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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4일 03시 27분 등록

그리스인 이야기 (구본형, 생각정원)

유형선

 

1.       저자에 대하여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구본형 선생님 주위를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이야기한다. ‘구본형 선생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분이십니다. 매우 드문 케이스이시죠.’

새벽마다 2시간씩 글을 쓰고, 매년 1권 이상의 책을 내는 삶을 십수년 이상 지속해온 고집쟁이. 돈과 명예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꽃단장한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성공이란 각기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끊임없이 설명하는 변화경영사상가. 이미 100명의 변화경영연구원을 양성하였고 500명의 꿈벗 커뮤니티를 구성한 중심 인물. 자신의 꿈은 남은 삶을 시처럼 살다 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 이런 문장들이 구본형을 대신한다.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삶을 사랑하는 구본형은 최근 2년 사이 그리스신화에 관련된 책을 연달아 세상에 선보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 19번째와 20번째 자신의 책을 모두 그리스 신화에 헌정한 셈이다. 19번째 저서 신화 읽는 시간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 내면에 담긴 유치하고 기괴하며 비도덕적인 이야기를 숨김없이 밝혀내어 새로운 차원의 인간 에너지로 융합해 보려는 실험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그리스 신화를 철저하게 재해석하여 자신의 언어로 내뱉으려는 노력이 빛났다.

이제 20번째 저서 그리스인 이야기가 나왔다. 우선 200여개의 그림이 독자의 가독성을 높인다. 작가는 그리스 신화에서 출발하여 트로이 전쟁을 거쳐 오디세우스의 귀향과 로마의 건국을 주축 삼아 후대 철학과 문학과 예술에 남긴 그리스인들의 족적을 한 권에 담으려 하였다. 구본형은 위험으로 가득한 모험을 선동하려고 그리스인 이야기를 썼노라 명백하게 밝힌다.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이타카에 도착한 백전노장 오디세우스가 다시 이타카의 젊은이들에게 저 바다로 항해를 떠나자고 선동하는 것 같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한 때 니체가 외쳤고 이제 다시 20권의 책을 써낸 경력의 백전노장이 외치는 아지테이션agitation이 굵디 굵은 팔뚝질과 함께 하늘에 퍼져 독자의 가슴에 출항의 바람을 불어 넣는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5) 이름 없는 사람들, 자신의 세상을 갖지 못한 사람들, 아직 긴 모험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신화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위험한 모험을 선동하는 북과 나팔이다. 그러므로 이 위험한 대화를 기억하라. “너는 왜 아버지의 집을 떠나왔느냐?” “불행을 찾아서지요.”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중에서

 

(p16)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당신 자신을 아는 것

그럼 무엇이 가장 쉬운가

조언하는 것

신은 무엇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

가장 가치 있고 정의로운 삶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 비난 당한 삶을 스스로 살지 않는 것

탈레스

 

아리스티데스는 자신을 추방하고 싶어 하는 사내에게 아리스티데스가 그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소. 사실 난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더군요. 나는 그게 지겨웠소

그는 사내가 내민 도자기 파편에 자신의 이름을 묵묵히 써주었다.

 

(p18)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bell은 비교종교학과 신화학 분야에서 특별한 정신적 제국을 만들어냈다. 그는 어떤 조직을 만들어내지 않았지만 그의 해석과 통찰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생각을 통해 그 생각이 지배하는 자신의 지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나 역시 그의 지적 세계에 영향을 받은 그의 정신적 제국의 일원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은 크든 작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pp 18-19)

나의 신하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 하나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자주적 삶의 방식도 없고 정신적 독립성도 없는 대중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작은 왕국 하나를 건설해가는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를 교환하는 것.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모멸이 온몸을 휩싸는 일에 뛰어드는 것. 모든 신화를 바로 이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신화 읽기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그런 류의 책들은 너무도 많다. 이 책은 모험의 선동을 위해 쓰였다. 모험에의 초대,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pp 24-25) 먼저 풍요로운 대지가 하늘을 낳고, 그 하늘을 다시 지아비로 하여 둘의 사랑으로 세상의 만물들이 생겨났다. 그리스인들에게 천지창조의 신화는 없다. 신이 우주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가 신들을 만들어냈다. 하늘과 땅이 남편과 아내가 되어 신들을 만들어냈으니 삼라만상이 모두 의인화된 크고 작은 신들이 되었다.

à 우선 대지가 생겨났다는 점. 그리고 하늘이 생겨났다는 점이 크다. 권력의 생성 순서를 의미하는 것 같다. 토착 부족공동체에서 도시국가, 나아가 연합국가로 변화하는 단계로 해석한다면 어떠한지. 또한 우주가 만든 신이라는 점도 크다. 신은 곧 시작도 끝도 없이 늘 항상성을 가진 삼라만상의 속성이며 또한 항상성을 가진 인간 종족의 모습이다.

 

(p 29) (제우스의 권력을 빼앗아갈 운명을 타고 날) 아들을 낳게 될 여인의 이름을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다그쳤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침묵했다. 그러자 제우스는 그에게 매일 독수리가 간을 파먹는 고통을 주었다. … 파먹힌 간은 다음 날 다시 생겨나 매일 똑같은 고통이 반복되게 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굴복하지 않았다.

à 현대 직장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업과 자본이라는 절대권력은 직장인, 즉 인간에게 끊임없이 다그친다. 그러나 인간은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같은 종족인 인간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보호한 인간은 늘 이 좋지 않다. ‘이 파먹히는 고통속에서도 인간은 또다시 새벽을 맞고 하루를 시작한다. 변치 않는 인간의 운명.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굴복하지 않았다굴복하지 않는 인간성! 요컨대 인간이 인간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고통조차 인간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고통을 넘어 새로 재생하는 간처럼, 인간을 저버리라는 권력이 제 아무리 공격해도 이에 맞서는 인간의 저항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올 때마다 새롭게 부활할 것이다. 이 역시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이로구나!

 

(p 30) 판도라Pandora모든 선물이라는 뜻이다. … 즉 강점과 약점, 저주와 축복 모두를 받은 여자가 되었다. 제우스는 한 사람 안에 너무도 많은 대립적 요소들을 넣어두면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갈등해서 하루도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모순, 갈등, 패러독스, 딜레마가 바로 태초의 인간의 조건이 되었다.

à 왜 이 대목을 읽을수록 인간이 한없이 가련하게 보이는지. 레미제라블Les Miserales!

 

(p 31) 상자에 담겨 있던 모든 불행과 저주가 세상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직 희망만이 그상자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후 악과 불행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도 인류는 희망만은 버리리 않으며 살게 되었다. 제우스의 뜻대로 되었다.

à 제우스의 뜻이 무엇인가? 절대자의 뜻이 무엇인가? 희망만은 간직하라는 뜻인가? 결국 제우스가 마지막까지 간직하라는 단 하나의 뜻이 희망인가?

고등학교라는 안전한 테두리를 벗어나 대학의 공간에서 세상의 불의를 바로 눈 앞에서 마주대하던 94년 프레쉬맨 시절, 나는 당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최윤 작가의 하나코는 없다를 읽었다. 소설의 정확한 문구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의미였다. 읽고 또 읽으며 나지막이 탄식했던 기억이 난다. 내 언어로 표현해 보련다. ‘희망은 마약이다. 폭풍우 같은 삶의 풍파에 지쳐 쓰러질 만 하면 인간은 다시 희망이란 마약을 투여한다. 마약을 맞는 순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 걷는다.’

 

(p31) 힘의 정의가 되었고, 선량한 사람은 약한 자가 되어 더욱 살기 어려워졌으며, 범죄를보고도 분노하는 자가 없었고, 누구도 가엾은 사람에게 선을 베풀지 않았다. 제우스는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렸다. 아흐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가 퍼부었고 홍수가 끝나자 세상에는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판도라의 딸 피라)은 살아난 것을 신들에게 감사하고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대지의 뼈인 돌멩이를 등 뒤로 던지자 땅에 떨어진 돌들이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수많은 인간이 만들어 졌다.

