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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7일 11시 49분 등록

[북리뷰 11] 역사 속의 영웅들 Heroes of History

 

1. 저자에 대하여

 

윌 듀런트 Will Durant (1885.11.5∼1981.11.7)

공산주의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아내 에이리얼의 도움을 받아 공동 저술한 『문명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와 ‘철학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와 ‘철학의 향연(The Mansions of Philosophy)’ 등을 통해 여성과 노동자들의 평등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펼쳤다.

 

그는 Brisbane의 뉴욕 이브닝(New York Evening Journal)에서 일주일에 10달러를 받고 리포터로 일하기도 했고, 1907~1911년 뉴저지의 세튼 홀 대학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치기도 하고, 자유 교육 실험학교인 페레르 근대학교(the Ferrer Modern School)에서도 가르쳤다. 그 학교에서 13살 연하인 에이리얼(Ariel)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Chaya Kaufman와 만나 결혼하였다.

 

1917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따면서, ‘철학과 사회의 문제(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라는 첫 번째 책을 통해 ’철학은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를 피해왔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다‘ 주장했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의 철학 교수로도 재직하였다.

 

그는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내와 나란히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Westwood Village 기념공동묘지에 묻혀있다.

 

2. 가슴에 무찔러 드는 글귀들

 

들어가는 말 : 윌 듀런트가 남긴 마지막 유언

듀런트의 마음에 이제 질문은 없었다. 이것은 철학으로서의 역사라는 자신의 사유를 전파하는 일에서 마지막 시도가 될 참이었다.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 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 하나는 과학을 통해서이다. ... 다른 하나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공간 속의 사물보다는 오히려 시간 속의 사건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p10

 

니체와 똑같이 <모든 철학은 역사에 (그 힘을) 빼앗겼다>고 느꼈던 듀런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곳이 바로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와 이런 철학은 『역사 속의 영웅들』의 많은 페이지에서 울려나온다. p12

 

여기서 윌 듀런트는 신선할 정도로 새롭게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다루기 거리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학술적인 용어들을 사용해서 표현하는 주제인 성(性), 정치, 종교와 같은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쉽게 말한다. 더욱이 듀런트가 1인칭 화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주제들에 대한 개인적인 유언이라는 느낌을 준다. p13

 

윌 듀런트의 모든 저술의 주제는 문명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특정한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 사상의 효능에 대한 평결은 이미 역사의 법정에서 내려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귀 담아 듣기 위한 시간을 낸다면 말이다. 철학적 주제와 관련된 이론적인 추상개념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 인류의 유산은 그런 원칙이 바람직한 결과를 냈느냐, 아니면 바라지 않은 재앙으로 떨어졌느냐에 대한 구체적인 예들을 가지고 있다. p13

 

윌 듀런트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은 ... 이것은 미래 세대의 도덕적 함양과 이익을 위해 과거의 유산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 수많은 성인(聖人), 정치가, 발명가, 과학자, 시인, 예술가, 음악가, 연인, 철학자들이 살아서 말하고 가르치고 조각하고 노래하는, 정신의 나라, 하늘의 도시......p13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흔적은 대략 기원전 1백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 농업의 흔적은 기원전 2만 5천 년 이전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류는 땅을 경작하는 농부로 정착 생활을 한 것보다 40배나 긴 세월을 사냥꾼으로 살았다. 97만 5천 년의 이 세월 동안 인류의 기본적인 성향이 만들어졌고 아직도 그대로 남아 매일 문명에 도전하고 있다. p15

 

남자는 피임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오두막에서의 자산이었고, 뒷날에는 사냥 패거리에서의 자산이었다. 이것과 함께 다른 이유들로 인해 욕심이나 싸움을 좋아하는 기질 그리고 아무 때라도 짝짓기를 할 수 있는 능력 등은 이 사냥꾼 시절의 미덕이었다. 바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이다. p16

 

이런 자질은 아직도 남자의 기본 성격으로 남아 있다. 문명 세계에서도 남자들의 주요 기능은 밖으로 나가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이나 혹은 필요할 때 먹을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을 벌어오는 일이다. 남자는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다. p16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집과 정착 생활에 적응하였다. 여자들은 먼저 양, 개, 나귀, 돼지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익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절(친족과 가까워지는 것),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 등이다. 이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자질이 미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즉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p17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도 자연 상태, 즉 사냥꾼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군사적 팽창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국민의 먹는 방법이다. ... 국가는 아직도 불안하다. 국가의 탐욕은 미래의 필요와 결핍에 대한 방어다. 오직 외부에 대해 안전을 느낄 경우에만 국가는 내부의 필요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p17

 

남자들이 물려받은 사냥꾼 천성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어떻게 성장하였나? ...

호전성이 억제되지 않는다면 구석구석이 말다툼이고, 이웃이 암살자들에 의해 점령당할 것이고, 모든 도시는 라이벌 갱단에 의해 분할되고 말 것이다. ... 사냥꾼 단계에서 얻은 본능은 부분적으로는 법과 경찰에 의해,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도덕성이라 불리는 불확실한 일반적 합의에 의해 통제되었다. 도둑질을 법으로 금하고, .... 성적 충동은-굶주림보단 약간 덜할 정도로 강력한 것-공공여한 자극을 금하고, 또 일찍이 책임이 따르는 결혼을 시켜 이런 충동을 제 길로 유도함으로써 통제 가능한 질서로 만들었다. p19

 

이 복잡한 도덕적 규범은-우리 천성에는 맞지 않고 <하지 말라>는 말로 우리의 비위를 거슬리는 것이긴 하지만-오늘날 다시 황폐해지고 있는 다섯 가지 특별한 제도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던가? 가족, 교회(종교), 학교, 법, 대중의 의견(여론) 등이 이 복잡한 도덕 규범의 형성을 도왔다. p19

 

공동체 생활은 이렇게 보호해 주는 사회적 질서의 우산 아래에서 확장되었다. 문학이 번성하고 철학이 발전하며 예술과 과학이 성장하고, 역사가들은 국민과 중족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였다. p20

 

부와 도시들이 커지면서 종교가 약해졌다. 과학과 사료 편찬의 놀라운 발전을 통해 그리고 창조적 삶을 선언하는 농토를 떠나 물리학과 화학과 기계의 영광을 설교하는 공장으로 삶이 옮겨가면서 종교는 약해졌다. 이제 하늘에 대한 소망 대신 완전한 국가가 등장하였다. 교육 체제는 계급투쟁과 종족간의 전쟁을 통해, <타협할 수 없는 요구들>을 내세운 무장한 소수에 의해 약해졌다. ... 법은 지나친 증식과 그 편향성을 통해 그리고 입법자들을 매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그 권위를 잃었다. 또한 도주와 은폐의 수단이 치밀해지면서 그리고 법 집행 기관의 통제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법은 힘을 잃었다. 대중의 의견(여론)은 분열과 두려움과 무관심 그리고 부(富)에 대한 보편적인 숭배에 의해 그 힘을 잃었다. p20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불행한 왕을 변조해서 우리 여기에 앉아 고귀한 여자들과 위대한 남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하자. p23

참 멋진 서문이다. 힘이 있다. 멱살을 잡아 책 속으로 ‘확’ 끌어 땡기는 힘이 있다.

