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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9일 09시 52분 등록

1부: 저자에 대하여 (저자에 대한 기록 및 개인적 평가)

저자: 에이미 추아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1962년생으로, 1987년 하버드 대학에서 국제법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대학이 서기 전, 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이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듀크, 스탠퍼드, 뉴욕 대학교를 거쳐 현재는 예일대 법학 교수로 있다.

 

그녀의 전문 분야는 국제교역, 국제법, 개발, 민족 갈등 및 세계화로서, 국제 관계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녀의 또 다른 저서 <불타는 저서> 역시 <이코노미스트> 선정 올해의 책이 될 정도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약간 의외이기는 하다. 책 제목 <제국의 미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쩐지 저자가 역사학에 관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불러 일으키기에 말이다. 그녀의 프로필을 조금 더 파헤쳐 들어가보면, 저자는 1990년 초반에는 멕시코 시장민영화 컨설팅 업무를 거쳐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동안에는 세계 은행에서 일하는 등, 확실히 국제관계에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확실히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들과는 달리 역사적 사실들을 어떤 사관 혹은 관점에서 해석하느냐 보다는, 서로서로의 역학 관계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겠다. 전통적 의미의 역사학자가 아닌 국제관계의 전문가인 저자는 과거 제국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을 현재 미국과 어떻게 연관 지어 풀어가고 있는지를 따라가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흥미로운 길이 아닐까 싶다.

 

역자 이 순희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역자는 자신의 역자 후기에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세계적인 역사와 문화, 인종 따위에 대한 내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깨달았다라고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함을 당당히 (?) 밝히고 있다.

 

물론 우리의 고유 문화인 겸손일 수 있다. 그래서 역자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았다. 역서 중 이 책과 관련이 있을 듯한 책으로는 <나쁜 사마리안인들> 정도이다. 약간 불안하다.

 

역자의 프로필이나 역서에서 독자들에게 강한 신뢰감을 줄 수 없다면, 차라리 전문 번역가의 긍지를 갖고 겸손하기보다는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어떠어떠한 책들을 읽었다든지,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다든지 하는 신뢰할 수 있는 당당함이 아쉽다.

3부: 내가 저자라면 (주제 및 주제구성/ 감동적인 장절/ 보완점 평설)

3-1. 주제 및 주제구성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과연 미국은 미래에도 초강대국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유지한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이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과거의 성공 사례들과 실패 사례들을 살펴보고, 현재 위협적인 경쟁국들의 상황을 차례로 점검한 뒤, 미국의 앞날을 예측하고 있다.

 

주제와 그 주제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내가 늘 역사책을 읽으며 걸렸던 하나의 단어에 대해 잠시 논하고 싶다.

 

야만인.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확인시켜 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야만인의 정의가 무엇일까? 덜 문명화 된 민족 혹은 인종을 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문명이란 정의는 엄연히 승자의 입장 혹은 침략자의 입장일 뿐이다. 거기에는 피해를 입는 민족이나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 사상이나 지혜는 모두 배제한 너무도 이기적인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난 늘 전세계 역사학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제발 의식적으로든 습관적으로든 패자를 표현할 때 야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이 단어가 이 책의 주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관계상, 이쯤에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비슷한 맥락에서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걸려오는 단어가 있었다. 다름아닌 관용이었다. 저자 자신도 밝히고 있듯이, 제국이란 강압을 필요로 하는 요소인데 거기에 과연 관용이 끼어 들 틈이 있을까?

 

처음에는 혹시 번역이 잘못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아마존의 책 소개를 살펴보았는데 저자 역시 Toleranc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끝까지 읽고 나면, 그것이 결국은 상대적 관용이고 어찌 보면 효율적인 전략적 채택을 의미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이 단어에서부터 걸리는 나는 역시 주변 강대국들이 혹여라도 제국주의로 전환하지 않을까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봐야 하는 대한민국 독자이다.

 

어느 정도의 감성적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구성은 저자 자신의 주제를 풀어감에 있어서는 좋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일단 1부에서 고대 제국들로부터 시작하여, 2부에서는 근대로 넘어가는데 그 연결이 매끄럽다. 특히 중국의 경우 한족이 다스린 명을 실패의 예로, 이방인이 다스린 당나라를 최고 전성기로 설정한 것은 참신했다.

 

그런 후 3부 현대에 와서 미국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쯤에서는 독자들이 이미 주제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현대 강국들을 각자의 시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만큼 나름의 흥미도 있다.

 

정리하자면, 저자의 주제. 미국은 과연 미래에도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어떻게?라는 물음을 찾아가는 길은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세계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지적 도발도 있는 책이었다.

