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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11시 58분 등록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 카를  구스타프 융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1 페이지)

카를 구스타프 융은 1875년 스위스 동북부 투르가우 주 케스빌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젤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한 후 의학을 전공하였다. 1900년 의대 졸업 후 정신의학을 전공하기 위해 취리히 대학 의학부의 차석조수가 되었고, 1902년에 학위논문 [소위 심령현상의 심리와 병리에 대하여]를 발표하고, 정신과 자원의사로 근무하며 정상 및 병적 단어 연상에 관한 실험적 연구를 하여 ‘콤플렉스’ 학설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1905년 조발성치매(정신분열병)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1907년 [조발성치매의 심리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1906년 논문 [진단적 연상실험에 관한 연구]를 프로이트에게 보냄으로써 서신 왕래가 시작되어 190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프로이트와 처음으로 상봉하였다.  

1909년 신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블로일러와 프로이트가 발행한 [정신분석 및 정신병리학 연구연부]의 편집인이 되어 1913년까지 계속하였다. 1912년 [리비도의 변환과 제 상징]을 발표하며 프로이트와의 견해 차이를 표명하고, 1913년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 운동으로부터 결별하고, 자신의 심리학을 ‘분석심리학’이라고 명명하였다. 1919년까지 ‘내향기’에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그 자신의 신화적 체험을 관조하였다.

1916년 [죽음에 관한 일곱 가지 설법]을 발표, [초월적 기능]이라는 논문에서 ‘적극적 명상’에 대해 처음 기술하였고,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개성화’의 개념을 [무의식의 구조]라는 논문에서 수정 보충하였다.

1918년부터 1926년까지 그노시스파 문헌 연구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원형’의 개념을 전까지 사용하던 ‘집단적 무의식의 지배적인 것’과 야콥 부르크하르트에 의한 ‘원상’의 개념 대신에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만다라를 연구하였다.

1921년 [심리학적 유형]을 발표하였고, 1923년 볼링겐에 취리히 호수를 끼고 있는 토지에 탑건축을 시작하였다.

1928년 [자아와 무의식과의 관계], [심혼 에너지론]을 발표, 리하르트 빌헬름과 중국의 도교경전 [태을금화종지]를 공동으로 연구 1929년에 출판하였다.

1932년 신문에 발표한 [피카소론]으로 취리히 시로부터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33년 ‘에라노스 학술회의’에 참가하여 첫 강연으로 “개성화 과정의 경험에 관하여”를 발표, 이후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 “연금술에서의 구제의 관념”, “모성 원형의 심리학적 측면”, “재생에 관하여”, “삼위일체 도그마의 심리학적 해석 시론”, “미사에 나타난 변환의 상징”, “머큐리 정령”, “정령의 심리학에 관하여”, “심리학의 정신”, “동시성에 관하여” 등을 강연하였다.

1941년 케레니 교수와 공저로 [신화학 서론]을 출간하였고, 1943년 [무의식의 심리학에 관하여], 1944년 “개성화 과정애서의 꿈의 상징” 강연 내용을 보완하여 [심리학과 연금술]을 발표, 1946년 [심리학과 교육], [시대적 사건에 관한 논술], [전이의 심리학]을 발표, “심리학의 정신” 강연을 보충하여 [심리의 본질에 관한 이론적 고찰]을 발표, 1948년 [심혼의 상징학]을 발표, 1951년 [아이온]을 발표, “동시성에 관하여”강연을 보충하여 파울리와 공저인 [자연 해석과 정신-비인과론적 관련 원리로서의 동시성]을 발표, 1952년 [욥에의 회답]을 발표, 1954년 [의식의 뿌리]를 발표, 1955년 친구와 제자의 기념 출판 [C.G.융의 분석심리학], [융합의 비의]를 발표, 1958년 [현대의 신화], [심리학적 입장에서 본 양심]을 발표하였다.

1957년 자전적 체험기 [C,G.융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을 엮은이 아니엘라 야훼 여사에게 구술하기 시작하였는데, 융의 바램에 따라 사망후 1962년에 출판되었다.

