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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8일 10시 35분 등록

닥터 노먼 베쑨, 

세계를 감동시킨 한 휴머니스트 의사의 일대기, 테드알렌․시드니 고든 지음                                오 미 경


참고자료 : The Scalpel, the sword the story of Doctor Bethune/  Mcclelland & Stewart in 1952. ISBN 978-1-55488-402-5

http://books.google.co.kr/books?id=ezELjVWXhy8C&printsec=frontcover&dq=inauthor:%22Sydney+Gordon%22&hl=ko&sa=X&ei=QxEhUYfwKcSDjAKWmoCgAQ&ved=0CDoQ6AEwAQ#v=onepage&q&f=false


저자에 대하여.

1-1. 저자 테드 알렌과 시드니 고든은 누구인가.

“노먼 베쑨입니다. 미리암 케네디에게서 당신 전화 번호를 받았습니다. <New Frontier>에 실린 당신의 글이 맘에 들어서요, 이번주 토요일 저녁 내 마흔네번째 생일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은데요.”


초대받은 테드는 베쑨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방에 들어선 테드는 한쪽 벽면을 온통 차지한 아이들의 그림과 바닥부터 천장이 닿을 정도로 책이 가득한 책장들에 놀란다. 베쑨은 테드를 욕실로 안내하는데, 우스운 것은 베쑨의 학위가 거실벽이 아닌 욕실벽으로 밀려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아해한다. 욕실 정 중앙에 손자국들이 찍혔 있었다. 베쑨은 테드의 손을 푸른물감이 든 통에 담갔다가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찍게 하면서 테드에게 사인하라고 요청한다. “당신은 나의 특별한 친구들 순위에 올랐소” 베쑨은 처음 만난 테드에게 무한한 신뢰감과 우정을 보여주면서 테드를 몬트리올 시의 지식층에 편승하게 한다.


테드 알렌과 시드니 고든은 몬트리올로 이주해온 유태인 이민자들의 아들들이며 경제대공황시절 약속의 땅인 캐나다에서 자란다. 스페인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협력할 때, 많은 젊은 유태인들중의 두 사람도 파시즘의 위험성을 깨닫고 열렬한 젊은 정치꾼인 좌익계 공산당중의 사람들이었다.


1934년 테드(Ted Allan, 1916.1.26 ~1995.6.29)는 정치와 노동문제를 주로 다루는 공산주의 사상계인 신문 <The Daily Clarion>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캐나다는 나찌의 재정적 지원을 받은 민족사회교회당이 유태인 캐나다인을 제거하는 선동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파시스트에 잠입해서 그들의 만행을 폭로할 글을 쓰기 위해 유태인 이름 Alan Herman을 Ted Allan으로 바꾸고 일생동안 사용하게 된다.


1936년 베쑨은 스페인 내란이 발생하자 왕당파를 지지하고 이동수혈대를 조직해 최전방에서 활동한다. 1937년 테드는 베쑨과 합류할 계획으로 국제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스페인 행 배에 몸을 실은다. 그 배에서 젊은 배우 John을 만난다. John은 좌익계 극장에서 만났던 보스턴의 아름다운 아가씨 Kate와 갓 결혼했으며, 전쟁으로 죽을 경우 편지를 아내에게 전해달라고 테드에게 부탁한다.


스페인 동남부에 위치한 알바세테Albacete에 도착한 테드는 전쟁의 참혹함과 황폐함을 경험한다. 죽은 아이들이 꿈에 보이고 불에 탄 마을들, 소음과 악몽으로 울고 소리치고 마치 자신이 아이였더라면 겪었을지도 모르는 끔찍함에 대해 베쑨에게 털어놓는다. “잊혀지기 전에 빨리 쓰기바래” 베쑨의 조언대로 테드는 그의 첫 소설, 스페인에서의 나날들에 관해 <This Time a Better Earth>을 썼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테드는 최신형의 타자기가 침대 옆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작가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여태껏 타자기 한 대로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베쑨의 선물이었다.

테드는 연방신문사와 라디오 방송을 북미로 전하면서 베쑨의 수혈부대를 도와 함께 활동한다. 테드는 헤밍웨이나 존 도스 파소스( John Dos Psssos)와 어울린다. 미국인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와 독일계 유태인 파트너인 게다 타로(Geda Taro)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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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of Spain>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한 닥터 노먼 베쑨, 1937년 마드리드


스페인 내란 동안, 클라인(Kline)과 카파티(Karpathi)는 베쑨의 활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베쑨이 이끄는 수혈부대는 내분이 있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낮잠을 자야하는 스페인 의사들과 외국인 베쑨이 스페인 의사들을 이끄는데에 대한 불만이 스페인 의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분에 못이긴 베쑨이 만취해서 그들 앞에서 소리치는 상황이 발생하자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 스페인을 위한 기금마련을 위한 연설의 명목으로 1937년 5월 말 고국인 캐나다로 돌아와야 했다. 공식적으로는 영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휩싸였다. “스페인은 내 가슴에 하나의 상처를 남겼소”라고 전처인 프란시스(Frances)에서 편지를 쓰고 얼마 후 중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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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랜드 앰블란스 연합, 스페인, 1937년 4월,

베쑨은 가장 오른쪽에 반 코트를 입고 있다.

테드 알렌은 왼쪽에 두 간호사 사이에서 목도리를 두른 남자.



뉴욕으로 돌아온 테드는 존의 편지를 미망인 Kate에게 전한다. 운명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면서 만난 지 1년이 채 넘기기 전에 그들은 결혼한다. 2년후 딸 줄리(Julie)가 태어나고 1943년 아들이 태어나자 베쑨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아들 이름을 Norman Bethune Allan으로 부른다.

1939년 테드는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난 베쑨의 이야기를 듣는다. 테드는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베쑨의 삶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영화대본을 쓰기 시작한다. 캐나다, 스페인, 중국에서 활약한 그의 변화무쌍한 삶을 대서사시가 될 것이었다. 1945년 21세기 폭스사가 그의 대본을 구입하기로 하면서 가족과 함께 헐리우드로 이사한다. 1946년 스페인 내란 이후의 상황을 알아보고 영화대본을 위한 조사차 스페인 마드리드로 갔다가 뉴욕으로 돌아온다. 테드는 장티푸스로 수개월동안 고생하면서 죽음의 바로 문턱에서 회생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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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스페인으로 잠입여행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테드 알렌



설상가상으로 1940년대 후반, 미국 의회에서 반공산주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좌익 편향의 작가, 감독 및 배우들은 곤경에 처하면서 특히 왕당파 스페인에게 자금을 조달한 어느 누구든지 용의선상에 올랐다. 테드는 ‘미숙한 반피시스트’로 기소되었다. 자연스럽게 21세기 폭스사도 베쑨에 대한 영화를 포기해야만 했다. 베쑨이 바로 스페인 파시스트에 반대한 자이며 중국으로 건너가서 공산주의자 모택동을 도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테드는 베쑨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랐다. 베쑨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역사 교과서에 쓰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캐나다 국민들은 베쑨이 사회적 책임하에 의료제도를 입안했고1947년 북미 병원법을 지지하고 영감을 준 선구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캐나다에는 국민적 영웅들이 충분치 않다고 느낀 테드는 <The Scalpel, The Sword>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친구의 도움이 절실함을 느낀다.

토론토에 살고 있으면서 테드보다 한 살 위이며, 어릴 때의 친구이자 리포터로 활동중인 시드니 고든에게 도움을 청한다. 시드니는 독서가이며, 사고가이자 글쟁이인 체계적인 이상주의자였다. 이 중요한 전기 이야기를 쓰는 바로 적기에 시드니 고든( Sydney Gorden. 1915~1983)을 만난다. (Sydney Ostrovsky에서 Sydney Gorden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시드니는 인기라디오 쇼호스트인 모니카와 이혼을 했다. 모니카는 그들의 딸 수잔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가 재혼했다.

두 작가는 베쑨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다. 일기, 편지, 메모 등과 함께 베쑨과 친분이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다.

베쑨이 중국생활(1938.01.20일~1939.11.13, 약 22개월정도) 하면서 베쑨에 대한 자료를 제공받는다. 베쑨이 중국에서 생활하던 당시 그의 옆에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동월천(董越千), 손문의 부인 송경령 여사의 도움으로 베쑨이 중국에 머무르면서 작성한 모든 글들을 이용했다. <미완의 중국혁명>의 저자인 이스라엘 엡스타인도 베쑨의 문건과 일기 등을 참고한다. 베쑨의 동료 의사들- 현재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로부터는 의학 관계 용어의 감수를 받았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1952년 베쑨이 의사로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캐나다 사회에 끼친 영향, 스페인 내란때 수혈부대를 이끌고 활동한 내용, 중국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그의 자취를 담은 <The Scalpel, The Sword>이 출간되었다. 출간 되자 수십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으로 베쑨의 삶이 소개되었다. 이 책의 성공은 저주와 축복의 혼합물이 되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찬양한 이 책과 저자가 반공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후반, 중국 정부는 테드와 시드니를 중국으로 초청한다. 영화제작을 위한 베쑨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두 저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수락한다. 그러나 테드는 여러 가지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테드가 영국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시드니가 중국에 체류하면서 영화대본초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한다.

중국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시드니가 쓴 영화대본이 서서히 중단되었다. 중국정부는 대본이 오직 베쑨의 생애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불평했다. 이 점에 대한 두 작가들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베쑨의 이야기는 사회 부정의에 맞서 사람들을 일깨웠으며 행동으로 몸소 보여준 한 인간의 삶이었다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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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후반 중국에서 시드니 고든


시드니는 동독에 1년정도 체류하면서 그의 작품들을 번역해서 출간해 달라는 초청을 받는다. 공산주의 작가들은 서방세계로 나갈 활로를 찾을 수 없는 시기였다. 적과 백이 첨예하게 대립된 이념주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1년의 체류가 계속 연장되면서 1983년 죽을 때까지 살게 된다. 시드니는 막스주의 도그마에 갇혀 평생을 공산주의 신봉자로 살았다. 그가 평생 우상으로 받들고 유토피아로 꿈꾸었던 공산주의 소련과 동유럽이 붕괴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테드와 시드니의 평생 숙원이었던 노먼 베쑨에 대한 영화가 1988년 <Bethune: The Making of a Hero> 드디어 만들어졌다. 캐나다, 스페인 중국을 배경으로 도날드 슈더랜드(Donald Sutherland)와 헬렌 미렌(Helen Mirren)이 주연하였으며 중국과 서방이 공식적으로 최초로 합작한 첫 영화의 영예를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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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저자에 대한 개인적 평가

글을 쓰는 작가로서 소설이 아닌 전기문을 쓴다고 할 때, 객관성이 얼마나 유지되어야 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베쑨을 옆에서 지켜보고 짧은 3년동안 함께 생활했던 테드는 베쑨의 행동주의적 성격과 사회주의 이념에 감화를 받았다. 시드니 또한 사회주의자로서 베쑨을 존경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베쑨의 편지, 일기, 메모 등을 수집하고 베쑨의 가장 가까운 전처 프란시스와 가족들, 중국에서 베쑨의 분신인 동월천과 많은 의료진과 간호병들, 베쑨을 만나본 민중들, 모택동과 섭장군, 송경령 여사등을 만나면서 한 인간의 심오함을 더 깊이 알아갔을 것이다. 글을 써서 한 사람의 위대함을 알리는 일은 분명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닐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이 죽음을 계기로 변신하는 과정을 두 작가 -테드 알렌과 시드니 고든-는 보았을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이 주위 사람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적셨다는 것을. 오로지 글을 써서 알리는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두 작가는 사명감이 무엇인지를 분명 깨달았을 거라고 믿는다.


