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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0일 22시 03분 등록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총 30쪽 첨부. 그중 1,3만 여기에 옮김.

  1. 저자에 대하여---1

2. 책 요약, 인용---5

3. 내가 저자라면---29

******************

1.저자 소개--샤를-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 Charles Louis Joseph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 )

출생사망-- 1689 ~ 1755

대표분야-- 정치철학/ 대표이론-- 계몽주의/ 대표저서-- 법의 정신

관련철학자-- 장 자크 루소

생애 연보

1689 보르도 인근의 들 라 브레드 성에서 태어남

1696 포도주 생산 및 재배로 부유한 가정이었으나 모친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음

1700 오라토리오 종파의 학교인 쥘리 중학교에 입학하여 엄격한 교육을 받음

1705 쥘리 중학교를 마치고 보르도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함

1708 졸업 후, 법률학의 실제 경험을 얻기 위해 파리로 진출, 변호사 생활을 함

1713 부친의 사망으로 다시 보르도로 돌아와서 사법부의 평정관이 됨

1715(26세) 부유한 신교도의 딸인 잔 드 라르티크와 결혼하여 2남 1녀의 자녀를 둠

1716 백부인 몽테스키외 남작이 죽자 그 뒤를 이어 보르도 고등법원장이 됨

1721 소송 업무에는 흥미를 잃어, 물리학·식물학 등의 자연과학에 몰두하다가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익명으로 발간하여 일대 파문을 일으킴

1726 문필에 뜻을 둔 그는 관직을 팔아 버리고 파리로 이주함.

1727 “어떤 슬픔도 한 시간의 독서로 풀리지 않은 적은 내 생애에 한 번도 없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독서가인 그는 공석중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출마하여 28년 1월 24일 회원으로 선출됨.

1728(39세) 4월부터 장기간의 유럽 여행을 계획하여 비엔나,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을 여행함.

1729 영국으로 건너가 2년간 머물면서 종교적 내용과 인신의 보호 등 정치적 자유의 여러 조건들에 관하여 고찰함과 동시에 방대한 자료 수집

1734(45세) 그간의 연구 업적인 <로마 성쇠 원인론>을 발표.

1743(54세) 라 브레드 성으로 돌아와 자연과 서적에 둘러싸여 장기간의 연구 끝에 불후의 명저인 <법의 정신>을 탈고. 46년 12월까지 세부적인 부분에 수정을 가한 후, 48년에 드디어 발간되어 2년 동안에 22판까지 거듭하는 대성공을 거둠.

1750 “단 3시간이면 모두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저술하기 위하여 나의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었다”라고 할 정도로 악화된 그의 건강으로 은둔생활을 함. 소르본의 학자들과 성직자의 비난에 항변하기 위해 <법의 정신의 변호>를 저술.

1754 디드로, 달랑베르 등이 편찬한 ‘백과사전'에 협력하여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만드는 데 공헌.

1755(66세) 2월 10일 사망. 이 지성의 철학자의 장례식에는 오직 디드로 한 사람만이 참석한 가운데, 파리에서 쓸쓸히 거행됨

*

정치 사상가요 법률가요 역사가로서 18세기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그 명성을 떨쳤던 몽테스키외는 그의 매우 긴 이름 (Charles Louis Joseph de Secondat, Baron de la Brède et de Montesquieu)이 말해주듯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조부는 보르도의 고등법원장인 법복 귀족이었고 그의 부친은 왕실 친위대의 무관 귀족이었으며 그가 11세 때 작고한 그의 모친 역시 뿌리 깊은 영국 가문의 후예였다. 모친이 사망한 해에 어린 몽테스키외는 오라토리오 수도회가 운영하는 쥬이의(Juilly) 학교에 보내져 거기서 1711년까지 종교 교육은 별로 없이 문학과 고전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25세가 되던 해에 부계 쪽의 삼촌으로부터 그의 평생 칭호가 될 몽테스키외 남작이란 칭호와 권리를 물려받고 보르도 고등 법원의 평의원이 된다.

