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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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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8일 16시 32분 등록

<제국의 미래>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에이미 추아(46)는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전형적인 이민자 가정의 맏딸이다. 또한 그녀의 남편은 유태계 미국인으로 <살인의 해석>을 출판했던 제드 러벤펠드 이다. 저자가 <제국의 미래>에서 밝히는 이민자에 대한 관용의 필요성은 저자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난 경험의 산물이다.

중국인인 그녀의 부모는 필리핀에서 자라고 1960년 법률개정으로 인해 이민장벽이 무너진 덕택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민 온지 2년이 되기 전에 박사학위를 따고, 71년 버클리대학 교수가 됐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 저자 후기에서 어릴 적 공부에 대한 그녀의 부모가 보여준 엄격함을 회상하고 있다. 내용을 발췌해 본다.

 

친구들은 B를 받아도 칭찬을 받는데, 우리에게는 A-를 받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8학년 때 역사 경시대회에서 2등을 한 나는 가족들을 시상식장으로 초대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아버지가 말씀 하셨다. “다시는 나를 이렇게 부끄럽게 하지 마라!”

 

그녀는 이런 가족 안에서 오히려 힘과 자신감을 얻었노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국외자로 출발해서 미국을 발견해가며 차츰 미국인이 되어갔다.’는 말로 자신이 미국인이 된 과정을 한 문장으로 함축해서 말한다. 이런 그녀의 성장배경에는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가 미국의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기까지 겪었던 혼란과 모순이 존재 했다.

 

하지만 우리 곁에는 늘 모순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가 모두 모순이었다. 우리가 미국이라는 도가니 안에서 승승장구하고, 미국을 대표하여 해외에 나가 있을 때에도, 나의 부모님은 늘 우리가 전통뿐 아니라 혈통까지 이어받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p480)

 

편입된 국민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지닌 채 새로운 이민 사회에서 성공적인 성취를 이룬 그녀는 자신과 가족의 이민사를 사랑하는 나라 미국의 미래를 위한 답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관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에서 그 이민자들이 이룬 성취를 바탕으로 부강하게 된 미국이 불관용 정책으로 인해 재능 있는 다양한 인종들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국력은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던지는 것이다.

 

이 책 <제국의 미래>는 인류가 걸어온 역사 속을 샅샅이 정리해 세계의 패권을 쥐었던 초강대국들의 흥망성쇠를 요약해서 정리해 놓았다. ‘관용이라는 자신의 논지를 펴기 위해 엄청나게 방대한 역사를 요약정리 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역사를 전공한 학자는 아니다. 듀크대 로스쿨을 거쳐 2001년부터 예일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강의하고 있는 법학자이다. 그녀는 자신이 1차 역사를 읽어내는 능력은 없는 대신 관련분야의 최고의 연구를 참조해 저술 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에이미 추아는 이미 2004 <불타는 세계>라는 책을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불타는 세계>는 세계화가 세계의 불평등과 기근을 몰아낸다는 일반화된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세계 기근과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역설을 논리 있게 피력해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에이미 추아가 저술한 2004 <불타는 세계> 2007 <제국의 미래>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세계의 미래에 대한 충고를 던지고 있으며, 그 충고가 보편화된 이론의 편승이 아닌 그녀 자신의 삶을 재료로 도출된 신선하고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의 미래>에서 그녀가 주장하는 강대국의 흥망의 필요조건인 관용’, 특히 책의 말미에 강조된 이민자에 대한 관용은 그녀를 포함한 그녀 가족의 이민역사를 바탕으로 한 체험에서 나온 고찰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 책이 가지는 한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개개인의 생생한 인생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이런 독특하고 창의적인 해법들이 모이게 되다면 보다 새롭고 긍정적인 대안 들이 모색되지 않을까? 이러한 다양한 인종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통찰에 깊은 공감을 한다.

 

 

2. 내가 저자라면

 

2-1. 이 책의 전체 적인 뼈대

저자는 2001 9.11 사건 이후 미국안팎에서 터져 나온 미국제국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들이 오히려 미국 제국을 몰락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논지를 역사라는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이다. (p449)’ 라고 밝힌 부분에서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 주제를 전달하는 방법을 함축해 놓았다.

 

역사를 통해 저자는 관용과 접착제이 두 가지가 초강대국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지를 바탕으로 현대의 미국이 처한 초강대국의 역할을 맡았던 역사 속 패권국가들의 흥망에 관용, 불관용, 접착제가 어떤 공통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정리했다.

저자는 역사 속의 초강대국을 1부 고대 , 2부 근대, 3부 현대 로 나누어 묶고, 각 시대의 초강대국들이 택한 관용불관용이 시대 별로 어떻게 변모되어 왔으며, 초강대국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소멸했는지 역사의 흐름에 따른 과정을 서술한다.

그리고 과거 역사 속 강대국들을 훑어 본 후 유추된 공통점을 현대의 초강대국 미국에 연결해 설명한다. ‘관용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진리는 역사 속의 강대국을 통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논지로 탈바꿈 하게 된다.

 

역사 속 초강대국들의 탄생과 소멸 과정의 연대기인 이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논리는 관용’, 더 직접적으로는 다른 인종에 대한 관용과 불관용 정책이 초강대국에게 미친 영향력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 책의 글머리가 <아시아의 이민> 이라는 자신의 논문을 다듬은 것이라고 밝힌 부분에서 이민자인 자신의 역사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를 인류전체 역사 속에서 찾아 내려 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2. 보완할 점

 

 첫째. 그 시대의 지도 한 장 넣어 주는 센스

'제국의 미래'는 방대한 역사 중 초강대국들의 흥망성쇠만을 압축해서 다루고 있다.

따라서 한 제국의 자세한 설명과 역사를 이해시키는 것은 이 책의 범주가 아닐 것이다.

다만 독자가 시대배경과 상황을 좀 더 쉽게 그려볼 수 있도록 지도를 배치하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재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역사 속 지도를 별도로 찾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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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제국 페르시아 편에서는 '아라비아' , '메디아', '이집트' 등의 많은 지명들이 나온다.

이렇게 그때 당시의 지도를 옆에 곁들인다면, 독자들이 그 세계의 상황을 한눈에 보고 따라가기 더 수월할 듯 했다.

 

둘째.  관용의 범주가 책 후반부 들어 이민자의 관용 정책으로 만 강조된 점

이 책은 초강대국의 흥망에 관용’, ‘불관용’ ,’접착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저자의 주장을 역사속에서 검증하는 내용이다. 때문에 국제적 역학관계와 군사, 경제, 종교, 민족 등 모든 관점을 종합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초 강대국의 의의를 논하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관용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저자가 좀더 광범위하게 주변을 망라하는 힘을 발휘 했어야 하지 않았나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9장 최첨단 과학 기술의 개척자-미국’ , ‘12장 제국의 미래를 제외한 각들의 장에서는 패권의 그늘 아래에 있던 타 국가들에게 행했던 관용과 불관용의 영향력을 언급했지만, ‘미국의 편에서는 주변 국가들에게 미국이 행한 관용과 불관용의 영향력에 대한 언급이 거의 되어 있지 않다. 미국 국내의 부강을 위한 이민자들에 대한 관용에 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져 버렸다.

