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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5일 10시 15분 등록

한시 미학 산책

(정민, Humanist, 1996.08.05 → 개정판 2010.11.29)

 

1. ‘씨앗의 시학 (저자에 대하여)

 

■ 정민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0). 올해 그의 나이 53세다. 교수라는 단호하고 추앙 받는 직위를 그는 아주 이른 나이, 30세에 얻게 된다. 만인에게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그의 교수 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학과 바로 위의 선배 교수와 18년 차이가 나는 막내였고, 전임 이상 교수들이 모두 학부 시절의 스승이었다. 위계질서가 유난히 강조되는 국내 대학의 문화에서 겪었을 가슴앓이가 짐작된다. 실제 그는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먹기만 하면 토하던 시절이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75㎏이었던 몸무게는 50㎏ 중반까지 줄었다.

그런 생활에서도 학문은 그를 자유케 했다. 연구와 집필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특히 한문학을 통해서 그는 위안을 삼았다. 당시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도련 국민대 교수를 주말마다 찾았다. 그는 김도련 교수를 구세주이면서 스승이었다고 회고 한다
.

그때 선생님께서 직접 맹자와 사마천을 녹음해서 듣더군요. ‘소리 내서 읽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신 분이었지요. 저도 경기도 안양에서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서울 정릉까지 가면서 고전 시어를 머릿속에서 가다듬고 외웠지요
.”

그가 대중과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1996년 출간된한시 미학 산책’()을 통해서였다. 어려운 한시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평을 받은 500쪽 분량의 책으로 그 이름이 독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

저서로 『조선 후기 고문론 연구』, 『목릉문단과 석주 권필』, 『초월의 상상』 등이 있고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풀이한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펴냈으며 연암의 편지 수십 통을 발굴해서 풀이하고, 연암 산문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그밖에 『미쳐야 미친다』, 『한시미학 산책』,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등 여러 책을 펴냈다. 연암을 정점에 둔 18세기 문화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정민.jpg

- 학위 : 박사
-
수여대학 : 한양대학교

-
전공분야 : 고전문학, 고한국한문학, 실학사


저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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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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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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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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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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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어록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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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
-
죽비소리
- 18
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
초월의 상상 외 다수

 

정민의 글쓰기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는 문장론이다. 문장론으로 박사학위를 땄을 만큼 정민에게 문장에 관한예민함은 각별했다. 그런 그에게 글쓰기에 대해 물어본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글쓰기는 좋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 손끝의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글쓰기를 거꾸로 혼돈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내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뜻한다. 일가를 낸 사람들 중에서 센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대가다.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 생각을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다. 자꾸 넣으려다 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초점이 흐려진다. 글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은 현란하지 않고 담백한 문장이다.” 라고 하며 자신이 그것들을 걸러내는 방법은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고 한다. 그러면 군더더기가 자연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 글쓰기의 핵심은, 형용사, 부사를 과도하게 쓰지 않는 것이다. 접속사와 긴 문장을 어떻게 더 쥐어짤까 고민한다. 글 쓰는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면, 독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를 막는다고 생각한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주르륵을 지우고 중립적인 표현을 하려고 애를 쓴다. 충분히 몰입하되, 절제와 거리 두는 일이 글쓰기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큰 한 수를 배운다. 실제 그가 해석한 한시의 국문 해석은 시인이 울고 갈 만큼 글이 아름답다. 이 책을 읽은 즐거움의 팔할이었다.

정민과 고전

 

고전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하다. 특히 한시와 고전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은 국내 여느 학자들의 그것과 견줄 수 없는 사랑을 뽐낸다. 그는 말한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미래의 모습이 과거 속에 다 있다. 인간이 갖는 생로병사의 주기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애태우는 남정네의 마음, 아픈 자녀를 두고 어쩔 줄 모르는 부모의 마음, 재물 앞에서 이성을 잃는 것 등등 물질과 기술은 이토록 발달했는데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 속에 답이 있는데 사람들이 과거는 보지 않고 현재 속에서 우왕좌왕 거린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시류에 쫓기는 삶을 살면 목표를 이루기도 힘들뿐더러 이루고 나서도 허망해지고 만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과거 속에 미래가 있다.” 고전 속에 우리의 미래가 담겨 있다고 확신하며 오늘도 그는 고전 읽기에 몰두한다.

 

학자, 정민

정민은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자다. 넘쳐나는, 또한 희귀한 자료에 대한시각으로 학문적 논쟁을 펼치기를 좋아하는 학자다. 그는 여는 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영역을 자료로써 규정짓지 않는다. 자료를 얻으면 홈페이지에 죄다 공개해왔다. 그의 학자적 사명과 진실함이 가득하다.

또한, 그는 성실하다. 성실성이라는 개인의 특성은 자신만의 자료 취합 노하우를 만들어냈다.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족히 수백 개는 넘는 자료 뭉치들이 나란히 그리고 빼곡히 차 있다. 자신은 이것을 씨앗창고라 부른다. 연구실에 자료의 공간 때문에 조교를 두지 못하는 교수는 정민 뿐이겠다.

그의 석사 논문은 ‘16세기의 시인 석주 권필에 관해 썼고, 앞서 언급한대로 ’19∼20세기 관련 문장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민2.JPG 

 

2. ‘속으로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정민 선생님의 언어, Ü : 나의 언어)

 

첫 번째 이야기. 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 미학)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

 

저 까마귀를 보라. 깃털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하지만 홀연 유금(乳金)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를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까마귀는 본디 정해진 색깔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버린다. 어찌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겠는가.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버린다. (P. 17)

 

Ü사물에 대한 관점은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아카데미적 규칙에 사로 잡혀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본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해서 사물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편견과 터부 그리고 강박이 시야를 가려 버렸다.”  –E.H 곰브리치-

 

□ 연암이 <능양시집서>에서 한 말이다. 천자문이 푸른 하늘을 검다고 가르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았던가. 까마귀의 색깔 속에 감춰진 많은 빛깔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연암은 이렇듯 시인에게 죽은 지식이나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 (P. 17)

 

Ü 피카소가 꽤 유명해진 다음 유럽의 어느 지역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추상미술에 꽤 비판적인 사람과 동석하게 되었다. 알 수 없는 미술에 대한 편견을 늘어 놓은 옆 사람에게 피카소는 당신의 아내 사진을 볼 수 없느냐고 한 뒤, 건네 주는 아내 사진을 보고 일침 한다. “당신의 아내는 형편없이 납작하군요. 그리고 이렇게 작을 수가 있을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겠다. 피카소의 옆자리에 연암이 동석했다면 볼 만한 장면이다.

 

□ 사물의 심장부에 곧장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 몽롱한 시선으로는 안 된다. 시인은 천지현황의 나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선입견에 붙박여 간과하고 마는 까마귀의 날개 빛깔을 살피는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동하는 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비의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의 미학이다. (P. 18)

 

Ü 앞으로 다양하게 언급될 저자의 시론이다. 이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의 시선과 일부분 포개어 진다. ‘시인은 개별적인 것을 찾아내어 전체에 대응한다

 

□ 언어를 매만지며 단어들의 질량을 느끼는 일은 시인의 큰 기쁨이다. (P. 20)

 

Ü 이것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한 줄을 쓰기 위한 몇 날 며칠의 고민을 이 한 문장으로 위안 삼는다.

 

□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영양의 발자취에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통발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안 된다. (P. 20)

 

Ü 시 판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시적 허용이라는 무기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 한 편의 훌륭한 시는 독자에게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들지 않는다. (P. 22)

이렇듯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듯 해서는 안 된다. 범종의 소리와 같은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 (P. 22)

 

Ü 시의 이 같은 속성은 자유와 닮아있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춰서야 한다. 시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시인은 독자의 생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미련을 버리고 빠져야 한다.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P. 22)

 

Ü 마을 앞의 강이 큰 공부가 될 수 있고 보잘것없는 바위 돌이 가르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말하자면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직접 다 말해서는 안 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P. 23)

 

Ü 신이 단어를 하사하나니 붙들어 매는 것은 시인이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 단어와 단어가 만나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취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젯밤 송당에 비 내렸는지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

 

산이 있고 그 속에 집이 있다. 방 안에는 시인이 있고 둥지 안에는 새들이 있다. 사방은 고요하고 정신은 해맑다. 이른 새벽 들창을 열어 가만히 밖을 내다보는 시인의 시선 속에 떠돌고 있는 법열의 생취, 이것을 그 이상 무슨 언어로 부연할 수 있겠는가 (P. 23~24)

 

□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결과적으로 시의 함축과 내포를 더욱 유장한 것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스무 자에 불과한 짧은 시인데 담긴 함축은 참으로 심장하다. 한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대목이다.

그 행간에 감춰진 울림, 언어의 발자취를 벗어나 허공에 매달려 있는 떨림이 중요하다. (P. 28)

 

Ü 머리에 한 순간 꽂히지 않으면 그만인가. 바라보고 응시하며 그 뜻이 저절로 기어 나올 때까지 째려보면 한시는 그 속살을 보여 줄 것이니.

 

□ 홍양호(洪良浩, 1724~1802)) <질뢰>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렛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못 듣는다.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못 본다. 도덕과 문자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고 속인은 왕도와 패도 의()와 이()를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 사람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靈覺)에 있다.” (P. 29)

 

Ü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편견과 아집의 역사가 곧 사람의 역사가 아니더냐

 

□ 다산 정약용은 <초의승 의순을 위해 준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뜻이 본시 낮고 더럽고 보면 비록 억지로 맑고 높은 말을 하더라도 알맹이가 없게 된다. 뜻이 좁고 비루하면 비록 툭 터진 말을 한다고 해도 사정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시를 배우면서 그 뜻을 온축하지 않는 것은 거름 흙에서 맑은 샘물을 긷고 고약한 가죽나무에서 기이한 향기를 구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P. 31)

 

Ü 시의 홍심을 지르자. 중요한 것은 번드르르한 거죽이 아니다. 속 알맹이다. (필자)

 

두 번째 이야기. 그림과 시

사의전신론(寫意傳神論)

 

□ 시는 소리 있는 그림 有聲之畵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 無聲之詩란 말도 있다. (P. 37)

 

Ü  음악과 그림, 단 한번의 감성이 솟구쳐 심상을 만들고 인상을 그린다.