à 폐허 뒤에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은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지라이다. 어머니의 뼈는 인류의 유산을 의미하는 것 같다. 등 뒤로 던지려면 무엇보다 대자연을 찾아 내야 한다. 모두 사라진 것 같지만 장구한 세월을 견디고 남은 ’, 즉 폐허 속에 남은 대자연이라는 유산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 살아남은 유산을 등 뒤로 던져야 한다. 눈 앞이 아닌 볼 수 없는 등 뒤로 던지라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대자연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겨야 비로소 인류가 번성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대자연을 인류의 의지로 쌓으려 하지 말고 소위 불확정한 상태에 둘 때 비로소 인간도 번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p 32)

시인은 노래한다. … 우리는 모두 대지의 뼈로 만들어진 존재. 불행 속에서도 뼈가 아직 부러지지 않았다면 언제나 희망은 있는 법.

à 내가 해석한 방향이 구본형 사부님께서 해석한 방향과 크게 다르지는 않는가 보다. 다행이다.

 

(p 33) … 그렇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느 한 부분은 여전히 한 인류로서 중세인이며, 고대인이며, 그리스인이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 인류의 모든 과거가 살아 숨 쉬고 있다가 어떤 야생의 순간에 원시의 순수한 힘으로 우주적 교감을 이루게 될 때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신적 시선은 의식의 혁명을 겪게 된다.

à 지리산 종주를 한 열 번 정도 경험해 보았다. (정확하게 몇 번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박 삼일동안 산행을 하면서 드넓은 하늘과 영롱한 별과 발 아래 구름과 끝을 모르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경험한다. ‘문명을 떠나 원시속에 묻혀 순수한 힘을 얻는 기쁨이야 말로 산행을 하는 힘이다. 나에게 고전읽기는 또 다른 산행이다.

 

(p 34) 서기 2세기경에 살았던 그리스의 여행가이며 지리학자였던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페르세우스가 미케네 왕국을 건설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à 건국영웅 설화는 비슷비슷한 모양을 가진다. 심지어 삼국유사의 건국영웅들의 신화 역시 고대 아시아 지역의 건국영웅 신화와 비슷한 패턴을 가진다고 학계는 말한다. 결국 무엇인가를 이루는 과정은 고난과 방황으로 가득 찬 모험의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결과 뒤에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공동체의 구전 전승과정을 통해 조금씩은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패턴의 가면으로 전승된다.

 

(p 37) 아테나는 빛나는 방패를 페르세우스에게 빌려 주었다. … 헤르메스는 보검을 빌려 주었다. 방패와 보검을 얻게 되자 페르세우스는 용기백배하여 메두사를 찾아 떠났다. … 그들은 그라이아이라고 불렸는데, 이 말은 빛깔이 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백발의 노파들이라는 뜻을 얻게 되었다. 이 괴이한 여인들은 한번도 젊었던 적이 없이 처음부터 노파로 태어났다. 하나의 눈알을 가지고 셋이서 번갈아 봐야 하고 하나의 이빨로 번갈아 씹어야 하는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메두사에게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으며, 메두사를 죽이는데 꼭 필요한 세가지 무기가 있는 곳을 아는 유일한 길잡이들이었다.

à 나에게 방패와 보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직 길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아직 방패와 보검을 전해줄 아테나와 헤르메스를 찾고 있다.

또 하나. ‘그라이아이같은 가장 가련하고 징그러운 이질적 존재들을 두려움 없이 마주 대할 때 보물의 위치를 얻을 수 있다. 이질적 존재를 대하는데 두려워 말자! 이질적 존재를 만나러 떠나는 모험의 길은 불행을 가져오지만 불행을 겪지 않는다면 얻는 것도 없다.

 

(p 43) 메두사의 목은 페르세우스에게 잘려 페르세우스의 영광을 기리는 장식물이 되고 말았지만 메두사의 영혼은 죽는 순간 하늘의 별이 되어 되살아났다. 아테나가 벌한 것을 포세이돈이 보상해 준 것이다.

신화속의 메두사는 두 개의 대극적 가치를 모두 붙들어 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메두사는 괴물이면서 동시에 매혹적인 여인이다. 죽음이면서 또한 부활이다. 희생된 자이면서 죽인 자와 결코 다르지 않은 동질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이야기 속에 여러 모습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 이런 이원적 대립 장치는 그리스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유체계였다.

à 대극! 심리학자 을 기억한다. ‘은 동양의 태극을 통해 대극의 원리를 배웠다. 대극의 원리를 배운 융은 다시 서양정신세계를 다시 해석하여 본래의 가치를 부활시켰다. 대극과 태극을 이해하면서 니코스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관계,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과 멘도사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p 45) 메두사와 아테나는 핵심적인 요소, 즉 뱀과 눈빛에서 동일하다. … 실제로 페르세우스가 아테나에게서 빌린 방패를 방어용 병기가 아닌, 메두사의 목을 베기 위한 거울로 사용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아테나와 메두사는 거울의 양쪽에 서 있는 같은 인물이었을까?

고르곤 메두사의 얼굴은 또한 볼 수 없는 죽음을 형상화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메두사가 두렵고 무서운 밤의 경계나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로 등장한다. 이러한 상징성은 중세를 지나는 동안 단테의 <신곡>이나 밀턴의 <실낙원>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죽음과 저승의 문지기인 메두사가 산 것들은 저승의 길목에 들어설 수 없게 그 사나운 얼굴로 막고 있다.

 

(p 47) 교실의 왕따, 누가 봐도 지질이. 교실의 깡패, 누가봐도 문제아. 하나는 괴롭히고 하나는 당하지만 둘 다 같은 사람.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 가운데 침묵하는 다수가 그러지 마라고 외쳐야 해결되지.

à 사회 문제의 대부분은 침묵하는 다수가 입을 열 때 변화가 시작한다. 조선의 역사를 보아도 가장 침묵하는 계급인 농민이 일어설 때 세상이 뒤엎어 졌다. 그렇다면 침묵하는 다수가 사회문제 앞에 그러지 마라고 외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어둠이 극에 달할 때? 어둠이 극에 달하기 전에 침묵을 깨울 수는 없는가?

내 자신의 인생을 보아도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침묵하는 내면의 자아가 침묵을 깰 때 나는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변화를 가져오는 궁극의 힘은 결국 침묵을 투명하게 마주대할 때 시작되는 것인가?

 

(p 54)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이 있는데, 첼리니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메두사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여인의 나신으로 페르세우스의 발밑에 죽어 있다. 신기하게도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얼굴이 대단히 흡사하다.

à 책에 시뇨리아 광장의 첼리니 작품 사진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신혼여행에서 보았던 시뇨리아 광장이 떠오른다. 또한 사진을 보니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얼굴이 정말 쌍둥이처럼 똑 같다. 첼리니는 내 자신을 칼로 쳐 죽일 때, 진정한 혁명은 시작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목이 잘린 메두사의 미음을 그려본다. 가장 저주받은 운명을 단칼에 쳐 준 페르세우스가 고마웠을 것 같다.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시원했을 것 같다.

 

(P 55) 무엇을 가지지 못하면 불편하고 사람을 얻지 못하면 삶 자체가 허무. 세상의 보물 딱 하나만 들라면 단연코 사랑이지. 목숨을 건 것이 목숨을 살리는 법. 그걸 잡으려면 온 삶을 다 걸어야지.

à 진리의 말은 이렇듯 가장 단순한 법이다. 가장 단순하게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은 대극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길이다.

 

(p 59) 메두사는 페르세우스를 벗어날 수 없고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벗어날 수 없다. 이 둘은 마치 하나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pp 74-75) 크레타 출신의 위대한 작가이며 그곳에 자신의 몸을 묻은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는 크레타인들이 그 옛날부터 황소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힘을 키웠다고 말한다. 육체가 지닌 유연성과 매력, 활활 타오르면서도 냉정하고 정확한 동작, 욕정의 훈련, 그리고 힘찬 황소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샘솟는 정력을 가꾸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길들이지 않은 야수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인간의 미덕이 두려움에 승리를 거두는 놀이로 변형되었다. 크레타인들은 황소를 적이 아니라 동지로 여겼기 때문에 황소를 죽이지 않고도 승리를 거두었다. 만일 황소가 없었다면 크레타인들은 그토록 튼튼하고 매혹적인 육체와 용맹한 정신력을 얻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위험한 놀이를 견뎌내려면 잠도 못 자는 굉장한 훈련을 하며 담력까지 쌓아야 하지만, 경기의 비법을 체득하면 동작 하나하나가 단순해지고, 확실해지고, 우아해진다. 희망이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황소와 심연을 마주하는 이 영웅적이고 장난스러운 크레타인들의 눈을 그는 크레타의 시선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크레타는 어머니의 젖가슴이었고 끊임없는 영감과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고향이었다.