 

저자 자신이 자신의 이민역사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을 부강하게 할 방법으로 미국 내 이민을 장려하는 것에 지면을 너무 많이 할애했다. 저자 스스로도 미국은 세계적인 패권국가 이기 때문에 고립주의라는 호사를 누릴 입장이 아니다. (p474)’ 라고 밝혔듯이 미국이 세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 (군사적인 지원, 전쟁, 경제적 파급효과)을 고려한다면 국경 내 에서의 관용뿐 아니라 국경 밖에서 미국이 행한 관용 과 불관용의 사례 소개에 지면을 더 할애 했다면 미국의 현실을 역사 속의 비유를 통해 유추하는 데 좀더 많은 공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번역의 아쉬움

문장 간의  매끄럽지 않은 접속사 및 연결이 아쉬웠다.

책을 읽으면서 매끄럽지 않은 접속사, 조사 때문에 글을 읽는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것은 저자가 아닌 번역의 문제이겠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수희향님 의 글에서처럼 <제국의 미래>는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한 문장을 예로 든다면 p205에 나왔던 다음의 내용에서 연달아 나오는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많이 어색했다.

 

19세기의 어느 저술가는 "스페인에는 왜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이단 심문소 때문이다. () 스페인 사람들은 왜 낮잠을 잘까? 이단 심문소 때문이다"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단 심문소가 스페인이 안고 있는 모든 병폐의 원천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단 심문소, 추방, '순수한 혈통'을 옹호하는 법령등이 빚어낸 불관용은 스페인에 파멸적인 결과를 안겨주었다. (p205)

 

앞에 있는 '그러나' '물론' 이라고 바꾼다면 좀더 매끄럽게 문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예를 들었지만 책 전체적으로 이렇게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간혹 있어서 글을 읽어가다가 내용에 집중해서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었다.

 

 

 

2-3. 감상 및 마음에 드는 장절

개인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거대한 세계사를 이렇게 하나의 논리로 묶어낸 그녀의 저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한마디로는 부족한 만한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그 분야 최고의 책들을 공부하고 연구한 뒤  자신의 일관된 논리를 뒷받침 하는 재료로 엮어 낸 그녀는 책 쓰기의 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자신에게 관용을 베푼 사랑하는 나라 미국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하기 위해 역사 속의 초 강대국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끌어냈다. 2001 9.11 테러 이후 그녀가 소개한 글에서 미국의 국민과 국내외 지식인들이 느끼는 충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스개 소리로 악의 축은 미국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요즈음 미국이 지닌 막대한 영향력을 자국의 보호를 위한 불관용의 수단으로 사용 했을 때 어떤 파국이 올 수 있을지를 역사를 통해 충고하는 이 글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녀는 미국이 제국이 되어 세계를 제패해야 된다던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용을 전략적으로 써야 한다던가 하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가 8장 영국 편 마지막에 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논지는아깝네. 영국이 좀더 관용을 베풀었다면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었을 텐데라는 게 결코 아니다.

간디는대영 제국이 제국인 것은 바로 인도 때문이다. 황제의 지배는 끝나야 한다. 나는 영국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대등한 파트너가 되고 싶다. 그러나 동등한 조건에서의 파트너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말한다. 1931년 영국이 인도와 대등한 파트너 관계를 맺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 났을까?

혹시 대영제국이 유색인 피지배민 들을 존중하고 관용으로 대했다면, 영국연방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포괄하는 연륜 깊은 경제적 상호 관계로 맺어져 세계시민의 거의 3분의 1을 아우르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무역권역이자 정치동맹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세계를 제패하는 제국으로부터 평범한 국가로 전락했고, 과거유색인식민지 주민들은 제 3세계로 전락했다. (p327)

 

그녀가 말한 주장은 냉혹한 세계정세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이상적인 해석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 속 에서 그녀가 찾은 증명들은 그녀의 몽상이 결코 단순한 공상이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책을 읽어가며 필연적으로 내가 속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비유 해 보게 되었다.

에이미 추아는 우리나라 기자와의 인터뷰 에서 한국은 어떤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단일민족이고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나라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초강대국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초강대국이 되면 안티 세력도 생기고 테러 위험도 있고. 도리어 진저리를 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꼭 초강대국을 향한 전략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어느 사회에서나 관용은 필요하다

 

국토와 인구,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대한민국이 단 몇 십 년만에 이렇게 부강한 나라가 된 배경에 한국민의 인적 자원이 가장 큰 토대가 되었다는 것에 모두들 공감한다. 미국처럼 이민자들의 나라로 우리나라를 탈바꿈 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옷을 억지로 꿰 입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우리나라에 모두 불러들이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 성장하고 세계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미 추아의 말처럼 모든 나라들이 초강대국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원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국의 미래는 역사 속에 서 얻은 관용의 교훈을 내가 속한 조직, 내가 서있는 바로 여기에서 어떻게 적용 시킬지 모색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던져 주었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세계 제패의 비결

 

9.11 공격,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 이후에는 기대 조 혹은 비난조로 쓰인 제국과 제국주의에 관한 책들이 거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초강대국이라는 매우 희귀한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은 아직까지는 찾아볼 수 없다. (p6)

 

한 사회는 어떤 경로를 거쳐서 단순한 대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르는 강국이 되는 걸까? 한 사회가 그런 패권을 손에 넣었다면, 무엇이 그 패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과거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몰락 과정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들이 들어 있다. (p7)

 

이 책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역사상 존재했던 세계 초강대국들은 서로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해당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인 우위에 오르기까지는 하나같이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나라들이었다. 모든 초강대국들에게 관용은 패권을 장악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쇠퇴의 씨앗을 뿌린 것 역시 관용이었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초강대국들의 경우 관용은 결국에는 극적인 변화 지점을 건드려서 반목과 폭력을 유발했다. (p7)

 

한 사회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만 한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지해온 것이 바로 관용이었다. (p9)

 

내가 이야기 하는 관용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인 의미의 관용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관용은 정치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의미한다. 내가 앞으로 사용하게 될 관용이라는 단어는 수단적인 의미에서의 관용이든, 전략적인 의미에서의 관용이든, 아주 이질적인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에서 생활하고 일을 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p10)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용은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일컫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관용은 존중이 포함되지 않는다. (p10)

 

요컨대 이 책의 핵심적인 개념은 상대적인관용이다. 세계적인 패권을 다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회가 절대적인, 영원불멸의 기준으로 볼 때 관용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p 11)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관용이 세계 제패의 필수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역으로 말하면, 불관용은 초강대국의 쇠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p12)

 

세계적인 패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목적이라며, 강압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고 박해는 그 대가가 지나치게 비싸며 인종적 혹은 종교적 균질성은 근친교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생산성이 떨어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황홀감에 가까운 낙관주의가 퍼져나갔고,

미국은 전쟁을 유발하는 산업이나 군사적 강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경쟁 상대가 없는 막강한 군사력과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파괴적인 무기들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미국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순진하게 세계의 새로운 초강대국은 제국 건설이라는 팽창주의적인 목적을 위해서 군대를 공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p14,15)

 

미국이 로마나 영국이 쥐었던 고삐를 집어 들고 세계를 문명화하고, 현대화하고, 평화롭게 하는 일을 담당하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는가? 9.11 이후 이런 주장은 엄청나게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p16)

 

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든 민주주의국가 건설이라는 말을 사용했든 이들 저술가들이 하나같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역사이다. 지금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비록 새로운 형태이기는 하지만, ‘제국의 연륜만큼이나 오랜 연륜을 가진 문제, 즉 과거의 세계적인 패권 국가들 대부분을 무너뜨린 근본적인 문제이다. 나는 더 적절한 용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 문제를 접착제라고 부를 것이다. (p17)

 

새뮤얼 헌팅턴의 책 <새무얼 헌팅턴의 미국> - 미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추스르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때 미합중국이었던 영토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빼고는 공통점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정치적 집단들의 느슨한 연합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헌팅턴은 경고했다.(p18)

 

나는 미국 사회가 무수한 이질적 하위 공동체들을 결합시킬 접착제를 가지고 있는 가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헌팅턴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18)

 

그러나 헌팅턴은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있다.