 

□ 송나라 휘종 황제는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네란 제목으로 시험 문제를 출제하였다. 깊은 산 속의 옛 절을 그리되 드러나게 그리면 안 된다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1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 속 작은 길에 중이 물동이를 지고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는 장()의 의미를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P. 37)

 

괴암삼사도.JPG

김창업 <괴암산사도>, 17세기, 개인소장.

물가 작은 길에 물동이 이고 가는 사람이 없고 절은 산꼭대기 바위 사이에 숨었다.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라는 화제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희한한 요구였다. 한 화가는 달리는 말의 꽁무니로 나비 떼가 뒤쫓는 그림이었다. , “여린 초록 가지 끝에 붉은 빛 한 점, 설레는 봄빛은 굳이 많을 것이 없네라는 화제에 1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자리 잡은 정자 위에 한 소녀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여성을 으로 표현한다. 화가는 그 소녀로써 홍일점을 표현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홍일점이란 말의 연원이다. (P. 39)

 

□ 요컨대 한 편의 훌륭한 시는 시인의 진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의 원리로써 독자와 소통한다.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건네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전달한다. (P. 43)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시의 작법 Ars Poetica>이란 시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A Poem should not mean/But be”라고 했다. 그는 또 시는 사실 그 자체를 진술해서는 안 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 A Poem should be equal to/Not true”고 했다. 시는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경을 전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P. 43)

 

□ 흔히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P. 45)

 

시인이 다 말해버려서 독자가 더는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 (P. 46)

 

 Ü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작업은 핵심을 찾아가는 행위다. 사태에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진의, 그 진의 속에 감춰진 홍심, 그것을 찾는 작업이다.

 

□ 송나라 때 유명한 화가 이공린이 한나라 때 장수 이광이 오랑캐 아이와 말을 빼앗아 적지에서 탈출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이광은 아이를 옆에 낀 채 말을 몰아 남으로 달리면서 오랑캐 아이의 활을 빼앗아 추격해오는 기병을 향해 힘껏 당겨 겨누고 있었다. 화살이 곧바로 발사될 곳을 보니 사람과 말이 모두 활에 응하고 있었다. 이공린은 속된 자로 하여금 이를 그리게 한다면 마땅히 추격하는 기병이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그렸겠지요.” 황정견은 이 말을 듣고 그림의 격에 대해 크게 깨달았을 뿐 아니라, 시의 원리 또한 한가지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연나라 곽상보를 모사한 그림에 제하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광의 화살이 추격병의 가슴을 꿰뚫어야만 그의 용맹한 정신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의전신의 본질을 해칠 뿐이다.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P. 50)

 

 Ü 절제와 여백, 그 뒤를 추정하는 마음의 심로. 멋지다.

 

□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이 쳐놓은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식견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박지원은 <능양시집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다.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보여준다. 홀로 서 있을 때는 누군가를 그리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원망하는 바가 있을 때엔 파초아래 서 있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P. 53)

 

□ 호리의 차이가 천 리의 현격한 거리를 낳는다. 이 이야기들은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속에 예리한 관찰과 예술가 정신이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P. 56)

 

Ü 결국 Detail이다. 명작은 이 Detail에서 판가름이 난다.

 

□ 관념화된 그림, 진정을 상실한 그림은 좋은 그림이 아니다. (P. 59)

 

□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고 있어도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하면 읽는 이들은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는다. 또한 시는 본바탕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덕지덕지 화장한 여인의 분내를 경멸한다. …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던지는 한마디가 예리한 비수처럼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를 찔린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림은 이발소 그림, 목욕탕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과 똑같이 그려진 영화관의 간판은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가끔 그 기교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과 기술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P. 66)

 

Ü 철학이 중요한 이유다.

 

세 번째 이야기.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眞意論)

 

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삼천 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월인천강(月印千江) 이랬거니, 달 보듯이 너를 생각한다는 사연이다. 야릇할손 봉래의 편지여! 삼천 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빠끔히 내민 달과 친하다니 말이다. 그리움을, 보고 싶단 말을 이리 전하는 마음. (P. 69)

 

□ 예전 중국의 곽휘원이란 이가 먼 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보니 달라 백지 한 장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편지지엔 아무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아하! 우리 임이 이별의 한 품으시고

말 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본래 동양의 예술 정신은 다변과 요설을 싫어한다. 긴장을 머금은 함축을 소중히 여긴다. (P. 71~72)

 

□ 필설로 옮기려 하는 순간 증발해버리듯 사라져버린 기심, 사물과의 순간적인 만남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생취를 설명적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는 얼마나 허망한가. 그러고 보면 언어는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P. 74)

 

Ü 언어로 말하거나 써버리는 순간 내 생각의 지평은 가두어진다. 넓디 넓은 지평선 끝으로 가야 할 내 사유의 영토가 말이다.

 

□ 언어란 본시 부질없는 것이기에 큰 진리는 언제나 언어를 초월하여 전해지고 깨달음은 언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벌등안(捨筏登岸)의 법을 말한다.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장자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을 말한다. 고기를 얻었으면 통발을 잊어라. 또 득의망언(得意妄言), 즉 뜻을 얻었거든 말을 잊으라고 주문한다. (P. 77)

 

Ü 그렇다. 그리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말하여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을 말하였던 것이다.

 

□ 문경새재의 새재란 사이재’, 즉 샛고개라는 뜻이다. (P.80)

 

□ 상용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를 내리거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 상용은 돌아누웠다.

 

허균의 <한정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싱겁기 짝이 없는 주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비유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니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생동하는 깨달음이 되었다. (P. 81)

 

□ 네 구 가운데 어디에도 시인의 정은 드러남이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서술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미 많은 이야기가 독자에게 건네지고 있다. 경물 속에 몰입하면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숲 속을 거니는 듯한 흥취를 만끽한다. 벗과 헤어져 있음을 봄이 떠나감을 떠나감이나 헤어짐으로 인식치 아니하고 꽃잎이 묻은 소매로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는 인식의 갱신에서 시인은 몰아의 희열 속으로 빠져든다. (P. 89)

 

Ü 드러내지 않고 드러낸다. 그리지 않고 그린다. 이제 그 의미를 알아간다.

 

□ 섬돌 쓰는 대 그림자, 먼지는 그대로요

못을 뚫는 달빛에도 물에는 흔적 없네.

 

대나무 그림자는 바람에 일렁이며 섬돌 위를 빗질한다. 그래도 섬돌 위의 먼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달빛은 연못 밑바닥을 뚫고 비친다.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P. 90)

 

Ü 어두운 밤 달빛에 대나무 비친 밤이다. ~ 이 심상은 어디서 오는가. 입을 닫을 수 없다.

 

네 번째 이야기. 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당시와 송시

 

□ 당시를 두고 흔히 중국 고전시가의 꽃이라고 말하여 계절로 치면 봄에 해당한다고들 하고 이에 반해 송시는 가을에 비긴다. 백화난만한 고궁의 봄 뜰을 친구와 어울려 산책하는 정취를 당시의 세계에 견주고 들국화 가득히 핀 가을 들판을 홀로 걸으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송시의 세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당시는 호탕한 기개를 지닌 장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고 송시는 달밤에 호수에 배를 띄우고 선비가 마주앉아 학문을 노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P. 98)

 

Ü 당시와 송시의 가운데가 시의 중용이라 할 만하다.

 

□ 저물어 외로운 객점에 드니

산 깊어 사립도 닫지를 않네.

닭 울어 앞길을 물으려는데

누런 잎 날 향해 날려 오누나.

 

닭이 우는 가을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나그네는 다시 쫓기듯 길을 재촉한다. 뼈를 저미는 추위. 이디로 가야 할까. 길을 묻는 나그네 앞에 들려오는 대답은 공허한 바람 소리와 자신을 향해 날려오는 누렇게 시든 낙엽뿐이다. 스무 자에 불과하지만 길 가는 나그네의 신고와 뼈에 저미는 외로움이 생생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P. 107)

 

□ 먼 변방 산은 길고 도로는 험준하니

서울에 닿을 제면 한 해도 늦었으리.

봄날 올린 편지에 가을 날짜 적은 뜻은

근래 부친 편지로 여기시라 함일세. (P. 108)

 

Ü 분 단위로 쪼개는 지금의 시간 개념을 부끄럽게 한다. 결국 시간은 그 때의 시간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인데 시간에 쫓기어 살아감은 결국 무엇을 위함인가. 시가 가르쳐 준 대로 사랑하며 살자.

 

□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머리 구름 위로 가보았지.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어느새 와 있었네.

 

Ü로 치환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조주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어울린다. 도란 어디에나 편재해 있다. 뜰 앞의 잣나무에도 있고 당나귀 똥 속에도 있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게도 잇다. 다음에 또 다른 놈이 물으면 네 앞을 지나는 똥개니라라고 답해주리라. 스승과 나는 늘 과녁을 매끄럽게 비껴갔지만 우리는 모두 이해하고 박수치고 늘 웃었다. 모든 심각한 자야말로 바보인 것이다. 스승은 도란 평상심이며 사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사물을 떠나서는 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깊은 인생 P.164)

 

□ 그러나 어찌하리. 현세에서 시인의 삶이란 곁에 누운 병든 아내의 신음처럼 고달프고 괴로운 것을. 그러고 보면 시란 까맣게 잊고 있던 신선세계, 또는 존재하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향한 회귀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천상의 백옥루가 준공되었나 상량문을 지을 사람이 없자 옥황상제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하(李賀)를 하늘나라로 불렀던 것처럼, 티끌세상의 귀양살이가 끝나 천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뱃속의 먹물이 다 마르도록 시인은 다만 깨어 노래할 뿐이다. (P. 116)

 

다섯 번째 이야기.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의 정운미 情韻味

 

□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고운데               雨歇長堤草色多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려나                  大同江水何時盡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           別淚年年添綠波

 

눈물을 제 아무리 많이 흘린다 한들 도대체 그것이 대동강의 유량에 무슨 여향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해도 이를 두고 허풍 좀 그만 떨라고 타박할 독자는 없다. 이 엄청난 과장은 시인의 슬픔이 그만큼 가눌 길 없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P. 123)

 

□ 우리 옛 시조에 말은 가자 울고 임은 잡고 아니 놓네. 석양은 재를 넘고 갈 길은 천리로다. 저 임아 가는 날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란 것이 있다. (P. 125)

 

Ü 어찌 이리 아름답게 표현하는가. 놀랍다.