 

제2장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우리 조상들도 그렇듯이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설을 이용한다. 전설은 우리에게 반고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는 1만 8천년 동안이나 일을 해서 기원전 약 222만 9천 년에 우주를 만들어냈다.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고, 목소리는 천둥이 되고, 핏줄은 강물이, 살은 땅이, 머리카락은 풀과 나무가, 땀은 비가 되었다.> p26

 

전설은 이렇듯 역사가 카알라일처럼 역사를 영웅들의 연속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수많은 세대에 걸쳐 끈질기게 이루어진 발전을 몇몇 뛰어난 개인의 업적이라고 서술하였다. p26

 

노자에 따르면 올바른 길이란 지적 활동 및 거짓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나 옛날 관습, 사고와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부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사람들의 임의의 충동-먹을 것과 사랑을 향한 그들의 욕구-만으로 삶의 바퀴는 단순하고도 완전한 원을 그리며 넉넉하게 굴러간다. 그렇게 되면 발명도 적을 것이다. 발명품이란 강한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하며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책도 산업도 필요 없고 그냥 마을 단위 상거래로 족하다. 물론 외국과의 무역은 없어져야 한다. p29

 

자연에서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한다. 이들은 존재 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기능을 모두 완수하지만 아무런 요구도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자기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물러난다. 사물은 절정에 도달하면 모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p29

 

국가가 무질서해졌을 때 할 일은 국가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원래의 정상적인 의무로 되돌리는 일이다. 저항이 일어났을 때 더 지혜로운 방식은 싸우거나 다투거나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히 물러나서 굴복하고 참음으로써 마침내 이기게 된다. 수동성이 능동적 행위보다 훨씬 더 자주 승리를 거둔다. p30

 

"네가 다투지 않으면 지상의 그 누구도 너와 다툴 수 없을 것이다. ... 손해를 친절로 갚아라. .... 나는 선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선하지 않은 사람을 선하게 대한다. 이와 같이 하면 모두가 선해진다. 나는 진실한 사람에게 진실하며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진실하다. 그러면 모두가 진실하게 된다. ......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 p30

 

중국인의 사유는 성자가 아니라 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선의가 아니라 지혜를 주로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의 이상(理想)은 경건한 헌신이 아니라 성숙하고 고요한 마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심지어 도와 지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지혜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범과 경험으로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을 경우 그는 이것을 감추려 한다. p30

 

네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뼈까지 진흙이 되고 말았다. ...... 너의 자부심과 야망을 없애라, 애착과 극단적인 목적들을 다 없애라. 네 품성은 이것들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 p31

 

모든 혼란은 일시적일 뿐이다. 마지막에는 무질서가 치유되고 독재정권과 더불어 균형을 이루고, 낡은 장애물은 거칠게 쓸려나가고 새로운 성장이 나타날 것이다. 죽음과 양식처럼 혁명이 쓰레기를 제거하고 불필요한 것을 도려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죽어야 할 순간에 혁명이 나타난다. p40

 

제3장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우파>는 <가까이>, <샤드>는 <앉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하나 혹은 여러 명의 학생들이 구루, 곧 선생님 앞에 앉는다는 의미다. 가르침은 이해와 깨달음의 세 단계를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는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내면을 관찰하는 일이다. 감각, 소원, 기억, 추론, 사색 등을 무시해라. 이 모든 지적 작업을 옆으로 밀쳐내라. 이들은 외부의 사물을 다루기 위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p42

 

두 번째로 모든 사물에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내적이고 생명이 있고 비물질적인 힘의 숨결이 있다. 이것이 없다면 사물은 혼이 없고 동작이 없고 죽어 있을 것이며 어느 것도 살거나 자라지 못한다. p43

 

세 번째로 아트만과 브라마는 원래 하나다.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혹은 나무나 돌 안에도 들어 있는 비개체적 영혼 혹은 힘은 세계의 비인격적 영혼과 동일한 것이다. p43

 

「친애하는 그대여, 네가 감각하지 못하는 이 가장 섬세한 정수-바로 이 가장 섬세한 정수에서 이 큰 나무가 자라 나온다. 내 말을 믿어라..... 이 가장 섬세한 정수야말로 온 세상의 혼이다. 그것이 실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타트 트밤 아시-그것이 바로 너다. 」p44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 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풀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p49

 

칸디에 있는 불교 사원 벽 위에서, 온화한 붓다가 지옥에서 나와 사나운 형벌을 지시하고 있는 커다란 그림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지 말라>고 설파하였던 이 이상주의자를 이렇듯 야만적으로 변형시킨 일을 항의하자 .... 종교가 미덕과 축복뿐 아니라 공포심으로 설교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무법적인 개인주의를 통제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 신을 생각하지 않았던 붓다는 신이 되고 말았다. p50

 

간디가 암살된(1948년) 다음 산업화에 반대하는 그의 운동은 인간의 자연적인 욕심과 경쟁심에 의해 급속하게 쇠퇴하였다. 도시의 공장들이 시골 청년들을 유혹하고 농업 자체가 산업이 되어 화학 및 값비싼 기계들과 결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증가가 식량 공급의 속도를 앞질렀다. 오래된 관습과 금기들이 현대의 방식과 생각들을 물리쳤다. 사람들은 왕성한 번식력으로 번영을 물리쳐 버렸다. p52

 

제4장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고고학자들은 <알려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의 <두 강 사이에 난 통로> 지역에서 발달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별히 이집트 문명을 기원전 4241년부터 그리스의 이집트 정복(기원전 332년)까지로 잡는다면 이집트 문명은 3,809년 동안이나 존속하였다. 다른 어떤 문화도, 심지어 중국 문화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p56

 

긔스 사람들은 이 정착지를 <노메스>라고 불렀다. 그것은 법을 받아들인 공동체라는 의미였다. p56

 

임호텝으 이집트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로 물리학자 겸 건축가로 명성을 떨쳤다. 뒷세대들은 그를 지식의 신이며 이집트의 과학과 예술의 아버지로 여겨 숭배하였다. p57

 

헤로도토스는 쿠푸(기원전 약 2590년경)가 카이로 교외 기자(giza) 근처의 사막을 장식하고 있는 많은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를 세운 일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한 이것은 인간이 세운 단일 건축물로는 가장 큰 것이다. p57

 

이 건축물은 아름답지는 않다. 다만 돌을 자른 것이 정교하고 기하학적 척도가 정확하게 대칭을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것은 주로 크기와 역사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기술적인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피라미드는 그 시대의 기적이었다. 230만 개의 돌덩이들이 동부의 사막을 여러 마일이나 지나 나일 강을 넘어 운반되었다. p58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렇게 끌어올리는 제방 길을 만드는 데 만 2년이 걸렸고 피라미드 자체를 만드는 데만 1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2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p56

 

이집트 사람들은 자기 소에 <카>라고 부르는, 자기와 똑같은 영적인 짝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육체가 굶주림, 폭력, 부패를 이기고 보존된다면 원래의 자기 모습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왕의 시체는 특별한 조심성으로 향료 처리되어 미라로 만들어졌다. p58

 

피라미드에는 야만적으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하게 엄청난 크기를 만들어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역사에 의해 부푸려진 채 이들 건축물을 위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도 구경꾼의 추억과 상상력일 것이다. ... 기자의 일몰이 피라미드보다 더 위대하다. p59

 

여성들은 로마 제국을 빼고는 20세기 이전 유럽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큰 도덕적, 사회적 자유를 누렸다. 여성에게 심각한 제한을 두었던 그리스 사람들은 이집트 여자들이 수행원도 없이 공공연히 밖으로 나가 사회의 일과 사업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p61