첫째 초강대국들의 핵심 집단이 불관용으로 돌아서서 자신의 참된정체성을 다시금 옹호하면서 토착 문화 보호주의나 호전적인 배외주의 정책을 채택하여 이방인들은 물론 동화시킬 수 없는집단들까지 내쫓거나 배제할 때 그 초강대국은 분열과 붕괴의 먹이가 되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정체성을 하나의 고유한 인종 집단 혹은 종교 집단에 묶어놓으려는 시도는 미국의 사회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p19)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헌팅턴은 미국이 안고 있는 접착제의 문제는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 존재한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p19)

 

국경 밖에서 보면,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전역의 수십억 인구를 미국에 단단히 묶어놓을 수 있는 접착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p19)

 

르네상스기에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감탄조로 로마는 이웃 나라를 무너뜨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이방인들에게 로마의 특권과 영예를 허용함으로써세계 제국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p20)

 

사회과학 전문 용어 가운데 선택적 편견 Selection bias’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논지에 부합되는 사례들은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사례들은 무시하여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나는 선택의 영역을 최대한 넓혀서 세계적인 패권 국가의 위상에 부합하는 역사 속의 사회들을 모두 고찰하는 방식으로 선택적 편견을 피해가려고 노력했다. (p21)

 

1장 최초의 패권 국가, 페르시아 ? 아케메네스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은 로마제국은 물론이고 고대의 그 어떤 제국보다 큰 영토를 다스렸던 역사상 최초의 패권 국가였다. 페르시아 제국은 정복과 병합을 통해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이집트의 위대한 왕조들을 복속시켰으며, 전성기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4,200만 명을 거느렸다. (p34)

 

고대의 많은 정복왕들은 상대 종교를 억압하거나 파괴함으로써 자신이 섬기는 신의 우월성과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다. (p40)

 

오늘날의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키루스가 사용했던 관용 정책은 원칙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전략과 편법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루스는 해당 지역의 신(바빌로니아의 마르두크, 유대의 여호화)을 포용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고, 해당 지역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함으로써 피정복민의 저항과 반란 가능성을 줄였다.(p43)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는  특정 지역에 일정액의 세금을 부과한 후 그 지역 지도자들에게 그 액수가 지나치게 과중하지 않은지 의견을 물은다음, 관용을 베풀어 세금을 반감시켜준다고 공표하곤 했다. (p47)

 

다리우스와 그의 통치를 받는 사트라프들은 해당 지역의 종교 예식과 신을 대단히 존중했다. 다리우스는 또한 각 지역의 사회구조를 대부분 그대로 두었다. “피정복민족의 지배층은 대부분(이집트는 예외일 수 있겠지만) 페르시아 왕을 이방의 통치자나 압제자로 보지 않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그리고 사회질서를 지켜줄 인물로 보았다. (p48)

 

다리우스가 이런 관용적인 정책으로 얻은 이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피정복민들을 죽이거나 페르시아화하는데 자원을 낭비 하지 않았고, 그들이 가진 다양한 기술과 재능, 자원을 이용했다. 그것이 다리우스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화려한 제국의 수도들을 건설 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p48)

 

페니키아인은 흰 아마포로 만든 굵은 밧줄을 가져왔고, 이집트인은 파피루스로 만든 밧줄을 가져왔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관용이야말로 아케메네스 왕조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단을 꾸릴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이었다는 점이다. (p49)

 

아케메네스 왕죠는 해당 지역의 법률과 전통을 포용하고 해당 지역의 언어, 종교, 예식을 용인하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피정복민의 반항과 반란을 최소화했다. (p52)

 

크세르크세르의 전제적인통치기(기원전 485~465)에는 페르시아가 여러 차례 군사적 좌절을 경험하고 대신 그리스가 처음으로 우세의 조짐을 보였는데, 이때부터 아케메네스 왕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p55)

 

아케메네스 제국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후기로 접어들면서 아케메네스 왕들의 잔혹성과 억압이 강화된 것이 피정복민의 반란과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지지를 유발했다고 설명한다. (p56)

 

아케메네스 왕조에는 다양한 민족들의 마음을 움직여 공동의 규범을 옹호하게 할 만한 특성이 없었다. “ 요컨데 아케메네스 왕조의 중심에는 강력한 분열의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 페르시아 관용 정책 덕분에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 강화해왔던 각각의 민족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반감을 쌓아가다가 결국 제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이질적인 민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관념 체계ideology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은 결국 지배력을 잃게 되었다. (p59)

 

역사학자인 가이 맥린 로저스는 현대 이전의 인물에 대해서는 현대적인 개념을 적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p60)

 

주목해야 할 사실은, 수사에서 거행된 집단 결혼식에서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신랑으로 섰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페르시아 출신의 아내와 헤어졌다는 점이다. (p66)

 

2장 팍스 로마나, 세계인의 탄생 ?로마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쟁 조직에 지나지 않았지만, 로마제국은 하나의 관념idea이었다. 로마제국의 외떨어진 변방에 사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로마인이 되기를 원했고, 실제로도 그들은 로마인이 되었다. (p68)

 

로마가 관용적인 입장을 택하게 된 데에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의 편협한 태도와 인종분리 정책은 분노를 일으켰고, 이것은 대부분 전쟁으로 이어졌다. (p72)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서기 48년 원로원에서 연설하면서 얼마 전에 정복한 골족에게 공직에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무너진 데에는 피정복민을 이방인이라고 멸시한 것 말고 다른 원인이 없지 않는가?’ (p72)

 

대법원 판사 제임스 윌슨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자국의 힘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주민들이 자진해서 로마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윌슨은 로마가 전략적으로 채택했던 관용이야말로 제국을 확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보았다. (p73)

 

로마황제들은 직접 통치를 하면서도, 급격한 경제적, 사회적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주민들의 생활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어느 자료는 로마제국을 관료제가 없는 통치 조직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p77)

 

로마제국의 가장 흥미로운 면모는 사람들이 로마제국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브리타니아에서 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피정복민들은 하나같이 로마제국의 성원, 로마인이 되고 싶어 했다. (p86)

 

로마인들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모든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뿐 아니라, 더 나은 관습이 눈에 띄기만 하면 서슴지 않고 자신의 관습을 버린 덕분이었다. “ (p87)

 

로마 문화는 또한 그리스의 문학, 미술, 조각, 건축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것을 빨아들였을 뿐 아니라, 검투사 경기와 사냥 경기 따위의, 대중이 좋아할만한 고유의 문화를 고안해냈다. 로마 문명은 하나의 문화적인 용광로였으므로, 각 지역의 지도 계층은 엄청난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p88)

