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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9일 11시 10분 등록
 

최민석,  능력자,  민음사,  2012


유서깊은 문학상을 받고 등단했지만, 통장에 3320원 밖에 없는 작가인 ‘나’와, 한 때 세계챔피언이었지만 착실하게 실패를 거듭하여 이제 초능력 타령만 해 대는 ‘그’를 대비시켜, 우리네 삶과 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


‘나’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발기로 괴로워하는 중고생이나 읽는 야설을 쓰고, ‘그’의 자서전 쓰는 일에도 기웃대고, ‘그’는 초능력을 발휘하겠다고 TV에 나가 웃음꺼리가 되는 등 기행을 일삼는다. 그러다가 돌연 복싱으로 돌아 간 ‘그’가 사력을 다 한 시합에서 죽자 ‘나’는, “나는 과연 자신의 링 위에 제대로 선 적이 있었던가” 하는 질문을 품는다.


알고보니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던 ‘초능력 타령’은 세태에 대한 풍자. 모든 것이 실적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오직 성공을 위해 내몰리는 사람들,  누구는 그것을 극기라고 부를지 몰라도 사실은 자기학대가 아닌가, 작가는 묻고 있다. 


세상이 이대로 흘러가면 모두 초능력자가 되어야 해. 이게 미친 짓이라는 걸 누군가는 증명해 내야 해. 초능력자의 말로가 어떤지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서 평범한 능력만으로도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고, 대수로운 인물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보잘것없는 시간들이 값지다는 것을.


만담에 가까울 정도로 걸쭉하고 능란한 입담에 빨려 들어 가 낄낄대다가 돌연 허를 찔린 기분이다. ‘그’의 토로에 짐짓 숙연해진다.  


나는 끝까지 버텼어. 난 포기하지 않았어, 알지? 꼭 그렇게 써야 해


‘그’는 끝까지 ‘능력자’로 기억되기를 갈망하지만,  이미 자신의 삶으로 존재를 입증했으므로 ‘나’는 그의 자서전을 쓰지 않고, 대신 소설을 쓴다. ‘그’의 투혼이 야설로 막혀 있던 창작열에 불을 지른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전지훈련을 하던 추도로 내려가 6시에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달렸다. 땀이 났다. 눈물이 났다. 물을 마셨다. 다시 노트북을 열어 퇴고를 시작했다.


한 줄을 써도 확실하게 알고 쓴 덕분일까. 자전적 느낌이 물씬 나는 좌절과 반전이 묵직하게 가슴으로 전달된다. 진실되면서도 드라마틱해서 좋다.


그가 오징어 건조사업에 투신한 이유는 실로 단순한 것이었다.

“세상에 씹어 먹을 놈이 너무 많다.”


이런 식의 재담은 거의 저자의 문체라고 할 정도로 즐비하고, 재미와 흡입력 속에 문제의식을 넣는 솜씨도 믿음직스럽다. 소설 한 권이 그만하면 된 것 아닌가?  가끔 소설을 읽고 싶어 기웃대는데 끝까지 빨려 들어 읽을 책이 많지 않던 차에 모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건 방어전은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삶에 충일했던 시기로 돌아 가 죽고 싶었던’ 그의 계획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그는 시합내내 ‘교정을 떠나는 노교수의 눈빛처럼 그리움에 젖어,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이 가슴 속에 고향을 담아두려는 듯한 자세’로 관중과 함성을 둘러보고 느낀다. 자신의 존재증명이 가능한 지점, 링 위에서의 죽음을 택한 그를 보며 ‘나’도 내 본연의 장소로 돌아간다.


사회의 압력에 떠밀려서 했든, 스스로의 초월의지에 붙들려서 했든 한계까지 내몰리는 상황은 비슷하다. 그러나 자발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느끼는 충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를 것이고, 결과적으로 삶의 편차도 클 것이다. 그 일을 하다가 죽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바로 그 사람이 ‘능력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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