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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5일 09시 28분 등록

한시 미학 산책

 

저자에 대하여

 

정민은 1960년 충북 영동 출생,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한문 공부를 했다고 하는 그는 지금껏 36종 38권의 책을 내놓은 대한민국의 잘 나가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한시미학산책』은 정민의 첫 책이다. 그 이후, 연암 박지원의『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다산의 재발견』,『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책읽는 소리』,『스승의 옥편』,『초월의 상상』,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꽃들의 웃음판』등을 썼다.

『한시미학산책』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정민은 이렇게 말한다. “초판을 낼 당시 다섯 살배기 아들은 아빠가 저하고 안 놀아주고 다시 연구실로 갈까 봐 집에 오면 막무가내로 양말부터 벗겼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 훌쩍 커버려 아비가 올려다보아야 하는 장정이 되었다. 그 세월을 두고도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이는 그의 글쓰길 방식이다. 삶이 묻어나는 그의 문장들은 어떤 때는 꿈보다 해몽처럼, 원전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이 되곤 한다. 독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개인적 평가

 

정민에 한참 반해 있을 무렵, 사람들을 만나면 매번 정민 이야기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한양대를 졸업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정민을 좋아해서 그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던 때라, 그 친구를 만나자마자 정민을 아느냐 물었다. 그랬더니 그에 대한 소문을 하나 전해주었다. 정말 분류를 잘하는 학자다고, 정민은 읽은 책들, 문장들을 주제별로 정리해서 둔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책을 계속해서 낼 수 있는 것이라고. 그 친구의 이야기는 그를 읽은 사람이라면 능히 짐작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사소한 정민에 대한 정보에도 가슴 떨려하며 그를 상상했다. 서재에 앉아 빽빽하게 써있는 한자들 사이를 넘나들고 있을 그를. 나는 지금도 정민 소리를 들으면 귀가 쫑긋 열린다.

내가 정민을 처음 알게 된 것은『미쳐야 미친다』를 통해서였다. 그러니 그렇게 이른 만남은 아니었다. 2005년 한창 공부를 할 무렵, 정말 힘들고 아플 때였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개인적 노하우들이 있다. 나는 딱 세 가지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데, 나에게 힘을 줄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 여행을 하는 것.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선후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나에게 힘을 주는 방법들이다. 그때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사람을 만날 만한 마음의 여유도 가지고 있지 못할 때였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이 선반, 저 선반을 헤매다가 들어 올렸던 것이『미쳐야 미친다』였다. 제목이 너무 멋있지 않는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서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정민은 나한테 미쳐라 했다. 나는 평소에 미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반가운 동조가 있다니, 나는 흥분감에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읽어 나갔다. 아둔한 김득신의 백이전을 1억1만3천번 읽었다는 독수기, 이덕무의 한 사람의 지기를 얻기 위해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또 1년을 누에를 쳐서 실을 뽑아, 정성 들여 벗의 얼굴을 수놓아 안고 돌아오겠다는 지기에 대한 열망 등을 읽고는 나는 정민한테 미치게 되었다. 정민의 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죽비소리』, 『비슷한 것은 다 가짜다』. 『책 읽는 소리』, 태학사를 통해 엮은 책들, 등등. 하나도 나를 실망시키는 책들이 없었다. 정민의 책을 읽을수록 원문보다 더욱 아름다운 그의 해석들에 반했고, 그가 반한 선조 문인들에 반했다. 나도 이덕무에 반하고, 연암과 다산에게 반했다. 그들에게 미치고 싶었다.

 

내가 저자라면 - 『한시미학산책』

 

목차와 전체적 뼈대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다”라고 작가는 『한시미학산책』을 내놓는 이유를 밝힌다. 말 그대로 미학이다. 정민의 책들을 읽다보면 정말 국문과에 다시 들어간다면 고전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전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한시미학산책』은 한시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대중적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세 번째 이야기까지는 단지 한시에만 국한된 미학이론은 아니다. 시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또한 네 번째 이야기는 현대시의 서정시와 서사시처럼 한시에서 많이 분류되는 당시와 송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 정운미에서는 현대시에서 상투적 시어들처럼 한 글자에서 보여주는 정해진 의미에 대한 풀이가 되어 있다. 이처럼 한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기본들을 멋진 한시를 예를 들어 풀이하고 있다.

 

감동적이었던 장절

 

시를 지어보고 싶은 말 못할 욕심이 있어서인지 나에게 『한시미학산책』은 시공부가 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비록 한시이지만 현대시를 쓸 때도 명심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미쳐야 미친다’에 여전히 빠져있어서인지 나는 ‘아홉 번째 이야기 - 작시, 즐거운 괴로움’ 편이 가장 좋았다.

내게는 고서 여러 권이 있어 홀로 즐기기에 족하고, 시는 비록 졸렬하지만 마음을 풀기에 족하며, 집이 비록 가난해도 또한 막걸리를 댈만하다네. 매번 술잔 잡고 시를 읊조릴 때면 유연히 스스로 얻어 장차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니, 저 이러쿵저러쿵하는 자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240)

권필의 말이다. 시를 지을 때만은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조차 모르는 작가의 몰입이 아름답다. 또한 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가려움증, 기양.

“아무 짝에 쓸모없는 줄 잘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 시인이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표현 욕구를 옛사람들은 ‘기양技癢’이란 말로 표현했다. ‘양’은 가려움증을 말한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이 있다. 이런 가려움은 어떤 연고나 내복약으로도 못 고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표현욕’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기양이다.”(253)

 

보완점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다. 한시에 음을 달아주는 것이 좋을지 안 좋을지, 사실 나 같은 한맹(漢盲)은 전혀 음을 달수가 없어서 좀 답답하고, 음을 달아주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생각해보면 영어 철자에 한국말 발음을 옆에 달아 논 격이 되는지라 영 볼성사나울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면 책 뒤에 참고문헌과 함께 해놓는 방법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형태와 주제별로 나눈 한시들을 읽는 것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생긴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첫 번째 이야기

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 미학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 빛깔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17)

 

저 까마귀를 보라. 깃털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하지만 홀연 유금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를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까마귀는 본디 정해진 색깔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버린다. 어찌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겠는가.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버린다.(17)

 