1-3. 내가 본 닥터 노먼 베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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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쑨의 삶은 의사로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를 변화시키고 행동하게 만든 계기는 죽음의 손길이 그에게 다가왔을 때였다. 죽을 날만을 침상에서 기다리며 어느 날 읽은 희망의 보고서 아취볼드의 인공기흉술을 알게 된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뭐든지 실험해보고 죽자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폐가 기흉술로 치료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신화에서도 영웅들은 죽음을 맛본 이후에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달린다. 어쩌면 베쑨의 삶도 신화를 닮았는지. 신화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신화가 신화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라는 것을. 자신이 믿고 옳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실천해 나간다. 자신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의 안락과 보존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무의미하며 자신이 어느 곳에 가장 잘 필요한 것인지.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숭고한 의미로 개인의 역사를 다시 써나간다. 개인의 삶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는 이웃으로 사회속으로 민중속으로 찾아 들어가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생명을 살려내는 일에 혼신의 열정을 다해 간다.

‘늘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 베쑨을 알고 베쑨에 대한 글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불꽃처럼 타오를 수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의사(小醫)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中醫)하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의사(大醫)라 한다고 한다. (추천사 중에서)

=>모든 직업에는 그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그 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하는 일의 내용이 확연히 달라진다. 소극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 적극적이되 중간 정도로서 사람과 업만 보는 사람, 마지막으로 자신의 업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이런 것을 보면서, 나의 역할이 나의 안락과 보존만을 추구하는 것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의 앎이 옆에 있는 사람과 이웃들에게 사회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이여야 된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노먼은 진정 자신이 스스로를 태워서 생명을 살리고 사람들 마음에 빛을 불어넣어준 삶이었다.


2. 사랑과 지독한 굶주림과 생명에 대한 끝없는 긍정, 외과의사로서의 자신의 활동과 사회참여, 그리고 우리 세계의 점증하는 잔인성과 신체의 부상, 이러한 것들이 그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힘은 세계를 재창조하겠다는 그의 원대한 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16p 개정판 서문 중에서)


3. "역사란 놈은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 눈길 한번 보내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대로 스쳐가겠지."(28p)

=> 노먼 자신은 죽음을 앞두고 이러한 생각을 했겠지만, 그의 사후 그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그들 가슴에 불을 넣어주었던가. 한 인간의 위대한 행동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면서 죽어있는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4. 후에 그는 "죽음에 직면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진실을 그냥 살다가 죽어간 많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28p)

=>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신화에서도 죽음을 맛본 후에 평범한 일상이 영웅의 행동을 나타냈다. 죽음을 맛본 사람은 삶에 무서울 것이 없다. 살아 있어서 일상이 위대한 삶의 신비라는 것을 노먼은 알았었다.


5. 캐니다 온타리오주 그레이븐허스트의 정다운 풍경, … 16세기 중반 북부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베쑨 가의 옛이야기들도 …베쑨의 조상들은 프랑스의 비국교도인 위그노들이었다. 베쑨의 선조들은 18세기에 다시 캐니다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영국 국교의 주교를 지낸 사람도 있었고, 맥길 대학교의 총장을 지낸 사람도 있었다. 베쑨의 할아버지는 토론토에서 활동한 유명한 외과의사였다. 그는 주관이 뚜렷하고 권위에 굴복하지 않으며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었다. 베쑨의 어머니는 언젠가 자기 자식이 위대한 일을 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분이었다.(30P)


"내버려두세요. 저렇게 운명에 맡기고 이것저것 시도해가노라면 자기 나름의 방식을 익히게 될 테니까요."(33p)

=>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떻게 믿어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놀이에서 창의적으로 구현해 내면서 자신의 길을 알아간다. 부모는 ‘아이는 나의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몸만 나를 통해서 왔지, 아이의 영혼은 자신이 갈 길을 알기에 존중해주고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의 참된 역할이라 하겠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복음주의자적인 기질을 물려받았고, 아버지로부터는 행동파적인 기질을 물려받았다." 그는 이러한 고학시절에 도안과 회화와 조각에 대한 열정도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는 길고 힘센 손을 가졌는데, 그이 자신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35p)

=> 노먼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외경심을 가졌다. 아는 것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두 손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자신의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는 기질도 가졌다.


그는 캐나다군 제1사단 야전병원의 들것 운반병으로서 프랑스로 떠났다.…"잔인한 학살의 광경에 나는 오싹거리고 있네. 과연 이런 행위들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기 짝이 없네. 의무대에 배속되고 나서 내가 본 것은 전쟁의 영광이 아니라 전쟁의 황폐뿐이네."(36p)

=> 정치인들의 이념 아래 죄 없는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목도한다. 전쟁의 영광은 정치인들이며,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젊은이는 나의 가족이며 이웃이다. 소중한 생명들이 무엇을 위해 죽어가고 있었는지...


당시 베쑨은 다음과 같은, 저 유명한 페이터의 격언에 철저히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경험이란 그 열매가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다. 늘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바로 이것인 것이다."(39p)

=> 남편에게 책장을 사야 되겠다고 했다. ‘책장을 사려 하지 말고 안보는 책들을 비우면 되지’. 봄맞이 대청소를 한달은 해야겠다.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를 껴안고 살았던가. 사람만 빼고 모두 쓸데없는 잡동사니라니. 그러면서 돈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뭔가를 사기 위해,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서가 아닌 인생에서 경험하기 위해서 돈을 사용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란 경험을 사기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현장은 나 자신을 실험해보는 장이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닌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함으로써 나 자신의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 인생의 죄는 3무三無에서 온다고 했다. ‘무능력, 무지, 무관심’. 능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배우면 모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전환하면서 진화하겠지.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삶. 이웃과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나의 업이 사회속에서 녹아드는 삶을 살아야 겠지.


당시의 생각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전쟁의 경험은 그에게 인생이란 값싼 것이고 죽음이란 불현듯 닥쳐오는 것이며 따라서 인생의 모든 것을 맛볼 시간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39~40p)

=> 딸을 키우면서 느낀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시간이 다가온다. 살아있는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것. 남의 삶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프란시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때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나는 삶에 대해서는 죽음에 대해서나 아무런 목적도 갖지 못하면서 마치 불빛을 향해 날개를 퍼덕이며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그 주위를 무작정 돌고도는 한 마리의 나비와 같은 존재였소."(43p)

=> ‘필요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다. 노먼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았기에 진정한 삶의 의미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휑뎅그렁한 병원에서, 베쑨은 토론토, 런던, 빈, 베를린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한 가지 교훈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료행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 의료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45p)

=> 가난한 사람들은 위생시설이 좋지 않고, 못 먹고 일만 하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 돈이 없기에 병원 갈 돈도 없다.


게다가 매춘부들의 경우,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도대체 뭐지? 그들의 경우, 진짜 문제는 병에 걸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매춘부라는 사실 자체에 있거든"(47p)

=> 병의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치료하고 나서도 다시 매춘을 반복하니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봤다.


돈이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는 자신이 벌 수 있는 만큼 악착같이 벌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가지고 빈민가에 있는 그의 처음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평화감 그리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빛바랜 이상을 다시금 맛보는 것이었다. (49p)

=> 자신이 누군가에 도움이 된다는 마음. 함께 나누는 마음은 나 뿐만 아니라 서로를 살려주는 길이다.


"알고 지내는 의사들 중에는 중세의 이발사 자격밖에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그 가운데 반은 카운터나 보아야 할 작자들이지. 그 나머지 반에게도 그들이 장사꾼이 아니라 의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은 심정이야.(50p)

=> 의사라는 직업이 공부도 많이 하고 임상도 많이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딸아이가 여섯 살 때 한 병원을 찾았다. 부모인 내가 보기에 분명 장염이었다. 나는 의사에게 장염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의사는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화 이상이라고 하면서 약을 처방했다. 그날이 토요일 오전이었고, 토요일 오후, 일요일 하루 종일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하고 설사를 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다른 병원으로 갔다. 의사에게 야단을 맞았다. 아이가 이렇게 되도록 놔두었냐는 것이다. 장염이라는 것이다. 토요일에 만난 의사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말 한마디, 오진으로 인해 어린 생명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 전문의의 무지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 특히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들은 자신의 말과 두 손이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의사들 가운데 일부는 지독히 권위적인 사람들이야. 그들은 일반인들이 모두 저 요정 이야기와도 같이 자기들의 무오류성과 헌신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하거든. 그들은 비판을 당하면 견디지를 못해. 그들은 자기들이 절대로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남들이 생각하기를 바래. 그뿐이 아니지. 그들 가운데 또 일부는 실제로 자기들에게는 결코 잘못이 있을 수 없다고 스스로 믿는 모양이니까. 말하자면 겉만 멀쩡하게 고쳐주면 임무 끝이라는 게 그들의 신조인 셈이지. 그들한테는 비로 그 겉모습만이 전부란 말일세. 빈민가 사람들은 의사가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어. 내 수입도 이젠 전보다 몇 배나 되지. 다른 사람들이야 물론 그 점에서는 나보다도 여러 수 위지만, 말하자면 한푼도 받지 않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면 그것은 실패가 되고, 만약 어떤 부인한테는 운동만 좀 하면 될 증세에 대해 강장제 한 첩을 조제해주고 그 약값을 엄청나게 받았다면 그것이 성공이 된다는 말일세."(50~51p)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사회복귀를 위해 아무런 대비가 없는 환자들에게 직업적, 정신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당시 베쑨의 이 계획은 결국 유토피아적 꿈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계획은 그로부터 10년 후 그 실현을 보게 되었다.( 트뤼도의 의무과장 부인인 F.H. 하이제 부인에 의하면 트뤼도 요앙소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된 데에는 베쑨의 선구적 노력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71p)

=> ‘상상하라 그러면 이루어지리라.‘ 그 당시에는 획기적이고 실현불가능하다는 것들은 후대에 인간의 상상으로 이루어 내는 경우들이 많다. 인간의 상상은 무궁무진하다. 사회복귀를 위해 프로그램을 마련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베쑨자신의 결핵으로 받은 경험을 토대로 했으니 반드시 실현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입안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에도 아주 열성적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사회복귀를 위해서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탐욕스럽게 책들을 뒤적이면서 기흉치료에 대한 자신의 임상 반응을 계속 기록하면서 결핵 치료를 위한 외과술을 깊이 연구했다. 또한 그는 옛 친구들에게 계속 편지를 하는 한편, 이 요양소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옥덴 밀스 간호학교에서 생리학 및 해부학 강의를 맡았다. (72p)

=> 다시 소생한 삶. 생명을 다시 한번 얻었으니 얼마나 그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을까. 죽음이 그에게 새로운 선물을 줬다. 결핵에 걸린 베쑨 자신을 실험해가며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집념이 강했으리라.