 

□ 내 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이별의 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숲 아래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P. 126)

 

□ 청마 유치환의 대인<待人>

 

나날은 훠언히 하늘만 뜨는 것

재 너머도 뱃길로도 아무도 안 오는 것

한 잎 두 잎 젊음만 꽃잎 지는 것 (P. 128~129) 고금의 시상이 한 솜씨 같다.

 

□ 은촉불 가을 빛에 그림 병풍 차가운데

작은 비단 부채로 반딧불을 치누나.

하늘가 밤빛이 물처럼 싸늘해도

견우와 직녀성을 오도카니 바라보네.

 

가을부채는 한시에서 으레 버림받은 여인을 상징한다. 부채는 더운 여름날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다. 하지만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이 오면 여름내 애지중지하던 부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힌다. (P. 131)

 

□ 남포(南浦), 절류(折柳), 추선(秋扇), 의루(倚樓), 문적(聞笛). 한시의 어휘. (P. 140)

 

Ü 내막을 들여다 보아야 할 단어들이다.

 

□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 시인에게 한국의 대표시로 소개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국화하면 도리야 곶이온 양 마라 임의 뜻을 알괘라.”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처럼 추위를 아랑곳 않는 매운 절개를 상징하는 꽃으로 배워왔다. …프랑스에서 국화는 장례식 때나 쓰는 죽음을 의미하는 꽃이다. (P. 141)

 

Ü 문화의 차이는 시에서 두드러진다. 언문대중이 쓰는 단어의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오는 오해다. 이렇듯 언어라는 것에는 그 속에 문화가 숨어산다.

 

여섯 번째 이야기. 즐거운 오독

모호성에 대하여

 

  <은하수. 필자>

등화관제가

     실시됐던

      지나간

       여름

       

 

사이렌 소리에 불이 꺼지자 망 쳐진 내 창으로 수천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P. 147)

 

□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어

봄이 와도 봄 온 것 같지가 않네.

저절로 옷 허리띠 느슨해지니

몸매를 가꾸기 위함 아닐세.

 

VS

 

오랑캐 땅 화초야 없으랴마는

봄이 와도 봄 온 것 같지가 않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봄 온 것 같지가 않네. (P. 153)

 

□ 늙은 몸 지친 말 방죽 길은 끝없는데

느릅나무 지나가자 회나무 그림자라.

 

송나라 때 유반이 시를 지은 소동파에게 물었다.

이것은 그대의 시가 아닌가?

그렇네만.

그렇다면 이것은 해의 그림자인가, 달의 그림자인가?

안 가르쳐주겠네.”

 

소동파는 대답 대신 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시치미를 뚝 떼고 말았다. 설사 둘 다라면 어떻겠는가? <도산청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P. 154)

 

<논어> <위정>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한 구절이 있다. 원문을 소리내어 읽으면 꼭 제비가 지지배배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제비가<논어>를 안다고 하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모호성은 문화적 교양이나 문학 관습을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즉각 손뼉이 터져 나왔을 대목도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 158)

 

□ 백로 하나 버들 뿌리 밟고 서 있고

백로 하나 물속에 그냥 서 있네

산허리 짙푸르고 하늘은 캄캄한데

무수한 백로들이 번드쳐 날아간다.

아이가 소를 타고 시내를 첨벙대자

시냇물 건너편에 무지개가 오르누나.

 

소 탄 아이의 첨벙대는 물장난이 백로를 놀래 깨웠고 백로의 비상이 날을 개게 하고 무지개를 띄웠다. 자연이 인간과 만나 하나로 교감하는 현장이다. 왕국유의 말을 빌리면 불격(不隔), 즉 틈이 없다. (P. 161)

 

□ 북악은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게 변했다.

송골매 지나가자 숲은 겁먹고

학 울음에 저 하늘이 새파래지네.

 

시의 제목은 <지독한 추위>. 박지원의 작품이다. 시인은 제목으로 분위기를 잡아 놓고 정작 시 속에서는 독자의 예상을 외면하고 딴청을 부렸다. 여기에서 의미의 단절이 온다. 단절을 채워 제목과 본문을 시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붓이 아닌가. 미당이 <冬天>에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무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빗기어가네라 했는데 어쩌면 고금의 솜씨가 이렇듯 암합(暗合)하는가? (P.162)

 

□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코드를 독자가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진진한 지적, 감성적 여정이어서 때로 오독도 즐겁다. 시인은 부러 말꼬리를 흐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독자는 잠시 멍해 있다가 다시 코드를 찾아 나선다. 설사 가다가 실을 잠시 잃은들 어떠랴. 아니, 애초부터 길을 없었는지도 모른다. (P. 172)

 

Ü 자기의 감정대로 그리고 자기가 아는대로 신나게 느끼자. 아니면 어떠리. 그럼 말고

 

일곱 번째 이야기. 사물과 자아의 접속

정경론 情景論

 

□ 빗속에 누렇게 잎 시든 나무    雨中黃葉樹

등불 아래 하얗게 머리 센 사람.    燈下白頭人

 

정과 경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미묘한 줄다리기는 시 감상의 즐거움이다. 시인은 가장자리를 굳이 감추려 들고 읽는 이는 경물 안에 감춘 시인의 정을 자꾸 들춘다. 한데 합쳐졌던 정과 경이 독자의 의경 속에서 어느 순간 분리되면서 새로운 미감이 발생한다. 정과 경이 만나 이루는 조합에는 여러 경우가 있다. (P. 177)

 

□ 송희갑은 일찍이 권필의 명성을 사모하여 강화까지 찾아갔다. 권필이 충직한 그를 각별히 여겨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천하를 널리 보지 못하면 시가 국한되고 만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할 수가 없지만 네 근골로는 능히 이 일을 할 수가 있다. 다만 압록강 북쪽은 관문의 방비가 몹시 엄하니 반드시 어두운 길에 숨어 엎드려 있다가 물 있는 곳을 만나면 수영을 해서 몰래 건너야 갈 수가 있다. 너는 모름지기 중국말을 배우고 수영을 익히도록 해라.” (P.180)

 

Ü 코믹하다. 시를 향한 열정은 경의 표한다. 이 얘기에 대한 구본형 선생님의 글이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아래]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시가 사람을 죽였구나. 그까짓 시를 위해 불법 밀입국을 계획하고, 생사람을 잡아 목숨을 걸고 애쓰다 죽게 했으니 그 스승이 미친 사람이고, 시킨다고 따라하는 고지식한 제자 또한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가 슬프고 마음 아프나  이야기 속의 스승과 제자가 사람다워 정겹다.

권필은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권필은 정철의 문하생이었으나 선생이 귀향가는 것을 보고 과거의 뜻을 접고, 야인으로 살았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는 1569년 같은 해 태어나 동갑내기로 서로 흠모하여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의 재주를 아끼는 벗들이 벼슬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홀로 즐길 만한 몇 권의 고서가 있고, 비록 졸렬하나 시로 마음을 풀 수 있고, 가난하나 스스로 막걸리를 댈만하다'라는 이유로 이러쿵저러쿵하는 자들 속에 끼기를 싫어했다. 타고난 시인으로 불의를 참지 못했다. 삶의 의미를 오직 시에서 찾았던 천생의 시인이었다. 자신의 삶을 '희제'(戱題)라는 시 속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시는 고민을 걷어가 때로 붓을 잡았고
술은 가슴 적셔 줘 자주 잔을 들었지


좋은 시는 독자에게 심장을 내 주는 것이다어려운 일이다그러나 시인은 그런 시늉이라도 해야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 간밤 비 맞아 꽃을 피우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슬프다 한바탕 봄날의 일이

비바람 가운데서 오고 가노매

 

꽃을 피운 것은 간밤의 비인데, 꽃을 떨어뜨린 것은 오늘 아침 바람이다. 참 얄궂다. 떨어진 꽃잎을 보고 정이 촉발되어 일춘사일생사로 확장되었다. (P. 183)

 

□ 팔백 곡 후추를 쌓아두다니

어리석음 천 년 두고 비웃는도다.

어이하여 벽옥으로 됫박을 삼아

종일토록 명주 구슬 되고 또 되나.

 

최해의 <빗속의 연잎>이다.  (P. 186)

 

연꽃.JPG

빗방울이 연잎을 치면 데굴데굴 굴러 잎 가운데로 모인다. 이따금 무거워 고개를 숙이면 말 구슬이 연못 위로 쏟아진다. 연못은 온통 구슬 천지다. (P. 187)

 

□ 육시옹은 <시경총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을 잘 말하는 자는 말이 깊은 듯 얕고 드러날 듯 감추어져서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한다. 경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생략한 채 약간만 보태도 참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넘쳐난다.” 드러낼 듯 감추는 데서 정의 맛이 깊어진다. 시시콜콜한 묘사를 버리자 경이 한층 살아난다. (P. 189)

 

Ü 글은 덜어내고 또 덜어내야 한다.

 

□ 봄 그늘 찌푸려도 새들은 조잘대고

늙은 나무 무정한데 바람만 서글프다.

 

풍상을 겪어 늙은 나무는 무표정하다. 슬픈 것은 엉뚱하게도 바람이다. 이를 슬프게 듣는 것은 시인일밖에. 시인의 정이 경에 녹아들어 가장자리를 찾을 수 없다. 박은의 시 한 수를 더 읽어 보자.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자니

마구간의 마른 말도 더욱 길게 우는구나.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고요한 산 찬 솔은 절로 소릴 내누나.

늙은 종이 재를 털자 등불은 밝아지고

아내는 술을 퍼와 내게 권해 따라주네.

얼큰해져 이불 덮고 다시 높이 누웠자니

가슴 속에 불평 있음 깨닫지 못하겠네.

 

가슴 속의 불평은 흔적도 없다. ! 여기서 어디까지가 정이고 어디까지가 경인가. 무엇이 이고 무엇이 인가 (P. 190~120)

 

Ü 말과 달, 바람, 소나무. 이것들을 자신의 자유로 끌어들인 자유의 오케스트라다.