1961년 영어로 [무의식에의 접근]탈고, 후에 [인간의 상징]에 수록하고 86세의 나이로 6월6일 퀴스나하트 시의 자택에서 짧은 와병 후에 영면하였다.


지금까지 융의 평생에 걸친 연구내용, 저술, 강연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의 긴 삶만큼이나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였음이 한눈에 보인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심리학과 종교]에서 자신을 사람들이 자주 철학자라 부르지만 자신을 경험론자로서 현상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반성적 고찰이 없는 경험이란 있을 수 없으며, 경험이란 하나의 동화 과정이며 그것 없이는 이해도 없으므로, 심리학적 사실들에 접근하는 입장이 자연과학적 입자인 것이 자명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로 꿈과 무의식 그리고 환상과 자아의식 등을 연구하는 것이 자칫하면 신비주의로만 비추어질 것이 염려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어난 일들, 경험한 것들, 사건들의 사실을 근거로 현상학적 입장에서 과학적 경험론의 근본원칙을 따르며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 사람들의 이해를 도우려는 것이다.

195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여성이 돌에 관한 명상을 책으로 엮어 융에게 보내자 그 원고 읽고 친히 답장을 했다. 그 내용을 보면 돌을 무한한 사고의 표상들의 표현으로 이해한 점에 공감을 표시하고 상징을 그런 식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상징을 이해할 때 빠지기 쉬운 지적이고 미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설명을 경계하고 있고 상징에 관한 융 자신의 견해를 너무 절대적인 진리처럼 생각하지 말도록 권하고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진리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도록 자신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 것을 권하며 친절히 답장을 해주는 모습으로 보아, 융의 학자로서의 정직한 면과 의사로서의 따스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82세에 자서전을 구술하기 시작했는데, 자서전의 내용을 보면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되는 기억부터 자신이 삶 전체에서 경험한 꿈과 환상의 기록들을 매우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노년의 나이에도 생생한 기억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음을 알겠다. 이는 자기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융은 자기 사랑을 바탕으로 한 무의식에 대한 고찰이 전체 세계와 우주에 맞닿아 있어 인간 개인의 삶 자체가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p.8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精髓만의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9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푹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p.10 기자가 융에게 신을 아느냐고 물었다....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 프롤로그 :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쟈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p.12 이제 나이 83세에 나는 내 생애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일을 감행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직접적인 진술, 즉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옛이야기. ’나의‘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p.13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p.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p.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되다.

p.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p.32 이러한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서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p.50 비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나의 성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내 이른 소년시절의 본질적인 요소,  즉 내게는 가장 뜻깊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남근상 꿈에 대해서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다. 제수이트 역시 말해서는 안되는 신비로운 영역에 속했다.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p.56 이러한 갈등에서 행방되기 위하여 나는 좋든 싫든 부모님을 판정해야 하는 상위의 중재재판관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자만심이 야기했다. 그 자만심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자존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동시에 약화시키기도 했다.

p..80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p..82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이 의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주용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겨주는 셈이 된다.

p.83 나의 청년시절 전체는 그 비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잇다. 그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졋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p.91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제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제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p.96 나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었던 어떤 내적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 증명되었다. 나는 확신을 붙든 적이 없었으나 확신이 나를 붙들어주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신념에 종종 대항하게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p. 101 나 또한 내 안에서 이러한 고태적 성질의 어떤 요소를 인식한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항상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닌 재능을 부여한다. 내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나 스스로를 속이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36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p.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p.144 제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천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성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제1의 인격이 반항하여 자기가 행동하기도 하고 행동을 야기하려고도 했으나, 당분간은 해결할 수 없는 분열에 처해 있었다. 보아하니 나는 기다리면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p.150 나는 나 자신을 성숙하고 독립된 존재로 여겼다.

p.157 환상에 빠져 수개월을 매우 즐겁게 지내다가 결국 싫증이 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환상이라는 것이 어리석고 터무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백일몽을 꾸는 대신 점토를 회반죽 삼아 작은 돌들을 가지고 성들과 정교하게 방어시설을 갖춘 광장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p.158 나는 실제 사물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면 그것에 고나해 숙고할 만한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여겼다. 누구나 공상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p.166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내게 확고했으나 다만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p.172 제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p.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대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불확실감이 생겨난다.