그는 떠나고 있었다. 그는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는 저승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행운아였다. …그는 이 트뤼도에서 다시 한번 생명을 되찾았던 것이다. 디트로이트……그것은 이제 그에게 아주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도시였다. 그가 좌절했던 이유는 환멸스러운 현실을 조롱하면서도 그 화려함과 부에 대해 스스로 집착했기 때문이다. (73p)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73p)


=> 단순한 직업인 의사에서 몸을 살리고 꿈을 살리고 그 꿈을 실현시키는 제 2의 삶이 시작되었다. 칼도 도둑이 쥐면 사람을 위협하고 죽이지만,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쥐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가 되나니. 부모로부터 받은 몸, 우주로부터 받은 영혼이 있는 몸을 의사라는 사람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니.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직업인 의사.


그는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새로운 믿음과 삶에 대한 긍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사도신경>의 형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적어가지 시작했다.


전능하사 미국에 요양소를 만드셔서 결핵 환자들을 구해주신 트뤼도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인공 기흉을 믿사오니, 이는 카슨(Carson)의 창안과 폴라니니(Forlanini)의 수고롤 내어나셨으나. 시건방진 오만과 편견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그 환자들을 죽여 장사지낸 비뚤어진 사람들한테 비난을 받으셨도다. 그러나 이제 수천의 사람들이 제3기라 할지라도 그 덕분으로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게 되었나니, 그들은 이제 하늘에 오르사 불멸의 의학인들의 반열에 드셔서 우리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오른쪽에 앉으셨도다. 거기에서 그들은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한 결핵 의사들과 그렇지 못한 결핵 의사들을 심판하시리라. 보딩턴과 브레머, 머피와 르리드리히, 빌름스, 자우어브르호, 슈투에르츠, 야코바에우스를 믿사오며, 허탈요법을 행하지 않은 죄악이 용서받지 못할 죄임을 믿사오며, 환자가 다시 건강한 몸으로 회복될 것을 믿사오며, 결핵 환자들이 조심만 잘하면 영원히 살아갈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그는 이렇게 쓰기를 마치고, 자리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차창을 스쳐가는 바깥 풍경을 다시 한번 바라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기차와 같다고 생각했다. 출발할 때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있는 김을 다 내뿜으며 최고 속도를 달려가는 기차 말이다. (74~75p)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베쑨의 서재.jpg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베쑨의 서재


=> 최고 속도로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 실천하는 베쑨이 다시 태어난다. 삶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맞아 이제는 무엇이 의미있는 삶인지를 알고 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모든 일에는 다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미친 듯한 추구와 환멸 그리고 발병과 소생, 이 모든 일에는 다 목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모든 일들이 그를 형성시키고 그를 인도했다. 그의 나이는 이제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다. (83p)

=> 세상에 의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판단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일어난 일은 좋고 나쁜 것은 없다고 했다.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기에 삶의 행, 불행이 일어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베쑨은 발명자이자 혁신자로 급속이 변모하고 있었다. …기존의 지식은 과거의 창고였다. …그는 스스로의 책임하에서 첫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인공기흉장비를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또 발 펌프를 사용하여 흉강으로부터 유동물질을 뽑아내는 장치도 생각해냈다. …(당시 흉부회과 수술의 대가들에 의해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기구가 약 25종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기구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84p)

=> 직접 일에 부딪치면서 불편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고안해낸다. 베쑨의 창조력은 일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수술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어내게 했다.


어느 날 아취볼드가 흉곽성형 수술을 하는 동안 베쑨은 늑골 견인기(retractor: 상처를 벌리는 기구)를 붙잡고 씨름을 해야 했다. 그는 수술이 끝나자 이 방법이 대단히 원시적이라고 생각하여 그 후 몇 주 동안 개선책을 궁리하느라 끙끙거렸다. 그 결과 그는 기계팔을 고안해냈다. 이 기계팔은 어떠한 수술대에도 아주 손쉽게 부착될 수 있었고 사람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수 한 사람의 일손을 덜수 있었다. 그는 이 새로운 장비를 '철완의 인턴(the Iron Intern)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그 후 계속 이 기계팔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장비에 대한 설명을 <캐나다 의학회보>1936년 12월호에 발표했다.)

그는 수술의 대가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수술기구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라든가 신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다고 있는 의사들에 대해서는 깊은 경멸감을 느꼈다. 그의 지적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유사流砂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85p)

=> 늘 생각하면서 일하기. 습관적이고 타성적이 아닌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기. 발명은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불편함을 어떻게 고칠수 있나’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수술에 임하는 의사라는 사람들이 자연과 세계 속에서 아무런 힌트나 해답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는 인명을 학살하는 일을 즉시 중지하고 도랑이나 청소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늘 확실한 지식 앞에서 겸손했다. 그러나 그의 성마름은 끊임없이 그에게 기술 혁신을 위한 여러 가지 착상을 던져주었다. (86p)

=> 같은 것을 보더라고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사고의 프레임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자연과 세계는 우리들에게 모든 암시와 힌트를 준다. 그것을 응용하고 못하고는 자신의 앎의 프레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탐구정신에 따라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을 때, 일부 의사들은 '현시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그가 기구상의 혁신에만 눈이 팔려 환자들에 대한 그 효과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 그는 자신의 횡경막 신경을 다시 묶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환자의 입장에서 횡경막 절개술의 효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 재수술을 행한 것은 횡경막 신경의 재생력을 관찰하기 위해서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횡경막 신경이 다시 재생되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88p)

=>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두 달 동안 걸어 보지 않고서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베쑨은 절박했다. 죽음을 맛본 베쑨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그가 한 이야기의 요점은 수술기구들이 20세기 기술발전의 성과를 알면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중세적인 고식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외과의 훌륭한 대가들이 고군분투 끝에 그것을 개혁시켜 왔지만, 아직도 종종 편견과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외과의사들이 산업발전을 너무나 도외시해왔기 때문에 그 성과들이 수술실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편견과 비전 결여와 무관심을 공격하면서, 기술진보에 기초하여 새롭게 접근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의 결론은 '수술실에서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90p)

=>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했음에도, 수술실에서 행해지는 의료행위와 기구들이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편견과 타성의 늪’은 인간을 퇴보하게 하며 갇혀있게 만든다.


'남편한테는 자신의 일이 있다. 남편은 우리 두 사람 사이가 나쁠 때도 그 일에 몰두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프란시스에게는 두 사람의 관계가 삶의 전부였다. 따라서 그 관계가 어그러지면 낙을 붙이고 살 데가 없었다. (92~93p)

=> 삶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삶이 다르다. 프란시스의 삶에는 남편이 전부였다. 상대방이 나의 전부일 때는 자신의 삶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나 자신도 뜻대로 안되는 판에, 어찌 남을 내 맘대로 할려는 생각 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가 ‘남편이 저렇게 열을 올리고 일을 하는데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는 시간이 나면 세상을 달구고 있는 뜨거운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또 가끔은 깊은 사색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93p)

=> 몰입과 집중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베쑨은 깊은 생각 끝에 노령이긴 하지만 결핵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진기한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환자의 가슴을 감염부위까지 절개한 다음, 고름을 빼내기 위해 그 환부를 9일 동안이나 계속 열어두었다. 그리고 열흘 째 되는 날, 시험관에 들어 있던 산 구더기들을 그 환부에다 직접 투입시켰다. 환부는 다시 가는 철망으로 안전하게 덮여졌고, 구더기들이 환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철망 위에다 전등을 설치했다. 이 치료법은 암브로이스 파에(Ambrose Pare:1509~90) 이래 사용된 것인데, 그동안 거의 무시되어온 방법이었다. 이것은 관리 소홀로 재발된 환부에 구더기들을 넣으면 환부가 치유된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었다. 실험실에서의 실험 결과로 구더기들이 감염 세균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상처에 구더기를 투입시킨 베쑨은 이제 조용히 그 결과를 기다렸다. … 베쑨은 이 방법을 이 후에도 여러 차례 사용했는데, 그는 이 사실을 1935년 3월 <캐나다 의회학보>와 <흉부외과학회보>에 발표했다. (97p)


=> 환자를 살리는 일이라면 그 동안 도외시되었던 방법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다. 가만 놔두고 지켜보면 악화만 될뿐,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보는 실험정신을 가졌다. 자신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침대에서 죽기만 기다리느니, 새로운 인공 기흉술이 나왔다 하니 이왕 죽을 몸 실험해보는 것. 이미 베쑨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이 무렵 베쑨의 생활은 일과 성취 그리고 성장과 안정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또다시 기질 때문에 윗사람과 충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대로 자유롭게 실천하면서 그 누구와도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었다. (97~98p)


=>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삶은 자유롭다. 바람처럼 걸림이 없이 생각한 것을 바로 시도해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무언가 크게 잘못돼 있어. 치료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는데도 입원 환자의 수는 오히려 더 많아지니……. 결핵 치료법에 대한 과학지식이 그 최고점에 달해 있는 바로 이 순간, 결핵의 발생률도 마찬가지로 최고라니, 이거 원…….(98p)


=> 치료 능력이 향상되었는데도 환자 수는 더 많아지는 것. 21세기 현대사회, 물질은 풍부하고 부족함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면서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상만을 보고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현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조기 기흉술을 계속 주장하면서도 이 의문을 가지고 씨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질문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또 하나의 질병은 균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이고 중세의 콜레라보다도 훨씬 더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질병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가난이라는 질병이었다.

진지한 의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고, 그 역시 결핵이란 질병이 늘 가난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난이라는 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의사들이 환자 한 명을 고쳐내면, 가난이란 놈은 열 명의 새로운 환자들을 생산해냈다. 그는 이 이유를 계속 파고들었다. 그러자 대답은 전과 다르게 도처에 깔려 있었다. (100p)


베쑨은 세계가 갑자기 대중적 광증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했다. 밤이 낮 같았고, 낮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시오' 라는 것이 무책임한 각국 정부 대변인들이 국민들에게 하는 충고였다. 그러나 지구 전역의 실업자 수가 4천만 명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그러한 통계작업도 중단해버렸다. 그들은 지금의 사태가 단지 과잉생산의 결과일 뿐이라 말했지만, 그 어디에도 민중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세계 전역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 덩어리였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헐벗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목화밭들을 뒤엎어버렸고, 수천만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수확한 밀을 태워버렸다. 길모퉁이에서마다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동전 한닢을 구걸하고 있었지만, 브라질에서는 생산된 커피를 바다에다 무더기로 쓸어 넣었다. 몬트리올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는 어린이들이 구루병으로 앙가발이가 되고 있었지만, 남부에선 오렌지들을 짓밟아버렸다. 사태가 이러하자, 캐나다 의학회 회장은 치료비를 지불한 능력이 없는 대다수 시민을 위해, 그리고 치료비를 받지 않고서는 환자를 치료할 여유가 없는 의사들을 위해, "의료제도에 일대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사와 국민 모두가 커다란 불행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01p)


=> 가난이 한 개인이 게으르고 일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관점에서 보면 근본원인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캐나다는 벌써 의료제도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었다.


"부자들의 결핵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결핵이 있다. 부자들은 회복되지만 가난뱅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경제학과 병리학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을 결핵에 걸리게 하는 여러 조건들이 확산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런 환경 속에서 계속 산다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102p)


=> 부자들은 돈이 있어 치료를 받아서 회복되지만 가난한 자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 돈은 사막에 꽃을 피운다. 돈은 죽어가는 생명도 살린다. 돈은 사막이 되어가는 몽고에 나무를 심게 한다. 돈은 가난한 자에게 밥을 가져다 준다. 돈 때문에 세상은 전쟁을 한다. 돈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도 돈의 원리로 움직인다. 심지어 죽음도 삶으로 되살리는 것, 돈은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도구다.