1715년 몽테스키외는 프로테스탄트인 쟌느 라르티그와 결혼, 슬하에 세 자녀를 두게 된다. 그러나 가정과 직업이 그의 관심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는지 재직 9년 만에 고등법원장직을 넘기고 학문에 전념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결국 그의 평생의 유일한 정열이 되었다. 그가 후에 기록한 대로 “학문 연구야말로 인생의 온갖 번뇌에 대한 나의 최선의 처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 나는 평생 한 시간의 독서로 쫓아버릴 수 없는 걱정을 가진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그의 자서전은 그의 작품 준비와 저술에 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몽테스키외의 초기 작품들은 그 자신이 1716년 그 일원이 된 보르도 아카데미에서 발표되었다. 자연 과학, 역사, 정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던 초기 작품 중에서 1719년 발표된『지구의 자연사 프로젝트』, 1720년 발표된『물체의 중력의 원인에 관한 논고』와『물체의 투명성의 원인에 관한 논고』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1721년 이 초기 작품들과는 전혀 방향이 다른 저술로서『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암스테르담에서 발간되었다.

『페르시아인의 편지』는 일종의 서한체 소설로서 발간되자마자 대단한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는데 몽테스키외는 이 소설 형식을 빌려 프랑스 계몽사상 특유의 정치 문화 비평을 시도하였다. 즉 주인공들인 페르시아인의 편지 왕래를 통하여 저자는 프랑스, 특히 1720년과 1710년 사이의 파리의 생활 방식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왕, 절대 군주 정체, 삼부 회의, 아카데미, 대학 등 이 모든 것이 웃음거리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가톨릭 종교, 교리 및 이의 관행과 교황으로부터 수도승에 이르는 전 사제 집단이 신랄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톨릭 종교는 독신 서약으로 인해 국가의 인구 감소를 초래하고, 이 세상의 물질적 행복에 대한 부정적인 가르침으로 인해 국부의 증가를 저해하고, 완고한 개종주의로 인해 공민 정신을 교란시킨다는 등등의 이유로 가차 없는 비평의 과녁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로테스탄트 종교는 물질적 진보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좀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런 비평들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마호메트교도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일반 독자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인상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18세기에 가톨릭 교회에 대해 행해진 최초의 가장 심한 공격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몽테스키외는 가톨릭 종교에 대해 좀더 온건한 입장을 취하게 되지만, 그가『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 공상과 관능을 배경으로 하여 구사한 기지에 넘친 비평은 그 시대의 기호에 호응할 수 있었기에 이 작품에 대성공을 가져다주었다.『페르시아인의 편지』는 초판이 발간되어 일년 안에 8판이 발행되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이 8판을 모두 익명으로 출판하였지만, 작품의 대성공으로 저자의 정체가 발겨지고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1726년 몽테스키외는 아카데미회원으로 선출되나 국왕은 아카데미 규칙에 따라 몽테스키외가 파리에 거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워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자 몽테스키외는 파리에 거주지를 두기로 결정하고 다시 한번 선출 과정을 거쳐 1728년 프랑스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다.

그러나『페르시아인의 편지』가 경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병행하여 역사와 정치에 관한 심오한 관찰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또 이런 관찰은 인류의 법과 습속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깊은 성찰을 반영하고 있으며, 후에 이런 성찰과 관찰의 최종 산물로서 나타난 것이 다름 아닌 그의 만년의 대작 '법의 정신'이다.

*

몽테스키외는 그의 필생의 연구를 완성할 이 작품의 준비를 위하여 1728년에 유럽 전역에 걸친 일련의 장기 여행을 떠나 비엔나, 헝가리를 방문하고 베니스, 플로렌스, 나폴리, 제노아, 로마 등에서 얼마간 체류하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로마에선 폴리냐크 추기경과 교황 베네딕트 13세의 접견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1729년엔 체스터필드 경을 동행하여 영국으로 가서 수상 월폴, 철학자 스위프트, 포프 등과 교제하면서 18개월간 체류하게 된다.