à 비법을 체득할 때 비로소 동작 하나하나가 단순해지고 확실해지고 우아해진다. 이런 문구는 마치 김용의 영웅문에서 본 것 같다. 쿵푸, 즉 공부는 결국 내공이 쌓이고 경지에 이를수록 간단 명료하나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길로 진보한다. 내 삶도 이렇듯 한 해 한 해 갈수록 단순 명료하며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p 89) 아리아드네: 모든 젊음은 미망의 미로에서 이 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니

à 아리아드네! 외우려고 잡을수록 자꾸만 기억나지 않는 묘한 이름! 아리아드네! 이 실을 나 역시 놓치지 않겠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유일한 활로!

 

(pp 92-93)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는 들어올 때 풀어둔 실을 따라 미궁을 벗어났다. 그는 그 실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왜냐하면 곧 생명이었으므로, 아리아드네를 사랑한 시인 윌리엄 스태퍼드William Stafford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The Way It Is>이라는 시에서 절대로 놓아서는 안되는 실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지.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그러나 그 실만은 변치 않아.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하지.

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해.

그렇지만 그 실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

그 실을 꼭 잡고 있는 한,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아.

살다보면 슬픈 일도 일어나고,

사람들은 상처를 입거나 죽기도 하지.

너는 고통받고 늙어갈 테지.

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어.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으면 안 돼.

 

(pp 95-100)

그녀의 찢어진 가슴을 불쌍히 여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배은망덕한 인간 대신 신을 애인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낙소스 섬은 주신 디오니소스가 좋아하는 섬이었다. 그곳에 버려진 아리아드네를 발견한 디오니소스는 그녀를 위로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그는 결혼 선물로 보석이 박힌 금관을 주었다.

아리아드네를 사랑한 시인이며 철학자인 니체는 <디오니소스 송가>에서 고통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인 그녀를 위해 이렇게 말한다.

 

현명하구나, 아리아드네여.

너는 작은 귀를 가졌으며, 너는 나의 귀를 가지고 있으니

그 안에 지혜로운 말 하나를 담아두어라.

자기가 사랑한 것을 자기가 먼저 미워해서는 안 되는 법,

나는 너의 미로이니라.

 

(P 97) 니체가 디오니소스의 입으 ㄹ통해 아리아드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사랑한 것을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배신하고 떠나는 사랑을 어찌 미워하지 않으리.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인간은 복잡하고 이율배반적이며, 패러독스이고 스스로에게 딜레마인 것이다. 나는 너의 미로인 것이다. 아리아드네야말로 미로 탐험 전문가 아닌가! 아리아드네야말로 사랑의 미로이며, 삶의 미궁이며, 스스로가 미궁임을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여인이었다. 여기서 니체는 외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이제 아리아드네의 미로는 디오니소스가 되었다. 다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의 발치에 누운 표범이다. 그녀를 사랑한 디오니소스는 후에 그녀가 죽었을 때 손을 높이 들어 아리아드네의 금관을 공주에 던졌다. 그리하여 아리아드네의 금관은 별이 되어 하늘에 남게 되었다.

 

(p 98)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결코 잊지 마라.

희미한 소명의 길은 미궁과 같으나

어두운 내면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없으니

두려우리라 생각한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죽으리라 생각한 곳에서 살게 되리라.

 

(p 102)

오래전부터 기술자들은 기술이 윤리적으로 중성이라고 생각했다. 인류 스스로를 파멸시킬 문건들 역시 만든 사람이 책임이 아니라 사용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최초로 핵을 이용한 대량 살상 무기가 만들어질 때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 매력적인 기술이 눈에 띄면 우리는 일단 거기에 달려들어 일을 벌인다. 그 기술이 성공한 다음에야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따져본다. 원자폭탄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pp 102-104)

스티브잡스 금단의 상자를 열어 모든 죄악을 이 세상에 뿌리듯이 그도 스마트폰을 만들어 세상에 뿌림으로써 생각 없음을 인류에게 선물했다. … 생각이 사라지고 정보가 주가 되면서 사람들은 몰입을 잊어버렸다. 또한 사람들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작은 기계에게 물어본다.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찾을 수 없고 노래 가사를 기억하지 못함으로써 시를 잊었다. 결국 메모리를 잊어버렸다.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는 죄가 전염병처럼 범람하게 되었다.

 

 

(pp 106-107)

허물을 벗고 새로워지는 뱀은 죽지 않는 동물로 신성시되었다. 크레타에서는 뱀을 부리는 뱀의 여신을 섬겼고, 아테네 역시 신성한 뱀을 섬겼다. 아테네의 창설자인 케크롭스 역시 반은 뱀이고 반은 인간의 모습이었고,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의 신선에는 성스러운 뱀이 살고 있어서 매달 꿀로 만든 과자를 뱀에게 올렸다. 아테나 여신의 방패 밑에도 강력한 뱀이 휘감겨 있다. 뱀은 흔히 신정이나 가정의 수호신으로 상징화되었고, 무덤 주위를 배회하는 망자의 혼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상업과 도둑 그리고 목동의 신이기도 하고, 죽은 자를 하계로 인도하는 신이기도 하며, 신들의 전령이기도 한 헤르메스의 신물 중 하나는 케리케이온kerykelon이라는 지팡이다. 이 지팡이에는 마주보는 두 마리의 뱀이 휘감겨 있으며 날개가 달려 있다. 두 마리의 뱀은 죽음과 부활, 생과 사,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등 대극적 가치를 나타내며, 두 마리의 뱀이 엉켜서 마주 보는 것은 그 조화를 의미한다. 뱀은 운명 그 자체로서 재앙처럼 느닷없이 나타나고, 복수보다 생각이 깊고, 운명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의 상징이다. 발도 날개도 없이 스미듯 침투하는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는 한 마리의 뱀이 휘감겨 있다. … 지금도 구급차에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그려져 있다.

à 느닷없이 나타나는 재앙같고 복수보다 생각이 싶고 운명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의 상징.

 

(P 113)

오직 후세의 셰익스피어만이 견주어질 수 있는 위대한 그리스의 비극들은 이 축제를 위해 쓰였고 박수 속에서 참가자들은 디오니소스에게 영광을 돌렸다.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또한 잔인한 사냥꾼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는 고통을 체험한 유일한 신이다. 그는 포도나무처럼 매년 가지치기를 당하고 추운 겨울 갈래갈래 껍질이 찢어진 죽은 나무둥치처럼 매년 갈기갈기 찢겨 죽는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매년 부활한다. 기쁨에 차서 다시 살아나며 죽어야 할 자들에게 죽음이 희망이라는 믿음을 준다. 그는 부활을 통해 죽음보다 더 강한 생명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불멸의 신인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왕녀 세멜레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간의 여인이 낳은 유일한 신이다.

à 나에게 디오니소스는 헌책방이다.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헌책방에서 들러 책 한 권 들쳐보면서 새 순을 틔울 용기를 얻는다.

 

(p 120) 헤라클레이스가 머리통이 달린 사자 가죽을 옆에 내려놓자 아이들은 진짜 사자인 줄 알고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옆에 서 있던 하인의 칼을 뽑아 들고 사자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것이 헤라클레스와 어린 테세우스의 첫 만남이었다. 헤라클레스와 어린 테세우스는 이렇게 서로 끌리게 되어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당시 사촌형인 헤라클레스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잔혹한 도둑들과 강도들을 물리쳤다. 사촌 형의 무용담은 어린 테세우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고 그를 깊이 존경하게 만들었다. 그는 늘 헤라클레스를 생각했고, 그를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다.

