮쳐올 때 재빨리 낫을 휘둘러 아비의 생식기를 거세해버렸다. 이때 우라노스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흐르고 흘러 시간이 되었다. 그 후 크로노스 역시 결혼을 했지만 자식들에게 타도될 운명이 두려워 아이를 낳자마자 삼켜버렸다. 크로노스는 아비를 죽여 권력을 얻었으나,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자식이 다시 자신을 죽이는 일이 반복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신화 읽는 시간’ P.30)

아버지는 과거이고 아들은 현재이다. 과거는 흘러가고 기억에서 잊혀진다. 어제는 오늘로 대체되고, 늙은이는 젊은이들에게 대체된다. 얼마 전까지는 내가 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정력적이고 머리가 잘 돌아가며 진취적인 젊은 배역이 주인공이 된다. 그들은 힘도 좋고 피부도 탱탱하고 자신감 넘친다. 이처럼 과거는 현재에 의해 대체되고 잊혀진다.

그런가 하면 신화 속에서 어리석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K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은 신화를 전한다.

다이달로스는 바로 이 두 명의 위대한 기술과 기예의 신으로부터 직접 사사한 직계 제자인 셈이다. 그러나 장인의 대명사인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이기도 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든 자기 작품의 주인이 아니다.  그들은 주로 주문을 받는다. 헤파이스토스 역시 그랬다. 자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장차 물건의 주인이 될 사람의 주문에 따를 뿐이다. 그러므로 기술자들은 ?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라는 질문에만 몰두한다. 주문 받아 제작된 물건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건 그 물건의 주인이 알아서 할 뿐이다. 장인은 오직 어떻게 만드는가에 신경 쓸 뿐이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라고 묻지 않는다. 그들은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모른다. 사회가 원하니까 대학에 가야하고 대학에 가야하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도 남들이 하는 똑같은 책으로 똑 같은 방식을 가지고 무작정 외우고 또 외운다. 국영수 위주로 학교수업에 충실하면서 대학에 가기도 하고, 월 수십 (또는 수백)의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공부를 해 대학에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면 조금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그들은 또 다시 취업전쟁에 뛰어들고 일부는 성공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패자이다. 왜냐하면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 조차도 그들이 그 일을 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다이달로스의 후예처럼 보인다.

신화는 이야기이다. 질투, 사랑, 배신, 욕망, 승리 등의 인간 본연의 성질 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실패가 있으면 성공이 있다. 승리가 있고 패배가 있다. 평범함이 있고 비범함이 있다. 바람기 다분한 사랑이야기가 상당하지만 페넬로페이아와 오디세우스 같은 우직한 사랑도 있다. 오랜 전쟁 끝에 망국의 사람이 되었지만 새로운 땅을 개척하여 1000년 역사의 기초를 건립한 아이네이아스와 이울로스의 성공신화, 반전신화가 있다. 이는 인생사 새옹지마이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걸 보여준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돌아와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목숨을 잃은 아가멤논도 있다. 닮았지만 입장이 달랐던 안티고네와 크레온이 있고,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를 극복한 뒤로는 그 위험이 가장 큰 조력자가 된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많은 이야기는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화를 통해서 우리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K는 신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인간을 벗긴다.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를 보여준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다. 동시에 인간의 미덕과 통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며, 상징을 통해 벌거벗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K의 신화읽는 시간’ P.12)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신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신화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인간들의 숨겨진 모습을 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이용해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D K가 말하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신화는 은유이다. 인간에 대한 은유이다. 인간들은 신화를 써내며 인간들의 그때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놓았다. ‘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들의 추한 속성까지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D, 오랜 시간과 고민 끝에 신화에 대해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D에게 신화는 더 이상 먼 산  이나 남의 일이 아니었다. ‘신화는 충분히 읽어 볼 만하며, 조금 더 깊이 사유해야 하는 주제였다.

D신화 K가 건내준 과제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갔다. 첫 번째 주제 신화는 그에게 잡히지 않는 무엇, 너무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였지만 첫 주제에 대한 탐구를 마무리 할 즈음 그는 신화와 조금 더 가까워진 듯 했다. 더불어 그의 지적 호기심은 신화를 넘어 로마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K가 제시한 책의 결말이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인 로물루스의 로마건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자 화가 난 레무스는 쉽게 건너뛸 수 있는 고랑으로 도시의 경계를 정한 형을 비웃으며, 고랑을 훌쩍 뛰어넘어 들어갔다. 로물루스는 모욕을 당하자 분개하여 칼을 뽑아 레무스를 찔렀는데 그만 동생이 죽고 말았다. 그는 곧 자신이 한 일을 깊이 후회하고 동생을 아벤티누스 언덕 아래에 묻어주었다. 로물루스는 나중에 알바롱가의 땅을 흡수 통합하여 로마 시를 만들었다. 제국 로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스인 이야기’ P.435)

K는 교묘하게 D의 지적호기심을 확장시켜놓고 있었다. ‘K, 이 사람…… 이렇게 교묘하게……’ D는 훗날 만나게 될 신화와 로마사를 떠올려봤다. 그는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지적여행 2주차] 가깝고도 먼 법(‘법의 정신을 읽고)

 

2013 2월 둘째주

두 번째 주이다. D는 회사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집중이 안 된다. D가 지적 여행에 지원하면서 다짐한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일단 즐길 것. 둘째 일과 지적 여행을 철저히 분리할 것. 셋째, 혼신의 힘을 다할 것. 넷째, 가족들과 함께할 땐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렇게 네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대부분 잘 지켜지고 있는데 특히 한가지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과 지적 여행의 분리였다. 이는 훗날 2년여의 자아탐험여행에도 적용되고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주 이유는 K가 준 두번째 과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법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어보시고 이에 답하여 보세요.”

…… 지난 주 신화에 이어 이번엔 법이라니…. 주제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책을 펴고 시작하려 하니 눈앞에 캄캄하다. ‘법의 정신’, 책은 700페이지가 넘으며, 저자는 몽테스키외. 풀네임은 샤를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책의 분량만큼 이름도 길다. 몽테스키외, 니체, 헤겔, 샤르트르…. 중고등학교 시절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어려워 보이던 작가들이었고,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D의 생을 돌아보면, 이는 너무나 어려운 주제였다. D는 고민에 빠졌다. ‘허허…… 이를 어쩌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과 지적 여행의 쿨한분리가 이루어 질 리가 있나.   

D는 주제와 책의 분량을 고려하여 일단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간시도 해본 결과 이것마저도 D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른 새벽 법에 대한 책을 읽기엔 D의 체력과 정신력이 거기까지 따라와 주지 않았으며, 퇴근 후에 책을 읽어도 시간당 20페이지의 아주 저렴한 스피드를 자랑했다. 결국 D는 설 연휴가 포함된 주말을 이용하여 이 지적 여행에 몸을 실을 수 밖에 없었다. 과연 D는 잘해낼 수 있을까?

 

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키외는 1689년 보르도 근처 라 브레드에서 태어났다. 유서 깊은 무관 가문 출신으로 유복하게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계몽적이고 근대적인 교육을 받았다. 1708 19세에 보르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713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파리에서 보르도로 돌아왔고, 1715, 백부의 뜻을 좇아 군인 가문인 위그노의 한 상속녀 잔느 라르티그와 결혼한다. 부유한 프로테스탄트였던 그녀는 지참금으로 10만 리브르를 가져왔고 얼마 뒤 딸 2명과 아들 장 바티스트를 낳았다. 몽테스키외는 부인의 사업수완을 높이 샀지만, 그녀에게 그리 충실하거나 가정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1716년 후손이 없는 작은아버지의 사망으로 재산과 고등법원장 지위를 상속받게 되었다. 보르도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 되었다. 1721년 두 명의 페르시아 여행자가 프랑스 문명을 날카롭게 풍자한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익명으로 출판,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이후 저자가 몽테스키외라는 것이 밝혀지며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1728년 프랑스 한림원으로 선출된 몽테스키외는 3년간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을 여행했고, 특히 영국의 의회 정치를 이상적인 국가 정체의 모델로 파악하게 되었다. 재산을 거의 탕진하고 돌아온 후 그의 필생의 작품 <법의 정신> 저술에 착수, 1734년에는 그 일부로 <로마인의 위대함과 그 쇠락의 원인에 관한 고찰: 로마 성쇠원인론>를 발표하고 1748 <법의 정신>을 발표했다. 이 책은 22판까지 인쇄되고 복사본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저자의 종교편향적인 시각과 법은 풍토와 습속, 사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를 변호하기 위해 <법의 정신 변호론> 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법의 정신> 출간 이후 급격히 쇠약해진 몸 상태로 인해 추가적인 집필은 하지 못했고, 1755 2월 유행성 감기(또는 폐렴) 걸린지 2주만에 삶을 마쳤다.

 

몽테스키외는 그의 저작 법의 정신을 집필하기 위해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그가 학문으로 정치와 법이라는 주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던  기간을 생각하면 약 40년에 걸쳐 만들어진 저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내용이 얼마나 방대하겠는가. 그 목차만 보아도 대략 감이 잡힐 것이다.

그렇다면 법이란 무엇인가? 몽테스키외는 가장 보편적인 의미의 법이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여러 필연적인 관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가 그 법을 가진다그러니 보편적인 법이라함은 법전에 명시되어 있는 민법, 형법 등의 법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 , 사람, 전통, 가치 등에서도 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예를 든다.

예컨대, 신은 신의 법, 물질계는 물질계의 법,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천사는 천사의 법을 가진다. 또한 짐승도 그들 나름의 법을 가지며, 인간은 인간의 법을 가진다.”(‘법의 정신’ P.11)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물질과 가치를 지닌 무생물까지도 그와 관련된 법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법 이전에 자연의 법 있으며, 이 법은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인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실정법에 대해 만민법, 정법, 시민법에 대해 언급한다. 만민법은 민족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는 법이며, 통치자가 피통치자에 대해  갖는 법을 정법, 모든 시민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 존재하는 법이 시민법이다.

몽테스키외는 법이란 인간 이성이고 각 국민의 정법 및 시민법은 바로 이 인간 이성이 적용되는특수한 경우여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법이 적용되기 위해선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여야 하고, 그 본성에 영향을 주는 정체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정체를 세가지로 분류하고 풍토와 그 인간 성향을 파악하여 법을 적용하고자 한 그의 연구방법과 일치한다. 

그는 정체를 세가지로 분류했다.

정체에는 세 가지가 있다. , 공화정체, 군주정체, 전제정체가 그것인데, 그 본성을 발견하는 데는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세가지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공화정체란 국민 전체 혹은 단순히 국민의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이고, 군주정체란 단 한 사람이 통치하지만 제정법에 의거하여 통치하는 정체를 말하며, 이에 반해 전제정치는 통치자 자신의 의지나 자의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정체를 말한다. 이것이 각 정체의 본성이다. “ (‘법의 정신’ P.18)  ]

그리고 그는 정체의 원리를 이야기 함에 앞서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각 정체의 본성과 원리는 다음 같은 차이가 있다. 즉 본성이란 정체로 하여금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고, 원리란 정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전자는 고유의 구조이고, 후자는 그것을 움직이는 인간의 정념이다. 그런데 법은 각 정체의 본성과 같이 그 원리에도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P.28)

몽테스키외는 세가지 정체에 대한 원리는 이렇게 말한다. 공화정체의 원리는 덕성, 군주정체의 원리는 명예, 그리고 전체정치의 원리는 공포라고 말이다. 그는 이처럼 정체를 본성에 따라 세가지로 분리하고 각 정체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그리고 각 정체 하에서 재정되고 시행되는 법은 그 정체의 본성과 원리에 맞게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교육법, 민법, 형법, 사치금지법, 이혼법, 노예법 등 모든 법들이 이를 전제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D는 여전히 궁금했다. ‘정체형태는 본성에 따라 세가지로 나뉘고 이 정체를 움직이는 원리가 각기 다른데 법의 정신도 달라야 하는 건 아닌가?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법의 정신이란 무엇이지?’