 

로마 문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모마 시민권이라는 유혹이었다. (p88)

 

기번에 따르면, “로마 세계에 보편화되었던 다양한 신앙은 주민들에게는 하나같이 올바른 것으로, 철학자들에게는 하나같이 그릇된 것으로, 관리들에게는 하나같이 유용한 것으로 여겨졌다.” (p94)

 

관용은 로마가 세계적인 대국으로 발전하고 팍스 로마나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땅에 뿌려진 궁극적인 붕괴의 씨앗이었다. (p99)

 

역사학자인 안토니 파그덴에 따르면, “제국이 성장하고 제국에 속하는 민족이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제국 내의 심각한 이질성을 해결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 (p100)

 

로마 몰락의 원인은 로마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치명적인 불관용 정책을 펼침으로써 제국의 다양한 주민들을 성공적으로 통합시켜왔던 동화 및 통합 전략을 훼손시킨 데 있다. (p102)

 

콘스탄티누스와 그 이후의 황제들은 종교적인 통합이 제국을 소생시키고, 급증하는 야만적인 공격에 맞서서 제국의 힘을 강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우상숭배와 이단에 대한 공격은 자멸적인 결과를 낳았고, 야만인들의 침입을 촉진했다. (p102)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고대 로마인들은 모든 종교를 용인하여 제국을 강화했는데, 그들의 후계자들은 지배적인 종파를 제외한 모든 종파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제국을 약화시켰다.” (p103)

 

로마의 붕괴는 로마가 도저히 동화시킬 수 없는 민족들, 혹은 로마가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문화와 습관을 가지고 있는 민족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동화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적인 불관용과 인종적인 불관용이 결합하면서 로마는 전쟁과 내란에 휩싸였고, 전쟁에서도 내란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제국은 로마의 혈통, 문화,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말해 로마는 클라우디우스와 기번이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실책이라고 꼽았던 행동을 되풀이했다. 바로 그 시점부터 로마는 분열과 망각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p106)

 

3장 중국의 황금기 ? 당唐

 

중국인들은 이웃 부족을 두려워했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p112)

말을 탄 침략자들이 끊임없이 자행하는 학살과 약탈의 위협은 항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문제로서, 야만인 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념을 형성했다. (p113)

 

고조는 수나라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야만족인 동돌궐과 군사 동맹을 맺었을 뿐 아니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내는 형식의 편지를 돌궐 통치자에게 보냈다. 유학자들이 장차 중국의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만인을 동등한 자격으로, 혹은 더 심하게는 윗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불경한 행위나 다름없다며 격분하자, 고조는 이렇게 반박했다. “한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1 만명 위에 서라는 옛말이 있다. 국경 너머의 야만인들은 이 비유에서 무엇에 해당하겠는가? 그들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편지는 금 1,000냥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금 1,000냥이라도 내줄 마음이 있다. 그러니 걱정할 까닭이 무엇이냐? (p115)

 

당 제국이 쇠퇴의 길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불관용이 시작되었다.  당이 채택했던 전략적인 관용정책은, 당이 중국인이 아닌 피지배민에게 한족의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당제국은 그 덕분에 크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당 제국이 야만인들과 중국인들을 한데 묶어줄 공통된 정치적, 언어적, 문화적 접착제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p136)

 

결국 위대한 당 왕조는 단 한번도 스스로를 중화中華의 일부로 여긴 적이 없었던 외국인들 때문에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p137)

 

제국 안에서 균열이 나타나고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 비중국 민족이 점차 위협을 가하자, 중국이들의 타고난 불관용이 급격하게 끓어올랐다. (p140)

 

당이 멸망한 뒤, 중국인의 외국인 혐오증은 점점 심해졌다. (p142)

 

4장 유럽을 삼킨 초원의 지배자 ? 몽골

 

유럽인들이 이교도들을 말뚝에 묶어 불에 태우고 있을 때, 칭기스칸은 만인에 대한 종교의 자유를 공표했다. (p146)

 

몽골족이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잔혹함이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관용에 있었다. (p146)

 

테무친은 측근 가운데 믿음이 가지 않는 혈연은 주저 없이 몰아냈다. 몽골의 전통과는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테무친은 애초부터 삼촌들이나 형제들, 혹은 조카들을 군대의 고위직에 앉히지 않았다. 테무친이 혈연관계보다는 공로를 강조한 덕분에 낙타몰이꾼과 소몰이꾼들이 장군이 될 수 있었다. (p151)

 

언젠가 테무친은 어느 병사에 대한 진급 건의를 거부하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고 한다.

예수타이는 어느 누구보다 용감하고 어느 누구보다 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오랜 행군을 해도 지치지 않고 허기와 갈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거느리는 장교들과 병사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급 지휘권을 맡을 만한 적입자가 아니다. 장군은 허기와 갈증에 대해 생각하면서 부하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부하들과 동물들의 힘을 아껴 쓸 줄 알아야 한다. (p152)

 

주목해야 할 점은 칭기스칸이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정령신앙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종교의 절대적인 자유를 선포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 수도승들, “이슬람 사원의 사제들그리고 종교의식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납세와 공역의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한편 칭기스칸 자신은 변함없이 자연의 정령들을 숭상하는 정령신앙을 지켰다. (p155)

 

칭기스칸은 아들들에게 마음속에 목표를 새겨두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은 물론이고 자기 인생도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p167)

 

몽골 군대에는 선진적인 이슬람권과 중국의 기술을 흡수하여 제작한,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가공할 무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p169)

 

몽골의 공격을 받자, 기독교권인 유럽에서는 극심한 불관용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유럽의 성직자들은 패배에 손을 쓸 방도도 없고 갑작스런 몽골 군대의 출현을 설명할 길도 없게 되자, 하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럽 내부에 있는 유대교도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p171)

 

루부룩의 윌리엄을 후원하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탈무드 경전 1 2,000권을 불태우는 등 여러 가지 거룩한 행동을 했다고 하여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p177)

 

제국이 쇠퇴하면서 몽골이 지배하던 지역 어디에서나 일관된 특징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공식적으로는 물론 몽골의 평범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관용, 특히 종교적 불관용이 전면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p188)

 

5장 신세계를 향한 최초의 탐험자 ? 스페인

 

1478년 교황의 교서에 따라 스페인에 이단 심문소가 설치되면서 상대적인 관용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p200)

 

1526년에 이단 심문소는 기독교를 신봉하지 않는 모리스코스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스페인 왕실은 공식적으로 불관용 정책을 선회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성장할 꿈을 품고 있던 제국으로서는 대단히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p201)

 

스페인의 이단심문소의 무수한 재판과 고문은 엄청난 비용을 소모했지만, 증오와 편집증만 빚어냈을 뿐 지식이나 부는 일체 창출하지 못했다. (p205)

 

나의 논지를 되풀이해서 말한다면, 관용은 세계 제패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지만 스페인 왕국의 불관용이 번영을 가로막고 스페인의 깊은 쇠락을 재촉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p206)

 

6장 자본주의 경제를 제패한 최초의 제국 ? 네델란드

 

1588년 자기 방어 능력이 없었던 네덜란드 주연합은 프랑스와 영국에 나라를 넘기려고 했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1625년경 네델란드연방공화국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한 강국”,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를 제패했던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p218)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은 갑자기 (이주민들의 기술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설탕 정제업에서 무기 제조업, 화학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p226)