 

時言志즉 시가 뜻을 말한다는 말은 <시경> 이래 가장 친숙한 시의 정의다. 시란 무엇인가? 품은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뜻은? 나아가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말하는가? 문제가 여기까지 미치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위진 이전의 고시들은 詠物보다는 詠懷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서거정은 <東人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장계가 <歲寒堂詩話>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 시인의 본뜻이다. 사물을 노래하는 것은 시인의 여사 일뿐이다.” 라고 한 것도 의미가 같다. (P. 198)

 

□ 객은 시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시의 법은 차가운 새물과 같네.

바위에 부딪히면 목 메 울다가

연못에 가득 차면 고요하다네.

굴원 장자 강개함 많았다지만

위진에 이르러선 번다해졌지.

심상한 격조야 없앤다 해도

묘한 이지 말로는 전키 어렵네.

 

시는 찬 샘물이다. 시를 잘 쓰려면 물의 善變을 배워야 한다. 심상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말라. 그러나 진정한 시법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최후의 현관이 있다. 그 현관 앞에 서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 문을 여는 법은 아무도 일러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제 손으로 직접 열고 들어가야 한다. (P. 202)

 

여덟 번째 이야기. 일자사 一字師 이야기

시안론 詩眼論

 

□ 서거정이 <東人詩話>에서 말했다. “시는 묘함이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 胡仔 <초계은총화>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절로 빼어나게 된다. 마치 한 낱의 靈丹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

 

□ 각 표현의 질량을 저울질하고 정서를 감별해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상승의 시인이다. 명나라 사진은 시인이 한 글자의 선택을 위해 심혈 쏟는 것을 모자 고르기에 비유했다.

하나하나 골라 써보고 거울에 비춰 비교하듯 글자를 바꿔 넣었을 때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음미할 수 있어야 시안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P. 208~209)

 

□ 정진규의 <몸시 26>에는 字眼이란 부제가 붙었다.

 

입술이든 자궁이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다른 곳으론 들지 않겠고

오직 네 눈으로만 들겠으며

세상의 모든 빗장도 그렇게 열겠다

술도 익으면 또록또록 눈을 뜨거니

달팽이의 더듬이가 바로 눈이거니

너와 함께 꺾은 찔레 순이

바로 찔레의 눈이거니

, 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

 

정말이지 시에도 눈이 있다. 시의 빗장을 옳게 열려면 시의 눈, 즉 시안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P. 209)

 

□ 청나라 유희재는 시안이란 시의 어느 글자가 좋고 어느 구절이 뛰어나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 전체 시의 핵심이 집중되어 신묘한 빛이 엉겨 붙은 지점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안은 글자 그대로 시의 눈알이다. 시안은 시에서 가장 정채롭고 시인의 정신이 집약된 지점, 하나만 건드려도 나머지가 따라 움직이는 一動萬隨의 경락이다. 시안은 단순히 수사적으로 자구를 단련하는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시가 예술의 의경미를 형성하는 핵심처인 것이다. (P. 210)

 

□ 삼산은 하늘 밖에 반 너머 떨어지고

이수는 백로주서 가운데가 나뉘었네.

 

하늘 높이 솟은 봉우리는 솟아 올랐다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식이다. 시인은 이를 뒤집어 반너머 떨어졌다 半락고 표현하였다. 바로 여기에 표현의 묘가 응축되어 있다. 이 안자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구름 위로 산이 솟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산이 지상으로 지금 막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참신한 발상은 이백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P. 212)

 

□ 당나라 때 시승 제기가 사방을 떠돌 때의 일이다. 당시 명망 높던 시인 정곡을 찾아가 5언 율시 한 수를 올렸다. 대문간에서 명함 대신 시를 들여놓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안쪽의 기별이 좀체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하인이 시 가운데 한 글자를 고쳐 오면 그때 만나주겠다는 주인의 말을 전했다. 며칠 고심 끝에 제기는 한 글자를 수정하여 다시 올렸다. 정곡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그를 기꺼이 맞이하였을 뿐 아니라 평생 시우로 교유하였다. (P. 214)

 

Ü 글자 하나로 사람을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시대 멋지지 아니한가.

 

一字師의 마감 원리

1.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

2. 여운을 남기고 호응을 중시하라

3. 시상의 온유돈후를 중시하라 (감각적 표현 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데서 오는 온건한 맛) (P. 221~229)

 

□ 시인은 시안을 연마할 때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시안은 시안을 감추는 藏眼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통찰력 없이 그저 남의 눈이나 놀라게 만드는 수사적 기교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P. 231)

 

Ü 깊이 반성하자.

 

아홉 번째 이야기. 작시, 즐거운 괴로움

고음론 苦吟論

 

□ 대상을 향한 미친 듯한 몰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이룩되지 않는다. 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쳐야 미친다. 비록 하찮은 기예라도 자신을 온전히 잊는 몰두가 있어야 비로소 성취를 말할 수 있다. (P. 235)

 

Ü 우리는 이러한 몰두가 생을 바꾸는 장면을 목도한 적이 있다. 조지프 캠벨이 뉴욕주 우드스턱에서 5년간의 책읽기 몰두와 마사 그레이엄의 혼을 다한 춤 연습 등 몰두의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성취의 모습은 같다.

 

□ 사군은 술잔 들어 수성을 깨뜨리고

나그넨 시 읊으며 갈 길을 잊었구나.

제비는 훨훨 날아 춤을 추는 것만 같고

숲 저편 꾀꼬리는 노랫소리 보내온다. (P. 236)

 

최흥효의글씨.JPG

(최흥효의 글씨)

 

□ 사광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악사였다. 그는 소리를 듣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눈을 찔러 소경이 되었다. 예술도 이쯤 되면 이르러 간 경지를 측량할 길이 없게 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면 잗다란 기교쯤은 까맣게 잊어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영욕도 득실도 생사까지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P. 237)

 

Ü 영화 서편제의 오정해가 어른거린다. 득음을 위한 눈을 멀게 한 것.

 

□ 권필은 평생 벼슬길에 몸담지 않았다. 그는 타고난 시인 기질을 어쩌지 못해 불의를 좌시하지 못했다. 부딪치는 일마다 얼음에 숯 같았다. 시 지을 때만은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조차 까맣게 몰랐으니 그는 삶의 의미를 시 속에서 찾았던 타고난 시인이었다. (P. 240)

 

시는 고민 걷어가 때로 붓을 잡았고

술은 가슴 적셔줘 자주 잔을 들었지.  (P. 240)

 

Ü 이것은 천복이다. 시에 살고 시에 죽은 詩仙의 모습이다. 깊은 인생의 저자 구본형 선생님도 글이 자신에게 온 날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빛나는 날 내게는 오늘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주어졌으나 나는 오늘을 보낼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나의 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가겠구나. 그렇게 내 인생도 가뭇없이 사라지련만 나는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이렇게 환한 낮이 밝아오는데 시체처럼 방 안에 누워만 있구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 때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글을 써라. 너는 글을 써보고 싶지 않았느냐?’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일어나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깊은 인생 P. 67)

 

□ 맹교는 한 편의 좋은 시를 지을 수만 있다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달게 여겼을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이렇다.

 

밤새 읊어 새벽까지 쉬지 않으니

괴로이 읊음 귀신조차 근심하리라.

어이해 한가로이 있지 못하나

마음이 몸과는 원수 되었네.

 

맹교는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시를 위해 살았던 시인이다. 시를 빼면 그의 삶에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목숨을 걸고 시를 썼다. (P. 243~244)

 

□ 한 글자 알맞게 읊조리려고

수염을 몇 개나 비벼 끊었나. <노연양의 시>

 

묻노니 어찌하여 이다지 말랐는가

이제껏 시 짓는 괴로움 탓일 테지. <이백의 시>

 

한 글자의 온당함을 구하느라고

긴긴 밤 추위를 참아 견뎠네. <고문위의 시> (P. 250~251)

 

□ 소동파가 적벽부를 짓자, 사람들은 그가 고치지 않고 단숨에 지은 줄 알았다. 막상 이를 짓느라 버린 초고가 수레 석 대에 가득하였다. 그사이의 고심참담이야 따져 무엇하겠는가. <사문유취>에 나온다. (P. 252)

 

Ü 라파엘로는 엄청난 습작으로 유명하다. 구도와 표정, 몸짓에 대한 치밀한 구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라파엘로 뿐이겠는가.

 

□ 시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기에 정신을 피폐케 하고 진기를 소모해가면서 허구한 날 시구의 조탁에만 힘 쏟게 만드는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마물이 있으니 옛사람들은 이를 일러 詩魔라 했다. (P. 253)

 

Ü 아름다운 표현 한 자를 위해 며칠을 잠을 설치는.

 

□ 그렇더라도 이 이무 짝에 쓸모 없는 시를 짓겠다고 고금에 피를 말리며 밤을 지새우는 시인을 어찌 손꼽겠는가. 그 고심참담의 결과를 앞에 놓고 독자들은 마음의 위로를 얻고 삶의 깊은 의미를 읽는다. 시가 인간 언어의 정채로운 금강석이든 아무 짝에 쓸모 없는 해독이든 시는 시다. 금강석이 될지 독약이 될지는 오로지 시인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다. (P. 258~259)

 

열 번째 이야기. 미워할 수 없는 손님

시마론 詩魔論

 

□ 시마는 시인에게 제멋대로 들어왔다가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리는 재미난 귀신이다. 일단 시마가 붙으면 잠시도 시를 떠나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시마가 훌쩍 떠나가면 시를 짓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 뿐 아니라, 제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시를 지을 수 없게 된다. 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마가 많이 낀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이상스레 잘 안 될 때 우리는 마가 끼었다고 말한다. 마란 일이 안되게 만드는 방해꾼이다. 하지만 이 시마란 녀석은 적어도 시인에게는 방해꾼이 아니라 언제고 환영해야 할 손님이다. 시마가 붙고 나면 그냥 하는 말도 모두 기가 막힌 시가 되지만 시마가 떠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말이다. (P. 264)

 

□ 길을 가면서도 시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시 생각, 심지어 꿈에서까지 시 생각뿐, 그밖에 다른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지는 증세, 예의와 염치, 체모조차 우습게 보는 태도, 눈에 띄는 사물마다 허투루 보지 않고 거기에 담긴 비밀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드는 증상이 이른바 시마 증후군이다. (P. 269)

 

Ü 이 시마란 것은 곧, 시인이 지녀야 할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구시마문>에서 이규보가 제시한 시마의 다섯 가지 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는데 붓만 믿고 찧고 까불게 만드는 죄다.