시인에게 죽은 지식이나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17)

 

아침에 일어나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 며 외쳤다.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 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말한다면, 이보다 나은 문장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 을 읽었다.(18)

 

 

생취나 생의가 없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18)

 

생동하는 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비의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의 미학이다.(18)

 

영양이 뿔을 걸듯

 

 

시에는 별재와 별취가 있다. 사변적 지식이나 논리적 이치만으로는 결코 시의 비밀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만 있으면 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엄우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언어에 끌려 다니지 말고 언어를 주재하라는 주문이다. 시인이 한 번 사변의 늪에 빠져들면 생취는 간데없고 진부한 관념의 시체들만 뒹굴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구호다. 표현의 기교에 지나치게 빠져도 안 된다. 언어를 매만지며 단어들의 질량을 느끼는 일은 시인의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시인의 정신을 본질 아닌 말단으로 쏠리게 한다. 그 결과, 시인의 정신은 간데없고, 가공된 언어만 판치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암호이다. …… 엄우는 시인이 지녀야 할 미덕을 ‘흥취’에서 찾는다. …… 정작 시인이 전달하려는 의미는 문면에 있지 않고 글자와 글자의 사이, 행과 행의 사이, 혹은 아예 그것을 벗어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영양의 발자취에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통발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안 된다.(19-20)

 

한 편의 훌륭한 시는 독자에게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들지 않는다.(22)

 

종을 치면 종소리는 긴 파장을 내면서 허공으로 퍼져 나간다. 이렇듯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듯 해서는 안 된다. 범종의 소리와 같은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 (22)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은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22)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직접 다 말해서는 안 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23)

 

겉으로 드러난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단어와 단어가 만나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취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23)

 

 

어젯밤 송당에 비 내렸는지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 (23) 고조기(?~1157)의 <산장의 밤비>

 

이웃집 꼬맹이가 대추 서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맹이를 쫒는구나.

꼬맹이는 되돌아서 노인에게 소리친다.

“내년 대추 익을 때가진 살지도 못할걸요.”(24) -이달(1539~1612)의<대추 따는 노래>

 

가을 풀 고려 때 절

남은 빗돌 학사의 글.

천 년을 흐르는 물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26)- 백광훈(1537-1582)의 <홍경사에서>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알아들을 수 있는 귀, 바라볼 수 있는 눈 앞에서만 예술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눈과 귀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정신의 심층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일러 영각이라고 한다.(29)

 

이명과 코골이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코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이명증에 걸린 꼬마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를 고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다. 정작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기의 코 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말을 더 흉내 내면 이렇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화이니, 만약 그가 병 아닌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 으스대는 양을 어찌 볼 것인가.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발끈하니, 정말 그의 병통을 지적해준다면 그 성내는 꼴을 또 차마 어찌 보겠는가.(32)

 

◎ - 두 번째 이야기

그림과 시 - 사의전신론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란 말도 있다.(37)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사의전신’이라 한다. 그 구체적 방법은 ‘입상진의’이니 상세한 설명 대신 형상을 세워 뜻을 전달한다.(37)

 

 

말하지 않고 말하기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43)

 

“시는 사실 그 자체를 진술해서는 안 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43)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로움에 젖어들게 해야 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한 자신의 감정을 죽 늘어놓는다면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44)

 

 

흔히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45)

 

반대로 독자는 시인이 하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걷어낸 말, 즉 행간에 감추어둔 뜻을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느냐의 문제가 주된 관심사가 된다.(45)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마음은 미인 따라가고 있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소.(53)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54)

 

정오의 고양이 눈

 

“무릇 그림과 문장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본의를 벗어나면, 제아무리 화려하게 꾸며진 문장이라 해도 식자는 취하지 않는다. 오직 안목 갖춘 자만이 능히 이를 알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감상은 바로 이 호리의 차이를 변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다.(56-58)

 

가짜와 진짜는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없다. 가짜가 오히려 더 진짜같이 보인다. 관념화된 그림, 진정을 상실한 그림은 좋은 그림이 아니다. 정신은 간데없이 손끝의 기교만으로 그리려 드니, 난초를 그린다는 것이 파가 되고, 대나무를 그렸는데 갈대가 되고 만다.(59)

 

대개 형상을 그릴 때는 반드시 정신을 전해야 하고, 정신을 전하려면 마음을 그려야 한 다. 그러지 않으면 군자와 소인이 모습은 같지만 마음은 다른데, 귀하고 천하며 충성스 럽고 사악한 것을 어찌 스스로 구별하겠는가? 겉모습이 비록 닮았다 한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을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59)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맹자는 아무리 서시와 같은 미인이라도 오물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고 있어도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하면읽는 이들은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는다. 또한 시는 본바탕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덕지덕지 화장한 여인의 분내를 경멸한다.(66)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던지는 한마디가 예리한 비수처럼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린 느낌을 준다.(66)

 

◎ - 세 번째 이야기

언어의 감옥 - 입상진의론

 

싱거운 편지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69)

 

삼천리 봄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아드니

글 속에 적힌 것은 ‘심친’이란 말뿐이라.

그리는 맘 구름 달을 외려 선망하셨구려

삼천 리 밖 사람에게 나누어 비칠 테니.(70)

 

 

왜 사냐건 웃지요

 

옛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말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71)

 

본래 동양의 예술 정신은 다변과 요설을 싫어한다. 긴장을 머금은 함축을 소중히 여긴다.(72)

 

실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는 부질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73)

 

필설로 옮기려 하는 순간 증발해버리듯 사라져버린 기심, 사물과의 순간적인 만남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생취를 설명적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는 얼마나 허망한가. 그러고 보면 언어는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74)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언어란 본시 부질없는 것이기에 큰 진리는 언제나 언어를 초월하여 전해지고, 깨달음은 언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벌등안’의 법을 말한다.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장자는 ‘득어망전’을 말한다. 고기를 얻었으면 통발을 잊어라. 또 ‘득의망언’, 즉 뜻을 얻었거든 말을 잊으라고 주문한다. “지붕에 올라간 다음에는 누가 쫒아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치워야 한다. 유용한 진리는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움베르트 에코의 말이다 그래서 도연명은 시<음주>에서 “이 가운데 참다운 뜻이 있으나, 말하려 하니 이미 말을 잊었네.”라 했다.(77-78)

 

내 혀가 있느냐?