 

네덜란드 사람들은 사치품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1598년 스페인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식민지의 생산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네덜란드 선박의 입항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투자 자본을 가지고 있던 네덜란드의 유력한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에 위협을 느끼자, 아예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제쳐놓고 동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직접 자신들의 선박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연합 동인도회사와 후일의 서인도회사였다. 이 두회사가 세워지면서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세계적인 식민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p227)

 

네덜란드의 제국주의에 연료를 공급한 것은 칼뱅주의가 아니라 이윤 추구였다. 17세기 초 아프리카 서부의 부족민들은 네덜란드의 무역업자들에게 금이 당신들의 신이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p229)

 

네덜란드 사절이 종교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자, 5세는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고는 보시오, 여기 당신에 종교가 있고라고 말했다. (p230)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들 가운데에는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의 지적인 개방성에 끌려 네덜란드에 거주하거나 그곳에서 글을 썼던 사람들도 있다. ‘17세기 사상계의 위대한 3인방인 데카르트, 바루흐 스피노자, 존 로크 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p239)

 

스피노자는 1620년대에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대인 철학자였다. 그는 이성 및 개인주의와 관련된 매우 현대적인 사상 때문에 자신이 출생한 세파르디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 존 로크는 제임스 2세에게 추방된 영국인이었다. 그는 네덜란드 망명 경험을 토대로 최고의 저작들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그레고리오 레티와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벨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 역시 네덜란드연방공화국에 정착했고, 네덜란드는 철학자들의 은신처로 알려지게 되었다. (p240)

 

200년 후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네덜란드는 관용 정책을 통해 유럽에서 박해를 받아 추방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유인했다. 이런 관용 정책은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집단 가운데 일부를 좁은 네덜란드로 끌어들여,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어내고, 부의 측면에서 대륙의 경쟁자들을 크게 앞지르게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이 부를 이용해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p242)

 

세계 지배와 관련된 새로운 현대적 전략은 군사력에 의한 영토 정복이 아니라 군사력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였다. (p243)

 

1688년 대규모의 네덜란드 함대가 영국을 기습하고, 네덜란드 보병대가 런던을 점령했다. 네덜란드 총독인 오라녜 공 빌렘 3세는 영국왕이 되어, 아내인 메리와 함께 통치했다. 사실 빌렘이 영국 왕에 취임한 사건은 세계의 패권이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넘어갔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p243)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에서 영국으로 막대한 인적 자본과 금융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p244)

 

7장 불관용의 덫 ? 오스만, 명明, 무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의 굴레에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주장이나 이유를 따져보지도 않고, 자신의 아버지와 선조들, 친척들과 친지들을 따라가고, 자신이 타고난, 또는 교육받은 종교를 따릅니다. 이것은 인간 지성의 가장 숭고한 목적인 진리 탐구로부터 스스로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편이 좋은 때를 골라, 온갖 종교를 가진 학식 있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면서 그들의 고상한 대화와 숭고한 열망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악바르가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게 보낸 편지, 1582 (p246)

 

17세기에 시작된 이슬람교의 융성은 처음부터 이슬람교 내부의 분열과 다툼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슬람교는 그 토대가 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인종적.민족적으로는 피부색이 어떠하든 어떤 사회계층에 속하든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면서도, 종교적으로는 편협했다. 신은 오직 하나, 진리 역시 오직 하나뿐이었다. (p247)

 

오스만 제국은 위계질서가 몹시 엄격하고 전제적이었기 때문에 술탄의 무능함은 대재난과 다를 바 없었다. 술래이만 치세에는 시아파가 어느 정도 존중을 받았다. 그러나 술레이만의 사후 오스만제국의 종교적인 태도는 경직되기 시작했다. 관리들은 사상의 자유, 특히 시아파의 자유를 억압했고, 그들의 출판을 금지했다. 이라크와 페르시아에서는 시아파의 저항 운동이 나타났다. 이 운동은 시아파에 속하는 시파위 왕조의 영향력을 강화했고, 더 나아가 시파위 왕조가 유럽의 국가들과 연합하여 오스만제국에 대항하게 했다. 그러나 강력한 오스만제국은 이를 힘으로 분쇄했다. (p257)

 

오스만 제국의 최후에는 험학한 불관용적 행태가 발작적으로 벌어졌다. (p259)

 

1424년 이후 명의 황제들은 해군을 해체하고 외국과의 무역과 외국의 사상을 거부하면서 병적이라고 할 만큼 폐쇄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국은 1600년 무렵에는 기술적.군사적.상업적으로 크게 뒤처지게 되었다. (p261)

 

토목보에서의 패배이후 명의 외교 정책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그 후 명의 황제들은 갈수록 외국에 대한 혐오가 깊어졌고, 유일한 문명사회인 중국은 내놓을 만한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위험한 야만족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낡은 생각이 부활했다. (p265)

 

다른 라지푸트족의 왕들은 악바르의 유별나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고 용기를 얻었고, 딸들을 황제의 배우자로 내놓는 대신 자신들을 제국의 지배층에 편입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p269)

 

인도는 아우랑제브가 뿌려놓은 증오심과 갈등 때문에 영국의 분열정복 전략의 희생양이 되었고, 아대륙을 차지했던 이슬람교 제국의 위치에서 유럽 제국의 왕관에 박힌 한 알의 보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p277)

 

8장 세계 최대의 해상국가 ?영국

 

불관용은 자신의 대의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 마하트마 간디, 1921

 

빌렘과 메리가 즉위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1689년 영국 의회는 권리장전관용법을 통과시켰다. 이 혁명적인 법령들은 커다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불관용과 반대는 계속 되었지만, 영국은 그 후 200년이 넘도록 지구상에서 가장 관대한 나라라는 명성을 날리게 된다. (p280)

 

영국은 세계 제패를 향해 달리는 도중에 엉뚱한 복병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계몽주의였다.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대영제국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세계적인 패권 국가와는 달리, 자유, 평등, 민주라는 되돌아나갈 수 없는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서고 나서야 세계적인 권력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p280)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합병 조약 이후 영국인들은 스코틀랜드인들을 안아 일으킬 것인지, 아니면 찍어 누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을 통합시켜 충성심을 이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북부의 많은 사람들이 겁내는 것처럼 그들을 억압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영국인들은 전자를 선택했고, 그 덕분에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p292)

 

주목해야 할 사실은,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추진한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p295)

 

영국은 1830년에 대단한 수익을 남기던 노예무역을 폐지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노예무역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침으로써 영국은 주요 경쟁국인 프랑스뿐 아니라, 과거 식민지였던 미국에 대해서까지 도덕적인 우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대영제국은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은 바로 그 시기에 수백만 파운드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나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역사 학자인 린다 콜리의 말을 빌리면, “빅토리아 시대에 노예제도 폐지 운동은 영국의 우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지주 가운데 하나였다. 그 운동은 영국의 국력이 축적된 군비와 자본이 아니라 종교, 자유, 그리고 도덕적 우수성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 어려운 증거를 제공했다. (p300)

 

어느 영국인 중위는 자신이 열두 명을 죽이고도 더 죽이고 싶은 마음을 털어내지 못했던 날을 회상하며 심장은 돌덩이가 되고, 머리에는 불이 붙은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p312)

 