둘째, 천기를 누설하면서도 당돌하여 그칠 줄 모르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다.

셋째,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을 닥치는 대로 남김없이 옮겨내서 겸손할 줄 모르는 죄다.

넷째, 제멋대로 상 주고 벌 주며, 정치를 평론하고 만물을 조롱하며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죄다.

다섯째, 목욕을 싫어하고 머리 빗기를 게을리 하며, 공연히 끙끙대고 인상을 써서 갖은 근심을 불러들이는 죄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글은 모두 반어다. 말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이규보와 최연이 제시한 시마의 죄상을 뒤집어 읽어보면 바로 시인 예찬론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규보와 최연 등이 꼽은 시마의 죄상은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시에 죽고 시에 사는 전업 시인으로 누리는 특권에 대한 즐거운 비명일 뿐이다. (P. 270~272)

 

귀신도 자기 시를 아껴, 놀랄 만한 시구가 있으면 반드시 사람의 힘을 빌려 세상에 전해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그런 것일까? (P. 277)

 

Ü 그렇다.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는 아름다움은 사람이 표현하는 것이 아닐 때가 종종 있으니, 그것을 보고는 무릎을 치니 이는 신께 감사하는 인간의 제스처다.

 

□ 시마를 쫓아내겠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이규보의 경우는 오히려 행복하다. 시마가 더는 오지 않는 시인들은 붓을 꺾든지, 아니면 차라리 <영시미문>이라도 지을 일이다. 배부르고 따뜻함 속으로 시마는 깃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함을 시마는 혐오한다. 무언가 결핍된 상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죽창처럼 곤두서 있는 지점에서 시마는 슬그머니 시인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시인은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P. 283)

 

Ü 생의 결핍에서 오는 표현의 완전함. 아름답다. 감정노동자여.

 

열한 번째 이야기. 시인과 궁핍

시궁이후공론 詩窮而後工論

 

□ 모든 것이 갖춰진 넉넉한 환경에서 문학이 설 자리를 잃는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 입을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속에 이른바 정서란 것이 생겨난다. 그것이 슬픔과 분노, 격정과 눈물이 되어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시이다. (P. 289)

 

Ü 또 시는 저항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바로 그늘 체험으로 비롯된 삶에 대한 저항이다.

 

5천의 보병으로 흉노의 본진을 유린하다 장렬한 전투 끝에 부득이 흉노에 항복했던 장군 이릉. 다들 비난하는 그를 외로이 변호하다가 무제의 격노를 불러 궁형에 처해졌던 사마천은 오로지 <사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치욕과 모멸의 시간을 견뎌냈다. (P. 292)

 

Ü 사마천의 그늘 체험이다. 이 기간을 견뎌 그는 후대 2천 년 동안 사랑 받는 명작을 만들어냈다.

 

□ 정리하면 이렇다. 시능궁인과 시궁이후공은 역의 명제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은 모순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불만족의 상태에서 만족을 구하려는 모순적 충동지향이 바로 시능궁인의 사고를 잘 설명해 준다. 시궁이후공이라 할 때 궁은 공하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공은 궁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또 시능궁인이라 할 때 시는 궁하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궁은 시를 잘 쓰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 때 궁은 물질적 빈궁보다 실의와 좌절 같은 정신적 상태에 가깝다. 단순한 경제적 결핍은 시인의 발분 욕구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신적 측면이 배제된 궁은 궁이 아니라 빈이다. (P. 297)

 

□ 천하에는 성정이 없는 사람이 없고 시를 지을 수 없는 사람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시를 지을 수 잇다. 다만 성정이 얽매이면 시는 망하고 만다. 성정을 질곡하는 것에 부귀보다 심한 것이 없다. 성정이 얽매이고 보면 재주가 아무리 높고 언어가 뛰어나도 말단일 뿐이다. 어찌 다시 시가 있겠는가. 이것이 고금에 시로 이름난 사람이 궁하고 낮은 지위에서 많이 나오는 까닭이다. (P. 300)

 

Ü 시인에게는 자발적 가난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불평즉명, 발분서정, 시궁이후공 등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아이덴티티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아이덴티티, 즉 동일성은 자신을 자기 자신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즉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적 관념적 자아와 실제의 자아 사이에 어떤 편차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궁하다고 궁함속에 가라 앉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결코 풍취를 포기하지 않는 독립불구의 정신, 시의 공교로움은 이러한 정신 안에서만 보장될 수 있다. 시인은 탄탈로스와도 같은 존재다. 맛있는 음식과 샘물을 앞에 두고도 영원한 갈증과 갈망 속에서 헤맨다는 탄탈로스! 시인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P. 307~308)

 

열두 번째 이야기. 시는 그 사람이다

기상론 氣象論

 

□ 조선의 쾌남 임제의 이야기다. 남의 잔칫집에 갔다가 술이 거나하여 돌아오는데 취중에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하인이 말하기를 나리, 심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 임제는 이놈아, 길 왼쪽에서 보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요, 길 오른쪽에서 보는 자는 내가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무슨 상관이냐, 어서 가자.” 박지원의 <낭환집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또 그가 동시대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지은 시가 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데 두고 백골만 남았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P. 311~312)

 

□ 한시 비평에서 말하는 기상론이란 바로 시인의 기질과 삶의 자세가 그의 시에 거울처럼 비쳐진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만나보지 않고도 그 사람을 알게 된다. (P. 319)

 

Ü 자기 마음에 낀 때를 벗겨내는 작업은 어쩌면 詩作으로써 완성될 수 있겠다. 明心見性의 길을 찾을 수도 있겠다.

 

□ 적벽부에서 소동파는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과 깡 사이에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나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도 취하지 말 일이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이를 얻어 소리가 되고 눈은 이를 보아 빛깔을 이루나니 이를 취함이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주의 다함없는 곳집이다. (P. 321)

 

Ü 모든 것을 내어주는 자연이다. 그 자연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 인간이 이리도 취한다.

 

□ 긴 가뭄에 단비를 만나게 될 때

타향에서 옛 친구와 조우한 순간.

동방에 화촉을 밝힌 첫날밤

과거 합격 이름이 내걸렸을 때.

 

VS

 

과부가 아이를 데리고 울 때

적에게 사로잡힌 장군의 표정

은애을 잃어버린 궁녀의 얼굴

과거에 낙방한 선비의 심정 (P. 323)

 

Ü 관점은 이리도 다르다.

 

□ 떨어지고 먼 길을 돌아왔는데

처자의 개식이 좋지가 않네

누렁이만 흡사 반갑다는 듯

문 앞에 드러누워 꼬리 흔든다.

 

VS

 

낭군께서 우뚝한 재주를 지니시곤

무슨 일로 해마다 낙제하고 오십니까?

이제는 그대 낯을 뵙기 부끄러우니

그대여 오시려면 밤중에나 오소서. (P.323~324)

 

Ü 코믹하다. 한참을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눈치다. 지아비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때도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마누라산은 넘지 못했구나.

 

□ 높은 산 꼭대기에 지팡이를 놓고 쉬니

구름 안개 겹겹이 하계를 가로막네.

느지막이 서풍이 백일을 불어가자

만학과 천봉이 일시에 드러난다.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P. 327)

 

Ü 산의 날씨는 이렇듯 여자의 마음과 같아서 급변하니 저기압이 물러날 때 그 순간을 즐길 일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 씨가 되는 말

시참론

 

□ 인간의 잗단 일들 언제나 들쭉날쭉

일마다 어그려져 마땅한 구석 없네.

젊을 땐 집 가난해 아내가 늘 구박하고

늙어 녹이 후해지자 기생이 따르누나.

주룩주룩 비 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개었을 땐 언제나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배불러 상 물리면 좋은 고기 생기고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묵은 병 낫고 나니 이웃집이 의원이라.

자질구레 맞지 않음 오히려 이 같으니

양주 땅 학 탄 신선 어이 기약하리오.

 

시화에는 시를 보고 그 사람의 출처궁달을 예견하는 삽화들이 뜻밖에 많다.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 이라고 한다.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다. (P. 335)

 

Ü 머피가 꼭 그랬다.

 

□ 느직이 일어나도 아무 일 없고

남창에 해 그림자 옮겨 왔구나

아이 불러 종이 붓 찾아와서는

간밤에 지은 시를 한가히 쓴다. (P. 339)

 

Ü 이 시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한가한 남해 바닷가에서 종이와 연필을 챙겨 홀로 떠난 나만의 여행, 모든 잡음이 끊긴 바닷가에 눈을 감고 그 침묵을 즐긴다. 그리고 하루종일 맘껏 쓰고 노는 날. 그날이 나의 날이다. 이 시를 읽고 멋진 나의 풍광을 포개었다.

 

□ 우습다 벗님네들 마음 너무 조급해

단번에 최고봉에 오르려 하는도다. <진화의 시>

 

멀리서 보려 하면 근심 더욱 멀어지니

올라도 최고봉엔 오르지 말지니라. <정도전의 시>

 

그대로 두 사람은 위의 시와 같이 되었다.

 

□ 이제현의 <곡령에 올라>, 지봉유설에 나온다.

 

마른입 입김 불고 비 오듯이 땀 흘리며

열 걸음에 엳아홉 번 쉬면서 오르누나.

뒷사람이 앞서감을 괴이하게 생각말라

느릿 가도 마침내는 산마루에 이를지니. (P. 345)

 

Ü 이 시는 틀림이 없다. 조급하여 빠른 길을 선택하면 틀림 없이 제뿔에 힘이 들어 끝까지 가지 못한다. 둘러가도 천천히. 螺線은 돌아가지만 결국 尖端에 이른다. 이 시는 외워두면 좋겠다.

 

□ 유몽인은 말한다.

! 시라는 것은 성정의 虛靈함에서 나오기 때문에 먼저 요와 천을 알아 생각이 솟아나서 그리하지 않으려 해도 그리 되고 만다.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궁한 까닭에 시가 절로 이와 같게 된다. 재주 있는 사람은 하늘도 시기하니 세상 사람을 또 어찌 허물 하겠는가? 슬프다.

 

말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쓴 한 편의 시가 어느 날 재앙이 되어 돌아 돈다. 말 한 마디, 시 한 구절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어이 붓을 함부로 놀리랴! (P. 355)

 

열네 번째 이야기. 놀이하는 인간

잡체시의 세계1

 

                                            뭐지

콩이야

얼굴 가득한 꽃

모래밭 빗방울 자국.