 

언어가 제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가 없다.(78)

 

‘입상진의’의 말이 나왔다. 말로 뜻을 다할 수 없다면 형상으로써 뜻을 전달하라는 것이다.(78)

 

큰 가르침은 사람마다 일깨워 가르칠 수 없다. 본래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알아듣고, 모를 사람에게는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준댔자 더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81)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홑이불 한기 들고 불등은 희미한데

사미는 밤새도록 종초자 울리잖네.

나그네 일찍 문 엶 투덜대고 있겠지만

암자 앞 눈 소나무를 누른 모습 보리라. (86) 이제현(1287~1367)의 <산중설야>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무언가 꼬집어 말하려 하면 사라져버리는 느낌,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노래한다. 효용가치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저편에서 울려오는 떨림, 그 떨림의 미묘함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인간에게는 단지 입상을 통해서만 진의할 수 있는 묘오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90)

 

막상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놓고 보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몇 줄의 교훈이거나,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하고 추상적인 느낌의 단편뿐이다.(91)

 

 

양파의 껍질은 아무리 벗겨도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다. 시를 낱낱이 해부하여 파헤치고 나면, 남는 것은 언어의 시체뿐이다. 멀리서 바라보이던 은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간곳없게 된다.(91)

 

 

◎ - 네 번째 이야기

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 당시와 송시

 

꿈에 세운 시의 나라

 

작약의 화려함과 국화의 은은함

 

시인이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시는 이해가 쉬운 반면 자칫 식상한 느낌을 주거나 거부감을 일으키기 쉽다. 반면 보여주기만 하는 시는 무슨 말인지 갈피 잡기가 쉽지 않고 자칫 추상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98)

당음, 가슴으로 쓴 시

당시는 가슴으로 쓴 시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웃음과 눈물이 있어, 마음으로 전해오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하다. 이에 반해 송시는 머리로 쓴 시이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관조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망이 있다.(103)

송조, 머리로 쓴 시

송시는 이 시기 발달한 선종과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음미를 내용으로 하는 경향이 짙다. 또 쓸데없는 수식을 배제하고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제재 상 일상생활에의 관심과 밀착이 두드러진다. 이에 따라 시의 공용성은 더욱 강조되었고, 표현은 다분히 산문적이고 서술적이 되었다.(109)

 

뱃속에 넣은 먹물

 

현세에서 시인의 삶이란 곁에 누운 병든 아내의 신음처럼 고달프고 괴로운 것을. 그러고 보면 시란 까맣게 잊고 있던 신선 세계, 또는 존재하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향한 회귀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천상의 백옥루가 준공되었으나 상량문을 지을 사람이 없자 옥황상제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하를 하늘나라로 불렀던 것처럼, 티끌세상의 귀양살이가 끝나 천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뱃속의 먹물이 다 마르도록 시인은 다만 깨어 노래할 뿐이다.(116)

 

◎ - 다섯 번째 이야기

버들을 꺾는 뜻은 - 한시의 정운미

 

남포의 비밀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고운데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려나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119)--정지상(?~1135)의 <송인>

 

남포란 단어에는 유장한 연원이 있다. 굴원은 일찍이 <구가>중 <하백>에서 “그대의 손을 잡고 동으로 가서, 고운 임을 남포에서 떠나보내네.”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 뒤 많은 시인들이 실제 헤어지는 포구가 동포이든 서포이든 북포이든 간에 남포라고 말하곤 했다. 굴원의 이 노래가 있은 뒤로 ‘남포’란 말은 시인들에게 으레 ‘이별’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정운이 담긴 말이 되었다.(121)

 

버들을 꺾는 마음

 

위성의 아침 비가 가는 먼지 적시니

객사엔 파릇파릇 버들 빛이 새롭다

그대에게 다시금 한 잔 술 권하노라

양관을 나서면 아는 이가 없을지니(121)

 

버들가지가 이별의 신표가 된 사정은 이러하다. 버드나무는 꺽꽂이가 가능하핟. 신표로 받은 버들가지를 가져다 심어두변 뿌리를 내려 새 잎을 돋운다. 보내는 사람은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는 심정으로 버들가지를 꺾어주었고, 또 꺽이어 가지에서 떨어졌어도 다시 뿌리를 내려 생명을 구가하는 버들가지처럼, 우리의 우정도 사랑도 그와 같이 시들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도 담겼다.(126)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은촉불 가을빛에 그림 병풍 차가운데

작은 비단 부채로 반딧불을 치누나.

하늘가 밤빛이 물처럼 싸늘해도

견우와 직녀성을 오도카니 바라보네.(130)

 

‘가을 부채’는 한시에서 으레 ‘버림받은 여인’을 상징한다.(131)

 

난간에 기대어

 

한시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누각 또는 난간에 기댄다는 말이다. 누각 위에는 왜 오르는가? 누각의 난간은 높은 곳에 있어, 그곳에서 보면 먼 곳에서 오는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간에는 왜 기대는가? 기다림에 지친 까닭이다. 그래서 누각에 오르거나 난간에 기댄다는 뜻의 ‘등루’, ‘의루’, ‘의란’ 혹은 ‘빙란’ 등의 표현 속에는 ‘그리움’의 의미가 담긴다. (135)

 

임은 서울 계시고 첩은 양주 있는데

날마다 임을 그려 취루에 오릅니다.

방초는 짙어지고 버들은 늙어가니

석양엔 흘러가는 강물만 보입니다. (137)

 

 

서울 계신 임을 그려 날마다 누각에 오르는 여인의 하소연을 담았다. 마음만 먹으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금세 오마 하던 임은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방초는 푸르러만 가는데, 임과 헤어질 때 재회를 약속하며 꺽어준 버들가지는 날로 추레해져 간다. 그녀는 날마다 누각에 올라 목을 빼어 임 계신 곳만 바라본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오시는 임의 모습이 아니다. 그녀의 슬픔처럼 출렁이며 흘러가는 강물뿐이다. (137)

 

 

저물녁의 피리 소리

 

석양 무렵의 피리 소리는 옛날을 그리워함, 또는 가고 없는 벗을 향한 그리움의 정운을 띠게 되었다.(138)

 

저물녁 강물 위엔 피리의 소리

보슬비 맞고서 강 건너는 이.