폭동이 끝난 직후에 자유주의자들과 부수주의자들의 의견이 딱 한번 일치한 적이 있었다. 영국의 가장 큰 실수는 종교에 간섭한 것사람들의 습관과 희망에 어울리지 않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p314)

 

1885년부터 1893년까지 인도 군대의 지휘관으로 있던 로버트 경은 그들의 관습과 종교를 존중함으로써 원주민 군대의 만족감과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p315)

 

영국은 인도의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1887년 당시 30만명에 가까운 인도인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고, 1907년에 그수는 5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영국식 교육을 받은 인재들은 후일 인도의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대영제국에 매우 헌신적이었다. (p316)

 

1914년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자, 간디는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영제국의 국민이다. 지금 영국 국민으로써 싸우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문명이라는 선과 영광을 떨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최선을 다해 영국을 지원하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는 것이다.” 수십만 명의 인도 병사들이 세계 전역의 전쟁터에 파병되었고, 모두 100만 명이 넘는 인도인들이 해외에서 제국을 위해 봉사했다. (p320)

 

영국식 교육은 양날의 칼이었다. 갈수록 많은 인도인들이 교육과정에서 배웠거나 해외에서 직접 보았던 각종 자유를 요구했다. 항의, 행진, 파업, 정치적 선동이 인동 아대륙을 휩쓸었고, 이따금 폭동이 일어났다. (p320)

 

1920년 간디는 영국 정부에 대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펼치자는 혁명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인도 국민회의당은 간디의 의견을 좇았고, 수십 년 동안 이어오던 영국의 인도 통치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철회했다. (p321)

 

영국인들이 백인 식민지 주민들과 유색인 식민지 주민들을 대하는 방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1922년 당시 식민장관이었던 처칠은 자치 능력이 없는 후진적인 인종에게 민주적인 기구를 준다는 생각을 비방했다. (p324)

 

니얼 퍼거슨은 이렇게 썼다.

그래서 오클랜드에는 렉싱턴 전투가 없었고, 캔버라에는 조지 워싱턴이 없었고, 오타와에는 독립선언문이 없었다. 더럽 보고서를 읽고 있으면, 글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유감스러워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식민지 미국 주민들이 처음으로 책임감 있는 정부를 요구하던 1770년대에 그런 정부를 세웠다면, 영국인들이 자유에 대해서 자신들이 말했던 대로 행동했다면, 미국에서 독립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인가. 미합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p325)

 

1946년 노동부장관 휴 돌턴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힘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가지,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것뿐이다.” (p326)

 

9장 최첨단 과학 기술의 개척자 ? 미국

 

과거의 모든 초강대국들이 그랬듯이 미국이 강한 국력을 유지하고 있던 참된 비결은 인적자원에 있다. (p331)

 

상업은 종교적 관용을 촉진하는 강력한 기폭제였다. 유력한 상인들은 배척하는 풍조는 사업에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 종교의 자유를 옹호했다. (p335)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옮기면 기독교가 도입된 후로 아무 죄도 없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화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벌금형을 받고 투옥을 당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된 상태에 단 한발작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강압이 어떤 효과를 낳았는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바보가 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위선자가 되었다.” (p338)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종교와 관련된 자유로운 선택이야말로 다원주의 사회에서 분파 간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p339)

 

위싱턴이 직접 했던 말을 옮겨보겠다. “어느 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미 타고난 권리처럼 누리고 있는 것을 관용이라 부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관용이란 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의 은전 덕분에 누리는 혜택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합중국 정부는 불관용을 허용하지 않으며, 박해를 거들지 않으며, 미합중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에게 선량한 국민으로서 걸맞는 행동만을 요구할 뿐이다.” (p340)

 

어떤 이유 때문인지 완전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피부색과 불관용은 종종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우리는 대영제국이 유색의 식민지 주민들을 대하던 태도에서 이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서부 유럽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인종차별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 밀려 들어오는 이주민들의 외모와 행동이 자신들과 흡사하면 흡사할수록 더 많은 관용을 베풀었다. (p341)

 

정당의 영수들과 이주민들 간의 공생관계가 이전까지는 배척당하고 있던 인종 집단들, 특히 아일랜드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p352)

 

19세기 미국 사회는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나라로서 세가지 중요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미국의 종교적 다원주의는 매우 자유분방하여 이주민들은 원하는 종교를 믿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종교의 불씨를 피워낼 수도 있었다.

둘째 민주적인 정보제도는 부패하기는 했어도 새로운 이주민들의 손에 현실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쥐어주었다.

셋째, 활발한 자유 시장은 노동력을 흡수하고 기술에 보상을 해주었으며 기업심이 왕성한 사람들에게 예상 밖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민지가 되었다. (p353)

 

1939년 나치 독일에서 깨진 유리의 밤학살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부 하원 의원들은 독일인 할당 인원보다 많은 2만 명의 유대인 난민 아동들을 미국에 받아들이자는 법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은 상원과 하원 그 어느쪽에서도 표결에 부쳐지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촌이자 이민국 위원의 아내인 로라 델러노는 “2만명의 귀여운 아이들은 곧 자라서 2만 명의 험학한 어른이 될 것이다라는 경고성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p356)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최초의 시민권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전국적인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열정적인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자유를 설교하고 전파할 뜻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국내에서의 자유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를 향해서, 그리고 더욱 결정적으로는 서로를 향해서 이렇게 말해야만 합니다. 이 땅은 자유의 땅이기는 하지만 흑인들은 예외라고. 우리나라에는 이류 시민은 없지만 흑인들만은 예외라고. 우리나라에는 계급도 없고 [특권] 제도도 없고 고립된 집단 거주지도 없고 지배적인 민족도 없지만, 흑인들만은 예외라고.

 

케네디는 또한 미국의 유명 대학 총장들을 워싱턴으로 소집한 후 다양한 그룹의 학생들을 모집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 여러분들이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누가 달라지겠습니까?” (p362)

 

미국은 세계화를 통해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나라이다.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맨손으로 시작하여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모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말을 빌리면, “세계화란 곧 잉여 자본이 주변 국가에서 중심 국가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바로 미국이다.” 1990년대 월마트, 나이키, 맥도널드, 엑슨모빌, 코카콜라, 디즈니 등의 미국 기업들은 반미 정서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서 세계 경제를 지배했다. (p366)

 

미국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누렸던 경제 호황에 직접 연료를 공급한 것은 바로 두 가지 혁명적인 발전이었다. 하나는 마이크로칩의 발견이라는 기술 분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벤처 자본주의라는 금융분야의 혁명이었다. 이 두 가지 혁명적 발전의 근원은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모두 미국이 이민자들의 능력과 진취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덕분에 얻어진 결과였다. (p367)

 

벤처자본은 지금은 익숙한 개념이지만, 1970년대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클라이너가 공동출자한 자금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서 투자를 하고,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회사에 대한 상당량의 지분을 보유하게 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 회사의 도움으로 출발한 회사들 가운데에는 AOL, 지넨테크, 컴팩, 로터스 사, 네트스케이프, 퀸텀,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아마존 닷컴, 구글이 포함된다. (p369)

 

미국의 패권은 세계 최첨단의 재능과 지적인 자본을 끌어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가능했다. (p369)

 

사람들은 굵직한 헝가리식 억양과 청각 장애를 가진 그로브를 적임자라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노이스와 무어가 가진 유일한 채용 기준은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최고의 재능을 갖춘 사람을 고른다는 것이었다. (p371)