 

이 여성들은 오늘날 가장 자유로운 여성과 견줄 정도로 직설적으로 성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사랑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고 오로지 간통이 입증되었을 경우에만 이혼을 당하거나, 아니면 아주 넉넉하게 보상을 하였다. 일부 여성은 네페르티티처럼 아름다움으로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일부는 하트셉수트(기원전 약 1503년-1482년)처럼 거만하지만 아주 훌륭하게 통치하였고, 아니면 클레오파트라처럼 무모한 통치를 하기도 했다. 모성은 여성의 고결함이라고 찬양을 받았다. p61

 

나일 강은 위대한 신 오시리스다. 나일 강이 인접한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오시리스는 남성의 정력을 나타내는 신으로도 여겨졌다. ... 아내인 이시스는 모성의 여신이었다. ... 파라오들도 아몬-레 신의 아들로서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그는 임시로 지상을 집으로 삼은 신이었다. 아마도 이런 신의 혈통 덕분에 파라오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토록 물리적 폭력을 덜 사용하고도 통치를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p63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의 하나일 뿐 아니라 이사야가 나오기 640년 전에 쓰인 탁월한 유일신 사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p70

 

제5장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

성서에 따르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유목민 한 사람이 기원전 1800년경에 칼데아(갈데아) 지방(오늘날 남부 이란)에 있는 우르 마을을 떠나 점점 커지는 가족과 양떼를 위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환상 속에서 그는 야훼 신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신은 그와 그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제공하였다. 다만 그들은 오로지 야훼만 섬기고 남자 후예들은 신과 계약의 표시로 할례를 받아야 했다. 모세와 십계명에서도 그렇듯이 여기서도 종교적 신념이 위기에 처한 사라들의 단결, 도덕성, 용기 등을 강화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p74

 

나는 또한 고통과 전쟁으로 힘든 피로에 지친 저 방랑하는 민족이, 옛 조상들이 400년 전에 굶주림과 목마름에 쫓겨 떠났던 저 가나안 땅을 되찾기 위해 거칠고 사납게 싸웠다는 말도 믿을 수 있다. p75

 

그(솔로몬)가 죽기 전에 상인들의 수가 사제들의 수보다 훨씬 많았으며, 상인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국가의 부를 통제하였다. 안정적으로 고용되지 못하거나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불만을 품은 무산자 계층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의 곤궁은 원래 호전적인 야훼 숭배를 변형시켜 예언자들을 통해 사회주의적인 복음을 만들어냈다. p78

 

그들은 우연히 미래를 예언하였다. ... 그들은 원래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들이었다기보다는 현재를 고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먼 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이었다. ... 그리고 종교가 정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고, 불에 태운 제물과 경건한 노래로 변화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p78

 

학자들에 의해 첫 번째 이사야라 불리는, 더 위대한 예언자는 이러한 사회주의 복음을 세계 문학 사상 가장 고귀한 산문으로 발전시켰다. p79

야훼께서 재판정에 들어서신다. 야훼께서 당신 백성의 장로들과 그 우두머리들을 재판하신다. 「내 포도밭을 다 먹어치운 것은 너희들이다. 너희는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은 것을 너희 집에 두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가난한 백성을 짓밟느냐? 어찌하여 가난한 자의 얼굴을 짓찧느냐? ...... 너희는 어떻게 하려느냐? 벌을 받게 되는 날, 먼 곳에서 태풍처럼 재난이 닥쳐오는 그날에 누구에게 피하여 도움을 청하고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재산은 어디에다 숨겨 두려느냐? ... 너희들 스스로를 씻고 깨끗이 하여라. 정의를 찾고 억압받은 자들을 풀어주고, 고아에게 정의를 가져다주고 과부를 변호해 주어라.」(이사야3장 14졸-15절, 5장8절, 10장 1절 이하)

 

이사야는 괴로워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결해 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가려주리아. ...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7장14절, 9장6절, 11장 4절-6절, 2장 4절) p80

 

기원전 444년경 교육받은 사제인 에즈라가 사람들을 소집하고서 7일 동안 매일 여러 시간씩이나 그가 『모세법전』이라 칭하던 책을 읽어주었다. 유대인들은 『토라(안내서)』라고 부르며, 그리스 사람들은 『모세5경』이라 부르는 것으로 구약 성서의 맨 앞에 나오는 다섯 권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십계명, 모세 법전 등이 들어 있어서 2300년에 걸친 비할 바 없는 고난의 세월 동안 유대인들이 질서와 보통 이상의 건강을 누리도록 해주었다. 이 중 레위기에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대담하고 가장 간결하게 기독교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19장 18절) p83

 

칼라일은 욥기를 가리켜 <역사상 기록된 가장 위대한 문헌의 하나다 ... 성서나 혹은 성서 바깥에 이와 동일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글이 쓰인 적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 모든 신학 체계를 괴롭히는 어두운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곧 <불의가 그토록 자주 승리한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정의와 사랑의 신이 다스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질문이다. ... 그러나 야훼는 그를 연속적인 재난에 던져 넣었다. 고통 받는 사람은 하느님이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친구들의 말을 대책 없이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그들이 맹목적이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p83

 

사람이란 결국 여인에게서 태어나는 것, 그의 수명은 하루살이와 같은데도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꽃처럼 피어났다가 찍혀 나가고 맙니다. 그림자처럼 흘러가다가 지속되지 않습니다. ... 늪에서도 물이 마르고 강줄기도 말라버릴 수 있듯이 사람은 누우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습니까? p84

 

이것은 다시 전도서에 대한 유일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 작은 책은 성서에서 가장 쓰디 쓴 메시지를 담고 있다. p85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니 모든 일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 (전도서 1장 12절-18절)

 

그는 역사를 공부하였으나 이것 또한 헛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역사는 동일한 것을 큰 규모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성서의 족보처럼 탄생과 죽음의 기록일 뿐이기 때문이다. p86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시편 137편) p88

 

육체적 결합이나 동물적 생존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갈구하는 영혼의 갈망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모파상이 <진실한 사랑에서는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고 말했을 때 그는 좀 더 섬세한 헌신을 생각하였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넓혀주고, 살아 있고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p91

 

제6장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길

헤라클레이토스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았으니 곧 그가 <불>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이 말로 그는 <힘>이나 <에너지>를 뜻하게 되었다. 개별적인 영혼은 생명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꽃의 일시적인 혀일 뿐이다. 인간은 이 불꽃 속에서 변하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불을 붙여 밤에 내놓은 촛불과 같다.> 신은 영원한 불이고, 유동적인 세계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에너지이다. 이런 보편적인 변화 속에서 무엇이든 시간이 흐르면 정반대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선은 악이 될 수 있고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 삶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삶이 된다. p96

 

그는(피라코라스) 개를 때리는 남자를 말리면서 개의 울부짖음 속에서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한다. ... 그는 가장 열성인 제자들을 모아 공산주의 공동체를 만들고, 고기, 계란, 콩 등을 먹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다. 금욕과 자기 수양으로 몸을 깨끗하게 하고, 학문과 음악으로 정신을 깨끗하게 하는 단체였다. p98

 

절반쯤은 봉건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는 기간이던 기원전 7세기 쯤, 아티카의 소작농들은 그로부터 2500년 뒤(프랑스 혁명기) 프랑스의 농부들과 비슷하게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극소수의 지주들이 거의 모든 땅을 소유하였다.> 농부들이 임대료를 갚지 못하면 그들은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노예로 팔려가야 했다. p103