남은 소리 아득히 찾을 길 없네

나무마다 봄 맞아 강 꽂이 폈다.(138~139)

 

 

이해 못할<국화 옆에서>

 

 

대개 특정의 어휘가 정운을 머금는 과정에는 동질의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내적 교감이 전제된다.(141)

 

진부한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나도록 하는 것, 이것은 시인의 창조적 정신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마술이다.(143)

 

◎ - 여섯 번째 이야기

즐거운 오독 - 모호성에 대하여

 

그리고 사람을 그리다

 

언어는 종종 오해를 일으킨다. (147)

 

오랑캐 땅의 화초

 

 

일상의 언어에서 의미는 어느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그른 것이 되지만, 시의 언어에서는 꼭 그렇지가 않다. 이 대목에서 모호성ambigu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이러한 언어의 모호성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이다. 시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은 오히려 풍부와 함축이 된다. (150)

 

뛰어난 시는 어떤 의미에서 언어의 포용력과 융통성을 극대화한 시라고 말해도 괜찮다. (150~151)

 

개가 짖는 이유

 

늙은 몸 지친 말 방죽 길은 끝없는데

느릅나무 지나가자 회나무 그림자라.(154)

 

빗소리 듣느라 찬 밤 새우니

문 열자 낙엽만 수북 쌓였네.(155)

 

무지개가 뜬 까닭

 

한시에서 모호성은 흔히 문장 성분이 생략되어 그 여백을 채우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158)

 

북악은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게 변했다.

송골매 지나가자 숲은 겁먹고

학 울음에 저 하늘이 새파래지네.(161)

 

시의 제목은 <지독한 추위>이다 역시 박지원의 작품이다. 어지간히 추운 날씨였던 모양이다. 멀리 북악산은 매운 날씨에 창끝을 세운 듯 삐죽 솟았고, 맞은편 남산의 소나무는 파랗게 질리다 못해 숫제 검은빛을 띠었다. 안 그래도 추워 움츠린 판에 송골매 한 마리가 숲 우를 선회하자 숲은 벙어리 떼처럼 겁을 먹고 목을 움츠린다. 팽팽하다. 그 팽팽한 긴장을 깨뜨리면 학은 청아한 목을 빼어 허공을 운다. 그 소리에 하늘은 얼음장에 쨍 하고 금이 가듯 더 푸르러진다. 턱이 덜덜 떨리는 추위이다.

스무 글자 어디에도 춥다는 말은 없다. 그저 경물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제목마저 없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해질 법하다. 시인은 제목으로 분위기를 잡아놓고, 정작 시 속에서는 독자의 예상을 외면하고 딴청을 부렸다. 여기에서 의미의 단절이 온다. 단절을 채워 제목과 본문을 잇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162)

 

 

백발삼천장

 

 

흰머리 풀어헤쳐 삼천 장 됨은

근심으로 이다지 길어진 걸세.

해맑은 거울 속 그 어드메서

가을 서리 얻었는가 모르겠구나.(162)

 

달빛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강물아! 너는 무슨 근심이 그리 깊어 기나긴 머리칼이 희게 물들었느냐. 명경과도 같다는 옥경담 강물 위에 웬 서리가 이리도 내렸더란 말이냐.”며 내뱉은 탄식으로 보아야 옳겠다.(164)

 

뱃속 아이의 정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코드를 독자가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진진한 지적〮·감성적 여정이어서 때로는 오독도 즐겁다. 시인은 부러 말꼬리를 흐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독자는 잠시 멍해 있다가 다시 코드를 찾아 나선다. 설사 가다가 길을 잠시 잃은들 어떠랴. 아니, 애초부터 길은 없었는지도 모른다.(172)

 

◎ - 일곱 번째 이야기

사물과 자아의 접속 - 정경론

 

묘합무은, 가장자리가 없다

 

무심히 경물과 마주하여 마음속에 정이 일어난다. 경이 정의 매개가 되는 까닭이다. 가슴에 자욱한 정을 품고 경을 바라보면 무심한 경물이 내 마음의 빛깔로 물든다. 정은 경에 의미를 불어넣는 배아인 샘이다. 정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정만 가지고 시가 되는 법도 없다. (176)

 

“정과 경은 이름이 둘이나 실제로는 나눌 수 없다. 시에 뛰어난 자는 이 둘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가장자리가 없다. 빼어난 시는 정 가운데 경이 있고, 경 가운데 정이 있다.” 이른바 ‘묘합무은’의 주장이다.(176)

 

정수경생, 촉경생정

 

“시는 정을 일으키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편편마다 정을 마구 늘어놓으면 마침내 제멋대로가 된다. 시는 경이 핍진함을 높이 친다. 다만 작품마다 경을 펼치면 조잡하고 천박해진다.” 정과 경의 미묘한 줄다리기 속에서 서로 긴장을 유지할 수 있어야 좋은 시다. (179)

 

 

이정입경, 경종정출

 

“정은 경 때문에 그윽해 진다. 정이 너무 두드러지면 의경이 노출된다. 경은 정으로 인해 아름답게 된다. 경만 있게 되면 엉기어 막히고 만다,”(184)

 

문 앞 수레와 말 연기처럼 흩어지니

정승의 변화함이 백 년을 못 갔구려

깊은 골목 적막해라 한식이 지났는데

해묵은 담장 가에 수유꽃이 피었네.(185)

 

정경교융, 물아위일

 

“정을 잘 말하는 자는 말이 깊은 듯 앝고 드러날 듯 감추어져서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된다. 경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생략한 채 약간만 보태도 참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넘쳐난다.” 드러낼 듯 감추는 데서 정의 맛이 깊어진다. 시시콜콜한 묘사를 버리자 경이 한층 살아난다. 사실 녹아든 정과 경의 경계를 갈라 구분해내기는 쉽지가 않다.(189)

 

봄 그늘 찌푸려도 새들은 조잘대고

늙은 나무 무정한데 바람만 서글프다.(190)

 