p.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p.176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p.187 회고하건대 대학시절은 나에게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정신적으로 활기를 띠었고 또한 우정을 나누는 시기였다.

p.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p.201 우리는 모든 삶들이 알고 잇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가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실들은 남아있게 되는 데, 시간이 지나면 책상 밑에 버려져 있지 않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기가 찾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p.202 나는 더 나은 방법이 정말 없어 사실들을 제시하는 대신 말만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사실들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중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p.213 나의 첫 저서는 조발성치며(정신분열증)의 심리학에 헌정되었다. 그 책에서 내 인격이 선입견을 지닌 채로 이러한 ‘인격의 병’에 대하여 대답을 한 셈이다.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망상관념이나 확삭이 정신병의 특이한 증상일 뿐아니라 일종의 인간적인 의미도 지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23 나는 무의식으로부터 이른바 직접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통해 어둡고 비극적인 사연이 드러났다.

p.225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를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연상검사가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또한 꿈의 해석을 통해서나 환자와 오랫동안 끈기있게 인간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그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p.234 그녀는 살인범이었으나 거기에 더하여 그녀 자신을 또 살해했다. 그런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살인범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셈이다. 누가 죄를 범하고 잡히면 그는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된다. 누가 도덕적 지각 없이 몰래 죄를 짓고 발각되지 않아다 하더라고, 우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벌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대로는 동물이나 식물가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236 임상적 진단은 어떤 방향설정을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p.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p. 247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p.249 결정적인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와 환자는 서로 마주보고 앉게 된다. 의사로 무언가 할말이 있고 환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p.250 중요한 것은 이론과 증명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자신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는 것이 다. 물론 이것은 총체적인 관점을 참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의사는 그러한 관점을 습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의학교육만으로는 충분치 한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의 지평은 의사 상담실의 시야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를 주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

p.252 우리는 의식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세심한 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자기 자신을 환자와 마찬가지로 관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정에 따라서는 치료 전체가 빗나갈 수도 있다.

p.253 나는 의사로서 환자가 나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오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환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예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공격목표가 없는 셈이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나는 나의 환자들을 진지하게 다룬다. 아마 나도 그들과 똑같은 문제 직면해 있는지 모른다.

모든 치료자는 제3자에 의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관점도 가지게 된다....여상은 그런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판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가 꾸미는 음모까지도 꿰뚫어볼 줄도 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p.260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p.261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정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아고 있었던 셈이다.

p.261 나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의 견해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p.272 나는 피분석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그들과 나의 환자들이 나에게 끝없는 이미지의 연속으로 펼쳐보였던 정신현상과의 대면에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단지 어떤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오류와 실패로부터 배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의 환자들과 피분석자들은 나를 인간적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여, 그것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75 나의 정신적 발달을 향한 모험은 정신과의사가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p,276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나는 억압기제가 연상장애에 작용하고 있으며. 내가 관찰해온 사실들이 그의 이론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프로이트의 논지를 단지 지지할 수 있었다.

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p.278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p.287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p.288 모든 것이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럴진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 너무도 적은 심리학적인 사실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p.295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p.314-316 나는 이론적인 관점을 모두 접어두고 환자가 꿈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나는 꿈을 다룰 때 이와 같은 방식을 꿈해석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꿈이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p.326 감정의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을 막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어쩔 수 없이 신경증에 걸렸을 것이고, 결국 무의식의 내용이 나를 파괴했을 것이다.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p.327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 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돕는 자가 환자 옆에 있지 않느냐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위 돕는 자인 나는 환자의 황상 내용을 나 자신의 견지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쓸모도 별로 없는 몇 가지 이론적인 편견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나 개인뿐 아니라 나의 환자를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자청해서 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게 했다.

p. 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아니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이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p.343 오늘날 나는 이나마와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나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나의 꿈을 통해 직접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p.353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대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p.357 만다라는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65 나는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무의식과의 대면을 시도했다. 무의식에 곤한 나의 작업은 오랜 기간이 걸렸다. 20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환상의 내용을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이것은 물론 나에게는 바람직한 발견이었다.