몽테스키외는 이 여행 중 어디를 가나 정치가들과 친분을 맺었으며 엄청나게 읽고 또 엄청난 양의 여행 일지를 기록하였다.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몽테스키외는 그의 들 라 브레드 성 영지의 포도원과 농장의 경영도 몸소 다시 시작하였다. 한편 몽테스키외는 여가 삼아 때때로 파리를 방문하여 마담 드 땅셍, 마담 죠프랭, 마담 듀 데팡 등의 살롱에서 많은 문인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른바 철학자 집단과의 지나친 교류는 의도적으로 피하였다. 이는 그가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고 그의 진지하고 온건한 성격이 볼테르와 그의 친구들이 거칠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불신앙과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몽테스키외가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들라 브레드 성에 칩거하여 연구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에게는 성취해야 할 필생의 목적, 즉 완성해야 할 '법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몽테스키외의 이러한 연구 생활의 첫 번째 결실은 1734년 암스테르담에서 발간된『로마 성쇠 원인론』이다. 몽테스키외는 본래 그의 필생의 대작을 위하여 고대 로마에 관한 자료와 연구를 준비해왔으나 그 양이 너무 많아 계획하고 있는 책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이를 따로 떼내어『로마 성쇠 원인론』이란 별도의 이름을 붙여 출판하였던 것이다. 그 자체가 학문상의 큰 성공이었던 이 저술에서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창건부터 터키인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점령에 이르기까지 제국이 경험했던 영광과 쇠락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사건들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사건들의 연쇄와 이들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여 그것들이 발생한 공동 근원을 지적하고 특히 정치 체제에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 있다. 이렇게『로마 성쇠 원인론』을 계기로 하여 몽테스키외는 고대사 및 중․근세사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일찍이 그에 앞서 보스웨는 1681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 『세계사론』중 두 개의 장을 로마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한 바 있었다. 루이 14세의 궁정 신학자였던 보스웨의 역사관은 일종의 섭리사관으로서 역사는 정치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당연한 결과였고, 지상의 대제국은 신의 영광과 종교의 번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당대에 근대성의 핵심을 내포한 군주 절대주의의 공식적 옹호자로서 보스웨는 프랑스 왕에게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서 보편 교회와 제국의 수호자라는 의무를 부여하였다. 이에 반해 몽테스키외는 역사에서 정치적 원인들만을 중요시하였기에 기독교의 출현이나 로마의 종교 정책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보스웨가 제국을 신성사와 결합시킨 데 반해, 몽테스키외는 제국을 자연사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위대함이 어떠하였든, 그것은 결코 프랑스 군주가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니었다. 몽테스키외는『로마 성쇠 원인론』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침묵함으로써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 이를 계기로 해서 역사를 형이상학적인 종교적 의미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로마 성쇠 원인론』은 그 독자적 가치와 성공이 어떠하든, 몽테스키외에게는 그가 20여 년의 노고 끝에 완성해 1748년 제네바에서 출간한 <법의 정신>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망의 저서는 처음 출판되어 2년 내에 22판을 거듭 발행하리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 책이 출간된 이듬해 장세니스트 로쉬 신부는 몽테스키외를 스피노자주의자고 이신론자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였고, 또 1750년엔 소르본느 대학 신학부가 이 책에 대해 13개의 조항을 발췌하여 검열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1751년에 이르러서는 정식으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등재되기도 하는 역경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톨릭 교단의 조치는 그 효과가 대단치 않아 실제로 이 책의 정치적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하였다. 우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 책에 정통하였고 실제로 여기서 그들의 연방 정부 구상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끌어내었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저자인 제퍼슨, 새로운 헌법을 옹호하는 연방주의 사상가요 정치가인 해밀턴, 메디슨, 제이 등이 몽테스키외의 대표적인 애독자들이었다.