봄 그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 것만 같다. 새들은 아랑곳 않고 즐거운 노래가 한창이다. 풍상을 겪어 늙은 나무는 무표정하다. 슬픈 것은 엉뚱하게도 바람이다. 찌푸린 봄 그늘과 지저귀는 새, 무정한 늙은 나무와 유정한 바람, 대구의 짜임새에 미묘한 긴장이 있다. 시무룩한 새들은 신이 났고, 덤덤해야 할 바람이 슬프다. 바람이야 슬프고 말고 할 것이 없으니, 이를 슬프게 듣는 것은 시인일밖에, 시인의 정이 경에 녹아들어 가장자리를 찾을 수 없다. (190)

 

종일 누워 책을 읽는다. 꼭 어디까지 읽은 작정은 없다 심심하면 차 마시고, 곤하면 가슴에 책 얹고 잔다. 돌솥에 여태 남은 차 향기가 잘 덜 깬 내 후각을 자극한다. 창밖엔 사분사분 빗소리, 흐리멍하던 정신이 돌아온다. 누운 몸을 일으켜 주렴을 걷는다. 비에 씻긴 이들이들한 연잎들이 가득하다. 마음조차 푸르다.(193)

 

지수술경, 정의자출

 

시 속에서는 어떤 경물도 포착과 동시에 주관의 색채로 물들고 만다.(197)

 

즉정견경, 정의핍진

 

‘시언지’, 즉 시가 뜻을 말한다는 말은《시경》 이래 가장 친숙한 시의 정의이다. 시란 무엇인가? 품은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뜻은? 나아가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말하는가? 문제가 여기까지 미치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위진 이전의 고시들은 영물보다는 영희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서거정은 《동인시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198)

 

진정한 시법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최후의 ‘현관’이 있다. 그 현관 앞에 서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 문을 여는 법은 아무도 일러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제 손으로 직접 열고 들어가야 한다.(202)

 

◎ - 여덟 번째 이야기

일자사 이야기 - 시안론

 

한 글자를 찾아서

 

서거정이 《동인시화》에서 말했따. “시는 묘함이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 호자도 《초계어은총화》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절로 빼어나게 된다. 마치 한 낱의 영단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매가 《수원시화》에서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다 같은 뜻이다.(205)

 

 

그사이의 고심참담을 두고 방간은 “다섯 자 식구를 읊조리느라 몇 오라기 수염이 또 희어졌네.”라고 했다. 관휴는 “시구를 찾느라 멍청히 앉아, 찬 서리 몰아쳐도 알지 못하네.”라 했다 “온종일 찾아도 못 얻겠더니, 때로는 저절로 찾아오누나.”라고 노래한 이도 있다. 옛사람이 시구의 연마에 들인 노력을 알겠다. 이러한 고통도 두보의 말처럼 “새 시를 고쳐놓고 혼자 길게 읊조리네.”의 기쁨이 있어 감내할 만하다.(206)

 

뼈대와 힘줄

 

시안은 글자 그대로 시의 눈알이다. 시안은 시에서 가장 정채롭고 시인의 정신이 집약된 지점, 하나만 건드려도 나머지가 따라 움직이는 일동만수의 경락이다. 시안은 단순히 수사적으로 자구를 단련하는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시자 예술의 의경미를 형성하는 핵심처인 것이다.(210)

 

한 글자의 스승

 

천 길 벼랑 말 세우기 몸이 너무 피곤해

나무에서 시 쓰려니 글자가 되질 않네.(219)

 

원래는 지쳐서 글자가 써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고친 것은 반쯤 썼지만 너무 지쳐 마저 쓸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나그네의 지친 상태가 더 실감난다.(219)

 

일자사의 미감 원리

 

일지사의 첫 번째 미감 원리는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는 것이다.(221)

 

“풍부하되 한 글자도 남지 않고, 간략하되 한 마디도 빼먹지 않는다.” 한 글자만 더하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글, 그런 시를 쓰라는 주문이다.(221)

 

두 번째 미감 원리는 ‘여운을 남기고 호응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여운은 추상의 여백에서 생긴다. 시는 단정적 언사를 꺼린다.(223)

 

세 번째 미감 원리는 ‘시상의 온유돈후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감각적 직설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데서 온건한 맛이 깊어진다. 모난 말보다는 각지지 않은 표현에서 중후한 체취가 풍겨난다.(227)

 

시안과 티눈

 

이수광이 《지봉유설》 말했다 “글을 일러 조하라고 말한다. 마음 속에서는 틀림없이 예술적인데, 막상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 체험에서 나온 까닭이 있는 말이다.(229)

 

◎ - 아홉 번째 이야기

작시, 즐거운 괴로움 - 고음론

 

예술과 광기

 

대상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불광불급이라 했다. 미쳐야 미친다. 비록 하찮은 기예라 해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 비로소 성취를 말할 수 있다. 예술의 천재들에게는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광기가 있다 그들 안에서는 열정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느껴진다.(235)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고

 

내게는 고서 여러 권이 있어 홀로 즐기기에 족하고, 시는 비록 졸렬하지만 마음을 풀기에 족하며, 집이 비록 가난해도 또한 막걸리를 델만하다네. 매번 술잔 잡고 시를 읊조릴 때면 유연히 스스로 얻어 장차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니, 저 이러쿵저러쿵하는 자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40)

 

눈을 상처 내고 가슴을 찌르듯

 

밤새 읊어 새벽까지 쉬지 않으니

괴로이 읊음 귀신조차 근심하여라.