꿀벌이 제 집인 줄 알겠네.

여지 열매와 복숭아 씨, 쓴 외

온 하늘의 별들이 지는 꽃잎 때렸나.

 

이것은 중국 사천 사람들이 곰보를 놀리는 노래다. 끝까지 곰보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술이 곰보라는 어휘와 연결되는 순간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글자가 차례로 늘어나는 형식의 시다. 글자가 층으로 이뤄 늘어나므로 層詩라고 한다. 탑을 쌓은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寶塔詩라고도 한다. (P. 359~360)

 

□ 나그네 천연거에 올라가더니          客上天然居

느긋이 천상의 객이 되었네.             居然天上客

 

두 구절의 글자 배열을 보면 둘째 구는 첫 구를 뒤집어 읽은 것이다. (P. 367)

 

Ü 기발한 시세계다. 술집에서 술드시다 나온 시라면 이것은 진정한 詩仙이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잡체시의 세계2

 

□ 봄 물은 사방 못에 넘실거리고        水滿四澤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 많네.          雲多奇峯

가을 달 밝은 빛을 환히 비추니          月場明

겨울 산엔 찬 소나무 빼어나도다.         嶺秀寒松

 

매 구절의 첫 자가 춘하추동이다. 도연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승암시화>에는 진나라 고개지의 작품이라고 했다.

 

□ 반하에 서울에 머무르자니        半夏留京口

병 아직 안 나았다 말들을 하네.     人言炳末蘇

마땅히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兄當歸故里

안개 달빛 앞 호수서 낚시질하리.     絪月約前胡

 

권필의 약명체 시다. (P. 393)

 

Ü 경북 구미 당기는 일을 충남 부여하면 부산하게 노력하여 마음속의 경남 진주를 얻을 수 있다 뭐 이쯤 되겠다. 이것은 지역시가 될 수 있겠다.

 

□ 청나라 때 문인 사치엄이 9세에 현시에 응시했다. 현령이 다음 구절에 대구를 맞추게 했다.

 

한가로이 문 가운데 달을 보면서    閒着門中月

 

사치엄이 대응했다.

 

생각은 마음속의 밭을 간다오.      思耕心上田

 

은 글자 모양이 가운데 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에 을 얹은 꼴이다. 대구가 절묘하다. (P. 400)

 

□ 오늘날 잡체시가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언어의 부단한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직조가 보여주는 즐거움 외에도 잡체시는 오늘의 시단에 의미 있는 시사를 던져 준다. 젊은 시인들이 실험하고 있는 각종의 형태시들은 기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우리는 수없는 상호 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P. 409

 

열여섯 번째 이야기. 말장난의 행간

한시의 쌍관의 雙關義

 

□ 조선 후기 신광수의 작품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작품도 있다.

 

네 나이 이제 열아홉인데                 爾年十九齡

벌써 비파 잡고 다룰 줄 아네.             乃褓持珡珡

빠를 젠 빠르고 높고도 낮게               速速許高低

지음에게 알리기 어렵지 않네.             勿難報知音   (P. 417)

 

Ü 독음을 보곤 아찔하고 즐겁다. 독음은 굳이 소개하진 않는다.

 

□ 상공相公을 뵈온 후에 事事를 믿자오매

拙直한 마음에 들까 염려러니

이리 저리 하시니 百年同胞하리이다.

 

이것은 기생이 지은 시다. 겉의 의미는 단순한 사랑노래이나 속은 그렇지 않다.

장기판의 훈수를 두고 있는 것인데 저쪽에서 상으로 공격해올 때 두 사를 믿으셨던 모양인데 졸이 있기는 해도 병으로 쳐들어올까 걱정입니다. 마를 이리로 옮기시고 차를 저리로 뽑으시면 그 뒤에는 포가 버티고 있어 끄떡없을 것이옵니다.” 깜찍하고 맹랑하다. (P. 421)

 

Ü 이런 기생이라면 나도 언제 한번 만나보고 싶다.

 

□ 연꽃 인해 연뿌리를 얻게 되었네.    因荷而得蘇

 

명나라 정민정을 사위 삼으려는 당시 재상 이현이 그를 초청하여 상 위에 놓인 연근을 가리키며 한 구절을 위와 같이 읊었다.

 

살구 있어 매실은 필요 없지요      有杏不須梅

 

뜻을 보자. 첫 구는 어디서 짝을 얻을 셈인가를 물은 것이다. 쌍관의이고, 둘째 구는 다행히도 중매쟁이가 필요 없겠습니다.로 대답한 쌍관의다. (P. 426)

 

□ 가을의 긴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

연꽃 깊은 곳에 목란배를 매어뒀지

임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

 

그녀가 물 건너로 던진 것은 그저 심상한 연밥이 아니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사랑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Ü 아련한 사랑이다. 가끔씩 길을 걷거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사랑을 시작하는 젊디젊은 커플들을 보면 나는 고맙다. 세상에 이 강퍅한 세상에 아직도 그대들이 있어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므로.

 

□  

 황묘농접.JPG

(김홍도, 황묘농접 18세기)

고양이(일흔 살 늙은이)와 나비(80세 늙은이), 패랭이꽃(축수, 장수)과 제비꽃(여의), 그리고 바위(장수)는 합쳐서 하나의 문장을 이룬다. “뜻 두신 일 뜻대로 모두 이루시고, 70, 80세까지 오래오래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P. 437~438)

 

작호도.JPG

(작호도)

표범을 나타내는 한자어 와 까치는 喜鵲이라하여 기쁜 소식을 뜻한다. 소나무는 과 발음이 같아서 이 그림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기쁜 소식을 알린다送舊迎新, 新年報喜의 의미다. (P. 440)

 

열일곱 번째 이야기. 해체의 시학

파격시의 세계

 

□ 희작시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시정신은 탈중심주의, 탈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현대 해체시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비시적 대상을 시 속에 끌어들여 용도 폐기된 공허한 언어의 일상성을 파괴하고 현실의 삶에 뿌리내림으로써 이들의 구체성과 정직성을 획득한다. 1980년대 해체시가 전통 시양식에 대한 전면적이고 과격한 파괴를 통해 관습적 시관에 도전장을 던졌다면 김삿갓을 비롯한 일군의 시인들은 기교지상주의적 관념 시단에 대해 조소와 야유를 보냈다. (P. 449)

 

Ü 통시적 관점의 희작시의 STANCE. 결국 해체시는 역사와 사회의 결과물이다.

 

□ 원님이 기우제를 지낸답시고 기생집 근처에서 제사지내는 모습을 보고 한 선비가 시를 지었다.

 

원님께서 몸소 나와 비를 비는데

그 정성 뼈 속까지 사무치더라

한밤중에 창을 열고 내어다보니

밝은 달 (明月)

 

원님은 이 시를 듣고 크게 노해 선비를 잡아다가 매질을 했다. 곤장을 맞고 나오며 선비가 또 시를 짓는다.

 

열일곱 자 시를 지어놓고는

곤장을 스물여덟 대나 맞았네

만 언의 상소문을 지었더라면

죽었을 거야 (必殺)

 

원님은 더욱 격노하여 그를 멀리 귀양 보냈다. 떠나는 날 그 장인이 술과 안주로 그를 배웅했다. 그 정성이 느꺼워 선비는 다시 붓을 들었다.

 

저물녘 단풍 든 언덕길에서

날 보내는 장인의 정이 깊구나

서로 잡고 흘리는 이별 눈물은

석 줄 (三行)   (P. 449~450)

 

□ 전통 한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들 희작의 파격시들은 시랄 것도 없는 장난에 불과하다. 도대체 점잖은 선비가 할 짓이 못 된다. 시시덕거리고 키득키득대는 정서에 더 가깝다. (P. 452)

 

Ü 블랙코미디라 하겠는데 한편으로는 엄숙의 격식과 유치한 심각함에 똥침을 날린다. 시대를 앞서는 자는 항상 대중이고 대중의 문화는 기득권이 항상 폄하 시킨다.

 

□ 김준오는 자신의 저서 <도시시와 해체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는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 (P. 458)

 

Ü 그러나, 우스운 세상을 우습게 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뭐가 그리 심각하고 어려울가.

 

□ 낯설게 만들기 (P. 459) à 생각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김삿갓

주리면 피 빨고 배부르면 떨어지니

수많은 곤충 중에 가장 하등이라

먼 길손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하고

주린 이 배위에서 새벽 우레 소리 듣네

보리알 같은 모습 누룩 되긴 어렵겠고

풍자를 못 이루니 매화꽃도 못 떨구리

묻노니 네 능히 선골조차 범하는가

마고할미 머리 긁으며 천태산에 앉았는데

 

우스운 것 앞에서 뜻밖에 진지해지고 진지한 것을 단번에 희화화해버리는 시인의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P. 462)

 

이잡는노승.JPG

(조영석, 이 잡는 노승, 18세기)

햇살이 따뜻해 큰 나무 아래 노스님이 앉아 이를 잡는다. 손가락 모양을 보니 이가 혹시 죽을까 봐 살짝 집어내는 듯하다. (P. 463)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밝은 날 해님 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 처마마다 눈물이 뚝뚝 지리 (P. 466)

 

<자명종>

두개바늘놀아

글자마다치노.

땅땅치는그소리

늙을로자부른.

 

<부채>

참대붙인종이

흔들면은바람

몹시더운여름에

친한벗이네로   (P. 470)

 

□ 새로운 말하기가 강렬한 실험적 의도를 가졌음에도 시대정신이나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잡체시나 파격시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의미는 여전히 생생하다. (P. 472)

 

열여덟 번째 이야기. 바라봄의 시학

관물론 觀物論

 

12 8일 아침,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날씨는 맑았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갑자기 흰 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치가량 내렸다. 조금 뒤 선생께서 누울 자리를 정돈하라 하시므로 부축해 일으키자 앉으신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걷혔다.

문인 이덕홍이 쓴 <퇴계선생고종기>.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제자의 기록으로는 투명하리만치 담담하다. 스승의 죽음과 천기를 일치시키려는 뜻이 읽힌다. (P. 479~480)

 

□ 무릇 관물이라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지 않고 이치로써 보는 것이다. 천하 사물은 이치를 담지 않은 것이 없고 이나 이 없는 것이 없다. (P. 485)

 

Ü 해가 뜨고 달이 지듯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 들 듯 하는 것이다. 강으로부터 깨닫고 산으로부터 배운다.