 

(p120) 어쩌면 승리가 그를 도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고, 오만이 약속을 잊게 했을지도 모른다.

 

(p127) 만인이 환호하는 영웅이 되었으나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불임의 영웅.

à 만인을 사랑하고, 만인이 사랑하는 사람은 곧잘 단 한 사람도 사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는 만인을 사랑하기 보다 단 한 사람을 사랑하며 살겠다. 단 한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길이 진정 만인을 사랑하는 길임을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단 한 사람을 사랑하자.

 

(p 128) 그는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평등을 조건으로 외지에서 적극적으로 인구를 유입시켰다. “모든 민족이여, 이 땅으로 오라.” 이것이 그의 기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민주정치를 펴기 위해 왕의 자리를 내던진 인물이 바로 테세우스였다. 다른 도시국가들이 한 사람의 절대군주 밑에 머리를 조아리는 체제를 구출해갈 때 아테네는 모든 나라와 도시 중에서 가장 자유롭고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 테세우스는 국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위대한 나라의 초석을 놓았다.

 

(p 136) 그녀(메데이아)는 여전히 이아손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배신당했다. 그녀는 분노와 증오로 불타올랐다.

그래, 여자는 비겁해질 수도 있지. 칼을 들이대면 벌벌 떨지. 그러나 잠자리를 지킬 권리를 빼앗긴 여자보다 더 피에 굶주린 영혼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거야.”

 

(p137)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에서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들을 내 손으로 없애고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해. 우물쭈물하다가 이 아이들이 더 혹독한 사람의 손에 죽게 해서는 안돼. 이 아이들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야. 그렇다면 차라리 어미 손에 죽게 해서는 안 돼. 이 아이들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야. 그렇다면 차라리 어미 손에 죽는 것이 행복하다 할 수 있지. 마음을 돌같이 먹고 ……. 무얼 주저하는 것이냐. 자 불쌍한 이 손. , 칼을 잡아라 쓰라린 삶의 출발점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 아아, 이 세상에 나 같이 불행한 여자가 또 있을까.”

 

(pp 140-141) 음모가 발각된 메데이아는 도피하여 엘리시온으로 갔다. 한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그곳에서 아킬레우스와 결혼했다고 한다. 가장 센 남자와 가장 센 여자가 만난 것이다. 쪼다 이아손 정도로는 그녀의 사랑을 채울 수 없다. 아마도 메데이아만 한 불 같은 여인을 품을 수 있는 사내는 아킬레우스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 아닐까? 아니면 불쌍한 그녀의 영혼은 엘리세온 안에서 구원된 것일까?

 

(p141-143) 나는 메데이아가 아이들을 죽이는 순간,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철저히 파괴되는 순간 괴테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다시 만나게 된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승리의 기쁨에 충만한 순간 외치는 멈추어라 시간아, 너 참 아름답구나는 여기서도 등장한다. 바로 이 때 악마는 우리의 영혼을 넘겨받게 되어 있다. 악마에게 영혼이 넘어가는 순간 신은 영혼을 악마의 손에서 구원한다. 그레첸 역시 그랬다. 파우스트에게 버림받고 미쳐서 제 손으로 제 자식을 죽이고는 가장 비참한 나락에 떨어졌을 때 신은 그녀를 구원해주었다. 신은 인가의 바닥에 존재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달콤한 죄악 오 펠릭스 쿨파라고 표현했다. 이것을 철저하게 하나의 동물적 존재가 죽고 영적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의 시선으로 보면 옛 아담이 새 아담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로 원죄다. 인간은 영원한 기쁨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타락한다. 그러나 그 타락이 없었다면 구세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때 이 승화는 그냥 낙원에 머물 때의 의식보다 더 높은 의식의 수준에 도달하게 한다. 그 타락이 없었다면 더 높은 영혼으로의 승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죄악이 얼마나 달콤한 타락인가! 죄악, 바로 육체의 죽음 없이는 정신적 존재로의 재생도 없다. 선불교의 스승 육조 혜능은 그리하여 기가 막힌 명언 하나를 남겨두었다.

우리의 순수한 정신은 타락한 정신 속에 있다

사랑의 배신은 그러나 불 같은 여인을 냉혹한 마녀로 만들고 말지.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어 그를 찌른 칼이 다시 나를 찌르게 되지. 그의 심장을 찌를 수만 있다면 나의 심장쯤이야, 오 달콤한 죄악.

 

(p 146) 만년에 이르러 이런 실수들로 인해 쇠락한 테세우스는 아테네에서 추방당해

 

(p147) 어찌 되었든 영웅 테세우스는 그렇게 조국 아테네에서 쫓겨나 분명치 않은 이유로 죽고 말았다.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자살, 아내 파이드라의 자살, 아들 히폴리토스의 억울한 죽음에 이어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테세우스의 인생은 영광과 비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테세우스는 죽음 자체는 불우했으나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도 그리스인들 중 가장 사랑받는 영웅으로 남게 되었다. 테세우스가 아네테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의 조국 아테네가 번성한 데는 그럴 만한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 테세우스는 인간으로서 가장 불행하고 동시에 가장 장엄한 영혼이 더 이상 떠돌지 않게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그와 그의 조국 아테네는 가장 장엄한 인간, 오이디푸스 왕의 유해를 거두어들임으로써 신탁에 따라 신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오이디푸스의 축복’, 그것은 무엇일까?

 

(p 152) 화염 속에서 코로니스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아폴론은 제자인 케이론에게 이 아이를 맡겼다. 케이론은 하체는 말이고 상체는 사람인 켄타우로스였다. 아폴론에게 의술을 배우고 아르테미스에게 사냥을 배운 현인이었다. 케이론은 이 아이를 의사로 키웠다. 이 아이가 자라서 의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되었다.

 

(p 153) 아스클레피오스는 위대했으나 그 출생도 죽음도 모두 비극이었다.

 

(p 154) 뱀은 재생과 불멸의 상징성을 갖는 동물이다. 매년 커지기 위해 허물을 벗어야 하고, 허물은 과거의 것이니 허물을 벗는 행위는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상징이다. 또한 뱀은 자신의 꼬리를 물면 원이 된다. 원은 돌고 돌아 끊이지 않는다. 즉 영원이다. 아직도 우리는 구급차에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이를 감싸고 있는 뱀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과 문명의 상징체계 속에서 면면히 이어진다.

 

(p 155) 시인은 마음을 다 털어내지 못하여 다시 노래한다.

자신의 일을 하다 죽기 바라네. 태어나 운명대로 길을 가고 그 길위에서 늙으리니.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바로 천직이니 천직이 다한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되나니.

 

(p 157-158) 델포이는 땅의 배꼽인 옴파로스가 놓여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제우스가 세상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각각 독수리를 날려 보냈는데, 델포이에서 서로 만났기 때문에 이곳을 세상의 배꼽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곳은 척박하기 그지 없는 땅이었다. 코레타스라는 양치기가 델포이 신전 자리를 지나다가 어떤 향기에 취해 황홀경에 빠졌기 때문에 이 궁벽한 장소가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일종의 신탁을 받은 것으로 여겨 여러 신들을 모신 신전들을 여기에 세웠으나 최종적으로 아폴론 신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신탁을 전해주는 장소를 아디톤이라도 부르는데, 그 안에서는 종종 향긋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알 수 없는 향기를 프네우마라고 불렀다. 이것은 일조의 바람 같은 영혼의 기운으로 여겨졌다.

à 프네우마를 통해서도 신탁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지금의 삶에서 아주 가끔 찰나의 바람결에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일상의 기도이다. 기도란 맑은 햇살 혹은 맑은 옹달샘 같아서 주변의 먼지 한 올 까지 투명하게 드러낸다. 먼지 한 올 한 올이 보이는 사람은 엉덩이를 가만히 붙이고 있을 틈이 없다. 닦고 정리하고 또 닦는 일상을 반복한다. 이것이 영성이다.