 

기원전 7세기가 끝나갈 무렵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부의 격차가 절정에 도달해서 아테네 시는 정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전제 정치 말고는 도시를 소동에서 자유롭게 해줄 어떤 방책도 불가능해 보였다>라는 것이다. p103

 

그의 유명한 <부채 Sedisachtheia, 세이사크테이아>를 통해 솔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개인이나 국가에 진 빚을 모두>없애주었다. 이렇게 해서 한꺼번에 아티카 땅에서 모든 저당이 사라졌다. 노예가 되었거나 빚에 묶인 사람이 모두 풀려났다. ... 앞으로 사람을 노예로 파는 일은 금지되었다. 부자들은 이 법이 공공연한 사유 재산 침해라고 항의하였지만 10년도 지나기 전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조치가 아테네를 구해 냈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p105

 

솔론은 도덕과 관습이라는 아슬아슬한 영역을 위해서도 법을 내놓았다. 지속적인 게으름은 범죄에 해당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시민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매춘을 합법화하고 세금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국가가 허가하고 감독하는 공식 홍등가를 만들었다. p106

 

솔론은 자신의 법안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런 비난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법을 주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법을 주었다.> p107

 

제7장 아테네의 황금 시대

아테네는 마라톤 전주(기원전 490년)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에서 페르시아를 누르고 그리스 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해군의 힘으로 이 두려운 시련에서 벗어나면서 아테네는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또한 이전의 동맹국(델로스 동맹)들에 대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델로스 섬 신전에 모금된 적립금에 대한 권한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아테네는 유럽문명에서 중요한 한 시대를 이끌어 가게 되었다. p110

 

우선 아티카라 불리는 작은 반도에 살던 31만 5천명의 주민들 중 오직 4만3천 명만이 참정권을 가진 시민이었다. 그리고 11만 5천 명이 노예였다. 노예는 몸값을 지불하지 못한 전쟁 포로들, 그리스 바깥 나라를 기습해서 얻은 사람들 그리고 범죄자와 부랑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스 무역 상인들은 상품을 사듯이 노예를 사서 아테네와 코린트에서 팔았고 또 살 사람만 있으면 어디서든 팔았다. 아테네에는 (1863년 이전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노예들을 검사하고 살 수 있는 시장이 있었다. p112

 

매춘부가 직면한 문제는 법이 아니라 소년들이었다. 상인들은 잘 생긴 소년들을 수입해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에게 팔았다. 이들은 잘생긴 소년들을 사서 처음에는 애인으로 이용하고 나중에는 노예로 부려먹었다. 아테네 법은 동성애를 금지하였지만 여론은 그것에 관대하였다. p113

 

이런 관습은 여성을 발전에서 격리시켰다. .... 결혼 생활에서 남성들이 집에서 정신적인 동반관계를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교육받은 여성이 적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틈이 생겨났고 남자들은 집 밖에서 아내에게는 허락하지 않던 매력을 구하였다. ... 그리스 사회는 남성만의 단성(單性) 사회였다. 그래서 여성의 정신과 매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 계몽주의에 주었던 것과 같은 흥분, 우아, 자극 등이 결핍되었다. p114

 

그리스 전체 세계로부터 아테네는 고대 유럽의 다른 어떤 도시ㅂ보다 더 많은 예술가들과 시인들, 철학자들을 끌어들였다. 이 사람들은 불타는 경쟁심으로 다투면서 긜고 계몽된 지도자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페리클레스의 비전을 영웅적인 척도와 현실로 만들었다. p117

 

이 시대 많은 학자들이 아테네로 왔다. ... 아테네에서 철학은 열병이 되었다. 보수주의 정치가들은 도덕과 국가의 붕괴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 p120

 

분명 아테네의 소수 지식인 사이에서 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 널리 여행을 한 중산층이 많아진 것과 떠돌이 학자들을 통해 사교육이 퍼진 것이었다. p121

 

보통 한 시대의 철학은 다음 시대의 문학이 된다. ... 그러나 그릿에서 문학은 철학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다. 시인들 자신이 철학자들이었고 자신들의 사유를 행하였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지적인 선봉에 섰다. p122

 

지상에서 피 흘리고 자라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상처 많은 식물이 여자.

우린 한 남자의 사랑을 사들이려고

그 하루를 위해 저축한 그 많은

황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보라, 그들은 우리의 주인이 돼버리니!

그러고 나면

좋거나 나쁘거나 이 얼마나 위험한 주인이던가......

여자가 자기 옆에서 잠자는 동물을

평화로 이끌어 가는 방법을 집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자는 오래 애써서 길을 찾아내야 한다.

주인이 자기와 잘 지내도록,

그의 멍에가 너무 가혹하지 않도록,

여자의 호흡이 축복된 것이 되도록!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소원은 죽음을 향하는 것. p126

 

「트로이아 여인들」은 트로이아를 폐허로 만든 자들이 도시를 불태우고 난 다음, 과부가 된 여인들을 첩으로 삼거나 노예로 만들던 시기의 트로이아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프리아모스 왕은 죽었다. 프리아모스의 과부인 늙은 헤쿠바는 젊은 며느리 안드로마케에게 조용히 복종하고 점령군의 첩이 되라고 간청하였다. 자신들을 포로로 잡은 사람들이 헥토르의 아들 아스티아낙스의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p126

 

모두 끝나버렸구나.

시인이 네 이야기를 어떻게 비석에 새겨 넣을까?

<여기 한 어린아이 잠들다.

그리스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고, 두려움에서 그를 죽였다.>

그렇구나, 그리스는 이 이야기를 축복하겠지! .......

오, 인간은 헛것. p127

 

아테네 사람들이 시라쿠사 원정(기원전 415년)에 실패하였을 때 포로가 된 아테네 사람들은 이탈리아 채석장에서 사슬에 묶인 노예가 되어,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나 같은 운명을 눈앞에 두었다. 이들 중에서 에우리피데스 연극의 구절을 암송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 p129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한 신드을 인정하지 않으니 공공의 범죄자이다. ..... 그는 또한 젊은이를 타락시켜 공공질서를 손상시켰다.> .... <나는 철학을 행하고 가르치는 일을 절대로 중지하지 않을 것이다. ...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내 방식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여러 번 죽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가 유죄라고 생각한 삼이 60명 더 많았다 ... 처음보다 오히려 80표가 더 그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뇌물을 써서 도망치라고 제안하였다. 그는 노쇠하고 부담스런 삶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면서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황금시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p131

 

아낙사고라스는 추방되었고 소크라테스는 사형당하였지만 철학에 주어진 자극은 다음 60년 동안 아테네를 자극해서 뒷날 여러 세기 동안 유럽에서 번성할 사상 체계를 만들어냈다. p132

 

제8장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부의 한가운데서 빈곤이 늘어났다. 영리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준 다양성과 교역의 자유는,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잃어버릴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는 두 도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와 부자들의 도시가 되어 서로 전쟁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법령 제정이나 혁명을 통해 부자들을 약탈할 음모를 꾸몄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항해 방어 조직을 만들었다. 지식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다. 그들 중에는 플라톤처럼 부자도 섞여서 공산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p134

 

나이 든 부자인 이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은 기원전 353년에 이렇게 불평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부유함은 아주 안전하고 찬양할 만한 것으로 여겨져 거의 누구나 부자라는 것을 감춘다.> 중간 계층과 부유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질투심에 힘을 주는 것이라고 여겨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불평등한 부에 의해 바보가 되어버린 엉터리 평등이라고 여겨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p135