어이해 한가로이 있지 못하나

마음이 몸과는 원수 되었네. (243)

 

 

가슴 속에 서리가 든 듯

 

시 읊는 괴로움을 알고 싶은가

가슴 속에 가을 서리 서린 듯하네.(250)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기양

 

구양수는 글을 지으면 벽에다 붙여놓고 볼 때마다 이를 고쳤다. 완성 후에 보면 처음 것은 한 글자도 남지 않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252)

 

 

아무 짝에 쓸모없는 줄 잘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 시인이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표현 욕구를 옛사람들은 ‘기양技癢’이란 말로 표현했다. ‘양’은 가려움증을 말한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이 있다. 이런 가려움은 어떤 연고나 내복약으로도 못 고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표현욕’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기양이다.(253)

 

 

개미와 이

 

사실 실용으로 말하면 시처럼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도 없고 시인처럼 무능한 인간들도 없다.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짊어진 듯 끙끙대지만, 실제로 할 수 일은 아무것도 없다.(257)

 

 

사실 세상에는 쓸모만으로 따지면 맥 빠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른바 예술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지도 못한다. 마라톤 주자가 42.195킬로미터를 달린들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이봉주, 황영조의 우승에 마음 설렌다.(258)

 

◎ - 열 번째 이야기

미워할 수 없는 손님 - 시마론

 

 

즐거운 손님, 시마

 

 

앞서 이규보의 <시벽>을 소개하며 시마에 대해 말했다. 여기서는 시마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시마는 ‘시 귀신’이다 시마는 어느 순간 시인에게 들어와 살면서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를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귀신이다. 시마가 한번 붙으면 다른 일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에만 몰두하게 된다. 더욱이 짓는 시마다 절창 아닌 것이 없다. 시마는 시인에게 즐거운 괴로움을 선사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263)

 

 

시마와의 논쟁과 시마 증후군

 

 

네가 오고부터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주림과 목마름이 목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몸에 파고드는 줄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계집종이 게으름을 부려도 꾸중할 줄 모르고, 사내종이 미련스러운 짓을 해도 타이를 생각을 않는다. 동산에 잡초가 우거져도 깎아낼 줄 모르고, 집이 쓰러져가도 고칠 마음이 없다. 재산 많고 벼슬 높은 사람을 깔보며, 방자하고 거만하게 언성을 높여 겸손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면박을 주면서 남의 비위를 맞추지도 못하고 여색에 쉬 혹하며, 술을 만나면 행동이 더욱 거칠어진다. 이 모든 것이 다 네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268)

 

 

시마의 죄상

 

 

<구시마문>에서 이규보가 제시한 시마의 다섯 가지 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는데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다.

둘째, 천기를 누설하면서도 당돌하여 그칠 줄 모르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다.

셋째,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을 닥치는 대로 남김없이 옮겨내서 겸손할 줄 모르는 죄다.

넷째, 제멋대로 상 주고 벌 주며, 정치를 평론하고 만물을 조롱하여,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죄다.

다섯째, 목욕을 싫어하고 머리 빗기를 게을리 하면, 공연히 끙끙대고 연상을 써서 갖은 근심을 불러들이는 죄다. (270-271)

 

 

시인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시로 자신이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날카로운 예지로 드러나지 않은 사물의 깊은 의미를 파헤쳐 사람들의 인식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준다. 그뿐인가? 사물을 관찰하여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고, 세속의 질서나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시를 통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 겉모양의 꾸밈을 우습게 보고 한 편의 훌륭한 시를 창작하기 위한 고초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272)

 

 

시귀와 귀시

 

 

시귀는 일회적으로 시인의 입을 빌려 대신 노래하게 하거나, 스스로 직접 나타나 시를 읊기도 하는 귀신이다. 이 시귀가 지은 시가 귀시다.(272-273)

 

텅 빈 마을 적막하여 사립도 닫혔는데

낯선 땅에 머물자니 옛 벗도 볼 수 없네.

저녁 해 다 지도록 아무도 오질 않고

뜰 가득 붉은 입에 부슬부슬 비 내린다.(274)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밝은 해 중천에 환희 떴는데

뜬구름 봉우리 모양을 짓네.

스님 보면 절 있을까 의심하겠고

학이 보곤 솔이 없음 아쉬어하리.

번개는 나무꾼의 도끼 자루요

우레는 숨은 절의 종소리일세.

산이 안 움직인다 누가 말했나

저물녁 바람 맞아 날려 가는데.(279-280)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시마는 한 마디로 옛사람의 시를 향한 열정의 다른 표현이다. 시귀는 사물의 비밀을 끝까지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이다.(282)

 

 

배부르고 따뜻함 속으로 시마는 깃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함을 시마는 혐오한다. 무언가 결핍된 상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죽창처럼 곤두서 있는 지점에서 시마는 슬그머니 시인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시인은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283)

 

 

◎ - 열한 번째 이야기

시인과 궁핍- 시궁이후공론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문학은 득의가 아닌 실의에서 나온다. 아무 아쉬울 것 없는 왕공 귀인들은 문학에 목숨 거는 일이 거의 없다.(288)

 

 

라이오넬 트릴링은 “현대이 문화인은 정치적으로는 부와 쾌락을 원하면서 예술적·실존적으로는 내핍과 괴로움을 원하는 모순적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쾌락을 거부하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해 반쾌락에서 만족을 찾는 본능적 충동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충동은 시대를 떠나 늘 존재해왔다. 모든 것이 갖춰진 넉넉한 환경에서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 입을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속에 이른바 정서란 것이 생겨난다. 그것이 슬픔과 분노, 격정과 눈물이 되어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시이다. (289)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연암은 그 참신한 붓을 들어 사마천의 마음을 나비를 잡으려다 놓친 소년에 견주어 설명한다. 소년은 꽃잎에 않은 예쁜 호랑나비를 보았다. 정신을 손가락 끝에 온통 집중시켜 살금살금 나비에게 다가간다. 잡았다 싶었는데 나비는 손가락 끝에 감촉만 남긴 채 훨훨 날아가 버린다. 뻗었던 손이 부끄럽고, 전심전력의 몰두가 허망해지는 순간이다. 이거다 싶었는데 결국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만 더 주위를 기울였으면 잡았으리라는 자책감, 혹시 누가 내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부끄러움, 바로 이런 모종의 안타까우며너도 착잡한 마음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의 마음이라고 했다. (290)

 

 

후세는 사마천의 ‘발분저서’의 정신을 높여 기린다. 연암이 강조한 ‘사마천의 마음’은 ‘발분’의 정신에 다름 아니다. 주자의 풀이에 따르면 ‘분憤’이란 “마음으로 통하려 하지만 아직 얻지는 못한 상태”를 말한다. (292)

 

마음속에 응어리진 ‘분’이 있으니 이를 펴지 않고서는 견딜 길이 없다.(292)

 