 

(pp 160-161) 아폴론은 변해가는 그녀(다프네)를 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슬피 말했다. … 나는 영원한 청년이니 그대 또한 영원한 상록수가 되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대의 잎이 시들어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러자 다프네는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이렇게 아폴론의 첫사랑은 끝났으나 그의 사랑 이야기는 영원히 남아 전해지게 되었다.

 

(p 161) 아폴론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널리 숭상된 영향력 있는 신이었다. 그들은 아폴론을 사랑하여 포이보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밝다또는 순수하다라는 뜻이다. 오직 제우스와 레토만이 태양신 아폴론의 존재를 견딜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두려움과 그의 권위는 그가 가지고 다니는 활로 나타낫고, 그의 부드러움은 리라로 표현되었다. 그가 음악과 시와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세 가지 기능의 불가분성 때문인 것 같다. 시인이자 의사인 존 암스트롱은 이 연결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음악은 온갖 기쁨을 드높이고 모든 슬픔을 진무한다. 모든 병을 몰아내고 고통을 어루만져주니, 예부터 고대의 현자들은 의술과 음악과 시가를 떼놓지 못하고 함께 숭상했다.”

….

옴파로스의 바위는 델포이의 박물간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p 163-166) 부엉이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상징하는 신조다. 아테나는 로마 신화 속의 미네르바다. 부엉이 역시 지혜를 상징한다. 부엉이는 원래 레스보스 섬의 왕 에포페우스의 딸인 닉티메네였다. 아버지와 통정하고 근친상간의 수치심 때문에 숲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아테나가 그녀를 가엾게 여겨 부엉이로 변신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부엉이는 낮이 끝나고 어둠이 깔려 부끄러움이 보이지 않을 때 활동하기 시작한다. …..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말은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서 한 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서야 그 첫 날개를 편다라는 말에 의해 유명해졌다. …

철학이 회색에 다시 회색을 덧칠할 때 삶은 이미 늙어버린 모습이 되어 있다. 잿빛에 잿빛을 덧칠하면 그 삶의 모습은 젊음을 다시 찾지 못하고 단지 인식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서야 그 첫 날개를 편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헤겔에게 철학은 앞날을 예측하게 하는 새벽의 학문이 아니다.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 아래서 비로소 그 뜻이 분명해지는 저녁의 학문이다. 자유는 모든 것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며, 진리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물을 파악하는 사유다. 국가의 권위나 종교적 도그마에 얽매인 사유로는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유는 자유로운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무지와 몽매와 왜곡과 편견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는 우리를 묶어두는 역사적 조건이 사라진 다음에야 찾아온다. 철학은 이미 일어난 일을 해석하여 지혜를 얻는 것이므로 발걸음이 늦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헤겔은 오독의 철학자다. 어렵고 모호하고 희미하다. 그래서 영어에서 ‘sound like Hegel’이라고 말하면 애 또 뭔소리를 하는겨?’라는 뜻이 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가보자.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맞서는 개념이 카를 마르크스의 갈리아의 수탉이다. 서양인들은 갈리아 지역(지금의 프랑스)이 닭의 원상지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닭을 갈리아의 새라고 불렀다. 갈리아인들은 고대부터 수탉을 새벽의 새로 신성시했다. 수탉은 갈리아의 신으로 숭상되기도 하고 갈리아 군대의 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도 수탉이다.

갈리아의 수탉은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맞불 개념인데, 수탉은 아침에 울러 세상을 깨운다. 철학은 새벽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에 앞서 그것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현실이 다 지나간 다음에야 따라오는 늙은이의 지혜가 아니라 실천과 행동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유명한 <포이어바흐의 테제> 속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르 해석만 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철학자의 사명은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혁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역시 갈리아의 수탉이 등장하는 전후 문맥으로 살펴보자.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또 정신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그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 모든 내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독일 부활이 날은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다.

 

à 구본형 사부님은 그리스 신화를 쓰는 이유를 선동하기 위해서라고 서문에 밝혔다. 나는대학시절 철학을 전공하며 철학의 역사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역사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신화와 철학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선동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文史哲은 원래 한가지이니 결국 인문학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내가 누구인지 질문한다면,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보건데) 아편의 종교도 진정한 구원의 종교로 거듭날 수 있고, 프롤레타리아트도 생산관계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다. 공자님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一以貫之!

 

(p 170)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때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 그건 사람이지. 어릴 때는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젊어서는 두 발로 걷고, 나이가 들어서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니까.

….

두 자매가 있었다. 첫 번째 여인이 두 번째 여인을 낳았고, 그렇게 태어난 두 번째 여인이 다시 첫 번째 여인을 낳았다. 이 자매의 이름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가 풀어낸 답은 낮과 밤이었다.

à 인생이 무엇인지, 시간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금기이다. 왜 금기일까? 이 금기를 어기고 두 눈 부릅뜨고 문제를 풀겠다고 뛰어드는 자는 결국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차라리 두 눈을 찔러 버리는 걸까? 그래서 금기로 두는 걸까? 끔찍한 자신의 모습을 볼 용기있는 자만이 금기에 도전하는 것일까?

 

 

(p 175) 저 삼거리의 길이여. 세 갈래의 숲과 오솔길이여. 너희는 내 손에서 나와 피를 나눈 내 아버지의 피를 마셨구나. 그리고 그 이후에 이곳에 와서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육친끼지 피를 섞는 죄를 범했으니, 그 더러운 일을 입에 올리기조차 더럽구나. 나를 쫓아내라. 죽이든지 바닷속으로 던지든지. 부탁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 죄는 나 외에는 누구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p 177) 오직 큰 딸 안티고네만이 오이디푸스를 따라 나서서 그의 손과 눈이 되어주었다.

 

(pp 178-179) 신이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죽은 다음의 축복,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거두어준 나라에 대한 번영의 약속은 당시 테세우스가 다스리던 아테네에 돌아갔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영웅적 삶과 비극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물리치는 대신 호의를 가지고 받아주었다. 그가 자신의 왕국 내에서, 바로 콜로노스의 숲 속에서 임종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가 버린 비참한 사람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보호해준 테세우스의 선행은 또한 제 자신을 구원하는 끈이 되었다. 오이디푸스 사후 테세우스 역시 아테네에서 쫓겨나 죽었으나 그를 잊지 못하는 아테네인들에 의해 테세이온에 안치되어 아테네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아테네는 그리스 최고의 국가로 번영했고, 멸망한 다음에도 인류 역사상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도시국가로 남게 되었다. 오이디푸스 역시 테세우스와 함께 그리스를 수호한 영웅이 되어 기려졌다. ….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이제 한 인간이 기나긴 고난을 지나온 후 자신의 지독한 운명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었다.

 

(pp 184-185) 두 사람(안티고네와 크레온)은 타협을 모른다.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빼닮아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안티고네는 의지로 무장하고 있다. 크레온도 이 녹록치 않은 조카딸이 꼬장꼬장한 정신에 뻣뻣한 성격을 가졌다고 두려워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동굴에 가두었다. 아버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를 만큼 독한 인물이었듯이 그 딸인 안티고네 역시 지독하여 스스로 목매 죽고 말았다. …… 말로만 하는 사랑을 증오한다. 안티고네는 오직 하나의 사랑, 여기서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에게 모든 것을 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전부를 바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동생 이스메네에게도 함께 오빠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거나, 아니면 자신의 인생에서 빠지기를 바랐다. 친구가 아니면 곧 적이다. …… 자신의 믿음에 절대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비타협과 불관용이 필수적이고 또한 효과적이다. 물러서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귀함은 배타적이다. 안티고네의 고귀함은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동굴에 갇힌 그녀는 자신의 믿을 을 지키기 위해 이제 자살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목을 매면서 그녀의 삶은 끝났다. 안티고네라는 영웅은 한계에 다다르고 벽에 부딪쳐 추락한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핵심이다.