몽테스키외는 법의 올바른 모습이란 다음 세 가지 조건에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법의 상호관계 조건, 자연적 조건, 정신적 조건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법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법의 상호관계 조건이란 법의 목적과 효과가 서로 합치하는 것이다. 자연적 조건이랑 그 지역의 자연과 상관성이 있는 것이다. 정신적 조건이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상관성이 있는 것이다.

한편 권력자는 법을 남용하기 쉽다. 이럴 때에는 법의 정신에 맞는 법이라 해도 적절히 운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몽테스키외는 권력을 억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구조가 바로 삼권분립의 원리이다. (…...)그가 말하는 삼권은 입법권, 재판권, 집행권이다.

입법권이란 법을 만드는 권리이다. 이 권리는 의회가 가진다.

재판권이란 법의 운용을 감시하는 권리이다. 이 권리는 재판소가 가진다.

집행권이란 공적인 의결사항을 집행하는 권리이다. 이 권리는 군주가 가진다.

그리고 위 세 가지 권력은 서로가 서로를 억제하는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권력이 치우치는 일이 없다.”(‘법의 정신’ P.710, 동서문화사)

이에 비춰보자면, 결국 법이란 목적과 효과가 합치되어야 하고, 법이 적용되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 즉 정체의 본성과 원리, 그리고 그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문화적 정신적 배경 등을 고려하여 재정되고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의 정신을 통해 시민을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법의 정신에 따라 법을 만들고 제대로 재정하기 위해서는 법을 둘러싼 권력, 만들고 운용하고 집행하는 각각의 권리가 분립되어야 하고 그 힘이 서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각 권력이 잘 분리되어야 법의 정신이 반영/ 실행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권력이 분리됨으로써 의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 어느 한쪽도 일방적으로 법을 제정할 수가 없게 되고, 각 주체가 협동하게 되면 권력의 횡포로부터 시민이 보고받고, 결국 권력으로부터 시민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이 삼권분립으로 자유주의를 창립한 사상가 중 하나로 평가되고, 그의 이 삼권분립론은 프랑스 시민혁명과 미국의 헌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연유로 법을 제정하는 각 사회의 습속과 전통, 풍토, 시민의 본성 등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알아보고자 했다. 특히 풍토에 대한 그의 고찰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추운 풍토의 사람들은 보다 강한 체력을 가진다. 심장의 작용과 섬유 말단의 반작용이 활발해지고, 체액은 보다 잘 균형을 유지하고, 혈액은 심장을 향해 더 강하게 흐르며, 그 반면 심장은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이 큰 힘은 보다 큰 효과를 자아낸다. 예컨대 자기에 대한 보다 큰 신뢰감, 즉 보다 많은 용기, 자기의 우월에 관한 보다 많은 인식, 즉 복수에 대한 보다 적은 욕구, 보다 많은 안전감 내지는 보다 많은 솔직성, 보다 적은 의심, 정략, 위계와 같은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P.224)

북쪽 지방에서는 건전하고 튼튼하기는 하나 둔중한 육체가, 정신을 활동시키는 모든 것 사냥, 여행, 전쟁, 속에서 쾌락을 찾아낸다. 북방의 풍토에서는 악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상당한 미덕을 가지며, 성실과 솔직성으로 충만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쪽 지방은 도덕 자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또 보다 활발한 정념이 범죄를 증가시킨다.”(P.226)

다처제란 강대한 국민에게는 사치 그 자체라기보다 커다란 사치의 유인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열대 풍토에서는 욕망이 적다. 처자를 부양하는 데도 돈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거기서는 보다 많은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것이다.”(P.256)

중국의 북방 민족은 남방 민족보다 용감하고, 한국의 남방 민족은 북방 민족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따라서 더운 지방 주민의 나약함이 거의 항상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추운 지방 주민의 용기가 그들의 자유를 보존하게 했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즉 그것은 그 자연적 원인에서 생겨나는 한 결과인 것이다.”(P.265)

풍토에 따라 주민의 습성을 파악하고, 이를 고려하여 법은 만들어졌고 또 만들어져야 한다. 몽테스키외의 이러한 풍토에 대한 고찰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일부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몽테스키외가 주장하는 이론에 절대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가 살던 18세기 유럽 계급사회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시대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동시에 책과 정보를 통한 몽테스키외의 연구 방법에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흑인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견해는 D에게 실소를 머금게 했다.

 유럽의 민족은 아메리카의 민족을 멸절시켜 버렸으므로, 그 광대한 토지를 개척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민족을 노예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사탕은 노예들로 하여금 재배하게 하지 않는다면 너무 값비싼 것이 될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흑인들이었다. 그들의 코는 몹시 납작해서, 그들을 동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대단히 현명한 존재인 신이 영혼을, 특히 선량한 영혼을 새까만 육체 속에 깃들이게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인류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 피부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환관을 만드는 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흑인이 우리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은 분명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피부색은 머리털의 빛깔로 판단되는데,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철학자인 이집트인 사이에서는 이 머리털의 빛깔로 판단되는데,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철학자인 이집트인 사이에서는 이 머리털의 빛깔이 대단히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붉은 머리털의 인간이 눈에 띄면 모조리 죽였던 것이다.

흑인에게 지적 능력이 없다는 증거는, 그들이 문명국에서 대단히 귀중히 여기는 금목걸이 보다도 유리 목걸이를 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그들을 인간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교도가 아니라고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심한 사람들은 아프리카인에 대하여 행해지고 있는 부정을 너무 과장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다면, 그토록 많은 쓸모없는 협정을 서로 맺고 있는 유럽의 군주들 머릿속에 자비와 연민에 따른 협정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리 없다.”(P.241)

20년간 법과 사회와 정체에 대해 고민한 지식인 이자 절대정치를 반대하던 깨어 있는 사상가였던 몽테스키외 였지만, 역시 큰 틀의 사회 안에서, 아직 문명과 지식의 발달이 조금은 미흡했던 18세기 일부 국가 / 인종에 대한 편견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만약, 그가 이러한 인종에 대한 편견마저 허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삼권분립을 주장한 이 책 법의 정신의 저자이자 자유주의 사상가로서뿐 아니라 인종의 벽을 허문 사상가로 또한 이름을 남기고 역사의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나의 여러 원리를 결코 편견이 아니라 사물의 본성에서 끄집어냈다. 따라서 독자들은 진리의 대부분을 그것과 결부된 다른 진리와의 관계를 이해한 뒤라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P.8)

몽테스키외의 시대에서 흑인이나 인종에 대한 그의 결론은 그가 말하는 그리고 그들이 인지하는 그 시대의 사물의 본성그것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하고 교육을 통해 발전하는 것처럼, 문명화의 시점이 문제였지 사실 풍토에 따라 미개하고 미개하지 않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흑인으로 태어나 인권변호사를 거쳐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의 대통령에 두 번이나 선출되어 세계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있다는 사실을 그가 하늘나라에서 본다면, 아마도 그의 틀린 (물론 그 때 당시에는 제대로 되었다고 믿어졌을 법한) 가설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D, 결국 두번째 지적 여행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법의 정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갔고, K가 던진 질문인 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미흡하게나마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주 지적 여행 뒤 그는, 시간이 부족해 또는 그의 걸음걸이가 늦어 둘러보아야 할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온 것처럼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았다. D의 두번째 지적 여행은 실패로 보였다. D는 왜 실패했을까?

일단, 책의 주제와 두께에 그는 시작부터 압도되었다. D는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몸과 목이 경직되고 숨이 가빠진다. 그와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머리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읽기 초보자의 일종의 책읽기 증후군인가?’ D는 답답하면서도 의아했다. 둘째로, 다급한 마음에 내용에 대한 정리를 하지 않고 읽기에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책을 다 읽어도 군데군데 몇몇 부분의 내용만 생각나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실패한 것 같았다. 실제 내용을 재확인해야 할 때는 인터넷에서 요약본을 찾아보거나 해제 (解題)를 찾아서 읽기도 했다. 그러니, 핵심내용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뚜렷하게 되었다.

…...이 내용을 알게 하는데 요약본이면 될텐데, 법 전공하는 사람들도 아닌 일반인들이 굳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건가?! K의 의도는 뭘까? 우리에게 이렇게 두꺼운 책을 제시하며 즐거운 지적여행을 하라니…...’

D는 스스로에게 이런 의문을 던지며, 씁쓸한 마음을 안고 두번째 여행을 마쳐야 했다. 그리도 일단 답을 찾지 않은 채 그의 뒤에 놓아두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여러 차례 붓을 잡았다 던졌다 했다. 초고를 수없이 바람 부는 대로 맡겼다. 날마다 아버지의 손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계획도 세우지 않고 대상을 추구하였다. 규칙도 예외도 알지 못했다. 진리를 발견해도 그것을 곧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일단 나의 원리를 발견하자, 찾고 있던 모든 것이 나에게로 모여 왔다. 그리하여 이 책은 20년에 걸쳐 싹이 트고, 성장하고, 뻗어나가,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만약 이 저작물이 성공을 거둔다면, 그 대부분은 주제의 장대(壯大)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 재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영국이나 독일에서 나 이전에 그토록 많은 위인들이 써 놓은 글을 읽고 감탄했지만,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코레조처럼 나도 말했다. “나도 화가(畵家)라고.” (P.9)

D법의 정신을 접하면서 들인 노력은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을 집필하는데 들인 노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객관적인 비교는 어렵겠으나, 책읽기에 아마추어인 D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채워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채우고 지나게 되어 있으니, 차지 않으면 흐르지 못한다.”

언젠가 K가 했던 말이 D의 가슴에 화살처럼 꽃히는 듯 했다.