 

3.2 감동적인 장/절

1부    <고대의 4개 제국> 중에서 내게 가장 다가 온 제국은 몽골이었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넓은 영토를 지닌 제국. 하지만 그의 손주들이 다스린 제국들도 몽골제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역사에선 이미 그 제국들을 무굴제국과 원나라를 포함하여 다른 이름으로 칭하고 있다. 즉 몽골제국은 칭기즈칸 한 세대를 제외하고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왜일까? 그토록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동양민족으로서는 드물게 유럽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몽골제국은 어째서 허무하리만치 단숨에 역사상에서 사라졌을까?

 

학자들 간에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공통된 핵심 사항은 다름 아닌 정신 사상과 문화의 결여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 관용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몽골제국의 관용도 전략적 혹은 상대적 관용이었을까?

 

아니다. 몽골은 상대적 관용을 베푼 것이 아니고, 베풀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영토를 뺏을 줄을 알았지만 다스릴 줄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에겐 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물리적 힘으로만 세워진 제국은 역으로 피지배자들의 깊은 정신 사상과 문화에 압도되어 그토록 강대한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문화에 동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지는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다른 제국들의 모습을 보면 로마도 그러하고 당나라도 그러하고 제국이 정점에 달할수록 문화, 예술이 전성기에 이르며 그야말로 피지배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지배국에 종속되기 희망하는 접착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앞서 읽었던 <선의 황금시대>에서 선불교가 왜 당나라 시대에 꽃을 피웠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2부 계몽화된 관용> 중에서 네덜란드 편은 제국이란 것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을 살짝 뒤흔들 수 있어 좋았다. 제국은 제국이지만 더 이상 군사력을 앞세워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이 아닌, 해상력을 장악하여 교역을 통제한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을 현대까지로 끌고 오면, 아마 컴퓨터 기술을 앞세운 온라인 상의 장악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처럼 물리적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더 깊이 연구해 볼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부 7장의 세 제국들, 오스만, 명, 무굴>을 읽으면서는 결국 제국의 운명도 인간의 운명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누군가의 책에서 기업도 나라도 일단 탄생한 이상 스스로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고 노화하고 죽음을 맞는다는 말을 읽었던 것이 기억 나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기업이든 제국이든 그것을 구성하고 이끌고 가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결국 구성원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기업이나 제국 혹은 나라가 인간의 삶과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즉, 구성원의 삶을 대변할 뿐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제국이 패망의 길을 걷는 그 모습 또한 인간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풍요로운 물질에서 오는 정신적 헤이, 윤리적 타락, 사고의 경직성, 새로운 혹은 다른 문화에 대한 배척 등. 어쩌면 인류 문명이란 자체가 윤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순수한 신흥 세력이 부흥하여 그 세를 일으켜 정복하고, 정복한 후 성장하고 그리고 타락하는 이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8장 영국>과 <3부. 세계 제패의 미래>를 읽으면서는 저자의 생각을 총 정리함과 동시에 이 책을 통해 습득한 것을 토대로 다양한 질문들이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우선, 현대에도 과연 초강대국은 과연 필요한가? 이다.

역사적으로 초강대국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적 치안의 안정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백성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난무하는 시대보다는 지역적으로 강력한 지배세력이 있어 군사적으로 안정을 시켜주는 것이 환영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현대에도 적용가능한지는 정말 의문이다.

 

요즘처럼 정보통신이 발달한 시대에는 몇몇 초강국끼리 협정을 통해서도 전 세계 치안은 얼마든지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즉, 더 이상 미국이 전지구적 경찰국이 될 필요는 없는 이 시대에도 과연 그들은 초강대국이라는 패권국에 머물러야 하느냐는 원론적 물음이 생겼다.

 

둘째, 그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미국 자체내의 초강대국 피로 증후군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고, 유럽 연합이나 중국의 기세가 더 이상 미국을 단독 패권국으로 두려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역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연합의 세 개 초강국으로 흘러갈까? 이쯤에서 저자가 이 책 내내 주장했던 접착제를 각 나라별로 대비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미국의 경우는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내세울 만한 전통성이 약한지라 저자가 주장하는데로 200년 전의 젊고, 역동적인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어떠할까? 이 부분은 저자의 말처럼 유럽연합내의 접착보다는 유럽 외부 세력에 대한 유럽의 태도에 더 관심이 간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그리스, 로마 사상의 근원지로서 오래된 문명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력과는 뿌리 깊은 경쟁을 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열된 유럽이 다시 결집한다는 것은 결국 그리스, 로마 사상을 배경으로 현대의 로마제국이 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현대에서만큼은 그들이 더욱 성숙된 정신 사상으로 타문화권도 포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번에는 이웃나라 중국. 정말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다. 우리로서는 어쩐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중국이 과연 미래에도 하나의 중국아래 계속 뭉쳐있을까? 저자의 주장대로 92%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중국인이라 여길까? 러시아가 붕괴되었던 것과 같은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아마 중국같이 거대한 나라가 현대 역사에서 타국에 의해 무너지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제국이 그러하듯이 국력이 쇠락하는 이유는 외부에만 있지 않다. 아니 오히려 내부의 분열이 원인이 되어 외부로까지 연결되는 경우가 대다수라 하겠다. 물론 지금까지의 성장 기세를 놓고 볼 때 중국 내부의 분열을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과연 저자의 주장대로 정말 중국이 계속해서 하나의 중국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끊임없이 통합과 해체의 역사를 겪고 있는 중국, 지역간의 극심한 빈부차이를 낳고 있는 중국식 자본주의 체제 그리고 민주주의로의 변환하는 과정에서 과연 중국은 휘청거리지 않고 초강대국으로 곧장 달려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셋째, 이 세 초강국 세력말고는 없을까? (인도는 가까운 미래 초강국이 될 수 있기에는 아직 경제력이 미비하여 제외하였다). 인도보다는 현존하는 세력들 가운데 당장 초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세력이 누가 있을까?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나 일본은 늘 안심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이 책의 주제에 맞는 전 세계적 초강국으로는 그와 같은 단일 국가보다는 다른 존재가 떠올랐다.