시인은 코앞에서 나비를 놓쳐버린 소년의 안타까움을 지녀야 한다. 견디기 힘든 시련과 좌절 앞에서 주저앉지 않는 발분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발분하는 서정 없이 어찌 남을 감동시키겠는가.(294)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시궁이후공은 궁핍한 환경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잘 쓰게 한다는 말이고, 시능궁인은 시를 쓰는 행위가 시인의 궁핍을 가속화한다는 말이다. (29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한 편의 시가 뛰어난 작품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상성을 뛰어 넘는 인식의 갱신이 필요하다. 이는 현실과 밀착되어 있을 때에는 알기 어렵다. ‘그 무엇’ 밖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시인의 내부에 유감을 머금게 해서, 그 결과가 다시 예술 위로 퍼부어진다는 것이 시궁이후공의 기본 생각이다. 다시 말해 궁의 상황이 가져다 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극간의 괴리감, 여기서 벗어나려는 자아의 노력이 덧붙여져 시에서 공工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298)

 

 

시와 궁달의 관계

 

지금 사람들은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말에 혹하여 시를 읊으면 사람이 궁하게 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근거가 없을 뿐더러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시를 읊음은 목청 좋은 이가 슬퍼 목 메는 곡조로 남을 슬프게 하거나, 호방하고 번화한 노래로 남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시 또한 그러하다. 궁할 때는 그 말이 궁하고, 달하게 되면 그 말이 달하게 된다. 시에 능한 사람이 형용하여 말로 표현함에 능하기 때문이다. 어찌 시인이 시로 인해 궁하게 되고 달하게 되는 이치가 있겠는가?(306)

 

 

탄탈로스의 갈증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활동을 인간 내부의 두 자아를 일치시키려는 몸짓으로 볼 수 있다면, 궁의 상황은 더 나은 예술작품의 창조를 위한 충분조건이 된다.(307)

 

궁하다고 그 궁함 속에 가라앉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결코 풍취를 포기하지 않는 독립불구의 정신, 시의 공교로움은 이러한 정신 안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 시인은 탄탈로스와도 같은 존재다. 맛있는 음식과 샘물을 앞에 두고도 영원한 갈증과 갈망 속에서 헤맨다는 탄탈로스! 시인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308)

 

 

◎ - 열두 번째 이야기

시는 그 사람이다 - 기상론

 

 

이런 맛을 아는가?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 근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서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멧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힘껏 잡아당겨 쏘아 죽이고, 말에서 내려 칼을 빼서 이놈을 잡고, 고목을 베어 불을 놓아 기다란 꼬챙이에 그 고기를 꿰어 구우면, 기름과 피가 지글지글 끓으면서 뚝뚝 떨어지는데, 걸상에 걸터앉아 저며 먹으며 큰 은대접에 술을 가득히 부어 하시고, 얼근히 취할 때에 하늘을 쳐다보면 골짜기의 구름이 눈이 되어 취한 얼굴 위를 비단처럼 펄펄 스친다네. 이런 맛을 자네가 아는가. (311)

 

 

시로 쓴 자기소개서

 

 

‘문여기인’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고 한다. 무심히 내뱉는 말 속에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난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314)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세 해의 귀양살이 병마저 들고 보니

한 칸 집의 살림이 도리어 스님 같다.

눈 덮인 사방 산에 사람은 오지 않고

파도 소리 속에서 앉아 등불 돋운다.(319)

 

 

사람이 찾지 않는 이유가 사방 산에 눈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자기 위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매서운 겨울바람은 집채만 한 파도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기세다 시인은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애꿎은 등불 심지만 자꾸 돋운다. 돋우지 않으면 꺼지고 말 심지, 끝만 남은 심지는 마치 버틸 힘조차 없는 자신의 투영이다. 굳이 곧추앉아 그는 심지를 돋운다. 잠 못 이루는 것은 온 산 가득 내린 눈 때문이 아니다. 바람 소리 때문이 아니다. 온 산을 뒤덮을 만큼의 무게로 두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근심, 잊힘에의 절망 때문이다. 가물거리는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함은 혹 누군가 이 밤에라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해서일까? 필자는 이 시를 읽으면 언제나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되는 <산장의 여인>이란 노랫말이 떠오르곤 한다.(319-320)

 

강아지만 반기고

 

떨어지고 먼 길을 돌아왔는데

처자의 기색이 좋지가 않네.

누렁이만 흠사 반갑다는 듯

문 앞에 드러누워 꼬리 흔든다. (323)

 

 

남편의 과거 급제만 바라보고 그간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또 낙방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남편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아내의 구박이 서운해도 또 어쩌랴. 황구만이 제 주인을 알아보고 자리에 누운 채 반갑다고 꼬리를 흔든다. 찬밥 신세이기는 저나 나나 한가지니 동병상련의 연민은 아니었을까. 뒤로 벌렁 누워 오랜만에 보는 주인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누렁이의 모습이 이를 바라보는 주인의 씁쓸한 표정과 함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324)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주흥이 도저하여 종이를 펼쳐 시상을 고르는데 생각과 달리 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찌푸린 하늘은 툭 찌르면 장대비가 쏟아질 듯한데 빗방울은 좀체 듣질 않는다. 연신 붓방아만 찧고 있는데, 마침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니, 꽉 막혔던 시상도 동시에 툭 터져 도도한 시흥을 주체할 길 없다. 벌떡 일어나 붓을 움켜쥐고 통쾌하게 휘두른 붓에서 넘친 먹물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진다. 체증이 쑥 내려간다.(328)

 

 

자족의 경계, 탈속의 경지

 

 

시는 곧 사람이다. 알려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언어가 제 스스로 맬해주는 사실이다. 언어가 그 사람의 기상을 대변한다는 것은 그 연원이 깊다. 무심히 뱉은 말이 씨가 되고,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시화에 자주 보이는 ‘시참’이 바로 이를 말한다. 시인은 모름지기 가슴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을 일이다. 떳떳함을 길러야 한다. (332)

 

 

◎ - 열세 번째 이야기

씨가 되는 말 - 시참론

 

 

머피의 법칙, 되는 일이 없다

 

 

시화에는 시를 보고 그 사람의 출처궁달을 예견하는 삽화들이 뜻 밖에 많다.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 ‘시참’이라고 한다.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다.(335)

 

 

형님! 그자 갔습니까?