 

[지적여행 3주차] 영웅 노먼 베쑨을 만나다

(‘닥터 노먼 베쑨을 읽고)

 

D닥터 노먼 베쑨이라는 책을 만난 건 몇 개월 전이다. 평소 종로2가에 위치한 중고책을 파는 알서점에 잘 가는 그였다. 그가 중고서점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가격이 저렴했다. 다른 사람의 손을 한번 탔던 책들이기 때문에 신간은 정가의 약 30~35%, 조금 오래된 책은 40~50%, 또는 그 이상 할인을 하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책을 많이 사는 D이니 정가로 사서는 이십만원이 채 안 되는 용돈 내에서 답이 안 나온다. ‘그렇게 많이 사봐야, 20% 밖에 못 읽는데…… 욕심은……’

여하튼, D는 그 서점에서 닥터 노먼 베쑨이라는 책을 처음 봤다. 포켓사이즈에 가까운 주황색 바탕의 책이라 눈에 잘 띄는 부분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권수가 서점 내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알서점 안에 있는 자서전 중에 유난히 많은 권수를 자랑하는 책들이 몇 권 있었다. ‘스콧니어링 자서전’, ‘체 게바라 자서전’, ‘피터드러커 자서전’, 그리고 닥터 노먼 베쑨정도 였다.  난 처음 들어보는데, 저 사람 유명한 사람인가?’ 하지만, 딱 그만큼이 D닥터 노먼 베쑨에 대해 가진 관심의 전부였다. 원래 ‘~하라, 그래야 성공한다’, ‘시간관리는 이렇게 하라~’ 같은 처세서나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오는 종로가 보이는 커피전문점 창가에 앉아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봤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 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보통의 존재이석원)’ 와 같은 분위기의 산문집에 관심이 많았을 뿐 - 그나마도 대부분 수박겉핥기 식으로 읽었고, 짧은 기억으로 읽은 뒤엔 90% 이상 잊어버리는 그였다 - 위인의 자서전이나 위인의 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D였다.

그런데 K가 준 세번째 지적여행의 주제가 영웅이었고, 그 후보자 중의 하나가 닥터 노먼 베쑨이었다. 나머지 다른 후보 하나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였다. 

K닥터 노먼 베쑨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두 권 중의 하나를 택해 읽어보기를 권했다. 그리고 영웅에 대하여 논하라는 주문을 했다. ‘영웅?! 그렇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렇고 닥터 노먼 베쑨도 그렇고, 둘 다 영웅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 사람이 그리도 유명한가?!’ D는 조금 의아했다. D닥터 노먼 베쑨을 택했다. 사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였고, 많은 유명인들(예를 들면, 시골의사이자 경제전문가이자 젊은이들의 멘토 박경철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존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그의 최근 저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들을 읽고 여행을 하며 쓴 책이다)과 작가들이 좋아하고 있으며, 그의 대표적인 저서 영혼의 자서전 D가 예전부터 읽고 싶어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D는 주저 없이(직감적으로) ‘닥터 노먼 베쑨을 택했다. 이유는 이랬다. D의 마음 속에 영웅이란 일종의 실천가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던 것 같다. 닥터 노먼 베쑨은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그의 의술을 사회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면서 영웅으로 불려졌을 거라 생각한 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문필가이자 작가 또는 사상가에 가깝기 때문에 D가 생각하는 영웅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판단보다는 직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D닥터 노먼 베쑨세번째 여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닥터 노먼 베쑨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을 나와 책을 오가서 서술하고 후에 답한다

 

사고를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파, 어린 노먼 베쑨

닥터노먼베쑨은 1890, 캐나다 온타리오, 그레이븐허스트에서 아버지 말콤 니콜슨 베쑨과 어머니 엘레자베스 앤 굿위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머지는 젊은 시절 가문의 전토인 의사, 목사, 교사 등의 길을 외면하고 세속적이라 여겨졌던 장사를 했었다. 하지만 1880년 어머니 엘리자베스 굿 윈을 만나고 인생을 방향을 바꾸게 된다. 선교사였던 그녀를 사랑했고, 그런 그를 그녀가 열성적으로 설득, 결국 목사의 길로 전향하게 된다.

어린 노먼 베쑨(헨리 노먼 베쑨)은 활달하고 풍부한 가족생활의 분위기에서 자라며 모험정신과 외과적인 취향을 얻게 되었다. 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파리를 해부한다거나 달뼈를 맞추어본다거나 하는, 어수선해 보이기는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필요한 일들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그의 해부벽은 그의 외과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의 어머니가 삶아놓은 암소다리를 해부하기도 했다. 깜짝 놀라 묻는 어머니에게 그는 뼈들을 조사하고 표본을 만들기 위함이라 하였다.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그런 아들의 행동을 내버려두었다. 그 이후 그는 외과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헨리 대신 노먼 이름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어린 노먼 베쑨은 외과적 성향뿐 아니라 호기심과 모험심 가득한 행동가적 성향 또한 지니고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노먼 베쑨)는 나비를 쫓아다니는 목가적인 유희를 위험한 스포츠로 바꾸어버리기도 하였다. 한번은 그레이븐허스트의 교외에서 동생 말콤과 함께 놀다가 가파른 절벽 위에서 나비가 노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두 형제는 그 나비를 잡으러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쯤까지 가다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는 동생에게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미끄러지면서도 바위와 나무뿌리와 관목을 붙잡으며 기어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가 아까의 그 나비를 잡아 다시 동생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을 때, 동생 말콤은 너무나 무서워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동생에게 말했다. 

말콤, 나비 잡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어. 첫째 잡는다는 행동이고, 둘째 나비라는 대상이야.” ‘ (P.52)

한 번은 가족과 조지아 만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노먼 베쑨이 아버지를 보고 조지아 만을 수영으로 가로지르려 하다가 익사할 뻔한 일이 발생했다. 방방 뛰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 엘리자베쓰는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두세요.  저렇게 운명에 맡기고 이것저것 시도해 가노라면 자기 나름의 방식을 익히게 될 테니까요.”

어린 노먼 베쑨의 이런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행동이 끊이지 않고 가능했던 이유는 이를 묵묵히 지켜보며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는 어머니의 교육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성장했다. 

 

청년 노먼 베쑨, 죽음을 마주하다

청년이 된 노먼베쑨은 토론토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접하며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시간을 갖던 드는 1차 세계대전에 육군을 입대하여 전쟁의 허망함을 느끼고 잃어버린 세대(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킴) 한동안 유럽에 머물며 방황한다.

이후 배우자가 될 매력적인 여인 프란시스를 만나 캐나다로 돌아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개업을 한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서의 개업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한동안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병원이 있는 곳은 홍등가 중심지였고 환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자와 매춘부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그의 능력을 다른 병원에서 외과시술을 하며 인맥을 넓혀가고 입소문과 동료의사의 추천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노먼 베쑨은 반문한다.

‘ “도대체 무엇인 변했단 말인가! 이 두 손은 예전과 달라진 바가 없다. 그런 이 두 손에 전에는 없었던 마력이 갑자기 불어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전에는 그 두 손이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두손이 부유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 (P,76)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노먼 베쑨의 인식은 점점 더 커지고 비판적으로 바뀌게 된다.

알고 지내는 의사들 중에는 중세의 이발사 가격밖에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그 가운데 반은 카운터나 보아야 할 작자들이지. 그 나머지 반에게도 그들이 장사꾼이 아니라 의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은 심정이야.”(P.78)

그렇게 경제적으론 성공했지만, 사회와 의료체계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키우던 그 즈음, 노먼 베쑨은 폐결핵으로 쓰러지게 된다.  그 시절 폐결핵은 별 다른 치료법이 없는 상태였고, 그가 걸린 폐결핵은 지독히 심각한 상태였다. 자신의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는 프란시스와 이혼을 요청하고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고향에 있는 캘리더 요양소에서 세상과 연을 끊은 채 철 지난 꽃처럼 지내며 그림으로 자신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학책에서 본 폐결핵 수술의 방법을 보고 자신을 모르토르로 모험을 하기에 이른다.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무릎쓰고 인공기흉술을 받기로 한 그는 수술 후 빠른 속도로 회복하여 보통사람으로 돌아온다. 그 시절엔 기적적인생환으로 불릴 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짐한다.

다신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P.113)

 

베쑨 개인에서 사회적 책임을 지닌 공인으로 태어나다

D는 그의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각과 그의 모험정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직업)에 있으면서 이 정도의 사회적인 책임의식은 필요한 것 아닌가?! 도대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단 말인가?’ D는 노먼 베쑨의 철학과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그의 인생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이후 노먼 베쑨은 인공기흉술 도입을 주장하던 닥터 아취볼드 밑에 들어가 2년 동안 연구를 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노먼 베쑨은 많은 흉부외과 기계를 개선/발명하면서 발명가로서의 면모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발달해 가는 결핵치료능력과는 대조적으로 점점 더 늘어나는 환자 수를 보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조기 기흉술을 계속 주장하면서도 이 의문을 가지고 씨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질문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또 하나의 질병, 결핵균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이고 중세의 콜레라보다도 훨씬 더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질병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가난이라는 질병이었다.”(P.150)

그의 의학에 대한 의문과 관심이 그들 둘러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가 이러한 고민과 답을 하는 과정은 아래에서처럼 볼 수 있다.

부자들의 결핵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결핵이 있다. 부자들은 회복되지만 가난뱅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경제학과 병리학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P.154)

앞으로 5년 동안 요양소들을 가득 채우게 될 결핵환자들이 지금 당장 손을 쓰면 치료가 가능한데도 그 상태 그대로 거리를 활보하며 책상머리에서 일하고 있다.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와 사회학자가 만나는 공통적인 기반인 것이다.”(P.154)

우리 의사들은 감염과 재감염의 소인이 되는 외부환경에 대해 아무런 작용도 가할 수 없다. 가난과 조악한 음식, 비위생적인 주위환경과 감염원에의 노출, 과로와 정신적 긴장 등 모두가 우리의 통제권 밖에 위치한다. 이들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근본적인 수정은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과제다.”(P.155)

이러한 질병에 대한 인식 변화는 베쑨의 사회 구조적 문제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러시아 방문을 통해 그의 주관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러시아 방문 후 그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캐나다에 도입하고자 했다. 그는 국민보건그룹이란 단체를 통해 캐나다의료체계에 새로운 원칙들을 도입하고자 했으며, 이에 대해 몬트리올 의료계는 다양한 견해를 표출했다. 결국 그들은 공개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주고받기로 했다. 노먼 베쑨은 이 공개토론회에서 아래와 같이 연설한다.