 

(p 185-186) 신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용기와 믿음으로 스스로를 넘어섬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저 멀리 밀어낸 사람들의 추락과 파멸을 다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평은 바로 이런 영웅들의 부딪힘에 의해 알려진다. 어느 영웅이 넓혀 놓은 경계는 다른 영웅이 나타남으로써 다시 조금 더 확장된다. 모든 영웅의 공통점은 그때까지 알려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척후병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변방을 넓혀왔다. 끝까지 간 사람들, 그들이 영웅들이다. 그들은 원래 평범했으나 삶을 통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물로는 비극을 쓸 수는 없다.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쓰일 수 밖에 없다.

 

(p 187-188) 물로 쓰인 비극은 없다.

그것은 오직 피아 눈물로 쓰일 뿐.

영웅이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끝까지 간 사람들.

그 끝에서 인간과 신이 가르는 황금장벽 앞에서 좌절되는 것, 비극.

인간의 법은 늘 바뀌는 것, 신의 법은 영원한 것.

북극성 같은 양심을 법으로 심판함으로써 법은 스스로 타락하는 것이니.

미덕을 가슴에 품은 자들은

인간성에 대항하는 독재자의 법을 거부하노니

역사는 그렇게 자유를 키워왔나니.

 

(p 188) <그리스인 이야기>를 쓴, 매우 특별한 경력의 문학가인 앙드레 보나르는 이 두 사람을 닮은 꼴 성격, 상반된 영혼 이라고 표현한다. 기질과 성격은 판박이지만 지향점은 서로 반대라는 것이다. 굽힐 줄 모르고, 강인하고, 잔인할 만큼 지독하고,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타협할 줄 모르는 두 사람은 자신에 충성하는 광신자들이다.

 

(p 190-191)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 주어 죽게 생기자 크레온의 아들이며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거나 구걸하지 않는다. 그 역시 굽히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 그들은 다시 정면으로 맞선다.

하이몬: 바르게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크레온: 내가 이 나라를 내 판단이 아닌 남의 판단으로 다스리라는 말이냐?

하이몬: 한 사람의 소유물이라면 그건 나라가 아닙니다.

크레온: 국가가 통치자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

하이몬: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막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크레온: 괘씸한 놈, 이렇게 터놓고 아비를 적대시하다니.

하이몬: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정의를 어기고 계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크레온: 나의 왕권을 존중하는 것도 잘못이냐?

하이몬: 신의 명예를 짓밟으시면 왕권을 존중하는 것이 못됩니다.

크레온: 다 그 계집을 위해서 하는 말이구나. 살아서는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다.

하이몬: 그러시면 그 여자는 죽는 것이지요. 죽음으로써 또 다른 한 살망르 죽이는 겁니다.

크레온: , 나를 위협하는 것이냐?

하이몬: 잘못 생각하신 것을 말씀 드리는 것도 위협입니까?

 

2500년 전의 대화는 갓 쓰인 대사처럼 싱싱하다. 오늘날 읽어도 섬뜩하지만큼 전혀 낡지 않은 모습으로 신선한 냉수처럼 우리의 갈증을 축이며 목구멍을 넘어간다.

 

(p 198) 모든 전쟁은 어리석다. 만약 전쟁을 꼭 해야만 한다면 권력을 위해서도 아니고 부를 위해서도 아닌 사랑을 위한 전쟁이 시인들이 다루기에 가장 적합했다.

 

(p 201) (하인리히 슐리만) 6주에 하나의 언어를 해치웠다. 그리고 다음은 러시아어를 배웠다. 어떻게 6주에 하나씩 언어를 배울 수 있을까? 재능이 뛰어나서일까? 그것보다 더 중욯나 비밀이 있었다. 그의 비결은 집중하고 외우고 현장에서 써먹는 것이었다. 그의 외국어 마스터 비결을 따라가 보자.

그는 먼저 사전으로 러시아 알파벳을 익혔다. 힘들게 문법을 배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 영웅의 모험담을 러시아어로 암송했다. 그가 큰 소리로 암송하는 소리가 싸구려 하숙집 담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결국 그는 하숙집에서 쫓겨 났다. 그러나 그는 기죽기 않고 계속 외워댔다.

그러다가 그는 들어주고 비판해줄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난뱅이 하나를 일주일에 4프랑을 주고 고용했다. 이 가여운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알지도 못하는 텔레마코스의 모험을 두 시간씩 들어줘야 했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일기를 썼다. 6주 후 그는 경매장에서 러시아인들과 유창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열정과 몰입 그리고 실전이 6주에 하나씩 언어를 익히는 비결이었다.

 

(p 202) 그는 몽상가였고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확신에 찬 이상주의자였으며 실천하는 몽상가였다.

à 미쳐서 산 삶이 하인리히 슐리만을 신화로 만들었다.

 

(p 209) 원래 파리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는데, 그가 태어나자 나라를 망하게 할 사람이라는 신탁이 있어 이데 산에 버려 양을 치게 했던 것이다.

세 여신은 각자 파리스를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을 약속했다. 아테나는 모든 전쟁에서의 승리와 영광을 주겠다고 했고, 헤라는 유럽과 아시아의 군주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고,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사랑을 선택했다.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건네주었다.

à 왜 파리스는 사랑을 선택했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승리와 영광과 왕권이 어린 파리스를 버럼받게 했다. 파리스는 승리와 영광과 왕권보다 자신을 받아줄 사랑이 필요했다. 결국 사랑을 버리는 행위는 전쟁을 낳는다.

 

(p 213) 예언자 칼카스는 바람을 관장하는 여신 아르테미스가 분노하여 바람을 모두 불러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신은 왜 화가 났을까? 그리스 병사 하나가 아르테미스가 가장 아끼는 토끼 한 마리를 그 새끼와 함께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신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었다. 처녀신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순결한 피로 화를 풀 것이라는 부조리한 신탁이 내려졌다.

à 이게 종교의 본질인가?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종교는 사라져 마땅하다.

 

(p 214) 분노에 떠는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어쩌다 이 조작극에 연루되어 명목상 이피게네이아의 남편이 된 수줍은 용장 아킬레우스도 명예를 걸고 그녀를 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피게네이아는 스스로 여신의 인신 공양물이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고 아킬레우스의 도움을 거절했다.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의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이 어려운 결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영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그려두었다.

à 작가의 숙명은 너무도 괴롭다. 이런 비극을 그리는 것이 작가의 숙명인가? 무엇을 위하여? 후대에는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가?

 

(p 215) 자신이 만들어낸 난폭하고 비정한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써 부조리에 복종해 버렸다. 부조리에 맞서는 대신 애원하는 두 여자,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이피게네이아의 간청에 꼿꼿이 맞서 꼭 필요한 전쟁이라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명예를 존중하나 사랑을 저버렸고, 왕의 체면을 지키느라 진실을 버렸다. 그리고 그 비정함을 왕의 용기로 포장했다.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라 한낱 비겁자에 불과할 뿐인데, 그는 비겁한 길을 선택했다.

à 비겁하게 살지 말자!

 

(p 243) (아킬레우스)는 두려움을 몰랐으며, 싸우는 것에 가장 큰 열정을 느꼈다. 젊은 아킬레우스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배움을 준 스승은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이다.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의술을 가르쳐준 현명한 인물이다.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사냥하는 법과 말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또 노래와 리라 연주도 가르쳐주었다. 더불어 세속적인 부에 대한 경멸, 거짓에 대한 혐오, 정념과 고통에 대한 절제 등 고대의 미덕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육체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케이론은 그에게 용맹을 심어주기 위해 사자와 멧돼지의 내장을 먹였고, 온화함을 키워주기 위해 꿀을 먹였고, 설득력을 키워주기 위해 곰의 골수를 먹였다.

à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지 나온다.

 

(p244) 오디세이아는 망자의 세상에 살고 있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잠시 전해준다. 그는 수선화가 만발한 들판을 거닐고, 그의 주변에는 파트로클로스, 아이아스, 아가멤논 등 트로이 전쟁의 친구들이 모여 있다. 그는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가 용감했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를 자신의 모범으로 숭배했다. 아킬레우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스타티우스의 <아킬레우스>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문학 작품들이 가장 즐겨 다루는 인물 중 하나였다.

 

(p 251) 사랑을 위해 부도 힘도 택하지 않았기에

그 선택이 가슴을 울려 따라나섰건만

밤새 술병 속에서 쏟아지는 것은 별이었건만

아침에 발견한 것은 들판 이슬 속의 나.

