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승완
  • 조회 수 489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9년 7월 23일 08시 34분 등록
나는 너희들에게 전원을 남겨줄 만한 벼슬이 없다. 오직 두 글자의 신령스러운 부적이 있어, 이것으로 삶을 두터이 하고 가난을 구제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우습게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과 비옥한 땅보다 훨씬 나으니, 일생을 쓰더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 정약용, <또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又示二子家誡)> 중에서
= 정민 지음,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재인용

‘근(勤)’과 ‘검(儉)’,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생활 중에 두 아들에게 간곡하게 준 가르침입니다. 다산 선생님은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자식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당부한 말씀이 부지런함과 검소함입니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아침나절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까지 늦추지 않는다. 갠 날에 할 일을 미적거리다가 비를 만나게 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에 할 일을 꾸물대다가 날이 개게 하지 않는다.”

검소함에 대서는 “옷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니 “매번 옷 한 벌 지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 입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음식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인데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것이 되어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리하면 먹고 입는 데 사치를 부리지 마라는 뜻입니다.*

요즘 제 책상에는 정약용 선생님에 관한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전에 읽을 때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에 새겨야 할 가르침’으로 들어옵니다. 이전 사정과 지금이 다르고, 지금의 마음이 이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삶의 지침으로 삼을 잠명(箴銘)으로 세 글자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각 글자 아래 세부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잠명 세 글자 중 두 글자는 정약용 선생님이 말씀하신 ‘근(勤)’과 ‘검(儉)’입니다. 이 두 자를 가슴에 새기고 튼실하게 실천하면 굶어죽지도 비루해지지도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는 마음으로 ‘근’과 ‘검’을 실행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세 글자 중 나머지 한 글자는 공자님 말씀에서 따온 ‘낙(樂)’입니다. 공자님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하셨습니다. 일과 독서 그리고 책쓰기를 통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자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낙’의 수준이 ‘지’와 ‘호’를 거치지 않고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능할 것도 같은 데 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 같은 경우는 ‘지-호-낙’ 순인 것 같습니다. “지와 호를 채우고 낙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제 결심입니다.

저는 ‘낙’은 목표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과정이든 즐기는 마음과 자세가 바로 낙입니다. ‘놀이와 학습과 노동’을 눈덩이 굴리듯 찰지게 통합한 상태가 낙입니다. 삶에서 ‘밥’과 ‘존재’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닌 손잡고 춤추는 겁니다. ‘근’으로 존재를 튼실히 하고 ‘검’으로 밥을 지키며 ‘낙’으로 일상의 꽃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근’과 ‘검’과 ‘낙’이 하나로 통합된 나, 그런 일상을 만들 겁니다.

* : ‘근(勤)’과 ‘검(儉)’에 대한 정약용 선생님의 말씀은 정민 교수님의 <다산어록청상>에서 발췌했습니다.
- 정민 지음, 다산어록청상, 푸르메, 2007년
IP *.255.183.217

프로필 이미지
수희향
2009.07.24 09:16:30 *.249.57.142
근과 검을 읽을 때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니
낙에 이르러는 미소가 번집니다.

지-호-낙...
무릇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우선 내 안을 채우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깨닫는 날들입니다.

근-검-낙. 선배는 잘 지켜나가리라 믿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홍승완
2009.07.24 22:12:05 *.255.183.217
저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에게 성실하다고 말할 마음이 생겼어요.
세번째 책을 쓰면서 근을 근육에 심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검소한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에요.
아마 앞으로의 상황이 저를 검으로 이끌 것 같아요.
흔쾌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근처럼 검을 몸에 심고 싶어요.
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경지이고, 다만 요즘 가끔 느끼는 바는 있어요.
잊지 않고 노력하면 낙도 가능하리라 믿고 있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84740
658 젊음의 탄생 - 이어령 나리 2009.07.14 6592
657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2] 홍승완 2009.07.16 16472
656 너, 외롭구나 - 무규칙이종카운슬러 김형태 나리 2009.07.17 5988
655 카오틱스 부지깽이 2009.07.19 4300
654 잠명(箴銘), 자신과 삶을 위한 지침이자 경계로 삼는 글 승완 2009.07.20 7649
653 여행은 생각의 산파 [1] 현운 2009.07.23 4528
» 앞으로 5년 동안 삶의 지침으로 삼을 잠명 세 글자 [2] 승완 2009.07.23 4899
651 부끄러움 [1] 차칸양 2009.07.23 4260
650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 [1] 병진 2009.07.24 4504
649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현운 2009.07.24 4429
648 떠나기 전의 나와 떠난 후의 나, 그리고 돌아온 나는 같... [2] 승완 2009.07.27 4477
647 단절의 시대는 기회의 보고입니다 현운 2009.07.28 4317
646 침묵, 존재를 자각케 하는 음악 [2] 승완 2009.07.30 4448
645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안철수 [1] 나리 2009.07.30 4422
644 드러커 이해하기 (1) 탈근대합리주의 현운 2009.08.01 4415
643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인다 승완 2009.08.03 5802
642 드러커 이해하기 (2) 사회생태학자 현운 2009.08.04 4243
641 난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그를 좋아했다 [2] 승완 2009.08.06 4477
640 혼자 있기와 혼자 놀기, 그 자유로움의 미학 승완 2009.08.10 4416
639 드러커 이해를 돕는 입문서 현운 2009.08.11 4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