지금 대다수의 엉터리 정치꾼들이 제시하고 임시변통적인 조치들은 매독성 두통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알약들은 고통은 덜어줄지 모르지만, 결코 그 두통 자체를 치료하지는 못할 겁니다.”(P.202)

국민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질병을 재상산하는 경제체제 자체를 변혁시킴으로써 무지와 빈곤과 실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P.205)

우리 모두가 의료행위로부터 사적인 이윤을 배제시켜 나가도록 합시다.”(P.205)

국민들에게 당신 지금 치료비를 낼 돈이 얼마나 있소?”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겠소?”라고 묻도록 합시다.”(P.207)

제가 말하는 사회주의 의료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보건이라는 것이 우편, 국가방위, 사법, 교육 등과 같이 공공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둘째, 국민보건을 위해 공공기금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의료보호혜택이 소득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만인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신이 아닌 정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선이란 기부자들을 자기 기만에 빠지도록 함과 동시에 수혜자들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넷째, 의료종사자들의 봉급과 연금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다섯째, 의료종사자들 자신이 민주적 자치를 실시해야 합니다.”(P.207)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반대자들이 강조하는 주요 반대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창의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아마도 인간 당나귀들은 이 현대적 야만상태 속에서 당근이 코앞에서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만, 그 당근이 반드시 황금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명예의 꽃다발도 그 역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관료주의호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밑에서 꼭대기까지의 민주적 조직통제에 의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환자 자신이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가공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환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환자에게 제한된 선택권을 주어서 소수의 의사들 가운데 담당의사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만약 환자가 그 의사들 모두가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이 의사는 이렇고 저 의사는 저렇다면서 따지고 드는 환자가 있다면, 그런 환자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암거위를 요리하기 위해 쓰는 소스는 또한 숫거위를 요리하는 데에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99%의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이지 의사의 개성이 아닙니다.”(P.208)

D는 닥터 노먼 베쑨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결정(공산당 가입)과 사회주의 의료체계 도입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먼 베쑨은 사회적 책임과 인식이 강한 의사였다.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개업을 해, 그가 접하는 환자에 따라서 그의 수입이 극과 극이 되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진 못한 산모의 아이를 받아주고 산모를 살렸지만, 그 답례로 1달러를 받기도 했지만, 가난 때문에 아이가 곧 죽을 것이라는 현실을 만나기도 했다. 같은 질병인 결핵에 걸려도 부자의 사망률과 빈자의 사망률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그런 가운데 돈을 쫓는 대부분의 동료 의사들을 보고 돈에 전부인 자본주의 체제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D는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고,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닥터 노먼 베쑨이 택한 정치적 노선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가는 듯 했다.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의 숨겨진 영웅 노먼 베쑨

노먼 베쑨은 북미 스페인 원호위원회의 요청으로 스페인내전에 의료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된다, 1936년이다. 그리고 2년 뒤 중일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던 진찰기로 의료봉사를 가게 된다. 스페인내전과 중국에서의 의료봉사활동 기간에도 닥터 노먼 베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실험과 집착, 끈기, 계속되었다.

1936 12월 스페인 마드리드로 간 노먼 베쑨은 도심 마드리드 전장에서 전쟁 중 부상당한 소년병에게 그 때 당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방법으로 혈액을 넣어준다. 이 의사가 도대체 무얼하는 건지 의아해하던 주변 군인들과 장교들도 죽어가던 소년의 얼굴이 혈색을 띄고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모두들 놀라고 있었다. 전장에서 행한 그의 수혈은 곧 빠른 속도로 스페인 곳곳에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수혈을 1 1초라도 신속히 하기 위해 이동수혈대를 조직하게 된다. 그렇게 활발하게 그리고 기적적으로 이동수혈대를 이끌던 그는 남부최선선 말라가로 가는 도중, 피난민들과 같이 행군을 하고 피난민들을 수송하는 수송대 역할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 그는 다시 한번 전쟁의 참혹함과 생명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나는 천천히 요령 있게 그 광적인 피난민 행렬을 뚫고 나가면서 어린아이들! 어린아이들만!” 하고 외쳤다. 그러면서 나는 이 상황에서 누구를 태울 것이며, 누구를 남길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를 몸서리치며 느끼게 되었다.(…..) 나는 왔다갔다하면서 명령을 내리고 여인들을 위로하고 가장 어린 순서로 아이들을 계속 사이스에게 날랐다. 이리하여 트럭이 점차 다 차가게 되자, 고통에 찬 목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나는 사람들이 그날 밤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불러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아이를 트럭에 맡긴 어머니들은 트럭 옆에 서서 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속삭였다. 트럭이 차감에 따라, 혹시나 하는 희망을 억누르며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어른들은 들판 쪽으로 가더니 맨땅 위에 그대로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나는 이렇게 나 자신에게 자문했다.

내가 지금 무슨 권한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단 말인가?” ‘(P. 301~303, 알메리아에서 피난민 수송을 하는 닥터 노먼 베쑨)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1912년 그 때 당시 최대의 크기 (52,000ton)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 사우스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처녀항해에서 출항 나흘 뒤 밤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었다. 선원들은 다급히 구명보트에 승객을 태우지만, 여자와 아이를 우선적으로 태운다. 그 가운데, 이를 통제하기 위해 한 일등항해사 선원이 총기를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남자승객에게 의도치 않게 총을 쏘게 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일등항해서는 자신의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고, 실수고 다른 이를 죽인 것에 대해 책임감(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일등항해사뿐 아니라, 2,200명의 승객 중에 어린 아이와 부유한 여자를 위주로 생과 사를 선별해야 했던 선원들이 느낀 상황도 닥터 노먼 베쑨이 느낀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모두들 고귀한 생명임에도 부의 의해 생과 사가 갈리고 주어진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거나 선택 받아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서 D 또한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노먼 베쑨은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위하고 있는 제 5연대의 정치사령관인 카를로스 콘트레라스의 요청으로 캐나다와 미국으로 돌아가 스페인이 처한 상황을 전하고 지원을 호소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베쑨은 이를 흔쾌히 승락, 고향으로 돌아와 스페인에 대한 지원을 요청,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되지만,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군부의 승리로 기울었다. 그는 의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데, 중국의 국부 쑨원의 아내이자 중국원조협의회 쑹칭링에게 의료지원 요청을 받게 된다. 일본의 대중국 점령전쟁 기세를 올리자 중국은 많은 수많은 부상자들을 구하기 위해 의료지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스페인내전의 활약이 대단했던 노먼 베쑨에게 또한 요청을 했던 것이다. 그는 아내 프란시스에게 편지를 남기고 중국으로 향한다.

“(…..) 나는 살인과 부패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그 모순을 묵과하기를 거부하오. 나는 우리가 소극적인 탓에 또는 태만한 탓에 탐욕스런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소……

스페인이나 중국이나 모두 다 같은 투쟁의 일부인 것이오. 내가 중국으로 가려는 이유는 그곳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오. 또한 나의 능력이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오.

부디 행복하길 바라로…… “ (P.341~342)

 

1938 3월 연안에 도착, 모택동과 조우한 뒤, 하북성 진찰기로 들어간다. 그가 뛰어든 그곳은 일본인에 둘러싸여 완전히 고립된 지역으로 국민당 장개석의 공산당 세력확대에 대한 견제로 의도적으로 보급품을 차단, 의료품에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팔로군 홀로 고군분투하던 지역이었다. 하북성으로 가기 전 노먼 베쑨은 모택동과의 만남에서 기동의무대를 조직/운영에 대한 의견을 비치고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상병의 75%를 살려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이런 확신에 모택동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지원을 약속했다. 실제 노먼 베쑨이 조직한 기동의무대는 약 80% 이상의 부상병 생존율을 보이며 모택동에게 약속했던 그 생존율 이상의 삶을 지켜냈던 것이다.

그는 그 치열한 전장에서 한번에 3명의 병사를 수술하기도 했고 40시간 동안 70명이 넘는 부상병을 수술하기도 했다. 베쑨의 의무대가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규한이라는 곳에서 활동할 당시 그는 69시간동안 1 15명의 부상자들을 수술하기도 했다. 가히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는 전장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 부으려 했다. 그는 월급도 받지 않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부상병을 수술했으며, 피가 모자랄 땐 O형이었던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수혈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리더였고 모범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했다. 수많은 교전이 치루어 지는 전장에서 부상병을 수술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와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그는 의료훈련소 설립 및 장단기 프로그램 마련을 통해 중국인 의사와 간호사 양성에 대한 구상도 세웠다. 중국에 그는 말 그대로 일당백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그의 헌신에 감동한 중국인들은 그를 백구은(白求恩)이 라고 불었다. 그의 성 베쑨의 발음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은혜를 베풀어 사람을 구하는 백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다. 닥터 노먼 베쑨, 중국이름 백구은의 그 하얀 의사는 1939 11월 부상병을 수술하던 중 다친 손가락이 감염되었고 패혈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닥터 노먼 베쑨의 생 자체가 극적이고 기구했으며, 철저한 직업의식과 사회의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지만, 스페인과 중국에서의 그의 활동은 그가 그때까지 깨달은 직업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행동의 시기그 자체였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으며, 자신이 할 수 있음에도 조금이라도 지체하거나 주저하거나 묵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불 같은 성미를 드러냈다. 그러한 그의 실천이 자칫 전장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그 수많은 생명들을 살려냈던 것이다. 그는 리더이자 교육자였던 동시에 행동가이자 실천가였다.

닥터 노먼 베쑨에서 이 두 곳에서의 활약상을 서술해 놓은 부분은 전반적으로 극적 긴장감이 뛰어나도록 묘사, 전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D는 재미있는 두 군데를 발견했다. 전반적으로 극적 긴장감이 뛰어나게 진행되는, 마치 소설과도 같은 이 두 장에서 꽤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다소 이해가 가지 않고 과장된 묘사가 눈에 띄었다. 전자는 장장 13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 혈액, 수혈에 관한 에피소드였고 후자는 베쑨을 칭송하는 중국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각 장절들을 들여다보자. 일단 혈액이야기부터.

 (1) “1492년 콜럼버스가 대양에 의해 감추어져 있던 비밀들을 찾아내고 있는 동안, 로마의 한 의사는 생명의 흐름 속에 감추어져 있던 비밀들을 탐구하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성원들이 육지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이 의사는 소년의 정맥으로부터 늙은 교황 이노센트 8세의 정맥으로 수혈을 시도하고 있었다. 역사는 이 두 사람 가운데 콜럼버스 쪽을 성공한 사람으로 기록해왔다. 그가 동양은 놓치고 말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낸 반면, 그 의사는 소년과 교황 모두를 죽이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발견과 최초의 수혈 시도로부터 인간 노력의 많은 흐름들이 합류되어, 이것이 언젠가는 스페인 전장터에서 움직이는 닥터 노먼 베쑨에게 인류의 유산으로 전해질 것이다.(……) 1613년 윌리엄 하비라는 사람이 혈액이 몸속에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약 50년 후에 또 다시 영국에서 리처드 로워라는 사람이 두 마리의 개를 가지고 경동맥에서 경정맥으로 속에 구멍이 난 깃을 이용하여 수혈 했다. 이와 같은 때에 파리에서는 장 밥티스트 데니스라는 사람이 빈혈증과 어떤 미지의 열병으로 신음하는 15세 소년에게 새끼양의 피를 수혈했다. 이 소년이 회복을 보이자, 프랑스 의료계에서는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그후 데니스는 부저합한 수혈로 일부 환자들이 쇼크상태에 빠지거나 죽었다) 결국 프랑스에서는 모든 수혈행위가 금지되었다. 그리고 그 금지 조치는 곧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 후 프랑스 혁명이 19세기의 앞길을 밝힌 지 30년이 지난 후, 제임스 블런델이라는 영국의 의사 혈액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때마침 주사기가 창안되어 건강한 사람의 피를 출혈이 심한 산모에게 수혈해 보았다. 산모가운 데 일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지만, 그 가운데 또 일부는 목숨을 구했다.(……) 1902년 세균학자 닥터 칼 란트슈타이너는 혈액이 식물군과 동물군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혈액 속에 들어있는 단백질의 성질에 따라 A, B, AB형으로 나누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같은 유형의 혈액을 가진 사람들끼리 수혈을 하여야, 수혈이 성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써 3세기 동안의 무수한 실패가 조리있게 해명되었다. 그 결과 막대한 인명 손실을 방지할 튼튼한 기초가 마련되었다.”(P.260~269)

D닥터 노먼 베쑨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혈액이야기를 통해 그리스인 이야기로마사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던 것처럼 지적 영역 확장에 대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혈액이라는 것, 수혈이라는 것의 기원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의 무지함과 무관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그 시작이 있을텐데, 나는 왜 시작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일까.’ D는 생각했다.