"앞으로 5년 동안 요양소들을 가득 채우게 될 결핵 환자들이 지금 당장 손을 쓰면 치료가 가능한데도 그 상태 그대로 거리를 활보하며 책상머리에서 일하고 있다.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와 사회학자가 만나는 공통적 기반인 것이다."

그는 씁쓸한 감정으로 자신이 지금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경제학이나 사회학에 대해서 그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거의 대부분 외과의사가 되는 일에만 소비한 사람이었다. 외과의사로서 그는 인체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라고 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골칫덩어리에 대해서는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우리 의사들은 감염과 재감염의 소인이 되는 외부환경에 대해 아무런 작용도 가할 수 없다. 가난과 조악한 음식, 비위생적 주위환경과 감염원에의 노출, 과로와 정신적 긴장 등 모두가 우리의 통제권 밖에 위치한다. 이들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근본적인 수정은 경제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과제이다. "(이 글은 후에 <캐나다 의학회보>에 발표되었다. )(103p)

=> 세상이 경제와 맞물려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이던가.


"여성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노예생활에 시달려왔다. 나는 여성적 마음을 계속 '설명'하고자 하는 자들을 보면 아주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여성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것은 비인간적 조건들 하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른바 여성적 심성을 떠들어대는 신화들은 여성을 계속 예속시키고자 하는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다."(106~107p)


=> 여성 남성을 떠나서 모두 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성 남성 분류해서 무슨 덕을 보겠다고. 세상에는 세 가지 성性이 있다고 한다. 여성, 남성, 어머니. 어머니는 여성이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을, 자식들에 대한 헌신이 바로 어머니의 현명한 인물상이라고, 이런 식의 미화가 통하는 세상이다.


"우리 의사들은 수도승과도 같아야 하오. 그렇소. 헐벗은 옷차림에 샌들을 신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수도승 같아야 한단 말이오. 우리의 목적은 인체를 보호하고 소생시키는 것이오. 그것은 신성한 일이오. 따라서 우리의 자세도 신성한 목적에 맞게 치열하지 않으면 안되오."(108p)


=> 수도승, 자신을 절제하는 삶.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 몸을 바치듯이 의사 또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고 베쑨은 생각했다.


"의사라는 직업이 의학지식만 가지고 일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그려……"

그는 생명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두 손과 가슴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생명을 되찾게 해준 모든 것들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소망이 한 조각의 어리석은 감상주의로 평가되고 생명이 현금 몇 달러와 동일시되는 이 세상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질시의 눈초리로부터 꼭꼭 숨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이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그가 병으로 몸이 망가져서 병원으로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에게 보호자이자 아버지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병원 바깥에서는 곧잘 으르렁거리는 사나이였다. 그러나 환자들 앞에서는 미소를 짓는 다정한 의사였다. 그는 병원 바깥에서는 세상이 돌아가는 꼴에 조소 어린 표정을 짓는 사나이였다. 그러나 병원에 들어서면 죽음을 앞두고 사소한 인간적 애정에 목말라하는 젊은 여자 환자에게 키스를 할 줄 아는 친절한 의사였다. 그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비춰지는 불 같은 사나이였으나 환자를 대할 때의 표정은 늘 부드러운 의사의 얼굴이었다. (109p)


1933년 몬트리올 빅토리아 병원에서 수술 중인 베쑨.jpg

1933년 몬트리올 빅토리아 병원에서 수술중인 베쑨


=> 환자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베쑨에게서 고승의 모습을 보았다. 의사라는 직업이 의학지식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심정을 먼저 헤아리는 것을 베쑨은 현장에서 실천했다.


그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환자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구해내고자 했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었던 것이다. …

"그들이 죽어나갈 땐 나의 일부까지도 그들과 함께 죽어나가는 기분이오…….(110p)


=> 삶과 죽음을 몸소 겪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2012년 말 황수관 박사도 별세했다. 그가 생전에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죽음을 매일 보기에 살아있는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건강의 권리' 이것이 무시되고 있단 말이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의료 서비스를 가게에서 통조림을 사듯 구입하는 것이라오. 몇 달러 몇 센트를 주면서 말이오. 병원이라는 것들이 그런 장사를 하면서도 거들먹거리는 거야. 그러니 양복점하고 다를 게 뭐가 있겠소? 재봉사가 헌 코트를 수선해주는 식으로 우리 의사들도 팔다리를 수선해주고 있을 뿐이지. 이것은 분명 본래의 정신에 맞게 의학을 실천한다고 볼 수가 없소. 그저 장사를 하고 있을 뿐이오. 따라서 의료개념, 보편적 보건개념, 새로운 의사개념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오."(112p)


전에 그는 의술이 발전되면 결핵이 퇴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의술이 발전되었다 할지라고 의사들이 그 발전된 의술을 가지고 민중들한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의사들의 지금 형태는 어떠한가?


"우리는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오! 우리는 민중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오. 앞으로는 더 이상 사적인 치료에만 매달려서는 안되오! 우리 의사들이 의료제도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오. 저 창 밖을 보시오. 저 거리에 있는 집들을 보시오. 저기가 바로 우리 의사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오. 모든 집마다, 모든 도시마다, 모든 마을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하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우리 의사들이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되오. 우리가 발전된 의술을 가지고 마지막 환자한테까지 찾아가지 않으면서 결핵의 완전 퇴치를 바란다면, 그것은 한낱 헛된 꿈일 뿐이오. 우리는 환자들이 돈을 싸가지고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다려서는 안되오. 우리가 먼저 병에 걸리기 전에 그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결핵에 걸리지 않는지를 미리 알려 주지 않으면 안되오. 그리고 만약 병들어 있다면 신속히 그것을 퇴치해주어야 하오. 이집에서 저 집으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우리가 직접 찾아다니며 말이오."

"'우리' '우리' 하시는데 그 '우리 의사'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거죠?"

"우선 나 그리고 나와 함께 행동할 의사들이오. 의사의 의무가 스스로 질병의 뿌리까지 찾아가는 것이라고 믿는 의사들 말이오."(113p)


=>환자가 아파서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환자를 찾아다니는 의사가 돼야 한다고 선각적인 생각을 했다. 권위적인 의사가 아니라 민중들 속으로 대중 속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겠다고 이때부터 베쑨은 대중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의 공책과 일기장에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적혀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나쁜 면'이 다시 정상으로 복귀했다. 한동안 그것을 잊고 살아왔는데, 그러나 이것은 역시 바람직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다시는 헛된 구렁텅이에서 인생을 소모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대답은 이론에서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에서 내려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저 학술적 사실들을 주워모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경우가 다르다. 그들 대다수가 건강에 대한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마자도 잊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친구들과 '공짜' 환자들은 그들의 자연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들의 자세에는 참으로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지만, 어두운 회의실에서 경찰의 곤봉을 각오하면서 풍요로운 내일의 꿈을 설계한다. 물론 가끔은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그들의 모난 이론에 동의할 수 없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그들의 결핍과 박탈과 동지애에서 나오는 그 흥분과 열성은 나의 바람,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내게 새로운 명예학위를 수여해주었다. 따라서 나는 현재 의학박사에다 왕립 외과의사대학 교수, 그리고 '베쓰 동지' 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칭호인가. 나는 지금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길이 과연 나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120p)

=> 베쓰가 말한 현실참여와 실천이 그의 삶을 이끌어간다.


나는 파블로프와 개인면담을 하게 되었다네. 외모는 꼭 조지 버나드쇼를 연상시키는 사람이더군. 나로서는 파블로프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하네. 그는 질병의 기본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보여주었네. 아니 그는 오히려 질병이란 본래의 의미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사실, 즉 그것은 주변환경에 대한 인체의 반응이라는 사실을 새로운 증거로 입증해주었다고 생각하네. 반사작용은 물론, 혈구와 같은 우리의 생체조직이 모두 다 그렇다는 말일세. (121p)


휴식공간과 회복 공간 그리고 완전한 요양소 등은 일찍이 그가 접해본 것들 가운데 설비가 가장 좋은 편이었고, 또 산업노동자들이 의료혜택에 있어서 가장 우선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들의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진료소와 요양소에서의 모든 치료비는 무료였고, 또 이것은 자선의 문제로 실시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헌법적 권리로서 행해졌다. 그리고 유아들에 대한 투베르쿨린 반응검사도 법정 예방과목으로 실시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고국에서 전부터 주장해오던 사항이었다. (122p)


소련은 현재(1935년) '과학과 연구'라는 단단한 바위 위에다 거대한 건물을 짓고 있으며, 오늘의 과학이 어제의 연구이며 오늘의 연구가 내일의 과학이라는 사실을 소련 국민들처럼 충분히 깨닫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극찬했다.(123p)


진실이란 종종 서로 명백히 상충된 현실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124p)


러시아에 들어갈 대 "여기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이여,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든 기성 관념을 완전히 포기하시오."라는 말이 보이기도 하더군요.(125p)


창조란 잘난 척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라는 것이 그렇게 이루어진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습니다. 창조란 거칠고 격렬하고 혁명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한한 미래를 믿으면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신성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용감한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지금 종교개혁이래 이 지구상에 일어났던 인간의 발전적이고 창조적이고 영웅적인 정신 가운데 가장 열광할 만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으로서 인간에 대한 궁극적 배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128p)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실현해내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의 미래을 믿고 자신을 신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창조란 이루어지는 것이다.


프리츠 브란트너(Fritz Brandtner)는 빈에 있을 때 미술교육에 대한 진보적 이론의 창시자인 닥터 시체크(Cizek) 밑에서 한동안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베쑨은 아동미술학교 창설안을 내놓았다. 브란트너가, 베쑨을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던 문제, 즉 의사이자 개혁가인 그가 이 도시의 어두운 거리에서 자라고 있는 아동들에게 무슨 일을 해줄 수 없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 수업료는 물론 일체의 비용을 무료로 할 생각이었고, 그의 집을 학교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또 원하는 아동들을 다 환영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개인적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규모가 커지게 되면 독지가들의 기부금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는 베쑨은 혼자서 일체의 비용을 대겠다는 생각이었다.

몬트리올 아동미술학교(the Children's Art School of Montreal)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것은 캐나다에서는 처음 시도된 일이었는데, 빈민가의 아동들에게 예술의 기쁨과 창의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131p)


=> 그림과 음악 문학 등 예술은 인간의 심성과 삶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다"

- 미국의 희망의 수업을 퍼뜨린 얼 쇼리스-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빵이 없고 밥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중산층이 누리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삶.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지에 대한 자각과 해결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인문학적인 고전을 읽고 실천하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쓰레기와 마약과 총 대신에 손에 악기를 쥐어 주고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아이들을 보호하고, 삶의 기쁨과 희망, 공동체적인 관계 맺기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이자 인간적 삶을 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음악 교육 프로그램으로 영어로 system을 의미하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에서 따왔다.

1975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라는 한 이상주의자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궁핍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카라카스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마치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실화를 만들어냈다. 11명으로 시작한 악단은 현재 베네수엘라 전역에 30여만명이 넘는다.