이것으로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대응물을 만나게된 셈이었다. 이제 나의 심리학은 역사적 토대를 얻게 되었다.

p.397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

p.420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 단지 부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p.422 이책에서 나는 나 자신의 주관적 세계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세계관은 내가 이성적으로 궁리하고 자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반쯤 감은 눈과 반쯤 닫은 귀로 존재의 형상과 소리를 보고 듣고자 시도할 때 생기는 하나의 환상이다.

p.424  거기서 나는 ‘제2의 인격’안에서 살면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生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행>

p.429 내가 끝없는 시간의 연속과 그 가운데서도 거의 변함이 없는 존재들의 모습들로 말미암아 깊은 감명에 여전히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내 회중시계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럽인의 가속화된 시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는 이 사람들 머리 위에 위협적으로 드리운 불안하고 어두운 구름이었다.

p. 431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루어진 도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

p. 457 인간은 창조성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p.458 인간의 의식은 비로소 객관적 실재와 의미를 만들어냈으며 이로써 인간은 그의 위대한 존재학립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p.509 나는 우리가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무의식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환상들>

p.517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p.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p.526 병을 앓은 후에 나에게는 왕성한 연구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많은 주요저작이 그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만물의 종말에 관한 인식내지는 직관으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하여 문제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나에게 다가와 무르익으면서 형상화되었다.

p.527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어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p.531 내가 저승과 사후의 삶에 관해 말하는 것은 모두 기억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그 속에서 내가 살았고 나를 뒤흔들어놓았던 이미지요 생각들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내 저작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 하지만 나는 사후의 삶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러려면 내 생각을 증명해야 할 것이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나는 그런 생각들을 바야흐로 말하려고 한다.

지금은 거기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 즉 ‘신화화’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유롭게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아마도 죽음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p.536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을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 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틈 통합을 이루게 된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

p.539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내가 사후의 일들에 관해 말할 때 나는 내적 감동으로 말하는 것이며, 거기에 관한 꿈과 신화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을 것이다.

p.573 인간의 과제는 이를테면 그것과는 정반대로, 무의식에서 밀려오는 것에 관해서 의식지 못하는 상태에 있거나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의식을 형성해가야 하는 그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만년 사상>

p. 583 우리는 오직 의식을 확장해주는 학문을 통해서만 자연의식에 이르게 된다. 그와 같이 심화된 자기인식도 학문, 즉 심리학을 필요로 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광학지식 없이 이른바 손목이나 좋은 의지로만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오늘날 심리학을 우리 본성상 필요로 하고 있다.

p.598 신의 경우 대극의 복합으로서 의미심장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진실과 허구, 선과 악이 다 될 수 있다. 신화는 델피의 신탁이나 꿈처럼 이중의미를 지니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또한 욥이 이미 파악했듯이,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마자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p.599 그는 안팎으로부터 인간에게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이런 사실들을 신성의 관점에서 통합하고, 그 작용들을 신화의 도움으로 기술하고. 이것을 ‘신의 말씀’ 다시 말해 다른 저편의 누멘의 영감이요 계시로 이해한다.

p.608 원형은 본능의 한 특성으로 그 동적인 기질을 나ㅝ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하나의 특수한 에너지를 소유하게 된다. 그 에너지는 일정한 행동양식이나 충동을 유발하거나 강요하나다. 다시 말해 그것은 경우에 따라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원형을 그 특성에 비추어 다이모니아라고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p.613 정신은 자신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정신은 절대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양극성이 진술의 상대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p.618 에로스는 우주의 생성원, 창조자, 그리고 모든 의식성의 아버지요 어머니다. 내게는 그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느님은 사랑이다라는 구절에 고나한 현학적인 해석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 문구는 신성이 복합대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 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주 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제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 내가 사랑아리는 말을 따옴표속에 넣은 것은 그 말이 단지 열망, 선호, 총애, 소원 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고 개체보다 우월한 전체, 하나인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서다. 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는 전체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는 찬성하거나 분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는 그 속에 갇혀 있고 에워싸여 있다. 언제나 그는 거기에 좌우되며 그것에 기인하고 있다.

p.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 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깊에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다.