 

소에게는 윗니 업고 범은 뿔이 없나니

천도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

이로써 벼슬길의 오르내림 살펴보니

승진했다 기뻐 말고 쫓겨났다 슬퍼 말라.  (P. 490)

 

Ü 시저가 말했던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어떻게 볼 것인가? 무엇을 읽을 것인가? 누구나 보고 있지만 못 보는 사실, 늘 마주치면서도 그저 지나치는 일상 사물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한 사물과 낯설게 만나, 그 낯섦으로 그 사물을 새롭게 만나는 것, 이것이 관물론이 시학과 만나는 접점이다. 시인은 격물 또는 관물의 정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주변 사물의 끊임없이 발신하는 의미를 깨어 만날 수 있다. 히드라의 예민한 촉수와 같이 안테나를 세워 세계와 교신할 수 있어야 한다. 탄성계수를 유지하지 못하는 관물은 관물이 아니다. 그것은 견물일 뿐이다. 여기에 무슨 생의로움이 있겠는가. 눈앞 사물과의 설레는 만남, 세계와 줄다리기하는 팽팽한 긴장이 없이 좋은 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반란자다. 그의 눈이 포착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다. (P. 499~500)

 

Ü 낯설게 하기는 생각을 탄생시키는 지점임과 동시에 깊은 지점으로 이르는 접점이다.

 

열아홉 번째 이야기. 깨달음의 바다

선시 禪詩

 

□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이다.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다. 중은 속인이요 속인이 중이다. 이 이치를 이미 깨닫는다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중은 중이고 속인은 속인일 것이다.

깨달은 자는 포대존자가 똥덩이를 들고서 이것이 극락세계다라 하고 마른 생선 토막을 들고서 이것이 도솔천의 궁전 밑이다라 한 뜻을 알게 될 것이다. (P. 503)

 

Ü 아직 정전백수자의 이치에 한 치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 더듬어 지나온 길 예순하고 일곱해

오늘 아침 이르러 모든 일 끝이 났네.

고향으로 가는 길은 가지런히 평탄한데

갈 길이 뚜렷하여 헤매는 일 없겠구나

수중엔 다만 겨우 지팡이 하나지만

도중에 다리 품 덜어줌이 기쁘다.

 

충지 스님의 <임종게>이다.  (P. 514)

 

Ü 이 시는 놀랍다. 죽음 앞에 담담하고 오히려 확고한 길을 찾았음에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장엄한 선시의 세계는 이런 것이었다. 빨려든다.

 

정진규의 <모기친구>

진종일 뛰어놀고서도 씻지 않으려 하기에 얼굴엔 온통 암괭이를 그리고서도 말을 듣지 않기에 지난 밤 모기에 물린 자리가 발갛게 부어올랐기에 모기는 깨끗한 것보다는 더러운 걸 더 맛있어한다고 겁을 주었더니, 그럼 모기에겐 깨끗한 것이 더러운 거고 더러운 것이 깨끗한 거네, 모기가 목욕을 해주었잖아! 더러운 걸 먹어버렸잖아! 난 모기 친구가 될거야 그러곤 여섯 살짜리 내 상욱이는 깔깔깔 달아나버렸다.

 

깨끗하고 더럽다는 말의 의미가 한순간에 증발해버리는 상쾌함 (P. 515)

 

유재영의 <오월>

 

상추꽃 핀

아침

 

자벌레가

기어가는

지구 안쪽이

자꾸만

간지럽다

 

간지러운 건 시인 자신인가? 지구의 안쪽인가? 조그만 자벌레가 지구를 간질인다. 이 놀라운 깨달음 앞에 세계는 한순간 어안이 벙벙해진다. (P. 517)

 

□ 좋은 시는 끊임없는 반란의 산물이어야 한다.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 익숙해진 접점에서 벗어나기를 쉼 없이 추구해야 한다. (P. 523)

 

Ü 현재에 반기를 드는 모든 억압된 영혼들을 응원한다.

 

소동파의 <>

 

만약에 거문고에 소리가 있다 하면

갑 속에 두었을 젠 어이 해 안 우는가

그 소리가 손가락에 있다고 한다면

그대의 손끝에선 어째서 안 들리나 (P. 525)

 

Ü 기절할 표현이다.

 

□ 선시도 일상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牛溲馬勃이 다 선이다. 麻三斤이 부처고 야반 삼경의 문고리가 스승의 遺體. 선사는 깨달음 없는 삶, 생존의 나날을 혐오한다.

선의 화두가 그러하듯이 좋은 시는 타성에 젖은 뒤통수를 후려친다. 그러고 보면 문자로도 세울 수 없는 깨달음은 큰 깨달음이랄 수도 없겠다. 고려 때 혜심의 설날 법어에 이런 것이 있다. “아이는 한 살 더 먹기를 바라고 늙은이는 한 살 더 줄기를 바랄 것이다. 누가 한 해라는 시간을 정해놓았더냐. 차라리 한 해라는 시간을 없애버림은 어떨꼬?” 통쾌하지 않은가? (P. 528)

 

스무 번째 이야기. 산과 물의 깊은 뜻

산수시 山水詩

 

□ 김부식의 <송도 감로사에서 혜원의 시에 차운하여 제하다>

속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지네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강물 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해오라기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가벼이 홀로 떠가네

부끄럽다. 달팽이 두 뿔 위에서

반평생 공명만 찾아 다녔네 (P. 535)

 

Ü 산에 올라 내가 살아내던 도심을 보고 있자면 야생은 과연 둘 중 어디인가를 되묻게 된다. 자연에서 사는 것과 도시에서 사는 것 중 죽지 않으려 구차하게 사는 삶이 과연 어디의 삶인가 되묻는 것이다.

 

□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해 막힘 없는 것이 물과 같으므로 물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기에 산을 좋아한다. (P. 538)

 

여보게, 저 폭포 좀 보아. 겁도 없이 제 몸을 내던지네그려.

우리는 너무 비겁하게 살았어. 아등바등 전전긍긍 설설 기며 살았어. (P. 540)

 

천 석들이 저 큰 종을 보게나

큰 공이로 안 치고는 소리 안 나리

만고에 우뚝한 저 천왕봉은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누나.

 

남명 조식의 <천왕봉>이다. 큰 종은 거기에 맞는 공이가 있어야 한다. 산을 종으로 유비하여 바라본 발상도 재치 있거니와, 선비의 의연한 마음가짐이 범접할 수 없는 기상으로 압도해 온다. (P. 543)

 

□ 적바림하다.  (P. 546)

 

Ü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둠.

 

스물한 번째 이야기. 실낙원의 비가

유선시 遊仙詩

 

□ 현실의 억압은 개체의 삶을 질식시킨다. 인간은 닫힌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반란을 꿈꾼다. 현실에는 존재하니 않는 세계 어떤 갈등도 없으며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만한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인생은 그렇듯이 슬프고 인간은 그렇듯이 나약한 존재인가. 삶의 짙은 회의 속에서 시인들은 무의식의 저편에 저장된 언젠가 떠나온 곳,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완벽한 꿈의 세계이다. (P. 559~560)

 

□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후반부에 다음 구절이 있다. “꿈에 한 사람이 날다려 닐온 말이 그대를 내 모르랴 상계의 진선이라. <황정경> 일자를 어찌 그릇 읽어두고 인간에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가?”

자신을 귀양 온 신선으로 내세우는 심리의 이면에는 고통뿐인 현세를 합리화하려는 심리 기제가 작용한다. (P. 568)

 

Ü 그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신뢰하여 지금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 보리라는 발버둥.

 

고구려고분벽화.JPG

(고구려 5회분 4호묘 고분벽화 가운데 학과 용을 탄 신선)

학을 탄 신선과 용을 탄 신선이 젓대를 불며 두꺼비가 지키는 월굴을 향해 간다. 흰 관을 쓴 사람이 이 무덤의 주인이었을 게다. (P. 573)

 

□ 유선시는 중세적 꿈꾸기의 산물이다. 이러한 꿈꾸기는 허망한 몽상이나 환상이 아니다.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꿈을 꿀 수가 있다. 문학이 다만 실천의 도구 일 때, 사회는 꿈을 꿀 자리를 잃어버린다. 꿈이 없을 때 사회 개조는 있을 수 없다. 김현의 이 말은 바로 유선시에서 중세적 꿈꾸기가 갖는 의미를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의 혈관 속에 내재한 원초적 상징들을 까맣게 잊고 있던 그 기호들을 유선시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P. 576)

 

스물두 번째 이야기. 시와 역사

詩史史詩

 

□ 이달의 <제총요>

 

흰둥이 앞서가고 누렁이 따라가니

들밭 풀 주변에는 무덤들 늘어섰네

제사 마친 늙은이는 밭 사이로 난 길에서

손자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그림 속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이 없다. 소년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시인은 시치미를 뚝 뗐지만 소년의 아버지야말로 바로 두 사람이 제사지낸 무덤의 주인공이었다. 전쟁의 풍경이다. 임진왜란으로 죽은 아비, 그리고 아들의 슬픔이다. (P. 579)

 

□ 시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의 거울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바람과 애환이 그대로 떠오른다. 한 편의 시는 방대한 사료로 재구성한 어떤 역사보다 더 생생하다. 사람들은 이를 일러 詩史라 한다. (P. 583)

 

Ü 시로써 못하는 것이 없다.

 

□ 삼정의 문란을 말할 때 당시 이를 증명하는 어떤 통계수치보다도 우리는 이 <애절양> 한 편을 통해 그 시대 백성의 절규를 실감으로 듣는다. 시는 이렇게 역사가 된다. (P. 587)

 

Ü 아름다운 말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길 때 민초들은 풍류의 시란 것이 이리도 잔인하게 딴 나라의 언어가 되어 있었을게 아닌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진시황 32년 병술. 시황이 북쪽 변방을 순행하는데 노생이 바다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녹도서를 바쳤다. 거기에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라고 적혀 있었다. 시황이 이에 몽염을 파견하여 군대 30만 명을 출동시켜 북으로 흉노를 치고 하남의 땅을 거두어 44현을 만들고 장성을 쌓았다. 지형을 인하여 험준한 요새로 제어하니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1만여 리였다.”