 

철학은 시민의 성실한 마음을 찾아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지성을 함양해서 신의 계율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독하는 신성(神性)에 대신하게 하였다. 그러나 성정, 사회적, 정치적 도덕성은 계속해서 추락하였다. p136

 

기원전 356년 에페소스에 지어진 아르테미스 여신의 세 번째 신전도 이 일곱 기적에 포함된다. 50년 동안의 작업을 통해 세워진 이 신전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 되었다. 처녀 신은 그곳에서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아르테미스로 숭배되었고, 이어서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는 디아나로, 기독교에 의해서는 성모 마리아로 숭배되었다.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p144

 

정신의 청년기에 플라톤을 발견한다. 그리고 철학을 <소중한 즐거움>으로 여겨 좋아하고, 유토피아를 덕 있는 철학자들의 안내를 받는 일이라고 상상했던 잘생긴 젊은 청년을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예술가와 시인들을 통제하거나 추방하고 독재자가 다스리는 정부를 제안한 사람, 사형의 형벌을 내걸고 국가 종교를 주장한 사람을 발견한다. 그는 어떻게 이러한 변화를 겪었던가? ... 그는 민주주의 정치가들이 자유가 무정부 상태로 바뀔 때까지 민중의 변덕에 비유를 맞춘다고 여겼다. 태도, 도덕성, 예술 등에서 문명을 보호하는 옛날의 행동과 취향은 널리 퍼진 천박함에 의해 타락하고 말았다. p145

 

『국가론』의 두 번째 책에서 플라톤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생각하지만 인간이 천성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욕심이 많고, 이따금 사람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은 실용성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두번째로 좋은> 국가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된 교육 체계를 만들고, 교육적 맷돌의 가장 힘든 시련을 거쳐 살아남은 50세 이상의 <보호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이다. p146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플라톤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철학자들이 왕이 되기 전까지, 혹은 이 세상의 왕들과 왕자들이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갖기 전까지는 ..... 도시들과 인간 종족은 사악함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p147

 

그러나 그가 쓴 「동물의 역사」는 거의 진화 이론에 근접하고 있으며, ‘영혼에 관하여’는 여혼을 <섭취, 성장, 소멸을 하도록 해주는 유기체의 힘>으로 규정하였다. 신을 제1원인으로 본 것, 아니면 어디에나 있는 기본 에너지로 파악한 것은, 세계란 움직이는 에너지라고 여기는 현대의 관점과 일치한다. p150

 

정치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들간의 타협의 기술이다. 모든 사람은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부자연스런 평등이 강요되면 상류층은 즉각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불평등이 부자연스러운 정도가 되면 하류층이 반항할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금권정치>를 선호하였다. p150

 

그(알렉산드로스)는 위반을 거듭 용서해 주었고 포로로 잡힌 장군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가 관대한 사람이라는 명성이 퍼졌다. 많은 적군은 쉬운 타협을 확신하고서 그의 포로가 되었다. 많은 도시들은 그가 다가오면 저항하지도 않고 성문을 열어주었다.

누구나 죽음 앞에 두려운 법이다.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법, 적군의 마음을 그것도 병사들의 마음을 녹여 사기를 없애버린다면, 그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그들은 가족과 그리스 문명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승리는 이제 따분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슬퍼하면서 그들의 뜻에 따랐다. 페르시아로 돌아오는 길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는 것만큼이나 길고 재앙에 가득 찬 것이었다. 수사에 도착했을 때는 병사 1만 명이 열과 목마름으로 죽은 다음이었다. p154

 

그는 정복한 사람과 정복당한 사람들을 결혼시키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서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페르시아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제안하였다. ... 그렇게 해서 유대교-나중에는 기독교-는 에게해를 건너 퍼져나갔고, 예루살렘에서 생겨난 신앙이 유럽의 신앙이 되었다. p154

 

기원전 323년 서른두 살의 나이였다. 그의 장수들이 누구에게 제국을 넘기겠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강한 사람에게> 그가 이렇게 인생의 절정기에 죽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이가 더 들었더라면 분명 환멸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기대를 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기는 하지만- 카이사르의 조용한 성숙이나 혹은 아우구스투스의 섬세한 지혜가 없다. p155

 

그(알렉산드로스)는 자기 피 속에 흐르는 미치게 만드는 야만의 유산에 맞서 싸웠다. 또한 모든 전쟁과 학살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의 빛을 더 큰 세계로 가져가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p156

 

제9장 로마 공화국

소수의 사람만이 도시 주민이었다. 노예들에 의한 경쟁은 자유노동자들이 임금을 깎아 내렸고 그래서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빈민 생활을 하였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자유민들 사이에서 저항은 드물었다. 그러나 노예 반란은 잦은 편이었다. <첫번째 노예 전쟁> (기원전 139년)은 첫 번째가 아니었고, 스파르타쿠스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기원전 71년) 마지막 노예도 아니었다. p158

 

로마 사람들의 가장 깊은 경건함과 가장 진지한 숭배는 생명의 어머니이고, 죽은 자들의 고향이며 솟아나는 씨앗 속에 감추어진 마범의 힘인 대지를 향하였다. p161

 

이 종교가 로마인의 도덕성에 도움을 주었을까? ... 종교는 가족에게 신의 보장과 후원을 보내주었다. 또한 부모와 자식들에게 절대로 스러지지 않는 상호 존경심과 경건함을 불어넣어 주었다. 공공 생활의 모든 구면을 종교적 엄숙함으로 덮어주고, 국가를 신들과 친근하게 융합시켜 신앙심과 애국심을 하나로 만들었다. 애국심은 역사상 알려진 다른 어떤 사회보다 더 강한 정열이 되었다. 종교는 가족과 힘을 합쳐 강철 같은 성격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이 500년 동안 로마가 고대 세계를 통치할 수 있게 해주었다. p162

 

221년 스페인의 카르타고 군대는 한니발을 장군으로 뽑았다. ... 그는 신체가 어려움을 겨니고, 입맛은 곤궁을 견디고, 생각은 사실을, 혀는 침묵을 견디도록 자신을 훈련하였다. 적군(로마)의 역사가인 리비우스에 따르면 그는 <전쟁터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이었다. p168

 

그러나 갈리아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간다면...., 그는 나폴레옹이 2000년 뒤에 선택하는 것과 같은 길로 알프스를 넘었다. 알프스 이남에 있는 갈리아는 그를 환영하였다. p169

 

이렇게 합쳐진 고전 세계의 유산이 자라 로마의 도로들과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으로 건너갔고, 여가 시간이면 당신과 나에게도 넘어와 있다. p172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저승이란 없다. 지옥은 이승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그것은 무지, 정열, 싸움을 좋아함, 욕심에서 온다. 천국은 이승의 <현명한 사라들의 평화로운 신전>에 들어 있다. p176

 

역사는 국가와 문명이 일어나고, 번성하고, 시들고, 죽는 과정이다. 그러나 각 국가나 문명은 거꾸로 관습, 도덕, 법, 예술 등 문명의 유산을 전달해 준다. <달리면서 생명의 램프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p177

 

제10장 로마의 혁명

이 책을 읽는 당신은 깨어 있는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이야기에서 지난 백 년 동안의 우리 역사와 비슷한 점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p179

 