 

1968년 컴퓨터 메모리 용량은 자기코어 기술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노이스와 무어는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실리콘칩 속에 집어 넣으면 자기코어 메모리보다 작고 강력하며 값싼 메모리 장치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노이스와 무어는 얼마 후 세계가 마이크로프로세서, 혹은 마이크로칩이라고 일컫게 될 물건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회사 이름을 인터그레이티드 일렉트로닉스(나중에는 인텔이라고 줄여 불렸다)라고 했다. (p371)

 

마이크로칩은 인쇄기와 증기 엔진이 각 시대의 핵심적인 발명품이었던 갓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시대의 핵심적인 발명품이었다. (p372)

 

1998년 러시아 출신의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을 밟다가 휴학계를 내고 동료 학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함께 작은 인터넷 검색 회사를 창립했다. 오늘날 이들이 설립한 구글은 1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시가총액으로 따져서 1,36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p373)

 

다시 말해서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한 데에는 첨단 기술 경쟁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1 9 11일 과학 기술은 미국에게 등을 돌렸다. (p374)

 

10장 추축국의 야욕 ? 독일, 일본

 

인종적 순수성, 인종 청소, 또는 종교적 광신을 토대로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 대단히 편협했던 이 두 정권은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고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추축국들의 급속한 부상은 극단적 불관용이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 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런 불관용을 토대로 한 사회는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p376)

 

잔혹한 불관용은 나치 지배의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나치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곤경 속에서 국민들의 힘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 이었다. 호전적인 민족주의와 인종적 배타주의, 종교적 증오심이 효과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나치의 이데올로기는 굴욕을 당했던 독일 국민들로부터 충성과 희생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 했다. (p378)

 

역사하자인 로데리크 슈타겔베르크와 샐리 윙크은 나치 정책의 유일한 초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히틀러가 국내 개혁과 관련해서 내세운 비전은, 유대인들, 온갖 형태의 다양성, 불만들을 독일 사회에서 일소하는 것, 인종에 근거한 권위주의를 세우는 것, 그리고 전쟁에 동원할 수 있도록 국민을 준비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는 그것 말고는 아무런 비전도 내세우지 않았다.” (p380)

 

나치 독일은 유대인과학을 부인하는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브리튼 전투에서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레이더 기술에서 뒤쳐졌다. 나치는 또한 자국이 과학분야에서 우월하다는 맹신에 빠져 연합국이 자신들의 암호를 해독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않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p382)

 

나치 외교정책의 핵심은 레벤스라움(Lebensraum, 즉 독일인의 생활공간을 의미한다)’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p383)

아무리 많은 기술과 재주가 동원된다고 해도피정복민을 무자비하게 예속시키고 인종적으로 열등한 종족을 물리적으로 근절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만행은 세계를 일깨워 확고한 반대의 입장에 서게 했다. (p386)

 

당연한 결과지만, 인종적 우월성과 인종 청소 따위의 이데올로기들은 청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그들로부터 귀중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관용뿐이다. (p399)

 

11 21세기 새로운 도전자들 ? 중국, 유럽연합, 인도

 

한가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어떤 시대가 된다고 해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숙련되고 가장 진취적인 사람들이 모두 한 지역에서, 혹은 모두 한 민족 안에서 출현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p410)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중국 문화를 좋아하는 어떤 서양 사람이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주해서 영구 거주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중국 국민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수많은 중국인 공무원들, 법률가들, 그리고 미국에 초빙된 중국인 교수들에게 물어보았다. 미국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쉽게 그렇소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내 질문을 받은 중국인 들은 하나같이 난처한 표정으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외국인이 말입니까? 안될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p413)

 

제너럴 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에 따르면, 중국의 기술자들은 기술이전 협상에도 불구하고 터빈엔진 제조 부문에서 두 세대이상 뒤처질 것이다. 어느 중국 공무원도 이 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어디에, 어떻게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왜 거기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지 모른다.” (p418)

 

나의 논지를 따른 다면, 중국은 초강대국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 일류의 인재들을 끌어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의해 세계를 제패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나 중국은 민족을 토대로 한 전형적인 비 이민자 국가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p418)

 

유럽연합의 영토 확장은 군사적 정복에 의지하지 않고 자격 부여와 동의라는 수단에 의지한다. (p421)

 

유럽연합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겠다고 위협하는 대신에경제적인 측면에서 당근을 흔들어 댐으로써 영토를 확장하는 탈제국주의 강국이다. 레너드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반제국주의적이라는 점에서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p422)

 

유럽연합의 관용은 원칙적으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한 관용이다. 유럽의 관용은 유럽을 통합시키는 전략일 뿐이지, 3세계의 이민자들을 유럽으로 끌어들이거나 유럽 국가를 미국과 같은 다민족 이민자 사회로 변화시키는 전략이 아니다. (p425)

 

독일의 그린카드 제도는 국적 취득의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칼럼니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에 따르면, “독일은 똑똑한 젊은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나라와 문화와 가족을 버리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땅에 와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일을 하라고 부탁하면서도, 새로운 조국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을 실패로 끝났고, 최첨단 과학 기술 인력을 유인하기 위한 이후의 노력들 역시 큰 성화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2006년 말 독일 에서는 공학 기술과 관련된 일자리 2 2,000개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것은 그 전해에 비해 30퍼센트나 늘어난 수치였다. (p426)

 

암스텔담과 로테르담 등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10년 이내에 이슬람교도들이 인구의 다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갈수록 늘어가는 이들 소수 집단은 유럽인들의 관용적인 자세로도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p427)

 

이제 유럽의 관용은 이슬람교라는 잠재적인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p428)

 

유럽연합은 외관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인적 자본을 세계 전역에서 유인하여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p431)

 

2,200년 전에 아소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자기 분파는 존중하면서 다른 분파는 깔보는 사람은 (…) 실제로는 바로 그런 행동을 통해서 자기 분파에게 극심한 손해를 입히게 된다.” 센의 주장에 따르면, 관용과 다원주의가 인도에 뿌리를 내린 것은 유럽의 계몽주의보다 앞선 시기였다. (p438)

 

12장 제국의 미래

 

미국 국내에서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이민자들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혹은 경제 후퇴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심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9.11과 미국의 강력한 개입주의 정책이 모든 광경을 뒤바꾸어 놓은 것이다. (p445)

 

3년이 지나 이라크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갈수록 힘을 잃은 것처럼 비쳐지면서, 과거에 미국 국내에서 광범하게 퍼져나갔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는 크게 후퇴했다. 보수주의자이든 자유주의자이든, 처음에 전쟁을 지지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이 전쟁을 지지했던 것은 대량 파괴 무기에 대한 과장된 위협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p448)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이다. (p449)

 

초강대국의 의미는 수백 년에 걸쳐서 서서히 근본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 가장 단순한 관점에서 보면, 정복으로부터 교역으로, 침략으로부터 이주로, 전체정치로부터 민주 정치로 변모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변모에도 불구하고, 모든 초강대국들은 반드시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 즉 내가 접착제라고 표현했던 문제에 직면했다. 세계 제패의 본질이 변화된 오늘날에도 미국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던 접착제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21세기 미국의 권력에 대해 전망할 수 있는 열쇠는 이런 옛 것과 새것의 결합에 놓여 있다. (p449)