엘시스테마33.jpg 엘시스테마22.jpg


클래식계의 젊은 거장으로 꼽히는 LA 필하모닉의 최연소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단원 연주장면



그는 마침내 현실세계에서 자기 자식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아이들 가운데 두 명은 후에 프랑스정부가 후원하는 국제미술제에서 일등상과 삼등상을 타게 되었다. )그가 무한한 행복을 느낄 때도 그림을 그릴 때였다. 그림은 그에게 휴식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의력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은 대담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의 조각도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몬트리올의 미술비평가들은 그가 1935년 가을 어느 한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한결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30p)


외과의사는 자신의 매체, 즉 인체라는 매체의 엄격하고도 무정한 법칙들 대문에, 돌이나 나무나 금속을 매체로 하는 동료 장인들의 자유를 아주 조금밖에 누리지 못하고 있다. … 우리 외과의사들에게도 창조적인 예술정신이 존재한다.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창조력은 하나의 통로로 한정되어 단지 하나의 탈출구만이 허용된다. 현대적 마취술은 이 장인이 과거의 졸속한 방법에서 벗어나 오늘날처럼 보다 여유 있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주었다. 현대의 수술기법은 새로운 여유를 통해 그리고 새로운 정밀성을 통해 수술자의 예술적 감수성을 허용해주고 또 그것을 고무시켜준다. 오늘날의 이른바 '수술기법'은 이러한 예술적 욕구와 그 충족을 크게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1932년 9월 아메리카 결핵학회보)(130~131p)


캐나다 의학사에 기록될 새로운 것, 즉 몬트리올 국민보건그룹이라는 단체가 생겨났다. … 아동미술학교가 가난한 아동들의 능력개발을 목적으로 했듯이, 이 새로운 조직 역시 의료혜택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 1936년 7월 베쑨은 정부 관리들과 예비회담을 마친 후에 이 그룹은 퀘벡 지방에 거주하는 수십만 환자들의 실태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국민의 건강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뿌리만 내리면 국민건강이 보호될 수 있다는 선언서를 베쑨의 서명으로 발표했다. 또 이선언문을 통해 국민 보건 상황을 즉각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몇 가지 실제적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제안들 가운데는 모든 임금 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계획, 자치 단체 소속의 특별병원으로부터 의사, 간호원, 치과의사들을 차출하여 국민보건팀을 구성할 것, 실업자들의 경우는 500개 지역으로 분류하여 지역의 의사들에게 정부 보조금으로 무료로 할당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32p)


국민의 건강이란 의사 개개인의 개인적 운명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다음은 베쑨의 연설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의료경제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분야 에서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의료제도를 사회구조의 일부로 자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역시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회구조는 그 나름의 경제적 기초를 갖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경제적 기초는 개인주의와 경쟁 그리고 사적 이윤에 기초한 자본주의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체제는 지금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병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긴급한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이 중병을 일시적 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지금 대다수의 엉터리 정치꾼들이 제시하고 있는 임시변통적 조치들은 매독성 두통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알약들은 고통은 덜어줄지 모르지만, 결코 그 두통 자체를 치료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134p)


의료사업 역시 이 사적 이윤에 기초한 독점자본주의체제하에서 그 거개가 아직 느슨한 조직을 가진 전형적인 개인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사업 역시 자본주의세계의 위기에 따라 필연적으로 똑같은 고난을 겪데 될 것입니다. 또한 그에 따라 불행한 현상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과학적 풍요 속에서의 건강의 빈곤'이라고나 할까요. 전체 소비량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커피를 태워버리고 돼지를 죽여 버리고 밀이나 목화를 심지 않는 농부들에게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류업자들이 그들의 판매량보다 훨씬 더 큰 생산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료분야에서도 그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병에 걸려 있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어린 나이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매력의 부재현상은 불평등한 분배문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의료경제의 문제는 세계경제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의료사업은 사치성 장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빵을 팔면서 보석의 값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반이 가난으로 빵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굶어죽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민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우리 의사들은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문제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135p)


이 나라에는 경제적으로 분류할 때 크게 세 부류가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안락그룹이며, 그 둘재는 중간그룹이며, 그 셋째는 빈곤그룹입니다. 이 세 번째 그룹의 상층에는 불안정 속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하층에는 생존선상에서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는 다수의 빈민들이 존재합니다. … 첫째 치료비를 지급할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무지 때문이며, 셋재는 무관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이유는 의료공급의 부족현상입니다. … (136p)


전문의가 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신장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의학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은 그저 보수가 좋은 일들에만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136p)


빈민그룹의 경우가 다른 그룹들보다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국민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질병을 재생산하는 경제체제 자체를 변혁시킴으로써 무지와 빈곤과 실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 (136p)


사회의 각 부문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사적 건강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건강문제가 다 공적인 것입니다. … 국민 보건이라는 문제는 정부의 주요한 책임이자 의무로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137p)


우리의 직업을 탐욕스러운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듭시다. 가난한 이웃들의 희생 위에서 우리 자신을 살찌우는 행위는 수치스럽게 생각합시다. (137p)

국민들에게 "당신 지금 치료비를 낼 돈이 얼마나 있소?"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겠소?"라고 묻도록 합시다.

제가 말하는 사회주의 의료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보건이라는 것이 우편, 국가방위, 사법, 교육 등과 같이 공공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둘째, 국민보건을 위해 공공기금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의료보호헤택이 소득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만인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선이 아닌 정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선이란 기부자들을 기자기 기만에 빠지도록 함과 동시에 수혜자들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넷째, 의료종사자들의 봉급과 연금은 국각가 책임져야 합니다. 다섯째, 의료종사자들 자신이 민주적 자치를 실시해야 합니다. (138p)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반대자들이 강조하는 주요 반대이유는 다음의 세가지 입니다. 첫째, 창의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아마도 인간 당나귀들은 이 현대적 야만상태 속에서 당근이 코앞에서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만, 그 당근이 반드시 황금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명예의 꽃다발도 그 역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관료주의화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밑에서 꼭대기까지의 민주적 조직 통제에 의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환자 자신이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가공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환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99%의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이지 의사의 개성이 아닙니다.

우리 의료계는 이제 개인적인 선입견을 벗어버리고 건강과 경제력의 불가분한 관계를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이스클레피오스(aesculapius: 의약과 의술의 신)는 과거의 풍격과 과거의 장면을 그 무릎 아래로 흘려보내면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세계적 대세의 거대한 물결과 움직임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 국민의 건강보장을 방해하는 자들은 우리 의료계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존재합니다. (139p)


오늘날 우리 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의료계 내의 두 세력 간의 적대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중요한 것은 우리 의사들이 전통적 기득권과 우리 의사들의 사유재산과 우리 의사의 건강 분배의 독접권 등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보건이라는 것이 의사의 지위유지보다 더욱 중대한 문제이며 직업적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보건 문제를 우리 의사들의 주요 의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세익스피어 <헨리 4세>에 나오는 주인공의 다음과 같은 외침이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그 생생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베조니아의 왕이여, 그 밑에 복종하든지 죽어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바라오!"(140p)


"내 목적이 새로운 것이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은 실천적인 문제라 확신합니다."(141p)


그들은 가난한 집들을 찾아다니며 돈이 없다고 하면 아예 한푼도 안 받으며 건강이란 부자들만의 권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이기도 하다고 어디에서나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유명한 의사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143p)


=> 베쑨이 생각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삶을 그려가고 있다.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환자를 찾아가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의 아이는 무사합니다. 아주 아름다운 수술이었답니다. 지독한 순간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수술을 마치고 나니 그지없이 행복합니다. 오른쪽 폐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열 살 박이 아이에게 이런 수술을 행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멋진 일 아닙니까?

오늘 밤에는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습니다. 지난밤에는 한잠도 못 잤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하느라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무사하니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150p)

=> 생명을 살린 후의 안도감으로 베쑨은 행복해한다. 자신으로 인해 미래가 창창한 아이 생명을 구했다는 것이 얼마나 베쑨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했을까.


이제 마흔여섯이었다. 그리고 외과의사로서 일할 세월이 그렇게 많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서른아홉의 나이가 되어서야 흉부외과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 지금 캐나다와 미국에서 흉부외과를 개업하고 있는 많은 의사들은 그의 밑에서 공부하면서 그의 기술을 지켜보고 그가 직접 고안한 기구들을 쓰고 있었다. 그는 선발되기 어려운 아메리카 흉부외과학회협의회 정식위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스페인으로 간다는 것은 이 모든 직함 그리고 아마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약속된 앞날까지도 다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다 큰 대의를 위해서는 개인적 진로를 어느 지점에서 버려야 하는가?' 하고 그는 자문해 보았다. (151~152p)

=>보다 큰 대의라는 것이 무엇일까? 베쑨이 열망했던 삶. 명예, 부를 뒤로 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어디든지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


"노예의 아내로 사느니 차라리 영웅의 미망인이 되겠노라." … 37일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 도시는 시민 전체가 그 방위를 위해 싸워왔다. … "무릎을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주장이었다. (158~159p)


헌혈자의 정맥에서 뽑아낸, 점착력이 강해서 찐득찐득한 그 액체는 2천 년에 걸쳐서 축적되어온 지식과 경험과 희생과 염원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되살리는 신비한 물질이었다. (165p)


전쟁터란 옛날부터 모두들 사람들을 죽이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상 최초로 한 사나이가 이 스페인의 전장터에 나타나 인류의 상식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피를 뿌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를 채워주기 위해서 전장터에 나타났던 것이다. (168p)


"만약 당신을 그 일을(수혈) 하게 된다면, 의학의 역사는 당신에 의해 또다시 바뀌게 될 것입니다." (174p)

=> 수혈을 실시함으로써 베쑨은 스페인 전쟁 중에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살려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베쑨이 만든 이동수혈대.jpg

스페인 전쟁 당시 베쑨이 만든 이동 수혈대


베쑨이 이 기나긴 혈액 이야기에 끼어든 것이 바로 이 지점에서였다. 아마 상황이, 의사이자 시이인요, 연구자이자 군인이요, 수술자이자 화가요, 과학자이자 몽상가인 이 사나이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생명의 교란자들에 대한 무서운 증오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사나이를 요구하였는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노먼 베쑨이라는 사나이가 혈액을 탐구하던 사람들이 중지한 바로 이 지점에서 그 탐구를 계속하게 되었노라고 기록될 것이었다. 익명의 의사, 랑두아, 데니스, 블런텔, 란트슈타이너, 이들의 길을 노면 베쑨도 이어갈 것이었다. (183p)


항구 자체는 생각도 못하고 파시즘을 거부하지도 못하며 피도 흘릴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사람들만이 두뇌와 심장과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죽여라,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어라. 그들에게 파시즘의 무자비한 발톱을 맛보여주어라.’(211p)


'그렇다. 여인들과 아이들을 살해한 그 사악한 살인자 무리에게는 죽음의 천벌이 내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능글맞은 무관심으로 수수방관한 자들에게는 비난과 저주가 내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무덤들이 언젠가는 자기들까지도 집어심키리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사악한 무리들의 만행을 아직도 그대로 지켜만 보고 있는 모든 대륙의 미혹한 사람들에게는 동정과 경고가 내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를 가도 저는 그곳에서 병자를 치료하겠습니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전에 나는 다른 많은 의사들과 마찬가지고 얼마나 건성으로 외어댔단 말인가.‘ …

그는 이 알메리아의 체험을 통해 자신의 모든 단점과 허영을 떨쳐버리고 자신을 강철 같은 군인으로 변모시키겠다고 맹세하게 되었다. 도로지 강철 같은 사람들만이 이제 막 탄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방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13p)


=> 스페인 전쟁에서 겪은 경험, 피난민들이 상처받고 죽어가는 광경을 통해 의사인 자신 베쑨의 역할을 다시 상기한다.