해적들은 노예 사업을 하였다. 아니면 로마의 식민지 관리들은 인간 사냥꾼을 조직해서, 보호해 주는 친구도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을 잡아 노예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노예상인들은 매주 인간 전리품을 경매로 거래하기 위해 장터로 끌고 왔다. 델로스에서는 하루에 1만명의 노예가 팔렸다. ... 여기저기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기원전 139년의 첫 번째 노예 전쟁과 기우너전 73년에서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가 지휘하는 전쟁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유명한 폭동이 실패했을 때 죄수 6천명이 .. 십자가에 매달렸다. 이들의 시체는 그곳에 여러달 동안이나 매달려서 썩어갔다. 주인들은 위안을 얻었을 테지만 노예들은 그것을 마음에 담았다. p180-181

 

경제 능력의 불평등과 상속을 통해 부의 집중이 점점 커졌다. 부의 집중 현상은 제국의 정복과 개척 등을 통해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부의 집중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때로는 혁명을 불러온다. ... 이제 기원전 133년에 그와 비슷한 위기가 로마에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치적 해결이 실패하고 약 1백 년에 걸친 계급 투쟁이 나타났으며 로마 공화국은 수치스러운 종말에 이르게 된다. p181

 

메트로도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좋은 것은 위장과 관계가 있다.> 요리에 뒤이어 섹스가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경쟁이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도 창녀들이 아주 많았다. 간통은 예사였고 남편이 아내와 이혼하는 만큼이나 자주 아내도 남편과 이혼하였다. ... 여성드에게 아이를 많이 낳을 경우 국가가 보상해주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쾌락이었다. 그 사이에 더 많은 여성들이 문화적 표현을 추구하였다. 그리스어를 배우고 철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고 강의하고 문학 살롱을 열었다. 사치하는 계층 아래 다수의 빈곤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기원전 71년 영웅적인 스파르타쿠스에 의해 노예 반란으로 터져 나왔다. p193

 

그(카이사르)를 <모든 여자의 남편이며 모든 남자의 아내>라고 불렀다. 귀족들은 그를 두 배로 미워하였다. 그가 정치적으로는 자신들의 특권을 망가뜨리고, 사적으로는 자신들의 아내를 유혹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이사르가 처음에는 무자비한 성동가이며 거침없는 난봉꾼이었다가 책임감에 의해 천천히 역사상 가장 신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결점을 보고 좋아하더라도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95

 

기원전 53년 평민 회의에서 최초의 찬반 표결은 1천만 세스테르티우스(고대 로마의 화폐단위)의 매표 비용이 들어갔다. 돈으로 안 되면 사린이 동원되었다. 아니면 한 사람의 과거를 샅샅이 수집해 협박 공갈로 굴복시켰다. p198

 

키케로는 이렇게 썼다. <테베레 강은 시민들의 시체로 가득 찼다. 공공 하수구도 시체로 가득 채워졌다. 노예들은 스펀지를 들고 포룸에서 흘러나오는 핏자국을 닦아내야 했다.>p198

 

혁명의 세기는, 협소하고 이기적인 귀족 정치를 몰아냈지만 어떤 다른 통치 방식도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였다. 실업, 매수, 빵과 소동은 평민 의회를 망가뜨려 형태는 일그러지고 정열에만 이끌리는 폭도의 무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통치할 능력도 없었으니 제국을 통치할 능력은 더욱 없었다.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표현한대로 붕괴되었다. 즉, 자유는 방종이 되었고, 혼란 상태는 자유의 종말이 오기를 구걸하였다. p199

 

마침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제13군단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의 첫 마디 말이 벌써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동료 병사 여러분!>하는 말이었다. 게으르고 부패한 귀족 정치는 로마에 질서, 정의, 번영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 단 한명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그들에게 지불해 줄 돈이 없다고 말하자 그들은 그의 금고를 위해 자신들의이 저축한 돈을 내주었다. 기원전 49년 1월 10일에 그는 1개 군단을 거느리고 알프스 이남 갈리아의 남쪽 경계선을 이루는 작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p200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정책을 시행하면서 재정이 새는 것을 줄이고 국가의 곡물구호를 받기에 적합한지 판정하기 위해 재산상태를 검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구호 신청자의수가 32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줄었다. 그는 빚을 줄이고 과도한 이자율을 막는 법안과 파산법을 만들어 극단적인 지불 불능의 경우를 줄였다.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파산법과 같다. p202

 

3월 14일 저녁 카이사르는 ... <가장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 그 자신은 <갑작스러운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p204

 

제11장 로마제국(기원전 27년-180년)

아우구스투스는 부를 복구하기가 도덕을 개혁하기보다 더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 여자들은 어머니로 존경받기보다는 성적으로 탐나는 대상이 되고 싶어하였다. 많은 로마 토박이들은 결혼 생활을 기피하거나 아니면 피임, 낙태, 영아살해 등을 통해 갖고의 수를 제한하였다. ... 또 다른 법은 결혼을 의무로 만들었다. 독신 생활에 벌금을 물리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에는 사회적, 경제적 보상을 해주었다. 타키투스 이후의 역사들은 이 법이 실패했다고 기록하였다. 남자와 여자들은 이와 같은 법을 피하는 길을 찾아냈다. 성적인 부도덕성은 계속되었으며 오히려 더욱 공개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p210-211

 

예술은 예술가와 그 수용자의 감정을 전제로 하낟. <나를 울게 하려면 당신 자신이 먼저 슬픔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감정만은 아니다. 그것은 훈련된 형식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평온함 속에서 기억된 감정>인 것이다. p214

 

형식을 얻기 위해 밤낮 그리스 문학을 연구하라. .. 긴 단어는 피하라. .. 8년 동안 감추어두어라. 그러고 난 다음에도 그것이 당신을 즐겁게 하거든 그제서야 출판하라. 희곡을 쓸 겨우에는 세 개의 통일성을 지켜라. 줄거리, 시간, 장소의 통일성이다. 삶과 철학을 연구하라. 연구와 이해가 없는 완전한 양식이란 너무 약해서 사용할 수 없는 공허한 빈 그릇과 같다. p215 (오비디우스 편)

 

(아우구스투스) 죽음은 일흔여섯 살이 되는 해에 조용히 찾아왔다. 임종의 침상에 모여든 친구들을 향해 ... 로마 희극의 마지막에 자주 사용되곤 하던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내 맡은 역을 다하였으니 여러분이 손뼉을 쳐서 박수로 나를 무대에서 쫓아내 주시오.> 그는 아내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오랜 결혼 생활을 기억하시오. 리비아, 안녕히> p219

 

제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키투스에 따르면 네로는 당시 규모가 크지 않은 기독교 그룹을 방화법으로 고발하였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로가 약 3년 전에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반제국주의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네로가 그들 중 상당수를 <더할 나위 없는 잔혹성으로 사형시켰다>고 말한다. p224

 

로마는 그리스(기원전 146년) 및 헬레니즘 동양을 정복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200년 전에 열었던 길을 서쪽을 향하여 열어주었다. 이 길을 통해 동방의 종교들이 로마로 쏟아져 들어와 스토아 철학을 향한 로마의 열정을 쾌락주의적인 가벼움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정복은 북에서 온 야만 종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쪽에서 온 개명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p225

 