통감의 한 대목이다. 녹도서에서 망진자호야 라 예언한 것은 오랑캐가 아닌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를 가리킨 말이었다. 그러나 만세토록 진나라의 왕업을 잇겠다던 시황은 오랑캐를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P. 598)

 

Ü 크로이소스가 델포이 무녀의 예언을 잘못 해석하여 왕좌를 빼앗긴 것과 유사하다. 동서의 오해는 이렇게 같은 맥놀이를 한다.

 

□ 치열한 역사의식도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저항정신도 시인이 먼저 흥분하면 한낱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흥분을 가라 앉힐 때 역사와 현실은 더욱 심각하게 독자의 뇌리에 각인된다. 1980년대 대자보에 가까운 그 숱한 민중시는 이제 아무도 읽지 않는다. 시의 정서는 이념과는 상관없다. (P. 602)

 

Ü 객관화시키고 엄중한 자기 검열이 완결된 상태의 역사 서술을 가능케 한다. 그것이 사시를 짓는 이의 마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필자의 의견과 나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 역사란 무엇인가? 현재의 퇴적일 뿐이다. 지금 시대의 자취를 일러 후세는 옛날이라 한다. 그렇다면 굳이 지나간 옛날에 얽매일 필요가 없겠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것이 곧 옛날이다. 시사는 시인의 충실한 증언이 뒷날의 역사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사시는 시인이 과거의 거울에 비춰 현재를 읽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그대로 뜬다. 지나간 역사가 오늘을 비추는 등불인 까닭이다. (P. 603)

 

스물세 번째 이야기. 사랑이 어떻더냐

정시 情詩

 

□ 강세황의 <노상소견>

 

비단 버선 물결 걷듯 사뿐사뿐 가더니

중문 한번 들어서곤 아득히 사라졌네

다정할사 잔설이 그래도 남아 있어

그녀의 발자국이 담장 가에 찍혔구나.

 

그녀가 밟고 갔던 것은 아무래도 눈이 아니라 그의 가슴이었던 것 같다. (P. 607)

 

□ 성간의 <염양사>

 

백면서생 도련님 준마에 올라타고

낙교의 서쪽 물가 답청놀이 나오셨네

미인은 싱숭생숭 야릇한 맘 못 이겨

담장 머리 내다보며 웃음을 띄우누나. (P. 611)

 

□ 흰 모시 적삼에 눈썹 곱게 그리고서

마음 속 정 둔 얘기 재잘재잘 얘기하네

임이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말아주오

50년 전에는 스물셋이었다오. (P. 612)

 

□ 새벽녘 등불이 남은 화장 비추는데

이별을 말하려니 애가 먼저 끊어지네

달도 다 진 새벽녘에 문 열고 나서려니

살구꽃 성근 그림자 옷깃에 가득하다. (P. 616)

 

Ü 밤새 자지 못하고 나눈 얘기로도 서로가 아쉬웠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는가. 왜 헤어지는가. 가슴을 여민다.

 

□ 이계의 <婦人>

시집올 제 해온 옷이 반 넘어 그대로라

상자 열고 살펴보다 더욱 맘을 상하네

평생 좋아하던 것을 함께 담아 보내니

빈산에 다 맡기어 티끌 되어 스러지라. (P. 622)

 

□ 김정희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처지 바꿔달라 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 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마음의 슬픔 알게 하리라. (P. 623)

 

스물네 번째 이야기.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

상동구이론 尙同求異論

 

낮은 소리 가만히 그리웠냐 물어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여기에 동양의 수법이 있다. 서양의 시인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시도 잊을 수 없어요.”하고 빨간 입술을 내밀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낫다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라도 표현 방법에서도 동양의 수법은 신비롭다. (P. 629)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3연의 왜 사냐건 웃지요는 시의 압권이다.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 그저 웃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여유롭다. (P. 630~631)

 

□ 박목월 <불국사>

 

흰 달빛

자하문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

 

마법에 걸린 듯 시가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한다. 몽환적이다. (P. 640~641)

 

□ 원나라 마치원 <가을 생각>

 

마른 등나무, 늙은 나무, 저녁 까마귀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사람 사는 집.

옛길, 서풍, 비쩍 마른 말

석양은 내려오고

애끊는 이 하늘가에

 

토막토막 명사만 잇대었다. 황혼 무렵이다. (P. 642)

 

□ 우리가 말하는 의미 있는 모방은 심동모이의 모방이다. 껍데기만 같으면 못쓴다. 이것을 다시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 尙同求異.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한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기에 같다는 말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만난다. 한시와 현대시도 그렇다. (P. 649)

 

에필로그. 그때의 지금인 옛날

통변론 通辯論

 

□ 옛것이 어째서 오늘에 감동을 주는가? 그들은 내가 아닌데 왜 나와 같을까? 형식은 변한다. 생각도 변한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이 강산, 이 흙 밟고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민 정서는 세월로도 씻을 수 없는 원형질로 남는다. (P. 655)

 

□ 옛것을 기준으로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볼 때 반드시 자신이 예스럽다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지금 것으로 보았을 뿐이리라.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P. 660)

 

□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여라. 옛길을 따르지 마라. (P. 666)

 

□ 한유가 말한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는 원리를 환기한다면 우리가 한시를 통해 퍼 올릴 수 있는 샘물은 무궁무진하다. 기갈에 바짝 타는 목을 축이고 더위에 찌든 몸에 상쾌한 등목을 해줄 수 있다. 가야 할 미지의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짧은 두레박줄을 길게 늘리고 먼 길에도 부르트지 않도록 들메끈을 고쳐매야 할 것이다.

 

Ü 필자는 매우 힘을 준다. 표현은 아름답다.

 

□ 미의식의 부재는 문학성의 검증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가뜩이나 한문 해독이라는 부담을 지고 가는 터에 미학의 잣대마저 흔들리니 결국 인치를 가지고 자척을 재려 드는 격이 되고 만다. (P. 669)

 

□ 주체의 자각이 없는 현상의 투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내가 본래 있던 그 자리, 미분화된 원형질의 상태로 돌아가라. 눈에 현혹되지 말라. 네 튼튼한 발을, 네 듬직한 지팡이를 믿어라. 갑자기 눈이 열리기 전 내 앞에 놓여 있던 세계, 익숙해져 있던 세계, 나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간극도 없던 세계로 돌아가라. 그 세계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래의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차차 새롭게 열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볼 일이다. 문학은 발전해왔는가. 아니다. 다만 변화해왔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라. 먼저 네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P. 671)

 

3. 다시 를 쓰다 (내가 저자라면)

 

어린 아들이 놀아달라는 요구조차 뿌리치고 나온 역작인 만큼 과연 시의 해석은 남다르다. 더욱이 이 개정판은 저자가 새 책을 낸 것과 진배없는 편집으로 만들어 졌으니 저자가 이 책에 대한 애착은 또한 남다르다 하겠다. 이십 년을 저자와 함께한 아들과 같은 책이라 할만 하다.

 

한시를 독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독해한 한시를 문학적인 아름다움으로 풀어내는 일은 대학자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손을 댈 수 있겠는가. 우선 저자에게 매우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저자가 아니었던들

 

소동파의 <>

 

만약에 거문고에 소리가 있다 하면

갑 속에 두었을 젠 어이 해 안 우는가

그 소리가 손가락에 있다고 한다면

그대의 손끝에선 어째서 안 들리나 (P. 525)

 

이런 표현과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밝은 날 해님 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 처마마다 눈물이 뚝뚝 지리 (P. 466)

 

이런 표현들을 그냥 평생 흘려 보내고 지낼 뻔 하지 않았나. 이 외에도 기절할 만한 표현의 많은 한시를 나는 저자를 통해 접하였다. 그의 눈물 나는 노력을 1주일 만에 이리 쉽게 접해도 될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수집한 자료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성실을 단 번에 가로챈 느낌이 들어 미안하기 짝이 없다.

 

내용과 함께 책의 구성도 매우 치밀하고 깔끔하여 저자의 편집 고뇌를 느꺼이 짐작할만한 하다. 주제 별로 한시를 묶어 禪詩, 情詩, 雜體詩, 觀物詩, 山水詩 등을 한 눈에 섭렵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중간중간에 나오는 잗다란’, ‘적바림등 고운 말들은 책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러나, 스물 두 번째 이야기 史詩詩史에서는 기대한 만큼의 깊이를 얻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의 노력이 깊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의 역사를 한번 훑을 수 있겠구나 했던 작은 바램은 임진왜란이나 중국의 호란 등의 전쟁의 풍경으로 일단락 되었으니 약간의 실망이 없진 않았다.

 

덧붙여 깔끔하게 정리된 주제 별 구성을 한 차례 더 솎아내어서 시대 별 구성을 더한다면 독자로 하여금 완벽에 가까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예를 들면 禪詩에서는 소동파의 한시에서부터 정진규의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들을 복잡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시대 별로 구분하면 禪詩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되지 않을까 한다.

 

모처럼 좋은 책을 읽어 내 마음은 많이 정화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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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07:50:07 *.154.223.199

안녕하세요? 장재용님^^

저는 지난번 깊은 인생 리뷰에서 올려주신 사진 (스피노자의 다락방, 제3세계를 돌아보는 아니타로딕, 조주선사 그림...)에 반해서 이번에도 은근 사진을 기대하고 들어왔습니다.

역쉬! 이번에도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게다가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치는데도 저는 허덕허덕 했는데 장재용님은 마음을 무찔러 드는 그림까지 모으신듯 합니다. 놀라워요.

빨간색 글씨를 보며 저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됩니다.  

 

정민교수님의 연구실 빼곡한 책장 앞에서 출근 후 윗저고리를 벗어두고 평소 가디건을 입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선량하고 정직, 성실하게 생긴 얼굴입니다.

저런 분이 은행에 앉아 있으면 그 분한테 줄서서 창구 볼 일을 볼 것 같습니다.  

모교에서 층층시하 며느리처럼 가슴앓이를 하셨다는 이야기는 또 처음 읽었어요. 이런 에피소드들 얻어읽는 일이 저는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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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09:09:17 *.51.145.193

말씀 감사합니다.^^ 저 역시 허덕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일천한 글을 잘 봐 주셔서 감사하구요.

저 역시 권윤정님의 글을 보면서 많이 생각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레이스 막바지 입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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