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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4일 11시 04분 등록

제 작년, <생각의 탄생>이란 놀라운 책의 등장과 함께 서점가에는 제목과 편집 디자인, 광고 문구까지 카피한 아류작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마케팅의 제 1원칙이, 기존의 잘 된 케이스를 모방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유난히 <생각의 탄생>을 쫓아 만든 책들이 많았던 이유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일으킨 심심찮은 반향과 대중적 인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아류작들 가운데 이어령 씨의 <젊음의 탄생>이 버젓이 누워 있었다.   전작 <디지로그>를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왠지 모를 찝찝함을 뒤로 하고 <젊음의 탄생>을 집어 들었다.

노인(老人)의 혜안(慧眼)을 절대 무시하지 마라. 거기엔 모방이 아닌, 창조가 있었고 아류가 아닌 일류가숨 쉬고 있었다.   9개의 매직카드, 그것은 이제 막 보물섬을 찾아 길을 나선 젊은이들에게 지혜로운 마법사가 쥐어주는 숨겨진 보물지도였다.

<디지로그>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저자는 자칫 지루하고 고리타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엮어 내는 재주를 가졌다. 어렸을 적, ‘호랑이와 곶감’을 들려주던 할머니처럼 한껏 감정이 이입된 저자의 목소리는, 때로는 알사탕을 빨아 먹듯 달달하게, 때로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감 있게 진행되었다.
풍부한 삶의 경험, 다양한 지식의 향연,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워진 일관된 삶의 철학은 아무에게서나 발견될 수 없다.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내부의 에너지가 온전히 그것을 증명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저항의 힘을 창조의 힘으로, 갈등의 대립을 융합의 파워로 전환하기를, 그리하여 21세기 한국의 힘을 세계 곳곳에 떨칠 수 있기를 바랐다. 한 방울의 참기름이 온 방안을 고소함으로 채우듯, 한 권의 책이 이 땅 젊은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심어주리라는 확신이 떠나질 않는다.

마음에 와 닿는 메시지들이 너무 많지만 나는 오늘 한 가지만을 말하려고 한다.
세 번째 매직카드 바로 “개미의 동선 Ant's Trace” 이다.
개미의 동선은 한 생태학자가 개미의 행동을 추적해 그 동선을 적어놓은 것이다. 이 도형에서 보이는 개미들의 발자취는 꼭 엉킨 머리카락 뭉텅이 같다. 어수선하고 질서 없이 이어져 도무지 규칙성이나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일직선으로 뻗은 하나의 선을 발견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미 동선의 놀라운 반전이다.

개미들은 먹이를 찾을 때까지는 이리저리 헤매다가도 일단 먹이를 찾으면 귀신같이 먹이를 물고 자기 집으로 향한다. 그것도 헤매 다니던 제 위치에서 집 입구까지 최단 경로를 찾아 일직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놀라운 미스테리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개미의 고유한 생존방식이며 자연법칙에 입각한 본능이다.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우리의 10대와 20대를 떠올려 보라. 방황하고 좌절하고, 헤매고 주저앉으며 흐느꼈던 그 시절을. 우리의 발바닥에 붉은 페인트를 묻혀 놓았다면 아마도 그 동선은 생태학자가 추적했던 개미의 그것과 놀랄 만큼 비슷하지 않았을까.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개미처럼, 우리의 젊은 시절도 그러했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불확실한 선택, 때로는 무모할 만큼 위험한 경주가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생(生)이요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에도 우리는 끝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막연하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미지의 힘, 모호하지만 확신을 갖게 하는 신념, 숨이 턱까지 차올라 쓰러질 것 같지만 또다시 초인적으로 무릎을 세우는 용기. 이것이 바로 우리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우리 자신의 엄청난 에너지였던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에 목말라 하는 젊음은 먹이를 찾는 개미처럼 방황하게 된다.
이것은 시적인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희랍의 철학자들이 정원의 오솔길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명상을 하고 담론을 나누었다. 개미의 먹이 찾기처럼 그렇게 떠돌면서 상상력과 영감을 구했던 것이다. 철학자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추구하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개미처럼 부지런해도 먹이를, 삶의 방향과 비전을 찾기 전까지는 홀로 방황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괴테가 말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방황하고 헤매게 된다고.
먹이를 찾지 않는 개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안전하고 흔들림 없는 요새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생존 본능과 무리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개미는 더 이상 개미가 아니다.

자, 이미 우리는 개미집을 떠났고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헤매고 있다. 먹이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어지러이 움직이고 바삐 가던 길을 재촉할 것이다. 
드디어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눈앞에 보일 때, 개미는 어쩌면 두 발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곧장 먹이를 입에 덥썩 물고 그 기나긴 여행을 종료할 것이다.

이제는 곧바로 개미집을 향해 일직선으로, 아무런 미련 없이 돌아올 것이다.  
다시 어지러운 곡선 사이에 곧게 뻗은 직선을  눈여겨보자. 곡선이 직선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지도 같은 우리의 젊음은 방황이 용서되는 유일한 성역이며, 동시에 분명한 목표를 가르쳐 주는 화살표일 것이다.



                              내가 지금 떠도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헤매는 것은 무엇인가의 진실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방황하는 것은 무언인지 아름다움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멀리멀리 떠나고 있는 것은

나에게 사랑과 진실과 아름다움이 살고 있는,

작은 집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어령 미발표 시 나의 작은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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