그(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열두 살의 나이에 이미 남루한 철학자의 모습을 하였다. ... 그가 <모두에게 동일한 법이 있는 국가... 동일한 권리, 연설의 자유가 있으며, 또한 무엇보다도 통치받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통치의 이념>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 그는 법보다는 모범으로 통치하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에게 일절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행정 업무를 스스로 떠맡았고 누구든 자기에게 쉽게 접근하도록 해주었다. 머지않아 제국 전체가 그를 환영하였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이념이 현실이 되었다. p23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이라고 알려진 작은 책... 원래는 <그 자신에게>라는 제목이었다. 맨 처음의 것과 맨 마지막의 것들에 대해 삶에서 얻은 결론들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공식적인 로마의 신앙을 잃어버렸고 동방에서 온 새로운 어떤 신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질서의 표지와 형태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에 어떤 신비로운 지적존재가 우주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p233

 

<마음의 평정>이란 <보편적 자연(본성)에 의해 너에게 할당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모든 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고 그대 우주(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전체)에 적합한 시간이다.> p234

 

어떤 사람이 네게 나쁜 일을 했다면 그 자신이 해를 입는다. ... 그를 용서하라. ... 정말로 선한 사람은 불행에 대해 면역력이 있다. ... 철학은 논리나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로 받아들여라. p234

 

제13장 인간 그리스도

역사의 유머 덕분에 그는 <기원전(그리스도 이전)> 3년이나 4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성 마태오 복음서(마태복음)에 따르면(마태오 2장 15절) 위대한 헤로데 왕이 죽기 전에 태어났다. p239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마태오 1장 18절) 루가복음은 이 기적을 확장시켜 위대한 문학으로 만들었다. p239

 

그가 호흡한 대기는 종교적 흥분을 긴장된 것이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마법, 악령, 천사들, <사로잡힌 자들>과 악마 쫓기, 기적, 예언, 그리고 점, 점성술 등이 어디서나 인정을 받았다. p240

 

그러나 그에게 종교적 열정을 불러일으킨 경험은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인 엘리사벳의 아들 요한의 설교였다. ...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자 예수가 그의 일을 맡아 하느님 나라가 찾아올 것을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p241

 

더욱 특징적인 면모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 보수적인 장로들- 그에게 간음한 여자를 벌주어야 하는가를 물었을 때 드러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장7절) p242

 

나는 그가 행했다고 하는 대부분의 기적들이 암시에 의한 자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영혼에 미친 강하고 확고한 정신의 영향이라고 말이다. .. 신앙을 가지고 그를 건드리면 약한 사람들은 힘을 얻고 병든 사람들은 나았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여자나 남자의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p243

 

사람의 아들(예수는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은 <하늘의 구름을 타고>와서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할 것이다. p243

 

때때로 그는 하느님 나라를 순수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영혼의 상태로 묘사하였다. 「하느님 나라가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장 20절) p244

 

많은 사람들은 이 하느님 나라를 공산주의 유토피아라고 해석하고 그리스도를 사회주의 혁명가로 보았다. 복음서는 이런 견해에 대해 어느 정도 증거를 제공한다.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태오 19장 21절) 사도들은 분명히 하느님 나라를,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혁명적으로 뒤집는 일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들과 초기 기독교도들이 <모든 것을 공동소유>하는 공동체 생활을 한 것을 보게 된다. p244

 

그는 현존하는 경제 질서를 공격하지 않았다. 반대로 <폭행을 써서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하는 열렬한 사람들을 질책하였다.(마태오 11장 12절) 그가 생각한 혁명은 훨씬 더 깊은 종류의 혁명이었다. ... 그리스도는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p245

 

눈 앞에 닥친 하는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남자와 여자를 수도원 생활방식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그 나라에는 법도, 결혼도, 성관계도, 부도, 전쟁도 없다. 이러한 도덕적 이상은 새로운 것이었던가? 그것을 배열한 방식이외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스도 설교의 핵심적인 주제는 -다가오는 심판과 왕국-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100년이나 된 것이었다. p246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난 이후 40일 만에 그리스도는 그 모습 그대로 승천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인은 몸과 생명을 그대로 지니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은 친숙한 것이었다. 모세, 에녹, 엘리야, 이사야 등도 이미 그랬다. p253

 

제14장 기독교의 성장

베드로가 교회를 세웠다면 바울로는 신앙을 세웠다. p256

 

대부분의 사도들은 할례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일부라고 여겨 여기에 반대하였다. 바울로는 이 계약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을 배제하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분파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고 백 년이 지나면 시들고 말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사도들은 이에 굴복하였다. p257

 

300년이 될 때까지 중동 지역에서 기독교도는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다. 로마에서 기독교도의 수는 10만 명에 이르렀다. p258

 

하인리히4세 황제는 카노사로 가서(1077년) 참회하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와 권리 회복을 청하였다. 이 <기독교 공화국> 혹은 초강력 교황 국가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때 절정에 도달하였다. 18년 동안의 재임기간(1198년-1216년)동안 그는 노르웨이의 스베레를 제외하고 라틴 유럽의 모든 군주들로 하여금 신앙, 도덕, 정의의 문제에서 교황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p260

 

칼에 대한 말씀의 승리 그리고 기독교의 부분들에 대한 중앙의 승리는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종교 재판의 공포에 의해 더렵혀졌다. ... 십자군 원정은 동유럽과 서유럽이 기독교의 상업과 신앙을 위하여 중동 지역을 이슬람의 손에서 탈환하려는 낭만적인 노력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이러한 원정들은 신앙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중동은 회교도지역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업적 목적도 이루지 못하였다. 회교도들이 이룩한 부, 과학, 예술, 학문 등은 패배한 십자군 원정대의 마음에 의심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수많은 이단의 형태로 기독교 정교 신앙을 괴롭혔다. p261

 

그는 교황의 사절에게 설득되어 4,500명의 작은 군대를 거느리고 도시들을 연달라 습격하여 모든 저항을 이기고 주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에 순종할 것을 맹세할 것인지 아니면 이단자로 죽음을 당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하였다. p261

 

1277년에 이단자를 압박할 것을 맹세한 레이몽 7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이로써 순결파 전쟁은 끝이 났다. 정통 교회가 승리하면서 관용은 끝나고 종교 재판이 유럽 전력으로 퍼졌다. p265

 

중세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의 하나 그리고 중세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의 하나는 바로 단테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가는 여행길을 이야기하면서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p268

 

<지혜를 향한 첫 번재 열쇠는 자주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이다. ... 의심을 통해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그는 오직 기독교도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해서 거부하였다. 그는, 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은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p272

 

신체적, 영적으로 피로에 지친 아벨라르는 클뤼니 수도원의 어둠 속에 숨어버렸다. 그는 경건함과 침묵과 기도로 동료 수도사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엘로이즈에게는 편지를 써보냈다.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신앙이 교회의 가르침 안에 있다고 확인하였다. 그는 그녀를 위해 중세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송가를 만들었다. p272

 

하느님 안에서 친애하고 존경하는 자매님, 당신과 맺어졌던 사람, 이제 더 낫고도 강하신 하느님 사랑에 의해 육신의 결합이 끝난 사람.... 주님이 그를 지켜주십니다. 당신 대신, 아니면 당신과는 달리 주님의 따뜻한 품 안에 말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주님의 영광으로 그를 당신에게 돌려주실 것입니다.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뜰> p273

 

무엇보다도 중세 유럽의 변모는-론, 라인, 다뉴브 강 북부- 숲, 정글, 늪 지대가 새롭고도 지속적인 문명의 토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길을 내고, 운하를 만들고, 우물과 광산을 파고, 거주지를 짓고 자신과 가축들을 길들이고, 마을, 도시들을 조직하고 법과 의회를 발전시키고 부모의 권위와 학교와 종교를 통해 젊은이를 교육시켰다. 중세 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 문명은 그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p274