 

미국이 성공을 거둔 결정적인 비결은 재능 있고 의지가 강한 진취적인 개인들을 배경에 관계없이 흡수하여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를 제공한 데 있었다. 인적 자본은 미국의 부와 혁신을 급성장시킨 연료였고, 미국이 확보한 우수한 인적 자본은 산업 시대와 원자력 시대, 컴퓨터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p453)

 

존 스틸 고든의 말을 빌리면, “예전에 세계가 로마화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세계가 급속하게 미국화되어가고 있다면, 그 까닭은 우리가 지닌 무기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것을 원하고 그것을 가질 목적으로 자진해서 우리의 행동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결정적인 힘 17세기의 네덜란드 연방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군사력에 있지 않고, 부에 있다” (p454)

 

부를 창조하는 가장 큰 동력은 약탈과 몰수가 아니라, 교역과 혁신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정복이 아니라 이민으로 대체되면서, 전략적인 관용의 양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p454)

 

냉전의 시기, 당시에는 미국의 막강한 권력에 대한 적대감이 비교적 적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극도로 억압적인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확실한 대안은 곧 미국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p457)

 

미국의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수 십억명의 사람들과 미국을 단단히 묶어줄 정치적인 접착제는 미국의 국경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p458)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초강대국들 가운데, 멀리 떨어진 피지배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업에 가장 성공했던 제국은 바로 로마였다. 로마는 흡입력 있는 문화 상품과 시민권을 그리스, , 브리튼, 스페인 출신 사람에게까지 확장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영토에 사는 몹시 다양한 민족들을 로마화할 수 있었다. (p460)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범한 커다란 실수는,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 미국의 상품과 상표, 소비자 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 공통의 가치관과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내면서 다른 민족들을 미국화할 것이라고 추측한 데 있다. 이런 추측은 해방된 이라크 국민들이 미군들을 꽃과 미소로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만큼이나 순박한 것이다. 양키스 야구 모자를 쓰고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이 미국 사람으로 바뀌지 않는다. (p461)

 

성장하는 강국이 박해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로 자국을 개방하고, 관용의 제도를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본보기로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패권 국가가 미국 시민권을 외국 주민들에게까지 확장하거나 그들과의 공통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에게 자국의 관용의 제도를 전파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선의를 가진 수 많은 미국인들이 우려하듯이,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를 포함한 서구적인 관용 정책을 수출하려는 미국의 최근 시도들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이자 자신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실체로 여기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원망과 분노를 사고 있다. (p461)

 

남미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전직 코스타리카 대통령인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와 같은 시장 옹호주의자들조차 미국은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무언지 알려주고 싶어 한다. 당신들은 새로운 천년의 로마인들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비판했다. (p462)

 

수백만 명에 이르는 리비아와 나이지리아, 모로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미국은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설교하기 좋아하고 위선적인 나라이지만, 그들 자신이 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가려고 할 나라이다 (p463)

 

민주정체를 지닌 초강대국은, 세계 만민에게는 지구라는 사회에 참여하고 번영할 권리가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른 모든 나라들은 미국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464)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국이 식민지로 펼쳤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만큼, 제국주의자, ‘계몽된제국주의자를 자처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p465)

 

내가 반대하는 것은 미국 제국을 건설하는 것, 즉 다른 나라들의 정권을 변화시키고 미국식 제도를 강제하는 일에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쓰는 것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계의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니는 것 또한 다른 나라 사이에서 미국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p467)

 

미국으로서는 전 세계를 자신과 똑 같은 모습으로 개조하려는 무의미한 일을 자청하기보다는, 자국의 역사와 원칙에 더욱 충실한 채 세계를 위한 본보기, 언덕 위의 도시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 (p468)

 

앞으로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접착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자국의 주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국이 지배하는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과 공통의 목적의식, 혹은 공통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의 성공과 지도력에 더 많이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p468)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최근 미국 상원위원회에서 9.11 이후 미국의 이민 정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들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들을 쫓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p471)

 

미국은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행적적, 군사적 직위를 주지는 못하지만, 미국 기업 내의 직위를 줌으로써 존경과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한다. (p473)

 

미국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다자주의를 굴복이 아니라 기회로 여겨야 한다. 만일 미국이 스스로 세계적인 문제들에 원인을 제공했음을 인정하고, 그 문제들이 해결될 경우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국제적으로 주도적인 입장에서 그 문제들에 대처한다면, 미국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적인 초강대국의 존립에 반드시 필요한 다른 나라들과의 연대감, 즉 결속감과 공동의 목적의식까지 창조 할 수 있다. (p475)

 

만약 미국이 건국 이후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재발견하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면,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세계의 초강대국, 그것도 강압과 군사력에 의지하는 초강대국이 아니라 기회, 역동성, 도덕성을 갖춘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p477)

 

이 책은 그 무엇보다도 미국의 관용에 바치는 책이다. 미국은 여러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의 부모님을 이끌어온 나라, 그리고 나의 가족이 번영하고 우리 방식대로 변화하면서 미국인이 될 수 있게 해준 나라이다. (p483)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경고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미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은 언제나 예외 없이 관용이었다는 것과 지금 그 비결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경고하고자 한다(p483)

 

역자 후기

학문적인 연구는 당연히 연구자의 관심과 개성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관심에서 출발하더라도 객관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지, 혹은 자신의 처지에 지나치게 치우친 발언을 하는 경우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가지 재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p489)

 

 

 

베이징의 어느 대학생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돌을 던지며 항의 시위에 참석했다가 2-3주 후에 다시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외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싶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만일 미국에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나는 미국의 패권주의 따위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p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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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22:36:30 *.234.77.175
앗! 지도. 좋은 생각이세요. ^^**
그리고 보완점에서 다루는 미국편의 문제도 동감이 가는 내용이고요.
음... 리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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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3.08 23:40:38 *.168.109.134
1.  진현주님께서 언급 하셨던 대로 저자가 강조했던 관용은 또다른 한계성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감이 가네요
2. 아울러 지도그림까지 넣은 센스 대단합니다.
4주간 레이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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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인생을 압축해놓은 책 - 메이킹머니해피 [6] 한명석 2009.03.04 4350
714 미래에 집중하라 구본형 2009.03.04 5037
713 경영의 미래 - 경영자 없이 경영하고 조직없이 운영해 갈... [2] 구본형 2009.03.06 5157
712 제국의 미래/ 에이미추아 file [2] 나리 2009.03.07 4875
711 제국의 미래 [2] 박안나 2009.03.08 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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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 제국의 미래 이승호 2009.03.08 4244
708 제국의 미래-에이미 추아 [1] 류춘희 2009.03.08 4402
707 <제국의 미래>를 읽고 수희향 (박정현) 2009.03.08 4305
706 <제국의 미래>를 읽고 수희향 (박정현) 2009.03.08 4234
705 관리자님 죄송합니다만 도와주세요 ^^:: 수희향 (박정현) 2009.03.08 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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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제국의 미래를 읽고 [2] 정세희 2009.03.08 5079
702 제국의 미래 [1] 정철 2009.03.09 4406
701 제국의 미래 Day of Empire (1) file [2] 김성렬(백산) 2009.03.09 5286
700 제국의 미래 심신애 2009.03.09 4299
699 제국의 미래 [1] 김홍영 2009.03.09 4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