오로지 예술만이 요 몇 달 동안 계속 겪었던 죽음과 공포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에술이란 ‘경험의 합법적 적자’(the legitimate and recognizable child of experience)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을 해방시킨다. 그의 움직임은 자연스럽다. 그는 “자기 자신의 기질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그는 내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그는 스스로를 존중한다.

그는 깊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리바이어던처럼 장중한 모습으로 수면위로 나타난다. 삶에 대한 그의 욕구는 거대하다. 그는 인류의 삶 속으로, 모든 인간의 삶 속으로 열정을 가지고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그는 스스로가 만인이 된다. 예술가의 기능이란 현상을 타파하는 것이다. 그의 의무는 잠자는 사람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느긋하게 수수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세계의 기둥들을 뒤흔들어놓는 것이다. 그는 세계에 사악한 무리들을 상기시켜주고, 현재의 실상을 보여주며, 새로운 탄생의 길을 제시해준다. 그는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시대의 교사이다. 그가 한번 우리 곁을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동안 너무나도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현실들에 대해 갑자기 확신감을 잃게 된다. 그는 정적인 것, 기성의 것, 고여 있는 것들을 흔들어놓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세계 속에서, 그는 혁명이야말로 삶의 원리라고 설파한다. 그는 선동가이며, 평화의 교란자이다. 그는 이 역할을 신속하게, 성마르게, 적극적으로, 쉴새없이, 요란하게 수행한다. 그는 인간의 영혼을 대상으로 하여 일하는 창조적 정신인 것이다. (216~217p)


=>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전장에서 겪은 것을 말로 표현한다 하여 그것이 얼마나 전달될 것인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베쑨은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피카소가 스페인 전쟁을 소재로 그린 <게르니카>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까. 베트남 전쟁에서 불타는 반공호를 피해 한 소녀가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살기 위해 달리는 모습을 한 사진기자가 찍어서 전 세계에 알렸다. 전장의 실상을 알리는 것, 그것은 수백마디의 글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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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지르며 도로를 달리는 소녀.1972.6.8. 사진 현 콩 닉옷 (AP 사이공 사진기자)



저는 외과의사입니다. 저의 직업은 인간의 생명을, 그 모든 아름다움과 활력을 보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스페인에 가게 된 이유는 정치가들이 스페인을 배반하고 또 우리들까지도 그들의 배반에 동조하도록 기만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가들은 저마다 그 정도의 각기 다르지만 민주주의 스페인이 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스페인이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신념이자 지금의 확신입니다. “(220p)


분명 프랑코의 봉기와 독일, 이탈리아의 침입과 서유럽 열강의 이른바 ‘불간섭’ 이 낳은 결과였다. 그는 이렇게 계속했다.

“이것이 바로 ‘불간섭’이라는 미명 아래 전 세계가 한 나라의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참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그러한 몰염치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인류의 대의를 위해 스페인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스페인을 방위하기 위해 편성된 국제여단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캐니다 사람들도 천 명 이상이 맥켄지-파피노대대(.the Mackenzie-Papineau Bayttalion)를 편성하여 캐나다의 영예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의 도배장이와 이탈리아의 변절자 사이에서 태어난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사생아인 것입니다. (221~222p)

나는 살인과 부패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그 모순을 묵과하기를 거부하오. 나는 우리가 소극적인 탓에 또는 태만한 탓에 탐욕스런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소.…….

스페인이나 중국이나 모두 다 같은 투쟁의 일부인 것이오. 내가 중국으로 가려는 이유는 그곳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오. 또한 나의 능력이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오. (230p)


=>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 죽어가는 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는 곳, 베쑨의 정치적 신념과 뜻을 같이 하는 곳에 자신의 갈길을 정한다.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꾹 참으면서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재산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향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나기보다는 오히려 일본군 치하라 할지라고 재산과 함께 머무르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란 말인가!(245p)

=> 재산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 스쿠루지 영감이 떠오른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해 덫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원숭이.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옳지 않는 일이라도 동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는 이 공산당 지도자(모택동)가 문화적 소양이 깊은 사람이며 자신의 정치관을 피력할 때는 예리한 표형으로 그 정곡을 찌르는 시인이며 천만 가지 현상들을 아주 간단한 말로 녹일 줄 아는 대가다운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255p)

아까 닥터 마는 그에게 야전병원들에는 복부 관통상을 당한 부상병들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선에서 그러한 부상병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후방병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이미 사망해버린다는 의미였다. 요컨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견디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256p)


유격대원이란 무엇인가? 그는 한마디로 군복을 입은 노동자이다. 그는 보통의 소농이다. 그는 강인하고 거칠어서 곤경에 잘 견디며 오랫동안 굶거나 조금만 먹어도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날씨가 어떻든 간에 아무렇게나 입고 자라왔기 때문에, 그는 더위나 추위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는 사랑하는 조국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이 마을 저 마을을 거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듣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군의 비행기와 대포와 총검을 보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 이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라는 것도 그에게 설명된다. 또 모든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그에게 설명된다. 그는 동료 노동자들과 단결해야 된다는 것을 배운다. 그는 대중조직에 가입해서 읽고 쓰는 것을 배우고 있다. (265p)


브라운은 헤어지면서 의약품 공급에 최선의 협조를 다하겠다고 베쑨에게 약속했다. 브라운이 떠나게 되자, 섭 장군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부평현의 현장을 베쑨에게 보내주었다. 그의 이름은 동월천이었다. 그는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지고 품성이 좋아 보이는 젊은이였다. 그는 또 외교관의 천품을 타고났는지, 늘 얼굴에 웃음기가 서린 젊은이였다. 그의 영어는 아주 독창적이었고, 중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지식은 무한했으며, 베쑨에 대한 그의 존경심도 곧 무한해졌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일 주일도 채 안되어서 베쑨은 그를 ‘나의 분신(my otherself)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68p)


모택동 귀하.

귀하의 전신에 답신합니다.

첫째, 저는 매달 100달러를 제공하겠다는 귀하의 제의를 사양합니다. 저한테는 현재 돈이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음식, 의복 등이 지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돈이 만약 개인적으로 보내진 것이라면, 그 돈을 가지고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담배기금 같은 것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돈이 조금이라도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이곳 본부로부터 타 쓰겠으니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곳에서 제가 특별히 지출을 허락한 금액은 약 1,500달러입니다. 이 금액은 이곳의 병원을 진찰기 지구의 시범병원으로서 개축하는데 드는 자재비와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축작업이 끝나면, 매달 약 1천 달려면 운영이 가능합니다.

셋째,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5천 달러 상당의 의약품입니다. 북평에 가면 이 의약품의구입이 가능합니다.

넷째, 제가 재정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캐나다와 미국에서 송금되고 있는 금액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이상의 비용은 영구병원 건립이라는 보다 큰 사업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아마 이 영구병원의 건립을 위해서는 약 5만 달러가 필요할 것입니다. 영구병원에 대한 계획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당장의 과제는 눈앞에 있는 기존의 자재를 가지고 시범병원을 세우는 일입니다. (274p)

=>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오로지 개인의 이익보다는 다수를 위한 일, 병사들을 살리고 그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계획하고 행동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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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베쑨 어린 소년병을 치료중인 베쑨


"일하면서 배우자“라는 슬로건 하에서 그는 전에는 연안의 의학교에서 몇몇 소수의 사람들만이 배울 수 있었던 기본적인 의학지식을 요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강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 강의는 격일제로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 실시되었다. 의료요원들이 책상다리를 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는 해부, 상처 치료법, 생리학 등등에 대해 흑판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가며 강의했다.

이 의무적인 강의 프로그램 이외에도 그는 간호병들과 군의관들을 위해 병원 부속학교를 개설했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의 일까지 생각해서 이 학교에서 교습할 완전한 커리큘럼을 작성했다. 그리고 진찰기에는 그 어디에도 의학교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교재를 썼다. 이 교재는 수많은 그림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씌어진 것이었다. 그는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그 교재를 무서운 속도로 써나갔고, 그가 쓰는 대로 동이 중국어로 번역했다. 이 교재는 진찰기정부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게릴라전을 위한 세계 최초의 의학 핸드북이었던 것이다. 이 교재가 출판되자 그는 모택동에게 보내는 보고서 속에서 이 교재를 진찰기 지구의 모든 의료 종사자들에게 배부할 계획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만약 이 교재가 성공을 거둔다면, 저는 공중보건과 예방의학 등에 대한 소책자들도 시리즈로 집필할 생각입니다. 또한 200페이지 정도의 보다 더 자세하고 보다 더 기본적인 의학교재의 준비에 이미 착수한 상태인데, 두 달 수 정도면 집필이 끝날 예정입니다.

시간과의 싸움, 초인적인 활동, 돕고 창조하고 지도하는 기쁨 속에서 그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생각했다. (276p)


=>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부상병들 수술과 치료 후에 곧바로 요원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재를 쓰고 강의를 하는 그의 초인적인 열정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죽음이나 부상 따위가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작은 유형의 것이었다. …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공포감을 느낀다. 그들이나 나나 그 점은 다 마찬가지이다. 두려움을 패퇘시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바로 이해와 지식이다. 내 몸에서 피를 뽑아냈는데도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더 이상 헌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들은 환자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그 연관관계를 알게 되자, 몹시 부끄러워하든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에 대한 나의 분노는 수혈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처럼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중국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에게 모택동은 어떻게 말했던가?

“인민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먼저 그들의 학생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이 얼마나 올바른 지적인가? 보다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먼저 보다 좋은 학생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80p)


베쑨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켜고 타자기를 꺼낸 다음,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몸은 몹시 피곤하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내게 있었던가? 나는 지금 아주 대만족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매순간을 활기차게 일하는데다, 모두들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돈 같은 것은 지금 전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공산주의를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한다는 무한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공산주의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며, 무릎관절처럼 반사적이며, 허파의 운동처럼 무의식적이며, 심장의 박동처럼 자동적이다. 이들은 증오에 있어서도 집요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굉장히 포용적이다. 참으로 금욕적인 중국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은 바로 인류라는 계급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온갖 잔학행위를 겪었으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처절한 쓴맛을 보았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으며, 지독한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인내와 낙천적 태도와 조용한 지혜를 알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도 또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서, 섭의 걱정에 대해, 병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는 뜻밖의 각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286~287p)

=> 베쑨이 행복을 느끼는 장면이다. 비록 몸은 피곤할 지라도 맑은 그의 정신은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들을 위해 살아간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베쑨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여러분들과 우리는 모두 국제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우리를 서로 가르고 떼어놓는 민족, 피부빛, 언어, 국경 등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290p)


우리는 그 기술을 소수의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291p)


기술이란 일반적으로 원료처리술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그것은 일을 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에 의해 좌우되는 대신에 우리가 자연을 좌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룻바닥을 청소하는 기술, 병원을 조직하는 기술, 응급처치를 하는 기술, 수술을 하는 기술, 환자를 씻어주는 기술, 환자를 앉혀주는 기술, 환자를 편안하게 돌보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는 올바른 방법과 잘못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법을 ‘좋은 기술’이라고 하며, 잘못된 방법을 ‘나쁜 기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좋은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291p)