 

교회가 야만인을 가르쳐 문명인으로 만든다고 여겨서 좋아하였다. 또한 순결과 기사도를 북돋우고, 일부 전사들을 신사로 바꾸었다. 중세 사람들은 수도사들의 게으름에 분노하고 수녀들의 헌신에 감사하였으며 교회의 자선 사업을 높이 평가하였다. ... 그들은 가톨릭 교회에 속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교황들은 국가를 통제하고 왕들에게도 벌을 내렸다. p274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가 널리 퍼지고 부유해지면서 강해졌다. 또한 세속적인 영향력을 높인 것과, 파괴적인 개인주의와 정치적 술수와 회의적 지성에 의해 약해졌다. ... 믿음과 종교적 경력보다는 지식과 세속적 출세를 추구하게 되었다. 고전 문서들을 함께 탐구하고 보존하고 편집하던 성직자와 속인들은 고전 문학과 철학의 매력과 깊이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것보다 더 큰 열성으로 플라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p275

 

제15장 르네상스 1/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그래서 르네상스는 발생 초기부터 이미 죽은 다음 천국의 불확실한 즐거움 대신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과 모험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문학만을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그 쾌락주의적 자유로움도 똑같이 복원시켰다. 1천 년 동안이나 초자연적인 신앙에 기초한 도덕적 규율의 시간을 보낸 다음 부분적으로는 이교적인 방식으로 감각이 자유롭게 되었다. p281

 

자유로워진 감각은 자연, 여자, 남자, 예술에 드러난 아름다움에서 노골적인 즐거움을 얻었다. 새로 얻은 자유는 놀라운 1세기 동안(1434년-1534년) 그들을 창조적으로 만들고 나서 도덕적 혼란, 통합되지 않는 개인주의 그리고 민족의 굴종 등으로 그들을 파멸시켰다. 르네상스는 두 가지 규율(중세와 종교 개혁) 사이의 막간극이었다. p282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맨 먼저 탄생한 것과 아주 동일한 이유로 피렌체에서 맨 먼저 탄생하였다. 조직화된 산업, 상업의 확장 그리고 은행가들의 활동 등을 통해 꽃의 도시 피렌체는 14세기에 이탈리아 반도에서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p284

 

메디치와 다른 피렌체 집안들이 너그러운 후원을 해준다는 명성에 이끌려 학자들은 피렌체로 몰려들었고, 이 도시를 문학 수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런 경쟁의 지적인 유산을 발전시키고 물려주기 위해 로렌초는 오래된 피사 대학과 피렌체에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복구하고 더 크게 만들었다. p295

 

그에게 있어 기독교는 많은 종교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종교는 알레고리적인 교리와 상징적인 의식 뒤에 진리의 요소들을 감추고 있다고 여겼다.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예언자들이 유일신 사상만큼이나 고귀한 유일신 사상을 내놓았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들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이성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서 로렌초와 대부분의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른 신앙으로 대체하지 않고, 철학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들을 이용해 기독교를 새로 해석하였다. 한두 세대 동안(1447년-1534년) 교회는 이런 시도를 너그러운 미소로 지켜보았다. p296

 

「인간존엄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여진 글로 젊음의 열정으로 인문주의자들이-대부분의 중세의 견해에 반대해서- 인간 종족에 대해 가진 높은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피코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이 소우주라는 사실은 학교에서 듣는 진부한 소리다. 인간의 몸은 땅의 원소들과, 천상의 정신과, 식물의 혼과, 하등 동물의 감각과, 이성과, 천사의 정신과, 신과의 유사성이 뒤섞인 것이다.> p298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p298

 

평온한 마음과 여가를 품위 있게 즐기는 것보다 더 소망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 나의 생각들을 성취하였으니 이제 나는 여가의 즐거움을 누리고, 다른 시민들의 명성을 함께 얻고, 고향의 영광을 기뻐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p300

 

그(레오나르도)의 기본 원칙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 화가여, 보라, 그대가 들판에 나가거든 여러 사물에 주의를 돌리고 차례로 나가거든 여러 사물에 주의를 돌리고 차례로 하나씩 자세히 바라보고 별 가치가 없는 것들 중에서 여러 가지를 골라내라.> ... <언제난 인물이 그 머리를 가슴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게 만들라.> ... <인물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라.> p308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 하느님의 아들에 어울리는 모습을 구상하는 것과 유다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라 했다. p310

 

당시 많은 기독교도들처럼 레오나르도는 이따금 성직자를 공격하였다. 그들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라 부르고 가짜 기적으로 단순한 사람들을 속인다고 비난하고, 그들이 이 세상의 주화를 받고 내주는 하늘의 약속 증서를 <가짜 주화>라고 비웃었다. p320

 

그는 물질에서 정신을 보았고, 영혼을 믿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영혼은 오로지 물질을 통해 그리고 변경시킬 수 없는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구절에서는 겸손과 열렬함으로 신에게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신을 자연, 자연의 법칙, <필연성>과 동일시하였다. 마지막까지 신비적인 범신론이 그의 신앙이었다. p320

 

제16장 르네상스 2/ 로마

 

제17장 르네상스 3/ 베네치아의 일몰

 

제18장 종교개혁 1/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제19장 종교개혁 2(1517년-1555년)/ 루터와 공산주의자들

 

제20장 가톨릭 종교 개혁(1517년-1563년)

 

제21장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3. 내가 저자라면

 

강력한 힘을 가지는 서문

독자의 입장에 서 생각해보자. 책을 고르고, 선택하면서 맨 먼저 접하는 것이 제목이다. 그리고 첫 장의 표지, 목차 그리고 서문을 읽거나 눈에 들어오는 장의 몇몇 구절을 더듬는다. 대체로 서문을 몇 줄을 읽고서 맘에 꽂히면 책을 사게 된다. 그러면 읽게 될 확률도 높아지고, 그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 책의 서문 ‘윌 듀란트의 마지막 유언’을 읽으면서 서문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멱살을 잡아 책 속으로 ‘확’ 끌어 땡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가 모든 장을 통해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p144) 유사 이래로 역사의 많은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독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근대의 유사한 사건들과 매치시켜서 글을 풀어가고 있다. 이러한 장치는 저자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선명하고, 반복적으로 전달시키는 효과가 있고, 또 하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시대적 흐름을 따라서 장을 구성하고, 소주제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단락 단락 구성된 이야기들은 읽어가기에 부담이 없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소설 같은 문투로 역사적 장면들을 서술하고 있어, 그가 추적하고 있는 역사적 영웅들의 행적을 이해하기 쉽다.

 

역사 속의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그가 영웅의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가나 장군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 시인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의 폭넓은 식견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시대에 대한 풍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이 책을 통해 96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고된 작업을 통해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그의 인생을 엿볼 수 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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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saint laurent
2011.05.31 18:19:40 *.111.182.3
Wear your high heels in a sitting position and around the gianmarco lorenzi shoes home first. After a period of gianmarco lorenzi pumps time they will become comfortable and you gianmarco lorenzi boots will probably forget you are even wearing them.If you are giuseppe zanotti shoes planning to wear heels outdoors or at a club on the weekend, wear giuseppe zanotti boots them around the house for a few hours first until they feel 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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