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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4일 15시 25분 등록

여행이 성숙한 자아의 형성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 살 정도면 여행이 가능한가? 한 마디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추론과 사고의 정도가 일정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판단력이 형성되고 머리 속에는 그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나이가 되어야만 보다 효과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한다면 그 여행에서 별다른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수많은 실수와 잘못 해석한 악습 같은 것만을 흉내 내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 격이 될 뿐이다.
- 이진홍, 『여행이야기』 p.62


책은 좋은 것이지만, 여행 역시 좋은 것입니다. 그것 자체로도 좋지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책과 여행은 더욱 좋은 것이 됩니다. 효과적인 독서가는 책을 통해 삶의 도약과 배움의 기쁨을 누립니다. (관광객과는 구분되는) 효과적인 여행자는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자연과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하면서 성장을 경험합니다. 『여행이야기』는 여행을 제대로 누리기 위한 두 가지의 조건으로 1)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2) 사고력을 제시했네요. 최소한의 지식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여행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기 위해 어떤 생각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이 없음은 (허나, 책이 문고본임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아쉬운 점입니다.


일찍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가 아닌 '존재'를 중심하는 삶의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소유하려고 갈망하기보다 즐겁게 자신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가 되도록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책은 이러한 존재 중심의 삶을 여행에도 적용하라고 권합니다. 여행을 소유로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곳, 혹은 유명 관광지를 나도 빠지지 않고 다녀왔다는 안도감, 혹은 자부심으로 어깨를 으쓱한다면 혹시나 여행을 소유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p.67)


오래전부터 여행은 내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인생 수업이었습니다. 입대 전, 중국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것이 군 생활을 즐기는데 도움이 되었고, 동생과 함께 훌쩍 떠난 강릉으로의 여행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지요. 책의 주장처럼, 여행을 통해 한껏 배우려면 최소한의 지식과 사고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무척 아쉬워하며 이번 여행을 떠났습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유럽 사람들에 대하여 준비한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미리 준비하지 못한 불성실한 여행자인가? 혹은,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프리랜서인가?
두 가지의 질문은 여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원인에 다가서게 만듭니다. 그러나 뭔가 명쾌한 기분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스스로의 불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간단하게 보이는 하나의 현상에도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이 깃들어 있습니다. 손쉽게 답을 얻었더라도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 대답은 충분한가?" "검토하지 않은 다른 사실은 없는가?"


돌이켜보니, 삶에서 제가 원하는 만큼의 여행 준비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 때마다 제가 불성실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여행 준비를 하지 않고 무얼 했냐고 묻는 분들에게 할 말은 있습니다. 와우팀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여행 직전의 주말 이틀을 몽땅 투자했습니다. 여행 전 3일은 중요한 전화를 받느라, 메일 회신을 하느라, 지인에게 선물을 보내느라, 원고를 쓰느라 참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모두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 기여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행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를 하진 못했지만, 일상의 일들을 성실히 해내긴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여행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것입니다. 여행 준비가 늘 부족한 (혹은 형편없는)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는 위의 두 가지 질문은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책은 말합니다.


"여행이란 그 동안 내적으로 축적된 정보와 지식과 통찰의 능력이 외부의 경험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p.70)


경험과 지식의 균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책은 농장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농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농장에 대한 책을 읽는 것보다 효과적이라 말합니다. 게다가, 농장을 방문하기 전에 몇 가지 지식을 알아 둔다면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경험이 지식보다 우수하다고 말하지 않고, 둘의 관계를 설명하며 '균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책상에서 얻은 지식과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균형 있게 취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식 후경험이 효과적일까요, 선경험 후지식이 효과적일까요?


"설혹 농장에 대한 선험적으로 축적된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나중에 이런 것들을 책에서 볼 때 이제 그 참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므로 흥미롭고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p.70)


저는 여행하고 공부하는(선경험 후지식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때로는 공부하고 여행할 때도 있었지만, 여행을 다녀 온 후에 관심을 가져 공부를 한 적이 좀 더 많았습니다. 이번 유럽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공부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여행으로 인해 생동감을 느끼며 책을 읽게 있겠지요. 이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했지요. 이러한 생각이 제게 유효한 것인지는 여행 후의 실천 여부에 따라 진위가 가려 질 것입니다. 공부로 이어진다면 저는 진솔하게 말한 것이겠지요. 공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그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한 것뿐이겠지요. 양쪽 모두 나를 알아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나만의 여행 스타일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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