우리가 왜 좋은 기술을 배워야 하겠습니까? 의술에 있어서의 좋은 기술이란 보다 신속한 치료, 보다 적은 고통, 보다 적은 불편, 보다 적은 죽음. 보다 적은 질병, 보다 적은 불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바로 우리의 직무입니다. (292p)


"과연 우리는 힘이 자라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영국의 병원에서는 오래된 속담 하나가 곧잘 인용되곤 하는데, 그것은 의사란 사자의 심장과 숙녀의 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의사란 대담무쌍하고 강인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부드럽고 친절하고 사려 깊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92p)


감독이란 여러분들이 배우는 동안에만 행해지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곧 여러분 자신의 일을 스스로 감독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 다른 군의관들보다 두세 배의 일을 하시고 여러분의 기술을 어떻게 하면 더욱 향상시킬 것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시고, 환자들의 평안과 복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93p)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훈련이 잘되고 양심적이며 기술적 능력이 있는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도자가 갖추고 있어야 할 자질은 어떤 것들일까요? 그것은 첫째 조직하는 능력, 둘째 지도하는 능력, 셋째 감독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란 계획, 즉 전체적 계획과 세부적 계획을 의미합니다. 지도란 그 계획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고 올바른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독이란 계획의 진해에 대한 끊임없는 검토, 오류의 시정, 실천에 의한 이론의 수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란 그 무엇보다도 첫째도 일, 둘째도 일, 셋째도 일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제가 지도자라는 말을 할 대, 그것은 소위 꼭대기에 있는 큰 지도자들로부터 밑바닥에 있는 작은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전군과 전지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꼭대기도 없고 밑바닥도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개념입니다. 우리의 조직은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집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둥글고 역동적인 이 지구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한 방울의 물처럼 개별 부분들의 응집과 협력에 의해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리더십 문제를 생각할 때, 저는 큰 부대의 큰 지도자들보다도 오히려 작은 부대의 ‘작은’ 지도자들부터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자율적이고 사회적으로 각성된 개인들로 인간사회를 혁명적으로 재조직하기 위해서는, 이 ‘작은’ 지도자들의 육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여러분들은 지도자들에게 의지하는 습관에서 벗어날 태도를 갖추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 이야기는 지도자들에게 크게 기대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만 지도한다 할지라고, 여러분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지도함으로써 지도자의 길을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295p)


우리는 특히 전체 인민대중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현실을 일깨워주고 그들에게 가난과 무지와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자생적 중심으로서 행동하는 작은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작은 지도자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른바 ‘위대한 인물’ ‘위대한 영웅’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숭배를 강요받고 지도를 강요받게 되는 것입니다. (295p)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일을 더 하십시오. 자기 자신부터 더 낫게 행동할 수 없으면, 남에게 충고하는 버릇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처리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십시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지 마십시오. (295p)


=> 사람을 아는 방법중 의 하나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말고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라는 말이 있다. 아폴로 신전에 “이 세상에 가장 쉬운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남에게 조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보다는 실천, 알았으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회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회의란 필요하고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완전히 소용없는 것입니다. 말이란 행동의 대체물이 아닙니다. 낱말이란 행동을 묘사하기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본래의 목적대로 말을 사용하도록 합시다. (296p)


=> ‘회의와 스커트는 짧을 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회의를 많이 하는 회사일수록 생산성과 능률이 저하된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안되니까 회의 하는 것인가.


우리 모두 우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관측과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과 우리의 실제 성과를 혼동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기로 합시다. 개인적 허영에 대해서도 잔인하도록 합시다. 또 나이나 지위 또는 경험이 오히려 장애가 될 경우에는, 그것을 무시하도록 합시다. 모든 이론들이 실천이라고 맑고 깨끗한 빛에 종속되도록 합시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의 개념들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96p)


"의사들이여, 부상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대들이 먼저 그들을 찾아 가시오“(300p)


여기에서 엿새를 지내면서 그들은 142명의 환자를 돌보고 105건의 수술을 했다. 이것은 하루에 평균 20건에 가까운 굉장한 격무였다.

=> 하루 평균 20건의 수술이면, 한 시간에 한명꼴로 계속해서 수술했다는 말이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부상병들을 한 명이라도 살려내기 위한 응급조치 및 자신이 좀 더 빨리 움직이면 다리 자를 것을 자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 모든 일을 초인적으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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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하북성의 야전병원에서. 이 사진은 베쑨 기념우표의 배경으로 사용되었으며, 책 표지에 스케치로 사용되었다.



“우리 의사들은 공부와 실습에 수년을 보냅니다.……. 그러다 때가 되어야 자기가 직접 환자를 다룰 수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의사들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환자를 맡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소홀한 자세로 환자를 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대가는 누군가가 다리를 바치고 그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 닥터 봉, 당신은 도대체 어느 대학을 나왔소?”(322p)


“저분과 부상병들의 관계는 자석과 쇠붙이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저분 자신이 쇠붙이 같은 사람이군요. 열에 달구어지면 하얗게 되는 그 쇠붙이 말입니다.”(324p)


지혜의 길은 끝이 없었다. 이해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겪어야 할 것은 늘 존재했던 것이다. (329p)

=>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


결핵이란 것이 단지 어떤 개인의 신체적 질병일 뿐만 아니라 시회적 병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우리 캐나다 국민이 소수는 부자이고 다수는 가난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스페인의 민중들이 중국의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용감히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나는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331p)


=>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사람들. 타민족의 식민지로 살아가느니 자국의 국민으로 살고 싶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 수많은 작은 영웅들이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솔직하게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신은 우리의 소년들이 적들과 싸우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질병과 싸우는 것을 계속 연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332p)

“그분은 요새 이것을 가지고 일하는 게 아니에요.” 유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의 두 팔을 굽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으로 자기의 머리와 심장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분 요즈음 이것을 가지고 일하는 겁니다.” (327p)


=>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심장으로 일하는 베쑨. 늘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 페이터를 신봉한 베쑨은 어느새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의무대가 왕 사령관의 군대에서 활동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택동 동지와 섭 장군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이제 중요한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주회택의 기지병원에서 부상 직후 곧바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다 체크해보았더니, 그 결과 수술을 받은 71명의 부상병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사망한 상태였다. 부상병들 가운데에는 일본군 병사도 세 사람이나 끼여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돌려보냈다. 전선과 주회택 사이에 제2차 응급소들이 마련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병 가운데 3분의 1이 상처도 도지지 않고 후방으로 이송되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커다란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앞으로는 훨씬 더 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들이 부상병들을 후방에서 기다릴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 이제 의사들이 전선 자체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똑같이 복부관통상을 입은 두 환자가 모두 똑같은 수술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았고, 또 한사람은 죽었다. 그 이유는? 앞의 환자는 부상을 당한 지 8시간 만에 수술을 받은 반면, 뒤의 환자는 부상을 당한 지 18시간 만에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생사의 차이가 바로 이 10시간에 있었다.


전투가 소강상태일 때는 처리할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사상자들이 예상될 때는 전선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344p)

"자넨 이 계단을 뛰어내릴 수 있나?“

“물론이죠”

“그러면 부상병들도 뛰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수행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셔졌다. 그들은 함께 돌을 주워다 그 없어진 계단을 다시 만들었다. 이 사건은 “부상병들을 위해 돌계단 하나라도 소홀히 생각하지 말라”는 교훈과 함께 의료종사자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364p)


"의사의 일에 귀하고 천한 일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 실천주간운동의 계기다 되었다.(366p)


그는 그동안 시간이란 놈의 눈속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 외모에 대해서는 과거의 모습으로 기억했으며, 자기 내면에 대해서는 현재의 상태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거울을 보자, 70세 노인의 얼굴이 자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낯선 얼굴이었다. 그것은 하북의 태양에 시달리고 산악의 바람에 거칠어지고 굶주림과 질병과 긴장과 지나친 과로 때문에 깊게 패인 주름과 흠집투성이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얼굴이었다. 그것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로의 사려 깊은 얼굴이었다. (386p)


베쑨4.jpg


=> 누워있는 베쑨의 모습이 70대 노인으로 보인다 할지라고 그가 살았던 삶은 숭고한 한 사람의 발자취를 엿보게 한다. 자신의 모든 삶을 던져 몸소 모든 것을 보여주고 행동했던 한 영웅의 모습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오히려 그의 생각은 자신이 전에 의사의 의무에 대해 어떻게 열변을 토했으며, 인간의 고통을 장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의사들에게 어떻게 분노했으며, 의사라는 직업이 정원을 꾸미는 예술가처럼 아름답게 될 날을 어떻게 꿈꾸었는가 하는 생각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

이제 그는 예전의 그 수많은 희망과 염원을 현실 속에서 구현시키기 위하여 남아 있는 생애 동안이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지난날 그렇게 광포하게 흘려버린 세월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제 미친 듯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387p)


침략전쟁이란, 식민지 정복 전쟁이란, 그저 대규모 사업이나 다름이 없는가? 그렇다. 그러한 국가적 범죄자들이 어마어마한 추상적 표현과 이상을 내세우면서 아무리 그들의 진짜 목적을 숨기려 해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살인에 의해 시장을 빼앗기 위해, 강탈에 의해 원료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들은 교환보다는 절도가 더 값싸며, 구입보다는 학살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 뒤에는 이윤이란 이름의 그 지독하게 집요한 사업과 피의 신이 버티고 있다. 만족할 줄 모르는 모울록(moloch: 옛날 페니키아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산 제물고 바치던 신)처럼 돈이란 놈은 그 이익과 그 보답을 요구하면서, 설사 그 욕심을 위해 무수한 살인이 요구된다 할지라도, 그 어느 것 앞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군대의 뒤에는 군국주의자들이 있다. 그 군국주의자들 뒤에는 금융자본과 자본가들이 있다. 피를 흘리는 형제들과 죄를 범하는 동료들.

이 인류의 적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들이 범죄자라는 표지를 하고 다니는가?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그들은 존경스러운 인물들이다. 그들은 존경을 받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사라 부르며, 남들한테도 신사라 불리고 있다. 그들은 국가의 동량이요, 사회의 동량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넘치는 부를 가지고 사적 공적 자선을 다 베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생활에 있어서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윤을 축소시키겠다고 위협해보라. 그러면 그들은 야만인처럼 무자비해지고, 미친 사람처럼 야수적이 되며, 망나니처럼 무정한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이 세상에는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그러한 조직의 인간사회는 폐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이 바로 부상을 입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412p)


“선생은 돌아가셨습니다.”

1939년 11월 13일 오전 5시 20분의 일이었다. (413p)


모택동은 그의 동료들에게 “우리는 한 인간의 서거 이상의 것을 통곡합니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반 민중들에 대한 닥터 베쑨의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자체가 그의 인격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겨놓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그의 무사無私 정신을 다투어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민중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출발점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개인은 커다란 능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사정신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모두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던지는 중요한 인간, 완전한 인간, 덕있는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414p)


공산군 총사령관인 주덕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쑨 동지의 죽음은 우리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 팔로군의 모든 동지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의 위대한 사랑, 그의 속 깊은 연민, 그의 강인한 투쟁의지는 바로 혁명적 덕성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민족해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중국 민족은 사랑과 숭모의 정으로써 영원히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진보적 인간들이 그의 이름을 가슴속에 간직할 젓입니다.