대궐 버들 푸른데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

 

◎ - 열네 번째 이야기

놀이하는 인간 - 잡체시의 세계 1

글자로 쌓은 탑, 층시 또는 보탑시

회문시, 바로 읽고 돌려 읽고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

 

 

◎ - 열다섯 번째 이야기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잡체시의 세계 2

빈칸 채우기, 수시, 팔음가, 약명체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와 첩자체

파자놀음과 탁자시

 

이합체와 문자 퍼즐

오늘날 잡체시가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언어의 부단한 실험 정신, 질곡을 만들어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직조가 보여주는 즐거움 외에도 잡체시는 오늘의 시단에 의미 있는 시사를 준다. 젊은 시인들이 실험하고 있는 각종의 형태시들은 기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수없는 상호 텍스트화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409)

 

◎ - 열여섯 번째 이야기

말장난의 행간 - 한시의 쌍관의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장님의 단청 구경

견우와 소도둑

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

선덕여왕의 자격지심

 

◎ - 열일곱 번째 이야기

해체의 시학 - 파격시의 세계

요로원의 두 선비

눈물이 석 줄

김삿갓은 없다

슬픈 웃음, 해체의 시학

한시 최후의 풍경

 

◎ - 열여덟 번째 이야기

바라봄의 시학 - 관물론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생동하는 봄풀의 뜻

유아지경과 무아지경

속인과 달사

 

◎ - 열아홉 번째 이야기

깨달음의 바다 - 선시

산은 산, 물은 물

선기와 사취

설선작시, 본무차별

거문고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 - 스무 번째 이야기

산과 물의 깊은 뜻 - 산수시

가짜 어웅과 뻐꾸기 은사

청산에 살으리랏다

요산요수의 변

들늙은이의 말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 - 스물한 번째 이야기

실낙원의 비가 - 유선시

풀잎 끝에 맺힌 이슬

닫힌 세계 속의 열린 꿈

구운몽, 적선의 노래

이카로스의 날개

 

◎ - 스물두 번째의 이야기

시와 역사 - 시사와 사시

 

할아버지와 손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흰둥이가 컹컹 짖으며 저만치 앞서 간다. 누렁이도 뒤질세라 쫒아간다. 두 놈의 장난을 쫒던 카메라가 그 뒤에 즐비하게 늘어선 무덤으로 초점을 당긴다. 다시 무덤들이 원경으로 밀려나면서 개 짖는 소리 사이로 두 사람이 나타난다. 해질 무렵 저녁 볕이 빗기는 가운데 술에 취한 할아버지와 부축한 손자의 모습이다.(579)

 

시로 쓴 역사, 시가

변새의 풍광

궁사, 한숨으로 짠 역사

 

사시, 역사로 쓴 시

 

사시는 시인의 충실한 증언이 뒷날의 역사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사시는 시인의 충실한 증언이 뒷날의 역사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사시는 시인이 과거의 거울에 비춰 현재를 읽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아.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그대로 뜬다. 지나간 역사가 오늘을 비추는 등불인 까닭이다.(603)

 

 

◎ - 스물세 번째 이야기

사랑이 어떻더냐 - 정시

 

담장 가의 발자국

비단 버선 물결 걷듯 사뿐사뿐 가더니

중문 한번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

다정할살 잔설이 그래도 남아 있어

그녀의 발자국이 담장 가에 찍혔구나.(607)

 

 

야릇한 마음

보름달 같은 임

진 꽃잎 볼 적마다

까치가 우는 아침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 - 스물네 번째 이야기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 상동구이론

동서양의 수법 차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밋하다.(630)

 

한시와 모더니즘

벌목정정이랬거니 아름드리 큰 솔이 베어짐 직도 하이. 골이 울어 메아리 소리 쩌르렁 도라옴 직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멧새도 울지 않아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종이보다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련가?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가?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히 심히 흔들리노니 오오 견디련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631)

 

지훈과 목월의 거리

흰 달빛

자하문

달안개

물소리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640-641)

밤비와 아내 생각

낯선 마을의 가을비

◎ - 에필로그

그때의 지금인 옛날 - 통변론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

거미가 줄을 치듯

그때의 지금인 옛날

 

 

사기의 불사기사

“하나도 같지 않은 그것을 배워야한다. 그 정신을 본받아야지, 그 말을 흉내 내면 안 된다.”(662)

다른 제자들이 옛 경전에 눈이 팔려 있을 때, 그는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읽었다.(663-664)

도로 눈을 감아라

 

자척으로 된 선인들의 이야기를 센티미터 자를 들이대어 재려든다. 옛사람들은 길이 관념이 없다는 푸념만 늘어놓는다. 눈금을 호환해 읽은 생각은 못한다.(668)

 

내가 나의 주인이 못 되고, 내 집을 찾아가지 못할진대 열린 눈은 망상이 될 뿐이다. 소화하지 못하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670)

 

주체의 자각이 없는 현상의 투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671)

 

문학은 발전해왔는가. 아니다. 다만 변화해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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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08:00:04 *.154.223.199

난다님^^ 정민선생님에 대한 팬심을 가지신 듯 하옵니다.

그 분 밑에서 공부해볼까 고민도 해보셨다니 3주차 읽을 책으로 한시미학산책 이름을 만났을 때 반가우셨을 것 같습니다. 시를 많이 인용문으로 타이핑하셨군요.^^

오늘 아침에 동네도서관에서 빌려온 <미쳐야 미친다>에서 난다님이 말씀하신 부분 읽었어요. 감동적입니다. 저도 그 독서기 부분이요.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방법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는 것!

저도 한 번 조 세 가지를 다 해봐야겠습니다.

햇살 좋은 3월입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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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0 02:19:14 *.123.71.120

완전 팬이지요...정민 쌤 책들의 단점이 있다면...책들끼리 겹치는 내용이 쬐끔 많다는 것이지요...

책을 보통 주제별로 묶다보니, 특히 미쳐야 미친다의 내용들은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겹쳐요...죽비소리, 책 읽는 소리, 마음의 지혜, 등등에서 특히나요....

시 인용이 많은 것은...읽으면서 한시의 매력이 푹빠졌으니깐요....그러나 한맹이어서 한자를 못 옮긴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언능 한자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네요....^^ 쌤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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