<회고>

p.623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p.624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거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어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이끌어 낼 수 없거니와 자신의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적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p.630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년이란 그런 것이면서 또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주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편집자의 말>

p.642

자서전은 내가 연구하고 노력하여 얻은 빛에 비추어 살펴본 나의 생애입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상을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나의 생애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글로 써온 내용의 정수이며 그 반대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아이(i)의 윗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후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카를 융이 82세 때부터 구술하여 그의 사후에 출판된 카를 융의 최후의 자서전인 이 책은 기억, 꿈, 사상이라는 자서전의 제목처럼 일반적인 자서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기 생애의 대한 외적 사실에 대한 서술보다 내적사건들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융 자신도 여든이 넘는 나이에 외적 사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 졌으나, 무의식과의 충돌로 인한 자신 내부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서전의 각장의 내용은 대체로 융의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기술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외적 사실을 기초로 한 객관적인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꿈과 환상을 기초로 자신의 내부의식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눈에 보이는 업적이나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어서 대부분은 사람들은 기억을 했다고 금방 잊어버리는 꿈에 대한 기억을 스토리 전체를 상세하게 기억하여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을 구술할 당시 융의 나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나는 막상 나의 무의식의 세계인 꿈에 대해 떠올려보니 2-3개 정도 밖에 기억이 나질 않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개인의 현실 속에서 의식의 시간들이 비현실속의 무의식의 시간들과 만나 둘이 하나가 될 때 한 개인을 존재하게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자신이 직접 경험한 꿈과 환상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과 연관시켜 분석심리학적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어 자신의 이론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약사다.’라고 정의 하는 융에게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대부분의 무의식과 관련된 꿈과 환상의 예가 온전히 융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대체로 솔직하게 가감 없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낯설게 여기는 무의식에 대한, 그것도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융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융은 자신이 자제력을 잃고 무의식에 빠져버릴 것을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환상을 붙잡기 위한 시도를 직접 하는데 자신이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환자에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 때문에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기도 했다. 그가 추구한 삶의 철학은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환자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으며, 그것을 진리로 전해주려 했던 진정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무의식의 꿈과 환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비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이 세계의 삶을 잘 살아내려고 하는 자신의 체험을 실재적 삶과 연결시키는 현실주의자로 말할 수 있다.

책에서 융은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체험한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의 과정이 4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을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낸 것이다. 이런 열정을 불사를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지복(至福)을 선택한 자만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귀를 기울기고 그것을 따라가는 일은 용기 있는 자만이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융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결국에 성공에 이르기 위해 인간이 추구해야할 자기 사랑의 모습을 삶 전체를 통해 실천했으며, 그 모든 과정을 바로 자서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보완점>

책의 내용구성의 구조를 보면 13개의 주제로 나누어 기술을 하고 있다. 그중에 1~3장까지가 인간의 성장의 흐름에 따라 유년시설, 학창시절, 대학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4장부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분야와 이론를 주제로 실질적인 내용이 구성되고 있다. 물론 이런 구조도 융의 의견이 반영되어 융의 인생전반을 주제별로 나타내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융은 자신의 논문 [생의 전환기]에서 개인의 인식의 정도와 발달단계에 따라 인생의 연령단계를 나누고 있는데, 이것에 따라 자신의 인생 전체를 기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동기(1~10세), 청소년기(11세~20세), 청년기(20세~40세), 중년기(40세-60세), 노년기(60세~ )의 인생의 단계에 따라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세계의 변화를 기술하면 좋겠다. 의식의 정도와 발달단계에 따라 자신의 이론과 무의식의 흐름에 대한 관련성을 찾아 연령의 단계마다 어떻게 변하였는지 알게 되면 융이 우려했던 일부 독자들의 몰이해를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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