우리의 투사들과 지도자들은 비탄의 눈물로써 그리고 배전의 용기로써 그의 희생을 몸으로써 기억할 것입니다. “ (414p)

베이징 완핑청에 위치한 베쑨의 동상.jpg

베이찡 완핑청에 위치한 베쑨의 동상


생명에 대한 존중, 모든 인간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부터 나오는 힘이었다. 나는 이 의사가 보여주는 철저한 자기 각성과 지칠 줄 모르는 소명의식과 뜨거운 인간애 앞에서 작업 도중 간간이 눈물이 왈칵왈칵 솟구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422p. 역자 천희상)


3. ‘내가 저자라면’

3-1. 책의 전체적 목차와 뼈대를 논하시오.


책의 표지는 황토색으로써 베쑨이 수술하는 장면을 펜화로 그린 그림을 넣었다. 16장의 사진을 7페이지에 걸쳐서 베쑨의 활동사진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행적을 추측할 수 있었다.

사당의원 김록호 원장이 추천사를 썼다. 질병만을 돌보는 소의小醫, 사람만을 돌보는 중의中醫,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모두를 고치는 대의大醫에 대한 설명을 한다. 위 세 가지 의사 종류를 보면서 독자인 내가 지금까지 어떤 의사들을 만나면서 살아왔나를 생각해 보면서 ‘노먼 베쑨은 어떤 사람일까’를 호기심을 갖게 한다.

테드 알렌과 시드니 고든 두 사람은 ‘닥터 노먼 베쑨‘의 전기를 쓴 사람들로서 서문과 개정판 서문을 썼다. 첫 번째 서문(1952)에서 그들이 베쑨을 알게 된 경위, 베쑨에 대한 전기문을 쓰면서 무엇을 참고하고 누구를 인터뷰했으며 어떻게 자료들을 구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개정판 서문(1971)에서는 베쑨의 전기문이 19개 언어로 출판, 3개 대륙에서도 계속 번역, 출판중이며 캐나다 역사상 가장 널리 번역, 출판된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베쑨이 실천했던 사랑과 지독한 굶주림과 생명에 대한 끝없는 긍정, 외과의사로서의 활동과 사회참여, 인간적 약점들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극복하는 여정, 그이 지칠줄 모르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몸소 보여준 것에 외경심을 갖게 한다.


손문의 부인 송경령 여사가 헌사문을 작성했다. 베쑨의 조국인 캐나다, 만국의 양심 인사들이 암흑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군집한 스페인, 중국에서 활동한 내용들을 언급했다.


본문은 총 4부로 되어있다.


제 1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베쑨의 조상들은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인 위그노들이며 18세기에 캐나다로 이주한다. 할아버지는 토론토에서 활동한 유명한 외과의사다. 아버지 말콤 니콜슨 베쑨은 세속적인 장사꾼으로서 1880년형 앵거스와 하와이로 간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장로교 선교사인 엘리자베스 앤 굿윈을 만나 캐나다로 건너와 결혼하면서 목사가 되기 위해 녹스 대학에 입학한다. 1890년 3월 이 책의 주인공 헨리 노먼 베쑨Henry Norman Bethune이 태어난다. 베쑨 나이 8세때, 어머니가 삶아놓은 암소다리에서 살점을 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베쑨의 해부벽을 엿보게 된다. 그날 뼈들을 말리기 위해 뒷마당 벽에다 쭉 걸어놓은 후, 헨리라는 이름 대신 외고의사였던 할아버지의 놋쇠명패를 침실 방문에다 걸면서 노먼이라는 이름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캐나다가 제1차세계대전 참전 선언한 날, 바로 지원병으로 입대, 야전병원 들것 운반병으로 프랑스로 떠난다. 전쟁의 참상을 보고 독일군의 포화 앞에서 쓰러져 본국으로 송환되고, 대학을 의과대학을 졸업. 프란시스를 만나 결혼하고, 디트로이트에서 개업,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인공기흉술로 소생한다. 이 계기로 다시 생명을 얻은 베쑨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에게 다짐한다.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


제 2부 생명의 칼 정의의 칼로써 이 부분이 책의 제목으로 쓰였다. 생명을 다시 얻은 베쑨은 흰쥐를 대항으로 폐 압축에 대한 박테리아 실험을 하고, 캐나다 흉부외과 대부인 아취볼드 밑에서 2년 동안 연구하고, 교수로 임명되면서 시범강의를 한다. 베쑨은 발명자이자 혁신자로서 급속히 변모하면서 수술하면서 불편하다 싶으면 본인 스스로 수술장비를 발명했다. 늑골 박리기, 늑골 절단기, 흉막분말처리법 등 베쑨이름을 딴 수술기구들이 결핵투쟁을 벌이는 병원에서 필수적 무기가 되었다.

치료 능력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가 증가하는 것에 의문을 품은 베쑨은 가난이라는 질병인 사회현상에 눈을 뜨게 된다. 부자건 가난하건 간에 ‘건강의 권리’를 말한다. 재봉사가 아닌 의사들은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의료제도 자체를 변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1935년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국제 생리학회에 베쑨은 참여한다. 그곳에서 행동주의인 파블로프를 만난다. 진료소와 요양소에서의 모든 치료가 무상으로 실시되고 환자의 헌법적 권리로서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본 베쑨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베쑨이 꿈꾸어오던 이상이 소련에서 현실화되는 것을 목격한다. 고국으로 돌아온 베쑨은 몬트리올 의과학회에서 보고연설에서 소련의 사회주의를 옹호, 정치적 신념을 공개적으로 표명한다. 이후 그는 공산당에 입당한다. 프린츠 브란터너와 함께 빈민가의 아동들이 예술의 기쁨과 창의력을 일깨워주기 위해 ‘몬트리올 아동미술학교’를 창설한다.


제 3부 스페인 공화국이다. 베쑨이 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전쟁의 부상병들을 위해 스페인으로 간다. 스페인 내란의 배경과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투 상황, 수혈을 해서 병사가 살아나는 장면 등 수혈활동을 위핸 기동수혈대 조직 등 수혈의 역사를 알아 볼 수 있다. 피난민의 행렬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는 베쑨, 과달라하라 전투의 승리, 캐나다로 돌아온 베쑨은 마운트로열 경기장에서 임무수행에 돌아온 보고와 연설을 한다. “서유럽 열강이 스페인에 대한 ‘불간섭’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의 침입으로 스페인 국민의 고통은 전세계의 고통이다. 캐나다 사람들도 천 명 이상의 맥켄지-파피노대대를 편성하여 스페인을 방어하기 위해 떠났다. 등” 베쑨은 살인과 부패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그 모순을 묵과하기를 거부한다면서 자신의 능력이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 중국을 향해 떠난다.


제 4부 중국인민의 영원한 동지이다. 베쑨이 중국에서 활동한 시기는 1938. 01. 20 ~ 1939. 11. 3일 세상을 떠날때까지 약 22개월이다. 문명이 가장 잘 발달한 나라인 중국이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서구 열강들의 침입 배경,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일본의 침입, 손민의 삼민주의를 이어받은 모택동 공산당과 장개석의 배반으로 내부적으로는 장개석파를 무찔러야 한다. 또한 외부로는 일본을 무찔러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볼 수 있다. 홍콩에서 광주 한구 암분 서안 연안을 지나 진찰기 해방구인 오대산 근처에서 베쑨은 의료기지구를 둔다.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헌혈을 전혀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시범을 보여 줌으로서 중국 최초의 헌혈단이 조직된다. 일하면서 배우자 라는 슬로건 아래 베쑨을 비롯한 의료병들은 엿새동안 105건의 수술한다.. 하루 평균 20건에 달하는 수술을 행하고 수술이 끝난 이후에는 의료요원들을 위한 강의를 한시간씩 한다. 또한 밤잠을 자지 않고 의학교재를 베쑨 자신이 직접 써서 현장에서 공부하고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가 중국에 머물렀던 기간은 약 22개월이다. 생의 마지막을 “늘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 베쑨이 숭배했던 페이터의 말대로 살다가 떠났다.


에필로그에서는 베쑨의 사후 9년 후 섭영진 장군은 베쑨이 묻혀 있는 골짜기를 찾는다. 베쑨의 유해를 찾아 북경의 남동쪽에 위치한 석가장 시의 순교자 묘역을 운반하여 그를 영면케 한다. 베쑨의 명성은 중국 뿐 아니라 세계 각지로 퍼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중국 석가장 거리를 찾는다. 베쑨 국제평화병원과 베쑨 의과대학을 보면서 불꽃처럼 살다가 숭고하게 떠나간 한 영웅을 가슴속 깊이 새긴다.

역자 천희상이 한 인간이자 영웅인 베쑨을 알아간다. ‘ 베쑨 자신의 소명의식과 뜨거운 인간애 앞에서’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경험한다.


3-2.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경험이란 그 열매가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다. 늘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바로 이것인 것이다."(39p)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73p)


몸은 몹시 피곤하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내게 있었던가? 나는 지금 아주 대만족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매순간을 활기차게 일하는데다, 모두들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돈 같은 것은 지금 전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공산주의를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한다는 무한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공산주의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며, 무릎관절처럼 반사적이며, 허파의 운동처럼 무의식적이며, 심장의 박동처럼 자동적이다. 이들은 증오에 있어서도 집요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굉장히 포용적이다. 참으로 금욕적인 중국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은 바로 인류라는 계급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온갖 잔학행위를 겪었으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처절한 쓴맛을 보았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으며, 지독한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인내와 낙천적 태도와 조용한 지혜를 알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도 또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서, 섭의 걱정에 대해, 병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는 뜻밖의 각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286~287p)


3-3. (인상적이고 탁월한 착안점)이나 보완점을 평설하시오.


전기문이라고 해서 한 사람을 무조건 영웅시 할려고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베쑨은 의사로서 자신을 불꽃처럼 태워서 주위를 밝히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실천하는 삶을 보여준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많은 일을 행한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보완점이 있다면,

첫째는, 베쑨에 관련된 사진을 앞장에 한꺼번에 실었다. 그보다는 설명과 관련된 사진을 관련된 페이지에 첨부했다면 독자들이 좀 더 실감있게 이해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었으리라. 예를 들면 빈민 아동을 위한 아동미술학교로 사용된 몬트리올 베쑨의 집을 소개할 때, 그 페이지(131p)에 함께 소개하면 독자들이 글을 읽으면서 그림도 보고 이해가 훨씬 높았으리라.

수혈 장면, 수술 장면, 타이프라이터로 게릴자전 의서 저술 하는 장면, 말을 타고 이동할 때 수술용 기구를 넣고 다닌 장면 등... 그 관련된 페이지에 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두 번째는, 본문 내용이 4부로 나뉘고 1부에서는 번호로 1, 2, 3……이렇게 되어있다.

번호로 나뉜 부분을 소제목을 붙인다면 독자가 그 번호를 읽기 전에 내용을 추리하면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았을까. 큰 제목 하나에 여러 개의 번호만 계속 있다 보니,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막연하고 추측할 수가 없다.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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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12:35:02 *.11.178.163

북리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닥터노먼베쑨을 더 알고 싶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성들여 쓰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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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9:22:51 *.68.48.63

제 리뷰가 선형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힘이 팍팍~~나고

더 정성껏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군요.

정말 강추드리네요. 저도 이런 좋은 책을 읽고

제 삶이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느낀답니다.

좋은 책은 제 안에 있는 것을 깨우게 만드네요.^__^

제 리뷰를 정성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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