사랑의 단명함이여, 필멸의 인간의 불멸의 꿈이여.

 

(pp 225-226) 이때 아킬레우스 진영으로 찾아간 프리아모스는 높은 몸값을 지불하고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때의 장면이 <일리아스>속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위대한 프리아모스는 그들 몰래 안으로 들어가서는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자기 아들들을 수없이 죽인, 남자를 죽이는 그 무시무시한 두 손에 입 맞추었다. …… 아킬레우스는 신과 같은 프리아모스를 보고 깜짝 놀랐으며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프리아모스는 이렇게 애원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서 있는 그대의 아버지를. 그 분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날마다 사랑하는 이들이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낳았지만 그중 한명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홀로 싸우다가 그대의 손에 죽고 말았소. ……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더 동정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차마 못한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을 죽인 사람의 얼굴 앞에 손을 내밀어 간청하고 있으니 말이오.”

아킬레우스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헥토라의 시신을 기름으로 깨끗이 닦아 돌려 주었다. 아킬레우스는 12일간 휴전을 선언했다. 비로소 트로이인은 창과 칼과 방패를 내려놓고 자신의 수호자 헥토르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헥토르의 장례식과 더불어 <일리아스>는 끝이 난다.

 

(p 257) <일리아스>는 헥토르가 결전의 마지막 날 아내와 작별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안드로마케가 눈물을 흘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와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당신은 이상한 분이세요. 당신의 용기가 당신을 죽일 거예요. 어린 아들과 머지않아 과부가 될 이 불행한 아내가 가엾지 않은가 봐요. …… 투구를 번쩍이는 위해한 헥토르가 대답했다. …… 내가 겁쟁이처럼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트로이인들과 긴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 여인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오. 그러니 내 마음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구려. 나는 언제나 트로이인들 앞에 서서 아버지의 위대한 명성과 내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 ……

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보자.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는 것이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

 

(pp 274-275)

망국의 백성들은 그리스군에게 유린당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기약없는 모험길에 올랐다. 길 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도 온통 역경과 고난 뿐이었다. 그 무엇도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오로지 희망 하나만을 품고 용기를 끌어 모아 전진하는 것밖에는. 그들은 수없이 넘어질 때마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 위에 올랐다. 그들은 어떤 순간에도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폐허에 주저앉는 대신 미래를 향해 용감하게 길을 나선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모든 종족들 위에 1000년간 군림했다.

 

(pp 287-289) 오레스테스: 법은 무죄를 선언했으나, 양심은 위로받지 못하고

오레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속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내 중 하나다. 가장 비극적인 사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세상을 떠도는 오이디푸스라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는 두 번째 비극남쯤 될 것이다. 운명이 이끄는 비극적 인생을 살다가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많다. 그러나 스스로 죄임을 알면서도 그 죄를 의무로 짊어지고 그 끔찍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도록 기계 장치에 걸려든 사람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오레스테스는 평생 어머니를 죽인 죄악에 시달려야 했다. 죽이기 전에는 죽여야 된다는 책임에 시달렸고 죽인 후에는 살모의 죄의식에 시달렸다.

 

(p 289) 기다려라, 오레스테스. 이것을 보아라. 내 아들아, 이 젖에 매달려 잠들면서 이빨 없는 잇몸으로 맛있는 젖을 빨지 않았느냐?

 

(p 293) 아테나가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별도로 평화롭게 거주할 수 있는 땅을 떼어주고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경배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는 저주 대신 자비와 축복을 내리는 권한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대지로부터 은총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게 하고 가축들이 풍요로움이 항상 찾아오게 하여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 불경한 자들을 징벌하고 모든 옳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축복을 맡게 했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 후부터 이들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라는 이름 대신 자비의 여신 에우메니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오이디푸스는 이들이 사는 콜로노스의 숲에 이르러 그 동안의 모든 고행을 끝내고 이들의 축복을 얻게 된다.

 

(pp 306-307)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페넬로페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여러 용사들의 부인 중에서 유일하게 남편의 오랜 부재에도 지조를 지킨 여인으로 남아 있다.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이아를 매우 사랑했다. …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을 되찾기 위해 집과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정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 팔라메데스의 꾀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되었지만 그가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이유는 막 텔레마코스를 낳은 페넬로페이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이 일로 팔라메데스에게 양심을 품게 되었고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p 311)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다닐 때 오디세우스는 메넬라오스의 말처럼 님프 칼립소의 섬인 오기기아 섬에 억류되어 있었다. …… 우리는 오직 오디세우스가 떠난 출발점 트로이와 그의 목적지 이타카가 어디인지 알 뿐이다. 그리고 그가 거쳤던,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고난의 장소들은 어디인지 모른다. 신화 학자들은 그 장소들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 안달했지만 그곳들은 침묵한다.

 

(p 313)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기를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p 316)

승리자에게 승리가 없는 전쟁.

몸은 가족을 떠나 진흙 위를 구르고

정신은 사람을 죽여 포악한 짐승이 되었구나.

그대로는 부드러운 아내 곁에서 사랑을 즐길 수 없어

돌아가는 길, 푸른 바닷물로 참혹한 전쟁의 마음을 씻어야지.

 

신들은 물을 휘몰아쳐 고초를 겪게 하여

전쟁이라는 어리석음을 자초한 자들에게

전쟁이 평화가 아님을, 승리가 곧 패배임을,

창끝으로 죽인 자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 하네.

그리하여 알게 되지, 남에게 한 짓이 곧 내게 한 짓임일.

 

(pp 323-324) 기분좋게 취한 거인(키클롭스)은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물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니라고 말했다. …… 배를 타고 떠나면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군가 왜 눈이 멀게 되었는지 묻거든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카에 살고 있는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하시오

 

(pp 331-332)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병사들은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오디세우스도 키르케에게 자신들이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키르케가 말했다. ‘하지만 그대는 먼저 다른 여행을 마쳐야 해요. 그대는 저승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집으로 가서 아직도 정신이 온전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령에게 집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물어보아야 해요. 페르세포네는 그에게만은 죽은 뒤에도 슬기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했으니까요.’

이 말을 듣고 오디세우스는 그 험하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운명에 낙담하고 울었다. 하지만 그는 실컷 울고 난 다음 키르케에게 하데스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가야 할 길이라면 두렵지만 가야 하고 고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거부하지 않으리라.

à 결국 온전히 죽어야만 가야만 하는 그곳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구나!

 

(p 335) 세상을 떠나 죽은 자들의 통치자가 되느니 차라리 이승에서 재산도 없고 가난한 머슴이 되는 것이 더 좋겠다 (아킬레우스의 혼령)

 

(pp 353-354)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가 정말 자신의 남편 오디세우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하녀에게 신혼에 함께 쓰던 침상을 꺼내 그 위에 모피와 번쩍이는 침구를 깔아 오디세우스가 쉴 수 있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짐짓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구려. 누가 내 침상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단 말이오. 아무리 솜씨 좋은 자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거요. 신이라면 모를까. 그 침상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소. 오직 만든 나와 당신만이 아는 비밀이오. 우리 집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나무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소. 그 줄기는 기둥처럼 굵었소. 나는 그 올리브나무의 우듬지를 잘라 밑둥에서부터 잘 다듬은 다음 그 주위에 돌들을 촘촘히 쌓았소. 그리고 그 기둥에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 못을 치고 침상을 만들기 시작했소. 그 침대가 다 만들어진 후에 금과 은과 상아로 아름답게 완성했소. 누구도 그 올리브나무의 밑둥을 잘라내지 않는 한, 그 침상을 움직이지 못한다오.

 

(p 355) 그리하여 오디세우스는 20년의 방랑을 마치고 젊음을 다 보낸 다음에 다시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인생에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어깨에 아름다운 무구를 걸치고 일어섰다. 황금의 노년이 그를 찾아왔다.

 

(p 368)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

 저는 꿈을 꾸고 있는 기분입니다. 여러 책들이 로마인의 위대성을 전해주었지만 로마의 폐허를 보는 것만으로는 로마의 최전성기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과거에 이 같은 나라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확신하며, 또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나라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à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로마제국 번영사>가 아닌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은 다시는 이런 나라가 나타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랬다.