 

다름아닌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연방 국가는 어떨까? 그리고 그들이 미국과 인도와 파트너십을 맺는다면? 영연방 국가는 지금까지도 서로들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우호적 관계를 앞세워 영국이란 접착제를 이용해서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른다면 어떠할까? 영국이란 전통적 접착제에 200년 전 미국의 역동성을 가미한다면? (사실 지금도 미국, 호주, 캐나다는 세계 3대 이민 선호국이다).

 

, 미국이 한 걸음 물러서 영연방 국가와 좀 더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는다면 유럽연합과 중국에 맞서 초강대국 패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실질적으로도 영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는 가장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호주 역시 최근에는 경제는 아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관계를 강화해가고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역사나 국제 관계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그러모아 내 나름 해석하고 예상하는 지적 유희를 즐겼다. 그리고 이러한 일 자체가 내겐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감동이 되었던 것 같다.

3.3 보완점 평설

    일단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 자체는 그다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없는데, 오히려 책 내

    용과는 무관한 곳에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책 표지이다. 원서의 표지도 그러하고, 역서의 표지도 그러하고, 이 책 분위기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이야 저자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니 여기서 길게 논할 문제는 아닌 듯 싶다.  

 

    다음으로, 내용상에 있어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자는 세계 유수한 인재들이 평등한 기회를 쫓아 미국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고, 그 기회를 취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고 꿈꾸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 사상가들이 끊임없이 인도에 빨려드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도의 가장 큰 강점으로 민주주의를 꼽았는데, 나는 이것을 저자가 인도의 사상적 면을 보지 못한 체 겉 모습만 보고 내린 판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전 세계 사상가들의 책이나 글을 조금이라도 읽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동양사상, 그 중에서 인도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금새 깨달을 수가 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인류 근원의 진리 탐구에 누구보다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나라, 인도 (이슬람 문화 역시 그 문화의 깊이에서는 전 인류가 배울 것이 엄청 많은 것에 비해 그들 스스로 고립화되어가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전 세계적으로 이제는 신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그 방향성조차 가늠할 수 없다할만큼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는 과연 성장을 지속할 것인가?

 

       이 부분이야말로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미국과 차별화하며 자신들이 좀 더 고매한 사상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유럽의 전통적인 사상가들도 연구하는 동양 사상.

 

결국 인류 역사는 표면적으로는 물리적 힘의 경쟁인 듯 보이지만, 시간을 조금만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정신문명의 경쟁임을 알 수 있다. 더 깊고, 더 풍성한 문명을 발전시킨 민족이나 세력이 그렇지 못한 세력을 언젠가는 흡수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물론 일반적인 형식의 지배, 피지배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 삶을 근본적으로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힘 말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인도를 논하면서 조금만 더 깊이 있게 들어가 주었으면 이 책이 훨씬 더 격조 높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내가 한 작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물러서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보완점은 아니고, 한국의 독자로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다.

 

이 책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 

 

우리의 과거, 현재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초강대국이 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느 누구도 꼭 초강대국이 되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의 의문은 대한민국이 몇 십년 뒤에도 대한민국일 수 있을까?이다.

 

수십 년 뒤 우린 한국인을, 한국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 내릴까? 그 때 쯤이면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우리 아이들이, 모국어로 글을 쓰는 날 이상하다 여기지는 않을까?

 

<코리아니티> 과연 그것은 어떻게 정의내려 질 것이고, 존속은 될 수 있는 건지……?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칼럼을 통해 좀 더 고심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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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3.09 09:55:03 *.107.35.44
드디어 게시판 게재 완료 하셨네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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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09:56:31 *.255.182.40
ㅋㅋ 저랑 이승호님 땀 흘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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