D는 지금까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갖기 싫었다고 보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방대한 양의 역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할지도 막막했었고, 설사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소화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끈기없고 급한 D의 성격도 한 몫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시작도 별 관심이 없는 그였으니, 혈액이나 수혈의 기원에 관심을 가질 리 만무했다. D는 여전히 다이달로스와 같은 노회한 아저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주어진 것만 하기에 급급한 기술자이자 종속자 말이다.

그런가 하면, 마치 소설과도 같은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이는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 안에서의 닥터노먼베쑨의 활약상이었지만 다소 과장된 듯한 묘사로 인해 D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D는 그 중 대표적인 한 장절을 곱씹어보고 싶었다. 장면은 중국 제 359여단의 예비부대가 어두운 밤 관림-임주 도로가 보이는 언덕에서 일본군과 마주하고 벌이는 전투장면이다.

(2) ‘게릴라 병사들은 그 허둥대는 적병(일본군)들을 향해 계속 정조준으로 사격을 가했다. 이때 몸은 바싹 마르고 키는 껑충 큰 대위 한 사람이 바위 위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트럭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자신이 던진 수류탄이 피이잉 쾅하고 터지자,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동지 여러분, 돌격합시다! 우리의 부상을 치료해 주기 위해 백구은 선생이 오셨소!”

게릴라 병사들이 언덕 아래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피이잉 쾅하고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장교들이 부하들을 이끌고 언덕 아래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외쳐댔다.

우리 뒤에는 백구은이 있다!”

그들이 이렇게 돌진을 시작하자, 이젠 야포가 도로를 향해 불길을 내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돌격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돌격! 부상자들을 위해 백구은이 왔다. / 돌격! 우리의 뒤에는 백구은이 있다. / 돌격! 우리의 뒤에는 백구은이 있다.

도로 이곳 저곳에서, 언덕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돌격구호가 정신 없이 달아나는 일본군들을 뒤쫓았다. 새벽이 되자 마지막 총소리까지 잠잠해지고, 5백 명 이상의 적군이 사실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군 병사들은 산더미 같은 무기를 포획하여 귀환길에 올랐다.’ (P.503)

D는 이 장면을 읽다가 ~’하고 콧방귀를 끼었다. 닥터 노먼 베쑨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모험/실험정신,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주관적이지만 날카로운 시각 등의 이야기들이 책 전반에 걸쳐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비장하게 전개되어 왔는데, 이건 왠 지금의 초등학교국민학교시절이었던 시절 반공만화에서 한 번쯤 봤음직한 어설픈 영웅화또는 우상화란 말인가. D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 장절은 도대체 뭐지?! 이 분위기는 도대체 무얼까?! 이 과장된 묘사는 뭐야?!’ 

얼마 뒤 D는 자신이 중요한 실수를 범한 것을 알았다. K는 매주 지적 여행에 대해 저자에 대한 조사를 되도록이면 자세히 하도록 주문을 했었다. D닥터 노먼 베쑨저자에 대하여닥터 노먼 베쑨으로 갈음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실제 노먼 베쑨아닌 그의 지인인 테드 알렌과 작가인 시드니 고든이 쓴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좌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서적으로 분류되어 상당한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제서야 D는 그 때 받은 그 묘한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은 D가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이는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작가가 같은 공산당인 닥터 노먼 베쑨을 영웅으로 묘사한 장면이었다.

D는 여기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책을 쓴 저자와 저자의 성향, 그리고 저자와 책을 관통하는 배경지식에 대해 되도록이면 자세히 조사할 것, 이는 D가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헤매지 않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니까. 그리고 둘째, 훗날 D 자신의 책을 쓰거나 글을 쓰더라도 되도록 과장된 묘사를 피할 것. 이런 과장된 묘사는 독자가 책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책에 대한 독자의 반감을 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느 덧 일요일 밤이다. K가 준 세번째 여행도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D에게 오늘은 유난히 쓸쓸한 날이었다. 몸도 그리 개운하지 못했고, 영웅적인 삶을 살다간 노먼 베쑨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보니 자신의 삶이 한없이 작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번째 여행을 하며 유난히 많이 보이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년간이 자아탐구여행을 시작하면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과 추억을 조금은 뒤로 미루어놓아야 할텐데 내가 과연 그걸 할 수 있는거야?! 진정으로?!’ 세번째 여행까지 오면서 문득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면 D는 은근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이 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과연 이런 나를 그리고 나와의 생활을 즐길 수 있을까……  문득 닥터 노먼 베쑨의 일기가 생각났다.

몸은 몹시 피곤하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내게 있었던가? 나는 지금 아주 대만족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은 나와 베쑨이 교묘하게 겹치는 날인 것 같다. D는 그렇게 희열와 비애, 양극의 느낌을 가슴에 앉은 채 세번째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지적여행 4주차] 세상을 지배하는 유대인, 그들의 교육에 대하여 (‘솔로몬 탈무드를 읽고)

 

2 21D

쌓인 피로가 터졌다...... 기상은 했지만, 자다 깨다 읽다 자다를 반복, 1시간 동안 읽은 분량은 겨우 30p. 결국 5 30분에 재취침 6 30분이 읽어났다. 평소에 출근하는 시간보다 더 늦은 시간에 기상한 것이다 결국 부랴부랴 챙기고, 버스를 타고 항상 오는 회사 앞 커피숍에 앉았다. D는 상황을 좋게 해석하거나, 상황에 맞춰 나가는 것을 나름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랬다. 이왕 늦은 것,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건, 네 몸이 마음이 휴식을 원하기 때문이리라.... 결국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느린 템포 (평소 x 0.5 )로 몸과 머리와 마음을 움직였다. 조금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더니, 아침시간이 휴식이 되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라떼도 지난 며칠간 마셨던 그것보다 더 달콤하고 따뜻했으며, 세세히 읽진 못했지만 진도도 나름 나갔다. ‘내일 저녁 퇴근 때는 서점에도 잠깐 들를 수 있으리라. 책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다.’ D 는 생각했다.’

그 날 저녁, D

군대에서도 그랬다. 휴학을 하고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D를 극한까지 몰아넣었던 두 세 번의 경험에서도 그랬다. 몰입에 몰입,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다가, 끊어질 듯한 신경선을 잡고 쓰러질 듯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러다 어느 순간 맞이하는 짧은 휴식, 퇴근 길, 귀가 길에 맞이하는 차디찬 밤공기, 박하냄새의 밤공기, 나의 귓가에서 흐르는 피아노 선율 또는 몇몇 가수들의 화음, 경쾌한 ROCK 템포……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집중이 되기 않아 잠시 잠깐 가요를 듣고 있다. 최근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 들었던 음악들은, 과제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첼로나 바로크 음악 또는 피아노 선율의 클래식과 연주곡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듣고 있는 곡은 딕펑스의 경쾌한 데뷔앨범이다. ‘~~~~~~ 너무 좋아~~~!!!!’  지금 내 귓속으로 돌아와 내 몸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니는 음악은, '좋다 좋아', '짝사랑', 'My Precious' 이 세곡이다.

이 음악 한 두 곡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내가 여유를 못 가지긴 못 가진 것 같다. 피곤할 대로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이 기분, 눈을 감고 음악을 즐기다가 이 좋은 기분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어 이렇게 글로 적어본다...... 걸러지지 않은 조악한 글로...... 그래도 좋다. 기분.’

 

D는 자신이 쓴 글을 보고 있었다. 지난 3주간의 여정, 힘들었지만, 즐기고 있었다. 이는 D가 처음 이 4주간의 지적 여행(혹자는 지옥의 RACE라고도 했던 것 같다)을 자원했을 때 D가 마음 먹었던 몇 가지 중에 하나였다. ‘맘껏 자유롭게 놀아보기. 그리고 즐기기’ D는 이 순간 이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D의 기분, 그리 나쁘지 않았다.

 

K는 네번째 여정으로 교육을 들고 왔다. ‘현대의 교육에 대하여, 새로운 교육에 대하여

교육은 D가 평소 관심을 가지던 주제였다. D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가정환경 핑계를 대는 건 그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는 막노동 노가다를 하면서도 공부를 잘하고 접시닦이를 하면서도 세계적인 투자가가 된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D가 자신이 받은 교육에 불만(또는 아쉬움)을 품은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그가 받은 공교육 (초중고등학교 12)에 대한 불만은 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 아마도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럴거라 예상되는 - 현재의 공교육은 입시경쟁에 맞추어진 공교육일 뿐이었다. 각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하늘대학교에 많이 보내냐가 관건이었다. ‘총 졸업생 몇 명 중, 하늘대학 합격 몇 명!’ 이렇게 되면 그 학교는 교육을 잘 시킨 것으로 인정받았다. ‘하늘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자신의 결정을 학교 측에 또는 사회에 맡긴 학생은 그 대가를 고스란히 자기자신이 받아야 했다.  그 대가란 학교를 다니다가 진로를 변경하는데 드는 비용, 또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늘대학교에 나와서 사회에 진출하고 나서야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직장인들의 후회, 이 모든 것이 말하는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데, 이는 방향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하늘대학교 재학생의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절대아니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검증하지 않고 학교와 과를 택한다는 이야기 이며, 우리 교육과 우리 사회의 초점이 하늘대학교와 같은 일류대에 맞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늘대학교 출신들은 기분 나빠하거나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참고로 D는 하늘대학교 출신이 절대아니다. ……).

D가 가진 자신이 받은 교육에 대한 두번째 불만은 부모님으로부터 기인한다. 바로 에 대한 중요성을 그 누구에게서도(형식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는 선생님들을 제외하고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D의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짧다. 두 분 모두 초등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하셨으며 어릴 적부터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오셔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밥벌이에 관심이 있으셨지 교육에는 영 문외한이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부모님은 D에게 단 한번도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시거나 책을 추천해주신 적이 없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몸이 편찮으셨고 어머니가 가장 역할하며 먹고 살기 바빴으니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D는 별다른 꿈을 가지지 않았고, 꿈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내 포기했다. ‘내 주제에 무슨…… 빨리 대학가서 취업하거나 공무원 되야지. 그래야 부모님이 편하게 살지이것이 부모님의 바람이자 D의 바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마저도 녹녹치 않았다. 일단 일반 공무원은 별로 였던 D,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재학 4년내내 등록금이 무료였으며, 육사만 나오면 취업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에는 아버지의 주관도 한 몫 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몸까지 아프셔서 가장으로서의 부족함을 느끼고 계셨던 아버지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사람은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D처럼 배경이 안 되는 사람은 스스로 힘을 가진 조직에 속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 조직은 경찰 또는 군인과 같은걸 말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6.25 전쟁을 겪었던 어린 시절과 군부독재시절인 박정희, 전두환 시절과 노태우 대통령 시절을 몸으로 겪으셨던 서민이었으니 이 같은 생각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아버지의 꿈마저도 D의 능력 부족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D는 지방대학교를 다니며 자신이 관심 있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군대를 갖다 오면서 자신이 꿈을 뒤늦게 가진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 ‘학교에서 그에게 하늘대학교입학 대신 꿈을 가지도록 응원했다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공무원이라는 정해진 직업이 아닌 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제시했더라면 그의 인생이 이렇게 빙빙 돌아오진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교육의 역할과 책의 역할을 믿으며,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는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곤 했다.