몽테스키외의 명성은 실로 세계적이 되었고, 몽테스키외는 죽을 때까지 이러한 명성과 찬사 속에서 평화롭게 지냈다. 또 임종이 오기 전에 성부종사를 받음으로써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평안하게 생애를 마쳤다.

                                                                         ************************************

 

3. 내가 저자라면...

1748년(몽테스키외 나이 59세)에 세상에 나온 <법의 정신>.

지금으로부터 265년 전이다.

그 당시 2년 사이에 22판을 찍을 만큼(몇부에 해당하는지는 모르지만...)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법의 정신>은 당시의 사회현상을 잘 읽어낸 책이었으려니 싶다.

내가 읽은 <법의 정신>은 1988년 1판 1쇄, 1996년 1판 8쇄를 찍은 책이다. 고전이니까 좀 오래된 책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에 있는 책을 그냥 읽었는데, 그것이 실수였을까...

역자 이명성은 평양출신이며 여러 신문을 두루 섭렵한 기자로, 다수의 번역서를 낸 바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상 일역본을 다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문장도 부자연스러운, 소위 번역투문장(우리 말에서는 서술형으로 풀어써야 자연스러운 구절인데, 영어나 불어에서는 명사구로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수동형 문장도...)이 많아서 읽기에 정말 곤욕스러웠다.

예를 들면,

170:4 경솔한 말을 그 내용으로 하는 만큼 불경죄를 자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172:3 범죄의 처벌에 의한 정결의 침해

301:11 고도의 강대함에 도달했다

301:25 빈곤이 도처에서 스페인을 실패시켰다

371:8 일본의 법은 하찮은 불복종에 대해서도 벌한다. 기독교의 포기는 명령된것이며,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불복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처벌되었다. 그리고 불복종의 계속은 또 다른 벌에 상당한다고 여겨졌다.

376:10 마르퀼푸스의 한 문례는, 딸에게 재산상속을 허용하지 않는...

382:20 모든 것에 혐오를 불어넣는 데 충분한...

399:1 살리카법과 서고트법, 부르고뉴법과의 주된 상이

400:2 로마법은 프랑크인 지배하의 지역에서 연멸(煙滅)되고...

401:18 어떻게 하여 로마법은 롬바르디아인의 영토에서 보지됐는가

403: 13 만민(蠻民)법전과 칙령은 어떻게 없어졌는가

473: 21 궁재의 권위

475:14 어떻게 궁재는 군의 지휘권을 얻었는가

나 역시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역자가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한국어로 읽는 입장에서는 부자연스럽고 읽기 힘들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내 번역서에서 이런 오류를 지적하며 불평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혹시 몽테스키외 자신이 이렇게 불분명하고 부자연스러운 표현들을 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고전읽기에는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상당한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떠올리게 하는 두 대목이 있었는데,

로마도 인구부족으로 인구 늘리기에 고심했던 적이 있다는 부분이 그렇고,

또 구정(설날)을 없애는 것이 효율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인양, 정부가 신정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설날을 정식으로 부활시킨 예가 그렇다.

“일반적으로 한 민족은 그 관습에 강한 집착을 갖게 마련이므로, 그것을 난폭하게 빼앗으면 국민은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그것을 변경하지 말고 국민 스스로가 그것을 바꾸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255)

내가 저자라면....

31장에 걸친 소제목은 너무 산만하므로, 3부로 정리하고,

중언부언하는 문장들을 좀 더 간결하게 다듬어서,

책의 분량을 줄이고 내용도 읽기 쉽게 만들고 싶다.

대충의 뼈대는 다음과 같이 잡아 보면 어떨까.

(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분석 재편집까지 생각하기에는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나온 <법의 정신>요약정리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

1부-세가지 정체

1)군주정 2)귀족정 3) 민주정

2부-삼권분립

1)입법권 2)행정권 3)사법권

3부-기후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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