 

(p 385)

내게 다가오는 그대는 그대가 맞나요? 그대가 내게 정말 소식을 전하러 왔나요? 여신의 아들이여, 그대는 살아 있는 것인가요? 생명의 빛이 이미 그대를 떠나버렸다면 나의 헥토르는 어디 있나요?

 

(p 397) (헤르메스가 아이네이아스에게 카르타고를 떠나라고 이야기 한다) 그대는 자신의 왕국과 운명을 잊었는가? 하늘의 제왕인 제우스께서 직접 나를 그대에게 보내셨다. 바람을 헤치고 달려온 내가 그분의 명령을 전하니, 당장 이곳을 떠나 그대에게 예정된 왕국을 찾으라. 커가는 그대의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희망을 생각하라. 이탈리아 왕국과 로마 땅은 그의 몫이니.

 

(p 398) 아이네이아스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애써 억제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그대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그대에게 신세를 졌다오. 여왕이여, 내 생명의 입김이 나의 사지를 지배하는 동안 결코 당신을 기억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오. 내 운명은 트로이와 아직도 살아 있는 내 동포를 돌보는 것이오. 신께서 내게 위대한 이탈리아를 차지하라 명령하셨소. 그곳이 나의 사랑이며, 나의 조국이오. 이슬 젖은 그늘로 밤이 대지를 덮을 때마다, 불타는 별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아버지 안키세스께서 괴로워하며 내게 다가와 어서 여기를 떠나 네 왕국을 세우라고 말한다오. 내 아들에게 운명 지워진 그의 왕국을 물려주지 못한다면 그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오. 제우스께서 친히 사자를 보내 내게 경고하셨소. 그러니 나와 그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랑 그만하시오. 내가 그대를 떠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오.

 

(P 410) 시인은 노래한다.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난 길을 멋모르고 달리 듯이 걷다 보면

문득 길이 끊기고 어두운 숲,

거미줄이 얼굴에 걸릴 때쯤 알게 되리

인생은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살면서 가장 큰 모험은

죽음을 미리 겪어보는 것.

황금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700년을 산 시빌라의 안내를 받아

지난 삶을 건너 새로운 포구에 이르면

살아야 할 새 삶이 나타나는 법

 

(P 428) 전쟁이 끝나고 아이네이아스는 팔라스를 라티움의 한 언덕에 묻어두고 그 구릉을 팔라티누스 언덕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젊은 용사 팔라스의 이름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는 투르누스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아이네이아스는 라비니아와 결혼하여 그녀의 이름을 딴 라비니움이라는 도시를 세웠다.

 

(p 435) 그들은 한때 이름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자신의 모험을 떠남으로써 자신의 이름으로 나라 하나를 건설했다. 모든 시작은 초라하다. 그것은 하나의 꿈으로 시작한다. 꿈속의 씨앗하나가 자라 하늘의 별에 닿을 때 새로운 제국 하나가 생겨났다. 로마는 한 여인의 고단한 꿈에서 태어났다.

 

(p 450) 자기경영의 요체는 왜곡되고 강요된 껍데기의 삶을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모색이다. 나의 세계를 찾아내 그 주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기 혁명인 것이다.

 

(p 452)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푸른 바다를 향한 열망이 나를 이미 선원으로 키웠으니 나는 독에 매어둔 배에 올라 묶어둔 줄을 풀고 두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바다로 나서네, 나의 세상을 찾아서.

 

 

내가 저자라면 (A4 2페이지 이상)

 

- 자신이 이 책의 저자가 되어 목차와 전체적 뼈대를 논하라.

그리스 신화와 문학을 소개하는 단 한 권의 책으로 선정할 수 있도록 저자는 목차와 구성을 치밀하게 고민하였다. 하나씩 뜯어보자.

 

1) 선동으로 시작하여 선동으로 마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밝힌다.

모든 신화는 바로 이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신화 일기를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그런 류의 책들은 너무도 많다. 이 책은 모험의 선동을 위해 쓰였다. 모험에의 초대,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p 19)

 

작가는 에필로그를 마치며 선동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독에 매어둔 배에 올라 묶어둔 줄을 풀고 두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바다로 나서네, 나의 세상을 찾아서. (p 452)

 

2) 그리스 신화와 문학을 모험의 시작전쟁귀환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한다.

1부는 시작이다. 그리스 문명의 발원지 미케네, 크레타, 아테네 그리고 테베에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를 4장에 걸쳐 각각 설명하면서 도시국가와 문명의 시작이 되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2부는 전쟁이다.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영웅과 신들의 모든 것을 낱낱이 설명한다. 3부는 귀환이다.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를 종합하는데, 전쟁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이 배신과 복수를 통해 벌이는 비극을 설명한다. 또한 오디세우스의 이타카 귀향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준다. 또한 멸망한 트로이의 후예 아이네이아스가 신탁에 따라 새로운 자신들의 제국을 찾는 모험을 드러낸다.

 

3) 각 이야기의 끝에 작가의 감상을 시로 표현한다.

신화는 노래다. 신화는 결코 감상이 빠져버린 뉴스가 아니며 고동치는 심장으로 녹여낸 이야기임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감상평을 시의 언어로 적어 마친다.

 

4) 200여개의 그림과 주요 신들의 이야기를 Tip으로 정리하여 이해를 돕는다.

한 두 장 지나기가 무섭게 등장하는 명화와 조각상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또한 12신들과 신화속 주요 캐릭터를 설명하는 Tip을 통해 독자에게 풍부한 읽을 꺼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그리스신화가 후대의 문학과 음악과 미술에 남긴 족적을 풍부하게 밝혀 서양문명의 근간을 이해를 돕는다.

 

-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1) 단연코 아리아드네 이야기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사랑했지만 배신 당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결코 미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 부분을 니체의 인용하며 선명하게 부각한다. 인생이라는 미로탐험에서 삶이 미궁이며 스스로가 미궁임을 잘 아는 현명함이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한 자세임을 역설한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2) 오이디푸스가 두 눈을 찌른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아모르 파티를 설명한다. 옮겨 적어본다.

오이디푸스는 미약한 존재로서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우주가 전하는 부름을 받고 가장 불운한 삶의 길을 견뎌갔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거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이 불행에 협력하여,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고국에서 추방당함으로써 그 불행을 정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불행의 절대적 의미를 완성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게 되자 그를 그렇게 몰아세웠던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그 너머로 들어선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체는 아테네와 그리스 전체를 수호하는 성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이제 한 인간이 기나긴 고난을 지나온 후 자신의 지독한 운명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었다. (p 179)

 

3) 이타카로 돌아와 페넬로페와 재회한 후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 특히 이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그리하여 오디세우스는 20년의 방랑을 마치고 젊음을 다 보낸 다음에 다시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인생에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어깨에 아름다운 무구를 걸치고 일어섰다. 황금의 노년이 그를 찾아왔다. (p 355)

훗날 나 역시 제 2의 인생기에 이런 모습을 가지고 싶다. 그렇게 모험은 끝나고 행복하게 살았더라가 아니라 두 번째 인생에 자신을 바치기 위해 어깨에 무구를 걸치고 일어나고 싶다. 진정한 아모르 파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          보완점을 평설하라

1) 별자리 이야기가 좀더 나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별자리 이야기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류의 유산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다음 작품이 그리스인들이 별자리의 이야기라면 좋겠다.

 

2) 147페이지에서 오이디푸스의 축복’, 그것은 무엇일까? 라며 질문을 던졌는데 178페이지에서야 그 이유를 설명한다. 중간에 뚝 끊긴 느낌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연결할 수 있는 장치가 아쉽다.

 

3) 오디세우스의 이름이 변화되는 과정을 좀더 일목요연하게 설명했어야 한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오디세우스가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의 변화를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모양새가 아무도 아닌 자 우데이스에서 도시의 파괴자, 다시 오디세우스로 변화하는 과정을 좀더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20132 4 새벽, 坡州 雲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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