 

그런 D에게 K가 준 네번째 여정의 주제는 꽤 흥미로웠다. ‘교육’, 유대한의 교육 그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는 탈무드’. 유대인의 삶의 지침서이면서 종교서적도 아니고 많은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역사책도 아닌, 유대인이 삶아온 발자취와 수천년을 거듭하면서 변하고 다듬어진 진화되는 삶의 지혜서, K가 건내준 책은 다름아닌 솔로몬 탈무드였다.

유대인은 전세계에 1300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60억 인구의 0.2%에 불과하다. 얼마 안 되는 인구로 그들은 역사상 가장 많은 창조적 인재를 탄생시켰으며 세계역사를 지배해 왔다.

노벨상에서 경재 65%, 의학 23%, 물리 22%, 화학 12%, 문학 8%의 유대인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미국 유대인 세대의 소득 수준은 전국 평균 2배 이상이다. 유대인은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상위 400가족중 24%, 최상위 40가족인 경우 42%를 차지한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유대인은 철학 스피노자, 베르그송, 마르크스, 룩셈부르크, 비트겐슈타인, 스미스, 샤뮤엘슨, 촘스키가 있다. 또한 심리학 프로이트, 아들러, 자연과학 뉴턴, 아인스튜인, 오펜하이머, 음악 멘델스존, 쇼팽, 말러, 발터, 거슈윈, 미술 피사로, 모딜라이니, 샤갈, 영화 에이젠슈타인, 채플린, 와일러, 알렌, 스필버스, 스타라이선드, 문학 하이네, 푸르스트, 카프카, 싱어, 샐린저, 경제금융 로스차일드, 뒤퐁, 시트로엔, 머독, 소로스, GE, IBM, 골드만삭스, 언론출판 퓰리쳐, 로이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정치 디즈레일리, 레닌, 키신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예수 또한 유대인이다.” (‘솔로몬 탈무드서문)

유대인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조금 샘이 나긴 하지만, 사실이다. 그들이 세계 정치, 경제, 문학 등 주요한 곳곳을 자리잡고 지배할 수 있는 근원을 무엇일까?! 탈무드는 종교적이지만 종교서가 아니다. 많은 역사를 담고 있지만 역사서적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웃음과 해학, 눈물과 아픔, 사랑과 배신, 실패와 승리, 좌절과 성공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성격의 처세서이자 교육서, 21세기 융합의 시대와 묘하게 얽혀 있는 것과 같은 이 책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다 유대인이 발을 붙이고 살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들이 이주해 간 나라마다 또 지방마다 법이 다르고 문화가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 교리를 만들어 놓고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 그랬다면 유대인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P.40)

유대인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이자 생존의 역사이다. 그들은 순혈이 아닌 혼혈이라 하여 핍박을 받았고, 그런 가운데 기존의 전문점 상권에 진출할 수가 없어 결국 복합적인 형태의 상점인 백화점을 만들어 먹고 살아야만 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일반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받는 금융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택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언제 쫓겨나 이동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이동에 유용하지만 사회적, 금전적 가치를 톡톡히 하는 다이아몬드를 가져야 했고, 그로 인해 다이아몬드 산업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런가 하면 똑 같은 맥락에서 남들에게 박해 받지 않기 위해 공정거래와 상거래에 앞장섰으며 그 결과 계약과 약속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지키는 민족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 삶의 실용적인 지침서이자 교육서인 탈무드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복합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들은 성서와 탈무드를 바탕으로 교육했다. 그들에게 교육이란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과거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예루살렘이 함락 당할 위기에 놓여있을 때 랍비 요한나 벤카자이는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군사적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의 신전이 로마인들에게 파괴되는 일은 어떨 수 없지만, 유대인은 로마인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은 자손에게 칼을 전해 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칼보다 더 강한 교육을 자손대대로 전해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유대인이 로마인에게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P.48)

결국 벤 카자이는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를 만나 예루살렘이 아닌 학자들이 성서를 가르치는 대학이 있는 야브네도시를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예루살렘은 불바다가 되고 신전은 파괴되고 약탈행위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야브네에서 공부를 계속하였고, 벤 카자이의 생각처럼 로마를 이겨낼 수 있었다.

서기 73년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때, 로마 시내에는 개선문이 세워지고, 로마 제국은 유대인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금화 (유데아 데비크타 : 유대인을 쳐부셨다 는 뜻, 유데아 카프타 : 유대인을 잡았다 라는 뜻)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져 유랑민이 되어야 했다. 로마인들은 승리의 달콤한 술에 취했고, 유대인들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그러나 오늘날 로마 제국은 남아 있지 않지만, 유대인은 남아 있다.“ (P.317)

유대인들의 이 모든 생존과 업적 그리고 승리의 기저에는 교육이 있고 그 속엔 탈무드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실용적인 교육서 탈무드

그 양만 해도 성서의 수십 배에 달하는 탈무드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내려 오다가 2세기 말 랍비 유다 하 나시에 구전율법으로 편찬에 착수되었다. 이를 미슈나라고 했으며, 미슈나와 그에 대한 주해 게마라, 이 둘을 탈무드라 일컫는다.

탈무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실용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특히 돈, 성서, 사랑, 결혼 그리고 교육 등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다. 유대인 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 가치에 대해 알아보자.

 

1) 유대인을 읽는 코드

돈을 버는 것보다 절약하는 것이 어렵다.’

속이 비어 있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빈 자루가 더 무겁다는 속담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빈 지갑이다.’

유대인은 돈을 좋은 것이라고도, 나쁜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인생에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람은 돈의 주인이어야 한다.’

돈만 있으면 좋은 취미 외에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돈을 버는 것은 쉽다. 그것을 간직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돈은 결코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돈이 모든 일을 나쁜 족으로 몰고 가는 것도 아니다. 돈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인간에게 돈은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 목적이 아니다. 인간답다는 것은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돈을 지배하는 것이다.’

돈은 올바르게 사용하면 좋은 것이 되고, 나쁘게 사용하면 나쁜 것이 된다. 다만 그뿐이다.

돈은 소홀히 해도, 두려워해도 안 된다.’

 무거운 지갑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

돈은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되게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게 없으면 모든 것이 나빠지게 될 것은 뻔하지요.”

‘“우리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무리에게는 죽을 때까지도 돈이 쌓이지 않는다라고 말하지요.”’

 

유대인들은 돈을 경박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돈은 그저 돈일 뿐이다. 그리도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가져다 주는 존재였다. 돈에 쫓는 행위를 나쁘게 보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수천 년을 핍박 받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돈이었다는 반복적인 경험에서 온 지혜였다. 따라서, 돈을 쫓아서 사는 삶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유교적 문화에 사는 D에게는 그들의 철학에 상당히 거리감을 느껴졌다. 실제 D 또한 탈무드를 읽으며 에 대한 그들의 노골적인 법칙과 시각에 다소 놀라기도 했다. 어릴 적 봤던, D가 기억하던 탈무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유대인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실 하나는 은 그들이 그들의 삶에서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핵심가치라는 것이다.

 

2) 유대인을 읽는 코드 긍정

유대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법칙에는 ’78:22의 법칙  있다. 이는 무슨 일을 하던 성공할 확률은 78%, 실패할 확률은 22%라는 것이다.

“78:22의 법칙- 정사각형의 면적이 100이면, 내접하는 원의 면적은 78이고 나머지가 22이이다. 공기의 성분이 질소 78에 산소와 기타가 22이다. 사람의 신체도 수분이 78, 기타 물질이 22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78:22의 법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P.161)

그들에게 이 법칙은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은 78이고, 실패율은 22인 것이다. 실패율 22를 생각하지 말고 나도 하면 78의 성공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들의 긍정적인 성향을 대변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여주는 몇 개의 구절이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최고다. 그러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는 태도로 사는 것은 마음의 안정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만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

성서의 창세기는 하느님의 모든 행동 뒤엔 이렇게 하여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었다라는 문구가 붙는다. 보통의 상식과는 다르다. 보통의 하루는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에 끝나는데 말이다. 이에 대한 랍비들의 결론은 밝은 때 시작하여 어두워서 끝내기 보다는 어두울 때 시작하여 밝을 때 끝내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대인의 긍정성이 그들이 현재의 글로벌 시대에도 굉장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 영향력 중 하나인 것이다.

 

3) 유대인을 읽는 코드 - 교육  

안식일이 되면 아버지는 언제나 자녀들을 한 사람씩 방으로 불어서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일, 공부에 관해 들어보고 조언을 해준다. 이 만남의 시간은 대개 30분 정도이지만,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일주일 동안 겪은 일들에 대해 아버지의 의견을 듣고 총정리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P.383)

전란, 전란, 전란, 국가의 멸망, 이산과 방랑, 핍박과 추방, 인간우리 게토, 그리고 홀로코스트……그때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은 살아 있다. 그러므로 배워야 한다!” “(P.402)

 

유대인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교육에 있다. 위의 두 구절은 그들이 교육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에게 교육은 밥과 같이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가치이다. 안식일이면 아버지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그들이 받은 교육에 대해 듣고 자신의 견해를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아버지의 의견을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과정을 가진다. 또한 그들에게 교육은 해도 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서와 더불어 교육을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은 우리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유대인 부모들이 아이들과 대화하며 자녀들의 사고력을 키워주며, 그들을 자신들이 정한 틀에 끼워 맞추려 하지 않고, 자녀들의 개성을 존중해준다. 그들의 교육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주는 것이며, 머리가 좋거나 현명한 자 보다는 공부하는 자를 더 인정한다. 유대인들의 교육철학은 담은 몇 가지 구절을 보자.

하느님의 가르침을 먼저 듣게 된 여성은 그것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어머니들은 여성이야말로 최초의 교사이며, 당연히 자녀들을 가르치는 의무를 지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다른 집 아이들과 똑같이 뛰어 놀고 함께 공부하며 행동하는 고정적인 틀에 속해 있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열을 다투는 경우 승자는 언제나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저마다 남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모든 인간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는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닥치는 대로 질문하도록 길들여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의 장래에 대해서 엉뚱한 꿈이나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무리하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사고의 방향을 잘못 잡아 어린이들의 미숙한 상상력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어버이 멋대로 이끌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어린이의 상상력을 무시한 지나친 요구를 절대 하지 않으며, 적당한 자극을 통해 어린이의 마음을 단계적으로 개발시켜 줌으로써 구김살없이 키우려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유대인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할 때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 사이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이며, 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유대인의 교육철학은 D가 평소 생각하고 원했던 부분이 많았다. 다만, 이는 실천의 문제이고 얼마나 이러한 교육철학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입시교육 위주의 교육체계와 분위기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환경은 어떠한가?

과거 우리 사회의 교육은 일방적이었고, 결과지향적이었다. 피교육자가 택할 수 있는 목표들도 다소 한정되어 있었다. 국영수를 잘해서 내신을 잘 받고, 책을 많이 읽어 수능점수 잘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한 교육이었다. 개인의 성향이나 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SKY 같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또는 조금 더 좋은 직업, 즉 변호사나 의사, 검사, 치과의사가 되면 금상첨화였다. 자신의 적성이나 직업관은 차후 문제였다.

요즘은 한 술 더 뜬다.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 그런데 그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때야 하고 영어 할 줄 알아야 한다. 중 고등학교 입학 전에는 선행학습이 필수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졸업을 해 대학에 입학하면 치열한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3.5 이상의 학점을 따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토익 900점 달성, 공모전, 봉사활동, 해외연수 등,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게 움직여야 한다. 이 과정의 문제는 교육열만 대단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 즉 에너지가 더 많아 졌을 뿐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대학교 졸업까지 20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즐기지도 못하고 있고, 20년의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나 구체적인 실행방안 조차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정해진 시간에 눈에 보이는 고지만 넘어가면 된다는 교관의 지시와 구령에 맞춰 행군하는 군인들과 흡사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고지점령이다. 우리들의 목표도 역시 오직 대학입학과 취업이다. 그 목표에  는 없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 안으로 봐도 난감하건 마찬가지이다. 학생을 성적 순으로 일렬종대 시키는 천편일률적인 학생평가, 그로 인해 동기를 잃을 대로 잃은 학생들은 학교분위기와 교육시스템에 실증이 내고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 학원에서 미리 학습한 내용으로 학교수업을 들을 필요 없어진 그들이 수업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저녁에 있을 학원수업 예습을 하는 건 예삿일이다. 그들 앞에 서있는 인생의 선배이자 선생님인 사람들을 향한 학생들의 존경심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 반대로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배려, 이해, 존중 또한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일방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편엔 개인화되고 핵가족화된 가족의 모습 속에 무미건조해진 학생들이 있다. 점점 더 높아지는 삶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부모들, 부모와 같이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가정(인성)교육과 가족(사람)간 사람들의 정은 그 이상으로 줄어들고 있다. 다른 한편엔 즉 점점 더 불확실해 지는 현대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자 한 결과로 선생이라는 직업을 택한 과정이 있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생이라는 결코 작지 않은 사회적 책임을 가진 교사라는 직업을 택하고 수행함에 있어 직업정신에 대한 고민은 둘째이고, 직업의 안정성이 첫째였던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취업을 우선으로 하지 직종이나 직무를 우선으로 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 위에서 언급한 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이다. 이 모든 책임의 상당부분은 과거와 현재의 교육체계, 그리고 그런 교육체계를 알게 모르게 지원한 사회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부모의 실질적인 역할은 거의 없다. 그저 줄서기에 동참해 어떻게 하면 앞줄에 세울 수 있는지 정도만 측정하고 이를 위해 학원에 보내고, 그렇게 학원비를 대기 위해 맞벌이를 한다. 그렇게 단기적 시각으로, 대중의 흐름에 개성은 매몰된 채, 바쁘게 돌아가는 그들의 삶, 그 속에서 유대인의 교육철학과 같은 나름의 주관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교육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자본이 없고, 권력이 없어도 제대로 된 교육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어제보다 더 발전되고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로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그들의 능력이 돈이고 권력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개성에 맞는 꿈을 가지고 자신의 색깔을 띈 능력을 가진다면, 우리도 2,000년을 살아남아 남들은 모방할 수 없는 능력과 영향력을 가진 유대인들보다 더 나은 한민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D는 생각했다. ‘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교육에 있어 내가 아는 바, 내가 원하는 바, 내가 추구하는 바를 나의 아이에게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이런 일률적인 교육체계 아래 놓여있는 나의 아이를 자신의 색깔을 살리는 교육, 꿈을 꿀 수 있는 교육 안으로 이끌 수 있을까?’ 사실 D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D가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D는 적어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다. D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생활 안에 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면 D의 아이도 그와 마찬가지로 과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라면 그의 아이를 꿈꾸게 하고 그 꿈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D는 항상 깨어 있고 싶었다. 세월의 흐름에 얼굴은 늙어가도 마음은 늘 소년, 청년과 같길 바랬다. D탈무드에 나오는 청춘에 대한 시를 다시 한번 읽으며 그런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있었다. 그는 그의 아이에게 언제나 젊은 아버지이기를 바랬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가리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합니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도 60살 노인에게 청춘이 있습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이상을 잃어 버릴 때 비로소 늙습니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듭니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됩니다

 

60살이든 16살이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그리고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습니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혀버릴 때

스무 살이라도 인간은 늙습니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살이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습니다.

 

 

-  사무엘 울만의 '청춘' -

 

[귀환-5주차] 독서, 그 낯설지만 매력적인 세계

4주간의 여정을 마쳤다. 지난 4주를 돌아봐야 할 때다. 4주간의 지적여행 정도면 나름 만족했을 텐데 K는 그것도 불만족스러웠나 보다.  K, 또 다른 여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지난 4주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는데또 다른 여행이라니…. 그것도 지난 4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인왕산 넘었더니, 북한산 넘자 하고, 북한산 넘었더니 설악산 가자 하고, 그래서 설악산 갔더니, 지리산 가서 포도단식 하잖다. 첩첩산중, ‘그래, 몸에도 좋다고 하니 포도단식 까짓거 하자.’ 배 곯아가며 포도단식하고 이제 보식 좀 하려하니 백두산을 가잖다. 아니 가자는 격이다. ‘고약한 K’.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스스로 택한 고생문인 것을…… 그래도 이건 좀…….’ D, 뻐근한 뒷 목을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며 마지막 과제를 풀어가기로 했다.

 

2 27일 저녁

K가 준 과제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기만 했지 생각나는 건 없다.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다.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피곤하고 퇴근길은 몽롱하다. 피곤하다. K가 준 마지막 여정을 끝마치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때였지만, 쉽지가 않았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구성은 진부하고 남들 앞에 내놓기 창피한 것들뿐이었다. 답답했다. 지난 4주의 여정 동안 몇 차례 들렀던 곳에 왔다. 그는 3층 창가에 앉자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들과 줄지어 행진하고 있는 자동차 불빛들로 수놓아진 어두운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같이 새벽기상을 하는 팀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들과 함께 한지도 어느덧 200일이 넘었다. 몽롱하고 기분이 묘한 그런 저녁, 그런 그의 느낌을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 그나마 그들이 D의 그런 넋두리는 들어줄 유일한 사람 같았다.

 

늦은 시간입니다지금은 늦은 시간 일까요...

 

회사에서 한 15분 내외 걸어야 도착하는 인사동 커피숍입니다

회사 앞 그 곳은 도떼기시장 같은 벅적지글함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오늘 같이 피곤한 날에는......운동한단 샘치고 걸으면 한적한 인사동의 그곳이 나옵니다.

전망도 좋고 사람도 많지 않고, 2,800원 커피 한잔에 원하면 하루 종일 대여할 수 있는 이곳이지만

오늘은 그리 오래 앉아 있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 곳으로 오는 길 득템했습니다

중고서점에 잠깐 들렀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가, 김탁환씨의 창작일기를 엮은 책이 나와 있더군요

한동안 찾다가 안 나오길래 그냥 잠시 잠깐 잊고 있었는데, 오늘 떡~! 하니~ 자리 하고 있더군요. ^^

 

"호랑이처럼 홀로 떠드는 작가에게 창작일기란 날마다 몰래 치른 백병전의 흉터이자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쑥쓰러운 선물이다." 

 

그의 책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우리에게도 이토록 치열하지만 즐거웠던 시간에 대해조용히 그리고 은근하게 선물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요...... 전 제게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서는 오늘과 같이 인내의 시간들이 끊임없이 있어야겠지요.

 

오늘은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날 입니다

장모님과 형님과 와이프, 그리고 우리 아이는 지금도 외식을 하고 있다고 압니다

와이프가 성격 쫀쫀한 저를 알아보고, 미리 조치를 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작업도 흔쾌히 수락하였습니다

 

고맙고도 미안합니다

나의 아내,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습니다

만약 이 과정을 수개월에 걸쳐서 한다면 어찌 될 지 모르겠습니다궁금하고 걱정됩니다

 

고마움과 미안함, 확실과 불확실, 설렘과 불안, 각성과 졸음

대극에 있는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순간입니다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진하디 진한 (적어도 나에게는) 콰테말라 원두커피가 제 속을 쓰리게 합니다그래도 한 모금 마시면 입 속에서 잘 사라지지 않는 향이 일품입니다.

 

쓰디쓴 커피와 향긋한 커피향, 대극에 있는 감정들, 이런 모든 것을 품에 앉고 오늘도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늦은 저녁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열었습니다.

 

노트북을 연 손에 못생긴 열손가락, 이제는 제법 나이를 반영한 주름들이 이리저리 자리하고 있는 투박한 손가락들, 뚜껑이 열린 노트북시큰하고 따끔거리는 눈만성 비염으로 고생해 반은 막혀 있고, 반만 열려 있는 콧구멍들구부정한 허리, 수일동안 저릿저릿함을 간직하고 있는 목덜미

 

이 모든 것들이 모였으니......이 모든 것들을 품고 열은 창이니

부디 오늘은 무언가가 환하게 보이는 화창한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3 2 27, 인사동 한 커피숍에서 D-

 

3 3일 저녁

J가 아프다. , J D의 와이프다.  D K가 제시한 과제를 풀다가 말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남아 있는, 해야 할 분량 (초고 완료 및 목차선정, 탈고)을 생각하면 그는 커피숍에서 엉덩이 붙이고 우직하게 작업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아픈 J가 아이에게 시달릴 생각하니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은 한번 아이와 함께 작업을 해보자그렇게 D는 조기퇴근을 하고 집에 짐을 풀었다. 다행이 장모님이 딸 걱정에 와 계셨다. J에게 매운탕을 끓여주고 밥을 먹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 잘 먹는 J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D의 아들 꼬마 악동이었다. 네살배기 사내아이는 요즘 세상이 모두 제 것 인냥 방방거리며 뛰어다닌다.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라 조심했지만 역시나 이사 온지 얼마 된지 않아 아랫집으로부터 불평을 들은터라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었다. 결국 J와 장모님은 거실에 놔두고 아이는 D가 맡기로 했다. D는 이어폰을 끼고 사이사이 작업을 하고 있으며, D 주니어는 D 옆에서 의자를 돌리기도 하고 책상에 있는 잡동사니를 하나 하나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게 아이가 무언가에 집중을 하게 해 조용해 지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덕분에 D의 방은 순식간에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아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D의 머리 속은 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D는 지금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리를 해본다.

 

1. 독서는 습관이다.

D는 책읽기가 서툴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나오기까지, 27년간 읽은 책이 대략 100권이 채 안될 것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도 그럴게 1년 책 5권 읽은 적에 손에 꼽히니…… 아마 50권이 안될지도 모르겠다. 입사 후,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의 보상심리로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읽은 책은 한 100권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중에 10%는 아마 K의 책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책과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책 읽는 것에 서툴다. K는 그런 D를 알아본 것 일까. K는 네 가지 질문을 던지며 네 권의 책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네 권의 책 ( K그리스인 이야기’,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테드와 시드니의 닥터 노먼 베쑨’, 그리고 이희영의 솔로몬 탈무드’)은 총 페이지 수만해도 무려 2,500 페이지가 넘는다. 페이지뿐 아니라 책 내용의 수준을 감안하면 소화하기 상당히 많은 분량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K는 인터넷 요약본 또는 얇고 쉬운 책으로도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왜 그리 두꺼운 책을 읽으라고 한 것일까?!

D독서는 습관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요약본을 읽으면 핵심은 알 수 있다. 얇은 책을 읽으면 책을 읽기 쉽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수한 책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지혜를 담은 책들의 상당수는 고전이고 고전들은 두껍고 어렵다. 쉬운 책들로 습관을 들이면 읽는 권수는 늘릴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의 두껍고 어려운 책을 접할 수가 없다. 요약본으로 읽으면 지식은 쌓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행간을 읽거나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찾기는 어렵다. K는 우리가 보다 더 수준 높은 독서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독서습관에 대한 훈련을 시키고 있었던 같았다.

우리는 점점 책과 멀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세상은 빨라지고 스마트한 기기들 속에 정보는 넘쳐난다. 지식이나 정보를 굳이 다른 데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책처럼 어렵도 돌아가는 방법보다는 인터넷이나 요약본과 같은 지름길을 택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런 현상을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오늘날 사서들이 자주 부딪히는 당혹스러운 문제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책을 올바로 읽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전자 텍스트를 찾아내서 읽고, 인터넷을 활용해서 여러 출처에서 몇 단락씩 잘라내어 하나의 글로 재조합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쇄된 페이지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비판하여 설명하고 기억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전자 텍스트는 접근성이 뛰어나, 사용자에게 학습의 어려움을 수반하지 않고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따라서 독서의 본질적인 목적이 상실되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수집이라는 역할만이 남는다.”(‘책읽는 사람들’, P.329)

알베르토 망구엘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정보의 수집은 독서의 역할이 될 수 없다. 독서는 텍스트에 들어가, 개인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서 텍스트를 탐구하고 재창조해 다시 회수하는 능력인 것이다(‘책읽는 사람들’, P.328) 우리는 이를 통해 창조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 때 독서는 진정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서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K가 제시한 것처럼,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의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읽는 습관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독서는 습관이다.

 

2. 독서는 수 많은 삶으로의 여행이다.

독서는 여행이다. 그것도 그저 그런 여행이 아니라 수 많은 삶으로의 여행이다. 전 세계인구 70억이 넘는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인구까지 감안한다면, 이를 세어보는 건 실로 불가능할지 모른다. 책은 그 시대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D는 이를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싶다. 역사는 수 많은 인간들의 삶으로 이루어졌다. D에게 역사란 표현은 조금 멀다. 하지만 이란 표현은 가깝다. ‘그리스인 이야기에는 신들의 삶이 있었고, 그리스인들의 삶이 있었다. ‘법의 정신에는 17세기 프랑크 사람들의 삶이 있었고, 몽테스키외의 삶이 보이는 듯 했다. ‘닥터 노먼 베쑨닥터 노먼 베쑨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1930년대 가난한 캐나다인의 삶과 스페인 내전으로 고통 받는 피난민들의 삶, 그리고 어린 나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끌려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또는 불구가 된 소년병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삶이 있었다. 수혈을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던 17세기 파리의 의사 장 밥티스트 데니스의 삶과 19세기 영국의 의사 제임스 블런델의 삶도 있다. 단편적이기는 하나 말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솔로몬 탈무드를 통해서는 유대인의 삶과 교육을 깊숙하게 들여다 보기도 했지요. 책 속에 나오는 수 많은 이야기들은 곧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D는 네 권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보았고, 동시에 그의 현재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기도 했다.

여행은 힘들다. 물론 자동차로 비행기로 많은 돈을 들여서 하는 여행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삶을 체험하고 현지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배낭여행은 꽤나 힘들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생소하고 수많은 삶으로의 여행이란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생소한 단어도 있고, 그들이 말하는 삶을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한 번의 여행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똑 같은 코스를 두 번 세 번 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있다. 깨달음도 있다.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의 삶이 여행 전과 여행 후로 나누어지듯, 책을 읽는 우리의 삶도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D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고 이로 인해 4주간의 지적 여행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힘들지만 생이 바뀌는 여행 그것이 책을 통한 여행인 것이다.

대신 여행은 즐겁다. 책을 읽는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와 같이 삶의 영역이 집-회사-집으로 한정되어 있는 직장인들, 보통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세계는 좁다(물론 여행을 통해 삶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우리의 삶의 영역을 넓혀준다.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책이 아니면 우리가 어찌 유대인인 조지 소로스의 삶이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삶을 들어가 볼 수 있겠는가. 문화상품권을 받기 위해 헌혈만 할 줄 알았지, 수혈에 그런 기구한 역사가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책이 아니면 D가 어떻게 혈액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운 여행이다. 흥미로운 여행이다.

 

3. 독서는 변화다.

어린 시절의 D에게 탈무드는 재미있고 재치 있는 책이었다. 성인의 D에게 탈무드는 처세서이자 교육철학을 벤치마킹 할 수 있는 CASE 이자 교훈서이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 사라졌다. 이처럼 책은 읽는 독자가 변하는 만큼 그 내용과 쓰임이 달라진다. 즉 변화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바뀐다. 수 많은 명사들이 내 인생을 바꾼 책을 꼽는다. D K의 데뷔작을 보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결국 사회와 세상과 그 시대를 변화시킨다. 독서는 역사를 변화시킨다.

그런가 하면 독서란 행위는 확장을 불러일으킨다. 사고의 확장이야 지적 영역의 확장이다. D 4주간의 지적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D의 책 읽기는 또 다른 책 읽기로의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그리고 윌 듀런트의 문명이야기와 같은 또 다른 독서로 그 관심을 확장시켰고, ‘닥터 노먼 베쑨은 자서전이라는 책의 또 다른 묘미를 안기며 피터 드러커체 게바라의 자서전으로 그 영역을 넓혀 놓았다. 그리고 지난 4주간의 지적 여행과 K의 질문으로 인해  독서에 대한 D의 고민은 그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독서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며 알게 되어버린 세계 최대의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로 D를 인도하였고, 그의 책 독서의 역사책읽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D‘TO-READ-LILST’에 올라가 있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로 연결될 것이 분명하다. D가 이 책들을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 행위로 인해 책 읽기의 영역이 변화(확장)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서는 읽는 사람의 환경과 시기에 따라 변화되어 다가오고, 읽는 사람의 시대와 읽는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며, 독서의 영역 또한 확장(변화) 시킨다. 독서는 변화다.

 

2013 3 3 11: 32, 깨달음

그 때 갑자기 권총이 발사된 듯 폭음이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폭음이 들려온 옆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머니는 뜨개질 감을 떨어뜨린 채 넋을 잃고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 무슨 일이야? 바로 내 옆에서 소리가 났는데.” 어머니가 말을 더듬으며 식탁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식탁판이 한가운데를 지나서까지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데는 접합한 부분도 아니고 완전한 통나무판 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70년 동안 마를 대로 마른 통나무 판이, 우리 고장 기후로 보면 비교적 습도가 높은 이 여름날에 어떻게 갈라진단 말인가? 춥고 건조한 겨울날 뜨거운 난로 옆에 있었다면 혹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그와 같은 파열현상이 일어났단 말인가?’ (‘카를 융 자서전’ P.204~205)

2010년 봄이었다. 내 눈앞에 K가 서 있었다. 그의 신간 강연회였다. 이는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물론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봤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 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K는 이 에피소드를 그의 책 신화 읽는 시간의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번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우연한 사건, 그저 오래된 나무 식탁이 느닷없이 쩍 갈라지는 그 굉음을 통해 정신세계의 일각에서 인식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부른다.  터져 갈라진 틈새로 지금껏 보아왔던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의 한 조각을 얼핏 들여다 보게 된 것이다. 정신의 눈이 열렸다. 외적이고 현세적이고 역사적인 의식의 세계를 만들던 환영의 힘들이 흩어지고, 우리의 시야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와 놀라움으로 가득 찬 내적 차원을 향해 열리게 된 것이다.”(K신화 읽는 시간에필로그 )

그런가 하면, 카를 융이 겪은 이 범상치 않은 사건에 대한 K의 해석보다 (아마도) 조금 더 잘 알려진, 직접적인 표현은 이것일 것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는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 1, 카프카. [저자의 말][변신] 중에서 –“(‘책은 도끼다저자의 말 )

 

책은,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를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다만 진정한 깨달음 또는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의 마음이 책을 향해 있어야 하고 눈이 책을 향해 있어야 하고 귀가 책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책 읽기가 수동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는 책을 능동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행간도 읽게 되고 안보이던 것도 보이게 된다. 자신의 경험과 취향, 직관, 지식 (때로는 무의식까지도)을 모두 끌어들여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K가 말하는, 카프카가 말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얻은 이의 삶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 2013 3 4 0:17, 책상 앞의 나

모두가 자고 있다. J도 자고 있고 꼬마 악동도 자고 있고, 장모님도 자고 있다. 오직 나만이 깨어있는 밤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꽤 많은 책들이 쌓여 있다.

책은 도끼다(박웅현)’, ‘삶을 바꾸는 책 읽기(정혜윤)’, ‘김탁환의 원고지(김탁환)’, ‘밤의 도서관(알베르토 망구엘)’, ‘마흔, 당신의 책을 써라(유인창)’, ‘책읽기 좋은 날(이다혜)’, ‘독서의 역사(알베르토 망구엘)’, ‘침대와 책(정혜윤)’, ‘책읽는 사람들(알베르토 망구엘)’

책에 대한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 책들은 또 언제 다 읽어……’ 나는 내심 고민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그래도 읽고 싶은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난 책읽기가 즐거움이 되었다. 다만, ‘시간이란 녀석이 한정되어 있고 한정된 자원을 회사와 가족과 친구와 그리고 의식주 해결에 분배하다보니 그리 쉽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도 내 책상에 책장에 꽃힌 많은 책들은 내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이다. 그의 책상에 그리고 책장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다 읽어 내 정신적 도서관에 있는 책장에 차곡차곡 꽃아두는 것, 그리고 나만의 정신도서관을 세우는 것이다. 나의 정신도서관은 어떤 책들로 채워지고 이는 어떤 새로운 책을 낳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내일이 궁금하다.

배고프고 몽롱한 밤, 난 이런 상상을 하며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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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5 23:30:18 *.151.207.149
배고픔이 아닌 술고픔음 아니셨는지요? 왜? 쓰고 싶은가? 를 공감하고나니 나도 쓰고 싶어졌어요... 살롱9맥주 맛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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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3:02:41 *.46.178.46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분들과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저와 같은 인생 초보는 이래저래 배울 것도 많은 ~ ^ ^ 


살롱9 맥주는 당근 맛났구요~ 


앞으로는 되도록 자주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저도 뭐 하나 신청해야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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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2:11:01 *.62.164.85
땟쑤~ 나 그대 팬됐쑤♥♥ U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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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3:04:21 *.46.178.46

헙, 무슨 그런 말씀을~

형선형님의 철학적 역사적 배경지식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습니다. 

전 아직 멀었습니다~ 

조만간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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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3:10:59 *.46.178.46

지금 다시 보니, 역시나 손 볼 곳이 많군요... 엄청나게......

시간내서 다시 한번 고쳐써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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